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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3 23:28
1편
2편




*



 

“피곤해보이는군.”

 

시니어는 그 말에 선잠에서 깼다. 남자는 시니어가 머쓱한 손길로 눈을 비비고 몸을 일으키는 걸 보며 앞에 앉았다. 아직 몽롱한 기분이 덜 가셔, 그는 입술을 좀 깨물다 말을 꺼냈다.

 

“안 자고 뭐했나.”
 

“자네와 이야기할 때를 기다렸지.”

 

대령은 늘 준비된 말을 꺼냈다. 원래의 성정인지 암살을 기도할만큼 단련되었기 때문인지 이제 막 소령을 단 시니어는 알지 못했다. 그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제가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에게 고작 한입거리도 안된다는 사실 뿐이다. 취조실에서 카잔스키 저택으로 거처를 옮긴다 말할 때, 명목상으로는 보호라지만 실은 감시인 걸 알면서도 그는 별 동요가 없었다. 허락된 공간은 고작 저택 담장까지였다. 포로와 다름없는 신세면서도 그는 저를 둘러싼 환경에 온통 무심히 굴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한들 요 며칠 일어난 가족사는 감출 수 없을만큼 큰 사건이다. 그리고 시니어가 아는 대령은 굳이 말해주고 싶지 않은 사실이라도 금방 파악할만큼 기민했다. 시니어는 본능적으로 그가 할 법한 말을 헤아렸다. 하지만 클라우스에게 나온 말은 좀 의외였다.

 

“동생이 걱정되나?”

 

시니어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묵은 죄책감이 그를 덮쳤다. 그걸 알고 있는지, 아니면 타고난 감각 때문인지, 클라우스는 시니어를 붙잡는 말을 했다.

 

“난 당신 가족의 인과관계를 모르는 사람이지. 언젠가 떠날 수도 있고.”

 

제법 완곡한 표현이다. 이런 식의 배려심을 인지하자 가슴 한 구석이 저렸다. 잠시 망설이던 시니어는 장식장의 위스키 한 병과 컵 두잔을 꺼냈다. 시니어가 한 잔을 단숨에 비워내는 동안 클라우스는 겨우 입만 축일 정도로 술을 마셨다.

 

“…20년도 더 된 일일거야, 아마.”





*




 

계기가 정확히 언제의 일인지 시니어는 알지 못한다. 사건은 거대한 무언가보다 차곡차곡 쌓인 결과에 가까웠다. 몽고메리는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았다. 그저 영특하다는 말 하나로 설명하기엔 너무 거대했다. 기묘한 천재성으로 취급한 일들은 어떤 면에선 경외로웠고 가끔 오싹하기까지 했다. 몽고메리는 3살이나 많은 시니어와 수업 몇 개를 같이 들었고, 몇몇 과목은 졸업반보다 뛰어났다. 세상은 몽고메리의 천재성을 치켜세우는 동시에 경계했다. 겨우 열 몇살 먹은 아이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다. 시니어는 가끔 동생에게 요즘 어떠냐며 묻는 것으로 형의 책임을 다했다. 하지만 그 역시 그때는 어렸다. 동생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생각해본 적 없었다.
 

몽고메리가 학생 하나를 찔렀단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다.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을 텐데 아버지는 제 아들이 통제를 벗어났다는 사실에만 매달렸다. 카잔스키의 이름과 몽고메리의 비상한 머리로 말미암은 교우관계 덕에 사건은 빠르게 종결되었다. 시니어가 캠프에서 돌아온 날 몽고메리의 방은 이미 싹 비워진 채였다. 사방이 어수선할 뿐 누구도 정확한 내용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충실한 첫째 아들이 보기 드물게 악을 지른 뒤에야 아버지는 치료를 받으러 간 거라 털어놓았다. 그게 단순한 상담 따위가 아니라는 걸 시니어는 너무 뒤늦게 알았다.

 

“사관학교에 진학한 뒤에야 아버지 눈을 피해 면회를 갈 수 있었네.”

