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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1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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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알현하고 난 후에 리와 리처드가 만사를 제쳐두고 만나야 했던 사람은 펜리 상단의 루퍼트였다.
현재 루퍼트는 서쪽 분쟁 지역에도 지원을 해야만 해서 대단히 힘든 상황인지라 더 이상의 자금 지원은 불가능했다.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대안은 중립을 지키는 귀족들의 지원을 기대해야 하는 터라 최대한 빨리 루퍼트를 직접 만나서 내일 열릴 만찬의 준비를 상의해야만 했다.
전쟁 전에도 루퍼트의 조율하에 여러 귀족들과 만나봤지만 대다수 리처드가 필립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터라 효과는 미미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는 몇 귀족들은 금전적 능력이 많이 부족한 무인 가문들이었고, 그 중 하나가 월터가 속한 바로우 가문이었다.
덕분에 기사들이 다수 참전한 것은 이익이었지만 그보다 급한 것이 금전 문제였던터라 이번에야말로 최대한의 지원을 받아내야만 했다.


소설의 여파에 아미티지 가문의 궤짝이 발견되어서인 듯 몇몇의 귀족들과 눈치만 보던 상인들까지 여럿 입질을 해오는 터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리와 리처드는 대단히 난처한 상황에 처해버렸다.
전쟁이 일찌감치 끝난터라 신년 의례와 축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 사이에 여러가지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난처해진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재판이 곧 열리게 된다는 통보가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도대체 왜 갑자기!?
리조차 1도 생각지 못했던 재판 소식에 리처드는 허연 얼굴에 퍼렇게 변해서 입만 뻐끔거릴 지경이었고, 단지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얼굴이 거의 보이지도 않을 지경으로 온통 털이 무성하게 자라난 채로 돌아다니던 리는 미모 감상을 못하는게 영 못마땅한 리처드의 닥달에 못이겨 수염을 깎다가 그 소식을 전달받고 얼굴에 슬쩍 베인 상처가 남아버린 것도 모른 채 입만 쩍하니 벌렸다.
신년의 모든 행사가 끝나고 재판을 열어서 인기가 최고조에 오른 에드워드에게 죄를 물어서 바닥까지 끌어내리겠다고 벼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왕실로부터 날아온 재판 통보는 적잖게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년 행사가 마친 후에 재판을 거는 쪽이 타격이 더 클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하지만 곧장 얼음 상태에서 풀려난 리는 갑작스럽게 재판에 열리게 된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소설이 수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어버리게 되면서 가뜩이나 평민들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에드워드 뿐 아니라 리와 리처드까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이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받은 보고에 따르면 필립의 편에 서고 있는 귀족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만만한 에드워드를 서둘러 제거하려는 시도가 감지된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그 탓인 것 같았다.
기스본 영지의 금광건은 가장 잡기 쉬운 트집인데다가 빼박 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게다가 리가 수도에 도착해서 들은 정보 중에는 공작을 위시한 기존의 권력층들이 리처드에 고무된 가난한 귀족들이나 지식층 뿐 아니라 기사 계급과 돈이 많은 평민 출신의 상인들까지 힘을 얻어가는 것에 대해 위기 의식을 느끼고 아예 싹수를 잘라버리려는 의도로 평민들의 영웅인 에드워드를 제거하려는 속셈이라는 것도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아예 신년 이전에 재판을 열어서 신년의 무투회에도 참가하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 에드워드를 능가할만한 실력자는 보이지 않았고, 에드워드가 출전한다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라 금 100파운드라는 큰 자금을 얻게 되는 것은 예정된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 정도의 상금은 에드워드의 기스본 영지의 광산에 관한 발언으로 인한 벌금 1000파운드를 생각하면 손해에 불과했다.


예상보다도 빠르게 진행되는 재판 소식에 리는 곧바로 사람을 보내 페이스 용병단의 관리자들이 가지고 있던 여분의 비리 정보를 전부 가져오도록 지시를 내렸다.
리는 그 정보의 일부를 수도로 가지고 왔고, 나머지는 비상시에 사용하려고 제법 큰 건수를 남겨두었는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니 필립의 편에 선 귀족들은 어느 정도의 손실은 감수하면서까지 에드워드를 제거하려고 이를 갈고 있었다.


