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04637852
view 1610
2024.09.14 07:35

https://hygall.com/547059788
https://hygall.com/547127836
https://hygall.com/547517795
https://hygall.com/547909712
https://hygall.com/548149129
https://hygall.com/548419133
https://hygall.com/550244930
https://hygall.com/570549147
https://hygall.com/577804737
10 https://hygall.com/594826417
11 https://hygall.com/603920191

12 https://hygall.com/604313915






“이젠 다 나았다니까.”
“꼭 상처 때문이 아니라... 몸에 좋은 겁니다.”
오찬 후에 또다시 약을 가져온 남희신에게 한숨을 내쉬자, 그가 말했다.
무언으로 조르는 시선에 못이긴 듯 사발을 받아 꿀꺽꿀꺽 마시자마자 사탕을 까서 내밀었다. 몇 번 약을 물리려고 했더니 투정으로 취급했는지 사탕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마침 집무실에는 단 두사람 뿐이었기에, 강징은 사탕을 물려 주려는 손을 무시하고 그의 목을 당겨 기습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놀라는 것도 잠시. 곧장 강징의 입술을 머금은 남희신이 허리를 받쳐 안으며 더욱 농밀하게 화답했다. 
가볍게 입술 도장을 찍고 나서, 이렇게 쓴 약이 아니냐고 불평하려 했던 강징은 길어지는 입맞춤에 헐떡이다가 가슴을 살짝 밀어내었다.
몇 번이나 입술을 물리고, 혀를 담가 입 속까지 쪽쪽 빨린 다음에는 쓴맛도 거의 남지 않았다. 게다가 입맞춤이 끝난 후 바라보는 남희신의 얼굴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어서 말문이 막혔다. 
홀린 듯이 그의 품에 안긴 채 뺨을 쓸어보며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근래에는 낮 시간에도 틈만 나면 안고 안겨서.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하염없이 바라보고 만져보고 했다.
처음부터 이 아이에게는 아무런 사심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정말로 나에게 헌신적인 거구나.
그래도 도무지 현실같지가 않아서, 그런 생각도 매일매일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한껏 바라보고, 마음껏 쓸어보고.
변함없이 저만 보고 아껴주는 그를 수십번 수백번씩이나 확인해 보았지만.
그럼에도 내 것이라 느껴지지는 않는 허전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오후 시간에 남희신의 행방을 확인하여 잠시 출타하셨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그 틈에 피임탕을 가져오게 했다.
요즘 남희신은 외출이 잦았다. 약재나 사탕, 서적 등등 근래에 와서 필요하게 된 잡화들을 사러 나가는 듯했다.
그는 꾸준하게 연화오 밖으로 나가지만 허락을 받으러 온 적은 없었다. 강징이 그간 출입을 제한했던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으며, 누군가가 자신을 막을 이유가 있다는 생각조차 못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강징은 그의 뒤에 사람을 붙였다. 
하지만 이제는 감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피임탕은 매일 남희신이 먹이는 약보다 훨씬 먹기가 좋았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 맛이 텁텁하게 느껴졌다.
희락기를 밖에서 보낼 적에는 물론이고, 남희신과 잠자리를 하게 된 후에도 절대로 거르지 않던 탕약이었다.
약을 마시다 말고, 강징은 난생 처음으로 운몽 강씨의 후계자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차마 남희신을 갖다붙이지는 못했다.
그의 아이를 낳으면, 고소 남씨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이제까지 쌓아올린 위태위태한 금자탑을 무너뜨릴 셈인가.
강징은 이마를 짚었다가, 추운 듯 제 팔을 쓰다듬고 한참 전에 뜨겁게 입맞추던 입술을 쓸어보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저 꼬맹이는 대체 얼마나 나에게 진심인 걸까.
그저 모든 일이 두려웠다.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지금의 아슬아슬한 평화는 깨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남희신도 정치싸움의 한가운데에 말려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인생은 더 험해질 것도 없지만, 순진한 아이의 앞에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이 펼쳐질 것이었다.
가슴이 지끈지끈하는 중에, 언뜻 저를 거북해하고 부끄러워하는 조카가 떠오르며 아픔 하나를 더했다.
혹은.
애초에 인질로 데려왔던 거니까. 이대로 아이 따위는 만들지 말고 언제까지나 허울만으로 데리고 있어도 막을 사람은 없었다. 후계자는 누구든 힘없는 씨내리를 들여서 보면 되겠지. 어차피 만천하가 삼독성수의 마음대로인 세상이니까.
하지만 역시, 남희신이 불행해질 것이다.
강징은 그가 자신의 곁에 있으면서 불만스러워하고 불행해한다면 그 모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언제나 미소만 지어주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운다면. 혐오하고 증오하는 빛이 떠오른다면.
강징은 반쯤 남아서 식어가고 있는 탕약을 의식하고 단숨에 마셔버렸다.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웅크리며 막막한 숨이 흘러나왔다.

