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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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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어딜가나 마찬가지입죠. 이 가격은...”
시끌벅적한 낮시장의 소음.
남희신은 귀로 듣기보다는 차라리 피부로 느껴지는 듯한 공기의 일렁임을 가늠하듯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선 상인은 그를 탐색하듯 조그맣게 박힌 눈을 뒤룩거리다가 더욱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남희신은 그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 더 대담해진 상인이 여러 가지 물건들을 펼쳐 놓으며 귀가 따갑도록 잘고 빠른 어조로 욕심을 쏟아내었다.
이제 다 되었다, 참으로 잘 되어 간다고 그가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남희신이 고개를 돌려 빤히 쳐다보았다.
“그에 대해서는 저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만 기다려 주셔야겠군요.”
남희신은 일개 상인에 불과한 자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의뭉스럽게 말했다.
“차일에 난릉의 소개인이 들를 예정이니, 그때라야 차관의 계획에 맞추어 비용을 산출할 수 있겠습니다. 그 말씀대로라면 농민들에게도 큰 비용이 절약되겠군요.”
그렇게 말하는 남희신의 얼굴은 생선 한 마리 튀어오르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았으나, 듣고 있던 상인의 얼굴에는 미묘한 금이 그어졌다. 소개인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 시점이 일치하는 것을 남희신은 곧장 읽어내었으나 겉으로는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
“네에네에, 그러시다면! 아니, 다시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리! 인편으로 비용만 적어 주시면, 제가 가장 싼 값으로 잘 맞추어 놓겠습니다! 암요!”
“그럼 수고해 주시오.”
상인은 머리가 땅에 닿을 듯이 절을 하며 남희신을 배웅했다. 하지만 흰 그림자가 멀리 사라져갈 때쯤에는 얼굴이 확 굳어져버렸다. 넋이 다 빠진 것처럼 흘려 듣는 것만 같더니, 에잇! 다 되어가던 밥에 코라도 빠뜨린 것 같아 침을 뱉거나 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평민에게 선도를 수련하는 수사들이란 요괴나 악령처럼 차원이 다른 존재들었다. 그는 단속을 하는 것처럼 제 주둥이를 찰싹찰싹 때리고는 그저 쓴 입맛만 다시며 돌아섰다.
온통 재와 흙의 빛깔로만 채색된 시장통을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순백의 행색으로 걸어가는 미청년, 귀공자, 눈부신 패검을 손에 쥔 당당한 사내가 보이면 다시 돌아보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거의 찌르는 것과도 같은 그러한 시선도 귀동자였던 시절부터 익숙한 남희신에게는 시장의 소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묵묵히 성문을 향해 가며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하마터면 돼지같은 그 상인의 면전에다 가시돋힌 소리를 내뱉을 뻔했다.
몇 년이나 정신이 빠진 채로 지냈더니, 아직도 틈을 보고 허튼수작을 하려는 놈들이 있었다.
그것도 대대로 고소 남씨의 덕을 보아온 가게가 그따위 짓을 하려 들다니.
불쾌하게 뻗어가던 생각이 세상에 믿을 놈이란 없다는 대목에 이르자, 자학처럼 폐부를 찔린 남희신은 무척 아픈 미소를 지었다.
홀로 마음 속에 일으킨 풍파를 잠재우듯, 남희신은 씁쓸한 안색을 지우고 눈빛을 맑게 했다.
그러고 보니 거리의 풍경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도매가 오가는 지역을 벗어나자 길이 깨끗해지는 동시에 넓어지며 늘어선 가게들에도 알록달록한 색깔이 깃드는 것 같았다.
남희신은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다가 소리를 지르며 놀고 있는 한 떼의 어린아이들에게 눈이 멎었다.
아이를 보면 남희신의 입가에는 자동적으로 미소가 떠오르곤 했다.
