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06768797
view 5090
2024.10.02 10:26
원작 / 드라마 스포, 고증오류, 캐붕 주의

1화 https://hygall.com/605920032
2화 https://hygall.com/605941583
3화 https://hygall.com/605978925
4화 https://hygall.com/606039731
5화 https://hygall.com/606164016
6화 https://hygall.com/606307306
7화 https://hygall.com/606403873
8화 https://hygall.com/606474444
9화 https://hygall.com/606618754
 

 

 

“정말, 정말 괜찮은데…”

 

“이대로 두면 흉집니다.”

 

 

좀처럼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여인의 고집에 자캐리스는 가벼운 경고와 함께 그녀의 발목을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낯선 이에게 붙잡힐 일이 거의 없던 귀족 영애의 부드러운 살결은 눈에 띄게 놀라 움츠러 들었다.

 

무례를 용서하세요. 자캐리스는 작게 중얼거리며 의자에 앉아있는 여인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탓에 시선은 마주치지도 못했다. 이 정도 접촉도 그렇게나 민망한지 애꿎은 치맛자락만 주름이 지도록 꽉 쥐고 있는 모습이 꼭 성년식도 치르지 못한 어린애 같아 자캐리스는 하마터면 소리내어 웃을 뻔한 것을 꾹 참아야 했다.

 

 

“조금 따끔할 겁니다.”

 

 

학사의 서재에서 몰래 가지고 온 약초를 달인 물로 암초에 쓸린 발을 씻기고, 깨끗한 천으로 감싸주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몇 번이고 위를 향했다. 해안가에 주저앉아 그림자같이 새까만 용을 끌어안은 채 구슬피 울던 여인의 눈물이 거의 멎어있는 걸 확인하니 조금 안심이 됐다. 막상 그녀를 발견했을 때엔 무슨 말을 해도 울음을 멈추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도 하지 않아 설득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 다 큰 어른이 조프리보다 고집이 셀 줄이야. 제 어린 동생은 말을 안 들으면 이마를 쥐어박을 수라도 있는 남자애였지만, 눈앞의 여인은 차마 손을 대기도 미안할 만큼 가냘픈 체구였던 탓에 자캐리스는 아닌 밤중에 손에 땀까지 쥔 참이었다.

 

결국 그녀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든 건 자캐리스가 아니었다. 그녀가 끌어안고 있던 용이 못 봐주겠다는 듯 코로 그녀를 밀어준 덕이 컸다. 자캐리스는 용의 상처 또한 잘 살펴주겠다 약속한 후에야 그녀를 성채 안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나저나 용과 함께 있는 걸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저녁식사 때 어머니께서 드래곤스톤에 손님이 방문하셨다고 전해주셨는데, 필시—”

 

“……?”

 

“…너무 늦게 여쭈어보아 죄송합니다, 성함을 알려주시겠습니까?”

 

“…허니, 허니 B 타르가르옌입니다.”

 

“필시 그 손님이란 레이디 허니, 당신을 말씀하신 거군요.”

 

 

자캐리스는 그녀의 발을 치료하는 손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의아한 듯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보아도 가계에서 허니라는 이름은 본 적이 없었다. 용을 다룰 줄 아는 걸 보면 분명 가문의 사람은 맞겠지만…

 

그가 입을 다물자 금방 둘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허니는 그가 이름을 물어본 순간부터 낯선 남자에게 발을 내어주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심장이 뛰는 바람에 조금도 그 정적을 느낄 수 없었지만.

 

라에니라 공주가 그녀의 아들들에게 나를 어디까지 소개했을까. 다른 이들에게는 나를 뭐라고 말할 셈이지? 내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면 나는 여기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 걸까. 시도해보기 전까지는 결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질문들의 대답은 전부 비관적이었다. 그녀에게 화를 내거나 모욕하는 것은 물론이요, 어쩌면 카니발까지 다시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허니가 입을 연 이유는 그가 비단 그녀의 발을 직접 치료해주어서만이 아니라, 카니발까지 돌보아주겠다 약속한 상냥한 사람이라서였다. 순수하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기만하는 죄를 저지르고 싶지는 않아서.

 

 

“저를 손님으로 대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그분들의 설득, 에 동의하여 전향한 레드 킵의 섭정비니까요.”

