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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6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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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가 떴는지 강하게 불어대던 바람이 잦아드는 것만 같고, 어둡기만 하던 수면 위로 떠오르는 붉은 빛이 제 머리 위로 오롯하게 떨어졌다. 제 새파란 머리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은 붉은 빛, 눈이 잘 떠지지 않을 정도로 강해서 결국에는 성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붉은 햇빛. 제가 선택한 자와 함께 서 있음에도 그 붉은 빛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 마치,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면. 우습게도 일을 이렇게까지 만든 원인은 저 쪽이었는데 헷볕을 등지고도 괴로워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와 자신의 관계는 늘 그런 식이었다. 한 마디 말에 동하고 한 마디 말에 다시금 그 놈을 생각하고, 그러다가 혼자 슬퍼하고 혼자 결심하고 혼자 -. 그러면 그 녀석이 다시 나타나 한 마디를 던지고 자신은 그 말에 다시금. 멍청이처럼 쳇바퀴를 돌던 그 모든 과정들이 저와 그의 관계였다. 저 멀리 위에 홀로 떠 빛나는 위대한 영웅, 모두의 두려움을 얻는 붉은 머리 사황. 그 '모두' 안에 자신만이 특별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명했는데도 자신은 늘 꿈을 꾸었다. 매번 지독할 정도의 악몽으로 끝나는 꿈을. 
   
- 자네는 들어가 있는 게 좋겠군. 바람이 찬데 -

자네는 부상자니까. 그 말에 옆자리의 크로커다일은 낮은 목소리로 구시렁거렸으나 딱히 토를 달지는 않았다. 부하가 부축하는 대로 따라가는 몸이 이전보다 훨씬 작아보인다고 생각이 들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나 두려워했음에도 악어는 그럴 만한 악인은 아니었다. 그는 합리적이고 가능한 사유라면 늘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그걸 제시하는 사람이 부하든, 적이든, 하다못해 해군이든 - 그것이 '합리적'이라면 그는 모든 것을 수용했다. 하다못해 그 제안자가 멍청한 자신이더라도. 그리고 그는 늘 더 강한 것으로 돌아오고는 했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던 모래 사구가 결국에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모래 폭풍으로 돌아오는 것마냥. 그와 함께한 시간은 사실상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도 자신이나 매의 눈이나 크로커다일은 꽤나 괜찮은 리더라는 것을 꽤 빠르게 인정한 셈이었다. 그가 내어놓은 것들은 전부, 합리적이며 그럴듯했던 데다 -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들이었으니까. 애초에 그의 인생에 무모하고 위험한 선택이라는 게 있었을까? 그렇게 구는 것마저도 우습게도 자신과 너무나도 같아서.

우습지, 자신은 그래서 샹크스를 놓았다. 제가 없더라도 그는 늘 그 자리에서 빛날 테니까. 늘 호기롭고 도전적이었던 샹크스는 저와는 너무 다른 존재였거든. 그렇기에 그는 늘 시선을 잡아끌었고 늘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역으로 손에 닿기는 어려운 존재였다고, 그는 햇살이었다면 저는 그저 인간이기에. 인간이란 애초에 그런 존재지, 땅에 발을 디디고 있기에 땅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 짧은 시야를 그저 하늘에만 두고 그곳에 도달하기를 꿈꾸는 존재. 균열이 이는 그 순간에야 제가 발 디디고 있는 땅의 존재를 특별하게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완전한 범인*이었기 때문에 - 땅이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순간에야 위험을 인지하고 말았던 셈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벌어진 틈 사이로 제 발을 넣을 기회를 준 것은 자신이기도 했다. 

*일반인 

-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가?