깨끗한 거리에 걸맞게 아이들은 예쁜 빛깔의 옷들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고사리같은 어느 손은 과자 꼬챙이를 쥐고 있었고, 어느 손은 뺏으려 하고, 깔깔대고 어울려 놀다가도 버럭하며 때리고 울고불고 하는 엉터리 연극 같은 무리들을 바라보던 남희신의 머릿속에, 불현듯 위무선과 강징의 모습이 겹쳤다.
순간 속이 울렁거리며 납덩이처럼 무겁고 불편한 진실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남희신은 살아오면서 누구와도 그렇게 편하게 터놓고 지내본 적이 없었다.
가족과 지기 앞에서조차 남희신은 아정한 택무군이었다.
숙부의 앞에서는 결코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조카를, 종주로서는 다재다능하고 만인과 원만하게 지내는 군자를, 망기의 앞에서는 한없이 의지가 되어주는 형장의 연기를 했다. 심지어는 맹목적인 정을 담뿍 담고 살갑게 다가오는 금광요에게도 그는 진짜 속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조심스러워하는 그 눈빛에 담긴 기대감이 어디까지나 훌륭한 택무군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남희신은 첫 만남부터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문 앞에 이르러 길을 올라간 남희신은 곧바로 강징이 머무르는 객실로 향했다.
늘 보는 선부이며 길이었지만, 어쩐지 강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풍경이 달리 보이는 느낌이었다.
“택무군...”
거의 회복이 된 강징은 서탁 앞에 앉아 있다가 남희신이 들어서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희신은 손짓으로 그를 앉히고는 맞은편에 앉아 가져온 꾸러미를 풀었다.
“저, 이제는 다 나아서 돌아가도 될 것 같습니다만...”
강징은 머뭇거리며 말을 하면서 뒤를 흐렸다.
“네.”
남희신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손을 멈추지 않았다. 검이나 붓을 쥐는 것만이 어울리는 손이 얇은 종이로 포장되어 있던 과자들을 헤쳤고 접시 위로 하나하나 쌓아올렸다.
연달아 그가 차를 끓이는 동안 강징은 꼿꼿하게 앉아서 색색깔의 과자 접시들을 불편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드십시오.”
남희신이 차를 따라 주며 권해도 강징은 찻잔만 만지작거리며 말이 없었다.
남희신도 과자에는 손을 대지 않고 찻잔을 들어 입술만 적시고 있었다.
남희신은 강징을 바라보고 있었고, 강징은 과자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 안에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사실, 강징은 단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런 것을 먹었던 게 언제인지 그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힘든 세월을 지나오며, 금릉에게나 먹여 보았을까.
연화오가 파괴된 이후로, 강징은 스스로를 해이하게 만들만한 것은 먹거리든, 술이든, 유흥거리든 모조리 피해왔다.
남희신은 강징이 저를 경계하던 것조차 잊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자 의아했다. 대체 과자 하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건지 궁금했다.
궁금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종주와 자신은 각자가 대가의 주인이라서 도려도 되기 힘들 텐데, 대체 무슨 마음으로 연심을 품었던 것인지.
그리고는 언뜻 떠올랐다. 아아, 하긴. 그 때도 자신이 고백을 받아들일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고 그랬었지.
하지만, 만약에 받아들였다면, 대체 어찌 했으려고...?...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자, 강징이 긴장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좀이 쑤시는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 버렸나 보다고, 남희신은 짐짓 부드러운 미소로 덮어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 와서 가식을 떨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도화선이 된 듯, 별안간 불같이 번지는 충동과 욕망이 일어났다.
이제까지 진짜 남희신을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자신의 진면목을 본 다음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지금도 눈치를 보고, 몸을 사리며, 심지어 멀리하고 경계하려는 태도에서조차 자신을 향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남희신은 그 유대를 끊어버리고 싶지 않은 자신을 깨달았다.
오로지 자신의 앞에서만. 그것도 진짜 자신의 앞에서만 허둥대는 저 태도가 사라져버린다면 삭풍만 불고 있는 마음속이 그야말로 텅 비어버릴 것만 같았다.
