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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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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이와의 저녁시간은 화기애애했다. 튼튼이는 아직 마치다와 노부의 손가락에 반지를 없는 걸 보고 눈치빠르게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고 마치다와 노부는 온천 지역에서 선물용 기념품으로 사 온 해당지역의 특산품인 만쥬와 입욕제를 튼튼이에게 선물했다. 부모님도 튼튼이도 모두 달콤한 간식을 좋아하는 데다 이 지역의 만쥬는 굉장히 인기가 많은 제품이라 튼튼이가 좋아서 입을 못 다물 정도로 기뻐하자 마치다도 기뻐했다. 입욕제도 부모님이 굉장히 좋아하실 거란 말에 마치다의 표정은 더 밝아졌다. 내내 즐겁게 웃고 있던 마치다의 표정이 어색해진 건 튼튼이가 예쁜 천으로 꼼꼼하게 싸놓은 밀폐용기를 담은 종이봉투를 내밀었을 때였다. 

"얼마 전에 친척이 좋은 죽순을 보내주셨다고 죽순조림 좀 만드셨대요."
"아니, 좋은 죽순 들어왔으면 집에서 드시지."
"전에 마치다 상이 제 생일에 집에서 식사했을 때 맛있게 먹어줘서 언젠가 꼭 또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근데 마침 좋은 게 들어와서."
"아이.. 아니... 아이고..."

마치다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잃는 일이 없었다. 상대가 플러팅을 하든 조롱을 하든 대답이 궁색해서 헤매는 일은 없었고 심지어 협박을 당해도 할말은 다 했고 하지 않아도 될 말도 다했다. 그런 마치다가 이번엔 죽순조림이 가지런하게 담긴 반찬통을 보고는 그저 아이고...하며 반찬통을 감싼 천 끄트머리만 만지작거리다 힘겹게 감사인사를 건넸다. 





튼튼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온 뒤 노부는 목욕을 마치고 보송보송하고 따끈따끈해진 마치다에게 폭신폭신한 사모예드 잠옷을 입혀놓고 침대 위에 앉혀둔 노부짱에 기대 앉혀주며 품에는 노짱을 안겨주었다. 

"뭐해?"
"잠깐만요."
"응?"

마치다는 당황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노부가 세팅을 하는 동안 노짱을 안고 노부짱에게 기대서 편안히 앉아 있었다. 노부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부유키들과 케이짱도 노부짱과 마치다의 주변에 편안하게 깔아놓았고 침대 헤드쪽의 선반에는 창가에 있던 다육이들과 마치다가 놀이공원에서 노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뽑아서 넣어둔 액자도 가지고 와서 세워뒀다. 그동안 노짱을 꼭 안고 있던 마치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는데 그게 또 귀여워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더니 눈이 또 뾰족해졌다. 

"뭐하는 거야?"
"아니, 할 게 있어서 준비 좀 했는데 너무 귀여워서..."
"... 귀여워?"
"네."
"어디 봐."

새침한 표정의 마치다에게 방금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마음에 들었는지 여전히 새침한 표정으로 그러나 입꼬리를 움찔거리며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좀 더 찍어도 돼."

요즘 내내 시무룩하더니 온천 지역에서 사 온 입욕제를 넣은 따뜻한 물에 씻고 편안하게 앉아서 귀엽다는 말까지 들으니 기분이 좀 좋아졌는지 노부유키들과 케이짱, 노부짱을 번갈아가며 끌어안고 포즈도 취해 주었다. 나중에는 마치다와 마찬가지로 사모예드 잠옷을 입은 노부를 끌어안고 둘이 같이 커플잠옷 셀카를 찍거나 노부를 인형 사이에 넣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밤중의 촬영회를 하며 잠시 놀다가 노부는 다시 마치다를 인형들 사이에 앉혀주고 노짱과 케이짱을 품에 안겨준 다음 마치다의 앞에 앉았다. 

"사실 레스토랑을 예약해 놨었는데."
"레스토랑?"

