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 https://hygall.com/603748719
Chapter 2 : https://hygall.com/603749446
Chapter 3-1 : https://hygall.com/603750037
Chapter 3-2 : https://hygall.com/604238321
Chapter 4-1 : https://hygall.com/604567894

- 번역 허락은 아오삼 커맨트를 안보셔서 작가님 ㅌㅂㄹ 메시지로 받았음
- 현대 AU
- 피드백 감사
- 타투에 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음 주의......







아침을 반쯤 먹었을 때 아나킨은 오비완의 붉어진 얼굴을 감상하며 오비완이 어떻게 자신의 침대에 눕게 되었는지를 4분의 1정도 설명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아나킨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만약에 벨소리가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아나킨은 못 들은 척 지나갔거나 옆집에서 들리는 벨소리인척 했을 거다.

하지만 벨소리는.....

"렉스, 당신의 전화가 울리는데요." 아주 고맙게도 오비완이 지적해줬다.

아나킨은 입안에 들어찬 음식을 천천히 씹고 나서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요." 아나킨은 자신의 소울메이트가 자신이 전화를 무시하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오비완이 아나킨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 오비완의 전화라면 언제나 받을 테지만 오해는 피하고 싶었다.

그냥 때와 상황에 따라 받지 않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아나킨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화면에는.... 제기랄, 파드메의 이름이 떠있었다.

"꼭 받아야하는 전화가 왔네요." 아나킨이 말했다. "안 받으면 제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받지 않으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걸요." 오비완은 우아하게 오믈렛을 베어 물면서 지적했다.

아나킨은 인상을 살짝 썼지만 오비완의 논리에 반박할 수 없었다.

소울메이트와 문 세 개와 방 두 개만큼 멀어지고 나서야 아나킨은 화장실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 "파드메! 안 그래도 방금 전화하려고 했-"

"아나킨 스카이워커, 길이 꽉 막혀서 못 움직이고 있는 게 좋을 거야. 나 혼자서 다 못한다고, 이 나쁜 놈아." 갑작이 끼어든 파드메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아나킨은 오비완과 멀리 떨어지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매서운 목소리에 움찔거리는 몸은 막을 수 없었다. "사실 아직 출발도 안했어." 아나킨은 사실대로 말했다. "내 집에 누가 와있거든. 파드, 나.... 소울메이트를 만났어."

이 고백은 파드메가 1초 동안 말을 못하도록 막는데 효과적이었다. 딱 1초 동안만. "그럼 여기로 데려와." 빠르게 결론을 내린 파드메가 말했다. "하지만 20분 내로 오지 않으면 내 손으로 다시는 오늘 일을 잊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겠어."

"난-" 아나킨은 말을 하려고 하다가 입을 닫았다. 사실 아나킨은 오비완과 함께 파드메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오비완을 파드메와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나킨은 적어도 오비완 케노비에 관해서는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는데 재능이 있지 않았다. "알겠어. 하지만 지금 당장 네가 쿨하게 받아들어야 하는 게 몇 가지 있어."

"아나킨." 파드메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천천히 아나킨을 불렀다.

"그래, 내 이름에 관해서부터 시작하면 딱이야. 그러니까.... 좀 웃긴 이야기인데......."

---

아나킨이 부엌으로 돌아왔을 때 오비완은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하며 접시를 싱크대에 올려두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커피잔을 씻어서 선반에 올려 말리는 것을 보니 오비완도 아까보다 훨씬 더 잠에서 깬 것 같았다. 

"제가 할 일이었어요." 아나킨이 말했다.

"렉스, 당신은 집 주인이잖아요." 오비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오비완처럼 미소를 지었더라면 아나킨은 그 사람이 우쭐거린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리고.... 당신이랑 통화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한동안 가있길래 당신에게....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할까봐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요......"

"저랑 같이 핫초코랑 귤이랑 피넛버터 샌드위치를 나눠주러 공원에 가지 않을래요?" 오비완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인생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나킨이 갑자기 외쳤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다음 타투 예약 날까지 보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아나킨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상상만 해도 견디기 힘들었다. 갓 잠에서 깨어나 헝클어진 옷을 입고 아나킨의 식탁 앞에 앉아있는 오비완은 제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나킨은 그런 소울메이트가 떠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아나킨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는 오비완은 머리로 적절한 문장을 만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네?"

아나킨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시의회에서 일하는 파드메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매 주말마다 저는 야들 공원 분수대 근처에서 무료 급식을 나눠주는 파드메를 도우러 가거든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나눠주는 거라서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샌드위치 안에 이상한 걸 넣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원에서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해요. 물도 나눠주고요. 오늘은 늦어버렸지만.... 그리고 방금 전화한 사람이 파드메였어요. 제가 오지 않아서 전화를 한 거였어요. 오늘이 당신의 휴일이라는 건 알아요. 쉬는 날까지 음식을 만들고 싶지는 않겠죠. 하지만.... 만약에 원한다면....... 저랑 같이 가지 않을래요? 시간이 된다면요. 같이 가고 싶어서 그래요."

오비완은 아나킨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스스로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걸친 옷 말고 입을게 없는걸요. 시의원님을 만나는데 이렇게 입고갈 수는 없어요."

일종의 미친 듯한 환희에 사로잡힌 아나킨은 밝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제 옷을 입으세요."

