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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1 07:52
(1) (2) (3) (4) (5) (6) (8) (9) (10)
(11) (12)
남망기는 물론이고, 온정과 남희신도 며칠간 연화오에 머물렀다.
온정은 위무선의 몸에 이변이 생기지 않을지 살펴보기 위해서 남았지만, 남희신의 경우는 남망기가 또 사라져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위무선은 하루이틀 몸이 으슬으슬했지만 남희신이 계속해서 영력을 불어넣어주자 차츰 안정되어갔다.
그 동안 남희신은 남망기와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았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모르는 게 나을 법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꺼림칙했던 것이다.
위무선마저 충격을 받은 듯 말수가 줄어들었으니, 순수하게 기뻐하는 사람은 강징 뿐인 것 같았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강징에게 금단을 되살린 방법을 밝히지 않았다. 굳이 위무선이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게 아니더라도, 흉시의 금단을 옮겼다는 불길한 사실은 외부에 퍼뜨릴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강징은 캐묻지 않았다. 그는 천하제일의인 온정에 택무군까지 가세했으니 뭔가 수를 찾아낸 거라고 단순하게 믿고 있었다.
그 자신도 포산산인에게서 금단을 되살렸으니까.
“형장.”
“왜 그러느냐?”
“위영을 운심부지처로 데려가야겠습니다.”
남희신은 올게 왔구나 싶어 한숨을 쉬었다. 남망기가 돌아오는 건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숙부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리려고 그러느냐.”
“전부 사실대로 말씀드릴 겁니다.”
남망기의 무신경한 태도에 남희신은 그만 질리고 말았다. 더욱 기가 막히는 건 그가 고요하게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인생을 다 산 노인처럼, 앞으로 무엇이 닥쳐와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온정은 위무선이 절대적인 안정을 취하게 하면서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물론 그는 불평하지 못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면 위무선은 조용히 숨을 내쉬며 몸 속의 금단을 느껴보았다. 수백번, 수천번을 해도 질리지 않았다.
바람만 불어도 꺼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미약한 금단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자리를 잡아서 맥이 뛸 때마다 미미하게나마 영력의 잔물결이 일어났다. 다시 한 번 키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온정이 탕기를 가지고 나가자 남희신이 들어왔다.
“택무군.”
“위공자.”
위무선은 남희신이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을 알고 얌전하게 바라보았다.
“위공자, 망기가 위공자를 운심부지처로 데려갈 겁니다. 제가 지도할 테니 다시 한 번 금단을 맺어보도록 하지요.”
위무선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남망기에게 무엇도 거절할 수가 없었으니.
“그러니... 절대로 숙부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돌아간대도 당장 쫓아내시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위무선은 그런 일이야 전혀 걱정되지 않았지만, 근심하는 남희신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택무군. 걱정하지 마세요. 이 위모는 배은망덕한 인간은 아니랍니다.”
“위공자. 부탁이니 망기에게 상처 주지 마십시오.”
이 말에 모처럼 장난스럽게 웃어 보려던 위무선의 입가가 무색하게 가라앉았다.
이미 남망기가 함께 떠나자고 말했고, 위무선은 그러겠다고 약속한 뒤였다.
과거 숱하게 운심부지처로 가자는 말을 들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무서운 사내 같으니...’
위무선이 수련을 받기 위해 운심부지처로 간다고 하니 강징은 그래도 될까 미심쩍어하면서도 예물을 마련해 주었다.
‘이건 아마도 박살이 나던가, 되돌아오던가 둘 중 하나일텐데.’
위무선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떠나기 전 위무선은 드디어 수편을 꺼내들었다. 물론 뽑아서 휘두르기엔 어림도 없었다. 손잡이를 잡기만 해도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먼지 느낄 수 있었다.
나란히 고소를 향해 날아가던 중 남희신이 일렀다.
“숙부님을 뵙기 전에 먼저 의복을 단정히 갖추어라.”
“예.”
“설마 말액은... 말액을 버린 건 아니겠지?”
그가 품 속에서 말액을 꺼내자 남희신이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정말로 걱정되는 건 그런 일이 아니었다.
“남 선생님께서... 가만 있지 않으시겠죠.”
가만 있지 않을 거란 건 퍽이나 순화된 말이었다.
남희신이 앞을 바라보며 근심스레 말했다.
“작정하고 사술을 배우고 시체를 조종했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남망기는 구태의연한 것이 오가는 대화가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것이 대범한 건지 어린애같은 건지 몰라 남희신은 연거푸 한숨만 쉬었다.
