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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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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삼 년 전, 아직 맹씨였던 금광요는 그해 모친이 돌아가시자 생부 금광선에게 혈통을 인정받으러 찾아갔지만 인정은커녕 발에 채여서 계단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그의 출생을 만천하에서 비웃기라도 하듯 맨 마지막 계단까지 햇살이 쨍하게 내리비추던 날이었고, 금자헌의 생일이자 이마가 깨져 피를 뚝뚝 흘리던 맹씨 소년의 생일이기도 한 날이었다. 그때 상차림을 지휘하던 금자봉은 상황을 조용히 관망하다가 이목이 서서히 흩어질 때 하인을 시켜 그에게 따로 여윳돈을 챙겨 주었는데,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저 순수하게 어디를 가도 굶어 죽지 말란 뜻이었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밥을 굶는다는 건 무척 서러운 일이었으니까. 금자봉 그녀의 고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미 상처 난 자존심 때문에 빠르게 돈만 챙겨 떠난 금광요는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머리를 어찌 잘 굴렸는지 청하 섭씨의 부사 맹씨로 어엿하게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이 좋은 자리를 꼬박 일 년을 채우고 난 뒤 모종의 이유로 사임했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날 평소 그를 곱지 않게 보던 같은 직급의 부사 총령이 탈옥수에게 교살당했다. 거기에다가 이날 섭명결의 서재에서 비급 몇 개가 분실되었고, 몇몇 토지 문서는 누군가 들여다본 게 확인되었다.

직접 증거는 전무했지만 여러 정황상 부사 맹씨가 강력한 용의자 중 하나로 떠올랐는데, 섭종주께서 이를 알고도 부사 맹씨를 다시 섭가로 불러들이는 일은 없었다. 일의 앞뒤가 어느 정도 파악되었을 때 금린대에서 그의 입적을 대대적으로 선포했기에. 증거도 없이 정황만으로 금광요를 추포할 수 없던 섭명결은 그리하여 그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오늘, 정확히 이 년 하고도 석 달 만에 맹부사를 다시 본다.

청하 섭씨에서도 검은 이무기 소문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려고 나선 것이다. 청하는 지리상 난릉과 밀접했기에 금광선에게 섭가 주도로 합동 조사를 제안했는데, 그 어두운 속을 알 길 없는 능구렁이 영감 금광선은 양가 사이에 인력 정도야 당연 기꺼이 내어주지만 이를 지휘할 금가 사람은 그가 스스로 고르라는 말을 덧붙였다. 어쩐지 상당히 수상한 조건이었으나 이미 난릉에까지 온 이상 사사로운 걸 따지기에는 영 성가셨다.

하여 지금 이 순간 섭명결의 눈앞에는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풀썩 쓰러질 것 같은 금가 여식과, 제 아버지 못지않게 속이 시커먼 금가 자제가 예를 갖추어 나란히 서 있었다. 쓸모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여자와 신뢰라고는 전혀 가지 않는 놈팽이 사이에서 한 명을 고르라니.

허나 괘씸한 고양이에게 어찌 생선을 맡기겠는가.

“여인들은 짐을 꾸리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오?”

섭명결은 금자봉의 앞에 똑바로 섰다. 그깟 쓰임새는 어떻게든 만들어주면 될 일이었다.

“지금부터 조사 인력까지 대동하려면 반 시진이 조금 넘게 걸릴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편하게 기다려 주시지요.”

곧 금자봉은 금광요와 함께 응접실을 떠나가면서 어떻게 짐을 꾸려야 할지 생각하는데, 줄곧 침묵하던 금광요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걱정하지 마. 적봉존은 능력 있는 자를 신임해주니 네 유능함을 먼저 증명하면 섭가에서 무시당할 일은 없을 거야.”

“그렇다고는 익히 들어서 어느 정도 알기야 하다만, 어째서 광요 네가 아니라 갑자기 나를 고르셨는지 잘 모르겠네. 오히려 네가 구면이잖아.”

