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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7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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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이다. 놈의 눈빛이 비열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함정이었다. 

"별장 말입니까?"

용의자의 말에 순진한 얼굴로 호응해 주고 있는 마치다를 말리고 싶었지만 말려선 안 되는 입장이란 건 알고 있었다. 이놈이 인신매매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 것은 오직 심증뿐이었다. 어찌나 용의주도하고 치밀한지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가끔 납치 상황이나 노숙자를 꼬여서 데리고 가는 장면을 목격한 이들도 있었지만 목격당한 차는 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었고 번호판은 당연히 가짜였다. 증거를 찾아야 했다. 이들 조직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놓쳐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하기 이를 데 없어 노부가 주먹만 꽉 쥐자 마치다는 노부의 주먹을 살짝 쥐고 토닥여주며 말을 이었다. 

"별장에 가 본 적은 없는데 기대되네요."
"그럼 지금 같이 가실까요?"
"그럴까요?"

용의자는 자기들 차를 같이 타고 가자고 했지만 노부가 마치다와 따로 가겠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술을 마신 마치다 대신 노부가 운전대를 잡았을 때, 마치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오늘 바로 끌고가려 할 줄 알았으면 술을 마시지 말 걸 그랬네."

노부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마치다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나 내려주고 넌 바로 돌아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2시간 이상 연락이 안 되면 바로 지원와 줘."
"놈들이 마치다 상을 노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노부는 마치다를 말리기 위해 그렇게 말했지만. 

"어, 그랬나 봐."

마치다는 담담하게 그렇게 말했다. 설마 알고 있었어?

"마치다 상을 유인하려는 걸 수도 있어요."
"유인이겠지."
"마치다 상!"

마치다는 노부를 흘긋 보고 다시 앞서 가는 차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 너희 부장이 찾아왔었어. 너 본부에 불려갔던 날."
"네?"
"이번 일 끝나면 완전히 놔 준대. 나."
"..."
"18년만에 해방이다."

차라리 마치다가 환호를 하기라도 했으면 더 말렸을 텐데, 마치다가 너무 담담하게 해방을 이야기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세상이 가혹하기만 했던 어린 마치다에게는 은인이었을 이, 마치다가 처음 만난 다정했던 어른이 괴로워하는 걸 보고 돕기 위해 내밀었던 그 작은 손길, 오직 호의뿐이었던 그 손길을 내민 대가로 마치다는 18년을 거지같은 인간들을 상대하고 그 같잖은 놈들의 질 낮은 조롱과 멸시를 참아가며 온갖 위험한 일에 목숨을 걸고 나서야 했다. 

그 거지같았던 18년의 세월을 끊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지만 정말로 오늘은 너무 불안했다. 

"... 이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어쨌든 끝내기만 하면... 놔 줄 거예요. 그러니까 좀 더 준비를 하고..."
"나도 멍청한 거 아는데 빨리 끝내고 싶어. 18년 동안 언젠간 끝나겠지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끝이 기약이 없으니까 오히려 아쉽지도 않고 기대도 없었는데 갑자기 끝이 눈에 보이니까 얼른 끝내고 싶어. 다시 상황이 엿같아져서 벗어날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정말로 벗어나고 싶어. 그렇지만 너까지 끌고 갈 수는 없지. 그러니까. 어차피 넌 드러나지 않았고 나만 노리는 것 같으니까 도착하면 나만 내려주고 넌 바로 돌아가서..."
"그런 말하지 말아요. 마치다 상만 두고 가진 않아요."
"내가 못 돌아가면 내 다육이들은 네가 책임지는 거야, 알았지? 꽃 피워서 나중에 노부유키들이랑 노부짱이랑 케이짱이랑 같이 내 무덤에 보여주러 와."
"마치다 상!"

노부가 소리를 지르자 마치다는 피식 웃었다. 

"농담이야. 돌아갈 거야. 당연히 돌아가야지. 우리 같이 무사히 돌아가자. 노부."