 

3년만에 만난 다시 동생은 조금 야위고 창백했다. 지금껏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몽고메리는 입을 꾹 닫았다. 시니어는 몽고메리의 손을 잡고 좀 울었다. 네가 이렇게 사는 게 싫어. 몽고메리도 울먹이며 속삭였다. 나도 싫어, 형. 몽고메리는 그곳에서 가장 어린 환자였다. 시니어는 자꾸 학교에서 제 수업이 끝날 때까지 혼자 기다리던 몽고메리가 겹쳐 보였다.
 

그는 사죄하듯 시간이 날 때마다 동생을 찾았다. 여전히 붙잡힌 쥐새끼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시니어의 얼굴을 보면 환하게 웃었다. 형제는 함께 학교를 다닐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아버지를 증오하는 방식으로 애정을 키웠다.
 

계절이 서너 번 바뀌고 몇 번째인지도 알 수 없는 면회일에 몽고메리는 손을 잡는 척 하며 약을 몇 개 건넸다. 일반적으로 처방받는 것보다 훨씬 센 거야. 기록도 안 남을 거고. 시니어는 무심한 표정을 가장한 채 그걸 손에 받아 숨겼다. 아버지가 잠들면 도장을 찾아서 퇴원 수속 서류를 작성할게. 형제는 기도하는 것처럼 약을 쥔 채 이마를 맞댔다.

 

“형, 늦어도 마지막 목요일 전까지야. 그 이후엔 수술한다고 들었어.”

 

무슨 수술인지는 시니어도 몽고메리도 몰랐다. 스무 살도 되지 못한 형제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지만 좋은 일은 아닐거라고, 본능적인 불안함이 눈가에 그늘졌다. 시니어는 긴장한 손을 감추지 못하고 속삭였다. 내가 꼭 구해줄게. 땀에 젖은 손금 사이로 약이 녹는 게 느껴졌다. 몽고메리는 얕게 웃었다. 고마워, 형.
 

훈련과 시험을 마치고 저택에 방문할 수 있을 때까지 3주나 걸렸다. 해군사관학교의 수석인 첫째를 아버지는 퍽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전제 덕분인지 아버지에게 먼저 술을 권할 때도 그는 그저 좋아했다. 시니어는 오랫동안 가지고 다닌 약을 아버지의 잔에 넣고, 제 몫의 첫 잔을 모두 비웠다.

 

“몽고메리는 그저 수면제라고 했지만…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아버지는 깨어나지 못했어.”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원체 술을 좋아한데다 지병을 앓고 있어 다들 수긍했다. 오히려 눈물과 땀에 범벅이 된 채 사용인을 찾은 시니어를 더 걱정했다. 도련님 잘못이 아닙니다, 사고에요. 늙은 사용인의 품에 안겨 시니어는 엉엉 울었다. 절반은 두려움이었고 절반은 후련함이었다.
 

그는 날이 밝기도 전에 도장을 찾아 퇴원 서류를 작성했다. 겨우 종이 한 장과 도장이 뭐라고 몽고메리는 붙잡힌 시간에 비해 너무 쉽게 퇴원했다.

 

“하지만 내가 사관학교에 있던 3주 동안, 모든 건 이미 끝났버렸네.”

 

몽고메리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돌아왔다. 약을 훔친 일은 금방 들통났다. 폭력성이 심각하다 판명되어 수술 날짜가 앞당겨졌다고 했다. 겨우 수면제 몇 알인데 시니어가 개입할 수 있는 순간은 없었다. 이미 저질러진 악행과 후회만 형제에게 남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동생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이전처럼 시니어의 손을 잡고 웃어주지도 않았다. 꿰맨 상처가 아물 때까지 몽고메리는 가만히 앉아 책을 보거나 멍하니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걸 쫓았다. 혼자 있을 때의 동생은 감정들을 죄 도려낸 것처럼 굴었다. 그건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예민하지만 섬세했고 감정기복이 심했지만 울고 웃을 줄 알던 간극이 압착기로 눌러버린 것처럼 밋밋해졌다. 시니어는 동생 앞에서 다시 울었다. 네가 이렇게 사는 게 싫어. 이번엔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후 몽고메리를 찾아온 병원 담당의가 그를 제자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곧 있으면 대학에 진학할 나이지 않습니까, 환자로 만났지만 이 친구의 천재성은 알아봤지요, 오히려 지금 나이대가 비슷하니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신경의학쪽을 공부하다보면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서도 알게 될 거고요. 남자는 정중했고 시니어는 동생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게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이라도 기꺼이 허락할만큼 절박했다.

