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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터의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잠귀가 밝아서 존이 칭얼거리기 시작하면 바로 일어나 토닥여서 밥을 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고 이불을 차던지고 자는 버릇이 있는 윗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잠이 들었다.
밖에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는 윗은 요즘 다시 바쁘게 외출을 하는 엄마가 없는 터라 그나마 놀아줄 상대인 존 포터에게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려고 들지 않았고, 아침마다 존 포터의 담당이 되어버린 근처 식품점에서 진이 부탁한 빵과 식료품을 사러 가면 나도 데려가! 라는 눈빛으로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존 포터가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윗에 대해서는 1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된 진은 배가 부쩍 나온 가이를 조금 더 신경 써서 챙겨줄 수 있었다.
원래 저혈압에 빈혈도 좀 있어서 먹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다가 요즘에는 집에 오기만 하면 자느라 바빴고 누가 부스러거리만 해도 잘 깨어나는 것 답잖게 윗이 옆에 붙어서 팔을 꼭 안고 자는지도 모를 정도로 피곤해했다.


이러다가 아이한테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걱정이 되어도 쉽사리 집을 떠날 수가 없었는데 존 포터도 적응을 잘 하고 있으니 마음 푹 놓고 시장을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좀 더 다양하고 신전한 재료를 파는 시장은 걸어서 20분은 가야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마음놓고 갈 수가 없었는데 존 포터가 와서 아이들을 돌봐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릴리는 가정 일은 잘 도와줘도 윗이 그다지 따르지 않아서 온전히 맡겨놓고 집을 비우기는 좀 불안했었다.
집에 돌아와보면 릴리는 늘 난처한 표정으로 도련님-을 찾고 있었고, 윗은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지 모르게 흙이나 먼지투성이가 되어서 기어나오곤 했으니까.


정육점 앞에서 잡고 있는 아주 싱싱한 동물의 간을 흥정해서 좋은 값에 사고 가이에게서 배운 경제적 입털기로 간요리에 잘 어울리는 후추와 향신료도 사는데 성공을 한 진은 몇 가지 야채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사서 잔뜩 짊어지고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다.
시장 근처의 주점에서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맛있는 맥주는 집 근처에서도 팔고 있으니 거기에 들러서 사가지고 집으로 가서 느긋하게 마실 생각이었다.
날씨도 더우니 얼른 가서 간을 익혀놓지 않으면 금새 신선도가 떨어질테니까.

 

"진, 오랜만이예요."


어쩐지 대단히 홀쭉해진 듯 보이는 조지가 집 앞에 서성거리다가 진을 발견하고 화색이 도는 모습에 진은 의아한 눈으로 조지를 바라보았다.


"가이는 지금 수도원에 가 있는데?"


"레슬리 백작님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진을 만나러 온겁니다."


나를? 더 의아해진 진에게서 헝겊으로 된 가방을 받아들고 끙끙대며 옮기는 것을 도와준 조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들고 왔던 진이 새삼 용병으로도 활동했었고 펜리 상단에 고용된 사병으로서 일을 해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가서 앞으로 절대 화나게 만들지 말아야지! 결심을 하게끔 되었다.


"휴우- 오늘 덥네. 조지, 나 이거 잠시 정리할 동안 괜찮으면 가서 맥주 좀 사다주겠어? 한 잔 하고 싶었는데 오다가 양배추를 사느라 잊어버렸어."


조지가 냉큼 맥주를 사러 나가는 사이에 간부터 꺼내서 썰어 가이의 입맛에 맞게 소금과 후추 등을 살살 뿌려둔 진은 양배추도 찔 준비를 하고 이래저래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 조지가 땀투성이가 되어서 도착하자 과일을 예쁘게 깎아 놓아주었다.


"그런데 윗과 존은요?"


"못봤어? 뒷마당 쪽에 가본거 아니었어?"


"몇 차례 두드려도 대답이 없어서 가봤는데 안보이던데요? ...저기, 혹시...?"


조지의 걱정에 신경은 1도 쓰지 않은 진은 쥐라도 돌아다니는 듯 다락방에서 우르르- 소리가 나자 아이들의 행방을 알아채고 조지가 건네준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키기 시작했다.


"최근에 에드워드가 심부름을 할 소년을 보내줬어. 다락방에서 같이 노는 것 같아. 애들 내려오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른 해."


