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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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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무선은 남희신의 지도 아래 꾸준한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래도 쉽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남희신이 말할 때는 산만하게 흘려 듣는 것만 같은데, 다음 날 확인해 보면 이미 뭐든 다 알고 있는 상태였다. 결과적으로는 잘 배우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딘가 농락당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서 아마 남희신이 아니었다면 속병이 났을지도 몰랐다.
오늘은 책을 통해 이론을 배우는 날이었기에 위무선은 지루하게 서안 위에 엎어져서 남희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꼬마 적에 배웠던 걸 굳이 다시 배워야 하나? 하여튼 남씨들이 하는 일은 융통성이 없다니까.’
“똑바로 앉아.”
갑자기 냉랭한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남잠?”
돌아보니 장대같이 선 남망기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무선이 반가워하며 말했다.
“네가 웬일이야? 택무군은?”
“영맥이 전부 자리를 잡았으니 더이상 형장께 수고를 끼칠 필요는 없어.”
그가 위무선을 스쳐 가더니 넓고 무거운 서안 뒤에 앉았다. 양 손으로 옷자락을 펼치는 몸짓에서 진중한 위엄이 묻어났다.
“너한테 배우라고?!”
위무선의 외마디 비명에 답을 하듯 서책 하나가 날아와서 서안 위에 떨어졌다.
“외워.”
위무선이 어이없어하며 뒤져보니 역시 어릴 때 다 배웠던 책이었다.
“남잠, 나더러 이런 거나 보라고? 설마 내가 이딴 것도 모를까 봐? 완전 시간낭비야.”
남망기는 소매에서 작은 책자를 꺼내며 눈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럼 외워 봐.”
“윽...”
뭐든 알 만큼 다 알긴 하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잊혀지게 마련. 통째로 암기하라고 하면 물론 할 수가 없다.
“아우...”
펄럭펄럭 책장을 넘겨 보니 지금의 자신에겐 퀘퀘하고 쓸모 없는 목차가 한가득 펼쳐졌다.
“나 원 참. 요즘 누가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한대. 이딴 건 그냥 이렇게...”
투덜거리며 공중에 주문을 그리는 시늉을 하던 손가락이 차가운 시선에 딱 멈추었다.
“알았어, 잘못했어! 제가 잘못했어요, 남 선생님!”
위무선이 책을 펼쳐서 남망기의 눈총을 가리며 웃었다.
엄하게 구는 남망기는 꼭 수학 시절의 벽창호가 되돌아온 듯했다.
이제는 그 때처럼 마음대로 놀려줄 수도 없게 되었지만, 그 시절이 그립지는 않았다.
사실은 놀릴 필요도 없어진 거다. 일부러 건드리며 주의를 돌려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남망기는 저를 잔뜩 지켜보고 있으니까.
금광요가 돌아왔다는 말을 전해 들은 남희신은 그가 한실로 오기도 전에 서둘러 찾아갔다. 얼마 전 금광선이 이례적으로 서자를 받아들여 금린대로 데리고 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금광요가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염려스러웠던 것인데, 옷을 갈아입고 처소를 나오는 그는 평소처럼 여유있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길을 걸어올라갔다.
남희신은 금광요가 워낙에 감정을 잘 숨기니 속이 궁금했으나, 거북한 얘기를 먼저 꺼내기 어려웠다.
“그래, 집안에는 별 일 없고?”
나름대로 에둘러 말한다고 한 것이었지만 남희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금광요는 금방 눈치채고 말았다.
최근 금광선은 무슨 변덕이었는지 모씨라는 가문에서 난 아들을 데려왔다. 이 일로 당연히 금부인이 화를 내며 집 안이 발칵 뒤집혔다.