게다가 올해 들어서 유독 많이 내린 눈 때문에 필립이 재판 전에 수도로 온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는데 재판이 있을 경우 대리인을 보내고 영주는 성을 떠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던 것도 무시하고 수도로 온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재판에 힘을 싣기 위해 오려는 것이 분명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지만 필립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재판을 열기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고- 리는 갑작스럽게 열리게 될 예정인 재판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명성이 자자한 아미티지 성에 잠입해서 식량 창고를 불태운 자신의 전과에 대한 필립의 보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리의 예상대로 상황이 돌아갔다면 어쩌면 정말로 아미티지 성을 수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좋은 상황이었으니까.


망할! 그 놈의 눈!


신년 의례와 축제 이후에 시작될 재판을 일찌감치 앞당겨 열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동원하고 재판석에 앉을 재판관과 법관들을 매수하고 있다는 소식을 입수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니라 수도에 와 있었던 피터이기 때문에 정보의 신뢰성은 매우 높았지만 그 덕분에 리처드의 걱정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걱정을 하지 말래도 안할 수가 없게 된 상황이잖아! 안돼... 에드워드의 팔을 자르게 할 수는 없어. 차라리 내가 포기하는 것이 낫지 그건 절대로 안돼.


갑자기 재판이 앞당겨진 것 때문에 난처해진 사람은 또 있었다.
리처드의 편에 선 모든 이들 가운데 재판이 앞당겨졌다는 정보를 가장 먼저 접수한 것은 피터였고, 발빠르게 그 사실을 리에게 전달한 뒤 술집에 들어가서 치밀어오른 화를 술로 달랬다.


젠장맞을! 단장놈과 마마의 문제를 상의할랬더니 이게 뭔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꼭 좀 빨리 해결하고 싶었는데!


피터는 리가 수도에 도착하고 급한 문제가 대충 갈무리 되면 곧바로 에리카 공주의 문제를 상의할 생각이었다.
현재까지는 공작이 자신을 주시하면서 의심하고 있으니 이 상태로 신변만 조심하면서 아직도 감옥에 갇혀있는 벤사민의 생부와 대화를 나눠보려고 했는데 의외의 변수가 생겨버리면서 말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혹시 그가 뭔가 중요한 문제나 공작에 대한 약점을 알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은 있었지만 사실 그 쪽의 기대는 거의 할 수가 없었다.
공작을 직접 대면하는 일도 없는 평민 출신의 하급 관리인데다가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 회유를 했었지만 거의 아는 것이 없이 자신도 모르게 왕궁으로 심부름을 왔을 뿐이라고 했고, 그건 사실인 것 같았다.


그보다 중요한게 마마의 생각인데 말이야...


피터가 보기에도 에리카 공주는 벤자민의 생부인 그 남자에게 나름대로 애정이 있었다.
하긴, 죽지 않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수준인 사창가 생활에서 쉽게 난폭해지기 일쑤인 알파 손님들을 싫어도 하는 수 없이 받아야만 하는 처지인데 늘 불안해하고 힘든 와중에 성격도 얌전하고 소심한 열성 알파의 존재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마는 운이 좋았었기 때문에 벤자민을 무사히 낳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피터가 보기에는 그 남자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하고 필사적으로 자신과 아이를 보호한 것은 깊은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런걸 생각하면 그 놈도 마마에게 제법 애정을 주었던 것 같은데... 그걸 내가 나서서 묻기도 좀 뭐하네.


