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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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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화려할 때, 가장 아름다운 너를 취해 간 세상이 —.

 

 

이런 부정(不淨)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수양의 정진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보다 더한 부정(否定)의 시선 아래에서 살아왔을 그도 원치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제 세상에 없는 그를 기리어 줄 이는 그의 말대로 자신뿐이지 않은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천하를 구한 난세의 영웅을 애도하여 줄 사람은 자기가 아니면 또 누가 있단 말인가.

 

그가 사라지고 나니, 천지가 환해지고 온 세상에 가득 깔려 있던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이제야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저 하늘의 해님마저 반가운 대상이 되어야 마땅할 테지만, 지금은 원망스러운 마음만 그 고개를 들려 할 뿐.

 

어쩌면 너는 오면서는 허상, 갈 때는 신기루였을까. 아직, 나의 모든 것은 너를 느끼고 있는데. 방금까지도 세상의 종말 따위는 알게 뭐냐고 악동처럼 짓궂게 웃던 그때와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장렬히도 세상을 구원하고 간 너의 환한 미소가 지금도 나의 눈에는 선한데.

 

아니면 대국의 성인이 이른 것처럼 나비처럼 왔다가 나비처럼 돌아간 것이더냐. 만약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라면, 여기에서 깨어나면 네가 있는 곳으로 나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야.

 

아홉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만나 성인의 관례를 치른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삶은 유한하다 하나 우리의 인연은, 우리가 보낸 꽃다운 시절은 그보다 더없이 짧았음을 어찌하여 비통해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아아 참으로, 애석하구나. 

 

 

 

          *           *          *

 

 

  「꽃은 말이다, 카즈나리. 가장 화려할 때 확-! 꺾어 버리는 거다. 그래야 덧없이 추하게 지는 꼴은 안 보일 수 있잖아, 그 아름다웠던 것이. 그러니까 너도 내가 가장 화려할 때 확 취해줄게, 기대해라— 하하핫.」

 

 

수위 있는 농은 이제는 숨길 의향도 없다는 듯 노골을 더해가고,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겨울의 밤에도 오늘은 취기가 제대로 오른 모양인지, 윗단추를 다 푸르고 누각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난간에 기대 몽롱한 시선으로 달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모포를 덮어 준다.

 

난간 위에다 왼쪽 팔꿈치를 걸쳐 놓고 그 위에 고개를 얹어 엎드린 자세로 오른쪽 팔꿈치는 난간 위에 고정한 채 그 손에 들려 있는 술잔에서는 자신이 지은 술이 까딱까닥, 검은색 소매가 아래로 흘러내려 드러난 손목의 나른한 움직임을 따라 넘실거리고 있다. 그것을 있는 대로 실컷 머금고 있는 그의 촉촉한 입술에서는 잘 익은 과실의 단내가 계절의 찬 공기에 실려 은은하게 풍겨 온다.

 

또 무슨 취중 연설을 하시려나. 똑같이 몽롱한 의식으로 그의 오른쪽 옆으로 나란히 걸터앉아 난간 위에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언제나 봐도 질리지 않는 단정한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윤기가 흘러 쇄골 아래까지 반듯하게 내려오는 진 흑갈색의 곧은 머리칼을 한쪽 어깨 아래로 내려 묶고 소매가 넓은 묵색의 포를 챙겨 입은 모습은 보통 몸과 마음이 편하게 있을 때 그가 자주 하는 복장이었다.

수수하지도 밋밋하지도 않은 다부진 얼굴선은 적당히 짙고 두텁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조화로워 치우침이 없는 균형미는 성인이 되기 전의 건장한 청년임을 알게 해준다. 무언가 집중하거나 고민할 때 다물어져 있는 고집스러운 입술은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꾹 내밀어지지만, 성취감 등으로 기쁠 때에는 또 간데없이 한껏 벌어져 진심으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고는 했다.
 

터럭의 먼지만큼도 꾸밈 없는 정직하고도 성실한 얼굴은 외곬의 기질이 여실히 드러나면서도 누구의 간섭도 배제하게 하는 엄숙함마저 나타내 때로는 나 역시, 그 물아가 일체 돼 있는 내면의 세계에는 관여를 할 수가 없게 된다. 마치 지금처럼 —. 이렇게 세상에 자기를 혼자 두는 듯한 그의 내재적인 태도는 어떤 때는 상대를 외롭게 만들기도 하면서 안에서는 원인 불명의 목마른 증상을 일으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약으로도 손을 쓸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뭐, 그래서 스스로도 불치의 병이라 진단 내린 지는 오래이다. 장상사(長相思: 이백의 시)라는 병명의 —. 장안(長安: 당의 수도)에 말고 경(京: 교토, 일본의 옛 수도)에도 있었구나. 하염없이 길고도 오래 그리는 마음이란. 그 애간장이 끊어지는 마음은. 가끔은 눈앞에 두고도 사모하는 이를 멀리 보낸 사람의 기분이 느껴져 그 시를 지은 주인처럼 살짝 토라지고 싶은 마음이, 투정도 부려 보고픈 마음이 아주 살며시 들기는 해. 혹시 알고 있어, 히사시. , 사랑스러운 그대여(我が、愛しい君よ。).