 

“그게 무슨…”

 

 

섭정비라는 상대적으로 낯선 칭호에 자캐리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어 전향, 레드 킵과 같은 단어를 함께 주워섬긴 그는 타르가르옌의 성씨를 가진 제 삼촌을 떠올렸다. 섭정이 될 만큼 유능하며, 잔인하고, 용서와는 가장 거리가 먼 인간을.

 

쿠당탕!

 

어찌나 급하게 일어났던지 자캐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의자와 치료도구들이 바닥에 나뒹굴며 큰 소음을 만들었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캐리스의 눈에 서린 증오와 혼란을 읽어낸 허니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재생다운로드Tumblr_l_852842326916843 (1).gif
 

“…분명히 말씀하십시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아에몬드 타르가르옌의 아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의 말은 채 끝맺어지지 못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이미 답을 그가 말하지 않았나. 그의 어머니가 그녀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적군이나 볼모가 아니라 손님으로서.

 

그러나 상황을 인지하는 이성과 별개로 자캐리스는 눈가가 뜨겁게 느껴질만큼 순식간에 요동치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애를 써야했다. 그러나 떨쳐내려 하면 할수록 그때의 감각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급하게 받은 전보를 읽을 때의 그 빌어먹을 윈터펠의 추위도,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심장을 파고들던 절망감도.

 

유약하고 서툴렀지만 그만큼 더 나아지려 노력했던 제 동생 루케리스. 그 루케리스를 잔인하게 살해한 자의 아내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대는 애초에 이 전쟁이 왜 벌어진 것인지 알고 있나?”

 

“…선왕께서 승하하시기 전에 후계자를 번복하시어—“

 

“감히 드래곤 스톤에서 하이타워의 가증스러운 거짓말을 꺼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 조부께서는 평화왕이라는 호칭만큼이나 칠왕국을 조화롭게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니.”

 

“…….”

 

“그래. 그들이 권력을 탐내리라는 것은 진작 알았지.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최소한의 명예와 품위를 지킬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우리의 유일한 패착이었어.”

 

 

자캐리스는 거짓말같이 평화로웠던 그날의 만찬을 떠올렸다. 이변은 없을 거라 약속하던 왕비의 위선적인 건배사에 비하면 아에몬드의 조롱은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했던 그 우스운 날을.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그들이 왕가의 일원으로서 도리를 다 할 그릇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고 드래곤 스톤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곳에 좀 더 머물러야 했다. 그랬다면…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전쟁이 벌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

 

“그대의 남편. 아에몬드 타르가르옌이 여왕의 차남이자 드리프트마크의 차기 군주가 될 내 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했기 때문이야.”

 

 

자캐리스의 눈안에 일렁이던 증오 속에는 언제나 깊은 슬픔이 함께였다. 마치 그 심정을 이해하기라도 한 듯 허니는 차마 그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니, 그의 입장에서 그녀는 죄인이 맞으니 그리 하는 것이 마땅했다. 비록 그 비극적인 일이 그녀의 결혼 전에 벌어진 일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아에몬드에게 속한 그의 사람이었으니.

 

 

“…가족의 상실을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한들 그 슬픔이 덜어질 수는 없을 것이나,”

 

 

가족의 슬픔을 덜어줄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러야 할 테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 몸뚱이마저 여왕에게 충성을 하며 내어줘버린 탓이었다.

 

허니의 손이 다시 한 번 그녀의 치맛자락을 꼭 쥐었다.

 

 

“목숨을 목숨으로 갚는다는 각오로 전장에 임하겠습니다. 감히 비할 가치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자캐리스는 어떤 대꾸도 없이 그저 제 앞에 머리를 조아린 여인을 바라보았다. 하이타워를 주축으로 한 그 끔찍한 킹스랜딩의 일족들 중 그 누구도 지금 그녀처럼 진심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었기에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그는 섭정비가 무척이나 작고 초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에몬드의 아내인 그녀가 무슨 까닭으로 전향하여 그들의 편이 되겠다고 했는지, 어째서 그의 어머니는 이 위험해보이는 제안을 받아들이신 것인지 전부 알 수는 없으나… 그는 직감적으로 이 여인이 루케리스의 죽음에 어떠한 연관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도리어 뻔뻔하게 나오거나 아니면 자캐리스의 얼굴을 알아본 순간 저에게도 불똥이 튈까 두려워했을 것이다. 허나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안 사람처럼 놀랐고, 진심으로 그 사건에 유감을 표했다. 그러니까…

 

자캐리스가 고개를 숙이자 그의 곱슬머리가 이마를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그는 여전히 요동치며 심장을 불편하게 만드는 감정을 추스리듯 눈을 감고 한동안 숨을 내쉬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 이상 그녀에게 책임을 물어봤자 그것은 진정 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화풀이에 불과하다고.

