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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9 01:55
원작 / 드라마 스포, 고증오류, 캐붕 주의

1화 https://hygall.com/605920032
2화 https://hygall.com/605941583
3화 https://hygall.com/605978925
4화 https://hygall.com/606039731
5화 https://hygall.com/606164016
6화 https://hygall.com/606307306

 

 

눈꺼풀이 무거웠다. 방금 전까지 의식을 잃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몇 초의 시간이 더 걸렸다. 그 다음에는 머리보다 높게 들려있는 손목이 아프다는 감각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망가진 발목이 불에 데인 듯 아프다는 걸 알아차렸다.

 

허니는 무의식 중에 눈물이라도 흘린 건지 부어있는 눈을 어렵사리 떠 주변을 바라보았다. 낯선 곳이다. 동굴 같은 암석을 깎아 만든 그레이트 홀은 북부의 양식을 연상시켰다. 분명한 건 그녀가… 적진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망할. 생전 입에도 몇 번 올려본 적 없을 것 같은 비속어를 짓씹으며 그녀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시야가 까맣게 닫히자 기억을 잃기 직전의 상황이 절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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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에몬은 낯선 드래곤라이더를 보고도 놀라기는 커녕 오히려 흥미로운 듯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기준이었고, 무장을 한 채 피처럼 붉은 용 위에 올라탄 적진의 장수를 마주한 허니는 고삐를 쥔 손이 절로 떨릴 지경이었다.

 

 

“그 망나니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세대에 나올 줄은 몰랐는데, 낯선 얼굴이군.”

 

“…전투에 앞서 통성명을 하는 것이 기사의 도리라고 배웠습니다. 저의 이름은 허니 B, 레드 킵의 섭정비입니다.”

 

 

제 의붓아들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흑발의 라이더가 공손하게도 제 소개를 하자 다에몬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오, 섭정비라면 내 조카의 처라는 소린데. 이거 놀랍군. 타르가르옌의 핏줄로는 보이지 않는데 말이야. 어떻게 용을 길들인 거지?”

 

“…….”

 

“아하. 소개가 늦었지, 그래. 숙녀에게 실례를 저지르다니 사과하지. 바엘론의 아들이자 비세리스 1세의 하나뿐인 동생 다에몬이라고 하네.”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확신할 수 없는 기억에 허니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왕가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사이는 기상천외할 만큼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리치에서도 걸핏하면 귀족들이 사생아니 외도니 하면서 서로를 모욕하고 하루 아침에 정적이 되는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 미쳐버린 왕국령만큼은 아니었다. 정말로.

 

그러니까… 허니는 이 사람이 아에몬드의 이복 누이인 라에니라와 결혼한… 그들의 숙부라는 것과 무시무시한 용의 주인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다는 소리였다. 그의 말을 받아주면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쓸데없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겠다며 불이라도 뿜어야 하는 건지도 확신할 수 없었고.

 

다에몬은 그런 조카 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읽어낸 것인지 퍽 짓궂게 웃어보였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우리가 마주친 곳이 꽤 살벌한 곳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는 그대를 정중하게 대할 생각이니.”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만,”

 

“그보다 아까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겠나? 어떻게 대가문의 핏줄도 아닌 그대가 용을 길들인 거지?”

 

“길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용이 저를 택했을 뿐이죠.”

 

 

친절하면서도 무례하다. 눈앞의 남자는 웃는 낯을 하고서 결코 대화의 주도권을 그녀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용이 그녀를 선택했을 뿐이라는 겸손하지만 실속 없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혀로 볼 안쪽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푹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입꼬리는 웃는 것처럼 올라간 채로.

 

 

“어린 섭정비여. 그대는 용들이 타르가르옌이 아닌 사람도 주인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지?”

 

“…….”

 

“간단하잖아. 타르가르옌이 용 하나만 믿고 왕좌에 앉아 떵떵거리던 시절이 끝날 수도 있다는 거지.”

 

“그건,”

 

“즐겁지 않나? 역사의 과도기에 서있다는 사실이.”

 

“…즐겁지 않습니다. 전혀요.”

 

 

허니는 진심을 담아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사의 과도기라니, 전쟁같은 것에 자진하여 휘말리고 싶은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녀는 검은 용을 만나 무척이나 고마웠지만, 그와 별개로 만약 지금과는 다른 평화롭고 지루한 인생을 선택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지금의 세계를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의 고민이라고는 자수에 재능이 없다든가 다가올 정략혼의 상대가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아저씨일까봐 두렵다는 정도밖에 없는, 불과 몇 개월 전의 그녀의 인생이 그랬듯이.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보물이나 마법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녀는 현실을 직시하듯 스스로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칠왕국에서도 가장 차가운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지금은 그를 위해 기꺼이 전장에 서있노라고.

 

반면 다에몬은 허니의 비장한 대답에 유감이라는 듯 살짝 눈썹을 모으며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금세 다시 표정을 단정하게 정돈했다.

 

 

“난 꽤 즐거워. 하지만…”

 

 

참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그의 얼굴은 온화했고, 그의 말투도 몹시 나긋나긋했건만 허니는 그를 마주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그녀의 숨통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 우아한 말투로 하는 말들이 죄다 섬뜩한 것들뿐이라서일까.

 

 

“사실 난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권한을 넘보는 걸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거든.”

 

“…….”

 

“그리고 내가 가진 걸 빼앗으려는 사람들은 더더욱 증오하고.”

