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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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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자리를 잡고 머물고 있던 페이스 용병단의 거주지에 도착하자 오랫동안 여기에 터를 잡고 있었던 용병단과 거주민들은 반가운 듯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는 광경은 그들과 여기까지 함께 동행을 한 기사들에게는 꽤나 신기하게 보였다.
용병단 본대가 일사불란한 것은 당연히 이해가 가지만 농노 출신이 대다수인 그들이 여느 군대 못지 않게 신속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장원제도에 익숙해진 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기까지 했다.
그들이 보아온 거의 대부분의 농노들은 소처럼 일만 하고 세금을 내는 일에 벅차서 허덕이며 기사들과 병사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이면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기사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움직일 때는 분명히 분쟁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으니 농노들이 몸을 사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기사와 병사로 이루어진 무리들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 주둔하면서 마을 처녀들을 잡아가는 일도 흔했고, 그들을 말리며 애원하는 가족들을 죽이는 것도 흔했으니까.
장원 제도를 신봉하는 기사들 중에는 농노들이 살고 있던 영지를 마음대로 벗어나 용병단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왕권이 허락한 장원 제도에 어긋난 일이며 그 사실을 알면 그들을 돌려보내야지 왜 묵인하느냐고 리에게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리는 아주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들을 단박에 잘라내었다.


"내버려두면 어차피 죽을 목숨들이었기 때문에 천한 용병들을 따라온 자들이오. 그리고 왕권이라고 했나? 그렇다면 냉정하게 따져봅시다. 왕실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살아남는게 이익이 아니오? 만약 댁이 이 사실에 대해 왕실에 고발을 한대도 난 상관없소. 그리고 저들도 돌려보내지 않을거요. 왜냐하면 대다수의 영주들은 당신이 말한 그 제도의 법에 의거해 영지를 마음대로 벗어났던 저들을 본보기로 죽이려 들테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저들을 돌려보내는 일은 지금 우리가 목숨을 내걸고 싸우고 있는 후작 각하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이오. 권력에는 관심이 없으신 후작 각하께서는 아미티지 영지의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그 한가지 사실 때문에 이 전쟁을 결심하셨으니 어떻게 해서든 저들의 목숨과 돈이 될 것을 어떻게든 긁어모아서 맞바꿀 생각도 하실게 분명하오. 그리고 나는 아미티지 후작 가문을 편에 서기로 했으니 그 뜻에 따를거요."


게다가 귀족- 그것도 유서깊은 대귀족 가문인 아미티지 후작의 직위를 가진 리처드가 그들과 살갑게 말을 섞는 광경에 그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데다가 월터가 슬그머니 끼어들어서 아미티지 영지는 원래 다른 영지와는 다른 분위기이며 자신도 처음에는 익숙하지 못했었고 살아남기 어려운 척박한 지역이라서 오히려 다른 곳보다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분위기를 자랑한다고 해주어서 그들도 점차 이 독특한 집단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젊은 기사들 몇몇은 거주지역의 젊은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 경우도 생겨났을 정도였으니.
그런 젊은이들에게 나이가 더 든 기사들이 페이스 용병단에 소속된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손을 못대는데 앞으로 어쩔 생각이냐고 하자 그들은 아주 태연하게 전쟁에서 승리하면 아미티지 영지에서 결혼을 허락받고 살거라고 대답을 해서 나이 든 기사들의 뒷목을 잡게 하기도 했다.
아무리 페이스 용병단이라는 집단 안에서는 계급간의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없어보인다'지만 이곳 뿐 아니라 아미티지 영지 역시 왕국에 속해 있고, 계급간의 결혼 문제는 이야기가 다른 법인데!


여러모로 젊은이들에게 환상과 꿈을 안겨준 셈이 되어버린 아미티지 가문의 내전은 에드워드의 우승건까지 포함해서 꽤나 큰 파란을 일으키게 된 셈이었다.
게다가 리가 의뢰를 했던 아미티지 전쟁의 소설 1부가 이제 막 출판되기 시작하는 시점인지라 당장 땡전 한 푼도 없어서 골골대던 리의 입장에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출판이기도 했고, 실제로도 불티나게 팔려나간 책으로 번 돈은 기대 이상으로 쏠쏠해서 겨우내 급한 운용자금으로 아주 잘 사용되었다.


원래는 전쟁 막바지에 그 돈을 종잣돈으로 삼아 용병단들을 회유해서 몰아쳐 그 망할 놈을 완전히 꺾어놓으려고 계획했던건데!