이 길드의 양 축, 대부의 반대쪽을 담당하는 남자가 제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깃털 달린 모자가 나풀거리는 대로 높은 콧날 아래로 그림자가 춤을 추었다. 이 망할 운명이 흔드는 대로 광대짓을 하는 자신마냥. 그것은 시선을 잡아끌었으나 곧 참을성 없는 콧날이 찡그려지며 그림자가 반으로 접히고, 제 쪽으로 완전히 고정된 채 대답을 종용하는 샛노란 눈과 시야가 완연하게 맞닿았다. 그래, 그동안 사막의 대부와 시간을 보냈기에 자신은 완전히 현실 감각을 잊고 있었던 셈이었다 - 저 남자는 참을성이 있는 남자는 아니었다는 것까지도.

- ... 후회?
- 붉은 머리 대신에 모래를 선택한 것.

선택? 그것을 선택이라고 말할 수가 있나? 그것은 선택의 범주에 드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중 가장 튼튼해 보이는 동아줄에 매달린 약해 빠진 남자일 뿐이었다고. 누구나 자신이 특별해 보이는 시기가 있듯이, 그도 어느 때는 자신이 태양을 품고 있는 하늘이라고 착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 위치해 있을 때조차도 문득, 자신은 그저 빌어먹을 밀랍 날개를 달고 하늘에 닿고 싶다고 외치는 이카루스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마냥 - 그와 자신의 위치는 판이했다. 그는 미쳐버린 재능을 가진 채로 진짜로 빛나는 남자였으며 자신은 정확하게 반대였다. 그러니까 자신은 절대로 하늘이 될 수 없었다. 잘 해줘봐야 추락할 이카루스를 받아줄 얕고 얕은 바다일 뿐. 하늘이 되지 못한 채로 해를 동경하는 입장에서 발 딛을 땅은 그 무엇보다도 주요했던 걸지도 몰랐다.
 
그래, 그는 그런 남자였다. 천냥광대는 모두가 괴물이라 칭하는 남자의 눈 안쪽 깊은 곳에서 작은 빛을 보았다. 20년이나 독하게 참고 버티며 유토피아를 꿈꿔온 주제에 그 군벌은 제 목소리까지 수용했으니까.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에 '제 목소리'가 있다고. 그렇게나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샹크스의 이데아에는 무엇이 있는지 버기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샹크스는 단 한번을 말한 적이 없으니까. 너도 나를 네가 있고 싶은 하늘로 여길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비가 오던 그 날 명백해졌다. 그리고 그가 꼬맹이에게 팔을, 그 다음에는 밀짚모자를 주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또 한 번. 자신은 해에 가까워지고 싶어 날아오르다 제 주제를 알게 된 이카루스에 불과했다는 것 또한.    

악마의 열매 탓에 바다에도 빠질 수 없는 추락하는 죄인을 받아 준 것은 놀랍게도 모래였다. 우습게도 매의 날카로운 발톱이 제 어깨를 부여잡고 밀랍 대신 날개가 되어 모래사장 위까지 안전하게 내려주었다. 그렇게 자신은 '모래의 안'에 위치하게 된 것이니까. 군벌이 꿈꾸는 이상향에는 제 목소리가 들어 있었다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실현되던 간에.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이스트블루에서 제 해적단을 이끌고 우스운 노략질이나 하던 그 시기가 저에게는 딱 적합한 운명이었고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것이 제 가족이었다, 제가 꾸리고 제가 선택한 것. 우연에 의해 주워진 채로 - 그 배의 진짜 아이를 바라보며 몰래 숨어 무료하고도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곳이 아니라 진짜로 자신이 선택한 가족이라고, 이 길드는. 그래서 생각한 셈이었다 - 저와 원피스를 찾으러 가지 않겠다고 한 샹크스는 어쩌면 모두에게 적절한 선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 샹크스가 자신을 포기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샹크스가 - 그 망할 빨간 머리 친우가 자신을 포기해 주지 않기를 바랐다. 우습고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해를 등지고는 살 수 없으니까. 

