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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8 23:44
1~20 링크는 이전편에 (너무 길어져서 자름)
21. 샹크스의 결단이: https://hygall.com/571782137
22. 크로커다일의 위안이: https://hygall.com/572283022
23. 혼고의 걱정이: https://hygall.com/572633687
24. 버기의 혼돈이: https://hygall.com/572896470
25. 샹크스의 운명이: https://hygall.com/57290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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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지부진한 촌극을 뭐라 불러야 하지? 크로커다일은 잔뜩 부상당한 배를 잡고 몽롱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 내일 신문 헤드라인이 꽤나 볼만하겠다고. 보나마나 사황 두 놈의 격돌, 그리고 광대가 승리했다는 간단한 내용밖에는 쓸 수 없는 것이 해군의 입장이겠다만은, 다른 해적 무뢰배 놈들이 그 헤드라인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모두의 관심을 이끌어내던 절대적인 존재를 꺾어내는 새로운 샛별의 등장은 그 이전의 왕을 꾸준히 지켜보던 놈들에게는 최적의 기회였다. 그들이 품고 있던 감정의 존재가 경외감이든, 존경심이든, 호전성이든, 승부욕이든, 하다못해 복수심이든. 제가 경험했던 '그것'을 이 망할 광대에게 온전하게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이 광대는 사황이라는 것 자체도 원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스스로 원한 일이었든 아니든 간에, 이 망할 모래 폭풍 안으로 끌어들인 건 자신이었으니 책임도 자신이 져야 했다.

- 이봐, 정신 차릴 수 있나? 

우스꽝스러운 쇼 이후 공격할 생각도 잊어버린 채로 온통 웅성거리던 빨간머리 해적단이 축 늘어진 제 선장을 물에서 건져내 후퇴하고, 사막의 대부는 그동안 긴장하고 있던 몸을 축 늘어트렸다. 제기랄, 이 망할 길드는 애초부터 그 놈의 크루들과는 상대조차가 안 됐다고. 저 쪽은 사황 중에서도 가장 어린 나이에 사황이 되어 '가장 그 자리를 오래 유지한' 남자였으니 당연한 이야기이기는 했으나 최고 간부를 제외하고서도 이 정도의 격차라. 군벌의 우두머리는 흰수염에게 도전했던 그 어린 날의 감각을 20여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다시 느낀 셈이었다. 그 살의를 마주 대하는 것만으로도 모공이 성연하고 식은땀이 흐르던 -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게 되던 그 날 이후로. 그러나 우습게도 이번에는 두렵지 않았다. 그런 남자와 죽음을 걸고 정면으로 맞대결할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제 품 안에 있으니까. 그것이 제 품 안에 머리를 박고 괜찮을 거라고 다정하게 속삭였다 - 광대 자신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강요를 밟아내면서까지. 그리고 그것이 그 왕을 우습게 만들었다고, 총에 맞은 이후 어느 정도 아물던 상처를 밟아버린 그 발자국마저도. 

- ... 아아, 그래. 아직은.
- 그렇다면 지시해라, 악어. 
- ... 지시?
- 늘 그렇듯이 지시하는 건 자네의 일, 이행하는 것이 나의 일이니까.

무엇이 되었든 네가 원하는 대로 이뤄 주겠다. 해병 사냥꾼이자 매의 눈, 그 붉은 머리조차도 상대하기 까다로워하는 남자. 대해적 시대에 강함으로만으로 쳐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가뿐하게 들어올 이 남자와 안 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같잖지도 않는 영웅놀이에 바라지도 않았던 모법생 놀이까지 해가며 숨죽이고 살던 20년, 그 안의 8년이 채 못 되는 정도가 이 무지막지한 남자와 엮여 있었으니까. 무료한 인생을 바라는 주제에 은근하게 누구보다도 사건사고를 만드는 것에 능한 사람이 이 남자, 매의 눈이었다. 그러니 애초에 크로커다일은 생각했던 셈이었다 - 사건사고를 만드는 것에 능한 놈과 그 운에 편승하는 것에 능숙한 놈에 자신. 크로스길드는 그 구성부터가 이미 글러먹었었다고. 조용히 준비해오던 일이 전복되고 온 세상이 시끄러워진 만큼 스스로도 시끄러워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꼭 제가 우두머리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나 전면에 드러날 실력자가 있어야 해. 그렇다면 그건 누굴까. 역시 도플라밍고? 아니면-? 시가를 뻑뻑 피우고 다즈의 보고를 들으며, 사막의 대부는 딱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제 와서 되돌아봐도 가능성은 사실상 하나 뿐이었기에.
 
- 왜 하필 매의 눈이지?
- ... 난 시간 낭비를 싫어해.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 
- 네 놈 그 남자랑 손 잡을 생각이잖아. 
- 애초에 무슨 상관이지? 네 일이 아닐 텐데.

