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메이저 저택의 정식 호위기사로, 그의 작위는 메이저 가문의 유일한 적자이자 사랑스러운 도련님인 메이저 도련님이 정식으로 하사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밥은 오늘 난데없는 해고통지를 받았다.
느긋하게 출근하던 밥은 성문 앞에 펼쳐진 난장판을 보고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싱그러운 풀내음이 가득하던 메이저 대저택은 뽀얀 흙먼지와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난장판 사이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주인님을 찾아봤지만 메이저는 털 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뒤뚱거리며 짐을 옮기던 인부들에게 떠밀리며 한참을 헤매던 밥은 문득 엄습하는 불길한 기운데 뒤를 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안그래도 널 찾았지.”
머리에 소기름을 끼얹은 재수없는 면상이 삐딱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밥은 저 놈을 알고 있었다. 교활한 새치 혀로 주인님을 유혹해 괴롭히는 악당 같은 놈, 파렴치한 놈! 주인님은 어딨지?
“더러운 먼지 같은 게 자꾸 메이저 옆에 붙어 있는 게 얼마나 거슬렸는지 몰라. 내 사랑은 마음이 여려 널 봐줬는지 모르겠지만 난 어림도 없다. 그러니 네 살 길은 네가 알아서 찾도록 해.“
남자는 악당처럼 비웃으며 밥에게서 등을 돌렸다. 잠깐, 기다려! 다급해진 밥이 남자를 향해 소리지르며 몸을 던졌다. 남자를 잡아야 해! 발을 구르며 온 몸을 던져 점프한 끝에 남자의 옷자락이 겨우 걸렸다. 잡았다! 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였다. 누군가 밥의 목덜미를 잡고 뒤로 쑥 잡아당겼다.
”이 더러운 게! 대공님. 괜찮으십니까?“
”쯧... 어디 던져 버리도록.“
그리고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충격과 함께 밥은 내동댕이쳐졌다. 밥을 던져버린 남자는 미안하지도 않은지 낑낑대는 밥을 흘끗 보곤 비웃기까지 했다.
”고양이는 던져도 알아서 착지하던데 저건 뭐람.”
그러고는 모두 홀랑 사라져버렸다. 밥만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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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메이저 도련님의 정식 호위기사로, 비록 고양이지만 메이저의 충직한 기사로서 커다란 공을 세운 전적이 있다. 밥이 메이저 주인님의 행복을 위해 밤낮으로 헌신했음은 전지전능한 대마법사인 피닉스 역시 인정하는 바였다. 무도회의 배 모형을 보러 가고 싶다는 메이저 주인님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대마법사 피닉스를 찾아간 것도, 느려터진 루스터 대신 궁전으로 가는 호박마차의 마력과 경로를 계산해 마차를 이끈 것도 모두 밥이었다! 그러니 밥은 메이저의 호위기사로서 옆에 붙어있을 만한 자격이 충분히 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무도회에서 만난 놈팽이 소기름 악당이 메이저 주인님을 뺏아갔지만 밥은 메이저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둘을 갈라놓을 용의가 있었다. 그러니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잽싸게 둘을 갈라세우려면 한시도 메이저에게서 떨어져 있으면 안 되었다.
밥은 잽싸게 움직였다. 이미 사라진 메이저 주인님의 냄새와 소기름 악당이 흘리고 간 흔적들을 뒤지며 신중하게 경로를 계산했다. 이건 말하자면 비밀 임무 같은 거였다. 메이저 주인님이 진짜로 밥을 해고했을리가 없으니까. 소기름 악당에게 잡힌 주인님을 찾아내 악당을 무찌르고 다시 메이저 저택에서 주인님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거야! 그 일념 하나로 밥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시장바닥을 뒤지고 마차 뒤에 올라타 덜커덩거리는 비탈길을 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밥의 직감이 속삭였다. 여기에서 메이저 주인님의 기척이 느껴진다고.
밥은 마차가 멈추자마자 잽싸게 아래로 내려왔다. 생전 처음 보는 아주 커다란 수로와 마차들이 즐비했다. 엄청나게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도 잔쯕 보였다. 이 중 어딘가에 입구가 있을 텐데... 밥은 신중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녔다. 언뜻언뜻 느껴지는 소기름 악당의 냄새가 밥에게 확신을 더해주었다. 이 자리에서 만나면 그 뺀질한 얼굴에 3중 스크래치를 그어놓고 메이저 주인님의 품에 안겨서 늘어지게 자야지! 즐거운 상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캬웅!”
“이런 거면 되나?”
몸이 번쩍 들렸다. 밥이 놀라 버둥거렸지만 밥의 허리를 잡아올린 손은 요령있게 밥의 발길질을 피해 밥을 더 높이 들어올렸다.
”대충 먼지덩어리처럼 생긴 게 딱 이건데.“
”그러게. 얼른 들어가자. 어차피 진짜를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형도 참. 그깟 고양이가 뭐라고. 저러다 형수 탈진하겠어... 잠깐, 이렇게 생긴 게 맞나?”
그리고 밥의 앞으로 살면서 딱 한 번 봤던, 메이저의 마지막 유산이었던 에메랄드를 박은 것 같은 커다란 눈동자가 보였다. 그 너머로 가을 하늘 아래 뻗은 곡식들처럼 탐스러운 금발 머리와 시원하게 뻗은 콧대까지. 밥은 눈 하나 깜빡이지 못하고 남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아악!! 이 망할 고양이가!!“
날카로운 발톱이 남자의 코를 긁었다. 역시 다시 봐도 소기름 악당을 닮았다. 그거보다는 좀 더 봐줄 만하게 생겼지만. 그렇게 세게 할퀸 것도 아닌데 남자는 길길이 날뛰며 밥의 앞발을 움켜쥐었다.
”쥐콩만한 게 날 건드려? 얼굴에 먼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생겨갖고?“
쥐쥐쥐쥐콩? 너이새끼야뭐라고했냐어디감히해충퇴치의공을인정받아기사임명이된나에게쥐콩이라고해??? 밥이 날렵하게 뒷발질 공격을 시도했지만 남자는 손쉽게 밥의 몸을 제압해 팔로 압박했다. 순식간에 남자의 가슴과 팔 사이에 낀 밥이 몸부림을 쳤지만 남자는 꿈쩍도 않았다.
"일단 형수한테 보여줘야겠어. 그전에 좀 씻겨야겠군. 물 맛좀 봐라, 이 먼지덩어리야.”
“이야, 행맨도 다 죽었네. 꼴랑 고양이한테 당하고.”
킬킬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눈 앞이 깜깜해졌다. 온 몸이 꽉 묶인채로 앞까지 보이지 않자 눈물이 찔끔 났다. 메이저 주인님! 구하러 간다고 했는데... 그렇지만 밥은 지쳐 있었고, 품 안은 따뜻했고 쿵쿵거리는 박동까지 느껴졌다. 원래 기사는 아무데서나 잠들지 않지만, 밥은 아주 중요한 임무를 수행중이었지만...
밥은 가물가물 감기는 수마를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앞으로 자신에게 펼쳐질 운명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행맨밥으로호위기사밥냥이
행맨밥 약마크메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