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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8 06:46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군요.”

브래들리는 그쯤에서 이 숙녀의 탈을 쓴 오만한 여자가 장갑을 제 얼굴에 던질 줄 알았다. 좋아, 결투 신청도 좋고 모욕도 좋으니 제발 빨리 끝나라. 그 생각 뿐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마 열감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여자는 언제나 그랬듯 브래들리가 예상한 것과는 무척이나 딴판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제가 얼마나 열렬하게 당신을 사모하고 있는지 더 이상 숨길 길이 없습니다. 브래드쇼 씨, 제게 청혼해주세요.”

브래들리는 자신의 귀가 아주 먹어버렸거나 뇌가 단단히 미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제대로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진 거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쯤 세러신 양이 고개를 반짝 들어 올렸다. 금발은 비에 젖어 어두워진 상태고, 눈가는 발갰으며 언제나 오만한 미소가 피어 있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비를 맞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 했는지 옷이 잔뜩 젖어 있었다. 얇은 숄을 연신 만지작대던 손가락이 가슴팍 사이에 모아졌다. 브래들리는 멍하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고한 세러신 양이 저리도 초조해보이는 게 처음이었다. 퍽, 진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예?”
“물론 이게 말도 안 된다는 건 압니다.”

이제 세러신 양은 제 손톱을 잘근 물어뜯고 있었다. 그녀는 어쩌면 화가 나보이는 것 같았는데, 브래들리가 기억하기로 세러신 양은 언제나 제 앞에서는 언짢은 표정이었기에 그리 놀랍진 않았다. 세러신 양은 익숙한 모양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당신 집안을 좀 보세요. 집안이랄 것도 없는 수준이죠. 부모도 심지어 부모가 남긴 유산도 없어서 군대에 뼈를 묻기로 한 사람이라니, 이런 사람과 결혼을 생각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됩니다. 아버지한테 당신 같은 사람을 데리고 온다면 그 날로 저는 맞아죽을 거에요. 행동거지는 어떻고요, 처음 보는 사람이면 그 자가 술집에서 일하든지 높은 장교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는 게 천박하기 그지 없어요.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건, 그나마 봐줄 만 하지만 그 가사랄 게 끔찍할 정도로 교양이 떨어지는 게.., 치가 떨리고 도저히.”

그녀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브래들리는 이제 백퍼센트 확신할 수 있었다. 열렬히 증오한다고 말한 걸 단단히 잘못 들은 게 분명했다. 청혼해주세요가 아니라 꺼져주세요 제발 뭐 그런 말을 되뇌었겠지. 열이 심각하게 나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게 분명했다. 세러신 양은 말을 한참동안 고르다가 겨우 이어갔다.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보고 우리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있음을 되뇌어도 저 자신을 구할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에 대한 모욕이긴 하나 어쩔 수 없죠-”

브래들리는 거기에서 손을 들었다.

“잠시만 멈춰주십시오. 지금- 저에게- 저에게 결혼하자고 하신 겁니까?”

세러신 양이 약간 충격을 받은 것처럼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리고 저보다 한 뼘은 넘게 큰 브래들리를 똑똑히 바라보며 그를 정정해주었다.

“아뇨, 제게 결혼하자고 하시면 허락해드릴 거라는 의미입니다.”

브래들리는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었지만 하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함을 알았다. 그는 약간의 분노마저 느끼며 되물었다.

“제가 왜 당신에게 구혼해야합니까?”

세러신 양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청혼하지 않으실 겁니까?”
“그러니까, 왜 제가 청혼할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야…”

녹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맹세코 그는 세러신 양이 이 정도로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한 적 없었다. 하지만 별로 미안하진 않았다. 세러신 양이 뺨을 갈겨도 이 정도로 얼얼한 기분이진 않을 것이다.

“지금, 저를… 거절하시는 건가요?”

브래들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네.”
“왜죠?”
“저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고 물었습니다.”

브래들리가 헛웃음을 삼켰다. 그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차분히 심호흡을 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당신은 온 세상이 당신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성에 차질 않는군요! 양친이 없고 물려받을 재산과 토지가 없는 게 당신에게는 그리도 흠입니까? 그리고 이 모든 걸 극복하고 나를 좋아하는 게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입니까? 당신은 나를 그 정도로 깔보고 있다는 걸 이리도 확실히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군요. 잘 알겠습니다.”

말하면 말할 수록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세러신 양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가늠했다.

“우리가 처음 부대 근처에서 만났을 때도 똑같았습니다. 당신은 나름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 내 친구들과 동료들을 돈이 없어 사지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사람들이라며 매도하고 우리와 어울리기 싫어했어요. 그걸 숨길 의지조차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
“심지어는 세러신 양,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걸 알자마자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았던가요. 예, 가문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을지언정 양아버지 되시는 분이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제 자신의 명예마저 사라진 건 아닙니다. 여기까지 말해도 모르시겠습니까? 대관절 제가 세러신 양을 사랑하고 결혼을 생각할 만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제가 그 소문을 냈다고요?”