금광요는 험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소년을 떠올랐다. 예쁘장한 얼굴이 상기되어, 조금 흥분한 듯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금광선이 그는 그토록 험하게 내쳤으면서, 모현우는 덥석 데려왔으니 응당 화가 나야 했다. 그렇지만 금광요는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이유야 뭐가 됐든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주변 눈치를 보는 모현우가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했다.
모현우가 선문은 아니래도 양갓댁 자식이니 쉽게 데려온 것이겠지. 그런 추측도 허탈하기만 할 뿐이었다. 금광요는 운심부지처로 돌아갈 예정을 늦추어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고 모현우가 편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아무튼 그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금광요는 차라리 남희신이 그 일로 저에게 보이는 마음씀에 관심이 갔다.
“형님께서도 들으신 모양이군요. 부친께서 또 다른 아들을 데려오셨습니다.”
조심성 없이 일부러 꼬집어 말하는 금광요는 태연하고 여유가 넘쳤다.
여유가 지나쳐 평소 모른체하던 태도까지 접어두고 남희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금광요가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쳐다보자 남희신은 속이 뜨끔했다.
그는 정말로 괜찮은 건지도 모른다. 자신이 계속 걱정을 하는 것이 되레 무례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한 남희신은 순순히 사과를 했다.
“그래,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용서하거라.”
그 말에 이번에는 금광요가 너무 날카롭게 굴었나 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짐짓 눈치를 살피듯 말했다.
“형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는 형님만 계시면 괜찮습니다.”
“나야 늘 네 곁에 있고말고.”
다소 농담스럽게 한 말이었고, 남희신 역시 장단을 맞춰 준 것 뿐일 터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말을 들은 금광요는 가슴이 욱신했다.
요즈음 금광요는 수진계에서 가장 팔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높은 지위에 있으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래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애타게 원하거나 집착하는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사실은 가슴 속에 깊게 맺힌 응어리가 하나 남았지만 그것은 누구도, 그 자신조차도 몰랐다. 이따금씩 가슴이 먹먹하거나 우울해지면 그저 사람이 다 그런 것이려니 했다. 삶이 시들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도 살아갈 목적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남희신과의 교분이 없었다면 금광요는 계속해서 불쾌해지다가 터져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따금씩 남희신이 촉촉하게 뿌려주는 비 덕분에 미묘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이쿠.”
사과를 깨물어 먹으면서 기분 좋게 걸어가던 위무선은 갑자기 원숭이의 정이라도 씌인 것처럼 벽에 납작 달라붙었다.
아슬아슬하게 나타난 남계인이 큰 걸음으로 걸어서 다리를 건너가 버린 후에야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부터 그의 앞에서는 가능한 고분고분하게 굴자고 마음먹었지만 아예 눈에 띄지 않는 것만은 못할 터다. 그래서 다소 웃기다 싶을 정도로 피해 다니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실수로 마주쳤다가 어찌나 따가운 눈총을 받았는지 위무선의 두꺼운 낯에도 구멍이 뚫릴 지경이었다.
사일지정 때 선부가 파괴된 것이야 대부분의 가문이 겪은 일이지만, 귀중한 장서각이 훼손되고, 긴 세월 가슴아프게 했던 청형군이 사망하고, 겨우 운심부지처를 복구하기 시작했더니 남망기가 사라졌다. 이런저런 사건을 한꺼번에 생각해 보니 꽤 죄책감이 들었다. 하물며 남망기가 자진해서 위무선을 위해 손을 더럽혔으니, 그냥 열이 받아서 저를 계편으로 두들겨 팬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대로 쪼그리고 앉은 채 남은 사과를 먹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던 위무선은 문득 등 뒤가 서늘했다. 두근대며 돌아보니 조용히 눈으로 꾸짖고 있는 남망기가 있었다.
“헤헤.”
위무선은 얼른 일어나서 사과 속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옷자락을 탁탁 털며 눈웃음을 쳤다.
그러나 남망기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발걸음을 돌려 가 버렸다.
위무선이 황급히 손을 뻗으며 부르짖었다.
