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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믿어요?”
전운이 감도는 웨스테로스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다에몬은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그의 아내, 라에니라가 평정 아래 불안을 숨긴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때면 비세리스가 유약하게 굴 때마다 서운해하던 그 어린 시절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아 다에몬은 즐거운 듯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여직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에게서 다시 등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글쎄. 반 정도는?”
“반씩이나?”
“운 좋게 드래곤을 얻어 우리와 같은 행세를 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남부지방의 귀족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용과의 유대가 강해보이던데요.”
“그러니 더 불안하겠지. 쉽게 얻어낸 것은 그만큼 쉽게 사라질 수도 있는 법이니. 상황이 불안할수록 타르가르옌 혈통이 아니라는 점이 그녀를 옭아맬 거야.”
“…….”
“걱정 마시죠, 여왕 폐하. 발을 묶을 방안도 있고— 무엇보다 '그 꼴'을 보고도 우리를 배신할 만큼 배포가 있는 아이로는 보이지 않았으니.”
…과연 그럴까. 라에니라는 다에몬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하렌홀 지하에 구금되어있는 여인을 떠올렸다. 아직 앳된 얼굴이 무색하도록 모질게 제 혀를 깨물어 자결을 하려 했던 아에몬드의 아내를.
그 독한 모습은, 제 이복형제와 똑닮지 않았던가.
다에몬이 드리프트마크 인근에서 녹색파의 드래곤라이더를 사로잡았다고 보고했을 때 라에니라는 놀라워 하면서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가뜩이나 멜레이스를 잃어 전세가 불안하던 시기였으니, 기수를 처리하고 나면 어떻게든 주인을 잃은 용을 클레임하여 제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싶어.
다만 라에니라는 그 드래곤라이더가 누구냐 물었을 때 아에몬드의 아내라는 대답에 찝찝함을 느꼈고, 그녀의 용이 다름 아닌 카니발이라는 말이 이어 나왔을 때에는 도리어 다에몬을 의심하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 남편이 술에 취한 채 카락세스를 타고 외출이라도 나갔다가 헛걸 본 건 아닐까 의심하는 눈빛을 읽었는지 다에몬이 눈살을 찌푸리며 못 믿겠으면 직접 보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라에니라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 흔쾌히 동행을 수락했고.
그리고 하렌홀의 지하감옥으로 갔을 때에 마주친 것이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허니였다. 다에몬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질색을 하며 그녀에게 다가가 입에 강제로 손수건을 쑤셔넣었다. 자결을 방해하는 다에몬의 손길을 거부하는 기세가 제법 매서웠지만, 라에니라는 여왕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태연을 가장하며 그녀의 앞에 섰다.
“여왕 앞에 예를 표하라.”
다에몬을 노려보던 허니의 시선이 라에니라에게로 향했다. 엄밀히는 라에니라의 이마 위에 가지런히 얹힌 왕관으로. 잠시 뒤 그녀의 까만 눈이 아래로 내려와 제 남편과 비슷한 자색 눈을 마주했고, 인사를 하듯 살짝 무릎을 굽혀 보였다.
“…라에니라 공주님을 뵙습니다.”
지혈을 했다고는 하나 살짝 뭉그러진 발음으로 허니가 답하자,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내전과는 전혀 상관 없을 삶을 살았을 귀족 영애의 맹랑한 대답에 라에니스는 살짝 웃음을 흘렸다. 제 이복형제가 정략혼을 했다기에 막연히 알리센트같은 보수적인 여자아이가 등 떠밀려 이곳에 오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했던 얄팍한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평생 제 위치를 사수하기 위해 싸워야 했던 후계자의 날이 선 눈빛이 번득였다.
“그래. 그대가 룩스레스트에 참전했던 드래곤라이더라고.”
“…….”
“그 전투에서 살아돌아온 이들이 그런 말을 하긴 했었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어둠을 빚어 깎아낸 듯한 용이 있었다고 말이야. 용에 대해 무지한 일반 병사들의 착각일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이었군. 그렇게 말하는 라에니라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탄도, 실망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타고난 품위와 권력이 반영된 듯 위압적인 시선으로 눈앞의 포로를 바라볼 뿐.