 

 

“…어머니께서 그대를 받아들이신 데에는 이유가 있겠죠.”

 

“…….”

 

“그동안은 저도 당신을 손님으로 대할 것입니다.”

 

 

다시 공손해진 말투는 허니가 예상한 대로 그가 본래는 다정한 성정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 상냥한 면이 저를 모질게 대하는 것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것 같아 그녀는 조금 더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리고 그런 허니를 보며 자캐리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치료를 다 끝내지 못한 한쪽 발이 마음에 걸렸으나, 이대로 그녀와 마주보고 있어봤자 서로에게 좋지 않을 것임을 알아 섣불리 손을 뻗을 수도 없었다.

 

 

“발의 상처는, 꼭 마저 치료하십시오.”

 

 

하는 수 없이 먼저 자리를 떠야겠다 판단한 자캐리스가 나지막하게 말을 덧붙인 후 걸음을 옮겼다.

 

그가 문을 닫아주고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허니는 한참동안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적진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긴장감과 시름, 걱정이 그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어서였다. 짧은 말 한 마디 가벼운 동작 하나에도 의미가 부여될 것을 생각하면 무엇 하나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화를 하는 내내 자캐리스가 혹여 카니발에게 매정한 처사라도 할까봐 얼마나 무서웠던가.

 

괴롭다. 마치 늪에 잠겨 천천히 죽어가는 것만 같은 답답함에 허니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작게 흐느꼈다.

 






 

 

 

 

스톤 드럼에서 채색탁자를 내려다보고 있던 라에니라는 빠르게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장남, 자캐리스가 묘한 표정과 함께 방안에 들어서다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까딱여 가볍게 예를 표했다.

 

 

“늦은 시간인데 왜 자질 않고.”

 

“흐느낌 소리에 해안으로 나갔다가 손님과 마주쳤거든요.”

 

“…예를 갖춰 대우해드렸겠지?”

 

“어머니, 아니 여왕이시여. 왜 그 사람을 우리 편으로 받아들이신 겁니까? 진심으로 그 사람이 마음을 바꿨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다에몬에게 했던 질문을 그대로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라에니라는 힘없이 미소지었다.

 

 

“절반정도는. 그녀에게는 우리를 배신해선 안 되는 이유들이 있으니.”

 

“그리고 절반정도는 저희를 배신하고 내부의 정보를 밖으로 빼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거군요.”

 

“의심하고자 마음먹으면 그 누구도 적이 될 수 있어. 타당한 의심은 너의 안목을 키우겠지만 막연한 불안은 네 편에 선 사람들마저 너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들 거란다.”

 

“아에몬드의 아내를 믿지 않는 것은 타당한 의심 쪽에 가까울 것 같은데요. 저나 조프리마저 바가르에게 찢겨죽는 비극은 없어야하니 말입니다.”

 

“자캐리스.”

 

 

경고처럼 내뱉어진 제 이름에 자캐리스는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인정하듯 고개를 숙였다.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되는 라에니라의 얼굴에 슬픔이 서리게 만드는 건 신하로서도 아들로서도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죄송해요. 감정적으로 굴어선 안 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가끔씩, 저 자신을 통제하기 힘들 때가 있어요.”

 

“사람이라면 응당 그런 법이야. 하지만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솔직해지면 잃는 것이 많으니 조심해야겠지.”

 





재생다운로드Tumblr_l_2088879936186138.gif
 

자캐리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남은 듯 뜸을 들이던 그가 채색탁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지막하게 속내를 꺼냈다.

 

 

“사실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전쟁은 벌어졌겠죠.”

 

“…….”