의복을 정제한 남망기와 함께 남계인이 거처하는 대전 앞에 선 위무선은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과거 수학 시절에 분을 참지 못하고 책을 집어던지던 남계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는 세상 무서울 게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 분노가 남망기를 향해 터질 거라고 생각하자 사뭇 긴장이 되었다.
남희신이 위무선을 막으며 말했다.
“위공자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안으로 사라지자 육중한 대문이 닫혔고, 홀로 남겨진 위무선은 왔다갔다하며 애를 태웠다.
‘쫓겨나면 연화오로 데려가지, 뭐.’
그래 봐야 마음이 불안하여 아무렇게나 해 보는 생각일 뿐, 남망기에게 죄를 짓도록 한 것도 모자라 가문에서 쫓겨나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머리를 썩히며 노심초사하고 있으려니 문득 대문이 다시 열렸다.
위무선은 남망기가 무사히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희색을 띄며 달려갔다.
“남잠!”
하지만 남망기는 위무선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더니 사당 앞에 꿇어앉았다.
곧 양 문짝이 활짝 열리며 남계인과 남희신이 걸어나왔다.
남계인은 위무선이 예상했던 것처럼 노발대발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였다. 얼굴이 무섭게 굳은 채로 두 눈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분노가 가득했다.
곧장 터져 나온 서슬 퍼런 외침이 수사들을 불러들이고 놀라게 했다.
“계편을 가져와라!”
이 말에 깜짝 놀란 위무선은 이러니 저러니 변명을 하겠다던 계획도 싹 치워버렸다.
“안 됩니다, 존사! 전부 저 때문입니다! 남잠 말고 저를 때려 주세요!”
위무선이 달려가서 남계인의 발치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지만 그는 본 체도 하지 않았다.
“남망기, 몇 년이나 멋대로 사라진 것도 모자라, 감히 사술을 배우고 사용하다니!”
이내 계편을 가져온 수사들이 남계인에게 바쳤다. 위무선은 운몽 강씨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음습하게 빛나는 흉기를 보고 소름이 쫙 끼쳤다.
모두가 놀라거나 긴장하거나 겁내는 가운데 남망기 한 사람만이 초연하게 앉아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
남계인이 계편으로 내리치는 순간, 위무선은 불길이 덮친 듯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몇 초 후 그는 보기 싫은 것을 억지로 보는 것처럼 부들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남망기는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았으나 순식간에 두 눈에 핏발이 섰다.
등을 감싸고 있던 여러 겹의 옷이 단번에 찢어져 길다랗게 갈라진 상처에서 무섭도록 피가 번져나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를 갈며 달려나가려는 위무선을 남희신이 붙잡아 눌렀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입을 꽉 다물고는 위무선이 아무리 날뛰어도 놓아주지 않았다.
“남잠!”
또다시 내리치는 흉악한 소리에 몸부림치던 위무선이 얼어붙었다. 남망기의 입에서 울컥 피가 뿜어져나왔다.
위무선은 얼음처럼 굳은 몸이 덜덜 떨려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눈을 피할 수도 없었다.
이윽고 정신이 흐려진 남망기의 몸이 천천히 무너졌다. 힘을 잃은 육체에 다시 충격이 가해지자 헝겊인형처럼 흔들리며 쓰러졌다. 눈과 코, 귀에서 흘러나온 피가 포석을 물들였다.
남계인이 다시 한 번 내리치려고 계편을 치켜들자, 위무선은 그와 함께 숨이 멎어버리는 듯했다. 남희신의 손가락이 아프도록 어깨를 파고들었지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곧이어 무겁게 내리쳐진 계편이 섬뜩한 소리와 함께 돌바닥을 갈랐다.
남계인은 피투성이가 되어 넘어진 조카를 분노와 고통에 찬 눈으로 노려보다가 위무선에게 고개를 돌렸다.
깊은 노기가 서린 목소리가 마구 호통을 쳤다.
“위무선! 네 놈이 얼마나 잘났든 운심부지처에서는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앞으로 남씨 가규를 털끝만큼이라도 어기면 열 배로 벌을 줄 터이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썩 꺼져라!”
계편을 내던진 남계인이 대전 안으로 사라지자 얼른 달려간 남희신이 남망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위무선은 남희신에게 내리눌렸던 그대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혼이 나간 듯한 위무선의 머릿속에 불현듯, 난장강에 떨어졌을 때 겪었던 갖가지 악몽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눈을 감고 온 몸에서 피를 흘리는 남망기의 모습보다 끔찍한 장면은 찾을 수가 없었다.