한참 후, 다시 고개를 들고 차근차근 생각하기 시작하는 강징의 눈은 공허하며 칠흑으로 빚은 것 같았다.
청형군이 사망하고 몇 년이 흘렀지만 고소 남씨는 아직도 가주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두고 있었다.
어쩌면 강징이 남희신을 돌려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고소 남씨에 대한 의심은 풀리지 않았고, 사건은 완전히 오리무중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아직 남희신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강징은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구석에 있는 서랍장을 열고, 혼례식 후에는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상자를 꺼냈다.
비단 주머니를 열어 기울이자,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끈이 사르르 흘러내렸다.
강징은 말액을 손에 쥐고 티끌 하나 없는 표면과 권운 무늬를 천천히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잖게 받았고, 숫제 버릴 뻔했는데.
지금은 손에 드리워진 작은 띠가 삼독이며 운몽 강씨 전체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고소 남씨의 사람을 소유한다는 증표.
이것을 지니는 자가 남환의 부인.
강징은 하얀 띠를 꼭 쥐고 입술에 갖다대었다.




***




추운 날씨였지만 남희신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강징이 따뜻하게 지어 입힌 하얀 망토는 물론이며, 그 자신도 돌아가는 길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운몽성과 연화호의 나루터를 오가는 큰 배에서 내려선 다음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호수는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이가 시려지는 듯 차가워 보였다. 배를 타고 돌아온 사람들은 옷깃을 꽁꽁 여미며 얼른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시선이 탁 트인 정경을 휘둘러 산 쪽을 향하자, 마치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우뚝 서 있는 연화오의 높은 누각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걸음을 재촉하는 얼굴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반짝였다. 


