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74657965
view 8331
2023.11.30 02:11

재생다운로드1e533e7bd24b256564501f49aec3dff0.gif
QnQlE.jpg


ㅂㄱㅅㄷ / 2편 / 3편 / 4편 / 5편 / 6편 / 7편 / 8편 / 9편   




파트너 등록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노부와 케이는 아침도 든든히 먹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관청을 찾았지만 케이가 오는 길에 파 온 도장과 노부의 도장을 콩콩 찍고 역시 오는 길에 촬영한 증명사진을 한 장씩 붙인 서류를 제출하고 나니 끝이었다. 너무 허무하게 끝난 게 어쩐지 아쉽고 서운하기도 해서 등록을 마치고 나온 뒤에는 츠지무라가 가루베 군과 파트너십 체결 기념 사진을 찍었다는 사진관에 가서 노부와 케이도 사진을 찍었다. 둘 모두 흰색 예복을 갖춰입고 웨딩 컨셉으로도 찍고 소풍 컨셉으로도 찍고 북극여우와 북극여우의 파트너답게 빙하 같은 컨셉의 배경에서 노부가 털옷을 입고 아기여우가 된 케이를 안고 있는 사진도 찍었다. 노부는 물론이고 케이도 내내 신이 나 있었지만 케이가 가장 행복해했을 때는 츠지무라의 병원에 들러서 다시 칩을 스캔해 봤을 때였다. 
 

마치다 케이타 90.07.04 북극여우
파트너 스즈키 노부유키 090-xxxx-xxxx


노부는 관청에서 받아 온 파트너십 증명서를 칩의 스캔 결과가 떠 있는 모니터 옆에 놓고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스즈키 노부유키(92.10.14 인간)와 마치다 케이타(90.07.04 북극여우)가 파트너십을 체결했음을 증명하며, 스즈키 노부유키와 마치다 케이타가 법적으로 서로의 배우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내용의 문장이었는데도 그 딱딱하고 건조한 문장들이 어딘가 너무 달콤하고 말랑해서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케이도 마찬가지인지 노부가 사진을 찍는 동안 자기 이름이나 노부의 이름 옆에 작은 앞발을 가져다대거나 귀여운 얼굴을 들이대기도 했다. 그러나 케이가 아기여우로도 사진을 찍고 '마치다 케이타'로서도 사진을 찍으면서 축하해 주러 온 가루베와 케이, 츠지무라와 노부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던 공간은 어쩐지 서늘한 느낌의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서 웃음소리가 뚝 끊어졌다. 





모두를 침묵 속에 빠뜨린 전화는 아몬 코타로가 건 것이었다. 아몬은 케이가 준 정보로 놈들의 근거지를 찾아냈고 아직 남아 있던 일당 몇 놈도 잡아들였다. 미야무라 소라나 가루베 다이키치가 잡혀 있던 조직과 관련된 곳인가 해서 미야무라 소라에게 일단 얼굴 확인을 시킨 모양인데 미야무라는 모르는 얼굴이라고 한 모양. 그곳에 잡혀 있었던 이는 케이밖에 없으니 얼굴을 확인해 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케이는 계속 노부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래도 갑자기 아기여우로 변해 버리진 않아서 그것만이 위안이었다. 케이의 마음이 커지고 단단해졌기 때문이든 그깟 놈들은 이제 케이에게 위협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든 아기여우로서가 아니라 마치다 케이타로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충격이란 말일 것 같아서. 대신 노부는 케이를 꼭 끌어안아주고 있었다. 노부는 한참을 그렇게 얼굴이 창백해진 케이를 꼭 끌어안고 노부의 어깨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있는 케이의 등을 토닥이고 있다가 케이의 체온이 서서히 따뜻해질 때쯤에야 말을 꺼냈다. 