예전에 언뜻 리처드가 말한 바에 의하면 오메가는 알파의 정신적인 상태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했고, 술을 잔뜩 퍼마시고 주절거렸던 리의 말을 종합해본 피터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결국 사창가에 묶인 오메가가 아이를 낳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벤자민이 태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남자와 마마가 서로 좋아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언뜻 보면 이 전쟁과는 1도 상관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왕실의 입장으로서는 현재 에리카 공주와 피터 단 둘만이 알고 있는 이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면 곧바로 벤자민을 내칠 수 밖에 없을테니까.
그렇게 되면 아직까지 젊고 기반이 약한 왕은 공작의 집요한 공격을 버텨낼 힘이 없었다.
정치적인 문제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데다가 욕심도 없는 왕의 유한 성품을 생각하면 결국 버티다가 공작이 추천하는 귀족 여성을 새로운 비로 맞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그나마 피터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알파가 자신이 마음을 둔 오메가에 대해 대단히 강한 집착을 보인다는 점이었지만 그것 역시 크게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젊었던 시절의 리를 알고 지내던 입장에서 보면 그 오메가가 자신의 손아귀에 딱 맞게 쥐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대단히 날카롭게 반응했던 것을 생각하면 자신을 통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강하게 미치고자 노력하는 벤자민에 대해 상대적으로 아는 것이 적은 왕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호기로운 젊은 왕비에 대해 좋게 생각하게 될른지가 문제였다.


벤, 나는 네가 네 어머니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그 이후는 뭐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말하는게 걱정이다. 너도 너 자신의 행복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 하여튼 뒤도 없이 행동하고보는 댕댕이 같은 Captain하고 그런 점은 참 비슷하단 말이야. 역시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긴 하지만.


리처드의 걱정거리이자 사정을 아는 모든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되어버린 에드워드는 지금 광장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수도의 꼬치 맛집에서 산 꼬치 구이를 뇸뇸 먹고 있는 중이었다.
겉보기만으로는 태연해 보였지만 사실 그닥 태연한 상태는 아니었다.
필립 측에 서 있는 귀족들의 분위기가 예상보다도 훨씬 더 자신에게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수도에 도착해서 깨달은 터였고, 리처드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류를 잔뜩 늘어놓고 재판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도저히 집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가이 역시 말은 안해도 필사적으로 월렛 가문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뭔가 돈이 될만한 재산이 감춰져 있지나 않을지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자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기 싫은 수도원의 도서관으로 외출을 한 터라 결국 에드워드는 모두에게 걱정을 끼친게 미안해서 슬그머니 집을 나와 광장 구석에서 배고픔을 달래고 있었다.
어디다 데려다놔도 눈에 잘 뜨이는 외모이긴 하지만 지금은 정말로 죽은 듯이 쭈그리를 하고 앉아서 먹기만 하는 터라 사람들은 에드워드가 있는줄도 몰랐다.


"Captain, 그런 표정은 안어울린다는거 알고 있나?"


에드워드는 저도 모르게 스며나온 눈물을 급하게 닦고 익숙한 목소리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지만 그다지 힘은 없었다.


"오랜만이예요, 수도에서 바쁘셨죠?"


에드워드의 인사에 미소로 답을 한 피터가 옆에 와서 쪼그려 앉자 에드워드는 살짝 몸을 움직여 깔고 앉은 작은 궤짝을 반쯤 양보해주었다.


"금 1000파운드냐, 제 팔이냐... 정말로 생각할수록 어려운 문제네요. 제 팔이야 아깝지 않지만 그렇게 되면 참전할 수가 없게 되니까요."


"Captain의 생각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다를거다. 단장은 지금도 자금을 동원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중이니까. 뭐, 그 양반이 하는 일이래야 중립 귀족들의 비밀을 쥐고 약점을 찔러서 돈을 뜯어내는 거겠지만."


"솔직히 불만이예요. 그 정도 뻥은 용병들 사이에서는 흔한건데."


"그렇긴 하지만 Captain은 기사잖나. 좀 웃긴 얘기긴 하지만 대중들은 Captain이 완전무결한 기사님이길 원하지. 아마 전쟁터에서 Captain이 어떤 짓을 하는지 봤다면 다들 등을 돌릴거다."


피터가 낄낄대며 웃자 에드워드는 따라서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지만 역시 웃을 기분은 들지 않았다.