“택무군, 종주께서 부르십니다.”
사람들이 급하게 뛰어다니는 선부의 분위기에도 익숙해진 남희신은 내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붙잡아 끄는 부사의 초조함을 깨닫지 못했다.
다만 그가 남희신의 손에서 장에서 사 온 잡화들을 걷어갈 때, 언뜻 그것을 붙들고 싶은 마뜩찮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처럼 친밀해진 때라도 남희신은 절대로 강징의 입장을 잊지 않았기에, 종주가 부른다는 말에 흐트러진 곳도 없는 의복을 한 번 살펴본 뒤 부사를 따라갔다.
이상하게 선부 내에서 안내라도 하는 듯싶더니, 부사가 향하는 곳은 평소 강징이 머무르는 집무실이 아닌 넓은 강당이었다.
육중하게 생긴 문턱을 넘어가자, 패검을 쥔 수사들이 옆으로 죽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끝에 강징이 마치 왕좌를 차지한 지배자처럼 앉아 있었다.
부사가 고개를 숙여 보이자, 남희신은 서슴없이 그의 앞으로 걸어갔지만 이상스런 위압감에 눌려 완전히 다가가기도 전에 발이 멈추었다.
그가 걸음을 멈추자, 마치 죄인이라도 맞는 상황처럼 보였다.
강징은 크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속을 알 수 없는 눈길로 바라보기만 했다.
이윽고 그가 탁자에 놓인 상자를 가리키며 턱짓을 하자, 옆에 있던 수사가 그것을 가져다가 남희신에게 허리를 숙이고 내밀었다.
무슨 일이냐는 듯, 남희신이 쳐다보았지만 강징은 말이 없었다. 
묘한 압기에 밀린 남희신이 상자를 열어 보자, 그 안에는 몇 년 전 강징에게 주었던 자신의 말액이 들어 있었다.
연화오의 문간에서 붙들리고, 이까지 오며 기묘하게 짙어진 두려움이 급속도로 잠식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의미냐고 묻기도 전에 강징이 입을 열어 무겁게 말했다.
“남희신. 이제 그만 운심부지처로 돌아가거라.”
잠시 남희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깜박거렸다. 
“...돌아가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강징은 소매로 가려진 아래에서, 딱딱한 연좌를 꽉 움켜쥐었다 놓았다. 그리고는 억양 없는 어투로 말했다.
“너의 진짜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눈짓을 보내자, 여덟 명의 수사들이 얼른 남희신의 주위로 다가섰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수사들이 검을 꺼내어 비스듬히 아래로 내리자, 날카로운 빛들이 남희신을 에워싸고 번뜩였다.
그러자 남희신은 두 손을 늘어뜨린채 어느새 분명해진 눈빛으로 강징을 쳐다보았다.
그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 당신이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이 목숨을 거두셔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무얼 잘못했는지는 알려주십시오.”
“그런 이유가 아니다.”
무감한듯 대꾸하며 강징은 벌써부터 가슴이 쪼개지는 것만 같았다.
“본래가 너는 볼모로 데려왔던 것뿐이다.” 
냉정하게 잘도 말하지만, 싸늘한 말투가 오히려 자신의 가슴에 금을 긋고 있었다.
“고소 남씨가 불미한 계획을 품는 것 같지는 않으니. 그만 돌려보내 주겠다는 거다.”
“우리는 분명히 천지신명 앞에서 혼례를 올렸습니다.”
마치 대드는 것처럼 강경한 목소리로 가로막으며 남희신이 말했다. 
그 말에 강징이 답을 하지 않자, 그가 거듭해서 물었다.
“......저는 당신의 부군이 아닙니까?”
세상이나 현재의 상황 같은 건 알바 아니라는 듯. 마치 이 공간에 둘만 있는 것처럼 순진하게 눈을 깜박거리며 묻는데.
지켜보고 있던 거친 수사들까지도 마음이 약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 올곧은 눈에, 저를 품을 때처럼 다정한 연심과 애욕이 깃드는 것을 본 강징은 결국 얼굴에 열이 오르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가 입술을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아. 나처럼 나이 든 음인에게 네 전부를 바치려 했더냐. 정말 세상물정을 모르는구나. 돌아가서 더 배우도록 해라.”
남희신은 점차 새파랗게 날이 서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싫습니다, 부인. 저는 부인의 곁에 있을 거에요.”
“...붙잡아라.”
더 이상 볼 수가 없는 듯, 강징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남희신을 둘러싼 수사들이 바짝 날을 세웠고, 그제서야 남희신도 삭월을 뽑아드는데.
하얗게 빛나는 검은 밖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목을 비스듬하게 눌렀다.
“저의 집은 운심부지처가 아니라 연화오입니다. 정말로 내치시겠다면 이 자리에서 죽어버리겠습니다!”
곧장 눈을 크게 뜬 강징이 의자에서 튀어나갈 듯 몸을 내밀며 외쳤다.
“그만둬라!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어린 녀석이!”
“저는 부인의 것입니다! 죽는다 해도 당신의 소유로 죽을 겁니다!”
날카로운 소리가 오가고, 패검을 쥔 수사들이 주춤하며 강징의 눈치를 보았다.
순식간에 긴장이 팽팽해지며 곧장 양 끝에서 무언가 터져나올 듯한 위기감 사이에 끼인 수사들의 건장한 몸에서도 영력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며 상황을 더욱 급박하게 몰아가는 듯했다.
안절부절 못하던 강징은, 이내 하얀 검날이 소리없이 살결을 가르며 피가 배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연좌를 쾅 내리치며 일어났다.
회오리바람처럼 들이치는 서슬에 남희신이 검을 목에 댄 채로 주춤 물러났지만 그는 눈을 부릅뜨고 거침없이 다가갔다.
강징은 삼독에 손도 대지 않았으며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자전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옛날 자신의 목숨을 구했던 손이 서슴없이 삭월을 향해 뻗어오자, 흠칫하는 남희신의 눈에 쫙 펼쳐진 손바닥의 흉터가 스쳤다.
남희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훨씬 연상이며 전신에 사기가 넘실대는 강징에게 대항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강징은 남희신이 동요한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급소를 쳐서 기절시켰다.
그는 스르르 무너지는 장신을 받아서 한쪽 어깨에 얹은 채 한참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따스하고 무거운 몸을 한가득 품에 안고는, 직접적으로 목덜미에 닿는 피부의 온기를 은은하게 느꼈다. 
......한 번만 더, 얼굴을...
거기까지 생각하고 강징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수사들을 불러 그를 데려가라고 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