"우리 전에 경찰들 나오는 미드에서 봤잖아요. 매직 미러라고 하는 거. 아몬이 우리를 와 달라고 한 경찰서에도 그런 거가 있대요. 우리는 그 놈들을 볼 수 있지만 놈들은 우리를 볼 수 없어요. 한쪽에서만 반대쪽을 볼 수 있는 특수유리 같은 거거든요. 그리고 나랑 아몬 상도 당연히 케이 옆에 있을 거예요. 우리가 경찰서에 들어가거나 나올 때도 당연히 놈들은 우리를 볼 수 없고, 놈들은 자기들을 식별하러 오는 게 누군지도 모른다고 아몬 상이 약속했어요."

케이는 한동안 아무말없이 노부만 꼭 끌어안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뗏다. 

"그 사람들이 벌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꼭 벌을 안 받아도 돼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케이는 매끈한 미간에 주름을 잡고 낑낑대다가 한숨을 폭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난 내가 그 사람들한테 또 신경을 쓰고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들은 나를 많이 힘들게 하고 아프게 했지만, 이제 난 그 사람들한테 잡혀 있지 않잖아요. 지금은 노부랑 같이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노부랑 같이 서로 돌봐주면서 살 거고."
"네. 그렇죠. 계속 서로 돌봐주면서 계속 같이."

내내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케이는 노부의 그 말에 인상을 펴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뺨을 발갛게 물들이고 말했다. 

"네, 계속 같이."

노부가 따뜻해진 케이의 뺨에 입을 맞추자, 케이도 노부의 뺨에 쪽 입을 맞춰주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벌을 받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긴 한데, 내가 다시 그런 사람들한테 잡혀가서 다시는 노부를 못 보게 되고 그럴 일이 없게 하려면 그 사람들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 같으니까...갈게요. 경찰서에."
"나도 케이랑 같이 갈게요. 내내 옆에 같이 있을게요. 케이 혼자 있게 하지 않아요."

케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노부를 끌어안았다.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고맙다고 속삭이면서. 





놈들은 케이를 납치해서 멋대로 학대했던 새끼들이 맞았다. 교통사고로 다 죽은 줄 알았더니 한두 놈이 아닌 모양이었다. 케이는 그놈들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매직미러 너머 방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온몸이 차갑게 식어서 바짝 굳어 있었지만 노부가 꼭 끌어안고 토닥여주자 서서히 호흡과 체온이 돌아왔다. 케이의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뛰지 않고 정상적으로 흐르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노부가 케이를 돌아보자, 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노부는 옆에 서 있던 아몬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아몬은 그제서야 침착하게 케이에게 물었다.

"그 조직의 일원이 저기에 있습니까?"
"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저 사람도 일당이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 명이 줄지어 들어와서 케이에게 익숙한 얼굴이 있는지 물어보는 걸 몇 차례나 더 했는데 일행은 둘이 더 있었고, 케이는 그 중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놈들이 '보스'라고 부르던 놈이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아몬은 츠지무라를 불러서 놈들이 케이의 수인형 성장을 억제하고 모습을 고정하기 위해서 어떤 짓을 했는지, 츠지무라와 케이에게 진술을 들었고 케이가 인간형일 때 어떤 식으로 학대받았는지도 진술을 들었다. 케이는 진술을 하는 동안 내내 노부가 옆에 함께 있어주길 바랐기 때문에 노부도 옆에서 같이 들었는데 그놈들이 어떤 처벌을 받든 사회에 풀려나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던 케이와 달리 노부는 정말로 놈들을 찢어죽이고 싶었다. 그 정도로 놈들은 케이에게 끔찍한 학대와 폭력을 저질렀다. 