“라에니스는 훌륭한 기사이자 우리의 참모였다. 그녀를 해하는데 일조한 적군이라면 고문과 참수가 마땅해.”
그 말을 즉시 이행해주겠다는 듯이 다에몬의 큰 손이 허니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제 남편이 그럴 것이라 충분히 예상했던 라에니스가 한 손을 들어 그의 위협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허나 사람의 목숨은, 더군다나 용을 다룰 줄 아는 이의 목숨이라면 더욱 소중한 법이지. 그대가 나의 기사가 되겠다 맹세한다면 특별히 그 죄를 면해주마.”
예상치 못했던 라에니라의 제안에 허니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는 의도를 가늠해보려는 듯 신중하게 라에니라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진심을 말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그만큼 용이 전력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가 섭정비라는 걸 알기에 정치적으로 이용할 방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결코 녹색파에게는 유리한 방향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허니가 대답을 망설이자 다에몬이 독촉하듯 그녀의 뒷덜미를 쥐고 있던 손을 어깨를 옮겨갔다.
“타르가르옌도 아닌 자에게 특별히 관대함을 베푸시는 거니 받아들이지 그래.”
“…저는 이미 섭정께 맹세를 한 몸입니다. 어떻게 거짓으로 다른 주군을 섬기겠습니까?”
허니는 차라리 양 손목이 모두 묶여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다에몬과 라에니라를 적대하는 것은 아무리 그녀가 독하게 마음을 먹는다 한들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릴 것만 같아 허니는 제가 충성을 맹세한 이를 떠올렸다. 그의 시종일관 차분하던 목소리와 말투를 떠올리며 자꾸만 불안하게 일렁이는 감정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적진의 손님이 좀처럼 마음을 꺾을 것 같지 않자 다에몬은 허락을 구하듯 라에니라를 바라보았다. 평화롭게 말로 합의를 할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라에니라는 그런 허니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이곳에 내려오기 전 다에몬에게 미리 약속했던 대로 그에게 설득의 권한을 넘겼다.
라에니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에몬은 만족스러운 듯 작게 웃었고, 이내 허니의 뒤에 서있던 그가 걸음을 옮겨 그녀의 앞에 마주보듯 섰다. 그 후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어떠한 말이 아니라 휘파람이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허니가 다에몬을 바라보았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시선은 그의 어깨 너머에 서려있는 지하의 어둠속을 향했다.
크르르…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직직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전히 피를 뒤집어쓴 듯 붉은 빛을 자랑하는 카락세스였다. 그 용의 긴 목은 아래로 한껏 휘어있었고…
“안 돼…!”
카락세스가 보란 듯 물고 나타난 것은 엉망이 된 카니발이었다. 분노한 허니가 몸을 들썩이며 그 애를 놓아달라고 외치자 다에몬이 조금 더 환하게 웃었다. 그가 허니를 진정시키려는 듯 날뛸 때마다 붉은 생채기가 생기는 손목 하나를 부드럽게 쥐며 속삭였다.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저 용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안,”
“빨리 마음을 굳히는 게 좋을 거야. 카락세스는 나를 닮아 인내심이 그렇게 깊지 않으니.”
허니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지금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한들 이 사람들에게 간파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정말로 녹색파를 배신한다면, 그때는 아에몬드의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떠나기 직전 그 새벽에 했던 맹세가 아직도 그녀의 귓가에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궁지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허니가 대답을 망설이자 다에몬이 고개를 돌려 제 용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락세스가 물고 있던 카니발의 목덜미를 바닥에 던져놓더니, 의식을 잃은 듯한 검은 용의 가슴팍을 발톱으로 길게 그었다. 지하가 그토록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벌어진 살갗에서 피가 쏟아지는 광경은 지나치게 선명했다.
“하지 마!!”