남희신은 영리한 사람이었기에 이것이 이기적인 욕심이란 사실도 똑똑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강징의 입장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는, 그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욕심.
곤란했다.
고소 남씨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옳지 않았다.’.
하지만 욕심이란 것이 그렇듯, 한 번 터지면 멈추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특히,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진정한 자기 것은 아무 것도 가져본 적이 없는 남희신과 같은 사람에게는.
이 때 남희신의 표정은 금방 과자를 보며 우울해하던 강징의 얼굴 표정보다도 훨씬 어둡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을 깨뜨린 것은 드르륵 소리를 내며 앞으로 밀어진 과자 접시였다.
어느새 고개를 떨어뜨리다시피 하고 있던 남희신이 눈을 들어 보니, 강징이 입을 오물거리며 과자를 씹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단 것이 싫어서 노려보고 있던 것이 아닌가? 다소 멍한 머리로 맹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남희신에게 강징이 말했다.
“...당신도 드십시오.”
마치 혼자 먹기가 창피하다는 듯, 퉁명스럽게 재촉하는 말투였다.
그 순간 남희신의 머릿속에서 어떤 것들이 불꽃을 튕겼는지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의 입은 단 것을 즐기지 않는다고, 습관적으로 말하려던 것 같았다. 하지만 하얀 손이 남의 몸에 달린 것처럼 동그란 과자를 집었고, 평생 엄하고 올곧은, 즉 영감같은 말이나 문구만 읊조리던 입술 속으로 그것을 밀어넣었다.
익숙하지 않은 단맛이 치아를 지나 혀뿌리까지 퍼지는데, 의외로 싫은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혀가 아리도록 감겨드는 달콤한 맛에 입술이 경련을 일으킬 것 같았다.
강징이 이상스럽게 쳐다보며 묻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택무군... 괜찮으십니까?”
남희신은 입 속 가득히 단 과자를 품은 채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전연 괜찮지 않았다.
강징은 까맣게 눈치채지 못했지만, 남희신은 뱃속에서 지옥불 같은 것이 들끓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강종주와 거리를 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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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낮시장의 소음.
남희신은 귀로 듣기보다는 차라리 피부로 느껴지는 듯한 공기의 일렁임을 가늠하듯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선 상인은 그를 탐색하듯 조그맣게 박힌 눈을 뒤룩거리다가 더욱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남희신은 그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 더 대담해진 상인이 여러 가지 물건들을 펼쳐 놓으며 귀가 따갑도록 잘고 빠른 어조로 욕심을 쏟아내었다.
이제 다 되었다, 참으로 잘 되어 간다고 그가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남희신이 고개를 돌려 빤히 쳐다보았다.
“그에 대해서는 저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만 기다려 주셔야겠군요.”
남희신은 일개 상인에 불과한 자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의뭉스럽게 말했다.
“차일에 난릉의 소개인이 들를 예정이니, 그때라야 차관의 계획에 맞추어 비용을 산출할 수 있겠습니다. 그 말씀대로라면 농민들에게도 큰 비용이 절약되겠군요.”
그렇게 말하는 남희신의 얼굴은 생선 한 마리 튀어오르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았으나, 듣고 있던 상인의 얼굴에는 미묘한 금이 그어졌다. 소개인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 시점이 일치하는 것을 남희신은 곧장 읽어내었으나 겉으로는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
“네에네에, 그러시다면! 아니, 다시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리! 인편으로 비용만 적어 주시면, 제가 가장 싼 값으로 잘 맞추어 놓겠습니다! 암요!”
“그럼 수고해 주시오.”
상인은 머리가 땅에 닿을 듯이 절을 하며 남희신을 배웅했다. 하지만 흰 그림자가 멀리 사라져갈 때쯤에는 얼굴이 확 굳어져버렸다. 넋이 다 빠진 것처럼 흘려 듣는 것만 같더니, 에잇! 다 되어가던 밥에 코라도 빠뜨린 것 같아 침을 뱉거나 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평민에게 선도를 수련하는 수사들이란 요괴나 악령처럼 차원이 다른 존재들었다. 그는 단속을 하는 것처럼 제 주둥이를 찰싹찰싹 때리고는 그저 쓴 입맛만 다시며 돌아섰다.