그러나 당연히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출발할 때 미리 부장에게 연락해서 놈의 별장에 가는 길이라고 보고하며 출동 대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놈의 차를 따라가다가 외길이 나와서 부장에게 이동 중임을 알리고 노부 폰의 GPS 추적을 부탁했다. 그러나 거기서 얼마 더 가지 않았을 때 휴대폰의 통신이 끊겼다. 노부는 통화권 이탈이 뜨는 폰을 보고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차량이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용의자 일행의 차 문이 열리고 용의자와 떨거지가 내려서 다가왔다. 그리고 곧바로 노부와 마치다의 차량 앞뒤로 여러 대의 차량들이 와서 둘러싸듯 주차해 버렸다. 노부가 마치다만 내려주고 떠날 것을 경계해 도주로를 차단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용의자가 마치다 쪽의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꽤 좋은 술을 준비해 놨으니 내리시죠."





용의자는 일단은 마치다를 예의를 갖춰서 대했다. 던전만큼 좋은 술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을 만한 술이 있다며 한잔 더 하자고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건물에 들어선 순간 노부는 술이고 뭐고 이 건물을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이 오늘 마치다를 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장기를 강탈한다는 것이 사실인지 건물 안에는 피 냄새가 진하게 퍼져 있었고 희미하게 사람들의 비명소리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이런 걸 보여줬을 때는 돌려보낼 생각이 있을 리가 없었다. 노부의 몸이 바짝 긴장하자 마치다의 바로 옆에서 걷고 있던 용의자, 아니 이제 범인이 확실한 놈이 비릿하게 웃었다. 

"제가 신세를 진 분이 계셨는데 말이죠."
"네."
"마치다 상께서 혹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xxxx xxxx라는 분이었는데요. 별명은 승냥이였는데 혹시 아시나요?"

마치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xxxx xxxx라고 중얼거리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글쎄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승냥이라, 그런 별명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제가 신세를 많이 진 분인데... 저를 어릴 때부터 돌봐주시고 많이 가르쳐 주신 분이시거든요."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모르는 분인데 왜 제게 물어보시는지?"
"제가 그때 일이 있어서 잠시 떠나 있었는데 그분이 마치다 케이타라는 분의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새로 들어와서 함께 일하게 된 청년인데 아주 귀엽고 똘똘하다고요. 혹시 사장님이 그분이신가 해서요."
"전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클럽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함께 일한 분들 중에 그런 성함을 가진 분은 없었으니 저와 동명이인이 아닐까요?"
"그렇군요. 제가 잠시 후추에 가 있는 동안 그분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제가 그때 상황을 좀 알아보는 중이거든요."

이 도시에서. 아니 이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교도소가 있는 지역의 이름을 듣는 순간 노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xxxx xxxx가 누구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다 케이타는 인신매매 조직에 잠입한 적이 있다고 스스로 말한 적도 있었다. 이놈이 그때 궤멸시킨 인신매매 조직의 일원이었는데 그때 교도소에 있어서 조직이 궤멸당할 때 드러나지 않고 피해간 거라면... 그래서 그때 조직에 잠입해 있었던 마치다 케이타가 조직을 몰락시킨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면... 

처음부터 재벌 3세는 마치다 케이타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던 거다. 처음부터 마치다를 노리고... 

노부는 온몸이 경직되는 기분이었지만 마치다는 여상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저는 모르겠네요. xxxx xxxx...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틀림없이 인신매매와 장기매매를 하고 있을, 자신의 조직을 무너뜨린 조직은 찾지 못했어도 마치다에게만은 복수를 하고 싶어하고 있을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하하... 참, 마치다 상. 술은 잘 안 드시는 것 같던데. 혹시 간이 안 좋으신가요?"

아마도 마치다를 끌어온 건 그때 특수기동대가 들어오기 전에 마치다와 함께 정보를 빼 낸 조직이 어딘지 찾기 위해서겠지만. 정보를 캐 내면 마치다의 장기까지 뜯어낼 모양인지 간의 안녕을 묻는 놈을 당장 죽이고 싶었지만 아직은 참아야 했다. 노부가 마치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마치다를 노부 쪽으로 조금 끌어당겼지만 마치다는 노부의 손을 한 번 잡아줬을 뿐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제가 워낙 겁이 많거든요. 간이 콩알만하죠."
"저런..."

마치다가 헛소리처럼 대답하자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혀를 찬 인신매매범은 다시 웃으며 물었다. 

"혹시 담배는 피우십니까?"
"안 피웁니다. 제가 폐도 생기다 말았거든요. 폐도 아주 콩알만해요."