"역시 전 미숙한데다가 대책도 없는 녀석이예요. 결국 모두를 걱정하게 만들었잖아요."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는 버릇은 여전하네. 하지만 Captain, 상황이 이렇게 된건 Captain의 존재가 그만큼 적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이야. 벤도 그렇게 말하더라."


"아, 아저씨는 벤을 계속 알현했댔죠? 전 수도에 와서 잠깐 얼굴만 보고 인사만 하고 나와서 안부도 못 물어봤어요. 마... 아니, 에리카 공주님은 어떠세요?"


"잘 지낸다. 그 녀석도 여전해. 제 엄마의 안부가 최우선이고 공작을 쳐죽이고 싶어하지."


"정말 여전하네요."


벤자민의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한결 부드럽게 풀어진 에드워드를 바라보던 피터는 에드워드의 손에 들린 다 먹은 꼬챙이를 받아들고 바닥에 깔린 돌 틈에 끼워 세워놓았다.


"너무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금은 어떻게든 동원할 수 있어. 자금이 부족해도 전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단장과 리처드를 지탱해줄 수 있는 Captain이야."


"전 미숙해서 의지가 될 수도-"


리처드가 낳았다는 사실을 자낮으로 잘 증명하고 있는 에드워드에게 피터는 조금 엄격하게 충고를 해주었다.
피터는 에드워드 본인이 원하기만 한다면 필립의 편에 서서 다음 번의 아미티지 후작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절대로 무시할만한 입장이 아닌데도 자꾸만 자신을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런 점을 역이용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Captain, 내 말 잘 새겨들어."


"...네."


"이 왕국에서 리처드가 아미티지 후작이자 북쪽 숲의 영주로서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는 잘 알거다. 그 뿐 아니라 단장은 용병으로서는 처음으로 귀족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대단한 인물이야. 아마 이후에도 그 정도의 업적을 이루는 용병은 없을거야. 그건 인정하지?"


"네."


"Captain은 그런 부모를 둔거야. 아- 무슨 소리를 할지는 뻔히 아니까 가만히 듣기만 하라고."


부모님은 그렇게 훌륭하신데 나는 왜이럴까요? 자낮할게 분명한 에드워드의 말을 잽싸게 가로막은 피터는 돌 틈에 꽂힌 꼬챙이를 툭 쳐서 넘어뜨렸다.


"그러니 금 1000파운드 정도와 자신의 가치를 바꾸려 들지 말도록 해. 팔 두 개에 1000이 아니라 10000파운드를 준대도 절대로 바꿀 수가 없으니까. 곧 재판석에 서게 되겠지만 그 때도 절대로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해. 가족들에게나 주변의 모두에게나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지마. 톱날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 당시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전략은 없었다. 그건 결과가 증명하지 않았나? 덕분에 푸른 검날과 묶여있던 다른 용병단이 참전할 수 있었고, 가장 걱정했던 동쪽으로부터의 위협은 끝까지 없었지. 만약 동쪽에서 적이 이쪽을 몰아세우는 상황이었다면 단장은 아미티지 성의 식량 창고를 불지를 엄두도 못 내고 동쪽을 방어해야만 했을테고, 결국 이 전쟁은 패배로 끝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어. Captain은 이 전쟁을 여기까지 끌고 오는데 지대한 공헌을 세운거야. 그러니 그깟 용병놈들에게 구라 좀 친 것 가지고 주눅들 필요는 전혀 없다고. 알다시피 승기를 잡기 위해서 헛소문을 퍼뜨리는 정도는 전쟁터에서 아주 흔한거니까. 거기에 흔들린 놈들이 병신이지."


"하지만..."


