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73345445
view 7653
2023.11.20 03:55

image (2).jpeg
재생다운로드dcd3570adce9314375deb4d70567f8a7.gif

ㅂㄱㅅㄷ  /  2편


아마 아기여우는 수인이란 걸 밝히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수인에 대한 취급이 워낙 좋지 않은 사회니 이전에 어디서 모진 학대라도 잔뜩 받은 걸 수도 있었다. 노부가 이 아기여우가 수인이란 걸 알게 되면 노부도 학대할까 봐 계속 그냥 북극여우의 새끼인 척 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부는 왠지 심장이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잠시 멍하게 있다가 아기여우를 향해 팔을 뻗었다. 

"괜찮아, 아가, 이리 와. 괜찮아. 널 아프게 하거나 괴롭게하지 않아. 아가."

강아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기여우일 때는 놀랐지만 괜찮았다. 그냥 아기여우인 줄 알았는데 사실 어린 수인이라니. 더 놀랐지만 사실 이것도 괜찮았다. 아니, 사실은 수인이라는 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여우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건 법적인 문제가 꽤나 까다로운 것 같았는데 수인이라면 그런 문제가 없으니까. 수인의 취급이 좋지 않긴 하지만 수인은 등록만 하면 합법적으로 지낼 수 있었다. 취급이 안 좋기 때문에 등록이 쉬운 것이긴 했다. 수인을 등록하는 이의 경제적 사정이나 책임감이나 범죄 경력 같은 것들을 전혀 조사하지 않고 아무나 수인을 데리고 살게 해 주는 것이었으니까. 수인에 대하 대우나 취급은 그 정도로 안 좋았다. 수인은 사회의 보호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대가 굉장히 많다고 들었지만 노부가 아끼면서 잘 돌봐주면 되니까. 노부는 어린 수인을 정말 사랑하면서 잘 키워줄 수 있었다. 

아기 여우수인은 여전히 소파 뒤에 숨어서 노부와 츠지무라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노부가 계속 팔을 뻗은 채 상냥하게 부르자 주춤주춤 다가왔다. 

"그래, 괜찮아.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해."

아기 여우수인은 계속 주춤거리며 다가오다가 노부의 품으로 머뭇머뭇 들어왔고, 노부가 품에 안아서 토닥여주자 츠지무라의 눈을 피하려는 듯 노부의 품에 얼굴을 콕 박았다. 츠지무라가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아기 여우수인이 처음 데리고 왔던 날처럼 덜덜 떨고 있어서 노부는 아기 여우수인의 작은 몸을 한참 토닥이다가 떨림이 멈출 때즈음에야 고개를 숙여서 아기 여우수인을 바라봤다. 

"아가, 좀 괜찮아졌어?"

수인이라면 당연히 말이 통할 것이라 노부가 조용한 목소리로 묻자 아기 여우수인은 노부가 말을 걸 때 늘 그랬던 것처럼 그저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노부는 그런 수인에게 걱정말라는 듯 머리를 한 번 토닥여주고 츠지무라를 바라봤다. 

"수인인 거 어떻게 알았어?"
"사진 봤을 때부터 북극여우인 것 같아서 이상하긴 했어. 이 도시는 북극여우가 살기엔 너무 따뜻해."
"아직 추운데."

원래 이 도시는 무척 따뜻한 편이긴 하지만 올해는 유독 추웠고 유독 눈도 많이 왔다. 이 정도면 이름에 '북극'이 들어갈 정도로 추운 데서 사는 여우라도 살 수 있지 않나 싶었지만 츠지무라는 고개를 저었다. 

"이 도시의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북극에 댈 정도일 것 같아? 그런데 북극여우를 주웠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게다가 집이 이렇게 따뜻한데 북극여우가 스트레스 없이 너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잖아. 체온이나 심박수나 호흡수나 다 지극히 정상이고."
"다행이네."

수인이라서 노부와 비슷한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건 앞으로 노부와 이 아기여우 수인이 같이 살아도 둘 다 행복하고 편안하게 같이 살 수 있다는 뜻이니까. 노부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서 품 안에 있는 아기여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작은 코 끝에 촉 입을 맞췄다. 그런데도 아기여우가 여전히 시무룩하고 불안한 표정이라 촉촉 두 번 더 입을 맞춰줬다. 아기여우가 수인이라도 노부가 버리지 않을 거라는 마음은 이미 전달됐을 텐데 왜 이 아기여우는 아직도 불안해할까. 게다가 츠지무라의 얼굴은 왜 또 저렇게 어두울까.

그때 츠지무라는 노부가 이 여우를 데려온 날 보내준 사진을 열어서 보여줬다.

"이 사진을 두 달 전에 찍은 거잖아."
"그렇지."

아기여우 수인을 데려온 날 찍었으니까 두 달 전이 맞았다. 

"전혀 안 자랐어."

그러고보니 아기여우 수인은 데려온 날 이후 조금도 안 자랐다. 아직 어린데 워낙 길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 늦되게 자라나 보다 했는데. 

"원래 수인들은 사람 성장 속도랑 비슷하게 자라서 늦게 자라는 거 아니야?"
"음."
"아가가 여우라고 해서 나도 좀 찾아봤는데 북극여우는 두 달 만에 어미한테서 독립한다고 하더라고. 그때쯤 성체로 자라니까 그런 거 아니야? 하지만 사람은 10대 후반이 돼야 성인이 되니까 거의 10년 동안 북극여우의 한 달치 성장을 나눠서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천천히 자라는 거지, 아니야?"