마치다가 술을 즐기지 않고 담배를 안 피우는 건 사실이지만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하러 같이 갔다와서 마치다의 건강 상태가 아주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치다는 뻔뻔하게 간과 폐가 건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말로 장기가 뜯기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끌면서 탈출기회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니. 문을 몇 개씩 통과하는 동안 놈의 부하들은 그대로 로비에 남거나 다른 곳으로 갔기 때문에 따라오는 놈들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대여섯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저런, 유감이군요."
"제 간과 폐가 생기다 말았는데 왜 그쪽이 유감이죠? 제 간이랑 폐에 관심 있으세요?"
"그럼요, 전 마치다 사장님의 모든 것에 관심이 있죠."
"전 이미 임자 있는 사람인데... 어쩌죠?"
"제가 늦었나요?"
"안타깝지만 늦으셨네요."

그러자 장기매매범은 마치다와 노부가 얼마나 긴장하고 위축돼 있는지 빤히 알고 있다는 듯 가소로운 것처럼 웃더니 노부를 슬쩍 돌아봤다. 

"경호원 분은 어떠신가요? 몸이 아주 탄탄해 보이시는데 건강하신가요?"

그러자 공포에 질려 있을 텐데도 생글생글 웃고 있던 마치다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노코멘트하겠습니다."
"네?"
"제 경호원에 관한 건 모든 게 비밀이에요."
"왜죠?"
"워낙 유능한데다 미남이기까지 하니 노리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서요. 얼마 전에는 옆 클럽의 사장이 몰래 접근해서 지금 받는 월급의 두 배를 준다고 했다니까요? 클럽을 완전히 망하게 해 버리려고 하다가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싹싹 빌어서 봐 줬죠 나한테 좋은 사람이면 될 텐데 만인한테 좋은 사람이라 달라붙는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이에요."

실제로 옆 클럽의 사장이 노부를 스카우트하려 한 적이 있긴 했다. 던전에 들어오려던 손님과 옆 클럽의 손님이 싸움이 붙어서 직원들이 허둥대고 있던 것을 노부가 해결했기 때문이었는데 딱히 노부가 뭘 한 것은 없었다. 다만 그날 시비가 걸렸던 손님이 던전의 단골이라 노부와도 안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노부의 입장을 봐서 순순히 물러나준 덕분이었다. 옆 클럽 사장이 그런 사정을 잘 모르고 노부를 스카웃하려 했는데 그때 마치다는 길길이 날뛰었다. 어차피 노부가 진짜 경호원이 아니라서 안 갈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탐내는 사람이 많다니 저도 관심이 가는데요. 경호원 분은 건강하신가요?"
"관심가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제 말이 말같잖게 들리나 봅니다?"

그 순간 마치다와 눈이 마주쳤고 마치다가 재빨리 눈을 깜박거리는 걸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입모양으로만 작게 '하나'라고 말하자 마치다도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장기매매범을 쳐다보며 생긋 웃었다. 방금까지 살벌하게 말하던 마치다가 자신을 보고 웃자 장기매매범이 흠칫하며 허리로 손을 가져갔다. 그 허리에서 나오는 게 총일지 칼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치다는 틈을 주지 않고 바로 주먹을 쥐고 놈의 울대를 그대로 후려쳤다.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마치다는 놈이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도 봐 주지 않고 놈의 허리에서 놈이 허리에 끼우고 있던 얇은 쇠파이프를 빼서 그대로 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놈의 몸이 한 번 펄쩍 뛰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모양이었다. 마치다가 놈을 처리하는 동안 노부는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놈의 턱을 그대로 걷어찼다. 놈 역시 그 순간 바로 쓰러졌고 마치다는 문 옆에 서 있던 놈의 다리 사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놈이 억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순간 바로 또 뒤통수를 내리쳤다. 놈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클럽 던전까지 수장을 따라왔던 그 놈이 바로 칼을 빼 들고 노부에게 달려들었지만 노부는 마치다가 던져준 쇠파이프로 놈의 손목을 후려치고 칼을 떨어뜨리는 순간 바로 쇠파이프로 놈의 턱을 후려쳤다. 클럽에서부터 머리보다 몸을 쓰고 성질머리가 사나운 것 같더니 놈은 어지러운지 머리를 살짝 짚고도 바로 회복해서 노부에게 달려들었다. 노부는 달려드는 놈을 그대로 붙잡아서 바닥에 내던지고 놈의 발목을 쇠파이프로 후려쳤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놈의 머리를 다시 쇠파이프로. 놈은 기절했다.