녹안이 반짝였다. 그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미첼 대령이 불쌍한 닉 브래드쇼 씨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소문을, 제가 냈다고요.”

세러신 양은 브래들리에게 익숙한 그 미소를 지으며 숄을 단단히 둘렀다. 그녀는 급기야 브래들리가 묵고 있는 그 숙소의 응접실을 바쁘게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높은 굽이 마룻바닥을 만날 때마다 삐꺽대는 소리가 났다.

“그런, 그렇군요. 브래드쇼 씨는 지금까지 저를 그 정도의 인간으로 보고 있었던 거군요.”
“당신밖에 없었습니다. 피트 삼촌이 그 일로 군사 재판에 회부됐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당신밖에...”

세러신 양이 뚝 멈춰섰다. 그녀는 브래들리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제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기에 숙녀의 고백을 이렇게 잔인하게 뿌리치는 거군요.”
“저는 적어도 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과 미래를 그리고 싶습니다.”
“….”
“숙녀를 거절하는 게 예의에 어긋난다는 건 알지만, 과연 지금까지 당신이 제게 보여준 행동이 예의에 맞았는지 한 번만 돌아봐준다면 좋겠군요.”

브래들리는 머리가 지나치게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벽난로 근처에 있는 안락의자에 대충 걸어 놓은 군용 코트를 세러신 양에게 건넸다.

“바깥이 춥습니다. 비에 더 젖지 않게 조심히 가십시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창문 밖에서 천둥이 요란하게 쳤다. 일렁이는 벽난로 불빛이 반사되었고, 브래들리는 세러신 양의 눈가가 여전히 붉어져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싸워댄 탓에 달뜬 숨이 여전히 공기에 묻어 있었다. 화가 나서인지, 머리가 아파서인지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브래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를 올려다보는 세러신 양을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맞췄다. 세러신 양의 얇은 입술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움찔대다가 결국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브래들리의 코트를 받아들었다. 차가운 손가락이 두꺼운 손등을 스쳐지나갔다.

그에게는 겨우 허벅지까지 올 만한 코트가 세러신 양에게는 거의 몸 전체를 덮을 정도로 컸다. 세러신 양은 그제야 익숙한 조소를 다시 띄었다.

“…알겠습니다. 늦게 무례를 저질러 죄송하군요, 브래드쇼 씨.”
“….”
“좋은 저녁 되시길.”

세러신 양이 나간 후에야 브래들리는 다시 의자에 털썩 앉을 수 있었다.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가 한숨을 쉬며 지끈대는 머리를 안락의자에 놓았다.













근데 오만에 차있는 유복한 상속녀 행맨ts랑 집도 절도 없고 유쾌한 성격과 유죄인 다정함만 가진 장교 루스터를 곁들인
2022.11.30 01: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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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추천할수가엄서....나는...!추천하고시픈데...!!!! 추천할수없음 추천할수없음ㅠㅠㅠㅠㅠㅠㅠㅠㅠ센세시발존나사랑해
[Code: de6a]
2022.11.30 09: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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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잼ㅠㅠ진짜 너무 좋다 고전문학 읽는 것 같아ㅠㅠㅠㅜ
[Code: 3b1a]
2022.12.05 18: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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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가 이렇게 된단 말이지...다 읽고 1로 돌아와서 또 읽고...곱씹으니까 더 재밌다 센세...
[Code: 3c43]
2022.12.08 21: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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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발 사랑해
[Code: 0206]
2022.12.10 09: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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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센세 그저 미쳤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어
[Code: e657]
2022.12.10 09: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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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으러왔어 센세... 너무 좋다 진짜 이러다 브래들리가 오해 풀고 입덕인정하는순간이 기다려져ㅠㅠ
[Code: 5701]
2022.12.10 11: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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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나더 읽고 이거 다시 읽으니까 처음 이거 읽었을 때 보다 심장 3배로 빨리 뜀
[Code: 2385]
2022.12.10 12: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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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12에서 다시오니까 진짜 마음이 찢어진다 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a814]
2022.12.1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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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다시 여기로 돌아왔어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b91c]
2022.12.1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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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보고 오니까 진짜 마음 두배로 찢어짐ㅠㅠㅠㅠ제인ㅠㅠㅠ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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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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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이 띵작을 이제야 접하다니 동서남북절하며 루행을 외치고 다음편 접하러갑니다. 슨렐루야!ㅠㅠ
[Code: a64d]
2022.12.15 21:5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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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행 빠진지 얼마 안됌ㅈㅁ는데 이런 금무순이...
[Code: 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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