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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7 02:28
원작 / 드라마 스포, 고증오류, 캐붕 주의

1화 https://hygall.com/605920032
2화 https://hygall.com/605941583
3화 https://hygall.com/605978925
4화 https://hygall.com/606039731
 


 

레드 킵의 정세는 빠르게 바뀌었다. 알리센트가 소협의회에서 쫓겨나다시피 내보내지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아에곤을 대신해 아에몬드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회의장의 상석을 차지한 그가 느릿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제 권력을 가늠했다. 아직 완전히 반항의 빛을 꺾지 못한 자들이 있다한들 아에몬드는 정말이지 조금도 거슬리지 않았다. 가신들이 그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떤 감정이 있건 간에 지금 녹색파 안에서 의지를 관철할만한 왕족은 아에몬드 타르가르옌, 그 뿐이었으니.

 

정식으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아에몬드에게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는 벨라리온의 해상물류 봉쇄로 인해 무너진 킹스랜딩의 민심을 복구하는 것이었다. 철이 없고 속이 물렀던 형은 아랫것들의 마음을 돌보는 것 하나는 잘하는 편이었으나, 지금같은 상황에선 아에몬드가 그처럼 관대함을 베풀 여유가 없었다. 쓸데없는 말을 들어주느라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무력으로 막힌 정체를 뚫어주는 것이 그의 통치 방식이었다. 앞길을 막으려거든 부서질 각오를 하고 덤비라지. 아에몬드는 마치 조롱하듯 나긋한 말투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테이블에 넓게 펼쳐진 지도를 훑어보았다. 그의 기다란 손가락이 대륙을 종단하듯 내려오다가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오토 하이타워를 에소스로 보내.”

 

 

벨라리온의 해역을 침범할 권한을 나누어주겠다고 한다면 좋다고 달려드는 곳은 많을 것이다. 미르, 리스, 티로시… 아에몬드의 손가락이 에소스의 영지를 차례대로 훑었다. 전쟁이 길어진 탓에 당장에 내어줄 것이 없어 미래를 저당잡힌 꼴이라도 상관 없었다. 그가 섭정의 자리에 있는 동안 이 내전을 끝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결국 모두가 아에몬드야말로 왕의 자질을 갖춘 자라는 걸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카니발은 드리프트마크로 가서,”

 

“저, 저— 외람되오나 전하.”

 

“…….”

 

“왕, 아니 섭정비께서는 한동안 참전하지 않으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만….”

 

“누구 마음대로?”

 

 

아에몬드의 냉랭한 시선이 크리스톤에게 향했다. 룩스레스트 전투 이후 아에몬드가 그에게 허니의 전투훈련을 맡겼던 탓이었다. 그러나 크리스톤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섭정비께서는 아에곤 폐하의 사고에 본인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죄책감을 가진 이를 억지로 전장으로 몰아넣는다 한들 불필요한 희생을 야기할 뿐이니, 그 분께서 안정되실 때까지 기다려드리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의 해명에 아에몬드가 한숨같은 웃음을 뱉었다. 말이 좋아 웃음이지, 눈빛이 어찌나 사나운지 애꿎은 가신들만 어깨를 뻣뻣하게 굳혀야 했다.

 

늙은이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아에몬드의 기분은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에곤의 사고에 죄책감을 가지다니, 그의 빌어먹게 순진한 부인께서는 대체 무슨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그녀가 라에니스에게 뛰어드는 바람에 아에몬드가 급히 방향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아에곤이 바가르의 화염에 반쯤 녹아버리는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장이란 그런 곳이었다. 아주 작은 실수와 우연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 아에곤은 그런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참전하는 오만을 저질렀고 그 대가를 나름대로 치렀을 뿐이다. 제 아내가 마음에 빚을 져야 한다면 멍청한 형의 사고가 아니라 그 직후, 그를 막아선 행동에 대해서나 그리 해야했다. 허니가 그를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아에곤은 대외적으로나마 전장에서 명예롭게 전사한 왕으로 기억되었을 것이고, 아에몬드는 섭정이 아닌 새로운 녹색파의 수장이 되었을 테니.

 

생각에 잠겨있던 아에몬드가 곧 지도를 짚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 허리를 곧게 편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부인께 다녀와야겠군.”

 






 

 

 

 

레드 킵에서 나고 자라 성의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아에몬드에게도 허니가 머물고 있는 부부의 침실로 가는 길은 낯설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을 한 이래로 그는 한 번도 그곳에 걸음한 적이 없었으니까.

