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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8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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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잘 오지 않는 도시인데 예기치 않게 폭설이 쏟아진 날이었다. 폭설이 드문 만큼 도시 행정당국에도 폭설에 대한 대비가 잘 돼 있지 않아서 공무원들이 나와서 염화칼슘을 뿌리고 있었지만 눈에 띄게 어설펐고 스노체인을 감은 차량이 별로 없어서 차량들이 거북이처럼 기어가고 있었다. 운전해서 가면 평소엔 20분이면 가는 집까지 두 시간이 걸려도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노부도 눈 오는 길을 운전해 본 적은 별로 없어서 차를 회사에 두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그래서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 관리직원들이 입주민들이 꽁꽁 언 길에서 미끄러질까 봐 인도에 쌓인 눈을 죄 건물 쪽으로 쓸어놓았는지 건물 벽을 따라서 소복하게 쌓여 있는 눈더미 안에서 벌벌 떨고 있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오늘 너무 추워서 여기 있으면 얼어죽을 거야."

개를 좋아하는 노부가 작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강아지는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며 노부를 올려다봤다. 

"형이랑 같이 갈까?"

강아지는 여전히 노부를 올려다보고 있기만 했지만 노부는 목도리를 풀어서 하얗고 작은 강아지를 따뜻하게 감싼 다음 품에 안았다. 

"좀 따뜻해졌어? 집에 가서 형이 따뜻한 물로 씻겨주고 맛잇는 것도 줄게. 형이랑 같이 가자."

강아지는 노부의 품 안에 얼굴을 콕 묻은 채 덜덜 떨고 있어서 노부는 목도리를 더 따뜻하게 감싸주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오늘 차 두고 와서 다행이네. 평소처럼 지하주차장으로 바로 들어갔으면 못 봤겠어. 며칠동안 계속 밖에 있었던 거니?"

강아지는 길거리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느 쓰레기 같은 인간한테 버림받은 탓인지 노부의 눈치를 과하게 보고 경계하고 있었다. 씻겨주고 드라이기로 말려줄 때는 반항은커녕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얌전히 있었지만 먹을 걸 준비해 주려고 거실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서 소파 옆에 몸을 숨긴 채 노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서운할 것도 없었다. 길에서 오래 살았으면 이 정도 경계는 당연해서 노부는 강아지가 집 안과 노부를 관찰하도록 내버려 두고 닭가슴살을 꺼냈다. 바로 삶아 주려던 노부는 여전히 소파 뒤에 숨어서 고개만 조금 내밀고 있는 강아지를 돌아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먹여도 되겠지. 너무 어려 보이는데."

강아지는 정말로 작았다. 노부의 본가에 있는 개는 무척 큰 견종이라서 새끼 때도 이 정도로 작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 강아지는 무슨 종인지 몰라도 노부의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정도밖에 안 돼서 얼마나 어릴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개는 어릴 때부터 고기도 잘 먹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혹시 고기를 못 먹을지도 몰라서 닭가슴살을 한 덩어리 꺼내 반만 삶았다. 워낙 덩치가 작아서 다 못 먹을 게 뻔하니까. 일단 닭가슴살 반 덩이를 삶고 식힌 후 잘게 씻은 다음에 찢은 닭고기를 다시 삶았다. 닭국물과 닭고기가 좀 식은 후에 고기와 국물을 같이 닮아서 바닥에 내려주자 강아지는 여전히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 노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닭고기야, 먹어 봐.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어도 돼."

강아지는 여전히 바라보기만 했다. 혹시 길에서 못 먹을 걸 먹어서 죽을 뻔했을 정도로 고생한 탓에 경계하는 건가 해서 노부는 잘게 찢어놓은 고기를 한 점 집어서 제 입에 넣었다. 

"음. 맛있다. 너도 먹어 봐."

덩치가 아주 작기도 하고 강아지에게 염분은 안 좋다고 하니까 소금 간도 하지 않아서 밍밍한 맛이었지만 원래도 닭가슴살에 간을 하지 않고 자주 먹는 노부는 아주 맛있는 표정으로 씹을 것도 없는 작은 고기를 씹었다. 그러자 멈칫멈칫 조금씩 다가온 강아지는 그릇에 같이 담아 준 국물을 찹 먹어보더니 곧 작은 머리를 그릇에 박고 찹찹 먹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배가 고팠는지 정신없이 먹으면서도 계속 고개를 들고 노부의 눈치를 보길래 노부는 일어나서 닭가슴살을 또 삶아서 강아지에게 관심 없는 척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는 닭가슴살을 다 먹고 강아지를 보자 강아지는 다시 소파 옆에 숨어서 조금 볼록해진 배를 드러낸 채 색색 잠들어 있었다. 