점점 앞으로 나아갈수록 기둥 사이로 빛이 들어와 차츰 밝아지는 회랑에서 양달과 그늘이 경계지는 곳 한가운데 두 사람은 문득 멈춰 섰다.

먼저 앞서가던 금자봉은 양지 바른 따뜻한 바닥에 서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뒤따라가던 금광요는 바로 그늘 아래 서게 되었다. 별안간 시야가 밝아져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뜬 금광요는 뒤늦게 앞을 확인했는데, 금자봉의 머리 위로 맑은 가을 햇살이 아주 고르게 내려앉아 꼭 은모래를 한껏 끼얹은 듯 투명하게도 반짝거렸다. 그 다음에는 아주 익숙하고 당연하게 손가락 끝이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아릿해졌다.

“뭐, 적봉존께 나는 더 이상 유능하게 뵈지 않나 보지.”

그러니까, 이 모든 게 전부 다 독두꺼비 때문이었다.

금광요는 곧 능숙하게도 눈을 돌려서 그림자 속으로 빠트렸다.

“얘는 말이면 다인 줄 아네. 하기야 너는 이제 금가의 사람이니까 적봉존께서 정말로 어찌 생각하시든 신경 쓸 필요가 없기도 해. 네 유능함은 우리가 잘 알고 있으니.”

금자봉은 낮게 웃으면서 다시 저 앞을 바라보았다. 금광요 그보다 오랜 세월 이 황금 지붕 아래 짓눌려 살았으면서 웃어야 할 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퇴색되지 않고 아름답게.

“바쁘지 않으면 같이 가자. 내 방 앞까지 가는 동안 부사로 지냈을 때 있었던 일들을 들려줘. 굳이 굳이 시간을 늘려서 반 시진이나 얻어냈는데 떠날 준비는 아주 단단히 하고 가야지.”

“이것 좀 봐라. 대가 하나 없이 남의 정보를 막 알아내려 들어.”

“돌아오는 대로 한 턱 낼게. 그러니까 이용당해줄래?”

금광요는 또 머릿속에서 징징 울리는 독두꺼비의 고함 소리를 애써 태연히 무시하면서 사촌 누이가 걸어간 길을 그대로 밟아 따라나섰다.

“그래요, 그래. 금낭자께서 원하신다면 그리 해야죠.”

그러는 한편 금자봉은 천연하게 웃고 있으면서도 온 마음에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은 듯 서늘해졌다.

남이공자를 어찌저찌 막 쫓아냈더니 이번에는 또 적봉존께서 찾아오셨다. 거기에다가 합동 조사라. 방으로 들어선 금자봉은 대번에 낯이 차분하게 착 가라앉았다. 한편 짐을 꾸리던 붕팔은 상전을 따라 난릉 밖으로 나서는 일이 처음인지라 소풍 나가듯 들떠 보였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실낱 같지만 조금이나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곧 있으면 추운 겨울이니 피풍의도 몇 벌 챙기자며 재잘대는 게 봄 하늘의 종달새 같았다.

“가는 길이 제법 고될지도 모르는데, 정말 괜찮겠니?”

“괜찮아야죠! 저는 워낙 천한 이름이라 그동안 병 한 번 걸리지 않고 튼튼하게 살아와서 어디를 가든 별 탈 없이 괜찮을 거예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금자봉은 붕팔의 말속에 모종의 아픔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떤 사람은 숨기고 싶은 상처일수록 오히려 별 것 아니라는 듯 햇살 아래에 모든 걸 그저 가지런하게 꺼내놓았다.

“네 이름에 운이 따라주는 모양이구나. 그러면 나도 기대어볼까.”

 
***


무대는 바뀌어 청하 선부, 그 삼엄한 잿빛 성 부정세.