사실 츠지무라의 우려가 진짜로 심각한 우려라는 짐작은 들었다. 츠지무라는 신기술이나 시장동향 같은 건 몰라도 동물들이나 수인들의 상태에 대해서는 확실히 잘 아는 전문가일 테니까.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마구 떠들자 착잡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츠지무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맞아. 북극여우는 단 두 달 만에 성체가 되는데 어른은 10대 후반이 돼야 다 자라니까 수인의 본체형은 성장이 느려. 하지만 느린 거지, 안 자라지는 않는데."

츠지무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사진을 다시 보여줬다. 

"이 여우는 전혀 안 자랐어. 전혀. 몸 크기가 전혀 안 자란 것도 그렇지만, 털조차 조금도 길지 않았어."
"어?"
"조금이라도 성장했어야 해. 특히 이렇게 작을 때는 성장이 그래도 좀 빠른 편인데..."

노부는 다시 품에 있는 아기여우 수인을 내려다봤다. 정말로 아기였다. 왜 자라지 않는 거지. 성체로 성장하려면 자라야 하는 거라며.

"아가."

노부가 아기여우 수인과 눈을 마주치자 아기여우 수인은 시무룩한 (그렇게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츠지무라는 그런 노부와 아기여우 수인을 바라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기여우로 보이는 수인에게. 

"성장을 막는 주사를 맞으셨습니까?"

노부가 다시 고개를 내리자 아기여우... 아니, 여우 수인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성장을 막는 주사가 뭔지 몰라도 이 아기여우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킨 건 분명해서 노부는 황급히 아기여우를 꽉 끌어안았다. 아기여우는 노부의 품 안쪽에 얼굴을 푹 파묻어서 눈과 귀와 코를 다 가리고, 시각과 후각과 청각을 다 차단하고도 두려움이 차단되지 않는지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주사 다 맞으셨습니까?"
"그만해."
"주사를 10번 다 맞았어요?"
"... 그만해, 츠지무라!"

저 녀석은 아기여우가 얼마나 떨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나. 왜 저러는 거야. 노부는 아기여우를 꽉 끌어안아서 완전히 츠지무라의 시야에서 가리려 했지만 츠지무라는 수의사로서 아기여우가 너무 걱정되는지 평소답지 않게 집요하게 굴었다.

"업체에서 맞혔습니까? 주인이 맞혔습니까?"
"츠지무라! 그만하라고! 설명도 없이 다짜고자 왜 이래!"
"..."
"떨잖아! 아가가 떨잖아!"

여우 수인이 너무 덜덜 떨어서 노부가 여우를 꼭 끌어안고 덜덜 떨리는 몸을 계속 문질러주며 츠지무라를 노려보자, 츠지무라는 참담한 얼굴로 여우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미안..."
"... 왜 그래, 너 답지 않게."
"수인의 수인형 성장을 멈추게 하는 주사가 있어. 물론 불법인데. 불법업체에서 맞히기도 하고 수인을 산 쓰레기들이 맞히기도 해."
"그런 걸 왜... 왜 맞히... 맙소사."

노부도 몰라서 물은 건 아니었다. 지금 이 여우처럼 계속 귀여운 모습으로 있게 하려고 맞히는 거겠지. 물건처럼. 장난감처럼. 노부는 발작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덜덜 떨고 있는 여우를 쓰다듬어주면서 계속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속삭였지만 정작 노부가 괜찮지 않았다. 게다가 츠지무라가 이어서 들려준 설명도 전혀 괜찮지 않았다. 성장을 멈추게 하는 주사에 쓰이는 약이 독하고 신체의 성장을 막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주사를 맞을 때마다 굉장히 고통스러운데 그걸 10번을 맞아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10번이나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라고. 게다가 여우 형태가 이렇게 어린 거 보면 아마도 10대 초반에 주사를 맞기 시작했을 거라고. 그리고 수인들은 등록하면서 몸 안에 내장칩을 넣게 되는데 인간형일 때는 팔뚝 안쪽에, 수인형일 때는 앞발의 다리 안쪽에서 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여우를 스캔했을 때 칩이 안 읽혔으니 불법으로 거래된 수인이었을 거라고. 

그 이후로 츠지무라는 아기여우에게 업체가 어디였는지, 주인이 누구였는지, 유기된 것인지 탈출한 것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등등을 물었지만 아기여우는 계속 노부의 품 속에서 덜덜 떨기만 할 뿐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수인은 수인형일 때도 말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츠지무라의 존재가 아기여우를 더 떨게 만드는 것 같아서 노부는 일단 츠지무라를 돌려보내고 아기여우의 전용 방석을 노부의 침대 위로 가지고 와서 아기여우를 노부 옆에 눕혀놓고 이불도 폭신하게 덮었다. 그리고 작은 몸을 토닥토닥 두들겨주며 쓰다듬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계속 아가라고 불렀네."

천만다행으로 수인의 인간형을 수인형처럼 성장을 멈추는 약은 아무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수인들은 수인형일 때는 어린 모습이어도 인간형일 떄는 계속 나이를 먹는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에 수인의 인간형 성장을 막는 약물을 개발한다고 해 보자, 그러면 인간의 성장을 막는 약물도 개발되지 않겠는가. 인권 단체들에서 그런 약의 개발을 좌시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수인들은 수인형의 성장을 막아도 인간형일 때 너무 나이를 먹게 되면, 그래서 보기에 예쁜 나이를 넘어가면 버려지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어쩌면 이 아기여우도 노부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었다. 아가가 아닐 수도.

"이름이 뭐야?"

츠지무라가 뭘 물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던 아기여우는 눈물이 찰랑거리는 커다란 눈으로 노부를 바라봤다. 

"...케이타... 마치다 케이타."

가지런하게 뻗어 있는 반짝이는 하얀 털 위로 눈물이 툭 떨어져 내렸다. 노부의 심장도 쿵.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