-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지. 
- ....
- 모든 선택은 후회가 남는다. 중요한 것은 뒤돌아보지 않고 -

그 때의 선택이 최선이기를 바라는 것 뿐이야. 그러니까 뒤돌아보지 마라. 너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야. 제가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이 망할 광대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던 셈이었다. 갑작스럽게 파도가 거세지고 얄궃게 날이 흐려지는 그 순간에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경계병이 나팔을 불고, 순식간에 배 안이 소란스러워지는 일련의 모든 과정 속에서? 아니야 - 배가 조용했다 한들 그것은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부류의 질문이 아니었다. 자신은 어느 쪽을 고르든 간에 분명히 후회했을 테니까. 애초부터 둘 다를 선택하지 않는 것만이 그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거라고.

- ... 빨간 머리 해적단이다!

그러니까, 나를 포기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면서 -. 그 청혼이 진심이기를 바랐다는 게 우습지 않아, 샹크스? 애초에 가족이 있다고 에둘러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해야 했던 걸지도 몰랐다. 나는 태양을 품기에는 너무나도 비겁한 남자였다고. 해를 똑바로 바라보면 눈이 멀어버린다는데 자신은 영 그렇지 않았다. 제 시력이 그렇게나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배의 선두에서 익숙한 붉은 머리가 꿈에 그리던 표정으로 웃는 것이 보였다고 생각한다면, 드디어 미쳐버린 걸까? 그렇게 나타난 네가, 보고 싶었다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어떤 대답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
구구절절 구구절절 구구절절 구절판~

분량조절 정말 안되네 초반부 다시 읽어보고 왔는데 분량 점점 짧아지는거 실화냐... 퀄리티도 실화냐...

샹버기 크로버기 

2023.11.16 23:41
ㅇㅇ
모바일
추락하는 죄인을 받아주는 모래의 유토피아... 흐아...좋아서 죽겠다....
[Code: eba3]
2023.11.16 23:53
ㅇㅇ
모바일
아 갑자기 색창을 돌고 싶더라니 역시 센세가
[Code: c313]
2023.11.17 00:48
ㅇㅇ
모바일
시발 센세 기다리고 있었어요 언제나 완전하시네요 완벽하시고요...
[Code: 265a]
2023.11.17 00:52
ㅇㅇ
모바일
문장 하나하나 다 좋아 어떻게 이런 글을 쓰는거냐...버기야 너는 그저 얕은 바다가 아니라 그 붉은 태양이 잠기고 싶은 바다인데ㅠㅠㅠㅠㅠ
[Code: fced]
2023.11.17 01: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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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향해 나아가다 추락하는 이카루스와 그를 받아주는 모래라니 미쳤다... 모래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면서도 태양을 갈망하는 이카루스라니..? 이거 완전 신화인데 센세 완전 내 바이블 아니냐 도랏다
[Code: 423a]
2023.11.17 01:1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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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 왜 이렇게 가슴아프지?ㅠㅠㅠㅠㅠ버기의 외로움과 자낮이 깊다...그 어린시절 해적왕의 배에서부터 그랬던거야ㅠㅠㅠㅠ버기가 왜 크로커다일과 떠나려 했는지..왜 샹크스를 놓고 싶었는지ㅠㅠㅠ그런데도 왜 놓지 못하는지 너무 알겠어요ㅠㅠㅠㅠㅠ너무 알겠어서 눈물난다ㅠㅠ어떻게 이런 감정을 이렇게 잘 묘사할까?센세는 천재야...센세ㅠㅠㅠ사랑해ㅠㅠ
[Code: ed97]
2023.11.19 10: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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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글을 읽을 때 빈맥과 서맥이 같이 와서 정신이 혼미해 글 읽는데 제 가슴도 절절해져요 난 이제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센세를 생각할 거야 꿈에서도 센세를 그리다 깼어 ㅠㅠㅠㅠㅠ 센세 묘사 미쳤단 말밖에 못하는 내가 너무 밉다
[Code: 7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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