원래 계획은 파트너 등록을 하고 집에 와서 영화도 보고 오후 내내 뒹굴면서 보내려고 했는데 경찰서에서 시간을 너무 오래 보냈기 때문에 돌아오니 이미 저녁이었다. 그래서 노부는 일단 케이가 좋아하는 장어구이덮밥을 주문했다. 저녁을 함께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케이는 연 이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파트너십 신청이나 수인 등록은 나쁜 일이 전혀 아니었지만 연이어 이틀이나 외출을 한 것도 힘든데 경찰서에 가서 쓰레기들을 다시 봐야 했고 힘들었던 시간을 다시 떠올리며 진술도 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케이가 좋아하는 장어구이덮밥을 주문했다. 디저트는 오늘 저녁에 함께 먹으려고 미리 사다 놓았던 초코무스케이크와 우유를 듬뿍 탄 녹차라떼였다. 

그리고 나서 케이와 노부는 함께 노부가 미리 거품을 풀어둔 욕조에 함께 들어갔다. 노부는 과거에 케이가 겪었던 일들을 알게 돼서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지만 케이는 힘든 시절을 떠올려야 했는데도 노부의 품에 안겨서 처음 해 보는 거품목욕을 즐기고 있으니 기분이 좋은지 발그레한 뺨에 예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안 힘들었을 리 없는데. 괴롭지 않았을 리 없는데. 다시 떠오른 공포와 절망에 마음이 먹히지 않게 씩씩하게 거품목욕을 즐기는 케이를 보고 있던 노부는 동그란 뒤통수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난 원래도 케이를 너무 많이 좋아하지만 오늘 한 번 더 반했어요."

거품을 만지작거리며 놀던 케이는 귀까지 빨개진 채로 노부를 돌아보며 배시시 웃었다. 

"진짜요?"
"네, 진짜로요. 케이가 너무 용감해서 또 반했어. 안 그래도 너무 예쁘고 귀여운데 용감하고 씩씩하기까지 하네. 이건 안 반할 수가 없지."
"내가 용감하고 씩씩해요?"

노부의 집에 처음 왔을 때는 정말로 겁이 많고 경계심이 가득해서 늘 숨어있었는데 그때를 기억하는 건지 케이는 쑥스러운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네, 너무너무 용감하고 씩씩해요. 오늘 계속 용감하게 나쁜 놈들도 잘 찍어내고 진술도 잘해서 진짜 반했어요."
"그래서 내가 쪼금 더 좋아졌어요?"

노부는 배싯배싯 웃으면서 쑥스럽게 묻는 케이의 입술에 입술을 콕 찍으며 대답했다. 

"쪼금이 아니고 많이요."
"나도 그런데."

케이는 오늘 노부가 계속 옆에 있어줘서 정말로 큰 힘이 됐다고 말하면서 다시 사르르 웃었다. 그리고 둘이 함께 거품을 헹궈내고 도톰한 잠옷을 입고 나온 뒤였다. 여느 때처럼 침대에 함께 누웠을 때, 케이는 평소처럼 노부의 팔을 베고 누웠지만 바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대신 노부의 가슴팍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내가 쪼금이 아니고 많이 더 좋아졌으면..."
"네?"

케이는 조금 더 꼼지락거리고 있다가 고개를 들고 노부의 입술에 입을 맞춰왔다. 오늘 아침에 노부를 깨워줬을 때처럼 그저 가볍게 닿기만 하는 아이같은 입맞춤은 아니었다. 아기여우일 때 노부가 자주 입을 맞춰주던 때와도 물론 전혀 달랐다. 가벼운 입맞춤에 가깝기는 했지만 확실히 키스였다. 

"그러면 이런 것도 해도 돼요?"

노부는 케이가 겁이 많고 상처가 많다는 걸 알아서 쓸데없이 움츠러들지 않도록 케이가 묻는 질문에는 언제나 답을 해 줬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쭈뼛쭈뼛 눈치를 살피는 케이를 더 당겨서 끌어안고 본능적으로 더 깊게 입을 맞췄을 뿐이었다.

케이와 노부는 목욕을 하며 똑같은 치약을 썼는데도 이상하게 케이의 숨결은 노부보다 훨씬 더 상쾌하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