“남잠, 어디 가?!”
“장서각.”
“나도 같이 가!”
위무선이 장서각에 가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남망기가 수상쩍은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오지 말라곤 않았다.
위무선은 남망기가 너무 재미없게 변해버렸다고 생각했다. 연화오에 있을 때처럼 남망기를 대동하고 술을 마시러 다니고, 놀러도 다니고 싶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도 참 많았다.
그러나 남망기는 전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온종일 운심부지처에 씌인 망령이라도 되는 듯 서책을 베끼거나, 자제들을 훈육하거나, 벌을 주고, 벌을 제대로 받고 있나 확인하고, 또 벌을 주고, 조금 사람답게 행동한다 싶으면 고금을 타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이 남망기의 본모습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곁에서 보고 있으려니 견딜 수가 없었다.
금단을 수련한다고 매일 만나긴 하지만 수업도 고소 남씨 방식의 교육 그대로라 빡빡하고 괴롭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자유로이 마주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라 위무선은 얼른 뛰어가서 그의 곁에 다가붙었다. 그래도 남망기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남망기가 아무리 답답하게 굴어도 다 받아 주고 얌전하게 굴겠다고 마음먹은 위무선이었지만, 상황이 자꾸 그의 천성을 건드렸다.
“이봐, 남잠. 네가 좋아한다던 여자는 어떻게 됐어?”
이 말에 남망기가 발을 멈추었다. 그에 위무선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았지만, 이 때 남망기의 표정은 위무선의 예상을 초월해 있었다.
순간 남망기의 눈 속에 스친 번쩍이는 빛 때문에 위무선은 그가 자신을 후려치기라도 할 줄 알았다.
남망기는 얼른 고개를 돌리더니 입술을 꾹 물고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 그를 쫓아가면서 위무선이 위험스럽게 웃었다.
‘만나지 못하느니, 차라리 만나서 얻어맞기라도 하는 게 낫지.’
“너 고백했어, 안 했어? 그것만 말해줘. 응? 응?”
“그 얘긴 안하기로 했잖아.”
남망기가 다소 거칠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가 그럴수록 위무선은 더 신이 났다.
“네가 쓸데없는 소릴 안 하는 대신 그러겠다고 했지. 그렇지만 나 이제 사술은 안 쓰잖아, 남잠.”
장서각에 다다르자 위무선은 얼른 한 발 앞서 남망기가 계단을 오르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그가 확연하게 날이 선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위무선은 능구렁이같이 시선을 흘리며 웃기만 했다.
“좋아, 말할게.”
“정말?!”
“좋아하는 여자 같은 거 없어.”
“뭐...”
남망기는 위무선을 홱 밀치고 계단을 올라 장서각 안으로 들어갔다.
“거짓말 하지 마! 남잠, 그러지 말고 말해! 우리 친구라며?”
위무선이 장서각 안까지 따라오며 따져대자 남망기는 다시 발을 멈추고 또박또박 말했다.
“좋아하는 여자 같은 거. 없다고.”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위무선은 입술을 깨물고 바닥을 탁탁 차며 조바심을 냈다. 그러다 눈을 반짝이며 손가락을 세웠다.
“그래! 너, 그럼 피진에 걸고 맹세해! 거짓말이면 그거 내가 갖는다?”
남망기는 위무선의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숨 돌릴 틈 없이 대꾸했다.
“피진에 걸고 맹세하건대 난 좋아하는 여자 따위는 없어.”
남망기가 휙 하니 자리로 가서 앉자 위무선은 맥이 풀렸다.
‘정말인가? ...그럼 염방존은 왜 그런 얘길 한 거지?’
남망기가 붓을 들고 먹물을 묻히려다가 보니 위무선이 시무룩한 얼굴로 머리를 긁고 있었다.
“위영. 대체 왜 그렇게 내가 여자를 좋아했으면 하는 거지?”