---

24분 뒤에 마침내 주차를 마친 아나킨이 차문을 열자 공원의 차가운 겨울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나킨의 셔츠 두 벌과 후드까지 쑤셔 입은 오비완은 움직임이 둔해졌다. 아나킨이 옷장에서 쓸어온 옷을 봤을 때 이 나이든 남자는 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아나킨은 드디어 찾은 소울메이트가 오늘 감기에 걸리거나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외치려고 했지만 명백한 이유 때문에 그 말을 삼켜버렸다. 

파드메는 요즘 유행하는 폭신폭신한 양털 재킷을 입고 양손을 옆구리에 올린 채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에 널린 난장판을 본 아나킨은 파드메가 아침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응대하느라 끔찍할 만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오, 의원님을 뵈었던 게 기억납니다." 테이블에 가까워지자마자 오비완이 신나게 말했다. "몇 달 전에 여기서 조깅을 하다가 의원님을 만난 게 저에요! 제가 음수대 앞에서 멈췄을 때 의원님께서 저를 붙잡고는 그게 고장 났다고 말해주셨잖아요. 그리고 마지막 남은 물병을 주시기도 했고요! 그걸 받는 게 얼마나 죄송했는지 몰라요."

파드메는 인상을 쓰고 마치 기억을 떠올리려는 것처럼 오비완을 위아래로 바라보다가 갑작이 불이 들어와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손가락을 튕겼다. 아나킨은 완전한 공포에 사로잡혀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나킨이 오비완을 만나기도 전에 두 사람이 먼저 만난 적이 있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세상이 정의롭고 공평하다고 믿어야만 하는 걸까?

파드메가 오비완 케노비와의 기억이 달갑지만은 않다는 듯이 인상을 쓰자 아나킨은 표정을 더욱 찌푸렸다. 파드메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신이 그 셰프군요." 파드메가 입을 열었다. "도와주겠다고 약속하며 내게 연락처를 알려준 셰프요. 사업 계약을 맺겠다고도 했었죠. 그런데 다음날에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더라고요."

오비완과 아나킨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아나킨의 머리는 오비완이 파드메에게 연락처를 줬다는 새로운 정보를 듣자마자 멈춰버린 상태였다. 그저 사업 계약을 맺으려고 번호를 줬다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아나킨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어떻게 파드메가 이런 식으로 아나킨을 배신할 수 있는 거지? 아나킨의 소울메이트와 번호를 교환해놓고 아나킨이 도착할 때까지 붙잡아두지 않았다고?

"그날 밤에 부주방장이 제 휴대폰을 싱크대에 떨어트려버렸습니다." 오비완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신음소리를 냈다. "솔직히 말씀드리는 건데 의원님의 전화를 일부러 무시한건 아니었어요. 거짓말처럼 들리는 건 알지만..... 그 뒤에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 아나킨은 기쁘게 삐뚤어진 생각을 했다. 파드메, 너는 잊힌 거야.

오비완은 절대로 아나킨을 잊지 않을 거다. 아나킨이 잊어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니까.

"그럼..... 지금이라도 오셨네요. 데려와줘서 고마워...... 렉스." 파드메가 말을 늘렸다.

아나킨의 소울메이트는 아나킨을 향해 음..... 렉스의 이름을 사용하는 데에 엄청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비완이 말했다. "늦었지만 전 세계와 경쟁해도 손색이 없는 땅콩버터 잼 샌드위치를 만들어 드릴게요."

"땅콩버터 잼 샌드위치를 파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 업계에 존재하나요?" 파드메가 너무 흥미롭다는 듯이 말하는 바람에 끼어들지 못한 아나킨은 파드메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파드메는 오비완이 아나킨의 소울메이트임을 알고 있지만 오비완은 모르고 있는 지금, 괜히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파드메, 미슐렝은 자동차 타이어 회사 이름이야." 아나킨이 자신 있게 말했다. "오비완은 셰프고."

"아니야, 아나ㅋ- 아기 같은 스위트하트." 파드메는 아나킨의 인생을 망쳐버리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두 개는 같은 회사거든."

"뭐라고?" 아나킨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으며 미소를 지은 파드메에게서 고개를 돌려 인상을 쓰고 있는 오비완을 바라봤다. 이런.... 혹시 오비완에게 무례하게 군건가? 오비완과의 예약을 잡기 전에 셰프에 관한 모든 것을 독학했어야했는데....... 그리고 이제 아나킨은 모든 것을 망쳐버렸고, 오비완은 아나킨의 따스하고 포근한 대학 후드을 입은 채로 인상을 쓰고 어딘가 슬퍼 보이는 표정으로 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파드메는 목청을 가다듬더니 뒤쪽 테이블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샌드위치를 더 만들어야해. 곧 점심때가 되면 사람들이 몰려올 거니까. 오비완,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겠어요? 렉스는 과일을 담당하도록 두고 나는 핫초코를 준비할게요."

그 말은 아나킨이 오비완의 옆에 서고 오비완은 파드메 옆에 선다는 뜻이었다. 가운데 선 오비완은 깨끗한 수저와 뜯은 적 없는 피넛버터 병을 만지작거렸다.

"렉스가 말해주던데 어젯밤에 첫 번째 타투를 새겼다고 하더라고요." 파드메는 테이블로 다가온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앞니가 빠진 소녀에게 핫초코와 함께 이번 주말 시청에서 주관하는 겨울 코트 행사에 관한 전단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어린아이의 미소에 약한 아나킨은 소녀의 엄마가 귤 세 개를 집어 들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나킨의 소울메이트 역시 미소에 약한지 소녀의 엄마가 샌드위치를 세 개나 가져가도 막지 않았다.