리는 무성해진 수염을 깎으려다가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서 수염 삭제는 그만두고 사냥이나 갈 채비를 했다.
수염을 깎으면 제일 좋아하는게 리처드인데 리처드가 좋으면 나도 좋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긴 하지만 전쟁 중에도 틈만 나면 성 안의 주민들을 걱정하던 것이 생각나서 갑자기 추워지면서 내린 눈이 리처드의 탓인 것 같아 좋아할 일을 해주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봤자 사냥을 가면 꼭 멧돼지를 잡아 실컷 먹여줄 생각이긴 했지만.


사냥은 네드 녀석과 함께 가야 제맛인데- 리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여러가지를 배우라는 의미에서 북쪽 숲의 부락을 점검한 후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일을 하게 될 암살 부대와 럭키 부대를 이끌고 고군분투하고 있던 광산 도시의 용병들과 합류해 이 곳으로 무사히 후퇴를 하도록 했지만 그런건 다른 부대장들에게 맡겨도 되는 일이긴 했다.
잘난 자식놈을 두는 것도 때로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네- 미친 친화력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에드워드를 생각하며 한탄을 하던 리가 어슬렁거리며 용병들과 함께 사냥을 하러 가버리자 그 광경을 바라보던 前부단장은 리의 속을 알 것 같다는 듯 쯧쯧- 혀를 차다가 이내 간만에 와보는 이 장소를 둘러보며 깊은 감회에 빠졌다.


아미티지 영지를 벗어나자마자 시작되는 숲을 좌편에 끼고 빙 둘러 내려가면 위치한 페이스 용병단의 거주지는 산자락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북쪽의 매서운 바람을 막아주는 산 덕분인지 급격하게 따뜻해지는 위치이면서 많은 인원을 수용할만한 무성한 숲은 사냥터로도 훌륭했고 땔감이나 기타 자원을 얻어내기에도 아주 좋은 터전이었다.
게다가 땅도 오랫동안 개간이 되지 않은 탓인지 비옥한 축에 속하는 편이어서 겨우내 머물며 호밀 등의 농사를 짓기에도 적합했다.
원래 왕은 남작위를 받은 리에게 이 지역을 귀족이 아니랄지라도 왕국이 유지되는 한 페이스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계속 소유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었지만 리는 그걸 거절했었고, 리 자신은 최대한 빨리 현역에서 은퇴해서 리처드의 옆에 꼭 붙어 살 계획이었다.
겉보기만으로는 안그럴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비상한 머리를 가진 리는 척박하고 추운 아미티지 영지에 비해 따뜻하고 비옥한 이 지역을 하사받게 되면 전쟁 이후 리처드에게 쏠려야 할 인구수가 확 줄어들 것도 계산했었다.


다들 의외라고 생각했던 리의 결정은 그 자신의 인생 목표가 리처드의 복권일 뿐 자신은 권력에 관심을 둘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왕권과 가까워지려는 듯 보이던 리를 견제하던 귀족들의 마음을 돌리는 일에는 성공을 할 수 있었고 그건 기반이 거의 없다시피 한 리처드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호재였다.
굳이 중립에 설 생각을 갖는 귀족들까지 공작의 파벌에 들도록 할 필요는 없는데다가 그런 자들은 대부분 새로운 왕이 옹립된 이후 블랙마켓을 금지당한 공작이 다른 부분에서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듯 지나치게 세력을 키우는 것도 견제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리처드는 리가 아무런 이익도 취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만약 영주의 자리에 다시 앉게 된다면 원하는 도시든 마을이든 주겠다고 했었고, 그에 대한 리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었다.


"내게 필요한 땅은 내가 누울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리처드가 웃으면서 그건 너무 욕심이 없는 대답이 아니냐고 묻자 리는 이렇게 대답을 해서 매를 벌었다.


"사실은 그 정도도 필요 없죠, 왜냐하면 저는 당신의 몸 위에 누울 생각이니까. 아, 그게 싫다면 당신 아래 누울 수도 있습니다. 앉아서도 좋고요."


개전이 시작되면 다시 모이겠노라 맹세한 기사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월터가 다수의 기사무리를 이끌고 부친이 다스리는 영지로 떠나자 최근까지 목숨을 내걸고 요란한 전쟁을 했던 것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페이스 용병단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수도에서의 일에 대해 리처드와 함께 상의를 하며 피로를 풀던 리는 이제 에드워드가 푸른 검날 용병단과 그 동맹들을 이끌고 도착하면 마지막 정리를 한 뒤 수도로 갈 예정이었다.


