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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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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사와키타 우성이 찬조 출연有

 




 

 

  「청아한 피리소리와 어울려 담담하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금 소리는 몸과 마음의 근심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어 그 조화는 마치 정토(淨土)에 와 있는 듯하여 그곳에는 오로지 너와 나 서로만이 존재하였다. 복잡한 세상사는 잠시 덜어낼 수 있었기에, 그때만큼은 모든 번뇌를 씻어낼 수 있었다. 너도, 나도.」

 

 

 

"미츠이 님. 헌데 미츠이 님은 어찌하여 그렇게 거치십니까. 그렇게 직접 나무를 타다가 떨어져서 만약 상처라도 나면 어쩌시려고. 음양술은 두었다 국이라도 끓여 먹으시려구요."

 

"어이 왕실 꼬마, 내가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랬지. 형님이라고 부르랬잖아. 요 귀여운 녀석~."

 

"아얏, 제게는 형이 없는데 어떻게 형님이라고 부릅니까. 또 미츠이라는 이름은 미츠이 님밖에 쓸 수 없는 대단한 이름인데 어째서 쓰지 말라는 것입니까."

 

그랬다. 미츠이가 안에서도 성을 이름으로 쓸 수 있는 자는 가문의 정식 후계자인 그밖에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랬을 테지만, 그는 성으로 자기를 부르는 것에는 순간 독충에라도 쏘인 것처럼 진저리가 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언젠가 한 번은 그 이유가 궁금하여 답을 들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지나가는 말로 물은 적이 있는데, 미츠이(三井)라는 성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히사시(寿)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붙여준 이름이라고 생각보다 별 것 아니라는 듯 그도 지나가는 말로 답해 온 적이 있다. 

 

그 이름은 생일날조차 몇 번 보지 못한 모친이 자기에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며 자기는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의 목숨같이 귀한 아들인 증거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과연 그 의미에서는 자식의 탄생을 기뻐하며 축복하는 마음과 길이 오래도록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함께 전해져 왔다.

 

그의 어머니는 직접 눈 앞에서 본 적은 없고 미츠이 가문에서 행사가 있으면 손님 자격으로 몇 차례 본 것이 전부였지만, 미츠이의 자랑처럼 그 아름다움은 멀리서 보기에도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것이었고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보다 더 깊으신 분이었다.

 

그러니 자기는 어머니의 바람을 완수할 임무가 있다며 그 이름으로 듣기를 좋아했지만, 그것도 눈앞의 어린 귀족 친구에게만은 하릴없이 예외였다. 엄지손가락으로 콧잔등을 살짝 쓸어내렸을 뿐인데도 이 왕가의 외척이라는 아이는 눈물을 찔끔이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그의 말대로 귀엽기는 해서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나는 그가 가진 위엄을 뽐내고 하나는 그가 가진 자유로움을 뽐내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아이를 보는 것은 가끔 현 중궁의 조카가 유영차 미츠이가를 찾아올 때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기도 했다. 물론 미츠이가 귀족의 아이에게 하는 고얀 행동들을 남들이 봤다면 필시 모두 그 자리에서 쓰러졌을지도 모르지만.

 

중궁의 조카라고는 하지만 그의 집안도 도성 내 유명한 음양사 가문이었고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이긴 하나 워낙 똘똘한 인재인 데다가 그 자질도 매우 출중하여 벌써부터 차기 당주 감으로 점찍어진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하십시오, 사와키타 님. 안 그러면 그 코가 발개질 때까지 시달리실 지도 모를 일입니다."

 

"흐이잇, 후카츠 님까지 그러시깁니까. 원래는 안 그랬는데 미츠이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좀 이상해지셨습니다."

 

"엥, 좀 이상해지다니. 딱 보기 좋게 폭신폭신해진 거지~ 지금은. 난 폭신폭신한 게 좋거든. 요 귀여운 '히사이시'처럼. 전에는 얼마나 딱딱했게? 흡사 나무토막같이. 그래도 너는 걱정이라도 해줬지, 쟤는 처음에 뭐라 그랬는 줄 아느냐, 크크큭."

 

쨍하게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서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털이 복슬한 하얀 대형견의 모습을 한 식신을 무릎 위에 얹혀 놓고, 양 앞발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얼마 만에 만난 벗과의 담소를 나누고 있는 오후의 낮 한때가 즐거워 죽겠다는 듯 눈과 입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피식. 짐짓 매섭게 흘기는 장난스러운 눈초리를 한몸에 받으며 그가 따다 준 복숭아 하나를 넘겨받아 한 입 베어 무는데 음, 과연 껍질과 함께 폭신폭신한 감촉이 먹기 좋게 익기는 했다. 성숙함도 이쯤 된 것으로 술을 담기에는 적당해 보인다.