오비완은 목청을 가다듬었다. "맞습니다. 그랬죠. 갈비뼈 위에다 새겼습니다."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파드메는 예의바른 대화를 할 때처럼 평범한 수준의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거기에 새기는 건 엄청 아프다고 들었어요."

"새기는 줄도 몰랐습니다." 오비완의 말에 아나킨은 홀짝이던 핫초코에 사레가 걸릴 뻔했다. 그런 아나킨을 돌아보고 싶다는 듯 오비완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오비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나킨은 그런 오비완이 자신이게 감정이 있어서 그런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어. 의원님과 렉스는 사귀신지 얼마나 되었나요?"

순간 파드메와 아나킨은 동시에 오비완을 쳐다봤다. "안 사귀는데요." 아나킨은 파드메의 갑작스럽고 거의 무례할 정도의 웃음소리 너머로 멍하게 말했다. "사귀어본 적도 없어요."

"게다가 렉스는-" 파드메가 킥킥 웃으면서 말을 이어가는 순간 아나킨은 파드메가 자기 소울메이트가 아니면 상대방이 누구더라도 절대로 안 사귈 거예요.라는 말을 하려는 것을 눈치 챘다. 만약에 지금 오비완이 그 말을 듣는다면 그 말은 아나킨의 진짜 이름을 듣는 것만큼이나 파괴력이 대단할 거다.

그리고 파드메가 하려고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정치인이랑은 사귈 일 없어요." 아나킨은 재빠르게 파드메 대신 문장을 끝마치고는 파드메가 이미 시작한 말이 들리지 않도록 소음을 내려고 아무 이유 없이 귤 자루를 테이블 위에다가 쾅 올려뒀다. "그리고 또-." 여자랑은 안사귀고요. 아나킨은 이렇게 말할 계획이었지만 자루 아래에 있던 전단지가 갑작스럽게 불어온 바람에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제기랄." 아나킨은 손을 뻗어 적어도 하나라도 잡으려고 했지만 바람은 전단지를 펄럭이면서 높이 날려버렸다.

"쓰레기 불법 투기는 벌금이 500 크레딧이야." 파드메는 활기차게 알려주면서 손을 들더니 눈 앞에 챙을 만들어 밝은 겨울 햇살을 가리고 멀어져가는 전단지를 바라봤다. "렉스, 네 카르마가 불러온 일이야."

"주워올게. 내가 주워온다고." 이미 서있던 작은 부스에서 나온 아나킨은 산책로로 걸어가면서 으르렁거렸다. 땅에 떨어진 전단지는 젖어있어서 아나킨은 약간의 노력만으로 상당한 양을 쉽게 주울 수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오비완이 옆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아나킨의 앞에 서서 허리를 굽히고는 아나킨의 손이 거의 닿았던 전단지를 집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장관에 아나킨은 이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준 바람과 종이를 발명한 사람에게 감사인사를 올리는 것 말고는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충격으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었지만 오직 아나킨의 눈만이 바지 위로 드러난 오비완의 엉덩이 라인을 따라가며 움직였다.

순간 아나킨의 손이 움찔거리며 앞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맞아, 우리의 존재도 잊지 말라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비완은 곧바로 허리를 펴더니 뒤를 돌아봤다. 아나킨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는 듯이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가장 최악의 장소에 들어가 있지만 완벽하게 오비완의 관심을 돌릴 수 있는 것을 발견한 아나킨이 외쳤다. "한 장이 분수대에 빠졌어요." 이미 공원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분수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아나킨은 오비완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아마 자연적으로 분해될 거예요." 뒤에서 오비완이 헐떡이며 하는 말이 들려왔지만 아나킨은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나 자연적으로 분해되도록 내버려둘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상황이 약간 어려워졌다고 포기를 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소울메이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없을 거다.

아나킨은 돌이 낮게 쌓인 곳에 몸을 기대고는 손을 뻗어 물위에 떠다니는 전단지를 잡으려고 했다. "이거만 가져가만 될 거예요." 아나킨은 숨을 죽이고 말했다. "어쨌거나 전단지를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불만 사항 란에 꼭 적어둘게요, 달링." 뒤쪽에서 오비완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아나킨은 미끄러졌다.

그리고 떨어졌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 덕분에 아나킨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무례한 기상 알람을 맞이했다. 분수는 비극적이게도 거의 30cm정도 될 정도로 얕았다. 그래서 아나킨은 물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저체온증으로 죽을 때까지 머릿속에서 오비완의 목소리로 반복되는 달링이라는 단어를 마냥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 대신 아나킨의 턱과 팔꿈치가 아플 정도로 강하게 바닥에 부딪혔다. 그리고 뼛속까지 비참하게 흠뻑 젖어버린 아나킨은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등에 손이 닿는 느낌이 들자 이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본능이 되살아났다. 깜짝 놀란 아나킨이 소리를 지르며 허우적거리다가 분수대 아래로 더 깊이 들어가는 순간 아나킨의 발이 아나킨을 붙잡으려는 손과 얽혀버렸다. 아나킨은 물에 빠진 어떤 사람의 몸이 자기 위에 있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은 차가운 물에 놀라 아나킨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지르며 아나킨에게 매달렸다.