수도까지의 여정을 기다리고 있는 리와 리처드는 여러가지 의논을 하면서 살짝 들떠 있었다.
그 이유는 에드워드가 도착하면 셋이 함께 수도까지 조용하게 여행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날씨 문제로 휴전 중인데 위험한거 아니냐며 우려를 했지만 영지 바깥에서 상황을 감시하던 왕의 관리를 통해 올 해의 전쟁을 정식으로 휴전하기로 판결이 났고, 영지 밖에서의 그 어떤 무력 행위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이 더 안전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하자고만 들면 산적 등을 핑계대어 암살 시도를 할 수야 있겠지만-


"하긴, 어떤 미친놈이 왕국 최강의 검사와 페이스 용병단의 단장이 호위하고 있는 아미티지 후작님을 건드릴 생각을 하겠어? 당장 도륙이 나기 싫다면."


ㅇㄱㄹㅇ...


게다가 이번 전쟁을 통해서 가뜩이나 공포와 살육의 아이콘으로 악명이 자자한 페이스 용병단의 단장은 난공불락의 아미티지 성 안에 침투해 500명의 적을 살해하고 난 뒤 엄청나게 무거운 금궤짝을 짊어지고 성벽을 유유히 기어올라가고 기어내려왔다는 소문이 쫙 퍼진 상태였다.
게다가 에드워드도 전쟁 초반의 광산 도시 탈환 사건이 와전되어서 1:500으로 싸워서 도시를 빼앗았다는 소문이 수도 뿐 아니라 주요 도시마다 잔뜩 퍼진지는 오래였다.
현재 리와 에드워드는 낫닝겐 존나쎈 존똑 부자로 회자되고 있는 형편이어서 도적들 뿐 아니라 용병단 두엇이 떼거지로 달려들어도 못이긴다는 평이 대세였다.
그러니 리처드 아미티지 후작과 존똑 부자가 어딘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빼박 필립 아미티지 후작이 명한 암살이라는 결론이 나오기에 딱 알맞기 때문에 셋의 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리는 수도로 향하면서 만나는 도시마다 일부러 들어갈 생각이었고,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여정을 밝혀서 리처드에게는 손도 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과 동시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중립 영주들을 이쪽으로 끌어들이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찌감치 끝나고 셋이 수도로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도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로 변모해 소설로만 보았던 셋의 실물을 영접하기를 눈알이 빠져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그들이 머물기로 되어있는 가이 기스본의 집 근처는 사람들도 우글거리는 판국이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일을 꺼리는 은둔수인 존 포터는 아침에 진의 심부름으로 식품을 사러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열린 문에서 나오는 자신을 주목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워서 그 다음부터는 뒷문으로 슬며시 빠져나와 아무도 몰래 빵과 치즈 등을 사가지고 다시 아무도 몰래 집으로 들어가느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입 기술이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었다.
물론 이제 만삭인 가이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이 자신의 미모 탓이고 그게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뒤뚱거리며 마차에 올라타면서도 자신의 미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중이었고.
진 역시 대단히 들떠서 열심히 집 청소 및 수리를 하는 등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사실 제일 마음이 분주한 사람은 가이였다.
가이의 심정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딱 이랬다.


발등이 불이 떨어졌다!


그 이유는 에드워드가 받게 될 벌 때문이었는데 기스본 영지의 금광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린 것에 대해 공작 새'끼 및 필립과 그의 추종자들이 그냥 넘어갈리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벤자민은 괜찮다며 안심을 시켜주었지만 중립을 지켜야 하는 벤자민이 나서서 편을 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가 최근에 출판된 소설을 통해 대중들에게 리처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자 공작과 필립의 편에 선 귀족들의 분위기가 더 험악해진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가이는 정말로 쉴 새도 없이 월렛 가문에 관한 자료를 찾고 있었고, 제법 쓸만한 자료들을 찾아 정리를 하느라 다리가 퉁퉁 봇고 아픈 것도 신경을 쓰지 못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긍정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순교를 했던 조상에 대한 미담이나, 어느 도시로 순례를 갔을 때 억울하게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던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해서 신의 기적으로 구해주었다는 미담 정도가 전부였다.