웃으며 과일을 권하는 진의 말에 조지는 당장 울상이 되어서 테이블 위에 엎어져버렸다.


"릴리가 도무지 청혼을 받아주질 않아요......"


결국 눈물을 푹 쏟은 조지가 해준 말에 의하면 어차피 오메가의 사산율은 대단히 높으니 일부러 낙태를 하거나 하지는 않을테고, 가문을 포기하겠다고 나선 아들의 장래에 대해 걱정을 할지언정 애너벨 역시 그것은 권하지 않기 때문에 릴리는 애너벨의 보호 아래 잘 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티지 가문과 더불어 왕의 곁을 지켜왔던 프리먼 가문의 대를 잇는 일을 포기하겠다는 조지의 말은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어서 마틴은 한동안 기사단의 일은 거의 살피지도 못할 정도로 고심을 했었고, 양자를 들여야 하느냐는 생각까지도 했을 정도였다.
귀족의 결혼은 왕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결혼을 하지 못하면 아이는 사생아가 될 뿐인데다가 지금까지 귀족이 평민과 결혼을 해서 그 아이가 대를 이었던 전례가 전혀 없었다.
리 역시 남작위를 받고나서야 리처드와 정식으로 결혼을 할 수 있었으니 왕국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단단한 것이 신분의 벽인 셈이었다.


"아직 사정이 그러니 받아주지 않으려는게 당연하겠지. 더구나 백작부인께서도 릴리를 미워하거나 하시지 않으시니 릴리의 입장에서는 죄책감이 오죽하겠어? 혹시 릴리를 기사의 양녀로 들이거나 뭐 그런 편법을 쓰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거야?"


실제로 종종 일어나고 있는 편법이긴 하지만 대다수의 귀족들이 서로를 누르지 못해 안달을 하고 암투를 벌이는 터라 그런 경우 자신의 입지를 약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귀족은 없었기에 저런 일은 가문에서도 입지가 약하고 시골에서 조용하게 농노들을 부리며 지내는 경우나 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조지는 외동아들이고 권력 다툼의 중심에 서 있는 가문들 중 하나였으니까.


"지금은 아미티지 가문의 내전이 일어나고 있고, 기사단장으로서 친구를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 그러니 리처드 크리스핀 아미티지가 승리한 이후에 정세가 안정된다면 그 방법을 써보도록 하겠다. ...아버님께서는 여기까지 양보하셨습니다."


"워어- 기사단장님으로서는 진짜 최대한의 양보를 하셨네. 하지만 그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면 그 아이는 사생아가 되어서 지내게 되겠지. 에드워드처럼."


씁쓸하게 웃은 진은 남아있는 맥주를 꿀꺽 마시고 잘 쪄진 양배추가 담긴 냄비를 내려놓은 뒤 양념이 잘 배어들어간 간을 한 조각 집어들어 팬에 굽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 아이는 세례도 받지 못할거야. 에드워드는 엄마가 친엄마 노릇을 해주셨으니 세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네, 무사히 낳으면 말이죠."


"그래서? 나에게 그 아이의 엄마 노릇을 부탁하려는건 아닐테고,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건데?"


"딱히 부탁을 드릴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들어줄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층 안정되는 기분인데요."


"그건 그래. 조지, 기사단장님께서 거기까지 양보하셨다면 내 생각으로는 최근에 수도에 와서 머물고 계시는 존스씨께 상담을 청하셨던게 아닐까 싶어. 존스씨는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스스로 작위를 던지고 상인이 되신 케이스잖아? 물론 존스씨의 동생인 차남이 작위를 이어받았다고 하지만 그 당시 그건 대단한 결심이었다고 들었어. 존스씨는 지금도 자신이 귀족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다니고, 우리 남매 역시 존스씨에게는 격식없이 대할 수 있었어."


완고한 부친이 루퍼트를 만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던 조지는 맥주잔을 든 채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밤 늦게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돌아와서 자신을 불려놓고 여기까지는 해줄 수 있으니 너도 양보할 것은 양보하라고 차분하게 설명을 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그랬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제게는... 형제가 없습니다, 진."


"알아. 그리고 기사단장님께서는 부인 외의 다른 상대에게는 눈도 안 돌리시는 분이시지. 게다가 가문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하시고."