분수대 밑바닥에 앉아 고개를 물 밖으로 빼낸 아나킨은 손으로 시야를 가리고 있는 물과 머리카락을 훔쳐내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자신에게 매달려있는 오비완이 있었다. 그 순간 분수대에 빠진 뒤로 폐에 약간 남아있던 공기가 전부 빠져나가버렸다.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을 언제나 볼 수만 있다면 아나킨은 다시는 숨을 쉴 수 없더라도 만족할 거였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분수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아주 약간의 노력만이 필요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람과 차가운 공기 때문에 분수대 밖은 너무 추웠다. 오비완이 온기를 찾아 아나킨에게 가까이 붙어왔을 때, 아나킨의 머릿속에는 오비완을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생각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아나킨은 당황하지도 않고 오비완을 품에 안아 턱으로 머리를 눌러주었다.

"일부러 끌어당긴 건 아니에요." 아나킨은 소울메이트의 머리카락 사이로 속삭였다.

오비완이 코웃음을 치더니 몸을 부르르 떨자 아나킨은 이제 움직여야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옷 세 겹을 입는 게 지나치다고 말했던 사람이 누구였나요?" 오비완을 놀리고 싶다는 욕망에 저항하지 못한 아나킨은 분수대 밖 파드메를 향해 걸어가면서 품안에 들어온 오비완의 등을 쿡 찔렀다. 파드메는 마치 팀의 3분의 2가 얼어 죽은 적 없다는 듯이 샌드위치와 과일과 핫초코를 계속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아주 파드메다웠다. 일은 계속 진행되어야 했다.

오비완은 한숨을 내쉬면서 허리를 휘감고 있는 아나킨의 팔을 풀어버리고 싶다는 듯이 바르작거렸다. "이제는 뭔가 마른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하나를 벗어버리고 싶네요."

"모험으로 가득 찬 인생이 멋지지 않나요?" 아나킨은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딱딱 떨리는 이빨 때문에 점수를 얻지 못했다.

그들이 다가가자 파드메는 조금도 감명 받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흠..... 비참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얼어 죽을 거 같기는 하네."

"오비완을 집에 데려다줘야겠어." 아나킨은 오비완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이런 상태로 있기에는 밖이 너무 추워서 오비완에게 안 좋아."

"렉스, 나는 가녀린 꽃이 아니에요." 이번에 오비완은 정말로 떨어지고 싶은지 아나킨의 팔을 떨쳐내며 반박했다. 아나킨은 그런 오비완에게 삐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했다. "여기에 있어도 돼요. 우리는 한 게 거의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런데 의원님은 안타깝게도 오늘 아침부터 오후까지-"

"내가 추워서 그래요." 아나킨은 최대한 작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이런 목소리를 내면 오비완에게 먹힐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아나킨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코를 훌쩍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오비완은 가만히 있다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질겁한 표정으로 아나킨을 올려다봤다. "렉스! 왜 아무 말도 안 해줬어요."

"이 추운 겨울날 제가 분수대에 빠질 때 보고 있었잖아요." 아나킨은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알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는...." 아나킨의 소울메이트가 입씨름을 시작하려고 했다. 오비완이 가장 좋아하는 액티비티가 입씨름임을 빠르게 알게 된 아나킨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비완의 시선이 아나킨의 얼굴에 닿는 순간 오비완은 말꼬리를 흐렸다. 자신에게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오비완의 눈빛에 아나킨은 숨을 참았다. 젖고 얼어가는 후줄근한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마침내 오비완 케노비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인생을 바꿀 위대한 사랑이 시작되게 만드는 스위치를 건들이게 되는 걸까?

꿈속에서처럼 오비완의 손이 아나킨의 얼굴을 향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나킨은 멍하게 올라오는 손을 바라보면서 살짝 오므린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 집중해야한다. 하지만 분수대에 빠졌을 때보다 제대로 된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오비완의 손가락이 아나킨의 얼굴을 지나 곱슬머리 사이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다가....... 믿을 수 없게도 떨어져나갔다. "전단지 조각이 붙었어요." 아나킨의 사망을 선고한 오비완 케노비가 젖은 종잇조각을 들어 보이더니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아나킨은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며 아래로 떨어지는 종잇조각을 바라보면서 질투심을 느꼈다.

"못 봐주겠네." 파드메가 두 남자를 향해 샌드위치 두개와 귤 몇 개를 던지며 말했다. "둘 다 가버려. 그리고 오비완, 이번에는 꼭 나한테 전화를 하는 게 좋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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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어요." 몸을 따뜻하게 말리고 아나킨의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오비완은 진심을 다해 말했다. 이런 식이라면 아나킨은 빨래를 곧 해야만 했다. 아나킨은 이렇게 많은 빨랫감이 나왔는데도 침대 시트는 젖지 않아서 빨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약간 실망했다. 

오비완은 몸집보다 큰 헐렁한 파란색 스웨터를 입고 아나킨의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소매로 손장난을 치고 있는 오비완의 머리카락은 이마까지 내려와 말라가고 있었다. 보드라운 머리 위로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햇살이 내려앉았다. 그래서 아나킨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저기에 앉아있는 사람은 여전히 아나킨의 소울메이트 오비완 케노비이니까.

"당신이 만든 샌드위치는 넉넉잡아도 겨우 다섯 개였을 건데요? 저는 아마도 귤 세 개랑 사과 하나를 나눠줬고요. 그러고 나서 분수대에 빠졌잖아요."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아나킨이 말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오비완은 같은 말을 반복하며 전에 받은 샌드위치의 빵 가장자리를 뜯어내어 안쪽을 베어 물었다. 자신의 소울메이트가 빵 껍질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아나킨은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오비완 케노비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는 게 세상을 바꿀 위대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날이 언젠가 오기는 올까?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자신의 거실에서 아주 무방비하고 편하게 앉아있는 오비완을 보는 순간 아나킨은 입씨름 벌일 의지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려서 그저 동의했다. 지금은 거의 오후 한시가 다 되었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이제 그만 갈 시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마치 지구 역사상 가장 긴 집행유예가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나킨은 오비완에게 주려고 귤껍질을 정성들여서 까고 흰 부분을 떼어냈다. "저는 빵 껍질을 좋아해요." 아나킨은 깔끔해진 귤을 든 손을 교환하자는 듯이 내밀면서 말했다.

