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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2 23:30
1편: https://hygall.com/577457403


 

근래 들어 요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정규리그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점점 더 같은 내용의 번복과 끝에 가서는 늘 참담한 결과로 이르는 꿈 때문에 언제인가부터는 도통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언제 어느 곳인지 그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현시대는 아닌 것 같고, 듣도 보도 못한 복장을 하고 자꾸만 자기가 누군가를 구하고 죽는다는 내용의 비극적인 결말은, 그것이 설령 꿈이라 해도 아주 꺼림칙한 것만은 분명하기에 이제는 그 영향이 경기 내용에 지장을 주는 수준까지 와 있었다.

 

최근의 컨디션 난조는 그로부터 비롯된 것일 터.

 

대신 죽을 때마다 진짜로 자기 목이 달아나는 것처럼 그 감각이 너무도 생생하여 땀에 젖은 채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깨어나서도 상체에서 목이 분리되는 소름 끼치는 느낌에 목 근처로 얼른 손을 가져가 보지만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답답한 것은 당최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것.

 

다른 장면은 모두 선명한데. 현실과 동떨어져 문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옛 자연의 경관은 어딘가 눈에 익은 듯 그리운 기분이 들었지만, 멀리서도 전해지는 고아한 기운과 풍채로 미루어보아 용모 또한 말끔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그 얼굴만큼은 도무지 블러칠이 된 듯 흐릿해서 떠오르지가 않는 것이었다.

 

죽기 전까지, '아무렴, 마지막에는 웃는 낯으로 헤어져 줘야지. 하하하-!' 금방이라도 목이 떨어져 나가기 직전인데도 개의치 않고 호방하게 웃으면서 그에게 다짐을 받아내듯 뭔가 중요한 말을 던졌던 것 같은데 —.


 

 

   「절대 잊지 마라, 나를.」

   忘れるな、オレを絶対。

  「다음 생에 반드시 찾으러 와ー」

   後の世で必ず探しに来いよー

  「약속해, 카즈나리ー!

   約束しろ、カズナリー!

 

 

말을 다 마친 뒤에 만족스럽게 그에게 씩 한 번 웃어 보이고 곧 의식이 끊기면서, 꿈은 거기서 그대로 끝나 버린다.

 

듣는 이의 얼굴은 굳이 보이지 않아도 많이 슬퍼하는 것이 느껴지지만, 자기는 그를 살리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꿈에서도 가지런한 입술이 뭐라 뭐라 답하며 달싹이는 것을 보고 안심… 했었던 것 같다.


 

 

               *     *     *

 

 

「내세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카즈나리. 그렇다면 되도록 거기서도 너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번 생은 너무 힘겨웠거든. 아무리 유서 깊은 가문의 후손이라 해도 인간과 다르다는 것은 아무래도 용인받기는 어려운 모양이라. 그래도 철이 들기 전에 너를 만나서 다행이다. 네가 없었다면 아마 세상의 아름다움은 모르고 갈 뻔했어.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던 집안의 술법은 너한테 다 배웠지. 만월에 꼬리가 나오면 그걸 감추는 법도 네가 아니었으면 언제나처럼 버려진 곳간 창고에서 홀로 기나긴 밤을 견뎌야 했을 거야.」

 

 

예의라는 것은 그들의 높으신 지체만큼이나 목을 매는 덕목이었기에 모두 앞에서 이름만을 불렀다가 윗분에게는 내가 아닌 유모가 불려 가 경을 치는 것을 본 후로는 밖에서는 꼬박 '님'을 붙이기는 했지만, 둘만 있을 적에는 예의 나부랭이야 턱도 없는 일이었다.

 

호칭 하나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는 좁은 새장 속에서 언제 숨이 막혀 죽어도 죽어나갈지 모르기 직전에 만나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너로 인해 비로소 보름의 달도 떳떳이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아래에서 네가 담아 온 과일주를 나눠 마시며 그 분위기에 취해 평생을 약조하기도 하였던가.

 

아아, 그때는 정말 좋았다. 진정한 지기라면 올 때는 혼자 왔어도 떠날 때는 함께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한날한시에 —,  건배사를 외치고 농담 반 진담 반 술잔을 기울이며 둘이서만 오붓이 늦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도 있었는데.
 

미츠이가(三井家)의 먼 친척이라고는 하지만 집안의 어떤 어른보다 음양술은 뛰어난 너라서 마지막에 너를 구할 수 있던 것도 네가 가르쳐 준 것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참 간사하지. 요괴의 아이라며 손가락질할 때는 언제고 세상의 끝이 다 와 간다니까 그토록 멸시하던 자에게도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처세술인지라, 그리 오래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 — 아마 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런 못난 자조로 그냥 내버려 두었을지도 몰랐을 것을.

