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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5 01:22


"내가 원할 때, 이곳에서 다리를 벌리는 것. 그게 부인의 역할이오."
"내가 내 부인을 만나겠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그대가 웃는 것이 중요했지."
"전하의 씨를 받겠다 말하고 있사옵니다."
"그래, 내가 그대의 서방이오."











36.

"황후를 폐위시키세요."


브래들리는 고개를 돌려 제 어머니, 황태후를 바라본다.


"그것이 내가 황후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아량입니다."


칼바람이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새 제 속을 파고들어 찢어놓으니, 브래들리는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과도 같은 무력함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태후마마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
"대신, 저도 그것이 태후마마께 베푸는 최대한의 아량일 것입니다."
"...허면-."
"그 아이를 폐위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시란 말입니다."
"폐하."
"그러고 나면 그 아이는 건드리지 마세요. 이 황궁에서 감히 황제의 허락도 없이 손대도 되는 것은 없다는 거, 태후께서도 잘 아시잖습니까."


자리에서 일어선 브래들리가 나지막히 말을 덧붙였다.


"그 아이가 폐비가 된다고 한들, 이 나라 황제의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어머니께서 호랑이 새끼를 거두어 키우셨나봅니다."


태후의 눈빛에는 노기가 잔뜩 서려있지만 브래들리는 그것을 살필 기색도 없이 그녀의 처소를 박차고 나왔다. 시린 바람이 불어와 눈송이가 내려 앉았다. 봄이 오면 함께 꽃놀이를 가자고 하였는데. 환히 웃던 제이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추위에 붉어진 콧망울도 사랑스럽던 아이.

브래들리는 황후전으로 가던 걸음을 돌려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도저히 제이크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겨우 웃음을 되찾은 아이에게 제 손으로 절망을 안겨줄 수 없어서.


선황제가 숨을 거둔지 겨우 한 달이 지난 날의 일이었다.








37.

열흘 전, 그러니까 선황제가 세상을 떠난지 스무밤이 지난 날. 황제에게는 아버지를 잃은 상실과 고통보다 혼란에 빠진 황실과 제국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었으니, 브래들리는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면서도 필요치 않은 이상으로는 슬픔을 드러내지 못했다. 황제란 그런 자리가 아니던가. 새로이 몸에 걸친 곤룡포는 한없이 무거워서 자꾸만 움츠러드는 어깨를 의식적으로 펴야만 하였다.

기댈 곳 하나 없는 황궁. 미궁에 빠진 선황제의 죽음에 브래들리는 누가 제 편이고 누가 그들의 편인지 가려내는 것조차도 힘겨웠다. 갑자기 쓰게 된 왕관은 무거웠으며 높아진 자리는 버거웠다. 믿을 이 하나 없고, 마음 둘 곳 하나 없으니. 황제는 쇠약해지지 않으려 노력하였으나 오늘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황후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깨어있었소?"


야심한 시각, 황후전에 든 브래들리는 침상을 밝히는 등불에 걸음을 멈추고 제이크를 불렀다.


"오셨습니까, 폐하."


잠긴 목소리. 하지만 잠들었다기 보다는 오랜 시간동안 말을 하지 않았기에 그런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꼭 내가 올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말하는구나."
"...늘 언제 오시나 기다렸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브래들리는 천천히 침상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는다. 어느새 침상에 걸터앉은 제이크의 무릎에 머리를 기댄 브래들리는, 그 품에 안겨 안정을 찾는다.


"그런줄 알았으면 더 일찍 올 것을 그랬네."


황후는 감히 손을 뻗어 황제의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매만진다.

브래들리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자신을 짓누르던 모든 칭호에게서 벗어나 오직 제이크의 지아비로써 존재하며, 그것이 자신이 미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라고 느꼈다. 저만을 바라보는, 제 사람. 브래들리는 고개를 들어 제이크를 눈에 담았다. 걱정와 애정이 담긴 눈빛. 그 속에는 오직 브래들리만이 비쳤다.


"이번 겨울이 유독 시린가 봅니다, 폐하."
"......."
"그래도 결국 봄은 오겠지요."
"......."
"겨울의 바람이 아무리 매섭고 차가워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깐요."


브래들리의 머리칼을 만지던 손길이 조금 아래로 내려와, 이제는 흉터가 남은 브래들리의 뺨을 매만진다.


