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90881932
view 8168
2024.04.13 23:43
난데없는 해고
눈떠보니 나체
발정기 악당놈
IF외전-잡아먹힌 밥
인간변신이유
피닉스와만남
둘의술래잡기

#행맨밥으로호위기사밥냥이  


 

밥은 메이저 도련님의 정식 호위기사로 신의와 양심을 마음속에 가득 품은, 기사보다 기사도가 바로 선 고양이었다. 기사도가 바로 선 호위기사답게 밥은 늘상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자신이 기여할만한 일을 찾아다니곤 했다.

 

요즘 밥이 새롭게 추가한 업무는 주방 뒷문에 쌓인 밀가루 포대 위에서 지나가는 인간들을 감독하기였다. 이곳은 밥이 새로운 업무를 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종종 식당 윗층에 있는 방에 머무는 메이저 주인님을 구경할 수도 있고. 온종일 종종거리며 뒷문을 들락날락거리는 시종들을 보는 일은 모름지기 산만한 인간보다는 끈기있는 고양이에게 훨씬 어울리는 일이다. 밥은 호위를 서며 길러온 인내심을 십분 발휘해 훌륭하게 제 몫을 해내었다.

오늘도 뜨거운 햇볕에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을 성실히 감독하고 있었다. 몸이 찌뿌둥해 옆으로 뒤집으며 기지개를 켜는데, 무례한 손가락 하나가 밥의 옆구리를 푹 찌르며 투덜거렸다.

 

“너! 포대에 구멍내고 땅콩 까먹었지! 너 때문에 나까지 혼났잖아!”

 

자꾸 그렇게 훔쳐먹으면 도둑 고양이라고 부를거야! 손가락의 주인은 결례를 사과하기는커녕 실컷 으름장을 놓고는 쿵쿵대며 가버렸다. 졸지에 잔뜩 혼이 난 밥만 무례한 행동에 혼자 펄펄 뛰다 포대 아래로 고꾸라지는 수모까지 겪고 말았다. 밥이 아무리 땅콩을 좋아한들 몰래 포대에 구멍을 내고 땅콩을 훔쳐먹었다니, 그런 모욕이 어딨냔 말야! 다음에 만나면 혼쭐을 내주고 무례를 사과할 때까지 예절 교육을 매섭게 시켜 주리라. 밥은 이를 갈며 다짐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밥은 그 이후로도 며칠 내내 지나가는 시종들에게 붙잡혀 코를 눌리거나 머리를 손끝으로 쥐어박히기 일쑤였다. 심지어 몇몇 까불거리는 무례한 인간들은 밥에게 도ㄷ… 아무튼 무례한 칭호를 붙이며 놀리기까지 했다. 아주, 모욕적이고, 치욕스럽고, 분개하고 또 통탄할 만한 일이었다!

누명이 끝없이 지속되자 고양이로 돌아다닐 마음이 조금씩 작아지더니 드디어 싹 사라지고야 말았다. 마지막으로 텅 빈 지붕 위에서 털을 싹싹 핥으며, 밥은 당분간은 고양이로 지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털도 없는 인간들에게는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하니까.

 

 

 

고양이로 변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했다. 부엌과 창고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거다. 아직 고양이로 변하는 방법은 그것밖에는 몰랐다. 피닉스 마법사님이 부엌문에 결계라도 걸어둔 걸까? 아무튼 부엌쪽에 얼씬도 하지 않으니 밥은 하루종일 인간 상태로 있을 수 있었다. 아침에도, 낮에도, 오후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그리고 그 말은 밥이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는 얘기기도 했다. 성 안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고양이로 변하는 건 사절이었다. 모두 빗자루를 들고 밥을 쫓아와 잡아버리면 큰일이니까. 모름지기 인간은 고양이보다 나약하고 모험심이 모자란 법이다. 밥은 방 안의 침대 위에서 뒹굴며 이 억울한 누명-인간 생활을 감내하기로 했다. 아마 그렇게 어렵지도 않으리라.

