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54020960
view 8369
2023.07.17 20:10

https://hygall.com/542304765
https://hygall.com/542546976
https://hygall.com/542716117
https://hygall.com/552440961
https://hygall.com/552569176
https://hygall.com/552828202
https://hygall.com/553044795

https://hygall.com/553247367
9 https://hygall.com/553848396





다시 사냥회가 열렸다.
하지만 이번 사냥은 여타의 개개 가문 주최의 사냥과는 성질이 달랐다.
수진계에서는 3년에 한 번 천선계의 신에게 제례를 올리고, 제가 끝난 후에는 천연 그대로의 사냥을 벌이는 관습이 있었다.
기산 온씨가 행패를 부리며 잠시 사라졌던 관습은 사일지정이 끝나고 약 십년이 지난 후에야 부활했고, 그 후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청하와 난릉의 경계선 끝, 중앙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세계의 발생지라고 일컬어지는 큰 산이 있었다. 
산의 근방은 지형이 음습하여 거친 나무가 빽빽하며 높고 낮은 절벽이 많아서 평범한 인간들은 접근하기 어려웠다.
수진계의 주요 명사들은 일제히 날아올라 어검으로밖에 갈 수 있는 산의 최정상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 다음에는 사냥이었다.
험준한 산봉우리에는 야수종이 많이 서식하고 있었고, 별다른 지맥의 영향을 받은 건지 요괴로 화하는 경우가 상당했다. 누군가 일부러 귀괴를 잡아다가 풀어놓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는 자연 상태의 사냥터였다.


제가 끝나고 스무번의 징 소리가 온 산중을 진동시키며 울려퍼지자, 강징은 가장 험하다고 생각되는 지형을 따라서 날아갔다.
산자락 아래에는 각 가문의 종주들을 제외한 무리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대기중이었다. 이제 징이 울렸으니 그들은 천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닥치는대로 사냥을 시작할 것이다.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만, 이 대회에서도 신성한 장소를 정화한다는 본래 목적에 의미를 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실 그러기도 힘든 것이, 사냥이 끝나면 어느 가문에서 얼마나 요괴 퇴치를 많이 했는지를 헤아려 순위를 매겼던 것이다.
각 가문의 수행 능력이 숫자로 명백하게 드러나는만큼 안일하게 생각하는 가문은 하나도 없었다. 
강징도 다른 가문들처럼 운몽 강씨 휘하의 금단 있는 자들을 모조리 끌고 나왔으며, 단단히 무장시킨 상태였다.
대놓고 싸우는 전쟁만이 전쟁은 아니다. 최고 세가의 이름을 하늘이 정해준 것은 아니니,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오히려 4대세가는 마땅히 중소세가들을 능가하는 저력을 보여주어야 하므로 중압감이 적지 않았다.
또한 4대 세가 안에서도 크게 뒤쳐지면 안 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강징이 탄 삼독은 무척 낮게 날아가고 있어 길게 자란 풀이 간간이 발목에 스칠 정도였다.
징이 울린 뒤 고작 한 식경 정도의 시간이 지날 동안 제법 큰 요수들을 발견했지만 무시해버렸다.
가문의 수장인 그가 노려야 할 사냥감은 그렇게 하잘것 없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강징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출발했고, 아주 멀리까지 날아왔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나무들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해가 천천히 지고 있었고, 사방의 공기는 요기로 꽉 차서 한여름의 높은 습도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별안간 으르르 하는 낮은 경고음이 들려오자, 강징은 얼마 높지 않은 땅 위로 뛰어내렸다.
어디선가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지만 들쭉날쭉한 지형 탓에 보이지 않았다.
강징의 몇 척 앞에 이끼로 얼룩진 평평한 벽면이 있었다. 마치 절벽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였다.
그 위로는 엉킨 것처럼 수북하게 돋아난 덤불이 늘어져 있었고, 그 덤불의 일부가 천천히 흐려지며 금빛이 되는가 싶자, 다시 흐려지며 덤불과 완전히 똑같은 색으로 변했다.
짙은 이끼색의 앞에는 세 개의 금빛 눈알이 떠 있었다.