희신광요 망기무선
(11) (12)
남망기는 물론이고, 온정과 남희신도 며칠간 연화오에 머물렀다.
온정은 위무선의 몸에 이변이 생기지 않을지 살펴보기 위해서 남았지만, 남희신의 경우는 남망기가 또 사라져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위무선은 하루이틀 몸이 으슬으슬했지만 남희신이 계속해서 영력을 불어넣어주자 차츰 안정되어갔다.
그 동안 남희신은 남망기와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았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모르는 게 나을 법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꺼림칙했던 것이다.
위무선마저 충격을 받은 듯 말수가 줄어들었으니, 순수하게 기뻐하는 사람은 강징 뿐인 것 같았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강징에게 금단을 되살린 방법을 밝히지 않았다. 굳이 위무선이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게 아니더라도, 흉시의 금단을 옮겼다는 불길한 사실은 외부에 퍼뜨릴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강징은 캐묻지 않았다. 그는 천하제일의인 온정에 택무군까지 가세했으니 뭔가 수를 찾아낸 거라고 단순하게 믿고 있었다.
그 자신도 포산산인에게서 금단을 되살렸으니까.
“형장.”
“왜 그러느냐?”
“위영을 운심부지처로 데려가야겠습니다.”
남희신은 올게 왔구나 싶어 한숨을 쉬었다. 남망기가 돌아오는 건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숙부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리려고 그러느냐.”
“전부 사실대로 말씀드릴 겁니다.”
남망기의 무신경한 태도에 남희신은 그만 질리고 말았다. 더욱 기가 막히는 건 그가 고요하게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인생을 다 산 노인처럼, 앞으로 무엇이 닥쳐와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온정은 위무선이 절대적인 안정을 취하게 하면서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물론 그는 불평하지 못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면 위무선은 조용히 숨을 내쉬며 몸 속의 금단을 느껴보았다. 수백번, 수천번을 해도 질리지 않았다.
바람만 불어도 꺼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미약한 금단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자리를 잡아서 맥이 뛸 때마다 미미하게나마 영력의 잔물결이 일어났다. 다시 한 번 키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온정이 탕기를 가지고 나가자 남희신이 들어왔다.
“택무군.”
“위공자.”
위무선은 남희신이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을 알고 얌전하게 바라보았다.
“위공자, 망기가 위공자를 운심부지처로 데려갈 겁니다. 제가 지도할 테니 다시 한 번 금단을 맺어보도록 하지요.”
위무선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남망기에게 무엇도 거절할 수가 없었으니.
“그러니... 절대로 숙부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돌아간대도 당장 쫓아내시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위무선은 그런 일이야 전혀 걱정되지 않았지만, 근심하는 남희신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택무군. 걱정하지 마세요. 이 위모는 배은망덕한 인간은 아니랍니다.”
“위공자. 부탁이니 망기에게 상처 주지 마십시오.”
이 말에 모처럼 장난스럽게 웃어 보려던 위무선의 입가가 무색하게 가라앉았다.
이미 남망기가 함께 떠나자고 말했고, 위무선은 그러겠다고 약속한 뒤였다.
과거 숱하게 운심부지처로 가자는 말을 들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무서운 사내 같으니...’
위무선이 수련을 받기 위해 운심부지처로 간다고 하니 강징은 그래도 될까 미심쩍어하면서도 예물을 마련해 주었다.
‘이건 아마도 박살이 나던가, 되돌아오던가 둘 중 하나일텐데.’
위무선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떠나기 전 위무선은 드디어 수편을 꺼내들었다. 물론 뽑아서 휘두르기엔 어림도 없었다. 손잡이를 잡기만 해도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먼지 느낄 수 있었다.
나란히 고소를 향해 날아가던 중 남희신이 일렀다.
“숙부님을 뵙기 전에 먼저 의복을 단정히 갖추어라.”
“예.”
“설마 말액은... 말액을 버린 건 아니겠지?”
그가 품 속에서 말액을 꺼내자 남희신이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정말로 걱정되는 건 그런 일이 아니었다.
“남 선생님께서... 가만 있지 않으시겠죠.”
가만 있지 않을 거란 건 퍽이나 순화된 말이었다.
남희신이 앞을 바라보며 근심스레 말했다.
“작정하고 사술을 배우고 시체를 조종했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남망기는 구태의연한 것이 오가는 대화가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것이 대범한 건지 어린애같은 건지 몰라 남희신은 연거푸 한숨만 쉬었다.