“글쎄... 뭐 그냥...”
‘장난치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다간 단박에 화를 낼 것이었다.
“음, 남잠... 너는 사람이 너무 딱딱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여자가 다 있다니 인간미가 느껴졌달까. 그래서 그래.”
되는 대로 변명하느라고 주워넘긴 말이었지만 듣다 보니 정말 그럴싸한 느낌이 들었다.
위무선은 2년 전 묘하게 다정했던 남망기가 잊혀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의 남망기가 정상이었지만. 어쨌든 재회한 후에는 예전으로 돌아간 듯 쌀쌀맞기만 하니, 아무리 그가 해준 일들을 떠올려 보아도 자신이 없어졌다.
하지만 남망기에게도 정이 있어서 여인에게 줄 마음이 있다면. 저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뭐야?’
그까지 생각한 위무선이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너무 비참한데?’
남망기는 알아들을 수가 없는 위무선의 말은 흘려버린 채, 단숨에 서너 장의 고시를 필사해 내려갔다. 그러다 문득 공기를 통해 끼치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위무선이 자신의 말액 끄트머리를 잡고 홱 당기는 모습이 보였다. 남망기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말액을 손에 넣은 위무선이 잽싸게 거리를 벌렸다.
“위영!”
옛날처럼 검을 쥐고 덤벼들어 온다면 투닥거리다 마음이 풀릴 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었는데, 남망기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부르기만 할 뿐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놀란 사람은 장서각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다가 이 장면을 목격한 남희신이었다.
“위공자!”
“...택무군.”
하필 이렇게 채신머리 없는 장난을 치던 걸 남종주에게 들키다니. 위무선은 머쓱해하며 슬슬 옆걸음으로 돌아가 말액을 남망기에게 건넸다.
남망기는 말없이 말액을 이마에 매었고, 그거면 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남희신이 엄하게 꾸짖기 시작했다.
“위공자, 전에도 말하려고 했지만, 고소 남씨의 말액은 타인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형장...”
“가만 있거라, 망기. 만약 위공자가 이러는 걸 숙부님께서 보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위무선은 남희신이 정색을 하고 나무라자 그만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말액에 무슨 의미 같은 게 있는 줄은 전연 모른다. 예전에 남망기의 말액을 건드릴 때마다 화내는 모습을 보아도, 그가 원체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고 그런 줄 알았지 말액 자체에 원인이 있을 거라곤 생각치 못했다.
그런데 남희신이 말했다.
“위공자. 말액은 아무나 만지면 안 되는 건 물론, 타인의 앞에서 함부로 풀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은... 그의 부인 뿐입니다. 위공자가 망기와 친하다는 걸 알지만...”
“네네네, 물론 부인은 아니죠!”
위무선이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마구 휘둘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손대지 않겠어요! 몰랐어요, 정말로!”
남희신은 한숨을 쉬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며 장서각을 나갔다.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위무선은 남망기의 얼굴을 보기가 멋쩍었고, 남망기 역시 눈을 내리깐 채 말이 없었다.
“......미안해, 남잠.”
“몰랐으니까 괜찮아.”
‘당연히 몰랐지! 네가 말을 안 하니까!’
말액이 그런 건 줄도 모르고 마구 건드렸던 과거가 떠오르자 위무선은 미안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가만히 선 채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더니 남망기의 담담한 목소리가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아직도 나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니 <상의편>을 스무 번 베껴. 아까 품행이 단정하지 못했으니까.”
“뭐라고?!”
“‘길을 걸으며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불량한 자세로 앉으면 안 된다.’”
잇달아 줄줄줄 읊고 난 남망기가 나가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 무표정하게 쳐다보았다.
위무선은 이도저도 못하다가 ‘끄응’하고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며 서안 앞에 주저앉았다.