세 번째의 인광구는 두 개의 눈 사이에서 아귀의 초롱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는 대요수였다.
강징은 웃는 일이 별로 없었으며, 만약 웃는다 해도 이런 순간에만 짓는 입꼬리가 올라간 회심의 미소 뿐이었다.
아무리 강한 요수라 해도 입신의 경지에 이른 삼독성수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요행히도 발견했으니 저 인광구를 잘라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난데없는 훼방꾼만 없었더라면.
마치 인광귀요의 영역 안에는 풀벌레 하나 용납되지 않는다는 듯, 주위는 살벌할 정도의 침묵으로만 가득했다. 그런 중에 부스럭 하고 낙엽 밟히는 소리가 나자 그 소리는 마치 바늘처럼 강징의 귀를 찌르며 흠칫하게 만들었다.
강징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우연히 마주칠 리가 없었다. 자신이 작정을 하고 기민하게 출발했을 때부터 지체 없이 따라왔을 거라 생각하니 머리가 어질했다.
하지만 강징은 이내 양미간이 노기로 좁혀지며 경계심이 팽팽해졌다.
이 순간에는 남희신이 아니라 금릉이 나타났다 해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애지중지하던 조카는 이미 독립했으며, 아무튼 난릉 금씨는 머릿수가 엄청나서 남에게 밀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무척 짧은 시간 동안 강징은 그와 말을 섞어봐야 이로울 게 없다는 재빠른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는 곧장 요수에게 직선으로 달려갔다.
요수는 강징이 덤벼들기 전까지는 유유자적하게 앉아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대요로 군림해 온 존재는 누군가가 저에게 덤벼들리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강징의 일검이 닿기 전에 뛰어오른 요수가 앞발톱으로 삼독을 쳐내었다. 갑자기 금속이 깨지는 듯 요란한 파장음이 발생하자, 얌전하게 숨어 있던 갖가지 생물들이 경계밖으로 도망치는 소리가 바람처럼 쏴 하고 흩어졌다.
물론 삼독이 깨어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강징은 다시 삼독을 강하게 움켜쥐며, 이번에는 자전에도 힘을 실었다.
그런데 으르렁거리며 위압감을 뿜어내는 요괴의 옆으로 파고들어 찌르려는 찰나, 하얀 빛이 번쩍 하며 삼독이 어이없이 튕겨나왔다.
공중에서 휙 몸을 돌려 땅에 내려선 강징은 그보다 조금 높은 지대에 선 남희신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정말 이러실 겁니까!?”
남희신의 바로 뒤에서는 금방 호된 권풍에 얻어맞은 요수가 멍한 듯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느슨하게 삭월을 늘어뜨린 채 유유자적 대꾸했다.
“대회이니 사적인 감정은 접어두는 게 어떨까요.”
그가 말하며 옅게 웃음 짓자, 강징의 잇새에서 으드득 소리가 났다.
강징은 다시금 삼독을 움켜쥐었다. 다만 대요수에 대한 공격을 준비할 때보다 훨씬 힘을 실어서. 그리고 시작된 전투는 강징의 일생에서 경험해본 적도 없는 괴상한 싸움이었다.
강징은 남희신의 방어를 뚫고 요수를 공격하려 애를 썼고, 남희신은 요수와 강징 둘 다를 견제했다. 
삼독의 검기가 휘어지고 삭월의 광채가 터질 때마다 푸른 생잎들이 눈발처럼 날리고 때로는 굉음과 함께 돌가루가 튀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몇십 합의 힘싸움이 지나가고도 두 사람과 하나의 괴 사이의 간격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묘한 싸움이 이어지자 요수도 점점 혼란에 빠지는지 이따금씩 뒤로 물러났다가 누구를 공격할 지 헷갈려 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강징은 한시도 쉬지 않고 공격을 감행했고, 그에 따라 남희신도 쉬지 않고 손발을 놀리며 하얀 옷자락을 휘날렸다.
강징은 거침없이 덤비긴 했으나 내심으로는 매우 놀라고 있었다.
일전에 그의 힘이 보통이 아닌 것을 보긴 했지만, 무력은 무력이고 영력은 영력이다.
남씨쌍벽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함광군과 함께 거론되는 택무군이 강하다는 사실은 익히 들었지만, 강해봐야 동년배인데 한끗 차이 정도이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남희신은 불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검술에 빈틈이 없었고, 심지어 전력을 다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강징은 바쁘게 가문을 다스리는 중에도 수련만은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어쩌면 이럴 수가 있는지, 그는 슬슬 분통이 터지며 오기가 치밀어올랐다.
한편, 남희신은 강징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모습에 속웃음을 참지 못했다.
위공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어찌한다?
남희신은 정말로 훼방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일부러 져 주려고 해도 때가 늦은 것 같았다. 그럼 저번처럼 일부러 베여서 그에게 죄책감이라도 심어 줘야 하는 걸까?
보는 눈이 핑핑 돌도록 바쁘게 움직이는 중에도 남희신은 기민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던 그의 눈에 문득 어떤 물체가 들어왔고, 또한 귀에 들려왔다.
강징은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그에게는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남희신과 같은 여유를 가질 공간이 없었다.
요괴의 급은 상중하로 나뉘어 가문의 고수들은 가장 강한 괴를, 중수나 하수들은 자신의 급에 맞는 괴를 상대해야 하는데, 당연히 대요수에 고점을 매기므로 강징 자신이 대요를 충분히 잡지 못하면 총점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운몽 강씨는 기성 세대가 완전히 무너졌던 가문인 만큼 노련한 고수가 부족했다. 
그래서 이 순간만큼은 상대가 누구란 것도 잊어버리고 악착같이 덤벼드는데.
이 놈만 잡고 당장 몸져누워도 좋다 싶을 정도로 내력을 끌어올려 퍼부어도 남희신의 방어는 끝이 없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힘을 쓰는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 들자 바짝 약이 올랐다.
망할...!!! 내 저걸 먼저 해치우지 못한다면 성을 갈겠다!!!!
강징은 자전을 팔뚝에 칭칭 감아 번쩍거리는 영력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삼독에도 홍수처럼 영력을 쏟아부으며 땅을 차고 날아갔다.
그럼에도 도저히 닿지 못하겠다고 느낀 순간의 패배감과 절망감이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순간, 남희신이 요수의 앞을 막는 대신 강징의 곁으로 빠져나가며 허공에다 검을 그었다.
강징은 그가 왜 그러는지 생각해볼 여유도 없었다.
마침내 정확하게 목덜미를 찔린 야수가 포효하고 분수같은 피를 뿌리며 몸부림을 쳤다.
강징은 솟구치는 핏줄기도 아랑곳없이 재빨리 검을 휘둘러 야수의 이마에서 인광구를 잘라내어 손아귀에 쥐었다.
그야말로 사력을 다한 공격에 뒤늦게 긴장감이 절정에 오르며 땀이 훅 쏟아졌고 전신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천천히 남희신을 돌아본 강징은 금방 그가 왜 자신에게 미치지 못했던 건지를 깨닫고 얼굴이 굳어졌다.
남희신은 삼자, 아니 삼체가 대치하는 순간 요수를 베는 대신 강징을 향해 삭월을 휘둘렀다. 그리하여 삼독의 검집에서 떨어져나온 작은 은방울이 남희신의 손바닥 위에 얹혀 있는 것이 아닌가!
남희신이 방울을 잡고 가볍게 흔들자, 정교하게 만들어진 자잘한 구슬들이 맑은 소리로 울어대었다.
강징이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돌려주십시오!!”
그러자 남희신은 더이상 장난기도 숨기지 않고 무척이나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이건 제가 획득한 전리품이니, 정 갖고 싶으시다면 당신의 것과 교환합시다.”
강징은 익하고 이를 드러내며 한 발 앞으로 나섰지만, 그래도 인광구를 꽉 쥔 손을 놓지 못했다.
그것을 보고 남희신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승부욕이 강하긴 하구나.
강징은 인광구를 어찌나 세게 쥐고 있는지, 평범한 요괴의 것이었다면 진작에 터지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휙하니 어검을 하여 어두운 숲을 뚫고 날아가버리는 남희신을 바라만 보면서, 두 번을 부르지는 못했다. 