"단장과 리처드는 실수 한 번을 안하는 것 같아? 난 그 둘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종종 실수를 하거나 실패를 하는 모습도 봤었다. 때로는 사소한 잘못으로 분쟁이 참전했던 용병의 절반이 죽어나간 적도 있었어. 하지만 단장은 단 한 번도 주저앉는 법이 없었어. 되려 당당하게 남은 인원을 이끌고 다시 참전해서 결국 이겨냈었다. 리처드 역시 마찬가지야. 단장과는 다르게 방어적이고 손실이 없는 전략을 선호하지만 때로는 실패를 하기도 했지. 그렇다고 주저앉아서 한숨만 쉬었다면 왕국 최고의 지휘관으로 불리지도 못했을거다. 더불어서 페이스 용병단 모두가 믿고 따르는 전략가라고 불리지도 못했을테고."


피터는 에드워드의 등을 툭툭 쳐주며 빙그레 웃어주었다.
4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과연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까가 궁금했던 아직은 어렸던 녀석이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 할 수도 없이 성장한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성격은 여전해서 그게 아쉽지만 동시에 반갑기도 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라고 그 때 기대했듯이 정말로 함께 한 용병들을 위해 울어주는 녀석이니까.
문득 피터는 에드워드의 최고 강점이 이 녀석의 정 많은 성격을 접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점을 지켜주기 위해서 노력하게끔 만든다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 역시 그러고 있으니까.


"그러니 당당하게 내 팔은 전쟁을 위해 꼭 필요하고 금 1000파운드 따위와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라고. 에드워드 존 로이 아미티지 페이스는 귀족인데다가 북쪽 숲의 영주였고 영주이길 원하고 있는 리처드 크리스핀 아미티지 후작의 장자의 신분이고 선대 왕으로부터 직접 페이스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리 그리너 페이스 남작의 후계자라고. 만약 원한다면 앞으로 북쪽 숲의 영주가 될 수도 있지. 원치 않는다고 해도 필립에게 자식이 없는 이상 현재로서는 아미티지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대단히 큰 역할을 할거다. 내 말을 이해하겠나?"


피터의 말에 에드워드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고 평민으로 자라온 태는 쉽게 벗겨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뒤늦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야 했던 갈등과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준 부모는 언제나 에드워드의 앞에 서서 길을 이끌어주는 든든한 존재였다.
아직도 자신이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큰 문제 없이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서 에드워드는 스스로를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재판정에서 당당하게 나는 귀족이니까 내 팔을 자르는건 용납 못한다고 버팅기란 말이죠?"


"글쎄다, 북쪽 숲을 방어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은 후계자가 팔이 없다는건 문제니까 먹힐... 려나?"


정말로 가기 싫었는데!
가이는 투덜대며 수도원의 도서관을 나왔다.
일주일 가량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다 끝난줄 알았는데 아직도 다 안 끝났느냐는 수도원장의 눈초리가 뒤통수에 꽂히자 가이는 욱하는 심정이 들었지만 아쉬운건 이쪽이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성질을 죽여야만 했다.
재판이 코 앞인지라 에드워드의 벌금 금 1000 파운드를 어떻게든 얻어내야만 했다.
수도의 중심가에 집을 사고 난 후에는 꾸준히 돈을 모아서 군자금으로 보태줬었기 때문에 가이는 현재 먹고 살만한 돈 밖에 가진 것이 없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전쟁이고 뭐고 신경쓰지 말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둘걸! 그러면 적어도 500 파운드는 모였을텐데!


평상시에도 사람이 다니지 않아 출입하도록 허용받은 수도원의 뒷문으로 향하는 뒷마당에 멀거니 서서 그나마 뭔가 있을 것 같은 가문에 대한 일화를 필사한 종이뭉치를 들고 있던 가이는 저 쪽에서 익숙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다가오자 냉큼 후드를 둘러쓰고 자리를 피하려고 몸을 돌렸다.


"그 동안 안보이셔서 이제 다 끝나신가 싶었더니 아직 찾으실 자료가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계획은 아무리 치밀하게 짠다고 해도 결코 완전한 것은 아니니까요."


"동의합니다."