먹을 북북 갈며 그는 참으로 실속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희신광요 망기무선
(11) (12) (13) (14) (15)
위무선은 남희신의 지도 아래 꾸준한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래도 쉽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남희신이 말할 때는 산만하게 흘려 듣는 것만 같은데, 다음 날 확인해 보면 이미 뭐든 다 알고 있는 상태였다. 결과적으로는 잘 배우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딘가 농락당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서 아마 남희신이 아니었다면 속병이 났을지도 몰랐다.
오늘은 책을 통해 이론을 배우는 날이었기에 위무선은 지루하게 서안 위에 엎어져서 남희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꼬마 적에 배웠던 걸 굳이 다시 배워야 하나? 하여튼 남씨들이 하는 일은 융통성이 없다니까.’
“똑바로 앉아.”
갑자기 냉랭한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남잠?”
돌아보니 장대같이 선 남망기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무선이 반가워하며 말했다.
“네가 웬일이야? 택무군은?”
“영맥이 전부 자리를 잡았으니 더이상 형장께 수고를 끼칠 필요는 없어.”
그가 위무선을 스쳐 가더니 넓고 무거운 서안 뒤에 앉았다. 양 손으로 옷자락을 펼치는 몸짓에서 진중한 위엄이 묻어났다.
“너한테 배우라고?!”
위무선의 외마디 비명에 답을 하듯 서책 하나가 날아와서 서안 위에 떨어졌다.
“외워.”
위무선이 어이없어하며 뒤져보니 역시 어릴 때 다 배웠던 책이었다.
“남잠, 나더러 이런 거나 보라고? 설마 내가 이딴 것도 모를까 봐? 완전 시간낭비야.”
남망기는 소매에서 작은 책자를 꺼내며 눈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럼 외워 봐.”
“윽...”
뭐든 알 만큼 다 알긴 하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잊혀지게 마련. 통째로 암기하라고 하면 물론 할 수가 없다.
“아우...”
펄럭펄럭 책장을 넘겨 보니 지금의 자신에겐 퀘퀘하고 쓸모 없는 목차가 한가득 펼쳐졌다.
“나 원 참. 요즘 누가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한대. 이딴 건 그냥 이렇게...”
투덜거리며 공중에 주문을 그리는 시늉을 하던 손가락이 차가운 시선에 딱 멈추었다.
“알았어, 잘못했어! 제가 잘못했어요, 남 선생님!”
위무선이 책을 펼쳐서 남망기의 눈총을 가리며 웃었다.
엄하게 구는 남망기는 꼭 수학 시절의 벽창호가 되돌아온 듯했다.
이제는 그 때처럼 마음대로 놀려줄 수도 없게 되었지만, 그 시절이 그립지는 않았다.
사실은 놀릴 필요도 없어진 거다. 일부러 건드리며 주의를 돌려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남망기는 저를 잔뜩 지켜보고 있으니까.
금광요가 돌아왔다는 말을 전해 들은 남희신은 그가 한실로 오기도 전에 서둘러 찾아갔다. 얼마 전 금광선이 이례적으로 서자를 받아들여 금린대로 데리고 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금광요가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염려스러웠던 것인데, 옷을 갈아입고 처소를 나오는 그는 평소처럼 여유있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길을 걸어올라갔다.
남희신은 금광요가 워낙에 감정을 잘 숨기니 속이 궁금했으나, 거북한 얘기를 먼저 꺼내기 어려웠다.
“그래, 집안에는 별 일 없고?”
나름대로 에둘러 말한다고 한 것이었지만 남희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금광요는 금방 눈치채고 말았다.
최근 금광선은 무슨 변덕이었는지 모씨라는 가문에서 난 아들을 데려왔다. 이 일로 당연히 금부인이 화를 내며 집 안이 발칵 뒤집혔다.