마치다와 함께 갔었던 놀이공원의 레스토랑을 예약해 놨었다. 양심없이 비싼 곳이었지만 마치다가 좋아했었으니까. 마치다가 좋아했던 츄러스도 먹고 마치다와 함께 놀이기구도 잔뜩 타려고 했다. 그 레스토랑은 일부러 그렇게 지었겠지만 레이저쇼가 잘 보이는 창가 자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레스토랑을 얘약했다. 저녁에는 마치다가 푹 빠져서 바라봤던 레이저쇼가 열리는 시간에 레이저쇼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서 프로포즈를 하려고 했었다. 마치다가 태어나서 가장 행복했었다고 한 그곳에서 마치다에게 남은 인생을 함께해달라고 청하고 싶었다. 그날 그곳에서 행복했던 만큼 노부와 함께할 삶도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고. 우리 같이 행복하게 살자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리가 좋아서 그런지 예약 가능한 날짜가 많지 않더라고요."
"응?"
"그래서 잡긴 잡았는데 다다음 주에 겨우 잡을 수 있어서."

그런데 마치다가 최근 계속 울적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치다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던 그곳은 아니더라도 이제는 사람 사는 집이 됐다는 그곳에서 사람 사는 집처럼 만들어준 인형들과 다육이들, 액자까지 둘러놓고 마치다의 손을 잡은 채로 입을 열었다. 

"난 사실 이런 국가기관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어요. 선수 은퇴를 하고는 몇 년동안 부모님 일을 돕다가 전문직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었거든요. 공무원이 될 생각은 있었어도 이런 일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응."
"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은행강도 사건에 휘말렸었어요."
"은행강도?"

마치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걸 보면서 노부는 마치다의 손을 토닥였다. 

"아무래도 전 덩치도 있고 그러니까 절 인질로 삼을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런데 그때 어떤 분이 데리고 온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놈들이 그 아이를 인질로 잡았어요. 아이 어머니는 아이를 돌려달라고 울부짖다가 입이 막히고 아이는 놀라서 토하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는데 그냥 있을 수 없잖아요."
"너는 착하니까 그랬겠지."
"그래서 근처에 있던 은행 경비와 몇몇 분들과 눈짓 손짓으로 대략 계획을 짜서 덤벼서 결국 우리가 놈들을 무력화했거든요. 아이가 많이 놀랐지만 다행히 아이 어머니도 아이도 외상은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별로 한 건 없는데 용감한 시민상 같은 걸 받게 됐어요."
"넌? 넌 안 다쳤어?"
"네."
"다행이다."

마치다가 그제야 걱정이 좀 누그러진 얼굴로 노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용감한 시민상 같은 거 원래 홍보 목적도 있으니까 공개적으로 하잖아요. 사람들 별로 관심없어도 신문 구석에 조그맣게 나고 관공서 홈페이지에도 나고..."
"그렇겠지."
"그런데 상 받으러 갔는데 갑자기 비공개로 상금을 수여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상금을 받고 나서 보니까 우리 본부에서 나온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 그래서 그때 스카우트된 거야?"
"네. 강도 사건 직후에 인터뷰하면서 유도도 오래 하고 그랬다 뭐 그런 이야기도 했는데 그쪽 사람들이 그걸 보고 제 이력이나 이런 걸 찾아보고 관심이 갔다고 하더라고요."
"인재를 잘 쓰지는 못하면서 발굴하는 능력은 있나 보네."

그 조직에 좋은 감정이 있을 리 없는 마치다는 투덜거리듯이 말했지만 그래도 내심 뿌듯한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을 어쩌다 하게 돼서 처음엔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여러 모로 당황스러웠거든요."
"응. 그랬겠지."
"그러다가 이제 던전에 가서 마치다 상을 만나서 교육을 받고 같이 작전도 해 보라고 하는데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러면서 노부가 웃자 마치다도 피식 웃엇다. 

"내가 무서웠어?"
"처음에는요."

마치다가 입술을 삐죽삐죽거리는 걸 보면서 노부는 뾰족 나온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아직 낯선 조직도 무섭고, 클럽에 들어가 본 건 생전 처음이라 던전도 무서웠는데.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 비하면 마치다 상은 너무 유능했으니까 너무 까마득해 보여서 무서웠던 거죠."
"흥."

마치다는 삐죽거리면서도 노부의 입술에 입을 촉 맞춰줬다. 

"그런데 초반에 내가 엄청 많이 헤맸잖아요. 마치다 상 힘들게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실수도 많이 하고. 그래서 미안하고 면목없고 스스로한테 실망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니야. 너 잘했어. 너네 조직에서 보낸 사람 중에 네가 제일 유능하고 제일 뛰어났어. 제일 성실했고. 진짜야. 콩깍지 씌여서 그런 거 아니고 진짜로. 네가 제일 잘생겼고, 제일 착했어."
"고마워요."

열심히 말하는 게 귀여워서 여전히 잡고 있던 마치다의 손등에 입을 촉 맞춰주자, 마치다도 노부의 손등에 입을 맞춰줬다. 