 

이제 열넷이 되었으니 아직 입에 올릴 나이는 되지 않았지만 딱 몇 해만 지나면 충분히 맛 좋게, 보기 좋게 숙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향도 사람도ー.

 

연모란, 그리는 이를 눈 앞에 두고도 그리운 마음을 더욱 부추기도록 하여 비록 여름의 늦더위가 그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데 한창이기는 했어도 계절에 맞지 않는 춘바람을 미리 불러 오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를 만난 이후로는 누굴 만나자마자 죽고 싶어서 그 높은 데를 올라갔느니 하는 얘기는 하지 않게 되기는 했지.

 

그렇게 답답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말처럼 나무를 오르고 과일을 따는 데 술법은 따로 없어도 되는 물건이었고 그의 자연스러움과 자유분방함에 앞에서는 그간 몸에 밴 규칙과 범절들에 익숙해서 평소 잊고 지내던 당연한 사실들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되어 그를 만나고부터는 신선한 기분에 잠기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기는, 도리어 수련의 증진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그로 인해 몇 번이나 자기 안에 막혀 있던 벽을 깰 수 있었던가. 그를 몰랐다면 아마 자기 인생에서 얼마만큼 상당 부분을 크게 손해 보고 있었을지는 굳이 헤아려 볼 것 까지도 없는 일이었다.

 

어린 날에는 그런 식으로 술이 아닌 사람에게서 나는 풍미에 나날이 도취되어 왔던 것이다. 어느 따뜻한 봄날 이후로는 그 어떤 술로도 담을 수 없는 깊고도 매혹스러운 향에 취해 어느덧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 지도 그 사리분별이 어려울 만큼. 

 

"음, 그래도 미츠이 님이 따 주신 이 복숭아는 참 맛있습니다. 싱그러우면서도 적당히 달콤하고 새콤한 것이 아주 그만이에요. 도성 내에 이렇게 맛이 좋은 복숭아는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니까요."

 

"구치 구치. 내가 얼마나 공들여서 키우고 있는데. 아마 궁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건 못 먹어 봤을 걸?"

 

"응응, 맞아요 맞아. 그리고 이거 다 먹고 나면 어서 같이 금 타러 가요. 연습 봐주기로 하셨잖아요. 중추의 궁중 연회에서 고모님과 고모부전하 앞에서 선 뵈기로 했는데 같이 가 주기로 한 거 잊지는 않으셨지요. 후카츠님도- 그리고 밤에는 모두 함께 달맞이하며 연등 날리기로 한 거ー "

 

"그래, 알았다 알았어. 욘석, 보채기는."

 

오늘 이 귀한 귀족의 자제분께서 행차한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다.

 

천하의 일품이라고 소문이 난 그의 금 소리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달 밝은 날 그 운치를 즐기고자 찾는 누각에서 자리를 펴고 앉아 피리를 부는 내 옆에서 가끔 그 합을 맞출 때 빼고는 남에게 들려줄 일은 거의 없었다.

 

아직 덜 무르익었다고는 하나, 남성의 것임을 잘 알게 해주는 굵은 뼈마디를 가진 긴 손가락으로 질긴 현을 유려하게 자유자재로 어르고 달래는 음색은 마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우리네 삶을 덤덤히 보듬어 주듯, 듣는 이로 하여금 무심하지만 살뜰히도 위로받는 기분을 안겨다 주었다. 더러는 그의 금소리를 뒤에서 몰래 청해 듣고 눈물을 흠씬 훔치는 자도 있을 정도로 어딘가 사람의 흉금을 울리게 하는 데가 있었다.

 

뛰어난 연주 실력은 어느새 미츠이가의 담을 넘어 그 소문이 곧 궁 안에까지 알려져서 왕실의 큰 연회에도 종종 초대되고는 하였으나, 과히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 그는 열에 한두 번이나 그 초대에 응할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그의 솜씨를 구경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과연 어찌 다 이르어 셀 수 있을는지.

 

물론 여전히 아무런 까닭 없이 그를 미워하며 시기하는 인간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고약한 마음보를 지닌 자들은 상고 이래 늘 존재해 왔던 것이니 가볍게 무시해 주면 그만이었고, 풍류깨나 안다는 사람들에게 그의 연주는 그 이상으로 감상하고 싶어 안달이 날 수밖에 없게 하는 명물이 되어 있었다.