맛있게 구워진 간을 접시에 담아 양배추 찜을 곁들여 나이프와 포크를 놓아준 진은 웃으며 조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먹고 힘 내. 안색이 영 안좋아서 난 조지도 임신을 한 줄 알았다고. 뭐... 나 같은 평민이야 신분과 가문에 얽매이는 것에 대해 크게 이해는 하지 못하지만 리처드를 위해 열심히 뛰었던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기사단장님의 심정도 이해가 가긴 해. 리처드로부터 오빠와 함께 이 반지를 받았을 때 정말로 당장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뻤으니까."


지금도 아미티지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은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여준 진은 맛있게 구워진 간을 자르던 조지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었다.


"전에도 들었는데 그 반지는 아미티지 영지의 공헌자들에게 주는거라면서요?"


"응. 하지만 단순한 명예는 아니야. 워낙에 침략이 잦고 불안정한 곳이라 이 반지를 가진 사람들은 기사 다음으로의 위치를 가질 수 있어. 예를 들어 기사 한 사람이 스무 명의 병사들에게 지휘권을 갖게 된다면, 이 반지를 가진 사람은 열 명의 병사에게 지휘권을 가지고 치안을 돌볼 권리를 받는거야. 그러니 이건 진짜 아무에게나 주는게 아니라고. 반지가 악용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반지에는 각각 받은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어. 비록 지금은 아미티지 영지 바깥에 살고 있지만 만약 리처드가 제 자리를 찾게 된다면 오빠와 나는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 되는거야. 이해해?"


"어쩐지 진이 대단히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더니 그런 거였군요. 그렇게 따져보니 진은 기스본 가문이 새워진 이후에는 기사 작위를 꼭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가문의 후손들을 무사히 돌보고 지켜낸 공로가 보통 큰 공로입니까?"


존이 배가 고픈지 칭얼대는 바람에 존을 등에 업은 채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던 존 포터는 차림새가 딱 귀족으로 보이는 낯선 사람의 모습에 놀라서 일단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잘 놀았어? 먼지투성이가 된걸 보니 고생 많았겠네. 조지, 존 포터 알지? 에드워드를 구하겠다고 발에 채여서 부상 당했다던. 겁먹지 마, 포터. 이 양반이 에드워드가 형이라고 부르는 조지 프리먼 경이야."


존 포터라는 소년에 대해 전해 들었던 조지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까지 청하며 친근감을 표해주었다.
에드워드가 친구라고 인정했고, 에드워드를 위해 크게 다치기까지 했으니 에드워드 골수빠인 조지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던 반가운 상대였다.
시간이 나면 맛있는 것을 대접하며 전쟁 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에드워드의 모습)에 대해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 지금은 잠시 들른 것이라 아쉬웠다.


"사앙-쭈우-"


상추가 아니라 삼촌이다! 앵무새 교육시키듯 교육시켰던 것에 대한 보답인지 아직 불완전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자신을 보고 반가워하며 도도도 달려와 다리를 끌어안는 윗에게 푹 빠진 조지가 먼지투성이가 된 것에도 개의치 않고 물고 빨고 귀여워하는 모습을 아련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진은 지친 존 포터를 위해 간 한 조각을 더 구우며 존 포터의 등에 업힌 채 밥달라고 칭얼거리기 시작하는 존의 입 안에 미리 으깨어 놓았던 부드러운 과일을 칭얼 방지용으로 한 입 떠 넣어주었다.


"빌어먹을 놈의 새'끼들 같으니!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읽으려는데 왜 갑자기 쳐들어와서 나가라고 지'랄이야, 지'랄이!? 아오- 썅! 열받쳐! 확 불을 질러 버릴까보다!"


누가 왔는지 안봐도 훤한 말투에 윗은 버둥거리며 조지의 품을 벗어나더니 현관으로 도도도 달려가 가이의 다리에 덥썩 매달렸다.
그리고 이렇게 열이 받쳐 있을 때에는 근처에 거슬리는 모든 것을 냅다 걷어차고 보는 가이는 사랑하는 꼬맹이와 존똑인 아들네미를 보자 치솟았던 화가 70%는 사르르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 좀 삐딱하긴 하지만 일단; 엄마 미소를 지어주며 코알라처럼 달라붙은 무거운 아들네미를 다리에 매단 채 주방으로 들어왔다.