"끔찍한 입맛을 가졌네요." 아나킨의 소울메이트가 미소를 머금으며 뜯어낸 빵 가장자리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자신을 낮게 보지 마세요." 멈추기도 전에 입이 먼저 움직이자 아나킨은 이른 아침에 마셨던 커피와 분수대 탓을 했다. 그리고 아나킨과 아나킨이 소유한 모든 것들이 자신을 환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 집의 일부가 된 것 마냥 돌아다니는 오비완에게도 책임을 돌렸다.

오비완은 마치 아나킨이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처럼 크게 뜬 눈을 깜박였다. 아나킨은 자신의 뺨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적어도 오비완의 얼굴에도 똑같은 홍조가 나타났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었다.

"같이 가자고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아나킨의 소울메이트가 중얼거리는 순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텐션이 고조되며 방의 분위기가 변했다. 아나킨은 두 번째로 깐 귤을 오비완이 가져갈 수 있도록 내밀었다. 이 귤이 오비완의 입술 사이로 사라지는 게 보고 싶었다. 어쩌면 자신의 손에 든 귤을 오비완이 곧장 입으로 받아먹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아나킨은 아마 죽어버릴 거다.

두 사람 모두에게 다행히도 오비완은 조용히 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오비완의 손가락이 아나킨의 손바닥을 스치는가 싶더니 귤은 어느새 오비완의 입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가 있었지만 아나킨은 심장마비가 오는 줄 알았다.

"그동안 잊고 있었어요." 한 동안 귤을 음미하던 오비완이 말을 시작했다.

아나킨에게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나왔다. 아나킨은 정말로 듣고 있었다. 그저 집중력을 약간 잃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비완이 어딘가 후회하는 듯한 미소를 반쯤 지어보이는 순간 아나킨은 정신을 차렸다. "요리라는 걸 이처럼 간단하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그저.... 샌드위치와 과일과 핫초코 가루만 있으면 되는 거였는데......."

"그리고 작은 마시멜로우도요." 아나킨이 지적했다. "마시멜로우를 넣고 안 넣고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제 생각에는요."

오비완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내저었다. "알겠어요. 작은 마시멜로우도 포함할게요. 그런데 나는..... 음식을 대접했을 때 사람들이 짓는 표정을 본지 오래 되었어요. 항상 주방에서 요리와 플레이팅을 하고만 있었거든요. 사실 셰프를 만나고 싶다고 요청하는 손님은 거의 없어요. 그리고 설령 나를 부르더라도 오늘과 같은 반응은 손님에게서 보지 못해요. 요리에 집중하거나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집중 할 수는 있지만 둘 다에게 동시에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어요. 그래서 나는 모든 코스요리와 접시를 완벽에 가깝도록 있어보이게 만들고는 그 음식을 먹는 모든 손님들이 만족할거라고 상상만 해왔어요. 하지만 직접 본 적은 없어요. 그리고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오늘 생각났어요. 요리는 단순한 거라는 사실이요. 게다가 단순한 요리역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났어요."

그리고 오비완은 귤 한 조각을 떼어내어 입안으로 던져 넣었다. 아나킨은 오비완의 입술 사이로 사라지는 귤을 지켜봤다. 당장이라도 오비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까이 끌어당겨서 몸 사이에 간격을 좁히고 싶었다.

"데려가줘서 고마워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소울메이트가 비틀거리며 위험할 정도로 아나킨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두 사람의 몸에 거리가 줄어들었다. 눈을 반쯤 감은 오비완은 마치 아나킨이 타투용 바늘을 찔러 넣었을 때처럼 아나킨이 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아나킨은 왜 타투를 새길 때 그 상태가 된 오비완보고 자신에게 키스를 하라던가, 무릎을 꿇으라던가, 자신의 옷을 벗기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지를 기억해낼 수 없었다.

아나킨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뒤로 화들짝 물러난 아나킨은 자신과 똑같이 행동하는 오비완을 보면서 아까 분수대로 오비완을 끌어당기는 대신에 휴대폰을 빠트려버릴 지혜가 그 당시의 자신에게 있었기를 바랐다.

아래를 내려다본 아나킨은 휴대폰에 떠있는 사진과 발신자 이름을 보고 얼어붙었다. 렉스의 전화였다.

감사하게도 오비완은 머리를 만지고 벽에 걸린 사진을 쳐다보느라 휴대폰에 뜬 이름을 보지 못했지만 아나킨은 솟구쳐 오른 아드레날린이 여전히 온 몸을 돌아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꼭 받아야 하는 전화에요." 아나킨이 다시 사과를 건넸다. "가게에서 온 거라 서요."

다시 화장실에 들어간 아나킨은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서 전화를 받았다. "왜?" 아나킨은 딱딱한 목소리로 꽤나 예의 없게 말했다. 아주 중요한 순간에 온 전화가 마냥 달갑지는 않은 건 당연하지 않을까?