금가에서 차출된 인력은 금자봉까지 포함하여 총 다섯이었다. (시녀 붕팔은 세지 않았다.) 이에 섭가의 인력을 더하면 정확히 딱 열이었으니 탐문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형태였다. 인원이 아무리 많아 봤자 눈에 띄는 것밖에 더 되지 않았으므로. 섭종주께서 평소 유명한 원수지간인 기산 온씨를 의식했는지 암암리에 움직이는 만큼 금자봉 또한 신중해졌다. 그녀는 이 합동 조사를 꾸준히, 은밀히 방해하던 중이었으므로. 탐문 조사를 거듭할수록 소문의 검은 이무기께서 자신의 곁을 지켜온 대왕이라는 건 이제 너무나 자명한 불변의 사실이었다. 그러니 당연 지켜야 했다.

한데 어찌하여 대왕께서 선문 세가를 대신해 이 땅의 사악한 것들을 무찌르고 계시는가. 어째서냐니, 어느 누군가 멀리서라도 괜찮으니까 나타나주면 안 되겠냐고 빌지 않았나. 나타나달라, 그리 빌었다. 눈을 뜨고 사는 동안 평생 묵묵히 싸우고 또 싸워서 그것 외 달리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지 못한 상처투성이 용에게.

그만 울거라. 죽지도 않고 살아 있는데 어찌 이리 엉엉 울어. 추하다고 말해야만 그칠 테냐.

오직 그녀 한 사람 때문에 비늘 갑주부터 마음까지 전부 시뻘건 피로 칠갑 된 그 사람에게.

…….

금방이라도 땅이 꺼져 무너져 내릴 듯 불길하고 거무죽죽하던 누군가의 꿈. 그 위태로운 공간의 끝에서 꼭 죽은 것처럼 웅크려서 누워 있었던 거대한 몸. 멀어지는가 싶더니 찰나의 그 순간 맞잡은 형태가 되어 흡사 옥으로 만든 나뭇가지 같이 단단하게도 얽히던 두 손. 서로의 숨이 코앞에까지 가까워지자 금기를 어기기라도 한 듯 어느새 모래알처럼 흩어져 죄 사라지고 없던 발밑. 말 그대로 검고 깊은 바다, 나락으로 함께 추락하던 일그러진 용 가면과 자신. 무너져 내리는 꿈속에서 거꾸로 치는 낙뢰와 같이 용솟음치며 눈부신 미지의 빛 속으로 날아오르던 칠흑의 용종. 위대하고도 또 연모하는 그녀의 대왕.

금자봉은 깊이 후회했다. 영원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 자연스레 언젠가 모든 걸 내려놓고서 분명 저 하늘로 돌아갔을 무구의 용을 다시 이 지상으로 끌어내린 건 금자봉 자신이었다.

그가 더 이상 피를 흘리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했다.

전생이라는 건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지나간 이전의 삶이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 지금, 현재였다. 과거에 그 어떤 무수한 오해와 잘못이 있었더라도 그녀의 위대한 대왕이 또 다치는 일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막아야 한다, 어쩐지 그게 오랜 사명처럼 느껴졌다.

허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얼굴만큼은 누군가 억지로 뜯어낸 듯 공허하게 텅 비어 있었다. 좀처럼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 산산조각 난 기억과 풀릴 듯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꼬리에 계속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차, 부정세에서 경천동지할 큰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그’ 남망기가 멱살이 잡혀서 끌려왔다.

그러니까, 어…… 강만음에게.

거기에다가 둘 다 얼굴이 피떡이 되어서 말이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강만음은 옷 여기저기가 구겨졌을 뿐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는데, 그 반면에 남망기는 호되게 당하기라도 했는지 어느 한 군데 성한 곳 없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선문 수행자고 나발이고 자기들끼리 치고받으며 싸웠다는 게 명명백백한 꼴들이었다.

“일단, 거…… 놓고 이야기할까. 전부 다 놓고.”

안 그래도 조사가 난항을 거듭하여 고민이 많았던 섭명결은 이 뜻밖의 상황에 피곤함은 물론이요 심한 두통까지 겪고 있었다.

“망기 너도 똑같다. 검에서 손 좀 떼거라. 네가 그러면 강공자가 어찌 놓겠느냐?”