 

“학사, 석사 과정까지 모두 무난했어. 친구가 별로 없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잘 적응하고 있다고 믿었지.”

 

그게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몽고메리는 아무 소식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연락이 늦어지는 걸 이상하게 여겨 먼저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늦게 알았을 것이다. 시간과 돈을 허비한 끝에 지도교수를 따라갔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쯤의 시니어는 가정과 직급을 비롯해 책임져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는 지쳤고 형의 노릇을 가장 먼저 내려놓았다. 겨우 몇 년 전 닿은 연락 하나만으로 물자를 보내며 얄팍한 책임을 덜어냈다.





*




 

말은 끝났지만 클라우스의 잔은 아직도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시니어는 안경을 벗고 눈을 지긋이 눌렀다. 연달아 마신 술 때문에 시야가 흐렸다. 억지로 눈을 깜박인 뒤에야 클라우스의 표정이 보였다. 언제나처럼 지독하리만치 단단하게 눈을 마주해온다. 그 앞에서 변명따위는 통할것 같지 않다. 시니어는 결국 해묵은 죄책감과 범죄의 기록,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을 맥락없이 토해냈다.

 

“그래… 난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의 자식이자 동생을 포기한 카인의 후손이네. 날 비난해도 좋아. 더러운 자식이라고, 비겁한 새끼라고…….”

 

그 말이 스스로를 향하는 걸 클라우스는 알았지만 시니어는 몰랐다. 클라우스는 그저 세 손가락으로 잔을 붙든 채 시니어가 눈을 가리는 걸 지켜봤다.
 

클라우스는 같잖은 위로 대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버릇처럼 신을 찾았다. 신이 응답했더라면 고향에서 도망칠 일도 가족을 잃을 일도 없었을 테지만, 여전히 그는 신을 믿는다. 적어도 제 악행에 비해 보잘것없는 죄책감을 짊어진 남자이기에, 이 정도 무게라면 알량한 구원 쯤은…….

 

‘……그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이번편엔 몽고메리랑 리처가 안나오지만 이어지는 시리즈라 색창추가함ㅜ
혹시 색창 거슬리는거 있으면 말해조라....

리처몽고메리리처
약 시니어슈슈시니어
아이스매브아이스 크오



다음편
2023.04.13 23:40
ㅇㅇ
모바일
아미친 내센세 왔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994f]
2023.04.13 23:42
ㅇㅇ
모바일
시니어랑 슈슈, 리처와 몽고메리 둘다 관계성 너무 좋아 미치겠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자책만 하던 죄책감을 이방인인 슈슈 앞에서야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게ㅠㅠㅠㅠㅠㅠㅠ근데 그 혼란스러운 얘길 들어주는 슈슈가 너무 단단한 사람이라서 듬직하고 좋아ㅠㅠㅠㅠㅠㅠㅠ몽고메리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직도 무의식 속에선 그 병동에 갇혀있는 건지 리처가 얼른 병동에서 꺼내줬으며뉴ㅠㅠㅠㅠ
[Code: 994f]
2023.04.13 23:43
ㅇㅇ
모바일
아아아아악ㅠㅠㅠ센세에ㅠㅠㅠ1부터 정독다시해야해ㅠㅠㅠ기도해주는 슈슈ㅠㅠㅠ 아 진짜 애한테ㅠㅠ 시니어도 여렸는데ㅠㅠ
[Code: c6af]
2023.04.14 00:26
ㅇㅇ
와 미쳤다ㅠㅠㅠㅠㅠㅠ 이 형제 어떻게해ㅠㅠㅠㅠㅠㅠ 대신해서 기도하는 슈슈ㅜㅠㅠㅠㅠ 몽고메리를 구해줘 리처ㅠㅠㅠ
[Code: bb17]
2023.04.14 01:38
ㅇㅇ
모바일
아 미친 센세왓다아아아아앙
[Code: 83e6]
2023.04.14 01: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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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친 몬티야ㅠㅠㅠㅠㅜ존나 아버지 무슨일이야 제정신이세요???!?!
[Code: 83e6]
2023.04.17 10: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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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대작을 왜 인제 본거지????????.
[Code: a5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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