 

그리고 그 긴 병은 현재에도 차도가 없어, 들릴 리도 없는 연모의 정을 담은 절절한 고백은 언제나 그윽한 눈길로만, 늘 항상 같은 사람을 향해 있는 것이다.

 

피식. 자기도 못지않게 관조하는 주제에 —. 자조 섞인 마음과 그런 유치한 감정도 잠잠한 수면 위에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나도 퍽 취하기는 했는가 보다. 열일곱이 되어 그해 몇 해 전, 어느 좋은 날 딴 과일로 담은 술을 열고 그와 처음으로 잔을 부딪히던 날 이후 열아홉이 된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밤정취가 좋아 정신이 가물가물 해질 만큼 정도를 두지 않고 마시다 보면 좋은 판단력도 꼼짝없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과 함께 술에 동시에 취하게 되니 아뿔싸, — 그 위력은 배가 되고야 만다.

 

이런 이런 카즈나리야, 카즈나리.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날 그렇게 자기 품에 덥석 잘도 안아 들었어. 넝쿨째 굴러온 호박 같은 아이를.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주는 따스한 봄볕이 좋았고, 풍겨오던 향기는 더욱 좋았기에 좀 더 안고 있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

 

꽃은 그것이 피기 전 온 생명을 다해 봉우리에서 기를 쓰고 피어나려 할 때가 제일 강하고 아름답다, 손에 들고 있던 잔을 한입에 털어 넣고 다시 익숙하게 빈 잔을 내게 기울여 술을 청해 오는 그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이제는 속이 아닌 실제 목이 마른 듯하여 내미는 술잔에 대신 술병을 들어 몇 모금 입에 담는다. 그리고 여전히 이쪽은 보지도 않고 우두커니 저 먼 달님만 응시하고 있는 그의 턱을 잡아당겨 단내가 풀풀 풍겨 오는 입술에 입을 맞춘 후 안으로 흘려 넣었다.

 

잠시 당황한 듯 동그랗게 떠진 눈은 곧 입안에서 느껴지는 달큰한 술 내음에 스륵 감기고 목으로 다 흘려 넘긴 후에도 뭔가 부족한 듯 그가 입은 것과는 다른 백색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내 목 뒤로 팔을 두르고는 곧 그의 품으로 잡아 가둔다.

 

그대로 고즈넉한 겨울밤의 깊어진 흥취만큼이나 더욱 깊어진 입맞춤을 만끽하려는 듯, 두 사람의 인영은 꼭 맞물려 그날 밤은 오래 떨어질 줄을 몰랐다.



 

               *     *     *


  「처음 그날부터 쭈욱 변함없이 강하고 아름다웠다, 너는. 항상 네 삶을 다하지 않을 때가 없었기에 그것이 지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답지 않게 호언했던 것이 하늘의 분기를 샀던 탓이었을까 —. 」

 

아무리 너의 선택이라고는 하나, 너는 항상 주어진 굴레에도 불구하고 네가 마음먹은 대로 자유로이 살기를 꿈꾸었지. 처음 만났던 날에도 아무 능력도 없는 네가 어떻게 그 높은 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서는 커다란 뱀을 상대로 어미 새를 구하려다 떨어져서 내 품에 안겼을 때조차.

 

가문 역사상 최고의 음양사라는 부친을 두고도 원래대로라면 촉망받아 마땅할 고귀한 혈통이 신변상의 문제로 숨어 살아야 했던 현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결백한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주위의 시기와 질투를 산 것이었겠지마는 난 그 결백에 찬 얼굴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경(京)의 명소 중에서도 손꼽히는 장소라 그 경치는 천하제일이라 해도 가히 손색이 없었고, 시기도 바야흐로 봄이 아니었던가. 자기가 사는 곳까지 그 소문이 자자하였기에 마침 수도에 온 김에 잠시 눈요기라도 해 볼까 해서 방향을 잡은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다행히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되어 일부 왕실 사람과 높으신 분들만이 오갈 수 있는 곳이어서 인적은 뜸한 곳이었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연유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

 

그것은 바로 요괴의 주 출몰 장소라는 —. 물론 그런 건 눈곱만큼도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 사소한 연유였고, 그것만 빼놓고 보면 과연 듣던 대로 화려한 경관에 의식을 잃을 만큼 이를 데 없이 빼어난 풍경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갑자기 자기 품으로 떨어져 안긴 소년의 형색 또한 마찬가지여서 나도 모르게 멍하게 소리가 되어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예쁘고... 아름답구나 —."