 

“저는 두렵거나 슬플 때마다 계속해서 과거를 돌이켜봐요. 그때 아에몬드가 루크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그 이전에 루크가 한 번이라도 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더라면, 애초에 우리가 아에몬드를 놀리지 않았더라면…”

 

 

자캐리스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져, 나중에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울 정도였다. 말을 할수록 슬픔에 잠긴 그의 까만 눈동자는 촛불의 빛을 반사하며 일렁이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라에니라의 눈에도 거울과도 같은 슬픔이 비쳤다.

 

그녀의 아들은 한때 킹스랜딩을 수호하던 남자의 외양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영락없이 그녀와 똑같은 영혼이 들어차 있었다. 그녀도 혼자 있을 때면 끝없이 과거를 되짚으며 결코 풀리지 않을 질문을 던지고는 했다. 만약 내가 아들이었다면, 만약 다에몬이 후계자가 되었더라면, 만약 선왕이 돌아가실 적에 그 곁에 있던 사람이 알리센트가 아니라 나였다면.

 

하지만 한 번 흘러가버린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그걸 곱씹어봤자 마음의 병이 깊어질 뿐이다. 라에니라가 얼른 얼굴에서 감정을 씻어내고 아들을 불렀다.

 

 

“자캐리스, 섭정비에게 잘 해주렴. 내색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적진에 홀로 있는 게 무척 무서울 테니.”

 

“그녀가 드래곤라이더라서 잘 해주어야 하는 건가요?”

 

“어느 정도는 그렇지. 하지만 굳이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런 공을 들여야하는 법이란다. 때로는 매서운 바람보다 따뜻한 햇살이 나그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처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말투가 작은 항의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제 아들의 성정에는 그렇게 대해주는 것이 잘 맞을 것을 알아 라에니라는 별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저 믿음을 담아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고개를 끄덕일 뿐.

 

 

 






 

 

라에니라의 바람대로 자캐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허니를 찾아갔다. 손님들이 머무르는 탑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그는 내심 그녀를 떠날 적에 윽박을 지르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 정도의 예의도 갖추지 못했더라면 지금처럼 뻔뻔하게 걸음을 하지는 못했으리라.

 

그러면서도 긴장을 막을 수는 없었는지 그는 문을 두드리기 전에 괜히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러고도 쉽사리 입이 떨어지질 않아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 후에야 똑똑, 노크를 했다.

 

 

“실례합니다. 안에 계십니까?”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말이 손님이지 그녀의 수발을 들어주는 하녀를 붙여준 것도 아니고, 가장 넓은 방을 내어준 것도 아닌지라 금방 문을 열고 얼굴을 드러낸 사람은 그날 밤 보았던 그 여인이 맞았다.

 

제 얼굴을 알아보고 놀란 듯 살짝 어깨를 움츠리는 허니의 반응에 자캐리스가 뒷짐을 진 손을 살짝 쥐었다 펴며 준비해온 말을 꺼냈다.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요.”

 

“발은 이제 괜찮으시고요?”

 

“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가벼운 사담이나 하러 여기까지 온 거냐고 차마 물어보지 못하는, 어딘지 불편해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결국 자캐리스는 작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 웃음소리에 허니의 양 볼이 붉어졌다. 민망한 듯 또 고개를 푹 숙이려 하기에 자캐리스가 얼른 대화를 이었다.

 

 

“그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요?”

 

“정확히 말하자면 도움을 청한 건 제가 아니라 용지기들입니다. 그대의 용이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 치료를 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하더군요.”

 

 

용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가 홱 고개를 들더니 당장이라도 가자고 말할 듯 입술을 달싹였다. 마찬가지로 용을 가지고 있는 입장으로서 그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복잡해진 자캐리스의 미소가 살짝 시들려 했다. 누군가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공을 들여야하는 법이라던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랬으리라.

 

다만 지금만은 잘해주자. 그렇게 결심한 자캐리스가 허니에게 손을 뻗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다음편 https://hygall.com/607160280
------------------------------------------------

이게, 그 허위매물이 아니라, 다음편에는 아에몬드 나올 거거든요… (쭈굴)
회상으로라도 출연시켜주고 싶었는데 허니랑 회상할만한 과거의 사건이랄 게 없었다… 역시 아에몬드 더 굴러야만…



아에몬드너붕붕
자캐리스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