온통 재와 흙의 빛깔로만 채색된 시장통을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순백의 행색으로 걸어가는 미청년, 귀공자, 눈부신 패검을 손에 쥔 당당한 사내가 보이면 다시 돌아보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거의 찌르는 것과도 같은 그러한 시선도 귀동자였던 시절부터 익숙한 남희신에게는 시장의 소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묵묵히 성문을 향해 가며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하마터면 돼지같은 그 상인의 면전에다 가시돋힌 소리를 내뱉을 뻔했다.
몇 년이나 정신이 빠진 채로 지냈더니, 아직도 틈을 보고 허튼수작을 하려는 놈들이 있었다.
그것도 대대로 고소 남씨의 덕을 보아온 가게가 그따위 짓을 하려 들다니.
불쾌하게 뻗어가던 생각이 세상에 믿을 놈이란 없다는 대목에 이르자, 자학처럼 폐부를 찔린 남희신은 무척 아픈 미소를 지었다.
홀로 마음 속에 일으킨 풍파를 잠재우듯, 남희신은 씁쓸한 안색을 지우고 눈빛을 맑게 했다.
그러고 보니 거리의 풍경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도매가 오가는 지역을 벗어나자 길이 깨끗해지는 동시에 넓어지며 늘어선 가게들에도 알록달록한 색깔이 깃드는 것 같았다.
남희신은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다가 소리를 지르며 놀고 있는 한 떼의 어린아이들에게 눈이 멎었다.
아이를 보면 남희신의 입가에는 자동적으로 미소가 떠오르곤 했다.
깨끗한 거리에 걸맞게 아이들은 예쁜 빛깔의 옷들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고사리같은 어느 손은 과자 꼬챙이를 쥐고 있었고, 어느 손은 뺏으려 하고, 깔깔대고 어울려 놀다가도 버럭하며 때리고 울고불고 하는 엉터리 연극 같은 무리들을 바라보던 남희신의 머릿속에, 불현듯 위무선과 강징의 모습이 겹쳤다.
순간 속이 울렁거리며 납덩이처럼 무겁고 불편한 진실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남희신은 살아오면서 누구와도 그렇게 편하게 터놓고 지내본 적이 없었다.
가족과 지기 앞에서조차 남희신은 아정한 택무군이었다.
숙부의 앞에서는 결코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조카를, 종주로서는 다재다능하고 만인과 원만하게 지내는 군자를, 망기의 앞에서는 한없이 의지가 되어주는 형장의 연기를 했다. 심지어는 맹목적인 정을 담뿍 담고 살갑게 다가오는 금광요에게도 그는 진짜 속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조심스러워하는 그 눈빛에 담긴 기대감이 어디까지나 훌륭한 택무군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남희신은 첫 만남부터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문 앞에 이르러 길을 올라간 남희신은 곧바로 강징이 머무르는 객실로 향했다.
늘 보는 선부이며 길이었지만, 어쩐지 강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풍경이 달리 보이는 느낌이었다.
“택무군...”
거의 회복이 된 강징은 서탁 앞에 앉아 있다가 남희신이 들어서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희신은 손짓으로 그를 앉히고는 맞은편에 앉아 가져온 꾸러미를 풀었다.
“저, 이제는 다 나아서 돌아가도 될 것 같습니다만...”
강징은 머뭇거리며 말을 하면서 뒤를 흐렸다.
“네.”
남희신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손을 멈추지 않았다. 검이나 붓을 쥐는 것만이 어울리는 손이 얇은 종이로 포장되어 있던 과자들을 헤쳤고 접시 위로 하나하나 쌓아올렸다.
연달아 그가 차를 끓이는 동안 강징은 꼿꼿하게 앉아서 색색깔의 과자 접시들을 불편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드십시오.”