금광요는 험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소년을 떠올랐다. 예쁘장한 얼굴이 상기되어, 조금 흥분한 듯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금광선이 그는 그토록 험하게 내쳤으면서, 모현우는 덥석 데려왔으니 응당 화가 나야 했다. 그렇지만 금광요는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이유야 뭐가 됐든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주변 눈치를 보는 모현우가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했다.
모현우가 선문은 아니래도 양갓댁 자식이니 쉽게 데려온 것이겠지. 그런 추측도 허탈하기만 할 뿐이었다. 금광요는 운심부지처로 돌아갈 예정을 늦추어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고 모현우가 편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아무튼 그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금광요는 차라리 남희신이 그 일로 저에게 보이는 마음씀에 관심이 갔다.
“형님께서도 들으신 모양이군요. 부친께서 또 다른 아들을 데려오셨습니다.”
조심성 없이 일부러 꼬집어 말하는 금광요는 태연하고 여유가 넘쳤다.
여유가 지나쳐 평소 모른체하던 태도까지 접어두고 남희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금광요가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쳐다보자 남희신은 속이 뜨끔했다.
그는 정말로 괜찮은 건지도 모른다. 자신이 계속 걱정을 하는 것이 되레 무례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한 남희신은 순순히 사과를 했다.
“그래,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용서하거라.”
그 말에 이번에는 금광요가 너무 날카롭게 굴었나 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짐짓 눈치를 살피듯 말했다.
“형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는 형님만 계시면 괜찮습니다.”
“나야 늘 네 곁에 있고말고.”
다소 농담스럽게 한 말이었고, 남희신 역시 장단을 맞춰 준 것 뿐일 터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말을 들은 금광요는 가슴이 욱신했다.
요즈음 금광요는 수진계에서 가장 팔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높은 지위에 있으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래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애타게 원하거나 집착하는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사실은 가슴 속에 깊게 맺힌 응어리가 하나 남았지만 그것은 누구도, 그 자신조차도 몰랐다. 이따금씩 가슴이 먹먹하거나 우울해지면 그저 사람이 다 그런 것이려니 했다. 삶이 시들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도 살아갈 목적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남희신과의 교분이 없었다면 금광요는 계속해서 불쾌해지다가 터져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따금씩 남희신이 촉촉하게 뿌려주는 비 덕분에 미묘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이쿠.”
사과를 깨물어 먹으면서 기분 좋게 걸어가던 위무선은 갑자기 원숭이의 정이라도 씌인 것처럼 벽에 납작 달라붙었다.
아슬아슬하게 나타난 남계인이 큰 걸음으로 걸어서 다리를 건너가 버린 후에야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부터 그의 앞에서는 가능한 고분고분하게 굴자고 마음먹었지만 아예 눈에 띄지 않는 것만은 못할 터다. 그래서 다소 웃기다 싶을 정도로 피해 다니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실수로 마주쳤다가 어찌나 따가운 눈총을 받았는지 위무선의 두꺼운 낯에도 구멍이 뚫릴 지경이었다.
사일지정 때 선부가 파괴된 것이야 대부분의 가문이 겪은 일이지만, 귀중한 장서각이 훼손되고, 긴 세월 가슴아프게 했던 청형군이 사망하고, 겨우 운심부지처를 복구하기 시작했더니 남망기가 사라졌다. 이런저런 사건을 한꺼번에 생각해 보니 꽤 죄책감이 들었다. 하물며 남망기가 자진해서 위무선을 위해 손을 더럽혔으니, 그냥 열이 받아서 저를 계편으로 두들겨 팬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대로 쪼그리고 앉은 채 남은 사과를 먹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던 위무선은 문득 등 뒤가 서늘했다. 두근대며 돌아보니 조용히 눈으로 꾸짖고 있는 남망기가 있었다.
“헤헤.”
위무선은 얼른 일어나서 사과 속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옷자락을 탁탁 털며 눈웃음을 쳤다.
그러나 남망기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발걸음을 돌려 가 버렸다.