"안녕, 렉스." 렉스가 유쾌하게 인사했다. "아소카가 이번 수요일에 있던 예약이 취소되었다고 전해달래. 너한테 타투를 받으려고 했던 손님이 다리를 다쳤다네."

"그거 안됐네." 아나킨이 아쉬운 듯 말했다. "예약금은 못 돌려받는 건 알고 있데?"

"아소카가 네 대기 명단에 있는 손님에게 연락을 넣어서 취소된 자리에 예약을 잡을 건지 물어보라던데. 아니면 네 소울메이트보고 그때 오라고 하던가."

아나킨은 칫솔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오비완은 바로 어제 첫 번째 타투를 받았어." 아연 질색하여 아나킨이 말했다. "두 번째 타투를 새기기에는 너무 이른거 같은데?"

"그 말도 맞지." 렉스가 경쾌하게 동의했다. "그나저나 너는 그렇게 절박하지 않나봐?"

"닥쳐."

"적어도 물어보기만이라도 해볼래? 내 생각에는 네가 벌써 다음 타투 도안을 완성해뒀을 거 같거든."

"......닥치라고."

"아소카한테 그 시간대가 되면 미리 가게를 비워두라고 말해둘게."

아나킨은 휴대폰을 들고 있지 않는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너는 그냥 오비완을 보고 싶으니까 내가 타투를 새기는 동안 주위에서 얼쩡거릴 생각이구나." 렉스의 아이디어는 아나킨의 계획과 들어맞지 않았다. 오비완에게 첫 번째 타투를 새기기 전부터 아나킨은 타투 예약 세 개를 완전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날에만 텀을 두어 예약을 잡는다는 계획을 구상했었다. 가게를 닫은 뒤에 단 둘이서 말이다. 그런 계획을 세웠던 가장 큰 이유는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동료들에게서 오비완을 멀리 떨어트려둬서 그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아나킨은 타투를 받을 때 오비완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나킨의 의자에 누운 오비완은 반쯤 눈을 감고 젖꼭지를 발딱 세운 채로 입을 멍하게 벌리고 있었다. 그런 오비완을 보면서 아나킨은 꼭 나머지 타투 예약도 둘만 있는 시간에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타투를 새기는 순간의 오비완은 오직 아나킨만의 것이었다. 그 누구도 그런 오비완을 보면 안 된다.

"취소된 예약은 오후 6시에 잡혀있는 거였어." 마침내 렉스가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가게에는 너랑 네 소울메이트랑 아소카만 있을 거야. 아일라가 피어싱 손님 때문에 올 수도 있고. 그리고 7시가 지나면 소카의 에너지가 방전되는 걸 알고 있잖- 왜 그래, 너도 인정하면서." 휴대폰을 떨어트리고 그의 소울메이트에게 몸을 기울여 장난을 치는지 렉스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오비완한테 물어볼게." 아나킨은 마지못해 말했다. "알려줘서 고마워. 내일 보자."

아나킨은 렉스가 다른 말을 하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오랫동안 허공을 바라봤다. 괜찮다. 괜찮을 거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아침을 먹었던 식탁에 기대고 있는 오비완이 보였다. 오비완은 아나킨의 옷으로 든든히 포장되기 전 어젯밤에 입었던 재킷과 스카프를 걸치고 신발까지 단정하게 신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당신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요. 아나킨의 머릿속에서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아나킨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만 가봐야겠-"

"아소카의 전화였어요. '크리티컬 잉크'에서 접수를 담당하는 직원이요. 수요일에 예약이 하나 취소되었데요. 6시에요. 그때 시간이 되신다면 시술을 할 수 있..... 너무 이르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저에게는 당신을 다시 만날 핑계가 필요해서요. 빠른 시일 내에요.

"하지만 지난번 예약보단 훨씬 적절한 시간이지 않나요. 그러니까 당신만 원한다면...."

오비완은 아나킨을 바라보면서 눈을 깜박였다. "......렉스, 이번 수요일이라면 당신이 준비를 끝마치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하지 않나요?"

아나킨은 어깨를 으쓱하고 뒷목을 문질렀다. 사실 다음 타투 디자인을 벌써 스케치까지 끝내두고 확정까지 내렸다는 사실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만 다시 바늘에 찔릴 준비가 되었다면 저는 언제든지 상관없어요." 아나킨이 말했다.

"그렇군요." 오비완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어..... 제 시간을 확인해볼게요. 아마 될 거 같은데 괜찮다면...... 예약을 잡아주겠어요?"

"네! 당연하죠!" 아나킨은 아까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사람치고는 꽤나 다급하게 외쳤다. "당신만을 위해 비워둘게요."

"이번에는 어디에다 그릴 생각이세요?" 오비완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꼭..... 타투를 새길 때 드는 느낌을 벌써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발목에요." 입안이 바싹 마른 아나킨이 말했다. "아니면 손목이나요."

"둘 중 어느 부위가 더 아픈가요?" 그건 그저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이어야 했다. 하지만 소울메이트 눈에 떠있는 무언가는 아나킨이 대답을 해줘야한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아나킨은 입술을 핥았다. "꽤나 직설적인 질문이네요." 아나킨은 가늘게 뜬 눈으로 오비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준비를 해두고 싶어서요." 오비완은 아나킨만큼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답하더니 아나킨의 이름이 적혀있는 팔을 향해 손짓을 해보였다.

아나킨은 다시 분수대에 빠진 것만 같았다. "그럼 팔목이요." 아나킨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신의 시간만 된다면 수요일에 팔목에다 새기죠."