"눈과 얼음은 녹아 스며들고, 그 위에는 새싹과 새순이 돋아날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 아닙니까."
"......."
"바람이 너무 많이 불면, 내리는 눈이 너무 시리면, 가끔은 이렇게 제 품을 언제든 내어드릴게요."
"......."
"...서방님, 어찌 용루를 흘리시옵니까."


얼어붙었던 마음이 제이크의 품에서 녹아내리고, 브래들리는 제이크의 품에서 참아왔던 울음을 쏟아낸다. 한이 맺힌 울음은 너무나도 서글프고 또 처절해서, 제이크는 가늘게 떨리는 브래들리의 어깨를 매만지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여의고 무거운 왕관을 쓰게 된 브래들리를 감히 안타깝게 여기며, 그 슬픔을 털어낼 곳이 없어 이 시각에 저를 찾아온 것을 감히 안쓰러이 여기며.


"부인."
"...네."
"그대는, 내 편이 분명하겠지."
"...당연한 걸 묻고 그러십니까. 저는 처음부터 폐하의 사람이었습니다."
"황제로써 황후에게 묻는 것이 아니오."
"......."
"그대는 정녕 내 사람이 맞나?"


제이크는 눈물에 젖은 브래들리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본다. 슬픔에 젖은 얼굴과 목소리. 그 위로 제이크의 입술이 내려앉았다가 떨어진다. 가벼운 입맞춤. 브래들리는 그것만으로도 아주 멀리 있는 봄이 한 걸음은 다가온 것만 같다고 느낀다.


"서방님은 신첩의 모든 것을 다 가지셨습니다."
"......."
"제가 모든 것을 내어드렸으니깐요."


몸도, 마음도, 전부.


시린 밤이 깊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서글프고도 외로웠던 어느 밤이었고, 마음이 깊어지던 무렵이었다.








38.

황궁에 떠도는 소문. 브래들리는 다시는 그 소문을 입에 담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럼에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선황제의 죽음에 세러신의 차남이 엮여있다는, 불길한 소문. 그것은 아주 빠르게, 그리고 깊숙히 파고들었다. 마치 지독한 전염병처럼. 누군가 방향을 제시해주기만을 기다렸던 혼란의 이정표가 된 소문은, 불안한 인간의 마음을 좀먹으며 몸집을 부풀려 나갔다.

황제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레 황후가 된 내명부의 새 주인에게는 아직 이를 바로잡을 힘이 없고, 세러신 대감 또한 관직을 내려놓고 황궁을 떠난지 오래니, 누가 그 소문을 바로잡고 잠재울 수 있을까.

황후는 오라비를 조심하라던 세러신 대감의 말을 되뇌며 불안에 떨면서도 황제의 앞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해야만 하였다. 저를 버리지 않겠다 약조하였던 그날에 매달려. 황제가 자신을 오랫동안 찾지 않아도 정무가 바쁘실 테니, 마음이 편치 않으실 테니,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테니, 스스로를 위안하며. 아는 체를 하였다가는 괜한 의심을 살까봐. 그렇게 황궁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납작 업드려, 숨을 죽이고, 브래들리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하여 스무밤 만에 브래들리가 제이크를 찾았을 때도, 제이크는 브래들리에게 어떤 질문도 던지지 못하고, 그저 그에게 곁을 내어주기만 할 뿐이었던 것이다.








39.

하지만, 그날 밤은 무엇이었는지. 그저 꿈이었는지. 한낱 하룻밤에 불과했는지.

황제는 그날 이후로 보름동안 황후전에 들지 않았고, 그 사이 황궁의 소문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제이크는 그렇게 불안에 떨면서도 브래들리만을 믿고 기다렸건만. 그 믿음의 대가가 이런 것일줄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그게 무슨 소리냐."


제이크가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편전에서...황후마마의 폐위를 논한다 하였사옵니다..."


나인 하나가 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치맛자락에는 흙이 잔뜩 묻은 모양새로 황후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내뱉었다.


"그럴 리가 없다."


떨리는 목소리. 그보다 더 떨리는 눈동자. 제이크는 황급히 황후전을 나서서 편전으로 향했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몸이 떨리는 이유는 분명 추위 때문은 아니리라. 제이크는 숨을 쉴 때마다 속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을 느낀다.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 소문 따위는. 황제께서는 나를 버리지 않겠다 약조하셨어.