 

하지만 너를 알고부터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네 사려와 따뜻한 이타의 마음이, 거칠고 사나운 눈보라만이 가득 몰아치던 내 세상에 따스한 봄바람을 불러와 오랜 시간 얼어붙은 만년의 빙하를 녹인 것이다. 그간에 사무친 요괴의 마음을 잠재우고 저 아래 잠자고 있던 다정한 사람의 마음을 깨워내 사람의 마음으로 모두를 구하기로 한 거야.

 

네가 예쁘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한 이 세상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널 알게 했으니 내게는 마냥 얄궂지만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아직 구할 만한 가치가, 살 만한 가치가 있을 거야.

 

그래서, 너와 내 모친이 사는 세상을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의 모친은 생일이나 집안의 행사가 있을 때만 겨우 볼 수 있어서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만나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지금은 목소리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만날 때마다 늘 고고함만은 잃지 않아 한눈에 보기에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느끼게 하는 매우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어린 마음에도 넋이 나간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구태여 배우지 않고도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세상을 초월한 미색의 소유자였다.

 

뭇사람들은 그 고결한 아름다움마저 시샘하여 사람 홀리는 여우가 따로 없다느니 수군대기도 하고, 어쩔 때는 그 화살이 나에게까지 돌려져 그런 어미를 닮아서 내가 그렇게 예의도 모른다느니 제멋대로라느니, 무례한 말들을 대놓고 떠들어대서 신경을 거슬러 놓기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일일이 기억해 뒀다가 보란 듯이 그들의 과오를 지적해 되돌려 주며,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런 말은 쏙 들어가게 만들어 주었고, 고운 자태를 조금만 더 앞에서 보고 싶어서 다가가 봤지만 이제 돌아갈 시간이라며 유모 손에 붙들려 문을 나서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본 모친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느낄 수 없었으나 꼭 배웅이라도 되어 주실 양 '잘 가렴, 내 아가.' 눈빛만은 또렷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어 돌아와서도 울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내 요기를 어지럽힐 수도 있다며 안 그래도 외부와의 출입이 어려운 폐쇄적인 건물 구조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방에 거의 유폐되다시피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햇빛은 보게 해주면 안 되느냐며 아이의 천진난만한 물음이었을 뿐인데도 호되게 꾸지람을 얻은 뒤에는 다시는 꺼내지 않게 되었지만. 비교적 자기에게 유하던 부친마저 모친의 이야기를 꺼낼 때는 금방 얼굴색이 바뀌어 오랜만에 찾은 자신의 방을 그대로 나가버린 이후로는 모친에 관해서는 더 이상 일절, 입 밖에 내지도 떠올리지도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그대의 뜻대로 하세요." 라며 역시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으시고 잠시 두 손을 꼬옥 잡아주던 자신의 모친은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손의 온기만은 매우 따스했기에. 태어나자마자 헤어져서 그제야 처음 느껴 본 어머니의 감촉이 서러워 그날은 아껴 마시던 녀석의 술을 모조리 동내고야 말았지만 다음날에는 당연히 그에게 술은 괜히 가르쳐 놨다느니 어쨌느니 한두 소리 들을 각오는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밤에 내가 처음 제 발로 모친을 찾았다는 사실과 내 눈가가 붉어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는 놈은 말없이 숙취에 놓은 매화차를 눈앞에 대령했을 뿐이었다.

 

무릇 산에 가까운 데에서 살아서 그런지, 이런 민간의 요법에는 참 박식한 그였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생강차, 잠이 오지 않을 때는 국화차. 두통이 왔을 때는 약간의 침술까지, 그러다 후카츠가는 의원으로 간판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며 실없는 농은 지금 떠오를 게 뭐람.

 

이런저런 시시한 우스갯소리부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자질구레하지만 나에게는 이 시시콜콜함마저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은 선택과 집중이라 누가 그러던가. 진정한 나 알아주는 이 하나 있다면 더 부러울 것이 없다고.

 

오직 세상이 나에게 잘한 것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너를 만나도록 한 일일 것이다. 아니라면 그것은 여전히 내게는 그저 지상 위의 연옥과도 같았겠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루하루를 노여움과 서글픔으로 연명하듯 살던 내가 삶의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보다는 너라는 사람을 알게 되어, '인생이라. 그거 뭐, 조금은 살아볼 만하네.' 라고 누릴 수 있게 되었단 말이다.