위무선이 황급히 손을 뻗으며 부르짖었다.
“남잠, 어디 가?!”
“장서각.”
“나도 같이 가!”
위무선이 장서각에 가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남망기가 수상쩍은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오지 말라곤 않았다.
위무선은 남망기가 너무 재미없게 변해버렸다고 생각했다. 연화오에 있을 때처럼 남망기를 대동하고 술을 마시러 다니고, 놀러도 다니고 싶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도 참 많았다.
그러나 남망기는 전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온종일 운심부지처에 씌인 망령이라도 되는 듯 서책을 베끼거나, 자제들을 훈육하거나, 벌을 주고, 벌을 제대로 받고 있나 확인하고, 또 벌을 주고, 조금 사람답게 행동한다 싶으면 고금을 타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이 남망기의 본모습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곁에서 보고 있으려니 견딜 수가 없었다.
금단을 수련한다고 매일 만나긴 하지만 수업도 고소 남씨 방식의 교육 그대로라 빡빡하고 괴롭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자유로이 마주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라 위무선은 얼른 뛰어가서 그의 곁에 다가붙었다. 그래도 남망기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남망기가 아무리 답답하게 굴어도 다 받아 주고 얌전하게 굴겠다고 마음먹은 위무선이었지만, 상황이 자꾸 그의 천성을 건드렸다.
“이봐, 남잠. 네가 좋아한다던 여자는 어떻게 됐어?”
이 말에 남망기가 발을 멈추었다. 그에 위무선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았지만, 이 때 남망기의 표정은 위무선의 예상을 초월해 있었다.
순간 남망기의 눈 속에 스친 번쩍이는 빛 때문에 위무선은 그가 자신을 후려치기라도 할 줄 알았다.
남망기는 얼른 고개를 돌리더니 입술을 꾹 물고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 그를 쫓아가면서 위무선이 위험스럽게 웃었다.
‘만나지 못하느니, 차라리 만나서 얻어맞기라도 하는 게 낫지.’
“너 고백했어, 안 했어? 그것만 말해줘. 응? 응?”
“그 얘긴 안하기로 했잖아.”
남망기가 다소 거칠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가 그럴수록 위무선은 더 신이 났다.
“네가 쓸데없는 소릴 안 하는 대신 그러겠다고 했지. 그렇지만 나 이제 사술은 안 쓰잖아, 남잠.”
장서각에 다다르자 위무선은 얼른 한 발 앞서 남망기가 계단을 오르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그가 확연하게 날이 선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위무선은 능구렁이같이 시선을 흘리며 웃기만 했다.
“좋아, 말할게.”
“정말?!”
“좋아하는 여자 같은 거 없어.”
“뭐...”
남망기는 위무선을 홱 밀치고 계단을 올라 장서각 안으로 들어갔다.
“거짓말 하지 마! 남잠, 그러지 말고 말해! 우리 친구라며?”
위무선이 장서각 안까지 따라오며 따져대자 남망기는 다시 발을 멈추고 또박또박 말했다.
“좋아하는 여자 같은 거. 없다고.”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위무선은 입술을 깨물고 바닥을 탁탁 차며 조바심을 냈다. 그러다 눈을 반짝이며 손가락을 세웠다.
“그래! 너, 그럼 피진에 걸고 맹세해! 거짓말이면 그거 내가 갖는다?”
남망기는 위무선의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숨 돌릴 틈 없이 대꾸했다.
“피진에 걸고 맹세하건대 난 좋아하는 여자 따위는 없어.”
남망기가 휙 하니 자리로 가서 앉자 위무선은 맥이 풀렸다.
‘정말인가? ...그럼 염방존은 왜 그런 얘길 한 거지?’
남망기가 붓을 들고 먹물을 묻히려다가 보니 위무선이 시무룩한 얼굴로 머리를 긁고 있었다.
“위영. 대체 왜 그렇게 내가 여자를 좋아했으면 하는 거지?”