은은한 미소를 짓는 얼굴을 슬쩍 바라본 가이는 손에 쥔 종이뭉치를 조금 더 세게 움켜쥐고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뒤 몸을 돌렸다.
하지만 몇 걸음 발을 옮기는 사이에 등 뒤에서 들리는 제법 다정한 말에 가이는 우뚝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기스본 영지의 금광에 대한 소유권을 왕실로 넘긴 것에 대해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경께서도 익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만약 그 때 광산의 소유권을 탐내셨더라면 지금 경께서는 살아남으실 수 없으셨을 겁니다."


가이는 잠시 우두커니 서서 얇게 뜬 돌로 깔린 수도원 앞의 도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사실을 모른다면 말이 안되는 일이긴 했지만 타인의 입에서, 그것도 같은 지역 출신으로 Golden Rocks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저런 말을 들으니 정말로 자기 혐오가 극심해지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기스본 경의 훌륭하신 판단에 대단히 감탄했었습니다. 쉽사리 놓을 수 있는 이익은 아니지 않습니까? 실제로 현재 폐하께서 기반이 부족하심에도 불구하고 자금력을 바탕으로 힘을 가지실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기스본 광산이니까요."


뭔 소리? 가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대사제를 바라봤다.
비꼬거나 놀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임은 금방 알 수 있었지만-


"저는 제가 오메가임을 떠나서 기스본 가문을 이어받을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포기한 것 뿐입니다."


"지금의 경께서는 훌륭히 가문을 이어받으실 능력이 되시지요."


"하지만 기스본 가문의 광산만큼은 아닙니다."


에드워드의 재판건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날카롭게 쏘아붙인 가이는 아차 싶었지만 상대방은 여전히 기분 나쁜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야말로 가이 오빠는 화내도 예쁘다고 헥헥대며 댕댕거리는 에드워드를 보는 기분이었고,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가이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희미하게 띄게 되었던 미소를 지워야만 했다.


"만약 경께서 원하신다면 금 1000파운드를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가이는 굳은 표정으로 대사제를 응시하다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분명 그레인 가문이라면 금 1000파운드 정도 꺼내는 일은 어렵지 않을터였지만 그 쪽의 지역의 가문들에게는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미끼를 잘못 물어서 난처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저는 경께 빚을 지우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필립 아미티지 후작의 편도 아닌데다가 공작 각하의 편도 아닙니다."


"종교에 귀의한 대사제님께서 정치적인 일에도 관심은 두시는줄은 몰랐습니다."


"경께서 종교인에 대해 고지식한 관념을 가지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긴, 월렛 가문은 대단히 신실한 가문이었다고 하더군요."


가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만만찮은 대사제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 1000파운드의 필요성은 대단한 것이 사실이었다.


"제게 뭘 원하십니까?"


"글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은은한 미소와 함께 자신에게 향한 시선의 정체를 알아챈 가이는 서둘러 고개만 살짝 숙이고 잰걸음으로 광장으로 향하는 큰 도로로 나와서 서둘러 마차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난 원래 매력적이고 아름다워-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이였지만 막상 누군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면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저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버릇이 있었다.
가이는 오메가로 발현한 이후 뿐 아니라 그 전에도 귀족 아가씨들이 종종 다가오거나 혹은 귀족 남성들이 눈독을 들일 때에도 까칠하게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곤 했었고 그런 점에 대해서 미모를 보호하려는 장미의 가시 같은 거라고 딱 잘라 말하곤 했었다.
게다가 가이는 자신을 진심으로 원하는 상대에게는 극도로 거부감을 갖곤 했는데 그래서 에드워드가 올 해 초의 공개 구혼을 하기 이전까지도 이 녀석이 언젠가 나에게 질려서 떠날거라고 늘 생각하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 가이는 자신이 대사제에게 같은 종류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때문에 대단히 당황했다.


...그러니까 저 대사제가 여타의 문제 때문에 나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 아니라-


"가이 오빠, 왜 그래? 어디 아파?"


무언가에 쫓기듯 황급히 집에 들어온 가이는 테이블에 앉아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있다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에드워드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존잘 면상을 보니 세상 온갖 시름이 다 사라지고 그저 행복해지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난 얼빤가보다- 불안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자 가이는 에드워드에게 다가가 까칠하게 수염이 올라온 볼을 살짝 꼬집어주었다.


