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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7 13:28

수진계를 운몽강씨 천하로 만든 악독한 삼독성수랑, 아직 호도 못 받은 애긔희신이 정략혼하고 이러쿵저러쿵하는거 보고싶다






 

 

 

 

 

부인.”

누가 부인이냐.”

점심 시간이 지나 조금 졸고 있던 강징은 남희신이 찾아와 인사를 올리자 잠결에도 이마를 찌푸리며 내뱉았다.

하지만 당연한 듯 옆으로 와서 반듯하게 앉는 소년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인사를 한 것으로 의무는 다 했다 여겼는지 얌전하게 앉아서 더 말이 없었다. 강징은 공문서를 펼치며 부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다른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남희신을 연화오에 들인지 한달 남짓한 시간이 지나갔지만 강징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반면 남희신은 이 곳에서 태어난 듯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혼인이라고 해봐야 볼모에 불과한 것을, 나의 환심이라도 얻어 보려고 약은 꾀를 쓰는구나. 강징은 마음대로 넘겨짚었다. 하긴 고소 남씨 놈들이 철저하게 교육을 시킨 뒤에 보냈겠지만, 연기력이 제법이었다. 어린 놈이.

 

남희신은 강징이 부르지 않아도 오후가 되면 집무실로 찾아와 그가 일처리를 하는 동안 자리를 지켰다. 겉보기에는 데릴사위로 온 처지에 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안 듣는 척하며 운몽 강씨의 상황을 탐색하는 것이리라. 소년은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영리해 보였다.

잠시 후, 곁눈질만으로는 참을수가 없게 된 강징이 노골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훑어보았다.

남희신은 강징이 강요한 보랏빛 장포를 입고 있었다. 그가 고소 남씨다운 순백의 장포를 입었던 모습을 본 건 아주 잠시였다. 백의, 붉은 혼례복, 그리고 백의, 자의.

그래도 맑고 품위있어 보이는 얼굴에는 흰 옷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강징도 부정할 수 없었다.

새삼 머릿속에 대수롭잖게 넘겨버린 첫날밤이 떠올랐다.

 
 

본래는 음인이 양인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강징은 남희신이 신방에서 저를 기다리도록 만들었다. 그것도 고의로 아주 오랫동안.

강징은 혼례복을 입은 채로 방자하게 앉아서 연회라도 온 것처럼 손님들과 술잔을 나누었다. 아마도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신방까지 들렸겠지만 그것도 의도한 바였다.

고소 남씨들은 일찍 잠든다 하니, 저 어린애가 벌써 쓰러져버렸을지도 모르겠군. 강징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못한 듯 신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남희신은 한밤중이 가까운 시간에도 반듯이 앉은 태도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쩐지 의자에 한 번 앉은 뒤로 일어선 적도 없는 듯한 의연한 기백에 강징은 한 방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지 않고 있었느냐?”

남희신은 강징이 들어서자 얼른 일어나서 다가왔다. 하지만 강징은 본체만체 툭 내뱉으며 요대를 풀고 무거운 관을 내렸다.

그것은 제가-”

강징은 항의하듯 뻗는 소년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며 웃었다.

무리하지 말거라. 아직 정사도 치루지 못할 나이에.”

남희신은 대놓고 비꼬는 소리에 일순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으며 강징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럼 저의 말액이라도 벗겨 주시기 바랍니다.”

강징은 잠시 남희신을 내려다보다가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뭐 별건가 싶은 귀찮은 마음에 말액을 잡고 아무렇게나 당겨서 풀어버렸다.

그런데, 그대로 쥐어진 것을 내던져버리려던 손이 따스한 감촉에 감싸였다.

강징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보니 남희신이 두 손으로 강징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제 부인의 것입니다. 소중하게 보관해 주세요.”

강징은 놀라서 뭐라할 틈도 없이 말액을 꽉 움켜쥐었다.

그럼 합방은 조금 미루고 자리에 드십시다.”

강징이 벗겨주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그는 금으로 장식된 관부터 시작하여 무거운 복대와 혼례복을 차례로 벗기 시작했다.

강징은 남희신이 옷 벗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조그만 웃음이 돌아왔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합방의 뜻은 아는 건가? 하긴 이 곳에 오기 전에 초야에 대한 교육 정도는 받았겠지.

이쯤 되자 강징은 남희신의 다음 행동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남희신은 얇은 중의만 남기고 다 벗은 뒤, 침상 위에 눕더니 눈을 감았다.
강징의 손에는 아직도 길다란 말액이 쥐어져 있었다. 그대로 또 기다렸더니, 얼마 안 가 새근새근 고르게 변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빠르게도 잠들어버린 남희신을 깨닫고 강징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겁도 없군. 내가 누군지도 모르나?

어찌할까 망설이던 강징은 일단 작은 함을 찾아서 손에 든 것을 쑤셔넣었다. 그리고는 조금 더 망설이다 침상 위로 올라갔다.

남희신이 누운 자세는 이미 죽은 시체라면 모를까, 십대의 소년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았다. 곧게 위를 보고 누워, 복부 위에 반듯하게 겹쳐 놓은 양 손이 정말로 시체에게 만들어놓은 모양 같았다.

강징은 그 옆에 몸이 닿지 않게 누운 다음 꽤 오랫동안 잠이 들지 못했다. 어린시절 이후로 누군가와 함께 잠을 자 본 적이 없어 불편했다

남희신은 밤새 누운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강징은 이쪽 저쪽으로 뒤채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뜬 강징은 신방을 나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혼례가 끝난 날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처럼 돌아보지도 않고 관심도 주지 않았지만, 남희신은 정말로 신랑이라도 된 것인 양 행동했다.

그래도 어리고 공손해서 그런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기에 강징은 별 말 없이 내버려두었다. 다만 그가 문안 인사를 드리겠다고 찾아왔을때 문득 치민 심술로 말했다.

어째서 고소 남씨의 옷을 입고 있느냐? 너는 이제 운몽 강씨 사람이다. 그러니 연화오의 옷을 입어라.”

어쩌면 꿋꿋해 보이는 내면을 파헤쳐보고 싶어서 한 말인지 몰랐다. 첫인상으로 보건대 조금 고집을 피울지도 모른다 싶었다. 하지만 남희신은 선선히 옷을 갈아입었고, 다음날에는 보랏빛 비단으로 만든 장포를 곱게 차려 입고 왔다.

강징은 자신이 강제했음에도 뜻밖이라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때, 남희신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인의 색이라 마음에 듭니다. 때도 잘 타지 않아서 편리하네요.”

강징이 여느 때와 같은 정신이었다면 아부를 하는 듯한 발언에 경계하며 눈을 부라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봄바람 같은 미소와 목소리를 당하자, 일순 돌벽같은 경계가 무너지며 오래전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따스한 느낌이 가슴 속을 스치는 것 같았다.

강징은 못 들은체 남희신의 말을 넘기며 공무에 집중하는 척했지만 한동안 어수선해진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