크로커, 난 그 남자가 싫어. 그 노란 눈이 특히. 뭐 같은 새면서 동족혐오라도 하나. 끔찍한 웃음소리로 웃어대던 도플라밍고의 발걸음이 가까이 붙었다. 금세 손목이 붙들리고 금발 머리가 낮게 속삭였다 - 그 샛노란 눈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는 놈이 바로 그 매지. 그 놈이랑 어울리다가는 언젠간 크게 뒤통수를 맞게 될 걸. 매는 발톱을 드러낸 채로 다니는 걸 기억해야 할 거야. 당시에는 코웃음만 치고 말았으나, 우습게도 그래서 사막의 대부는 사실 꽤 오랜 기간 생각했던 셈이었다 -  그 날카로운 노란 눈을 똑바로 마주하면 도대체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하고. 그리고 이것이 그 순간이었다. 

- ... 자네는 사업가지, 나는 검사고.
- ... 뭐?
- 검을 걸고 약속하지, 네 소망을 이뤄 주겠다고.

그러니까 명령해라. 그가 들고 있던, 적의 피인지 그의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잔뜩 묻은 요루가 제 앞 바닥에 깊이 박혔다. 크하하, 미친 새끼. 그도 자신도 우습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제 인생에서 나타나는 무료함을 떨쳐 버리려는 생각이었다면 그의 선택은 꽤 정확한 셈이었다, 자신은 늘 누군가가 보여주는 작은 호의에 지나치게 약하니까. 상처 입은 몸에 열이 자꾸만 오르는지 눈 앞이 몽롱했다. 머리가 자꾸만 삐거덕 소리를 내며 돌았다. 어쩔 거냐, 크로커다일. 어쩔 거냐고 - 생각해, 당장 생각해 내야 해. 웃기지도 않는 이 길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아아, 애초에 그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딱 하나 뿐이었다. 빨간 머리가 과연 정말로 '죽었'을까? 아니, 그 놈이라면 그럴 리가 없어. 그것은 일종의 쇼였다. 자신에게 화난 것이 있다면 이번 한 번으로 풀어달라는 일종의 항거라고. 강자가 보여줄 수 있는 단 한번의 관용이었으니 그는 죽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 ... 우리를 마저 죽이려고 들겠지.  

광대를 빼돌리는 일이었다. 그래, 광대를 빼돌리는 일. 그것이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애초에 빨간 머리는 광대를 죽일 생각조차도 없을 테니까. 그가 죽여야 하는 건 자신, 그리고 제 편을 들겠다고 결정한 저 망할 매의 눈이었다. 목표는 확실해, 그렇다면 미끼도 확실하게 제가 되어야 했다. 어떤 위험이 있어도 저 광대에게는 미룰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숨통을 끊어주지, 잠복한 채로 사냥감이 덫에 걸리길 기다릴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 그의 확실한 장기였다. 정말 만약, 1%의 가능성으로 그 붉은 머리가 정말 죽었다면 - 그래도 그의 잔당들이 복수랍시고 노리게 되는 건 역시 광대라기보다는 이 쪽. 그러니까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처음부터 단 하나뿐이었다. 매의 눈을 제 파트너로 선택했던 것과 같이.

- 찣어지자. 매의 눈, 너는 광대랑 가라. 
- 나는 너랑 간다.
- ... 뭐?
- 보호가 필요한 건 네 쪽이다. 이의 같은 건 안 받아. 
- ... 다즈! 광대와 가라. 

매의 눈은 쓸데 없이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빨랐다. 도플라밍고를 거절한 이유가 그래서였는데 새 파트너도 저래서야. 혀를 끌끌 차는 사이 가까이 다가온 다즈 보네스가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시야를 맞추었다. 예,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래, 역시 부하라면 이렇게 질문 없이 따르는 것이 적격이었는데도 - 우습게도 저 망할 검사한테는 이상할 정도로 화가 나지 않았다. 애초에 이 둘은 카테고리가 달랐던 걸지도 모르겠는지도. 당장 출발해라, 여비는 가지고 있어? 보조로는 갤디노를 데리고 가, 뉴 스파이더스 카페로 가라. 거기서 미스 골든 위크를 찾아, 그 녀석이 뭐든지 해결해줄 거다.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제 충실한 킬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뒤의 MR.3이 제 쪽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녀석들하고 아직 연락하셨던 겁니까? 멍청하기는, 그 놈들이 그 망할 카페 세울 때 쓸 만한 돈을 누가 대줬다고 생각하는 거야? 점조직이란 애초에 그런 것이었다 - 오히려 점으로 분산되어 있기에 더 분산되어 있지, 그러니 결합할 선을 긋는 순간 고정된 패밀리들보다 더 많은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서로 결합할 명분이나 약간의 감정만 있다면 모든 것은 그 무엇보다도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었다고. 이제 선을 그어 불을 붙일 때였다는 걸 이 지략가는 정확하게 판단한 셈이었다.    