"헐- 넌 또 뭐야? 릴리가 임신 중이라 못해서 불만족이 극에 달하자 하소연을 하기 위해 온거냐?"


"어째 말을 해도!"


"게다가 진이 나에게 주려고 사온게 분명한 간 요리를 소비하는 것을 보니 나에게 분풀이를 할 목적이었군."


"...말을 말자. 네가 이렇게 일찍 올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알았으면 오늘 안왔지."


"높으신 성직자 어르신이 오셨다면서 나를 들여보낸 것을 들키면 안된다고 얼른 나가라고 하잖아. 씨'발 것들이 분명히 내가 기부금을 내면 도중에서 낼름 하려던게 분명해. 어째 쉽게 허가를 내줬다 했지. 수도원의 책은 대여도 안되는데!"


"덕분에 쉽게 허가를 받은건 다행이잖아? 게다가 마침 오늘 싱싱한 간이 들어와서 최대한 빨리 먹여주고 싶었는데 일찍 와서 내 입장으로는 다행이야. 좀 쉬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진의 말에 기분이 더 풀린 가이가 자리에 앉아 윗을 안아주자 조지는 냉큼 윗을 빼앗아서 안아들고 달콤한 과일을 주었지만 엄마에게 가고 싶어서 바둥거리던 윗은 결국 시무룩해진 조지의 품을 벗어나 가이에게로 가버리고 말았다.


"역시 이 상판을 한 종자는 뛰어난 미모가 무엇인지에 대해 대단히 잘 알고 있는거야. 먹을걸 주는 사람에게 가버리는 소린과는 질적으로 다르지."


"가이, 소린은 에드워드와 같은 종자거든? 게다가 가족들이 전부 사라졌다고 잔뜩 삐져서 밥도 안 먹다다가 가이가 오자 달라붙어서 안떨어졌던걸 생각해봐."


"역시 내 미모란!"


뿌듯해하는 가이에게 웃어준 진은 현관 밖에서 도저히 들고올 수가 없어서 배달을 부탁한 양젖과 치즈 등을 가져온 상인의 목소리에 냉큼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맛있게 구워낸 간과 양배추 찜을 먹던 가이와 조지 뿐 아니라 옆에 앉아서 처음 먹어보는 구운 간을 통해 또 하나의 신세계를 영접하던 존 포터는 그야말로 가이의 입털기에 못지 않은 수준의 입털기를 시전하면서 왜 갑자기 값을 더 내놓으라고 하느냐며 버럭 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진의 우렁찬 목소리와 현란한 입배틀에 깜짝 놀라서 일제히 현관을 바라보았다.
처음 접하는 욕설난무를 듣던 존 포터는 심장 이상으로 죽을 것 같았지만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깬 존이 파드득거리면서 우는 바람에 심장 이상으로 죽을 위기를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으음... 전부터 느낀건데 말이야."


"저런 성격이라 나랑 마찰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거라고 하면 이 나이프가 네 눈깔을 파고들거라는 사실만 알아둬."


"그런 말을 하려던건 아니지만 네 말도 납득이 되어버리는건 어쩔 수가 없네. 전에 에드워드가 진에 대해서 소개를 하면서 나한테 그랬거든. 어려서는 항상 누나랑 결혼할거라고 그랬었다고."


"나한테도 그 얘기는 종종 하더라."


"다들 그러잖아, 네가 아미티지 후작님의 외가 쪽 친척이라 닮은 구석이 많아서 에드워드가 너에게 반한거라고. 그런데 내 생각에는 그 이유도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자신을 돌봐주고 익숙했던 누님과 네가 닮은 구석이 많아서 반했던 이유가 더 큰 것 같아. 뭐... 난 잘은 모르지만 진이 젊어서 안좋은 일을 경험했다고 하던데 예전에 페이스 경께서 아버지와 네 안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거든. 그 당시에는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버지에게 책임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 때 페이스 경께서 그러시더라고. 진은 그런 일을 당한 이후로 대단히 예민해져서 주변에서 뭔가 낌새가 느껴지는 일에 대단히 예리하고 까칠하게 반응하게 되었다고. 실제로 진은 다들 못느끼고 넘어간 부분들을 잘 체크해서 여러차례 너와 아이들을 지켜냈었잖아? 가만히 보면 방향은 다르지만 진도 너 못지는 않아. 아, 이건 좋은 뜻이야. 너나 진이나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 덕분에 일을 아주 꼼꼼하게 잘 하고 있잖아? 지난 번 장부의 오류도 네가 발견했고 말이야."