오비완은 입씨름을 시작 할 수 있었다. 아니면 어쩌면 반박을 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비완은 그저 "알겠어요, 렉스"라고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뜻 승낙했다. 그것도 기대된다는 목소리로...... 이제 아나킨은 떠나가는 오비완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곧 다시 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다가오는 수요일에 말이다.

아나킨에게는 오비완이 원하는 것을 해줄 능력이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이걸로 충분하다. 그래야만 한다.

---

오비완은 예약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접수대 뒤에 앉아있던 아소카는 30분 전부터 초조하게 오비완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나킨 역시 작업 스테이션에서 불안하게 기다렸다. 오비완의 예약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그날 하루 종일 반쯤 정신이 딴대 팔린 채로 다른 손님의 타투를 새겼다. 지난 며칠 동안 오비완과 아나킨은 띄엄띄엄 가벼운 문자를 주고받았다. 

파드메는 이번엔 오비완이 연락을 해줬다고 알려줬다. 덕분에 아나킨은 걱정을 조금 덜어버릴 수 있었다. 만약에 오비완이 마지막 타투를 다 새긴 뒤에 아나킨과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아하더라도, 만약에 오비완이 끝까지 아나킨의 이름을 커버업 하기를 원한다 해도, 파드메를 통해 아나킨은 여전히 오비완과 이어져있을 거다.

자신과 오비완을 하나로 묶어주는 게 생긴 거다.

아나킨은 눕혀둔 스텐실 두개를 바라봤다. 하나는 일주일 전에 만들어둔 스케치였다. 다른 하나는.... 어젯밤에 완성한 것이었다. 어젯밤에 아나킨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아나킨의 손은 저절로 타블렛으로 움직여 오비완을 떠올리면서 화면을 채워나갔다. 그중에서 쓸만한 건 이 두 번째로 스텐실로 만든 스케치뿐이었다. 하지만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오비완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아나킨의 머릿속에 이걸 새기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당황한 아나킨은 두 번째 디자인과 다른 물건들을 서랍에 넣었다. 이제 작업대 위에는 미리 준비된 타투 총과, 여분의 잉크 통 몇 개, 해상에서 쓰이는 길고 얇은 밧줄 스케치만 남아 있었다. 무한을 뜻하는 심볼 모양으로 묶여있는 그 밧줄은 곧 오비완의 튼튼한 손목에 둘러질 예정이었다. 

"케노비씨, 안녕하세요." 아소카가 밝게 인사했다, 그리고 아나킨은 타투 시술실과 접수대를 가로막은 파티션 너머로 오비완을 바라봤다. 며칠 동안 보지 못한 덕분에 정말로 오랜만에 보게 된 오비완은 언제나처럼 아름다웠다. 가게의 형광 조명은 오비완의 머리카락 끝부분을 백금처럼 빛나게 만들었다. 오비완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완벽했다.

그런데 오비완이 비틀거리더니 마치 아소카가 오비완의 심장을 꺼내서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버리고 잘근잘근 짓밟아 조각내 버렸다는 듯 아소카를 쳐다봤다.

왜 저렇게 오비완이 슬퍼 보이는 거지? 아나킨의 심장이 뱃속으로 추락해버렸다. 레스토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게에 도착한 뒤부터 오비완은.....

"아...." 오비완의 목소리에 아나킨은 배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나킨의 몸이 본능적으로 그 목소리에 반응하면서 오비완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움직였다. 순간 아소카도 오비완을 도와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자 오비완의 시선이 쭉 뻗은 아소카의 팔을 따라 올라가더니 걷어 올린 소매 끝자락에서 멈춰버렸다.

그곳에는 렉스 펫이라고 적혀있었다. 아소카와 렉스는 가게에서 그들의 소울메이트 타투를 가려두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에는 아나킨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아나킨은 오비완을 만나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사람들이 소울메이트 이름을 가리기 위해 사용하는 붕대를 팔에다 감았다.

그리고 아나킨은 아소카에게 저번처럼 자기와 똑같이 타투를 감추라고 말하는 것을 떠올리지도 못했었다.

"준비 다 끝났어요." 거짓으로 밝게 끌어올린 아나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오비완의 시선이 한순간에 아나킨을 향했다. 오비완의 입술은 멍하게 열려있었다.

오비완은 아무 말 없이 아나킨을 따라 작업 스테이션으로 갔다. 두 사람은 아소카가 보내는 사과의 눈빛을 못 본척했다.

"여기에 앉아계세요. 크기를 조절해야 해서요." 아나킨은 타투를 새길 준비를 마친 작업대 옆 의자에 손짓하면서 말했다. 사실 크기 조절은 필요 없었다. 아나킨에게는 복도 끝에 있는 방에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아나킨은 타투 디자인과 타블렛을 들고 허겁지겁 소울메이트에게서 멀어졌다.

방에 도착한지 2분이 지나지 않아 아소카가 불쑥 들어오더니 제 정신이 아닌 듯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나킨. 제기랄. 정말 미안해요.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괜찮아." 아나킨은 괜찮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비완은 아나킨의 이름이 렉스라고 알고 있다. 아나킨이 아니라. 그리고 방금 오비완은 아소카의 팔에 적힌 렉스의 이름을 보아버렸다. 그러니까 이제 오비완은 아나킨의 소울메이트가 오비완 자신이 아니라 아소카라고 생각할 거다.

그리고 오비완은 여전히 그 망할 소울메이트 타투 커버업을 받고 싶어 한다. 이건 괜찮지 않다. 괜찮은 게 하나도 없었다.