"나 진짜 솔직히 마치다 상을 언제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
"마치다 상을 만난 이후로 함께 보낸 모든 순간이 다 좋았고, 그 모든 순간에서 마치다 상은 항상 사랑스럽고 예쁘고 멋있었거든요."

마치다는 작게 한숨을 쉬고 입술을 삐죽 내밀며 나직하게 투덜거렸다. 

"넌 너무 좋은 사람이야."
"좋아해요. 마치다 상."
"... 나도 좋아해."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었고 그럴 리 없기를 바랐지만 혹시 노부가 실수를 했다거나 혹은 그저 마음이 식어서 마치다의 마음에서 노부를 위한 자리가 없어진 게 아닐까 걱정도 했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마치다는 어째서인지 여전히 울적한 얼굴이었지만 노부를 좋아한다고 속삭이는 목소리에는 여전히 진심이 잔뜩 녹아 있어서 노부는 몇 달간 곱게 보관하고 있었던 반지를 꺼냈다. 마치다는 반지를 보더니 작게 웃었다. 

"진짜 나한테 주려던 반지였어?"
"네. 당연하죠. 제가 마치다 상 아니면 누구한테 반지를 줘요."
"그걸 그딴 놈한테 주려고 한 거야?"
"정말로 주려고 한 거 아니에요. 유인만 하려고 했어요. 마치다 상한테 줄 반지를 남한테 줄 리가 없잖아요."

마치다는 삐진 척 말하고 있었지만 반지를 본 순간부터 이미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져 있었다. 노부는 반지케이스를 잡고 있는 손에 땀이 차오르는 걸 느끼며 미리 준비한 단어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그런 이야기를 했었잖아요. 그 나쁜 조직에서 구조됐던 날 하늘에 뜬 무지개를 봤을 때 끔찍했던 시간이 다 끝났다, 이젠 뭘 해 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그때가 제일 기뻤던 날이었다고..."
"..."
"내가... 마치다 상의 무지개가 돼 주고 싶어요. 마치다 상이 이제 괴로운 일은 겪지 않게 해 주고, 뭐든 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어요. 내가 마치다 상과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던 것처럼, 마치다 상도 저와 함께하는 날들이 행복해지게 해 주고 싶어요... 마치다 상의 매일이 항상 기쁜 날들이 되게..."

그러자 마치다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처 닦아줄 틈도 없이 주륵주륵 흐르는 눈물에 노부의 가슴도 철렁 내려앉을 때, 마치다가 품에 꼭 안고 있던 노짱과 케이짱을 옆에 내려놓고 서둘러 다가오더니 노부를 끌어안았다. 품에 쏙 들어오는 마치다를 안고 등을 토닥여주자 노부의 어깨를 적시면서 한참이나 더 쏟아지던 눈물이 멈췄을 때쯤 여전히 젖어 있는 마치다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내가 많이 노력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마치다 상도 좋은 사람인데 왜 그런 걱정을 해요."
"타다오미군을 만났을 때 사실 좀 무섭긴 했어. 너도 이렇게 좋은 사람이고 타다오미군도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너랑 타다오미군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운 분들은 얼마나 좋은 분들일까. 넌 밝고 환한 곳에서 잘 자라서 앞으로도 평탄한 인생만 살아갈 수 있는데 내가 정말 너를 욕심내도 되나. 그런데 실제로 만나 뵈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분들이라... 내가 어떻게 자랐고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시면서 너무 잘해 주시니까 너무 미안해서... 널 놔줘야 되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 못 놔주겠는 거야. 그래서 미안하고 속상하고."

마치다가 부모님 밑에서 크지 못하고 범죄조직에 잡혀 있었던 건 당연히 마치다의 잘못이 아니었고 어릴 때부터 험하고 위험한 일을 하며 살았던 것도 당연히 마치다의 잘못이 아니었다. 나라를 돕는 일을 했던 만큼 당연히 나쁜 일도 아니었고. 그걸 마치다도 모를 리 없었다. 마치다도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주눅 들어서 자격지심에 시달렸겠지. 마치다가 그걸 모를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노부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마치다가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왔다는 걸 알고 있고, 누구 앞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며, 노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 말해 주었다.

그렇게 노부의 품에서 한참 울었던 마치다는 많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하고는 노부의 앞으로 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도 네 무지개가 돼 줄게. 나도 네 무지개가 되게 해 줘, 노부."





놉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