"그런가? 음... 그러고보니 네드가 진을 잔소리 대마녀라고 하더라."


"헐- 그거 진짜?"


결국 입배틀을 승리로 장식하고 당당하게 양의 젖을 담은 병과 치즈 등을 들고 온 진은 잔소리 대마녀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고, 당장 에드워드가 수도에 도착하면 그놈 자식의 엉덩짝을 냄비로 힘껏 갈겨주겠다고 화를 내며 분노의 야채 다지기를 시작했다.
그 모습에 공포심이 생긴 존 포터는 에드워드에게 급히 편지를 보내서 여기에 오지 말라고 할까? 싶다가 이내 자신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진의 분노 덕분에 저녁으로 만든 맑은 수프에 들어간 간과 야채로 만든 완자는 아주 부드럽고 맛있어서 으깨어 죽과 섞어주자 존도 무리없이 뇸뇸 잘 먹을 수 있었고, 존 포터는 글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되었으니... 좋은게 좋은거!


저도 글을 배울 수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내어놓은 부탁의 말에 수도에 잘 적응하며 단순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 존 포터의 일정에는 글을 배우는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고, 에드워드의 엉망진창 글쓰기에 치가 떨리던 가이는 아주 너그럽게 알파벳의 기본을 가르쳐주고 외우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의외로 존 포터의 글 배우기에 큰 관심을 가진 윗은 자신도 배우겠다며 작은 손으로 끙끙대며 바닥에 삐뚤빼뚤 글자쓰기를 말 배우기와 함께하고 있었으니 가이로서는 기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리-에드워드로 이어지는 존똑 상판을 가진 종자라서 윗도 그럴까봐 걱정했던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윗은 커서 모국어 포함 5개 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사용하는데다가 외국어 문서도 줄줄 쓰고 읽는 정도었고 그 상판을 가진 조와 로이와 칼페니아 역시 공부를 싫어하지는 않았으니 리와 에드워드가 유독 그랬을 뿐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이 절대 상판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이 사실에 대한 가이의 말을 들은 리처드의 의견은 이랬다.
원래 에드워드는 애니와 함께 살았을 때는 읽기 쓰기도 잘했지만 용병단에 들어와서부터 어쩐 일인지 퇴보 수준이 되어버렸는데 그건 아마도 리를 존경해서 닮아가기를 바랬던 에드워드가 글쓰기마저 닮아버린 것 같다고.


"헐- 저 종자도 나 같이 아름다운 오메가를 만나니까 개량이 되는가보네?"


하지만 그건 미래의 일이고 현재로서는 그저 상판의 힘을 배신해주는 윗이 기특했던 가이는 오늘은 반드시! 어제 못 읽던 부분을 마저 다 읽겠노라고 결심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게 생긴 윗이 얌전하게 앉아서 글씨를 쓰고 있는 광경에 더욱 흐뭇+뿌듯해하던 가이가 집을 나선 후에 진 역시 존 포터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집을 나섰다.