 

“베이비, 요새 얌전히 있네?”

 

그 덕에 신난 건 악당놈뿐이다. 악당놈은 눈을 떠도, 잠시 방을 들렀을 때도,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도 계속 밥이 있자 눈에 띄게 즐거워했다. 첫 날은 들어올 때마다 놀라더니 다음 날은 확인하듯 시침이 바뀔 때마다 고개를 내밀었고, 그 다음 날부터는 나가기는커녕 아예 밥의 허리에 매달려 늘어져 같이 놀자고 졸라댔다.

 

"안 나가? 요?"

"왜, 나갔으면 좋겠어?"

"악... 단장님은 성을 지켜야지...요. 단장님이 안 나가면 성문은 누가 지켜? 맷돼지나 도적들이 성을 습격하면? 보석을 노리는 도둑도 있고, 또 만약 성주의 목숨을 노리는 반역자가 나오면...!"

"그런 것쯤이야 다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 마. 내가 나가면 넌 누가 지켜줘?"

"난 메이저 주인님도 지킨 호위기사...도 지킨 사람이야!요. 전혀, 하나도 문제 없어!요."

“문제 없긴. 그러고 보니... 그 호위기사라던 고양이가 요새 안보이던데, 아는 거 있어?”

"나? 아니? 몰라! 그러니까... 모르겠어."

 

밥이 놀라 악당놈의 품을 빠져나오려 하자 등 악당놈의 팔이 밥의 허리를 더 꽉 끌어안았다.

 

“왜 그렇게 놀라? 네가 잡아먹기라도 했어?”

"아아니? 설마, 고양이를... 먹어?“

“안 먹어. 잡아봤자 고기도 얼마 안나오는 걸 굳이? 그 놈이 요새 부엌에서 영 말썽을 부리는 것 같아서.“

 

그 말에 악당놈의 손가락을 떼어내던 밥이 동작을 멈추고 꾸물거리며 몸을 악당놈에게로 틀었다. 밥은 악당놈의 얼굴을 유심히 보며 물었다.

 

“그 고양이가 범인인 것 같아?”

“글쎄. 넌 어떤데?”

“아니야.”

“왜?”

 

내가 안 했으니까. 라고 말하기에는 중간에 꺼낼 수 없는 말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밥은 에둘러 다른 이유들을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그 고양이는 비열하게 남의 것을 훔치지 않고 이제는 메이저 주인님이 음식을 주며, 그렇게 허술하게 포대에 구멍을 내지도 않음을. 그리고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악당놈의 평가를 기다렸다.

 

“네가 그렇다면 그 고양이 짓은 아니겠네.”

“그렇지?”

 

안 그러려고 해도 악당놈의 말에 가슴에 민들레꽃이 들어찬 것처럼 간질간질 부풀어올랐다. 악당놈은 조금씩 들썩거리는 밥을 가만히 보더니 나지막히 물었다.

 

“우리가 걔를 키울까?”

“응?”

“형수님의 호위기사라는 고양이 말야. 딱히 갈 데도 없고 먹을 것도 없잖아.“

”음... 아냐.“

 

밥의 대답에 악당놈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들어올렸다.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라 밥은 이 고양이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남자에게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고양이는 누가 키우는 게 아냐. 자기가 선택해서 그 곳에 있는 거라고.”

 

악당놈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냥 여기 밥 그릇을 두면 되는 거 아닌가? 가둬두는 것도 아닌데? 밥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악당놈의 가슴을 덮은 이불에 머리를 갖다대었다. 그리고 간질거리는 입가와 조금 뜨거워진 볼을 부비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제까지 고양이를 수백만 마리는 봤는데, 그래도 그 고양이가 나쁘진 않았어. 얼굴이랑 발에 묻은 검댕만 좀 씻어내도 훨씬 봐줄만할 거라고. 내가 걜 데려오면 놀라지나 말라고.”

“그거 검댕 아니라니까아...”