...이거 내가 엉뚱한 곳을 파고 있는건 아닐까? 당연히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는 책에는 종교나 신앙 이야기만 가득할게 뻔한데.


책을 뒤지던 가이는 만삭의 몸으로 무리를 해서인지 배가 아파오면서 다리까지 저려오기 시작하자 결국 의자에 앉아 아픈 배를 달래기 시작했다.
맨 처음 리처드가 찾아주었던 월렛 성이 지어지게 된 유래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이 기록된 책을 찾아서 읽던 와중에 배가 아픈 터라 호흡을 고르며 복통을 가라앉히던 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갑자기 다리에 쥐가 오자 대단히 난처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이러다가 아킬레스건이 뚝 끊기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근육이 당기는데다가 배가 나와서 스스로 주무르지도 못하는 판국이라 생각같아서는 소리를 빽 지르고 누구라도 와서 다리를 좀 주물러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이 장소가 수도원의 도서관이라는 점이었다.


악- 나 죽어어!!! 이 빌어먹을 꼬맹이는 왜 이럴 때 옆에 없고 ㅈㄹ이야!? 손도 크고 힘이 좋아서 꼭꼭 몇 번만 눌러주면 금방 나을 것 같은데! 으악악악!!!! 진! 나 좀 도와줘요! 이럴줄 알았으면 현장학습이라고 핑계를 대고 포터군이라도 데려올걸! 윗! 엄마 죽는다아아아!!!!!


정말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인지라 겨우 몸을 옆으로 기우뚱 숙여 쥐가 제대로 난 다리를 열심히 꾹꾹 누르던 가이는 너무 아픈 나머지 이를 악문 채 눈물까지 뚝뚝 흘리는 형편이었지만 지금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을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윗과 존을 가졌을 때도 늘 바쁘긴 했지만 만삭일 때는 조지를 열심히 부려먹어가며 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극악의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런, 피곤해 보이셔서 염려했는데 역시 너무 무리하신 것 같군요."


가이는 자신에게 급히 다가온 구원의 손길이 누구의 것인지 생각도 하지 못할 지경이라 자신의 가죽 부츠를 벗겨내고 발바닥과 다리의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과 관절을 제법 효과적으로 잘 풀어주는 손길에 머릿속에서 상투스가 울려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딱딱하고 무거운 나무 의자의 등받이를 손으로 꽉 쥐고 끙끙대다가 극심하던 쥐가 조금씩 풀어지자 그제서야 겨우 눈물을 닦아내고 이 구원의 손길이 누구의 것인지 볼 여유가 생긴 가이는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헐! 미친!이라고 외칠 뻔 했다.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지난 번 자신의 출입을 허락해준 대사제가 그야말로 다정돋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올려다보자 가이는 심하게 당황해서 허둥거리며 일어서려다가 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오메가라는 제약 때문에 얼굴과 손 이외의 신체를 타인 앞에서 드러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었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손을 대는 일은 가이 스스로도 극혐을 하고 살았었다.
사랑하는 꼬맹이를 제외하면 그나마 리처드의 앞에서나 그런 행동이 괜찮았고, 지금은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는 진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자신을 도와준 것이니 그켬!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츠가 벗겨진 것이나 자신의 잘빠진 다리선을 주물거렸다는건 가이로서는 대단히 당황스러운 일이긴 했다.
그래도 도움을 받는 것을 고맙긴 하지만.


"...가... 감사합니다, 대사제님.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마치 에드워드를 연상케끔하는 다정돋는 미소에 얼굴이 확 달아오른 가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감사를 표하자 다정하게 부츠까지 다시 신겨준 대사제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다른 어떤 조건같은 것도 달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났다.


"마음이 조급하신 것은 이해합니다만 건강을 우선하십시오, 뱃속의 아이도 함께 힘들테니까요."


헐- 그래도 제법 매너 있네? 대사제는 죄다 턱과 콧대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아랫사람들을 무진장 부려먹는 재수 더럽게 없는 인간들인줄만 알았는데. 나이도 별로 들어보이지 않던데 돈 많은 귀족 출신이라 세상물정 모르고 순진해서 그런가? 가끔 돈 무진장 많은 귀족들이 발판을 넓히려고 자식들 중 하나 정도는 종교길을 걷게 하던데. 하! 돈 많고 빽 단단한 귀족이라니 부럽다. 대사제까지 올라갈 정도면 금 1000파운드 정도는 큰 무리 없이 낼 수 있겠지? 헹- 그래봤자 가난해도 내 꼬맹이 상판이 제일이야! 호리호리하게 말랐는데 단단한 몸매랑 그 정력도! ㅅㅂ... 만삭인데도 설라 그러는 나새'끼는 ㄹㅇ 변태인가?