두 놈 다 그냥 어디에다가 확 던져서 처박아버릴까.

한편 자신이 끼어들어도 될 자리인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아 대청 바깥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금자봉은 곧 일의 전말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번 밤 소동에서 벌써 달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남망기는 고집스럽게 강만음을 의심하여 계속 추격하고 또 추격한 끝에 기어이 싸움이 붙어서 이 난리가 벌어진 것이었다. 두 사람보다 체면이라는 걸 잘 알았던 섭명결은 일이 더 커지지 않게 입단속을 시키고자 대청에서 모든 사람들을 이제 막 몰아낸 참이었고. 그 광경에 정반대로 금자봉은 이끌린 것이었으며.

“간청합니다. 공명정대하신 섭종주께서 명확히 판단해 주십시오. 종주께서도 정녕 제가 사마외도로 보이십니까?”

다시 돌아와 그 주제였다. 강공자는 사마외도인가.

금자봉은 당연 동의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이무기 사태의 진범과 전말을 이미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허나 강공자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것 또한 알았다. 이릉 난장강, 갈 곳 없는 시체들과 길 잃은 온갖 요마귀괴가 날뛰는 그곳을 패검 한 자루만 들고 이잡듯 토벌했던 게 대중의 이목을 지나치게 산 것이었다. 강자란 본래 눈길을 끈다. 눈길뿐 아니라 질투와 의심도 함께. 금자봉 그녀의 낡고 오랜 기억에서도 어느 누군가 강대하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많은 이들의 의심에 시달리면서 버텨왔었다.

하여 소녀는 이 문 너머의 한 소년에게 누구보다도 깊은 이해와 본래 다른 이에게 향했어야 할 모종의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연민 비슷한 것도. 허나 소녀는 이 부정세에 지금 금가의 대표자로서 와 있었기에 멋대로 나서서 소년을 두둔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아직 숙부께 그 어떤 지시도 전달받지 못한 것 또한 어느 정도 이유가 되었다. 소녀가 내뱉는 말은 곧 금가의 입장이 될 수 있었다.

금자봉은 또 그 사이에 가문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제 자신이 기막히게도 지겨워졌다.

이렇게 재고 저렇게 재다 보면 결국 전부 놓칠 텐데.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금자봉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허공에 손을 뻗었다. 곧이어 소량의 영력을 응집시켜서 눈부신 금빛 매 한 마리를 만들어냈다. 수사들끼리 상황이 시급할 때 보내는 임시 전서구 술법이었다. 술법의 형태는 시전자마다 각양각색으로 다양하여 이는 곧 가문을 나타내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기산 온씨에서 까마귀를 사용하는 건 수진계에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허나 이 금빛 매는 오로지 금자봉 그녀의 것이었다.

고개를 숙여 금빛 매에게 무어라 작게 소근거리자 매는 주인의 뜻을 완벽히 이해했는지 지체 없이 날개를 펼쳐서 머리 위 푸르른 하늘로 어떤 소음도 없이 고요히 날아올랐다. 선부에서 일한다고 하나 방금과 같은 모습은 생전 처음이었던 붕팔은 눈을 반짝거리며 자신의 신분을 잊은 채 아가씨에게 보채듯 물었다.

“아가씨! 방금, 방금 저 새는 무엇인가요?”

“응, 지원 요청.”

금자봉은 매가 날아간 방향을 잠시 쭉 바라보다가 머지않아서 눈을 거두고 붕팔에게 이만 돌아가자 말을 꺼냈다.

“어라, 섭종주께 드릴 말씀이 있으신 게 아니었나요?”

“있긴 있는데, 아마 나 대신 다른 분께서 해주실 거란다. 그러니 우리는 걱정 말고 이만 돌아가자구나. 네 걱정대로 날이 점점 추워지니 아주 조금만 서 있었던 건데도 손발이 싹 다 어는 것 같다. 자자, 어서 돌아가자. 어서.”