방 안에 있는 놈들은 보스를 포함해서 6명이었기 때문에 모두 처리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마치다와 노부의 목숨이 걸려 있는 만큼 사정을 봐 줄 수 없어서 노부가 놈들의 급소만 그대로 몇 번이고 걷어차서 완전히 기절시키는 동안 마치다는 빠른 몸놀림을 무기로 다른 경호원들에게 접근해 노부가 가르쳐준 급소를 퍽퍽 때렸다. 방 안까지 따라들어온 놈들은 몇 명 없었기 때문에 모두 처리한 노부는 마치다가 재빨리 쓰러진 놈들을 꽁꽁 묶어놓는 동안 소리없이 문을 잠그고 창 밖을 확인했다. 창 밖에는 곳곳에 두 명씩 짝을 지은 놈들이 경계를 하고 있었다. 노부 일행을 따라오던 놈들이 복도에 몇 명씩 자리를 잡고 서는 걸 봤으니 들어온 길로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오면서 훌어봤을 때 총은 보이지 않았지만 재킷에 가려져 있었을 수도 있고 칼 같은 걸 갖고 있을 수도 있었다. 

노부는 마치다가 쓰러진 놈들을 모두 묶어놓은 걸 확인한 뒤 마치다를 끌고 건물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면서 봤을 때 건물이 창문이 많은 구조라는 걸 확인했었다. 사람 장기 뜯어내면서 이렇게 안이 잘 보이는 구조가 가능한가 싶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문제의 불법 시설들은 지하실에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지하에서는 사람들이 우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바닥과 문을 거쳐서 웅웅거리며 억눌린 채 들려오고 있었다. 범죄자 놈은 처음부터 오늘 밤에 노부와 마치다를 데려올 생각이었을 테니 지금 저 아래에서 사람을 해치고 있을 리는 없고 갇혀 있는 이들이 우는 소리겠지. 하지만...

지금은 남까지 구할 여유는 없었다. 벌써부터 쪽안의 이상을 느꼈는지 뒤쪽에서 문을 퍽퍽 차는 소리와 범죄자 놈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노부는 범죄자 놈들이 순찰을 돌고 있는 건물 전면 쪽으로 나가는 걸 포기하고 문이 열린 방으로 들어가 건물 뒤쪽으로 나가는 창을 열었다. 이 건물 뒤쪽은 산과 연결돼 있는지 바로 숲이 보였다. 노부는 마치다를 끌고 숲 안으로 뛰었다. 몇 분 정도밖에 안 뛰었는데 그새 노부와 마치다가 있던 방의 문을 열고 안쪽의 상황을 파악했는지 뒤에서는 두 사람을 쫓아오는 이들의 고함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추적을 위해 개를 데리고 나왔는지 개 짖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가슴이 쿵쿵 계속 거칠게 뛰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달리고 있는데 옆에서 함께 뛰고 있던 마치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 짖는 소리가 이렇게 싫었던 건 처음이야."

상황은 여전히 끔찍했는데도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위험하다는 건 분명해서 스스로 느끼기에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용기 내요. 마치다 상의 말라뮤트가 옆에 있으니까요."
"사모예드야."
"네, 사모예드."

이번엔 정말로 웃겼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또 들려와서 웃음이 나오진 않았지만. 게다가 총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개소리가 정말 가까워졌을 때 노부는 몸을 숙여서 땅에 떨어져 있던 막대기를 던져 뒤를 돌아보고 여러 방향으로 나눠 던졌다. 그러자 쫓아오던 개들이 잠시 혼란스러워하며 주춤하는 게 보였다. 그래봤자 발을 잡는 건 잠깐이지만. 노부는 다행히 잘 따라오는 마치다를 끌고 더 속도를 올려서 계속 달렸다. 

'우리 같이 무사히 돌아가자. 노부.'

그 말이 귓가에서 울렸지만. 

안 될 것 같아요. 마치다 상. 