남희신이 차를 따라 주며 권해도 강징은 찻잔만 만지작거리며 말이 없었다.
남희신도 과자에는 손을 대지 않고 찻잔을 들어 입술만 적시고 있었다.
남희신은 강징을 바라보고 있었고, 강징은 과자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 안에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사실, 강징은 단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런 것을 먹었던 게 언제인지 그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힘든 세월을 지나오며, 금릉에게나 먹여 보았을까.
연화오가 파괴된 이후로, 강징은 스스로를 해이하게 만들만한 것은 먹거리든, 술이든, 유흥거리든 모조리 피해왔다.
남희신은 강징이 저를 경계하던 것조차 잊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자 의아했다. 대체 과자 하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건지 궁금했다.
궁금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종주와 자신은 각자가 대가의 주인이라서 도려도 되기 힘들 텐데, 대체 무슨 마음으로 연심을 품었던 것인지.
그리고는 언뜻 떠올랐다. 아아, 하긴. 그 때도 자신이 고백을 받아들일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고 그랬었지.
하지만, 만약에 받아들였다면, 대체 어찌 했으려고...?...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자, 강징이 긴장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좀이 쑤시는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 버렸나 보다고, 남희신은 짐짓 부드러운 미소로 덮어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 와서 가식을 떨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도화선이 된 듯, 별안간 불같이 번지는 충동과 욕망이 일어났다.
이제까지 진짜 남희신을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자신의 진면목을 본 다음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지금도 눈치를 보고, 몸을 사리며, 심지어 멀리하고 경계하려는 태도에서조차 자신을 향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남희신은 그 유대를 끊어버리고 싶지 않은 자신을 깨달았다.
오로지 자신의 앞에서만. 그것도 진짜 자신의 앞에서만 허둥대는 저 태도가 사라져버린다면 삭풍만 불고 있는 마음속이 그야말로 텅 비어버릴 것만 같았다.
남희신은 영리한 사람이었기에 이것이 이기적인 욕심이란 사실도 똑똑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강징의 입장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는, 그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욕심.
곤란했다.
고소 남씨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옳지 않았다.’.
하지만 욕심이란 것이 그렇듯, 한 번 터지면 멈추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특히,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진정한 자기 것은 아무 것도 가져본 적이 없는 남희신과 같은 사람에게는.
이 때 남희신의 표정은 금방 과자를 보며 우울해하던 강징의 얼굴 표정보다도 훨씬 어둡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을 깨뜨린 것은 드르륵 소리를 내며 앞으로 밀어진 과자 접시였다.
어느새 고개를 떨어뜨리다시피 하고 있던 남희신이 눈을 들어 보니, 강징이 입을 오물거리며 과자를 씹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단 것이 싫어서 노려보고 있던 것이 아닌가? 다소 멍한 머리로 맹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남희신에게 강징이 말했다.
“...당신도 드십시오.”
마치 혼자 먹기가 창피하다는 듯, 퉁명스럽게 재촉하는 말투였다.
그 순간 남희신의 머릿속에서 어떤 것들이 불꽃을 튕겼는지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의 입은 단 것을 즐기지 않는다고, 습관적으로 말하려던 것 같았다. 하지만 하얀 손이 남의 몸에 달린 것처럼 동그란 과자를 집었고, 평생 엄하고 올곧은, 즉 영감같은 말이나 문구만 읊조리던 입술 속으로 그것을 밀어넣었다.
익숙하지 않은 단맛이 치아를 지나 혀뿌리까지 퍼지는데, 의외로 싫은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혀가 아리도록 감겨드는 달콤한 맛에 입술이 경련을 일으킬 것 같았다.
강징이 이상스럽게 쳐다보며 묻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택무군... 괜찮으십니까?”
남희신은 입 속 가득히 단 과자를 품은 채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전연 괜찮지 않았다.
강징은 까맣게 눈치채지 못했지만, 남희신은 뱃속에서 지옥불 같은 것이 들끓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강종주와 거리를 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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