금자봉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면서 자신의 선택을 아주 잠깐 후회했지만, 백 번 천 번 생각해 보아도 그녀의 결정은 이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가 하면 강만음은 이 빌어먹을 남가 애송이 놈 때문에 얼마나 골치가 아픈지, 지금 당장이라도 갈아마시지 않으면 그게 평생의 한이 될 것 같았다.

운몽 강씨의 고유 검법이 손에 덜 익었을 때 붙은 게 실수였을까. 그놈의 검흔, 그까짓 검흔 하나 때문에 발이 잡혀서 세상 끝까지 쫓아다닐 기세로 지겹게 쫓아오는데 이 껍데기만 아니었으면 이미 오래전 삼켜버렸을 잔챙이였다. 아니다, 잔챙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튼튼하여서 아무리 흠씬 패고 또 패도 귀신같이 벌떡 회복해서 거듭 쫓아오지를 않았나.

강만음은 이제 남망기의 이름이라면 듣기만 해도 치가 떨렸다.

잘못하면 손이 어긋나가 죽여버릴까 봐, 그 때문에.

하여 이번에 끝을 기어이 보겠답시고 머나먼 청하 섭씨에까지 멱을 잡아 질질 끌고 왔다. 어디를 가든 쫓아다니며 공정한 심판을 받으라 요구했으니 기꺼이 그리 해주겠다는 심산이었다. 이러한 탓에 그의 본가인 운몽 강씨는 망할 공정성을 따지느라 당연하게도 아니요. 남가 애송이 놈의 본가인 고소 남씨는 말할 것 없고 난릉 금씨는 사돈 사이니 또 제외하여 마침내 최종 목적지, 청하 섭씨에 겨우 다다르게 된 것이었으나.

“사마외도라, 내 당장 잠들지 못하면 이대로 사도의 길로 들어설 것 같소이다. 요 며칠째 계속 불면이라.”

섭명결은 남망기의 말을 들어보기도 전에 그 입을 닫게 만들어 강만음이 얼마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따위는 그에게 전혀 알 바 아닌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일을 그저 단순 다툼이라고 빠르게 판단한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판결은커녕 또 남망기가 쫓아다니게 내버려두는 것과 다를 게 하나 없었다. 이 애송이를 저지하려면 공신력 있는 권위자의 말 몇 마디가 몹시 간절했다. 인세에서는 거슬린다고 무심코 상대의 머리를 쑥 뽑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몰래 뽑아버리면…… 아니다, 아냐. 역시 그 애가 싫어하겠지. 그래도 한 번쯤 얼굴을 봤던 놈이니.

……아닌데, 분명 무례하다고 싫은 티를 내지 않았었나? 그러면 죽여버려도 되나? 허락했다고 봐도 되려나?


성가심 때문에 판단력이 매우 급격하게 저조해진 강만음이 대체 남망기를 어떻게 몰래 죽여버릴지 고심하던 차, 대청 밖으로 어느 누군가 우당탕 큰 소리를 내면서 달려오는 게 서서히 가까이 들려왔다. 반면 강만음은 아직까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소리에 민감한 남망기가 뾰족한 귀를 쫑긋거리자, 그때 그 순간 대청의 문이 우렁차게도 벌컥 열렸다.

“나, 남잠, 이 미친, 미친 게, 뭘 어쨌다고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숨을 헐떡거리는 운몽 강씨, 위무선이었다. 큰 키 못지않게 날쌔기로도 유명했던 위무선은 곧 남망기에게 뛰어들어서 겨우 자유로워져 있었던 멱살을 또 단단히 쥐었다.

“제정신이야? 저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손을 대?”

지나가다가 잘못 들으면 남망기가 꼭 위무선의 여동생을 범한 것 같은 언사에 남망기는 대번에 얼굴이 창백해져 위무선의 사나운 입부터 양손으로 꽉 틀어막았다.

한편 그 옆에서 강만음은 벙찐 얼굴로 가만 있었고, 섭명결은 이 망할 천둥벌거숭이들을 또 원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