40.

황제가 숨을 거둔지 한 달이 되던 그날 밤. 황후의 폐위가 결정되었던 그 밤. 브래들리가 제이크를 찾지 않았던 보름 중 하루.


"소문은 들으셨겠지요, 폐하."


황태후는 돌려 묻는 법을 몰랐다. 혹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거나.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입니다."


황제는 그에 지지 않고 맞받아 쳤으나.


"아랫것들에게는 소문의 진위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태후마마."
"혼란을 잠재우고 원인을 탓할, 그것만이 중요할 테지요."


황궁의 큰 어른이 된 황태후를 당해낼 수는 없었으니.


"황후를 그대로 두면 황권이 흔들립니다. 황권이 흔들리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고."
"황후에겐 아무런 죄가 없어요!"
"...맞아요. 황후에게는 죄가 없지요."
"......."
"죄는, 힘이 없는 황제에게 있는 겁니다."


브래들리는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지킬 것은 많은데 지킬 힘이 없으면 이리 되는 것입니다, 아드님."
"......어머니."
"황후를 쳐내시고 자리를 보전하세요. 아니면, 황후의 일가 모두가 피를 보기를 원하십니까?"
"황태후!"
"황후가 기뻐할까요? 그 자리 하나를 위해 아버지도, 어머니도, 오라비들도, 모두 개죽음을 당했다는-."
"그 입 닥치세요!"


황태후가 미소를 짓는다. 브래들리는 현재의 자신에게는 황태후를 이길 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절망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녀의 말대로 지킬 것은 많은데 지킬 힘이 없어서.


"제가 정녕, 제 손에 피를 묻혀야겠습니까?"
"......."
"황후를 폐위시키세요."


그 아이를 내치라는 말에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다.


"그것이 내가 황후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아량입니다."


약조하였는데. 내 모든 것을 걸고 그대를 버리지 않겠다 그리 말하였는데. 그럴 힘이 없구나.


"태후마마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사내가 되어서는 그대와 한 약조를 이리 쉽게 져버리는구나.








41.

편전의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제이크가 들어온다. 갑작스러운 황후의 등장에 신하들은 얼어붙어 입조차 떼지 못하고 있으면, 황후가 용기를 내 말을 꺼내는 것이다.


"폐하, 신첩이 이상한 소문을 들었사옵니다."
"......."
"아니지요?"


브래들리는 제이크를 눈에 담는다. 어여쁘고 또 어여쁜, 나의 신부. 그대를 맞이하여 내 얼마나 행복하였는지. 나는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그리 많은데, 그대는 내게 늘 웃어주기만 하였고.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까, 폐하."


이제는 정말 웃음만을 안겨주고 싶었는데, 나는 또 그대에게 용서 받지 못할 죄를 범하는구나.


"...황후를 끌어내라."


그러니 이제는 나를 용서하지 마시오, 부인.


"...폐하! 어찌 그런 말씀-."
"끌어내라 하지 않았는가!"


내 그대를 지킬 힘을 키우면, 그때는 남은 생을 그대만을 위해 바칠테니.


"폐하! 아니 됩니다, 폐하! 이러지 마세요!"


이것이 나의 최선이라 미안하오.


"약조하였지 않습니까! 버리지 않겠다고! 제게 그리 말하지 않았습니까!"


찢어지는 목소리가 아득히 멀어진다. 편전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고, 황제가 황후를 아꼈던 것을 아는 대신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42.

아주 긴 꿈을 꾸었다.

제이크는 마루에 앉아 기둥에 기대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어느새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새들이 지저귀는 뒤로는 꽃이 흩날렸다.

"날이 풀리면 함께 꽃놀이를 갑시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말을 믿었던 제가 너무 바보 같아서. 따스했던 그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제 자신이, 그렇게 바보천치 같을 수가 없어서.

"...비궁. 내 모든 것을 걸고 약조하겠소. 내 그대를 두고 떠나는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며, 그대를 버리는 일은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하여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입에 발린 그 달콤한 거짓을 믿은 최후는 이런 것이다. 폐비가 되어 황궁의 가장 구석진 곳, 이른 오전이 아니면 볕조차 들지 않는 냉궁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것.