가이에게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진은 여전히 페이스 용병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암살 부대원들에게서 여러가지 정세를 얻어듣기도 하고 그에 따라 가이에게 지나가듯 충고의 말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암살 부대원들은 최대한 가이 기스본에게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는 있었지만 아미티지 전쟁이 시작되면서 최대한 많은 인원이 소환되었기 때문에 수도의 암살 부대원들은 예전처럼 하루종일 가이 기스본의 집 주변을 살피지는 못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막상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그럴 필요조차 없었고, 암살 부대원들은 낮에는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밤에만 순번을 정해서 가이의 집 주변을 경호하면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된 것은 순전히 리의 덕택이었는데 가이 기스본의 집은 리가 부관과 또 다른 라이벌 작가를 고용해서 쓴 소설의 여러 무대 중에서도 대중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장소인지라 관광 명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ㅋ
게다가 에드워드 존똑인 윗이 뒷마당의 텃밭 사이를 도도도 뛰어다니며 귀여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터라 평민들에게는 영웅이 되어버린 에드워드의 미모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장소여서 알게모르게 가이의 집 근처에는 구경꾼들이 늘 주변을 살피며 그 날의 영광을 되새기거나 상상하곤 했다.
실제로 윗을 납치하려던 시도를 1차로 막아낸 것이 에드워드의 팬이자 그 소설의 팬들이기도 한 수도의 아가씨들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소설의 팬들이 집 주변에서 돌아다니게 된 효과는 좋은 면이 많았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아가씨들은 윗을 안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납치라고는 1도 생각을 못하고 자신들도 신년의 무투회에서 보고 뻑갔던 미모의 소유자를 꼭 닮은 어린애를 데리고 그 집에서 나오니까 우루루 달려들어서 간식도 주고 졸커!를 부르짖는 사이에 진이 상황을 알고 구출을 한 것이지만.
그래도 그 뒤로 평민들의 영웅 에드워드의 가족을 해치려는 악의 무리가 있다는 사실이 그 아가씨들의 입을 통해 수도 내에 짜하게 퍼지면서 에드워드의 팬들은 혹시라도 자신의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도 영웅적인 행동을 하겠다고 두근거리면서 집 근처를 구경하는 판국이니 낯선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있을 공작의 끄나풀을 경계하느라 진이 골머리를 앓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부수적인 효과는 좋은 셈이었다.


만약 리의 부관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리에게 이 상황에 대해 짐작을 하고 소설을 쓰게 한거냐고 질문을 던졌을테고 리는 분명히 이랬을게 틀림없었다.


"큰 그림을 그리려면 늘 최대효율을 따져야 하는 법이지."


물론 리는 그런건 1도 생각 못하고 대중들의 인기+짭짤한 수익+리처드 소주(리 자신에게는 이거 엄청 중요했다)만 생각했을 뿐이지만.
어쨌든 리가 부관과 그 라이벌을 시켜서 열심히 어나더를 찌게 하는 덕분에 슬슬 가을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가이 기스본의 집에 대한 순례자;;들의 발길과 주변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진은 그 때문에 일어난 부정적인 문제- 낯선 이들 사이에 섞여 있을 공작의 스파이를 경계해야만 하는 자신의 고충을 신나게 털어놓으며 맥주를 잔뜩 들이키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사람은 피터였는데, 단장에게서 전달된 지시사항을 전해주러 만남을 청했던 피터는 단장의 격려- 잘 하고 있을거라고 믿는다, 넌 내 여동생이니까!라는 말을 듣자마자 가이와 만나게 되면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구성진 입담을 단장 대신 들어야만 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진은 일개 용병단원이고 리는 이제 남작이라는 신분의 귀족이니 온갖 막말을 다 섞어가며 입을 터는건 범죄였지만 피터는 리가 존과 진 남매를 특별히 아낀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고, 이 남매 역시 편안한 자리에서는 리 형 리 오빠라는 표현까지 섞을 정도로 자신들을 구해줬던 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진의 입털기가 귀찮은 심부름을 시키는 오빠샤기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 여동생의 심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네 말의 내용만 들으면 넌 과로로 당장 쓰러져서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은데 네 입 터는 광경을 보니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서 걱정은 안된다."


"그러게 말이예요. 가이의 말을 빌리자면 물에 집어던지면 입만 동동 뜰 것 같아요."


"최소한 숨이 막혀서 죽을 일은 없으니 좋겠구나."


피터는 흐뭇하게 웃으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피터는 자유무역항 습격 사건을 계기로 존을 먼저 만난 적이 있었고, 존을 통해 진을 소개받았었기 때문에 리가 이 남매를 믿고 맏기는 이유도 잘 알고 있었고 자신도 이 남매를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었다.


"수도에 머문지 제법 되시는 것 같은데 언제 떠나시는거죠? 아미티지의 보물을 이송하는 일 외에도 단장이 뭔가 특별한 명령을 내린건가요?"


"이 쪽의 상황에 따라 머무는 기간이 달라지는건 당연지사니까. 그보다 진, 너를 만나자고 한건 네게 부탁이 있어서다."


"와- 지금 제게 임무를 더 얹으시겠다는건 저를 죽이겠다는 뜻인거죠?"