계속 총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총소리가 날 때마다 죽이면 안 된다는 고함소리가 뒤를 따랐다. 저게 얼마짜리인데! 조심해! 다리를 쏴! 종아리!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마치다와 노부에게 술담배는 안 하냐던 쓰레기놈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아마 잡히면 이식할 수 있는 모든 장기와 각막 같은 걸 다 뜯어내겠지. 소름이 끼쳤다. 노부는 다시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통화권 이탈로 뜨고 있었다. 아마 이놈들이 사유지 전체에 적용되도록 통신 방해 장치를 설치해둔 모양인데 범위가 너무 넓었다. 노부는 아까 이동 중 부장에게 보고를 해 두었다. 놈을 쫓고 있다고. 비상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대기하라고는 했는데 그때가 놈의 근거지에서 약 3km 거리였다. 아마 곧 통신 방해 범위를 벗어날 터였다. 


"마치다 상."
"응."

노부는 다시 한 번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던져 개들을 교란시킨 뒤 계속 달려가며 말을 이었다. 

"통신 잡히면 바로 부장한테 전화해요. 어차피 제가 마지막으로 부장에게 보고한 뒤로는 계속 갈림길 없이 외길이었으니까 제 핸드폰 마지막 위치 파악해서 거기서부터 쭉 길 따라 오면 된다고요."
"네가 해."
"마치다 상."
"네가 전화하고 네가 지원 요청하라고."

하나라도 살아야 했다. 그리고 하나만 살아야 한다면 빌어먹을 이 조직에 20년이나 이용당했던 마치다가 살아야지. 

"다육이들은 열흘에 한 번 정도만 물을 주면 돼요. 가끔 잎을 만져봐서 말랑해졌거나 잎에 주름이 생기면 주시고요. 지금 자리가 햇볕이 잘 드는 곳이니까 가끔 창문 열어서 바람 좀 쐬 주시고요."
"네가 해. 난 다 죽일 거야. 난 한 번도 뭘 키워본 적이 없어서 죽일 거야. 그러니까 네가 해. 네가 키워. 난 못해."

마치다는 불안해진 듯 말이 빨라지고 말이 많아졌지만 놈들이 정말 이제 지척에서 쫓아오고 있었다. 방금 총탄 한 발이 노부의 다리를 스칠 뻔했다. 휴대폰엔 여전히 통화권 이탈이 떠 있었다. 젠장. 노부는 아래쪽 도로와 이어지는 언덕 가장자리까지 뛰어가서 빠르게 경사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무뿌리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지면 위쪽에서 마치다의 발 밑을 쳐서 마치다를 쓰러뜨렸다. 물론 마치다의 상체를 끌어안듯 잡고 있어서 마치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일은 없었다.  

"노부! 뭐하는 거야!"

난 마치다 상과 같이 무사히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나 노부는 그 말을 삼키고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는 마치다를 붙잡아앉히고 억지로 웃었다. 

"통신방해를 할 수 있는 범위가 그렇게 넓을 리가 없어요. 조금만 뛰어가면 통신 연결되는 곳이 나올 거예요. 바로 부장님한테 연락해서 지원 요청해요. 최대한 멀리 도망가요 아니면 안전한 곳에 숨어서 기다려요."
"노부!"

노부는 마치다의 비명같은 외침을 들으면서 마치다의 등을 세게 밀었다. 

"나 무사히 버티고 있을 테니까 구하러 와 달라고 해요. 알았죠?"

강제로 떠밀린 마치다가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는 걸 보면서 노부는 아까 건물 안에서 범인 놈들에게서 훔쳐서 허리에 꽂아뒀던 칼과 파이프를 뽑았다. 그리고 마치다를 따라 언덕을 내려가려고 하는 놈의 얼굴에 커다란 돌을 주워 던졌다. 놈의 얼굴에서 피가 튀면서 끔찍한 비명도 함께 튀었다. 노부의 조직에서는 노부를 포함한 요원들이 임무 중 순직하거나 잡혀서 신변을 되찾을 수 없게 되면 노부 등 요원들과의 관계를 부인할 거라고 했다. 저놈이 죽으면 나도 감옥행인가.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한 놈도 마치다를 쫓아가게 둘 수 없었다. 

정말 무사히 버틸 수 있을까?

글쎄...




놉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