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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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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하게 차를 들고 나니 금세 플로이드 씨가 도착했다. 그는 비에 젖은 머리를 털며 응접실로 터덜터덜 걸어들어왔는데, 나타샤를 발견하자마자 플로이드 씨의 얼굴빛이 어찌나 밝아지던지 브래들리는 그 환희에 자기가 다 감동을 받아 마음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저를 만나러 오신 겁니까? 미리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저택에 도착했을 텐데요."

 플로이드 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고 나타샤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 순진함과 맹목적인 애정은 브래들리로 하여금 자신이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을 때를 떠올리게 할 만큼 어린 구석이 있었다. 브래들리보다 일곱 살 어린 나타샤에게는 이런 애정이 처음일 것이다. 그는 웬만한 사람들하고 붙여두어도 기가 꺾이는 일이 없는 나타샤가 고개를 가로지르는 걸 흥미롭게 구경했다.

 "감사하게도 세러신 양이 초대를 해주시지 않았겠어요. 비가 그렇게까지 많이 내리는 줄은 몰랐네요."

 그제야 플로이드 씨가 세러신 양을 돌아보았다. 살짝 원망스러운 눈빛이었다.

 "세러신 양. 저를 놀리시는 군요. 오늘 손님이 올 거라는 말은 없었잖습니까!"
 "제 잘못은 아니죠. 친구 한 명만 믿고 미라마까지 먼 길은 왔는데 그 친구가 자리를 자주 비워 적적해진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러신 양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녀는 언제 옷을 갈아입고 온 것인지 어제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여전히 이 저택의 방 하나 쯤은 거뜬히 살 수 있을 것 같이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플로이드 씨는 나타샤의 옆에 브래들리가 앉아 있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고, 뒤늦게 인사를 했다. 브래들리는 즐거이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플로이드 씨가 매우 정중하게 자신도 혹시 이 모임에 끼어도 되지 않겠냐고 물었고 브래들리와 나타샤는 입을 모아 환영의 뜻을 비쳤다. 플로이드 씨가 코트를 벗으며 허겁지겁 위층으로 올라가자 나타샤는 이제 더 이상 의중을 숨길 수가 없었는지 드러내놓고 세러신 양에게 질문했다.

 "제가 혹시라도 무례를 저지르는 거라면 부디, 용서해주시길. 하지만 세러신 양, 저는 죄송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없어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긴 사과를 먼저 입에 올리시는 건가요? 저는 당신과 진심으로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답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의 제 친구가 혹시 제 명예까지 더럽혀 이러시는 거라면 제가 몹시 억울할 거에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니 솔직하게 말하겠어요. 저는 플로이드 씨가 좋아요."

 브래들리가 취향도 아닌 차를 마시려고 하다가 너무 뜨거워 몸을 덜컥였다. 나타샤가 짜증스럽게 브래들리의 팔을 쳤다. 세러신 양은 단도직입적인 고백에도 별 감흥이 없는지 눈썹을 살짝 들어올리고는, 그게 끝이었다.

 "그래서 알아야겠어요. 혹시 세러신 양은 플로이드 씨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걸 확신할 수 없어 오늘 초대를 받으면서도 사실 마음이 불편했답니다. 이게 수도의 예법과 어긋나는지 어긋나지 않는지 저는 몰라요. 하지만 마음에 품은 사람이 혹시라도 같다면, 그런 분과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차를 마실 수는 없어요."

 브래들리는 가끔 나타샤가 장군감이라고 느꼈다. 그녀는 무슨 무슨 집안의 아가씨라기에는 지나치게 자신을 숨기지 않았고 지나치게 단순한 면이 있었다. 브래들리는 그래서 나타샤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행동이 무슨 의도일지 짐작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브래들리는 나타샤의 옆에서 단순한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다. 눈 앞의 이 금발머리 아가씨하고는 여러모로 반대가 되었다. 브래들리는 세러신 양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는 왜 나타샤의 열렬한 고백을 듣고 난 후의 세러신 양이 제게 시선을 주고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세러신 양은 뜸을 들이더니 마침내 대답했다.

 "너무하시네요. 당신과 다르게 지켜줄 기사님도 없는데 가장 내밀한 속내를 말하라니요."
 "저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항상 속내를 가장 먼저 꺼내보이는 사람이랍니다."
 "저는 아니에요."