제례를 올렸던 봉우리가 가까워지자 사냥을 하는 무리들도 늘어나서 공중에서 내려다보자 갖가지 빛깔이 녹음 사이에서 어른어른했다. 
사냥꾼들은 하나같이 낮게 날고 있었으므로 남희신의 행보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얼마 안 가 남희신은 남망기를 찾아서 지상으로 내려갔다.
새하얀 장포, 새하얀 얼굴을 하고 천천히 거닐고 있는 함광군은 홀로 산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요수를 몇 마리나 해치우고도 전리품마저 깔끔하게 건곤대에 갈무리한 그의 몸에는 먼지 한 톨도 묻어 있지 않았다.
“잘 되어 가느냐?”
남망기는 흘긋 남희신이 빈 손인 것을 훑어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갑지체가 총 6개체. 을지체가 18수. 이것만으로도 부족함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수고했다.”
남희신은 웃으면서 남망기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공손하게 눈을 내리깔고는 있지만 동생의 눈 밑 그늘진 부분에 숨겨진 불만이 환하게 읽혔다.
대사냥회라 해도 이로부터 3년 전에는 딱 사냥에만 참가했다가 연기처럼 돌아가버린 그에게 전날부터 다음날까지의 전두지휘를 죄다 맡겼으니. 최소 사흘 이상을 독수공방하게 된 신세를 참기가 힘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망기는 조금 혼란스러운 중이었다.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예 폐관을 하면 모를까, 형장께서 스스로의 의무에 해이해지실 분이 아닌데. 혹여 마음병이 다시 도지신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남희신은 오히려 지나치게 명랑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젠 됐다. 지금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마.”
남망기는 의심스러운 듯 눈을 치떴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남망기는 잠시 동안 물끄러미 남희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공수를 하자마자 바로 어검을 하여 날아올랐다.
유성처럼 빠르게 멀어지는 하얀 점을 보고 남희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