 

작게 웅얼거리자 머리를 기댄 가슴팍이 즐겁게 들썩였다. 정말, 고양이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남자다.

 

 

 

악당놈의 직무태만은 성주인 소기름악당이 돌아오자마자 끝이 났다. 고양이 꼬리마냥 매달려 다니던 게 없으니 살짝 허전한 것도 같았지만 밥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메이저 주인님이 밥의 방에 방문해 가져온 아주아주 멋진 것이 밥의 시선을 가로챈 것도 있었고. 메이저가 자랑스레 보여준 건 밥보다 좀 더 커다란 배였다. 그것도 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는! 정말이지 놀랍고 신기한 얘기였다. 그래서 밥은 온종일 메이저와 함께 호숫가에 나가 동동거리는 배를 구경했다. 호숫가에 나란히 엎드려 메이저는 마크가 어디를 다녀 왔는지, 어떻게 메이저를 위해 이 배를 고르게 되었는지, 또 마크가 출장가있는 동안 얼마나 메이저를 생각했는지 쉴새없이 얘기했다. 그동안 밥의 정신은 온통 배에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배 안을 구경하고 싶었다. 잠깐이면 괜찮지 않을까? 신기한 물건들을 잠깐 구경했다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건 밥의 특기였다. 메이저는 소기름 악당이 돌아오면 며칠은 두문분출하곤 했다. 아마 그 사이에 기회가 있으리라. 밥은 너그럽게 꼬리를 흔들거리며 주인님의 자랑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리고 비밀 회동을 할 결전의 날은 기대보다 빨리 다가왔다.

 

해가 질 때쯤 돌아온 악당놈은 야근을 해야 한다며 저녁식사 내내 밥을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만지작거리다 나갔다. 밥은 얌전히 있겠다며 손가락에 도장까지 찍고서도 도통 떨어지려 하지 않는 악당놈을 엄하게 타일러 내보냈다. 그리고 시종들이 교대하는 틈을 타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복도를 빠져나갔다. 입을 여는 순간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숨을 꾹 참고, 날쌘 고양이처럼 빠르고 조용하게 빈 복도를 뛰어가자 저 끝에 메이저의 서재 겸 작업실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두꺼운 문에 귀를 대어 기척을 확인하고, 밥은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몸을 집어넣고 다시 잽싸게 닫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긴 숨을 내쉬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조금은 어수선하게 늘어진 모형배들과 아직 덜 칠해진 조각들 너머, 창문 아래 자리한 아주 멋진 장식장 위에 모형배가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밤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는 그 배를 향해 밥은 조심스레 다가갔다. 푹신한 카펫 위로 살금살금 발을 내딛을 때마다 둥그런 귀가 바짝 서고, 없는 꼬리가 살랑이며 무게중심을 잡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모형배 앞에 도착했을 때, 밥은 참지 못하고...

배를 거꾸로 뒤집어 버렸다.

 

그 순간부터 밥의 이성은 달빛에 휘발된 듯 날아가 버렸다. 희미하게 내려오는 달빛에 온 시각을 의존한 채로 밥은 열 손가락을 휘젓고 힘을 주며 배를 까뒤집고 탈탈 털며 그 속을 확인했다. 인간의 손가락은 어찌나 뭔갈 헤집기 좋은지! 정신없이 배를 두드리고 돌리자 하나둘씩 조각들이 딱딱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밥의 입술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인간의 몸으로 뭔가를 가지고 노는 건 고양이 몸으로 할 때보다 백 오십일만 배는 더 재밌었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배를 가지고 놀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부스럭.

... 아닌가, 착각인가? 밥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배에 몰두했다. 하지만 불길한 소리는 다시 밥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부스럭.