 

 

다에몬이 작게 웃어보였다. 아까부터 그의 시선은 검은 용의 고삐를 손 마디가 하얗게 될 때까지 꽉 붙들고 있는 허니의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녀 본인보다도 먼저, 그녀가 도망가고 싶어한다는 걸 알아차렸을지도 몰랐다.

 

 

“귀한 손님을 이대로 돌려보낼 수야 없지.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우리를 찾아온 이유를 느긋하게 들어보고 싶은데.”

 

“…아뇨. 마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오늘은 이만—“

 

“손 놔.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사람은 극도로 흥분한 순간 시간을 매우 느리게 받아들인다. 허니는 이전에도 이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바가르의 화염을 고스란히 맞은 젊은 왕이 하늘에서 추락하던 당시에.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그리고 조금 더 강렬하게 그녀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감각을 느낀다. 1초가 지나는 동안 그녀는 수십가지의 선택지를 떠올렸다. 그 중에서 가장 확률이 높아보이는 것들을 추리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예견하여 실행해보고, 단점을 고려하고…

 

다시 1초가 흘렀다. 더 이상의 고민은 무의미했다. 여기서 시간을 끌어봤자 불리한 사람은 허니였다.

 

결국 다에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삐를 강하게 잡아 끌었다. 검은 용 또한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는지 제 주인이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주는 것과 거의 동시에 몸을 재빨리 돌렸다. 빠르기로 유명했던 아락스와 견줄만큼 날렵하게.

 

 

“세상이 나의 잔인함을 부추기는구나!”

 

 

다에몬은 극적으로 폭소하더니 카락세스에게 저 둘을 쫓아가라 명령했다. 혈룡의 길다란 꼬리가 채찍처럼 허공을 내리쳤고, 그 힘을 받아 허니의 뒤를 더욱 맹렬하게 쫓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녀를 쫓아오고 있는지. 그녀가 첫 전투에서 상대해야했던 그 아름다웠던 노장처럼 그 또한 경험이 많은 전사임이 틀림없었다. 허니는 입술을 깨물며 검은 용이 조금 더 빨리 도망치기를 바랐다. 도망가야 해. 돌아가야 해. 조금이라도 킹스랜딩 가까이로. 그러면, 어쩌면 그때처럼 아에몬드가 바가르를 타고 나타나 우리를 구해줄 지도 몰라.

 

그때, 섬뜩한 화염이 간발의 차이로 그녀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카락세스의 집요한 성격을 꼭 닮은 불길이었다. 허니는 다시 한 번 아에곤의 참혹했던 몰골을 떠올렸고, 저도 모르게 힘이 풀려 용의 고삐를 놓치고 말았다.

 

 

“앗…!”

 

 

하필이면 그때, 검은 용이 이어질 공격을 피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급하게 공로를 바꾸었다. 허니는 놀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안장에서 미끄러지고 말았고, 다시 한 번 눈을 깜빡이는 그 찰나의 순간에는 허공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아. 결국에는 나도….

 

 

멀리서 들려오는 다에몬의 웃음소리와 함께 허니는 체념하듯 눈을 감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복기해낸 허니가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모든 것이 끔찍한 악몽이었다 해도 모자람이 없거늘 기어이 또 현실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살풍경한 주변 모습에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 애는 어디에 있지? 무사할까? 나를 버리고 도망갔다면 좋으련만.

 

 

추락하는 순간 멍청하게도 하늘만을 보고 있었다. 제 용의 마지막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허니는 자책하듯 입술을 씹었다. 비릿한 피맛이 나도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충분히 똑똑하지 못해서, 강하지 못해서 위기에 빠졌다는 생각이 자꾸만 그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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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하군.’

 

 

스스로에게 모질게 굴자 멀지 않은 과거에 남편이 했던 말까지 떠올라 허니는 딱 죽고만 싶었다.

 

차라리 상공에서 떨어지며 죽었어야 했는데, 적어도 다에몬에게 그녀의 신분이라도 밝히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때 죽지도 못하고 포로로 붙잡힌 탓에 아에몬드 또한 피해를 입을 것을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역시 요행으로 귀한 용을 얻었다한들 그들처럼 고귀하지 못한 그릇이라 일을 그르치고 마는 모양이라고, 비이성적인 자책이 그녀의 마음을 마구 난도질했다.

 

어떻게 내 실책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을까. 간수를 화나게 만들어서 제게 칼이라도 꽂게 해야하나. 군법을 어기고 그런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대체 무슨 소리를 해야 하지? 불안함에 헛된 상상을 하던 허니의 뇌가 답답한 듯 하나의 해결책을 떠올린 순간, 모든 쓸데없는 생각들이 안개가 걷히듯 사라졌다.

 

 

혀를 깨물면 되잖아.

 

 

그녀가 귀족이라서 절대 자살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건지 혹은 섭정비라 한들 실상 이 가문과는 엮이지 않은 외부인이라서 그리 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입에는 재갈이 물리지 않은 상태였다. 정말 죽고 싶다면, 더 이상 피해를 키우고 싶지 않다면…

 

허니가 기꺼이 제 입안의 살덩어리를 깨문 순간이었다. 무거운 철창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다에몬과 라에니라가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편 https://hygall.com/60647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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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드라마 전개를 참고로 하고 있긴 한데 너무 많이 변형해가지고 자꾸 전개가 산으로 감… 그냥 재미로만 봐조우 습습…



아에몬드너붕붕
유첼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