“글쎄... 뭐 그냥...”
‘장난치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다간 단박에 화를 낼 것이었다.
“음, 남잠... 너는 사람이 너무 딱딱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여자가 다 있다니 인간미가 느껴졌달까. 그래서 그래.”
되는 대로 변명하느라고 주워넘긴 말이었지만 듣다 보니 정말 그럴싸한 느낌이 들었다.
위무선은 2년 전 묘하게 다정했던 남망기가 잊혀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의 남망기가 정상이었지만. 어쨌든 재회한 후에는 예전으로 돌아간 듯 쌀쌀맞기만 하니, 아무리 그가 해준 일들을 떠올려 보아도 자신이 없어졌다.
하지만 남망기에게도 정이 있어서 여인에게 줄 마음이 있다면. 저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뭐야?’
그까지 생각한 위무선이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너무 비참한데?’
남망기는 알아들을 수가 없는 위무선의 말은 흘려버린 채, 단숨에 서너 장의 고시를 필사해 내려갔다. 그러다 문득 공기를 통해 끼치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위무선이 자신의 말액 끄트머리를 잡고 홱 당기는 모습이 보였다. 남망기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말액을 손에 넣은 위무선이 잽싸게 거리를 벌렸다.
“위영!”
옛날처럼 검을 쥐고 덤벼들어 온다면 투닥거리다 마음이 풀릴 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었는데, 남망기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부르기만 할 뿐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놀란 사람은 장서각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다가 이 장면을 목격한 남희신이었다.
“위공자!”
“...택무군.”
하필 이렇게 채신머리 없는 장난을 치던 걸 남종주에게 들키다니. 위무선은 머쓱해하며 슬슬 옆걸음으로 돌아가 말액을 남망기에게 건넸다.
남망기는 말없이 말액을 이마에 매었고, 그거면 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남희신이 엄하게 꾸짖기 시작했다.
“위공자, 전에도 말하려고 했지만, 고소 남씨의 말액은 타인이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형장...”
“가만 있거라, 망기. 만약 위공자가 이러는 걸 숙부님께서 보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위무선은 남희신이 정색을 하고 나무라자 그만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말액에 무슨 의미 같은 게 있는 줄은 전연 모른다. 예전에 남망기의 말액을 건드릴 때마다 화내는 모습을 보아도, 그가 원체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고 그런 줄 알았지 말액 자체에 원인이 있을 거라곤 생각치 못했다.
그런데 남희신이 말했다.
“위공자. 말액은 아무나 만지면 안 되는 건 물론, 타인의 앞에서 함부로 풀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은... 그의 부인 뿐입니다. 위공자가 망기와 친하다는 걸 알지만...”
“네네네, 물론 부인은 아니죠!”
위무선이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마구 휘둘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손대지 않겠어요! 몰랐어요, 정말로!”
남희신은 한숨을 쉬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며 장서각을 나갔다.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위무선은 남망기의 얼굴을 보기가 멋쩍었고, 남망기 역시 눈을 내리깐 채 말이 없었다.
“......미안해, 남잠.”
“몰랐으니까 괜찮아.”
‘당연히 몰랐지! 네가 말을 안 하니까!’
말액이 그런 건 줄도 모르고 마구 건드렸던 과거가 떠오르자 위무선은 미안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가만히 선 채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더니 남망기의 담담한 목소리가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아직도 나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니 <상의편>을 스무 번 베껴. 아까 품행이 단정하지 못했으니까.”
“뭐라고?!”
“‘길을 걸으며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불량한 자세로 앉으면 안 된다.’”
잇달아 줄줄줄 읊고 난 남망기가 나가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 무표정하게 쳐다보았다.
위무선은 이도저도 못하다가 ‘끄응’하고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며 서안 앞에 주저앉았다.
먹을 북북 갈며 그는 참으로 실속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희신광요 망기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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