 세러신 양은 자못 상냥한 투로 말했다. 그녀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 빛났고, 입꼬리는 슬슬 올라갔다. 브래들리는 마침내 저 표정을 알아볼 수 있었다! 세러신 양은 완연한 승자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숙녀라면 무릇 그렇답니다. 총칼이 없는 대신 의도를 감추고 날카롭게 벼려야해요. 자수를 놓으며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 말하는지 주의깊게 듣고 그걸 이용해야하죠. 때로는 지적인 척도 해야하고, 때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완전히 모르는 척도 해야해요. 숙녀의 모든 방법에는 교활한 면모가 있고, 그걸 세상에서는 교양이라고 부르며 치켜세운답니다. 그것도 너무 티가 나지 않게 이용했을 때 이야기지만요. 그리고 사랑은, 트레이스 양, 숙녀가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랍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보여주지 마세요. 누가 어떻게 이용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나타샤는 금방 불만인 표정으로 변했다.

 "그래서 답은 뭔가요? 당신도 플로이드 씨를 좋아하나요?"
 "글쎄요. 한 번 맞춰보세요."

 세러신 양은 찻잔을 내려놓고 창 밖을 응시했다. 아직 네 시도 지나지 않았는데 밖이 깜깜했다.

 "비가 정말 많이 내리긴 하는군요. 아랫것들을 부리기에도 미안한 날씨인 겸, 하루는 이 저택에 머물고 가시는 게 어때요?"

 나타샤가 브래들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브래들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최악의 경우 제가 말을 몰고 가면 되니까요. 이보다 나쁜 날씨도 숱하게 봐왔습니다."
 "어머,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에요, 트레이스 양. 제가 당신이라면 좋아하는 사람의 저택에서 하룻밤 묵을 기회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잃지 않을 거랍니다. 특히 다른 남자의 말등에 타고 나간다는 건 선택지 축에도 끼지 못하죠."

 세러신 양이 싱긋 웃었다. 나타샤와 브래들리는 결국 에어 파이터 저택에서 하루를 머물기로 했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플로이드 씨는 친절하게도 저택을 구경시켜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브래들리는 거절했다. 그와 나타샤는 이미 어릴 적부터 이 저택에서 보물찾기, 술래잡기, 숨바꼭질 같은 놀이를 해왔고, 구조는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훤했다. 게다가 세러신 양이 한 말에 뼈가 있음을 단단하게 느낀 탓이다. 브래들리는 지금껏 삼 년만에 만난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지만, 정말 나타샤를 도와주려면 플로이드 씨와 나타샤에게 둘만의 시간을 주는 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다. 어떻게 그걸 깨닫지 못했는지 스스로 의문이 들 정도였다. 브래들리가 나타샤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들 그걸 플로이드 씨가 알 수는 없었을 텐데. 그는 대신 응접실 옆의 거대한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커튼 옆에 세러신 양이 서 있었다. 세러신 양은 브래들리를 곁눈질했다. 브래들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러신 양의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을 좋아하십니까?"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이에요, 다행히도."

 세러신 양이 빠르게 두꺼운 책의 제목들을 훑는 것이 보였다. 귀 뒤로 넘긴 금발 덕에 오똑한 코와 입술이 자리잡은 모양이 엿보였다. 세러신 양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브래드쇼 씨는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군인을 활자와 연결시켜서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있답니다."
 "군인에 대한 많은 편견이 있으시군요."
 "글쎼요, 편견이라는 게 괜히 생겨나는 건 아니죠. 어쩔 때는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걸 수월하게 해주니까요. 그리하여 상대에 대한 제 태도를 정할 수 있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건 무시못할 장점이에요."

 브래들리는 세러신 양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세러신 양은 오직 절반의 모습만 그에게 허용했다.

 "타인에 대한 평가를 빠르게 내리면 내릴 수록 다른 사람의 본질을 놓치게 되는 게 무섭지 않으신가요?"
 "본질이라는 건 매우 주관적이고 믿을 만한 것이 못 돼요. 본질에 기대어 다른 사람을 좋아하나요? 성격, 가치관, 그런 것들을 빌어 다른 사람을 싫어하고 사랑하나요? 그럼 한 사람의 성격이 변한다면요? 저는 그런 건 거짓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먼저 우리가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건 숫자로 계산되는 것들이랍니다."
 "그러면 세상에 사랑할 수 있는 게 많이 없겠네요."
 "설마 좀 더 가치 있고 귀중한 것들에 한정된 사랑을 쏟아주는 게 의미 없는 짓이라고 하진 않으시겠죠!"