   사람도, 풍경도.

 

  "...? 으햐, 이번엔 진짜 위험했다. 고마워. 너 때문에 살았다."

 

  "...다친 데는 없나."

 

아차, 자기 품에서 빠져나오며 옷의 매무새를 정리하는 그를 보며 느낀 것이 아쉬움의 감정이라는 것을 문득 깨닫고는 대답할 타이밍을 잠시 잃고 말았다.

 

  "응, 아마도? 근데... 넌 누구냐. 이 근처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인데, 흠 옷도 우리집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여기 들어온 거랑 입은 걸로 봐서는 하인도 아닌 것 같구만... 음? 그 문양은..."

 

  "후카츠, 후카츠가(深津家)의 카즈나리다. 그러는 너는 누구길래 보아하니 술법도 못하는 것 같은데,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어째서 그 높은 데에 올라가 있던 거야, 거기까지는 대체 어떻게 올라간 거지?"

 

  "아하하, 그렇기는 한데, 딱히 죽고 싶었던 건 아니고... 술법 못 해도 나무 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거덩, 이 딱딱한 녀석."

 

하긴, 굳이 술법이 아니더라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는 법은 한 가지가 아니란 것을 그를 만나기 전까지 그런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수련차 멀리서 친척이 온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게 너로구나. 난 미츠이, 앞으로 잘 부탁한다."

 

싱긋 웃는 얼굴에 심장이 작게 일렁인 것 같은 기분은, 자기가 살던 곳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불어온 봄바람 탓일까.


  사르륵, 스친 머릿결에서 실려오는 향긋한 감각에 온 신경이 쏠려서 ─.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엷은 분홍색 꽃잎이 비단결처럼 고운 바람에 나부껴 눈앞에서 춤추듯 팔랑이는 순간. 양볼마저 같은 색으로 발그레 져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할 틈도 없이 천상의 아름다움이란, 천의무봉(天衣無縫: 세상사에 물들지 아니하고 꿰맨 흔적이 없는 선녀의 옷처럼 자연스럽게 아름답다.)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남자아이가 귀한 미츠이가에 자기 또래의 소년이라면 자기가 알기로는 현 당주의 아들 밖에는 없는데, 그럼 눈 앞의 소년이 바로 ─.

 

  "아, 근데 난 집안 이름으로 듣는 거 싫어하니깐, 히사시로 부탁해- 그리고 너, 후카츠라면 역시 술법 좀 쓸 줄 아는 거지? 그렇다면 저 뱀 좀 쫓아 줄래. 새알을 훔쳐가려 해서 쫓아내려다가 떨어진 거야. 죽이지는 말고 쫓아내 주기면 하면 돼."

 

  "음양사는 자연의 섭리에는 관여 안한다."

 

  "떼잉, 답답하게 굴기는. 나랑 같은 또래로 보이는구만 벌써부터 어른 흉내냐. 난 음양사 아니니깐- 내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좀 쫓아 주라. 쟤는 배가 고픈게 아니라 그저 괴롬힘이 목적이라구. 질이 나빠요, 질이. 말도 잘 안 통하는 놈인데 겁쟁이니까 멀리 쫓아버리면 다시 돌아올 생각은 못할 거야."

 

나라 최고의 음양사의 자식이 음양사가 아니라는 해괴한 말은 그이기에 들을 수 있는 말이었겠지.

 

말이 안 통한다니 그럼 통하는 뱀은 따로 있다는 말인가 했더니, 모든 것은 그의 출신과도 관계가 있는 사연이더랬다. 인간과 요괴의 혼혈인 그는 인간 외의 것에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이다.

 

동물이든 곤충이든 요괴든. 어쩔 때는 식물에게도 말을 거는 것을 보았지만, 그것은 종종 자기에게도 있는 일이니... 논외로 하고, 아무튼 그의 모계는 대 여우요괴의 부족으로 또 그의 모친은 바로 족장의 딸이었다.