 

딱히 그녀를 매정하게 대하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 소소로운 일상을 영위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 딱 그 정도의 이유였다. 아에몬드는 그의 무관심에 변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 또한 귀족이니 마땅히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숨 죽이고 조용히 살던 그녀가 몇 달 만에 불쑥 그를 찾아왔을 때는 내심 놀랍기도 했었다. 물론 그 흥미는 그녀가 어떻게 하면 자기를 봐줄 것이냐는 전형적인 소리를 했을 때 빠르게 사그라들고 말았지만.

 

문앞에 다다른 아에몬드가 발걸음을 멈췄다. 똑똑. 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섭정비께서 죄인마냥 칩거하여 밖으로 나오시질 않는다는 하인의 말을 떠올린 아에몬드는 망설이지 않고 문 손잡이를 쥐었다.

 

 

“실례하지.”

 

 

촛불 하나 켜지 않은 방 안은 성의 복도보다도 어두웠다. 그러나 달이 유난히 밝은 밤이라 창밖으로 들어오는 옅은 빛만으로도 충분히 사물을 분간할 수준은 되었다. 어둠에 적응한 아에몬드의 눈이 빠르게 방의 주인을 찾았다.

 

그의 아내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입고 있는 가운으로 몸을 최대한 가리려 노력하며 겁에 질린 얼굴로 한밤 중의 침입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더러운 의도를 가지고 방문한 쥐잡이보다도 제 남편이 저를 찾아왔다는 사실에 그리도 놀란 표정을 지었던 것일수도 있고.

 

아무래도 좋을 감상이었다. 아에몬드는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며 인사조차 건네지 않는 허니에게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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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는대로 드리프트마크에 다녀오도록 해.”

 

 

그 말에 거절따위는 모를 것 같은 말간 얼굴에 살짝 금이 갔다. 허니가 작게 고개를 젓더니 숨소리와 진배없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전쟁에 도움이 되지 못할 거예요.”

 

“그대를 태우는 용은 도움이 돼.”

 

“그, 그애도 다쳤고요.”

 

“운용이 힘들 정도의 부상이었으면 내가 먼저 알았겠지.”

 

“하지만…!”

 

 

제 미숙한 행동이 얼마나 큰 피해를 끼쳤는지 보셨잖아요.

 

허니의 말에 그의 입술이 다물렸다. 그녀의 쓸데없는 자책에 빈정대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요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 아에몬드가 건조한 어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내게 인정받고 싶은 게 아니었나?”

 

 

정곡을 찔린 그녀의 얼굴이 대번에 구겨졌다. 자존심이 상한 것인가, 상처를 입은 건가. 아니면 그 두 가지 모두인가. 아에몬드는 차분하게 그 표정을 살피며 침대 가까이로 다가갔다.

 

 

“내게 아내로서,”

 

 

그의 서늘한 손가락이 제 부인의 뺨에 가 닿았다. 선을 덧그리듯 얼굴의 외곽을 따라 내려간 손이 그녀의 턱을 들어올리면,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선이 얽혔다.

 

 

“존중받을 기회를 달라 말했지.”

 

 

유감스럽게도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내주는 것은 아에몬드에게는 퍽 익숙한 일이었다.

 

 






 

 

 

“흐윽…!”

 

 

적막했던 방 안에 생소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허니는 날숨처럼 의지와 상관없이 새어나오려는 소리를 참기 위해 필사적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그녀가 자연스러운 신체의 반응을 거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에도 그녀의 다리 사이를 헤집는 아에몬드의 손가락은 멈출 줄을 몰랐다.

 

입맞춤보다 수음을 먼저하다니. 꼬박 반년만에 동침을 하게 된 신혼부부의 첫날밤은 많은 것들이 엉망진창이었다. 일말의 설레임도 없이 건조한 표정으로 옷을 벗던 지아비와 그 아래 깔려 수치와 신음을 삼키는 아내 같은 건, 허니가 남부에 있을 적 유모의 눈을 피해 열심히 읽어대던 연애소설 속에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광경이었다.

 

절망.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흐트러뜨리는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나마 가장 가까운 단어가 아닐까. 허니는 그야말로 절망스러웠다. 눈앞의 매정한 남자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그에게 기인한 감정이기는 했으나, 지금 이 순간 진실로 그녀의 눈시울을 붉히는 것은 억지로 마주하게 된 내면의 절박함이었다. 모욕적인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가 없어서. 비로소 온기가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닿아있는 것이, 고작 그게, 너무나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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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빼지 않으면 다칠 거야.”

 

“아, 읏…!”

 

 

비좁은 내벽이 억지로 튿어지는 고통에 허니의 눈이 질끈 감기고, 그 긴 속눈썹 사이로 눈물이 배어나오는 광경을 내려다보는 아에몬드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 와중에도 혹여 제 헐떡임이 그에게 거슬리기라도 할까 소리를 죽이는 아내의 모습은 처량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아에몬드는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체면도, 자존심도 내던지고 애정을 바라는 그 처절한 외로움도. 조금만 다정하게 대해주어도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을 정도의 나약함도… 그가 거의 평생에 걸쳐 누군가에게 들킬까 철저히 숨기면서도 해소하기를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으니.