 브래들리는 웃고 있지 않았다. 세러신 양은 천천히 서고에서 시선을 거두고 브래들리와 눈을 맞추었다. 브래들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사랑하는 건 진심이 아닙니다. 진심은 자신이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도 모를 때 움직이는 것이고, 자신이 끌려가고 싶지 않아도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러신 양, 진심은 무기가 아니고 그걸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약점이 아닙니다. 제 친구가 낸 용기를 어린 날의 치기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브래들리는 이미 나타샤에게 뒷배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브래들리는 세러신 양이 나타샤와 대화를 할 때 무조건적인 승자의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타샤의 드레스가 세러신 양의 드레스보다 싼 것일지언정, 나타샤의 나이가 세러신 양의 나이보다 어릴지언정, 나타샤의 마음이 세러신 양의 것보다 더 뜨겁고 쉽게 불타오를지언정 그게 어떻게 세러신 양이 일방적으로 나타샤의 마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단 말인가. 나타샤는 지금 플로이드 씨에게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을 품고 있었다. 브래들리는 나타샤의 마음이 세러신 양에게 재밌고 흥미로운, 단편적인 무언가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세러신 양은 한 점 흐트럼 없이 단단한 갈색 눈을 응시했다. 브래들리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다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플로이드 씨에게 관심이 없으시면서 일부러 말을 흘리는 건 너무한 장난 아닐까요, 세러신 양."

 세러신 양의 표정이 약간 흐트러졌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나요?"
 "글쎄요. 좋아하는 남자의 집에 가서는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욕심이 많은 숙녀가 그 집에 라이벌까지 초대할 정도로 심성이 고울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게 제 착각일까요?"

 세러신 양이 금발을 쓸어넘겼다.

 "욕심쟁이라고 절 비난하시려 이 넓은 저택을 헤매셨다면 성공이네요."
 "그게 아니라는 걸 알지 않습니까. 저는 여동생 같은 친구가 행복했으면 하고, 세러신 양도 친구의 행복을 빌어줄 만큼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압니다. 그럼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주자는 말이죠."

 브래들리가 빙그레 웃었다. 세러신 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브래들리는 대화가 끝난 다음에도 세러신 양의 옆자리에 서 있었다. 세러신 양은 브래들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아직 답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시나요?"

 브래들리는 고개를 저었다. 세러신 양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이래도 편견이 쓸모 없다고 하실 작정이신가요?" 그녀가 거만하게 중얼거렸다. 브래들리가 팔을 뻗었다. 가장 위쪽 책장에 그가 예전에 쳤던 가곡 악보집이 있었다.

 "악보라면 읽을 줄 압니다."
 "..."
 "당신의 편견이 이런 것도 말해주던가요?"

 세러신 양은 오늘로 두 번째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브래들리는 묘하게 이긴 기분이었고, 이 거만한 아가씨의 입이 꼭 다물려진 광경은 보기에 그리 나쁘지 않았다.














루스터행맨ts
밥피닉스


편견이있는편 x 오만과편견둘다있는편
사실 이.성과 감.성이 더 맞는 제목이었을지도...
2022.12.04 10: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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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발 존나좋아... ㅠㅠ ㅠ 제인 오만이 철철 흘러내리는거 ㅠㅠㅠㅠ 근데 브래들리에 대한 애정도 못 숨기는거 ㅠㅠㅠㅠ ㅠ ㅠㅠㅠㅠㅠ 아아악 ㅠㅠㅠㅠㅠ
[Code: 1149]
2022.12.04 10: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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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다 이건.. ㄹㅇ 문학이야 진짜 영광이다 이런걸 읽을수 있어서..
[Code: 2bef]
2022.12.04 12: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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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치겠다 존나좋어... 대가리 빡빡치는 중
[Code: b75f]
2022.12.04 23: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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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공짜로 읽어도 되나요 센세ㅠㅠㅠ이거 완전 고전문학 한편 아닌가요ㅠㅠㅠㅠㅠ나타샤는 단도직입적으로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제인은 절대 직설적으로 표현을 안하네 물론 이게 그 시대의 숙녀라면 당연한걸지 모르지만... 제인이 얘기한 숙녀의 덕목? 태도? 이런게 과연 제인에게 좋은걸까 싶고ㅠㅠㅠㅠ서재에서 브래들리랑 제인 만났을때 제인 처음엔 고개 안 돌리고 자세 고정하고 있다가 브래들리랑 대화하면서 눈 쳐다보는거 존나 좋다ㅠㅠㅠㅠ브래들리 악보는 읽을 줄 안다는거 제인의 편견 가치관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면서 사랑에 존나 빠지는 순간일듯 시발 개설레ㅠㅠㅠㅠㅠ둘이 대화하는거 너무 좋아요 아니 그냥 본문 다 좋음ㅠㅠㅠㅠㅠ
[Code: a121]
2022.12.08 22:08
ㅇㅇ
모바일







[Code: c117]
2022.12.11 22: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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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따 이 필력과 이캐릭터 오만과 편견과 루행을 믹서기에 넣고 돌려 내놓으니 맛있다못해 히트작을 만들어낸 내 센세ㅠㅠㅠ
[Code: a6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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