 

백여우족은 저급 요괴와는 달리 전 요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족으로서 오랜 시간 수련을 쌓으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살아 외견으로만 보면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개체수도 얼마 되지 않고 깊은 산 속 동굴에서 자기들끼리만 촌락을 이루고 살아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았지만, 먹을 것을 구하고자 어쩌다 그곳까지 찾아가게 된 인간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지레 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서로 부딪히는 일이 잦아지게 되어 화친의 목적으로 성사된 것이 그 혼인이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일이라 자세히는 알지는 못하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장안에 화제였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부친은 그 당시 약관의 나이에도 벌써 명실상부 나라 최고의 음양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거물이었고, 해서 그 혼처만 해도 날마다 줄을 서서 화친혼만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그 줄이 계속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시끌벅적한 혼사가 끝나고 다음으로 떠들썩했던 사건은 바로 그의 출생.

 

태어난 아이가 남자아이인 것은 모두가 경축할 만한 일이었다. 남아가 귀해 여자에게도 후계를 잇게 해보려 한 시도 역시 효과를 보지 못하여 요족과의 아이라 해도 고대하던 남자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전국에서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은 그가 태어나고 첫 보름이 되던 날 밤에 터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과 요족의 혼혈은 그 피가 더욱 진하여 힘이 강한 것이 상식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달이 다 차오른 후 눈을 뜬 아이의 눈은 붉게 빛났으며 그 꼬리는 아홉 개였다고 들었다.

 

현재 여우족의 족장마저 세 개라고 들었거늘, 아홉 개는 대체 어떻게 된 수준인지. 그 기운이 수도 전체에까지 퍼져 한바탕 난리가 나고 자신의 가문을 포함하여 전국 도처를 뒤져 방도라는 방도는 다 구해 와 요기를 누르는 데까지는 성공하였으나, 힘의 규모는 물론이거니와 그 반향이 어떻게 될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기에 당시 미츠이가에서도 그의 처우에 대하여 여러가지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두 번째 보름이 오기 전에 태어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모친 곁에서 떨어져, 요기가 완전히 지워질 때까지는 도성 최고의 결계가 쳐진 사당에서 두고 보기로 하고, 이후로는 다행히 별다른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자 큰 사건은 그것으로 일단락 마무리는 된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달이 지나고 해가 지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점점 잊혀갈 때 쯤에는 그의 연금도 풀려나 집안에서도 그의 요기를 억누를 수 있을 만한 가장 강한 영맥이 흐르는 곳에 따로 거처를 정하여 유모 하나만 두고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던 곳은 이미 세상이 아니라 작은 지옥이었음은 처음 본 그의 처지에서도 전해져 왔다.

 

세상에 사람의 편견만큼이나 더한 지옥이 따로 있을까. 아무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희미해졌다고는 하나, 이미 가문의 눈 밖에 난 인간과 요괴 사이에서 나온 자식에게 신경을 써 줄 이 또한 따로 있을 리가 만무했던 것. 음양술은커녕 그 뒤로는 쉬쉬하기 바쁜 나머지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게 되어 아홉이 되도록 꼬리 하나 감추는 방법을 몰랐던 그이다.

 

보름의 밤이면, 지금은 버려져 신성한 곳에서 창고 신세로 전락해 버린 사당에서 긴긴밤을 홀로 지새워야 했을 아이의 설움은 또 누가 알 수 있으랴.

 

후에 부정이 탔다며 폐쇄된 집안의 옛 사당은 미약한 요기를 감춰 주기에는 또 그만한 장소도 없었기에 휘영청 밝고 둥근 달이 떠오를 때에도 그것은 아이에게 달구경은 고사하고, 어서 그곳으로 가 몸을 숨기라는 가혹한 신호와 다를 바가 없을 뿐.

 

 

"오오 듣던대로 꽤 하잖아, 너."

 

그리 대단한 기술은 아니지만, 단지 요기를 없애는 기본적인 술법임에도 대기술을 보고 감탄한 양 두 눈에 생기를 가득 담아 반짝이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게 난다. 그리고 이 예쁜 눈이 나만을 향해 계속 반짝여 준다면 참 좋을 텐데, 속으로 작게 되뇌었던 것도...

 

조금 들뜬 목소리에는 그간 자기를 꽁꽁 옭아매고 있던 속박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후련함과 진심 어린 기쁨이 함께 흘러나와 처음에는 그게 그렇게나 좋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괴롭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성탄썰이 어이하여...
에블바디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뉴이어💝
명헌대만
2023.12.24 22: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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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첫만남 순간 너무 사랑스러운데 뒤에 어떻게 될지 뭔가 불안불안하네... 과거 이야기 흥미진진하고 ㄹㅇ 존잼이다
[Code: 6a8e]
2023.12.24 23:00
ㅇㅇ
모바일
이이고 대만이ㅠㅠㅠㅠㅠㅠ
[Code: 07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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