"그 대사제라면 공작의 편은 아닌 백작 가문 출신의 차남이라네. 엄밀하게 말하면 현재 아미티지 가문의 내전에는 중립을 표하고 있는 귀족들의 대표격이지. 명문가이긴 하지만 정치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가문이라네. 다만 기회를 타서 이익을 취할 뿐이지."


레슬리 백작의 명료한 대답에 가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편의를 봐주는 것은 뒤에 공작의 입김이 있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그나마 상대하기 편하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레슬리 백작을 찾아와 넌지시 대사제에 대해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공작의 편은 아니라는 것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은 그 대사제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서 공작의 편에 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네. 가이 기스본, 그가 자네를 수도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고 했지? 그렇다면 그는 자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제가 수도원의 도서관에 들어가기 위해 제 외가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겠다는 뜻을 표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직도 조금 뻐근한 다리를 살살 주무르며 레슬리 백작의 질문에 대답을 하자 백작은 끼고 있던 수정알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던지듯 올려놓고 가이를 빤히 응시했다.


"가이 기스본, 그가 무슨 생각으로 자네를 수도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딱 한가지는 기억했으면 좋겠군. 그는 왕명으로 Golden Rocks와 함께 묶여서 관리되고 있는 Green Forest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의 차남이라는 것을 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Green Forest는 왕국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풍성한 자원을 가졌고, 그 곳의 가장 유력한 가문 출신이라면 자네의 외가인 월렛 가문에 대해 뭔가 목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 어쨌든 지금은 뭐든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니 조심하고 너무 무리하지 말게나. 자네가 에드워드 존 로이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만약 재판에서 패소할 경우 그 정도의 자금은 어떤 방법으로든 끌어모아서 동원할 방법이 있다네. 무엇보다도 자네는 만삭이 아닌가? 아이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편하게 갖길 권하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이는 Green Forest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이 어떤 성격을 지닌 가문인지, 그리고 그들이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고 있었다.
7년 전의 분쟁에서 영주가 월권과 동시에 반역을 저질렀을 때 풍성한 숲으로 이루어진 Green Forest에 비해 금전적 이익을 얻을 방법이 현저히 적은 Golden Rocks의 대다수의 귀족들은 영주에게 반발을 한 것과는 다르게 몸을 사리고 사건을 추이를 지켜봤었고, 영주의 곁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봤었던 가이는 Green Forest의 귀족들이 그들 중 가장 유력한 가문의 영향과 조언을 받아 그렇게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잊고 있었는데- 거기까지 기억해낸 가이는 데프슨 경이 그 자식들에 의해 살해 당하기 직전 즈음에 그 가문의 차남이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헐- 그러고보니 영주놈에게 세금 보고를 하러 심부름을 종종 왔었어! 얼굴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인간이 이 인간이었나!? 그러고보니 그 때도 되게 느긋한 태도를 취했어서 기억에 남았는데! 그런데 성직자가 될 인간으로는 안보였는데? 뭐, 가문의 명령이라면 하는 수 없었겠지만.


"그래? 괜찮았던거야? 그나저나 의외인데? 대사제 중에 그런 사람이 있을 줄이야."


레슬리 백작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진에게 오늘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말을 해주자 진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하게 여겨질만한 것이 대다수의 대사제는 사제들과 예비 사제인 어린 소년들과 젊은 청년들을 잔뜩 거느리고 뽐내며 돌아다니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기 때문이었다.


"저도 놀랐으니 진이 놀라시는 것도 당연하죠."


"으음... 하지만 굳이 가이에게 편의까지 제공하고 손수 도와준건 좀 의심이 가긴 하는데? 대놓고 뭘 요구하지도 않았다니 더더욱. 레슬리 백작님께서 공작의 편은 아니라고 하셨다지만 그래도 좀 알아보는게 좋겠어. 그 쪽은 나에게 맡겨. 페이스 용병단의 정보원들과 연락이 가능하니까. 그리고 가이, 앞으로 조심해. 만약 가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단장이 날 강물에 던져버리려고 들거라고. 게다가 에드워드는 날 원망하겠지. 누나 미워!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아."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진의 푸념 섞인 말을 듣던 가이는 리를 흉내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던져? 진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 여우새'끼를 위해 일했잖아? 만약 빌어먹을 아들놈이 투덜거리면 당장 머리통을 갈겨주라고. 키워준 은공도 모르는 괘씸한 놈은 맞아도 싸지. 더구나 소중한 내 여동생을 말이야!"