그렇게 약해보이지 않으려 노력했건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비명에 가까운 부탁과 함께 허니는 무너져내리듯 울음을 터뜨렸다. 하렌홀 지하에 그녀의 비통한 흐느낌이 울려퍼졌다.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었다. 아에몬드가 정찰을 명령했을 때 끝까지 거절했어야 했다. 부상이 채 회복되지도 않은 용을 위험한 곳에 다시 데려갈 수는 없다고 고집을 부렸어야 했다. 설령 그녀 혼자 카락세스를 마주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 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제 목숨을 구해주었던 존재가 저렇게 망가지는 참상은 보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차라리 그때 아에곤의 언덕에서 내가 떨어져서 죽었어야 했는데. 아무리 후회한들 지금 이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미래에는 끔찍한 결말만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허니는 그들에게 대답을 돌려주어야 했다. 회한을 담은 눈물과 함께 그녀의 고개가 숙여졌다. 마치 자비를 구걸하듯이.
“잘못, 했어요…”
“무엇이든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그 아이만은 살려주세요.”
잘 생각했어. 다에몬이 나지막하게 대답한 뒤 카락세스를 뒤로 물렸다. 피 웅덩이 속에 잠겨있는 참혹한 몰골이라 한들 비로소 안전해진 카니발을 바라보면서도 허니의 울음은 쉽사리 그칠 생각을 못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걸 알아서인지 간사한 마음이 자꾸 아에몬드를 떠올린 탓이었다. 그의 눈이 이제 겨우 그녀를 담기 시작했는데,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 약속했는데…
그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겠지.
더 이상의 비극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그녀는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여긴… 어디지?’
다시 눈을 떴을 때, 허니는 낯선 숲속에 서있었다. 날씨도 시간도 짐작할 수 없이 흐릿한 어둠에 잠긴 묘한 공간이었다. 무엇이 두려운지 확신할 수도 없으면서 덜컥 겁에 질린 허니는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이 떨어지기도 전에 커다란 고목 뒤에서 한 여인이 등장했다. 창백한 피부와 대조되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심연의 눈동자가 허니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너구나.”
“……?”
“고작 이런 애가 흐름을 바꿨어.”
아니, 바꾼 것은 레드 킵의 그 미치광이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여인은 비틀거리는 듯한 걸음으로 허니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있는 힘껏 틀어쥐었다.
컥, 컥…! 하며 숨이 틀어막힌 허니의 손이 그녀를 밀어내려 애를 썼지만, 그 가냘픈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 여인은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그녀는 상체를 숙여 얼굴을 바짝 붙인 채 허니에게 경고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봤자 예언은 바꿀 수 없어.”
“반드시 원래의 흐름대로 돌아갈 거야.”
“우리도 결국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니까.”
그녀의 섬뜩한 목소리가 빚어낸 말들이 영혼에 새겨지기라도 하듯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몸 속에 불이 붙는 듯한 생경한 고통에 허니가 발버둥을 치며 그녀에게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하지만 밀어내면 밀어낼 수록 목을 옥죄는 고통은 더욱 강해졌고—
“허억…!”
죽음을 목도하기 직전, 허니는 식은땀에 젖은 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끔찍하게도 정신을 차린 곳 또한 낯선 공간이었다. 패닉에 빠진 허니가 주변을 살펴보다가 황급히 창밖을 확인했다. 흑색파의 휘장이 펄럭이는 성채와 고요한 밤바다의 풍경… 허니는 이 성채의 양식을 레드 킵의 갤러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곳은 드래곤 스톤이었다.
이곳이 흑색파의 본거지라는 걸 인지하자 허니는 정신을 잃기 직전 그녀가 라에니라에게 전향을 맹세했음을 떠올렸다. 아에몬드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녹색파를 배신한 그녀가 여기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때, 창밖에서 짐승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등골이 오싹할만큼 익숙한 음성이었다.
