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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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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람이 쌀쌀하다.
수업 시간이라 어린 아이들이 보이지 않으니 낮이어도 무척 고요한 분위기였다.
한 수사가 가규를 어기지 않을만큼의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두리번거리던 시선이 마당 한쪽에 굳게 박혀 있는 고목 아래에 멈추었다.
운심부지처에서는 이질적이게도 시커먼 복장을 한 사내가 느슨하게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망설이던 수사가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위선생님, 혹시 종주님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응? 택무군?? 모르겠는데요.”
위무선이 여상하게 대꾸하자, 수사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다음 걸음을 재촉하여 위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고소 남씨 사람들은 한결같이 위무선에게 공손했다.
약간 벽을 치는 느낌에는 예전의 오해나 은원이나, 이릉노조에 대한 경외심도 섞여 있는 듯했다.
함광군이 끔찍히 사랑하고, 동고동락했던 소년들도 잘 따르지만, 얼룩진 과거를 다 지울 수는 없었다.
몇 년의 세월은 긴 것 같아도 별로 길지 않았다.
...그런데 택무군은, 어디로 가신 거지?
위무선은 잠시 손을 멈추고 수사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남희신이 방황하던 시절에, 한 번씩 어딘가에 틀어박히면 며칠이고 찾을 수가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완전히 안정을 되찾은 것 같고, 별 것 아니리라 생각하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아니, ‘완전히’라는 것이 가능한가.
다시 움직이던 손이 멈추고, 복잡한 한숨이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위무선은 심심풀이로 깎고 있던 나무토막을 던져버리고 훌쩍 일어났다.
갑자기 남망기가 몹시 그리워진 탓이었다.
일을 하고 있을 테니까 방해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지만, 그냥 옆에 가서 조용히 있으면 되겠지. 이루지도 못할 장담을 하면서 결국에는 훼방을 놓는 것도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한들한들 햇살 아래 가볍게 걸어가는 발길 아래로 옅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마침 한실에서 나오던 남희신을 발견한 수사가 급하게 다가갔다.
“종주!”
“?”
“저, 오정의 수업이...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아.”
남희신은 당황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복잡한 도안을 그리다 보니 지체되었구나. 이미 늦었으니 오늘은 자습을 하라고 일러라.”
“예.”
수사가 가버리자 남희신도 나가려던 발을 돌려 한실로 돌아갔다.
욕실이 아닌 구석의 작은 문으로 나가면 완전히 폐쇄된 정원이 나왔다.
가문의 주인이니 어딜 가든 혼자 있고 싶다면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한실의 안뜰은 특별히 개인적인 장소였다.
남희신은 조금 전 물주기를 마치고 엎어놓은 바가지 옆에 걸터앉아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사람을 보는 것도 신물이 나는 느낌이라, 새벽부터 화초만 돌보고 있었더니 아침도 점심도 넘겨버리고 끝내는 수업까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본디 남희신이 스스로 하는 일에 실수를 할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실수가 아니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업무나 일정 따위가 예전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게 되어서. 아예 주의력이 떨어져버린 것이다.
지금도 수업이니 정무니, 늘 갈고 닦고 정진하던 일상을 떠올리면 귀찮고 시들한 마음 뿐이었다.
이제 와서 남희신은 탈선하고 방탕하게 살던 사람들을 이해할 것 같았다.
제일의 가문이며 제일의 용모며, 제일의 두뇌와 시서검화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인가.
전 인생의 행복이 그의 입술에 한 번 닿는 감촉만 못하다.
언제부터인지 서서히 그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의식은 송두리째 다 빼앗긴 것처럼 되어. 언제나 그를 만날 날만 기다렸다.
맑은 하늘을 쳐다보아도, 전과는 다르게 바뀌어버린 의식이나 감정 때문에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강종주와 함께 있을 때에는 그 편에 온통 마음을 다 빼앗겨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지만, 일상으로 돌아오고 보면 거짓 자신에게 꼭 맞춰져 있는 환경이 더욱 심한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로 작용하는 지극히 냉철한 이성은 금방의 실수가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꼬집어내었다.
전날 저녁, 해이해진 마음과 수련 일정을 다잡기 위해 냉천으로 향했던 남희신은 도착하기도 전에 어두운 길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했다.
기습적으로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단순한 인기척이 아니라, 운몽의 억양이 섞인 말투였다.
어둑한 수풀에서 조용조용 들려오는 말소리에, 남희신은 저도 모르게 더 컴컴한 그늘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운심부지처에서 해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감히 밖에 숨어 밀어를 나누고 있을 사람들이 누구일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참 후 그들이 마음껏 시간을 보내고 돌아갈 때까지 남희신은 뭐에라도 홀린 것처럼 꼼짝도 못하고 멈추어 있었다.
마침내 혼자 남은 뒤.
이러다 정말 큰 실수를 하고 말 것 같다고 이마를 짚으며 신음하는 남희신은 무섭도록 속이 끓어오르는 상태였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가능하면 피하고만 싶었던 핏줄의 애정 행각이, 이제는 다른 의미로 괴로웠다.
애교가 가득하고, 쾌감과 애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 위무선의 목소리. 조잘대는 그 목소리 사이에 잠긴 듯 뜸직뜸직하게 울리지만 마찬가지로 어쩔 줄 몰라하는 애욕에 가득 찬 신음 소리.
애초에 한실을 나섰던 목적도 새까맣게 잊어버렸고, 마음 속에는 수치도 모르고 내달리는 맹목적인 욕망 뿐이었다.
......강종주가. 강만음이 그런 소리로 울부짖게 만든다면...!!!
이때까지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냉정한 마음 속에는 남들같은 감정도 감각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도 몰랐던 마음이 솟구치고, 잇달아 고소 남씨의 율법으로 억눌러왔던 정욕까지 터져나오자 그 반향이 말도 못할 정도였다.
매일 찾아가 만날 수도 없고, 아쉬우나마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사람도 없어서 더욱 답답했다.
아무튼 이대로는 사고를 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참을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
강징을 만나면 마치 그의 존재 전체로부터 무수히 뻗어나온 실이 갈고리로 화하여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굴, 눈빛, 성격이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소리.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의 일면을 마주하면, 익히 알던 부분들이 더욱 양념을 쳐서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특히, 아무리 무례한 행동을 해도 거부하지 않고 허용하는 강징을 보면 정말로 위험스러워졌다.
본디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강징의 성격은 남희신과는 거의 정반대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에게만은 순순하게 군다는 사실이...
뭐라고 말할까.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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