 

그 덕에 그것을 구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생겨났으니, 참으로 오묘하고 알 수 없는 것만큼은 바로 그 세상의 이치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내 어깨와 발걸음은 모두 가볍게 어둠으로 향했다.

 

 그러나, 처음 본 그날처럼 방문을 나갈 때까지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모친의 눈길은. 혹 이리될 수 있음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그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견이라도 하신 듯 —.

 

 

허나, 그러다 결국 변고가 생겨서. 폭주하는 내 힘을 통제 못 하게 되었을 때에는 오로지 너와의 기억에만 매달렸다. 비록 사악한 기운이 온갖 유혹의 말로 나를 꾀어내려는 와중에도 한 줄기 빛이 되어 준 것은 너와 함께 한 순간순간의 밝은 기억들. 그것 덕분에 희미해지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들고 인간의 의식이 다 하기 전에, 내 손으로 너와 네 소중한 모두를 해하기 전에 이 몹쓸 것은 저승으로 함께 데리고 가주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거나 한탄해하거나, 그러지는 마라. 내가 택한 나의 길이니까. 그것은 무상하지도 가엾지도 않다, 절대. 네가 괴로워할 필요는 아무것도 없어. 잊지 말라는 것은 결코 저주가 아니니까. 그것은 그 눈부신 기억이 나를 살렸으니, 너 또한 그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염원이다.
 

목이 떨어져 나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그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흘러서,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마지막으로 생일선물로 받은 네 '야심작'을 맛보지 못한 것. 간만에 네 의기양양한 ─남들은 눈치 못 채는─ 표정에는 정말 기대 많이 했는데. 쳇, 개봉도 되기 전에 주인을 잃었으니 이 얼마나 가련한지고 ―.  뭐, 저세상에서도 음주와 풍월을 읊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만은' 부디 함께 묻어주라. 그럼 먼저 가서도 그곳의 자연을 즐기며 둘이서 서로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어느 때 보다도 정성스러운 너의 손길이 묻어 있을 터이니 —.

  세상의 모진 풍파와 시련은 그것으로, 다 잊으련다.

 

아, 그리고 이번에는 그 약조가 지켜지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너무 일찍 따라오지는 말고 내가 지킨 세상에서 너는 꼭 너의 사람들과 천수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다가, 어쩌다 내가 그리워지면 가끔 우리가 처음 만난 곳으로 와서 나를 떠올려 주면 좋겠어. 내가 세상에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줄 이는 너밖에 없으니, 너라도 추억해 주지 않으면 그건 좀 쓸쓸하잖냐. 내게 한 맹세는, 굳이 다시 말하지 않아도 자기가 뱉은 것은 꼭 지키는 남자니까. 두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니, 그저. 무탈해라 ―.

 

 

  「바라건대 봄에 꽃잎 아래에서 다시 만나기를.

    사모하면 시름으로 등돌리지 않는 세상 있기를.」

 

 

그렇다면, 내세를 빌며 한 수 지어 볼까나? —.  마지막으로는 언젠가 너와 글을 지으며 보내던 한가로운 때에 썼던 시의 문구를 떠올리며, 우리의 약조는 그런 세상에서 마저 지켜질 수 있을 거라고, 마지막 의지를 모아서 술법을 날리고는 현세에 남을 그의 무사만을 빌고 눈을 감았다.




               *     *     *

 

 

  제길, 제길, 제길 ―.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평소 그의 입으로부터는 들릴 일이 거의 없는 다소 거친 반응이 연이어 새어 나온다. 

 

정말 믿을 수가 없다. 가문의 수재가 뭐가 어떻다는 거냐. 결국 사모하는 사람조차 구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어리석은 자일 뿐이거늘.

 

눈앞에서 아무런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아니,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알았으니까, 거기서 기다려라. 히사시—

   分ったから、そこで待ってろ。ヒサシー


 

그의 만류로, 그의 요구에 원하는 답을 내어주고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단지 속으로 탄식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너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하겠지만 남겨진 사람의 마음만은, 그것이 그리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끝내 말로는 다 전할 수 없었던 생전의 의지가 담긴 술법이 날아든 후, 그의 마지막 유지가 전달된 순간에는 더더욱—.

 

예상도 못 한 때에 눈 깜짝할 새에 내게 와서는, 떠날 때마저 훌쩍 이슬처럼 사라지는 그를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이 자신의 역사상 처음으로.

 

증오스러워졌다.


 




명헌대만
2023.12.23 01: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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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바ㅠㅠㅠㅠㅠ이렇게 슬프게 헤어지기 있냐고ㅠㅠㅠㅠㅠ
[Code: f9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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