 

어쩌다 초대에 수락하는 날에는 그 연회의 참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서 벌써 오래전부터 문 앞에서 그 줄이 성시를 이루어 도성 내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도 암암리에 순번표가 나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왕실의 초청에도 콧방귀를 뀌며 들은 자리에서 거절하던 그조차 세상의 편견에는 괘념치 않고 자신을 잘 따르는 기특한 아이에게는 과연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에게도 마찬가지인가였나 보다.

 

음양술만 할 줄 몰랐다 할 뿐이지 기타 여러 기예에 능한 것이 바로 미츠이였다. 문장이면 문장 글씨면 글씨. 그림, 악기는 물론 꽃꽂이에 이르기까지 마치 재자가인이 제 본분인 것처럼 그 재주가 다방면에서 뛰어났다.

 

마음대로 아무 곳을 다닐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것에는 익숙하다고 해야 이야기가 맞을까 싶지만, 하늘에서 내린다는 천부의 재능은 아무래도 숨길 수 없이 저절로 드러나고야 마는 법. 더구나 그의 훌륭한 글씨와 그림은 그쪽 방면에서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교적 고가로 거래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주(主) 보급인은 그의 유모였는데, 사람으로 따지면 겉으로 보기에 미츠이에게 전적으로 호의적인 인물은 아닌 듯하였으나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내 오해였던 모양이고, 어쨌건 소임은 다하는 장부 유형으로 이문에는 참 밝은 그의 유모는 가문으로부터의 부족한 지원을 그런 식으로 메우고 있었던 것 같다. 때로는 자기 주머니에 꽤 넉넉히 챙기기도 하면서. 아마도 그 대부분은 술값으로 족족 탕진되는 것 같아 보였지만.

 

미츠이 역시 모르고 있던 바는 아니라, 살림에 보탬이 된다면 엿이라도 바꿔먹어야지 암, 끄덕끄덕.

 

오히려 자기 작품들이 성황리에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고 실력 향상에 더 힘을 써 그 보수를 두둑이 얻으면, 자기가 필요한 분을 빼놓고는 전부 길가의 배 곪고 아픈 자들을 위해 헌납되고는 해서 여전히 그 형편이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기는 굶어도 남에게 죽이라도 한 술 더 권하는 그릇만큼은 과연 천하를 품에 안을 만한 사내였다.

 

그렇게 펼쳐 놓고 생각해 보면, 그를 떠올리고 추억해 줄 이는 그의 생각처럼 단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었다. 

 

자기가 마땅히 행한 것 알던 그였고, 받은 이들이 자기를 어떻게 여길지까지는 그다지 그의 고려 대상은 아니었기에 떠날 때까지 그의 세상에는 나와 그의 모친 남짓이었겠지만.

 

그러나 그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은, 은혜를 입은 세상은. 만일 그의 숭고한 희생을 알고 난다면 응당 그래야 할 것이었다. 그것이 곧 인지상정. 인간 뿐 아니라 그에게 삶을 빚진 모든 것들이 가져야 할 도리이리라.

 

 

  「원컨대 그대 바란 후세에 봄에 만나기만을.

  사람으로 태어나 꽃잎 아래서 등지는 일 없기를.

  부하고 귀한 것 바란 적 없나니

  삼오월(三五の月) 무렵의 보름밤

  꽃술 떠 놓고 청명한 달 붙잡아 놓으리.」

 

* 삼오월: 음력 8월의 보름(3X5=15日)

 

 

어느 세상에 먼저 가 있든 기다려 주렴. 찾으러 간다, 반드시. 삼천 세계를 다 뒤져서라도 찾아낼 게. 너는 그저 우리가 처음 함께 본 날의 달처럼. 부디 더하지도 덜하지도 말고, 딱 아름다운 원만큼만 그대로.

 

내가 반한 너를 간직하고 있어 주려무나.




 

 


 

명헌대만



 

 * 입으로 희롱하는 건 대만이지만 늘 스님의 얼굴로 대만이가 푹 익기를 기다리는 명헌이가 뽀인트

2023.12.29 01:24
ㅇㅇ
모바일
ㅜㅜ 사랑이다 사랑이야..미치겠다
[Code: 2fe6]
2023.12.29 01:48
ㅇㅇ
모바일
우성이랑 평범한 아이처럼 투닥거리고 동생처럼 귀여워하는거 보고 있으니까 흐뭇하네 거기에 대만이가 푹 익기를 기다리는 명헌이도 너무 좋다...
[Code: 0b4b]
2023.12.29 02:37
ㅇㅇ
모바일
충분히 맛 좋게, 보기 좋게 숙성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
[Code: 60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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