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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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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걸어내려가 오밤중에도 활짝 열린 성문을 통과할 때까지 남희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강징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떠들썩한 축제판 사이로 들어가자 얼떨떨하여 꿈이라도 꾸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남희신은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며 즐기는 것 같았다.
이윽고 몇 개의 현판을 읽고 특산물을 훑어본 강징은 이 소성의 이름을 짐작했다.
그렇다면 이 축제는 아마 근방에서 유명한 과실주의 덮개를 따는 행사로, 술 축제가 그렇듯 매우 흥청망청하게 흘러갈 것이 뻔했다.
괜히 애를 서서 추리하지 않아도 밤이 깊은 길에는 취객이 가득했고, 이따금씩 싸움도 벌어지는 것 같았다. 소란에 아이들도 잠을 자지 못하는지 한낮처럼 기운좋게 어른들의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며 당과를 빨고 있었고, 술로 얼근해져 더욱 기운이 뻗친 장사치들이 힘껏 외쳐 저들이 파는 물건들이 세상에 하나뿐인 양 과한 선전을 해댔다.
주위의 소란에 묻혀 조금 남았던 분노와 흥분도 다 가시자, 강징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도대체가 야렵 도중에 도망을 쳐 나오다니, 수업을 빼먹는 아이도 아니고. 솔직히 어린 시절에도 그런 탈선을 해 본 적 없는 강징은 자못 속이 불편했다.
하지만 남희신이 뒤돌아볼 때마다 그 완전무결한 얼굴에 터진 입가가 보이면 죄책감이 들었다. 인간이든 요괴든 떼로 덤벼들어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사람인데 치정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따귀자국을 내놨으니. 저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남희신은 아무 생각도 없는 듯 태평하고 한가롭게 노닐었다. 그리고 그 뒤를 종종 따라가는 강징은 그가 걸음을 멈추고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볼 때마다, 어울리지 않는 광경에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대가문의 종주가 생선 뜨는 바구니에는 왜 신경을 써? ...아기의 딸랑이 같은 걸 댁이 뭘 하시게요? ......그건 여인의 화장품 파는 좌판이란 말입니다!!!!!
강징은 점점 얼굴의 근육이 씰룩씰룩, 안색이 불그락푸르락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얼굴을 취기로 못 알아보았는지 주점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점원을 거칠게 밀어버리고는 끝끝내 남희신을 소리쳐 불렀지만, 벌써 인파에 떠밀려 저만치 앞으로 흘러가버린 그는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도 정말 가지가지다! 이런 델 처음 온 것도 아니고...!!!
그런데 문득, 정말로 처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소 남씨가 워낙 특이하니 그럴 지도 모르는 일이다.
강징은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파도처럼 움직이는 인파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걷기 시작했다.
...남망기라면 숱하게 겪어 보았을 텐데. 누구누구가 이런 데를 정말로 좋아하니까.
강징은 뜬금없이 떠오른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그때 불쑥, 눈앞에 새빨간 물체가 떠올랐다.
“이거 먹어보십시오.”
강징은 엉겁결에 당과를 받아들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봅니다.”
패검은 숨겼지만, 고귀하게 차려입은 사내들이 나란히 걸으며 과일꼬치나 빨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강징은 정말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두려울 지경인데 남희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오래도록 정신을 못 차렸던 과거가 있으니, 이 정도는 해탈해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면 마음이 답답하여 일탈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그런 심리라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닌 강징은 다소 마음이 누그러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 대나무 작대기를 통에 던져넣는 놀이에 은덩이를 내미는 남희신을 강징은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수선인이라면 두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쓸데없이 범인들의 앞에서 재주를 뽐낼 셈인가. 적이 민망해진 강징이 모르는 사람인 척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는데.
하나. 둘. 셋.
...
...
...
작대기가 툭툭 떨어져 땅에 나뒹굴 때마다 강징의 미간에 패인 골은 더욱 깊어졌다. ---스무개를 죄다 빗맞히는 것도 정상은 아니잖아!!!!!!
하지만 사람들은 이유 없는 축제의 마법에 잔뜩 취한데다, 훤칠해 보이는 미모의 사내가 스스럼없이 서민들의 놀이를 즐기는 모습에 기분 좋은 소리를 지르며 추켜세웠다.
“어렵군요. 강공자, 당신이 해보시지요.”
갑자기 뒤를 돌아본 그가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자, 강징은 마치 친우들끼리 유람을 나온 것처럼 흉내를 내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남희신을 따라서 뭇 시선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그만 딱딱하게 굳어지며 내빼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래서 넘겨받은 작대기 뭉치를 다급하게 내던져 버리자, 다섯 개의 작대기가 마치 한 덩어리로 묶인 것처럼 날아가서 통 안으로 쏙 들어갔다.
뜻밖의 신기한 재주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미친듯이 난리를 피웠다.
놀이꾼이 웃으면서 정중하게 상품을 바치자, 남희신도 짐짓 공손하게 받더니 강징의 손에 쥐어주었다.
“당신이 딴 것이니까.”
강징은 그것을 받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희신의 소매를 움켜쥐고는 바람난 남편을 기방에서 끌어내는 아내처럼 무섭게 잡아당겼다.
그러나 허둥지둥 도망을 치는 동안에도 그들을 기리는 박수 소리는 오랫동안 따라오며 귀를 따갑게 했다.
간신히 숲으로 돌아온 강징은 고적한 어둠이 반가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작은 숲길은 야렵의 범위를 살짝 벗어나 있어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희신이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저는 이대로 숙소로 돌아갈 테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제서야 강징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상처를 입혀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무어라 대꾸를 하려는 남희신을 가로막으며, 강징이 형형한 눈빛을 쳐들었다.
“이제부터는 저에게 사적으로 말을 걸지 말아 주십시오, 택무군.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강징은 나름 침착하며, 강경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를 외면한 남희신이 허공을 향하며 말했다.
“어째서요?”
“네?”
“요마 퇴치나 하는 것보다, 이 편이 즐겁지 않았습니까?”
여전히 남희신은 진지함이라곤 없는 것 같았다. 그런 태도에 강징은 쉽게 열이 오르며 삼독을 움켜쥐었다.
...그야...! 그렇겠지!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야렵이래봐야 일에 불과한데, 시장통에서 유유자적하기나 했으니까...!!! 하지만...!!!...
역시 욱하기만 하면 말문이 콱 막히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남희신은 눈으로 천 마디 욕을 하는 듯 불그락푸르락하는 강징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그대로 돌아선 그가 대화를 단절시킨 채 가버려도, 강징은 다시 부르지 못했다.
바로 그 웃음 때문이었다.
남희신은 어검도 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산길을 내려갔다. 강징은 그의 뒷모습이 희끄무레한 안개처럼 흐려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밤바람이 일렁거리자, 한참 동안 곁에 있었던 그의 향기가 은은하게 감도는 것 같았다.
그런 채로, 강징이 남희신의 웃음에 충격을 받은 이유를 깨닫는 데에는 한참의 시간이 더 걸렸다.
관음묘의 대참사 이후로, 택무군이 그처럼 편안하고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이 너무도 이상스럽고 심지어 달콤하게 느껴져서 주먹에 힘을 가하자.
자그마한 인형이 손바닥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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