꼭 리를 연상시키는 가이의 능청스러운 연기력에 진이 웃음을 터뜨리자 시누이와 올케 사이의 훈훈터지는 광경을 멍청한 눈으로 바라보던 존 포터는 마루 아래를 빨빨거리고 탐험하다가 먼지와 흙투성이가 되어 기어나온 윗이 빵에 손을 뻗는 것을 냅다 저지해 진 못잖은 빠른 솜씨로 얼추 닦아준 후에야 빵을 쥐어주었다.


존 포터는 지금 대단히 피곤한 상태였다.
일주일 전 발간된 아미티지 내전에 관한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수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있는 터라 매일 가던 식료품점에서 그 책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우던 아가씨들에게 잡힌 존 포터는 광산 도시를 탈환했던 에드워드에 관한 질문을 답해주어야만 했다.
물론 아가씨들은 존 포터가 심부름을 하는 소년이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고, 소설에 나온 '에드워드를 감동시킨 소년'이라는 사실은 몰랐었다.
만약 존 포터가 사람들이 알고있는대로 심부름하는 소년일 뿐이었다면 전쟁 상황이나 에드워드의 활약에 대해서는 1도 몰랐겠지만, 이 아가씨들은 에드워드의 배우자인 가이 기스본의 집에 살고 있는 소년이니 당연히 그 사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지레짐작을 했던 것 같았다.
그러니 은둔수인인데다가 사람들의 관심이 극히 부담스러운 존 포터는 그녀들의 질문에 모른다고 하고 자리를 뜨면 되는 일이었지만 불행하게도 이 고지식한 소년은 아는대로 답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러다가 늦는데! 울상이 되면서도 대답을 꼬박꼬박 해주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실수로 거기 나온 소년이 자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버리는 바람에 -너무 아파서 기절했다가 눈을 떴는데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려서 저는 에드워드가 죽은줄 알고 정말 슬펐어요- 아가씨들의 꺄악! 괴성과 더불어 갓 구워낸 맛있는 빵까지 통째로 한 덩어리를 공짜로 받아갈 수 있었다.
음... 이익인가?


내일도 또 와! 에드워드의 친구인 귀염둥이야!
아가씨들의 초부담스러운 관심을 집중받았을 뿐 아니라 잔뜩 조물딱거려지는 고난을 경험해야만 했던 존 포터는 앞으로 심부름을 못하겠다고 울어버릴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지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긴 한 것 같아서 자신의 괴로움은 에드워드의 가족들을 위해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아장아장 걸어와서 자신의 팔을 덥썩 잡은 존을 안아 수프를 먹여주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싫긴 하지만 진의 말대로 조금이라도 더 관심이 쏟아지면 에드워드의 가족들도 덜 위험할테니까.
관심이 잦아들기를 기다려야지- 마음 편하게 생각한 존 포터는 단 한번도 존을 토하지 않게끔 트름을 잘 시켜주는 기술을 발휘하고 존이 먹은 그릇을 주섬주섬 치우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에드워드, 빨리 와서 제게 쏟아지는 이 관심을 전부 가져가줘요! 솔직히 부담스러워서 울고 싶다고요!

2016.12.03 19:50
ㅇㅇ
내센세 오셨다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ae0]
2016.12.04 03:23
ㅇㅇ
모바일
내센세 일단 선설리를 받으세요ㅠㅠㅠㅠㅠㅠㅠ항상 고맙게 읽고있음ㅠㅠㅠ센세 사랑해ㅠㅠㅠ
[Code: 81e7]
2016.12.04 03:35
ㅇㅇ
모바일
저 사제 갈수록 의심스러운데 네드 닮았다는거 보니 아리송ㅋㅋㅋㅋ배고파서 그런거 리가 잡아온 멧돼지 리처드인척 다 먹어버리고 싶다ㅠㅠㅠㅠㅠㅠㅠ
[Code: 81e7]
2016.12.04 03:35
ㅇㅇ
모바일
센세 어나더!!!!
[Code: 81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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