 

길고 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가지런한 이 아래 짓눌린 입술을 어루만졌다. 그 작은 손길에도 속절없이 흐드러져 여린 곳을 허용하는 꼴을 보며 그는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바랄 줄만 알았지 베푸는 입장이 된 건 처음이라 어색하면서도 그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거래는, 그에게도 철저히 손해만은 아닌 행위인 것이다.

 

 

“…허니.”

 

 

아에몬드의 입에서 제 짝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영혼이라도 붙잡힌 것마냥 그 부름에 허니는 눈물에 젖어 무거운 속눈썹을 깜빡이면서도 그를 열렬히 올려다보았다.

 

 

“허니.”
 

“내가 시키는대로 한다고 맹세해.”
 

“너만은 나를 거스르지 않을 거라고.”
 

“네게 나를 배신할 권리 따위는 없다고 네 입으로 말해.”

 

 

어둠 속에 울려퍼진 요구는 차라리 명령에 가까웠다.

 

그러나 허니는 그 속에 숨은 불안과 욕망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어디까지 의도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철옹성과 같은 단단한 성역 안에 숨은 그의 일부를 엿본 것만 같았다.

 

하여 그녀는 그가 바라는 대로 했다. 똑같은 어둠 속에서 남편의 말을 되풀이하듯 속삭였다. 당신 뜻대로 하겠다고. 이 세상 모두가 당신을 등진다고 하더라도, 나만은 당신의 곁에서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아에몬드는 부부의 침실을 떠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목욕을 마친 허니는 낯설고 날 선 결합의 후유증을 견디며 비행복을 입었다.

 

아침서리가 다 마르기도 전인 이른 시각. 레드 킵 근처에서 운신하던 검은 용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그녀가 저를 찾아온 것이 탐탁지 않았던지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괜찮아?”

 

 

물음에 대답하듯 용이 짧은 콧김을 내뿜었다. 고작 한 번의 전투로는 제게 치명상을 입힐 수 없다는 듯,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을 텐데도 단단하게 반짝이는 붉은 눈을 마주한 허니가 쓰게 웃었다. 아에몬드에게 변치 않을 충성을 맹세한 것은 본인이건만 왜 위험은 함께 감수하자 하는가. 부조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눈앞의 이 고고한 신의 피조물 없이는 그의 부탁 하나 제대로 들어줄 수가 없는 처지가 새삼 초라했다.

 

그 습관이 될 것만 같은 자조와 함께 해야할 일을 곱씹느라 허니가 잠시 우두커니 서있자 용의 코끝이 그녀의 배를 조심스럽게 찔렀다. 

 

 

“…나도 괜찮아.”

 

 

용의 콧등을 쓸어주며 허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꾸 너를 끌어들이는 건 미안해.”

 

 

그녀의 사과를 기꺼이 받아주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는 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검은 용은 거의 떠밀다시피 그녀를 안장에 태우고 지면을 박찼다. 순식간에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기운을 느끼며 고삐를 쥔 허니의 손이 나아갈 방향을 지정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드리프트마크였고, 그녀의 임무는 적진의 정찰이었다.

 

 

‘오래 머무를 필요는 없어.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만 확인하고 와.’

 

 

창천을 가로지르는 동안 허니는 아에몬드가 떠나기 전 남겼던 말을 떠올렸다. 딱히 헷갈릴 일도 없는 짧은 명령을 참 여러 번도 곱씹으며 그 목소리의 온도나 높낮이 따위를 헤아렸다. 그가 저를 아직도 한심하게 여기는지, 아니면 간밤 사이에 무언가 조금은 바뀐 것이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래도 감히 전장에서 마음이 부풀려 할 때면 그녀는 아에몬의 참혹한 몰골을 떠올렸다. 만약이라는 단어가 빚어내는 죄책감과 공포는 익숙하게 그녀의 숨통을 조이며 머릿속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잔인하고도 이기적인 방식이라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책임져야 할 다른 생명과 함께 전장에 선다는 것은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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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군. 그거 내가 아는 그 용인가?”

 

 

…그러나 드리프트마크에 다다르기도 전에 카락세스를 탄 다에몬과 마주치는 것은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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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 대실패
후회할 짓만 잔뜩 하면서 와중에 자각 못한 채로 조금씩 감기기 시작하는 아에몬드가 보고싶다
그리고 뭐 해보기도 전에 위기가 닥쳤으면 좋겠다


아에몬드너붕붕
유첼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