"저녁에 존스씨의 저택에서 만찬이 있다는데 이러고 갈 생각이야? 난 네가 단장님처럼 그 잘생긴 얼굴을 털로 가리고 다니는건 절대 용납 못한다고. 알지? 난 후작님처럼 자비롭지 않다는거."


"리처드는 아버지가 수염을 깎고 다니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니까 그게 싫어서 크게 뭐라고 안하는건데? 그래도 오늘은 너무 심해서 뭐라고 한거야.수염을 깎았더니 윗이 할아버지를 못 알아보는건 좀 심한거 아냐?"


"그건 좀 심한 경우고. 바보야, 사람들이 쳐다봐도 내 미모를 뚫고 너에게 접근할 사람은 없다고. 어디서 상한 오징어 따위가 감히 내 알파를 노려?"


도도하게 말은 했어도 이제 산달에 접어들면서 피곤과 걱정에 쩔어 팅팅 부은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저절로 한숨이 나온 가이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나른하게 누운 채 베껴 온 문서를 읽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디 아파?"


수염을 말끔하게 깎은 에드워드가 슬그머니 들어와서 다리를 조물조물 주물러주자 가이는 종이 뭉치로 얼굴을 덮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똑바로 누울 수가 없어서 모로 누운 채 에드워드를 슬쩍 바라보자 야단맞은 댕댕이처럼 눈썹을 축 늘어뜨린 채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는건 볼 때마다 신기할 지경이었다.


저렇게 귀엽고 불쌍하게 보이는데 화를 내면 간이 오그라 붙을 정도로 무서운건 또 뭐야? 게다가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면 존쎅하다는게 함정이지. 얼굴이 다 해먹네요. 역시 내 알파는 질리지 않는 매력덩어리!


"애 낳기 직전에는 원래 힘든거야."


"그건 알지만... 아참, 아버지랑 리처드랑 셋이서 여기까지 오는게 진짜 재미있었어. 그런데 리처드가 갑자기 그러는거야. 아버지가 나를 혼자 낳았다고. 난 그게 알파도 애를 낳을 수 있는건줄 알고 진짜 충격 먹었는데 생각해보니까 가이 오빠가 애기 낳느라고 고생하는걸 생각하니까 내가 대신 애를 낳으면 오빠가 고생 안할 것 같아서 엄청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게 그런 뜻이 아니래잖아. 내가 바보인거야?"


바보 맞네- 가이는 잠깐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다시 생각을 해보니 무척 기뻤다.
이 댕댕이 같은 꼬맹이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고, 처음부터 말했듯이 자신을 배려해주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네드, 아이는 내가 낳을테니까 넌 그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만 생각하면 돼. 혹시 우리 아이 중에 알파가 있다면 그 애들이 자신이 가진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짓누르지 않도록 해주고, 혹시라도 오메가가 태어난다면 그 아이의 삶이 가능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 돼. 그렇지 않고 그냥 평범한 베타로 태어나서 살아간다면 제일 좋겠지만."


"응, 약속할게."


"난 내 아이들은 너무 무거운 짐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사실 너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걸 네게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넌 어쩐지 집에 붙어있는 시간도 거의 없을 정도로 바쁠 것 같아."


"으응... 가이 오빠랑 오래 떨어져 있는건 싫은데."


"하지만 넌 누군가 네게 도움을 청하면 그걸 모르는 척 하지는 못할테니까. 괜찮아, 네드. 나도 네가 그렇게 착한 성격이라 좋아."


"그런가?"


"응, 하지만 나를 너무 오래 혼자 내버려두면 난 바람 피울거야. 내 뛰어난 외모를 묵혀두다니 그건 범죄라고."


"음... 어... 최대한 노력할게. 어쨌든 난 가이 오빠를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래도 외로워지면 빨리 오라고 불러줘야 돼. 나한테는 가이 오빠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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