의복을 정제한 남망기와 함께 남계인이 거처하는 대전 앞에 선 위무선은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과거 수학 시절에 분을 참지 못하고 책을 집어던지던 남계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는 세상 무서울 게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 분노가 남망기를 향해 터질 거라고 생각하자 사뭇 긴장이 되었다.
남희신이 위무선을 막으며 말했다.
“위공자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안으로 사라지자 육중한 대문이 닫혔고, 홀로 남겨진 위무선은 왔다갔다하며 애를 태웠다.
‘쫓겨나면 연화오로 데려가지, 뭐.’
그래 봐야 마음이 불안하여 아무렇게나 해 보는 생각일 뿐, 남망기에게 죄를 짓도록 한 것도 모자라 가문에서 쫓겨나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머리를 썩히며 노심초사하고 있으려니 문득 대문이 다시 열렸다.
위무선은 남망기가 무사히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희색을 띄며 달려갔다.
“남잠!”
하지만 남망기는 위무선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더니 사당 앞에 꿇어앉았다.
곧 양 문짝이 활짝 열리며 남계인과 남희신이 걸어나왔다.
남계인은 위무선이 예상했던 것처럼 노발대발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였다. 얼굴이 무섭게 굳은 채로 두 눈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분노가 가득했다.
곧장 터져 나온 서슬 퍼런 외침이 수사들을 불러들이고 놀라게 했다.
“계편을 가져와라!”
이 말에 깜짝 놀란 위무선은 이러니 저러니 변명을 하겠다던 계획도 싹 치워버렸다.
“안 됩니다, 존사! 전부 저 때문입니다! 남잠 말고 저를 때려 주세요!”
위무선이 달려가서 남계인의 발치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지만 그는 본 체도 하지 않았다.
“남망기, 몇 년이나 멋대로 사라진 것도 모자라, 감히 사술을 배우고 사용하다니!”
이내 계편을 가져온 수사들이 남계인에게 바쳤다. 위무선은 운몽 강씨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음습하게 빛나는 흉기를 보고 소름이 쫙 끼쳤다.
모두가 놀라거나 긴장하거나 겁내는 가운데 남망기 한 사람만이 초연하게 앉아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
남계인이 계편으로 내리치는 순간, 위무선은 불길이 덮친 듯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몇 초 후 그는 보기 싫은 것을 억지로 보는 것처럼 부들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남망기는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았으나 순식간에 두 눈에 핏발이 섰다.
등을 감싸고 있던 여러 겹의 옷이 단번에 찢어져 길다랗게 갈라진 상처에서 무섭도록 피가 번져나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를 갈며 달려나가려는 위무선을 남희신이 붙잡아 눌렀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입을 꽉 다물고는 위무선이 아무리 날뛰어도 놓아주지 않았다.
“남잠!”
또다시 내리치는 흉악한 소리에 몸부림치던 위무선이 얼어붙었다. 남망기의 입에서 울컥 피가 뿜어져나왔다.
위무선은 얼음처럼 굳은 몸이 덜덜 떨려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눈을 피할 수도 없었다.
이윽고 정신이 흐려진 남망기의 몸이 천천히 무너졌다. 힘을 잃은 육체에 다시 충격이 가해지자 헝겊인형처럼 흔들리며 쓰러졌다. 눈과 코, 귀에서 흘러나온 피가 포석을 물들였다.
남계인이 다시 한 번 내리치려고 계편을 치켜들자, 위무선은 그와 함께 숨이 멎어버리는 듯했다. 남희신의 손가락이 아프도록 어깨를 파고들었지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곧이어 무겁게 내리쳐진 계편이 섬뜩한 소리와 함께 돌바닥을 갈랐다.
남계인은 피투성이가 되어 넘어진 조카를 분노와 고통에 찬 눈으로 노려보다가 위무선에게 고개를 돌렸다.
깊은 노기가 서린 목소리가 마구 호통을 쳤다.
“위무선! 네 놈이 얼마나 잘났든 운심부지처에서는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앞으로 남씨 가규를 털끝만큼이라도 어기면 열 배로 벌을 줄 터이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썩 꺼져라!”
계편을 내던진 남계인이 대전 안으로 사라지자 얼른 달려간 남희신이 남망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위무선은 남희신에게 내리눌렸던 그대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혼이 나간 듯한 위무선의 머릿속에 불현듯, 난장강에 떨어졌을 때 겪었던 갖가지 악몽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눈을 감고 온 몸에서 피를 흘리는 남망기의 모습보다 끔찍한 장면은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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