"무리가 가지 않을 부탁이니 걱정 마라. 뭐, 실제로 이 부탁을 네가 들어주지 않게 될 가능성도 높으니까. 수도의 다른 암살 부대원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고 너 혼자만 품고 있다가 만약 내 부탁을 실행해야 할 때가 되면 그 때 하면 된다."


"저는 보기보다 입이 가볍다고요."


"입은 가볍지만 혀는 무겁다는건 안다. 너도 지금 나를 감시하는 눈길이 있다는건 눈치채고 있지?"


"그런 것 같아요. 단장처럼 잘생기지 않은 아저씨를 쳐다보는건 분명히 감시의 눈길인 셈이겠죠."


"빌어먹을, 단장놈이 잘생긴건 인정하지만 그 인간의 상판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리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고생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터라 진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피터에게 동의를 표해주었다.


"무슨 부탁인데요?"


"내가 지금 굉장히 복잡하고 말 못할 사건에 뛰어들었다. 이거 어째 후회가 막심한 일이지만 발을 뺄 수도 없고 뺄 마음도 없다. 게다가 이건 아미티지 전쟁에도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라 꼭 나서야만 하는 일이고."


진은 그제서야 웃던 얼굴을 슬그머니 굳히고 피터를 응시했다.
진이 아는 바에 의하면 리가 용병단의 리더들 중에서도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피터인데 그런 피터가 이렇게 말을 하는 일이라면 이건 정말로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물론 진은 벤자민과 마마와의 관계 같은 것은 몰랐지만 적어도 존의 소개로 피터와 종종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전달받으면서 이 사람이 얼마나 페이스 용병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대충 감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제게 하시고 싶은 부탁은요?"


피터는 남은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키고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닦으며 후- 숨을 내쉬었다.


"만약 내가 시체로 발견되거나 실종되면 존에게 빨리 연락을 해서 그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아미티지 영지로 출발하기 전에 내가 모아둔 돈을 존에게 맡겼거든. 존은 성실한 녀석이니까 그 돈을 내 가족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주겠지."


"...아저씨..."


"큰 녀석이 대학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했는데 마뜩찮아서 반대를 하다가 참전 결심을 하고 나니까 반대해서 뭘하나 싶어서 허락을 했었어. 내년에 입학을 할 예정이라 돈을 좀 모아놨는데 그거면 충분하겠지. 큰 녀석이 그렇긴 해도 둘째놈이 항구 쪽에서 견습을 시작했으니 가족들 밥벌이는 할 수 있을테고..."


"......"


"오해 마라, 진. 난 용병으로서 마지막으로 큰 전쟁을 경험하고 은퇴하고 싶었을 뿐이고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어째 수도 상황이 전쟁터보다 더 위험한 것 같아서 대비는 해두려는 것 뿐이야."


"만약... 아저씨가 진짜 돌아가시면 전 아저씨를 앞에 두고 온갖 욕설을 다 퍼부을거라고요. 그건 각오하세요."


죽을 생각은 없다는 뜻은 눈빛으로도 확실하게 전달되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 진의 말에 피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얼마든지 허락하마. 그리고 누가 나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자유 무역항에서 근무할 때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 만났을 뿐이라고 해야한다. 네게 문제가 생기면 가이 기스본을 돌봐주고 지켜줄 사람이 없어지고, 그렇게 되면 에드워드는 발이 묶이는 상황이 될테니까. 그래 맞아, 이 얘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진. 네가 애니와 존과 함께 정성들여 키워낸 그 꼬마녀석은 훌륭하게 성장해서 아미티지 전쟁에서도 톡톡히 제 몫을 감당하고 있다. 생긴 것만 보면 재수없기 짝이 없지만 하는 짓을 보면 정말 멋진 놈이지. 이런, 죽지 말아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군. 내가 죽으면 그 재수없는 상판으로 울어댈테니까 말이야. 단장놈하고 똑같이 생긴 상판으로 울다니! 그거 진짜 짜증나는 광경 아니겠냐?"

2016.11.17 19: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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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이삿짐 잘 챙겨오셨네요 ㅠㅠㅠㅠ 다행이다 ㅠㅠㅠㅠㅜㅠ
[Code: 5156]
2016.11.17 19:51
ㅇㅇ
모바일
센세 길잃지않고 잘 찾아오셨네요ㅜㅜ
[Code: 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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