밥은 귀를 쫑긋거리(려고 노력하)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혹시 주인님이, 아니면 악당놈이, 아니면... 소기름악당이? 하지만 소리는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문 쪽은 아니었다. 그러면...? 밥은 고개를 내밀어 창문 쪽을 향했다. 그러자 소리가 좀 더 선명히 들렸다. 부스럭, 부스럭. 밥의 직감이 저 창문 너머에 뭔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자 아까보다 더 선명한 소리가 들렸다. 밥의 창문 바로 아래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 아래에는 식당과 창고가 있었다. 밥이 시종들을 감독하던, 그리고 포대를 갉아먹었다고 혼이 나곤 했던 그 자리였다. 그렇다면 혹시? 밥은 열린 창문 사이로 조심히 고개를 내밀었다. 놀랍게도 검은 뭔가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밥은 조심스레 창문을 더 열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정체를 살폈다. 뭔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긴 한데 그림자가 져 큰 건지 작은 건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검은 덩어리는 창고 문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며 서 있었다. 뭘 하는거지? 밥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북-소리와 함께 뭔가가 촤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그러니까, 저기 진짜 도둑이 있었다! 밥은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머리를 굴렸다. 당장 저 도둑놈을 잡아 훼손당한 명예를 회복하고 호위기사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하는데...! 고양이로 잡아야 할지 사람으로 잡아야 할지 헷갈렸다. 게다가 저 곳은 밥이 고양이로 변하던 곳이 아닌가. 기껏 고양이로 변했는데 덩치가 산만한 놈이면 제압하기도 곤란했다. 밥이 우물쭈물하는 동안에도 검정 덩어리 쪽에서 우드득 땅콩을 씹어먹는 소리가 났다. 안되겠어, 일단 뛰어 내려야...! 밥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창문 위로 올라간 순간, 등 뒤에서 벌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악당놈의 목소리였다!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돌리는 순간 밥의 발이 삐끗했다. 그리고 엄청난 중력이 밥을 아래로 끌어당겼다. 밥의 몸은 아래로 떨어지다 나뭇가지에 한 번, 또 한 번 걸려 대롱대롱 매달렸다. 아야야...! 털도 없는 맨살이 온통 가지에 쓸려 따끔따끔 비명을 질러댔다.

 

“거기 누구야!”

창문을 열고 악당놈이 소리를 질러댔다. 저러다 검은 덩어리가 도망가니 소리지르지 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가 우두득 소리를 내며 기울기 시작했다. 밥은 화들짝 놀라 아래를 살폈다. 인간일 때 이정도 높이에서 뛰어본 적이 없었는데...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밥은 눈을 꼭 감고 옷가지를 북 찢은 후 몸을 던졌다. 잠시간의 바람소리가 지나간 후 둔탁하고 매서운 통증이 밥의 어깨와 등을 울렸다. 진짜, 진짜로 너무 아팠다! 푸줏간 주인이 밥에게 발길질을 했던 때보다 더, 대장 고양이가 밥을 물었을 때만큼! 하지만 아프다고 주저앉아 있을 때가 아니었다. 검은 덩어리를 잡아야 밥의 명예가 회복되리라. 밥은 욱신거리는 몸을 질질 끌고 부엌 뒷문 쪽으로 향했다. 가까이 갈수록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두둑 소리가 더욱 커졌다. 밥은 안도의 한숨을 삼키며 포대 뒤로 몸을 숨겨가며 살금살금 걸었다. 그리고 구름에 가려진 달빛이 모습을 드러내자 검은 덩어리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짧은 다리와 구부정한 허리, 그리고 둥그스름하게 늘어진...

그 순간 검은 덩어리의 눈과 밥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달빛에 검정 덩어리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건... 너구리였다. 온 털에 땅콩 부스러기를 매단 채로 땅콩을 씹어먹고 있는 너구리.

밥은 용맹하게 너구리를 향해 팔을 뻗으며 달려갔다. 너구리는 끼이익 소리를 내며 도망치기 시작했고. 둘은 창고 안을 뱅뱅 돌며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펼쳤다. 너구리가 달려갈 때마다 손에 쥐고 있던 땅콩이 하나 둘씩 떨어지며 밥의 발에 부서졌다. 고양이 손톱이면 저 너구리놈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었을텐데 매끈한 사람 손은 도둑너구리를 잡는 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몇 번이고 헛손질을 하자 열이 올라 죽을 맛이었다. 진이 빠진 너구리와 밥이 헉헉거리며 살벌한 대치중이던 그 때, 저 멀리서 또다른 소리가 들렸다.