카니발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허니는 모든 생각을 멈추고 그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가기 위해 침실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행히 그녀의 침실 문앞을 지키는 경비원도 없었고, 성밖으로 나가는 동안 그녀를 제지하는 하인들도 없었다. 맨발인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제 용이 무사한지 확인해야 했다. 오로지 그것만이 중요했다.
“카니발!!”
밤이 지나치게 어두운 탓에 해안가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용을 발견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허니는 거친 암초에 쓸리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제 용에게 달려갔다. 그녀의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고통을 겪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은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럴 기운이 없는 걸지도 몰랐다. 카락세스에 의해 물리고 찢긴 상처들을 보며 허니의 눈가는 마를 새도 없이 또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미안, 미안해…”
이게 벌써 몇 번째 사과인지도 모르겠다. 허니가 용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검은 용이 몸을 살짝 비틀며 캑캑거리는 소리를 냈다. 혹여 제가 상처라도 건든 건가 싶어 놀란 허니가 용의 목 주변을 살폈다. 용의 목에는 불에 그을린 듯한 글씨가 찍혀 있었다.
“이게 무슨…?”
걱정과 의문을 담은 채 시선을 돌리자, 용의 붉은 눈이 그녀를 마주보았다. 정확히는 그녀의 목 부근을. 그 시선에 무심코 허니가 제 목을 어루만졌다가 따끔한 통증에 흠칫 몸을 떨었다. 조심조심 손 끝으로 흉터를 덧그려보면… 카니발의 목에 찍힌 것과 동일하거나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제 이런 게 생긴 거지? 불쾌하고 섬뜩한 기분에 허니가 조심스럽게 목을 감쌌다. 하지만 이내 제 손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치밀어 오르는 공포에 얼른 손을 떼어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생명의 위협, 허니는 직전에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 않았던가.
우리도 결국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니까. 꿈 속에서 보았던 여인의 목소리가 그녀의 몸속에서 울려퍼졌다. 어쩐지 그것이 단순한 꿈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허니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지며 왈칵 울음이 터졌다. 삶이 자꾸만 그녀의 인생을 멋대로 휘두르는 것만 같았다. 자아를 잃은 인형처럼 거대한 운명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 같아, 제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용을 끌어안고 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은 나약한 주인을 달래듯 머리를 살며시 그녀에게 기대주었다. 그 다정함이 오히려 허니의 마음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그녀는 원망할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검은 용을 끌어안고 속상함을 토로했다.
“바보야, 나를 두고 도망갔어야지…!”
“약속했잖아! 위험해지면 나를 버리기로 했잖아!”
“차라리 네 불꽃에 사라졌더라면…”
말도 안 되는 투정이라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검은 용이 그녀를 버리고 혼자서라도 도망치기를 바란 것은 진심이었으나,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곁에 있어준 존재를 탓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결국 책망하는 말도 얼마 가지 않아 끊겨버리고, 그녀의 입에서는 또다시 어떡하지 라는 답이 없는 의문만이 흘러나왔다.
이제 우리는 어떡하면 좋지. 허니가 카니발에게 체념하듯 중얼거리다 말고 번쩍 고개를 들었다. 잔뜩 긴장한 눈이 성채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인기척이 느껴졌는데…
“…거기 누구 있어요?”
겁에 질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누구도 대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숨 돌릴 새도 없이 또 몰아붙여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다르게도 인기척은 더욱 선명해졌다. 성채 쪽의 암초 너머로 언뜻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상대는 더 다가가도 될지 가늠하듯 근처에서 머뭇거리더니, 허니의 목소리를 듣자 도리어 확신을 가진 듯 빠르게 가까워졌다.
“괜찮으십니까?”
밤바람에 흔들리는 곱슬머리와 비슷한 빛깔을 가진 눈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반짝였다. 한밤 중의 해안가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흐느낌을 못 들은 척 지나치지 못하는 그 올곧은 성정을 담고 있는 것처럼.
자캐리스, 드래곤 스톤을 이어받게 될 라에니라의 후계자와 허니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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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일이 갈수록 커지지…
아에몬드너붕붕
자캐리스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