"제가 가서 우리가 플라토닉한 관계라고 말할게요." 아소카가 필사적으로 제안했다.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저랑 렉스는 플라토닉한 사이니까요."

아나킨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아소카의 아이디어를 폐기했다. 오비완은 또다시 아나킨에게서 거짓말을 맛보게 될 거고, 이미 이 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아소카를 더 깊이 끌어당기고 싶지 않았다.

"안 돼. 괜찮을 거야." 결국에는 모든 게 다 괜찮아져야하니까 아나킨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만 가봐도 좋아. 내가 가게 문을 닫을게. 수요일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으니까 괜찮을 거야."

아소카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아나킨을 바라보다가 결정을 내렸는지 아나킨을 힘껏 안아줬다. "이런다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것은 알지만 당신이 오비완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 당신 스스로가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아소카는 아나킨의 귓가에 속삭이더니 포옹을 풀고 밖으로 나갔다.

아나킨은 몇 분 더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가졌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방을 둘러보자 먼지투성이 뒷방 구석에 새로 자리를 차지한 자신의 타투이스트 자격증이 눈에 들어왔다. 오비완이 자격증을 보고 아나킨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스테이션에서 떼온 것이었다. 아나킨은 한숨을 내쉬며 아소카의 말이 옳은지를 생각해봤다.

만약에 아소카가 옳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접수대 너머에서 가게 문이 닫히는 벨소리가 들리자 아나킨은 방에서 나와 오비완에게로 갔다. 오비완은 바닥 어딘가를 내려다보며 무릎위에 올려둔 손목을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그런 오비완은 어딘가 작아보였다.

아나킨은 아무 말 없이 조심스럽게 오비완의 손목을 손에서 떼어내 촉촉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아나킨 대신 오비완이 먼저 입을 열어야 이 침묵이 깨질 거 같았다.

맥박이 오가는 오비완의 예민한 부분에 비누를 갖다 대는 순간 마침내 소울메이트가 죽은듯한 가게의 고요를 깼다. "당신의 성이 펫인지 몰랐어요."

잠시 면도기를 놓칠 뻔한 아나킨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오비완을 바라봤다. 여전히 먼 벽을 바라보고 있는 오비완의 입술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눈은 가늘어져 있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 아나킨이 말했다. "맞아요. 펫. 렉스 펫이에요."

"코디 펫이라는 사람을 내가 아는데 혹시 서로 관계가 있나요?"

"전.... 오비완..... 그게......"

아나킨은 닦아낸 면도기를 오비완의 살결 위로 가져가 소울메이트의 팔목 3cm 정도 넓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비완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스쳐지나가는 면도기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갑자기 아나킨은 아주 약간만 잘못된 방향으로 힘을 주면 그 즉시 자신이 오비완을 죽일 수 있다는 어마 무시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나킨의 소울메이트는 가만히 앉아서 아나킨이 가져올 수도 있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이미 소울메이트를 찾았는지 몰랐어요." 오비완이 속삭였다. ".....미안해요. 당신이 소울메이트를 가게 밖으로 내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불편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놀랐을 뿐이었어요."

이제 아나킨에게 모든 진실을 깨끗하게 밝힐 순간이 왔다. 오비완에게 전부 고백하고 오비완이 내릴 판결을 기다릴 때가 도래한 것이다. 소매를 걷어서 맞아요. 저는 제 소울메이트를 찾았어요. 하지만 그건 아소카가 아니에요.라고 말할 기회가 아나킨을 찾아왔다.

"저흰 플라토닉한 관계에요." 하지만 그 대신 아나킨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갔다. "플라토닉한 소울메이트요. 저희는 그렇고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스닙스랑은 단 한 번도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어요. 저한테 저 애는..... 여동생과 같은 존재에요." 적어도 마지막 문장은 진실이었다.

오비완은 고개를 불쑥 들더니 아나킨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정말이세요?"

아나킨에게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 다르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맹세할게요, 오비완. 만약에.... 제 소울메이트가 저를 원한다고 나온다면..... 저는......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 모를 정도에요."

이 말 역시 진실이었다. 왜냐하면 만일 지금 오비완이 키스를 해온다면 아나킨은 어떻게 화답하기도 전에 죄책감의 손에 살해당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약에 오비완이 키스해오지 않는다면, 계속 자리에 앉아서 커다란 눈으로 아나킨을 쳐다보기만 한다면, 마치 아나킨의 소울메이트가 아나킨을 원하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지 않는다는 눈빛을 보내기만 한다면 아나킨은 죽어버릴 거 같았다.

아나킨은 수건을 집어 오비완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닦아 말렸다. "지금 타투를 받고 싶으세요?" 아나킨은 오비완이 살펴볼 수 있도록 스텐실을 들어 올리고 물었다.

"여기에 담긴 뜻을 설명해줄래요?" 소울메이트가 요청했다. 아나킨이 손목을 가져갈 때부터 이미 두 눈을 감고 있던 오비완은 가만히 전형적인 밧줄 스텐실이 손목에 감겨 자리를 잡도록 내버려두었다.

"밧줄 타투는 함께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뜻해요." 아나킨은 손목 밖으로 빠져나와 손바닥의 볼록 튀어나온 부위에 올라온 밧줄 매듭을 바라보면서 속삭였다.

"마음에 드네요." 오비완은 계속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저도요. 저도 마음에 들어요." 아나킨이 말했다.














바보야

아나오비 헤이든유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