 

“너희는 포위되었다! 순순히 나오면 목숨은 살려주지.”

 

악당놈이었다. 뒤이어 사병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들었지? 악당놈이 힘이 얼마나 센지 알아? 순순히 항복하는 게 좋을걸.”

 

밥이 빈정거렸다. 도둑너구리는 알아들은 모양인지 손에 쥐고 있던 땅콩을 떨어트리곤... 옆에 있던 다른 포대를 할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구멍이 뚫린 포대에서 밀가루가 새어나오자 너구리는 당황한 듯 주춤거리다 밥을 향해 덤벼들었다. 밥 역시 놀라 소리를 지르며 너구리를 있는 힘껏 누르고 제압하려 했다. 몸이 휘청이며 너구리와 함께 구르자 바닥에 흩어진 밀가루가 먼지를 일으켰다. 밥은 연신 재채기를 하며 너구리를 향해 발톱을 할퀴었다. 어?

 

“베이비, 롭!! 어?”

 

순식간에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밥의 몸이 들렸다. 손 끝에는 발톱에 생 살이 걸린 도둑너구리가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사병 하나가 너구리를 밥의 발톱에서 너구리를 잡아빼어 자루에 가뒀다.

 

”고양인 줄 알았더니 너구리였네요. 이게 무슨 난리인지 원.“

 

므애애애옹! 밥이 콧김을 내뿜으며 사병을 노려봤다. 사병은 자루를 들어보이며 밥에게 사과했다.

 

“아이구, 미안. 넌 줄 알았지... 요물이네. 사람 말도 알아듣고.”

“롭은 어디갔지?”

 

밥을 들고 있던 악당놈이 인상을 찌푸리곤 주변을 살폈다. 어딨긴요, 단장님 침대나 데우고 있겠죠. 사병이 킬킬거리자 악당놈이 밥을 들고있지 않은 팔로 사병의 배를 퍽 쳤다.

 

“개소리할 기력이 남아있나 보지? 니 새끼들 다 합해봤자 이 고양이 한 마리만도 못해. 저 너구리가 벌인 거나 수습하고 내일 각오해라.”

 

밥이 듣던 악당놈의 말투도, 목소리도, 표정도 아니었다. 밥은 악당놈이 현장을 정리하는 동안 그의 팔에 얌전히 매달려 있었다. 악당놈은 살벌한 어투로 몇 가지를 더 얘기한 후 뒤돌아 성문으로 향했다.

 

”하루종일 찾아다녔는데 도둑이나 잡고 있었다니, 말썽부리는 게 니 주인이랑 똑같군.“

 

말썽이라니! 도둑을 잡았잖아! 밥이 애옹애옹 울자 악당놈이 킥킥 웃으며 콧잔등을 툭 건드렸다.

 

”네가 잡은 거 알아. 사람들 깰라. 조용히 해.“

 

그리고는 밥의 얼굴을 벅벅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밀가루 묻힌 것보다 검댕인게 더 귀엽네.“

 

맹세코, 그 말이 마음에 들는 건 아니었다. 그냥 악당놈이 머리를 쓰다듬고 어설픈 손길로 턱을 긁어주는 게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밥은 골골거리는 목을 애써 무시한 채 욱신거리고 나른한 몸을 악당놈에게 기대었다. 이대로 잠에 들면 딱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눈을 감고 슬슬 잠이 들려는데, 악당놈의 걸음이 멈췄다.

 

”어디 갔지, 우리 베이비가?“

 

아, 그 순간 밥의 잠이 싹 달아났다. 고개를 들어 악당놈을 보자 악당놈이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리고 웃고 있었다.

 

”야옹아, 우리 베이비가 야밤에 어디 갔을까? 술래잡기를 한 번 더 해야겠네?”