아주 긴 꿈을 꾸었다.

행복했던 한 때를 꾸었다.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었고.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그날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것이 깨어지던, 악몽 같던 그 날을 꾸었다.








43.

한 달은 식음을 전폐하며 현실을 부정하였다. 아주 잠깐, 무언가 착오가 생겨 이런 것이라며, 폐하께서 저를 내칠 리가 없다며, 미친 사람 마냥 그리 하였다. 그러다가 차츰 이 모든 것은 현실이며 그가 다시 저를 찾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자신이 버려졌음을 인정하였다.

황궁에는 더 이상 마음 둘 곳이 없고. 발길이 향할 곳도 없으니. 제이크는 목을 매어 죽어버리려다가, 방치된 냉궁의 대들보가 부서져 그러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아있었다.

죽지도 못한 목숨을 부지한 제이크는 그러면 이제 어찌 살아가야 할지 또 한 달을 멍하니 보내다가, 함께 냉궁으로 온 딱 하나의 나인에게 심부름을 하나 시켰다. 본가에 가서 내가 두고 온 자개함 속에 든 것을 받아오거라. 내게는 금빛 노리개 하나만 들고 오면 된다. 나머지는 내다 팔아 심부름 값으로 네가 챙기고. 이제는 미래를 바라볼 수가 없으니 과거를 돌아보며 살아야 하는데. 브래들리와 함께 하였던 그 시간들을 회상하기에는 아직 상처가 아물지 못해서. 떠올리면 심장이 부서지는 것만 같아서.

그리하여 제이크는 결국 황궁 밖에 두고 온 그 마음을 다시금 꺼내오고야 만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기에.

행복했던 나날들의 기억을 붙잡고 살아가려.








44.

황제는 불안한 황권을 강화하고 세력을 지키기 위하여 선황제가 북방으로 보냈던 군대를 다시 황궁으로 불러들였다.








45.

새로운 황후의 간택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한 자리 차지해보려 하는 이들은 저마다 황후가 될 법한 여식들에게로 가 스스로를 뽐내는데. 정작 북방에서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장군 하나만큼은 그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허공만을 바라보는 게, 꼭 누군가를 닮은 모양새였다.

결국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연회가 길어지는 어느 틈에 빠져나와 황궁의 가장 구석진 곳, 발길이 뜸하여 길이 있는지도 모르는 그곳으로 향했다.


해가 넘어갈 무렵, 그는 지키는 이조차 없는 냉궁의 문을 밀고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고는 여느 때와 같이 마루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폐비에게로 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제이크는 눈을 떴다. 그러자 한 사내가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오늘이 북방의 군대가 돌아오는 그 날이라는 것을 떠올려낸다.

연줄을 찾으려 한 것이라면 잘못 찾아도 단단히 잘못 찾아왔는데. 제이크는 속으로 혀를 찼다. 황제께서 즉위하시기 전에 태자비를 아끼었다는 소문 때문에 혹시나 하여 찾아왔을 텐데 이걸 어쩌나. 제가 복위될 일은 죽어도 없을 텐데. 잠깐동안 생각에 잠겼던 제이크가 그를 돌려 보내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노리개가 참으로 잘 어울리십니다."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잊었다. 오래 전에 잊었고, 오래 전에 두고 와서, 다시 찾아 꺼냈을 때에는 빛이 바래서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었던, 그 사람. 그러나 분명히 그였다. 잊혀졌다 한들, 그 목소리를 들으면 여지없이 당신인 것을.








0.

폐비는 이에 당황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명하니.


"...그대는 고개를 들라."


한때는 재상까지 지냈건만, 선대의 아둔함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가문의 어린 가주.

무너진 가문의 명성을 되찾겠노라 선언하고 사병으로 입대하여 대장군의 목숨을 지키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 난리통에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사지 멀쩡히 살아 돌아온, 전장의 모든 장수에게 인정 받고, 이제는 황제에게 장군의 작위까지 받은.

언젠가, 네게 어울리는 사내가 되어 돌아오겠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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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마마."


비니 파지엔자. 그가 마침내 돌아온 것이다. 아무도 없는, 제이크의 곁으로.










이제 딱 반 왔다..... 

루스터행맨 루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