- 혼자는 싫어, 너도 어디선가 또 죽어버리려고 그러는 거지? 
- ... 아니,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해라. 
- ... 너는 어쩌려고 그래?
- 나는 괜찮을 거야,

내가 가장 안전한 곳을 아니까. 광대가 품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올려 낮게 속삭였다. 너를 잃기는 싫어, 무섭단 말이야. 눈물도 많고 겁도 많은 주제에 블러핑을 워낙 잘하는 녀석이라 솔직한 모습은 꽤 처음이었던 셈이라 크로커다일은 만족스럽게 울었다. 그런 놈이 저를 위해서 무엇을 감수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악어는 이빨을 드러내고 포효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수면 아래로 몸통을 감췄다. 그는 이대로 느긋하게 기다릴 셈이었다 -  그 겁 없는 먹이가 걸려들을 때까지. 갈디노를 따라가, 알았나? 네 서커스단도 데려가도록 하고. 광대가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갈디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가, 뒤를 돌아 제 이름을 크게 외쳤다. 곧바로 이어지는 급하게 다가오는 발걸음, 그리고는 화장하지 않은 입술로 제 이마에 성스럽게 입맞추었다. 제 평균보다 조금 높은 뜨거운 입술이 무운을 빌고, 재회를 소망하면서.

- 매의 눈, 너는 나랑 갈 데가 있다. 후회 안 하겠나?
- 내 의견은 변함이 없다, 지옥까지 같이 가주지.

그러면 출발하자고, 지옥까지는 영 갈 길이 머니까. 저 의사 놈이나 같이 태워, 가는 길에 뒤지면 좀 곤란하거든.  그렇게 바다에 몸을 담굴 수 없는 바다 악어는 늪을 향해 발걸음을 다시 떼기 시작했던 셈이었다. 누군가를 목표로 한 잠복을 시작할 때가 되었으니까. 

*
아 진짜 이거 괜찮..나.. 

샹버기 크로버기 
2023.11.18 23:47
ㅇㅇ
모바일
내 센세 오셨다흐흑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
[Code: b618]
2023.11.19 00:12
ㅇㅇ
모바일
진짜 너무 재밌다... 미호크 칼박고 맹세하는거나 크로쨩 머리 굴리는거나 ㄹㅇ 미쳤다... 센세는 나의 라프텔이고 한조각이야....
[Code: 6da5]
2023.11.19 00: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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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나봐 어떻게 점점 재밌어질수가?내 센세 천재신건 알았지만 경이롭습니다ㅠㅠ 그래 샹크스가 죽지는 않았을테니ㅠㅠㅠㅠ아이고 어떡해 결국은 맞붙을 날이 오기는 오겠지요ㅠㅠㅠㅠ크로커와 샹크스 버기 미호크까지 모두 사랑하는 입장에서 양가감정 오진다 ㄹㅇ ㅠㅠㅠㅠ 바닥에 요루 꽂고 맹세하는 미호크 실화입니까ㅠㅠㅠ울면서 이별하는 크로버기 애절해서 죽을거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
[Code: 1e9a]
2023.11.19 00: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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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이 대작.. 센세... 미쳤다...
[Code: 0ec3]
2023.11.19 01: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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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짜 관계성 미쳤다... 중간중간 도피 언급되는것도 너무 좋고 미호크랑 크로커 관계도 존나 미쳤고 버기랑 크로커다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존나 미친사랑... 너무 맛있다.... 그치만 샹크스도 너무 좋은데 센세 모두가 행복할순 없는걸까요ㅠㅠㅠㅠㅠㅠ
[Code: 419e]
2023.11.19 01:49
ㅇㅇ
모바일
진짜...미쳤다 이 대작......
[Code: 1de2]
2023.11.19 10:55
ㅇㅇ
모바일
센세 글 안 본 뇌 삽니다. 선제시 받아요ㅠㅠㅠㅠ 센세의 캐해석이 놀랍다 혹시 원피스 세계관에서 거주하신 적이 있나요ㅠㅠㅠ 라프텔로 항해 왜 하냐 원피스 여기에 있는데ㅠㅠㅠㅠ
[Code: 7625]
2023.11.19 13: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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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냐뇨? 이게 제 원피스인데 무슨 말씀이시죠
[Code: 283b]
2023.11.19 13: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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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는 나의빛 내가 센세 글 보는 시간만 기다린다는거 알아줘... 크로버기 행복할수 있겠지...? 그치만 샹크스도 마음에 걸리고ㅠㅠㅠ
[Code: 85c7]
2023.11.19 14: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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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캐해 갓벽임
[Code: 5f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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