 

밥이 버둥거리자 행맨은 귀찮다는 듯 팔을 풀었다. 잽싸게 바닥으로 내려온 밥은 있는 힘껏 달리며 뒷문으로 향했다. 사람이 남아있든 말든 상관없었다. 얼른 다시 변해야 하는데, 얼른...! 정신없이 계속 뛰자 눈 앞에 그새 말끔하게 정리된 창고가 보였다. 밥은 창고 안을 뱅뱅 돌고 구르며 온갖 행동을 다 해보았다. 어떻게, 왜 변했는지 머리를 굴리며. 기진맥진하도록 돌고 온갖 곳을 헤매다 보니 기절할 듯이 피곤했다. 너무 힘든데... 풀썩 쓰러지자 먼지가 훅 일며 밥의 코를 간지럽혔다. 밥을 신경질적으로 코를 문지르다 재채기를 하며 철푸덕 누웠다. 아니, 누우려고 했는데 다리가 너무 걸리적...

어, 사람이다.

손을 들어보니 생채기가 나고 빨갛게 쓸린 마른 팔과 열 손가락이 보였다. 이거였어? 갑자기 들이부어진 정보와 온갖 생각들로 머리가 핑핑 돌았다. 하지만 돌아가야 했다. 잔뜩 화가 난 악당놈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밥은 절뚝이는 다리를 질질 끌고 다시 성으로 향했다. 조용한 성 안에 밥이 발을 끄는 소리만 메아리쳐 울려퍼졌다. 팔다리는 데일 듯이 뜨겁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더 이상 갈 힘도 없어진 밥은 조용히 몸을 바닥에 누워 웅크렸다. 한숨 자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밥은 파들거리는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아주 졸렸다.

 

 

 

밥은 아주 길고 느린 꿈을 꾸었다. 불덩이와 부드러운 이불, 따뜻한 손길이 밥을 파고드는 꿈이었다. 그 다음 꿈은 갑갑하고 아늑한 공간에 갇혀 있는 꿈이었다. 퍽 마음에 드는 꿈이었지만 자꾸 어디선가 밥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더 자고 싶은데 자꾸 들리는 소리 때문에 밥의 잠이 달아났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얼른 눈 좀 떠봐...귀찮아 죽겠네... 뜨면 될 거 아냐아... 밥은 무거운 눈꺼풀을 조금씩 들어올렸다. 조금씩 빛이 들어오며 눈 앞이 선명해지고,

악당놈의 동그란 초록 눈이 보였다.

 

“일어났네.”

 

아주 날카롭게 반짝이는 포식자의 눈이.

 

“정신이 들어?”

“우음...”

 

다시 자는 척을 하려고 했는데, 악당놈의 손이 밥의 턱을 잡고 눈을 맞췄다.

 

”밤에 내 허락도 없이 어딜 갔었지? 몸은 왜 이렇게 상처투성이고?“

 

아, 다시 자고 싶다... 밥이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슬쩍 떴다. 악당놈이 비뚜름한 미소를 걸고 밥을 보고 있었다. 아주 가소롭다는 듯이.

 

“베이비, 나한테 숨기는 게 많구나?”

 

눈 앞이 깜깜했다. 진짜로.




이번 편에도 소기름 악당은 관념적으로만 나오지만 마크메이저 행맨밥

2024.04.13 23:58
ㅇㅇ
모바일
아 진쫘 밥냥이 너무 귀엽다 미챸ㅋㅋㅋㅋㅋ 라쿤하고 결투하는거 개웃겨 ㅋㅋㅋㅋ제이크 어디까지 알고 있는거야 ㅋㅋㅋ
[Code: b411]
2024.04.14 00:04
ㅇㅇ
모바일
내 센세 오셨다!!!!! 진짜 대존잼ㅜㅜㅜㅜㅜ밥냥이 최고로 용맹한 고양이야 메이저의 호위무사로써 멋지게 도둑너구리도 잡고!!! 메이저랑 배 구경하는것도 너무 사랑스럽다ㅜㅜ 행맨 이제 밥냥이한테 제법 호감이 생긴듯 한데, 로버트의 정체도 눈치채게 되는건가??? 너무 좋아 억나더 제발...
[Code: 3a34]
2024.04.14 00:05
ㅇㅇ
모바일
이제 먼지고양이=로버트인걸 제이크가 슬슬 알아차릴만한 단서가 하나씩 생기고있다...! 제이크랑 밥이랑 투닥거리는거 너무 귀여움 ㅠㅠㅠㅠㅠ
[Code: 1681]
2024.04.14 00:05
ㅇㅇ
내 센세 오셨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센세ㅠㅠㅠㅠ 밥냥이 너무 용감해! 귀여워! 최고야! 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메이저 주인님의 모형배를... 그렇게 산산히... ㅋㅋㅋㅋㅋㅋㅋ 도둑 누명을 벗은건 다행이지만 이제 어쩔 것이냐 밥냥이! 악당놈은 악당놈대로 독이 올랐고 주인님은 엉엉 울거고 소기름악당이 사악하게 웃고 있는 미래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d4e5]
2024.04.14 00:16
ㅇㅇ
모바일
하 미친 너무 재밌어요 센세 ㅠㅠㅠㅠㅠㅠㅠㅠ 밥 악당놈이라고 하면서도 제이크 엄청 좋아하는게 보여 ㅠㅠㅠㅠㅠㅠㅠㅜ 너구리 잡을 때 들키는건가 ㄷㄷ 싶었는데 다행(?)히 들키진 않았네
인간으로 변하는 요건이 뭐인걸까
[Code: 5965]
2024.04.14 05:31
ㅇㅇ
모바일
내센세 오셨다!!!!
[Code: 4c2e]
2024.04.14 14:37
ㅇㅇ
모바일
밥냥이 용맹한거봐ㅠㅠㅠㅠ너구리 검거하고 몸다친거같은데 행맨은 눈치챈거 같고 큰일낚다
[Code: 2443]
2024.04.14 14:47
ㅇㅇ
모바일
밥냥이 본성 주체못하고 배갖고 탈탈 터는거 진짜 킬포임ㅋㅋㅋ 앜ㅋㅋ 집중한 표정 상상됔ㅋㅋㅋㅋ
[Code: 2d03]
2024.04.14 17:20
ㅇㅇ
모바일
진짜 너무 귀엽다 ㅋㅋㅋㅋㅋㅋ악당놈이라하면서이미 사랑에빠진 밥냥이 존커 ㅠㅠㅠ
[Code: 9fe4]
2024.04.15 08:56
ㅇㅇ
밥냥이는 멋진 기사인데 고작 땅콩도둑으로 오해받는거 너무 억울했다고 그래도 용맹하게 도둑너구리도 체포했는데!!! 행맨 밥의 비밀을 눈치챈건가? 밥 반말했다가 뒤에 요.. 붙이는거 너무너무너무 귀엽다 진짜ㅠㅠㅠㅠㅠ 행맨이 밥냥이짓이 아니라고 믿어줄때 밥이 설레어하는거 너무 좋아ㅠㅠㅠㅠ 가슴에 민들레꽃이 들어찬거처럼 간질간질 부풀었대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9f0]
2024.04.15 08:58
ㅇㅇ
그렇게 밥냥이 얼굴에 검댕 묻은게 아니라고 해도 못알아듣더니 밀가루 묻힌 것보다 검댕인게 더 귀엽다는 한마디에 또 설레게하고 어? 유죄악당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밥이 사람일때도 밥냥이 습성 못버리는거 너무 귀여운데 고양이가 되는 포탈?같은게 부엌에 들어가는거라면 반대로 사람이 되는 키포인트는 뭐지?
[Code: 89f0]
2024.04.16 01:15
ㅇㅇ
모바일
센세 너무너무 조아 기여워..
[Code: c85c]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성인글은 제외된 검색 결과입니다.
글쓰기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