추운 데서 쫄쫄 굶으며 덜덜 떨고 있다가 따뜻한 곳에 들어와 배부르게 먹었으니 잠이 오기야 하겠지만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을 건 뻔했다. 그래서 노부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돌아다니며 부모님이 본가의 개를 데리고 올라와 노부의 집에서 며칠 지냈을 때 샀던 커다란 반려견용 방석을 꺼냈다. 부모님이 본가로 돌아가신 뒤에 빨아놨으니 다른 개의 체취는 나지 않겠지. 코를 갖다대보자 섬유유연제 냄새만 폴폴 나고 있었다. 본가의 개는 워낙 크기 때문에 커다란 방석을 샀던 탓에 저 조막만한 녀석을 넣어두면 휑해 보일 게 뻔해서 이불도 넣어 빈 공간을 채워놓고 넓고 납작한 그릇을 꺼내서 물도 담아놨다. 

노부는 자면서도 완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귀를 쫑긋쫑긋거리며 자고 있는 강아지 옆으로 가서 작게 속삭였다. 

"아가, 푹신한 데로 옮겨줄게."

예상대로 잔뜩 경계하고 있었는지 강아지는 벌떡 일어나서 꼬리를 바짝 세우고 온몸에 힘을 준 채 노부를 바라봤다. 커다란 눈에는 아직 잠기운이 좀 남아 있었는데도 큰 눈 가득 불안과 경계가 가득 차 있었다. 역시나 버려진 지 오래됐나 본데. 태어난 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저 작은 걸 버린 건가. 아니면 길에서 태어난 건가. 노부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이불을 깔아놓은 폭신한 반려견 방석을 두드렸다. 

"여기 침대에서 자자, 따뜻하고 폭신폭신해. 너한테는 좀 큰데 오늘은 일단 여기서 자자.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방석을 사 줄게. 냄새 맡아 볼래?"

노부가 이불을 들어서 강아지 앞에 가져다대 주자 강아지는 여전히 경계하면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바짝 서 있던 꼬리가 조금 내려왔다. 

"냄새 좋지? 여기 한 번 들어와볼래? 폭신해."

노부가 방석을 톡톡 두드리자 강아지는 노부의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다가와서 방석에 발을 톡 올려봤다. 조그만 발이 너무 귀엽고 멈칫멈칫 조심스럽게 눌러보는 경계 가득한 움직임이 안쓰러웠다. 

"들어가볼래?"

강아지가 여전히 노부를 경계하면서 조그만 발로 방석을 살짝살짝 눌러보고만 있어서 노부가 강아지를 두고 목욕을 하고 나오자 강아지는 방석 위에 올라가서 다시 잠들어 있었다. 

마음에 들었나 보네. 

밖이 너무 추워서 일단 데리고 오긴 했는데 노부는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고 퇴근시간도 늦은 편이었다. 노부가 저 강아지를 키우면 저 어린 강아지를 하루 종일 혼자 둬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맨션은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맨션이긴 하지만 낮에 짖을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혼자 외로워할 것도 걱정되고, 혼자 있다가 저 어린 강아지가 사고라도 나지 않을지도 걱정돼서 고민하고 있는데, 강아지의 방석을 놓아 둔 거실에서 사박사박하는 아주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숨 죽이고 귀를 기울여보자 사박사박하는 조심스러운 소리가 조금 더 이어진 뒤 찹찹 물을 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사박사박... 물을 마시고 방석으로 돌아갔는지 곧 발소리가 사라지고 잠시 후에 색색하는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귀여워, 너무 귀여워...

노부는 개를 좋아했다. 그런데도 본가에 있는 반려견을 데려오지 않은 건 어머니가 그 개를 너무 좋아하기도 하지만 노부가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사회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귀여우면 보내줄 수가 없잖아. 그래도 하루 종일 혼자 있게 하는 건 너무 불쌍한데. 너무 귀엽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가보자 강아지는 방석 위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전날은 자면서도 계속 귀를 쫑긋거리는 게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 같더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건가. 노부는 깊게 잠들어 있는 강아지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예쁘긴 엄청나게 예쁜데 무슨 종인지 알 수가 없어서 수의사인 친구에게 물어볼 셈이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고구마와 브로콜리, 계란을 삶은 다음 강아지 몫으로 조금씩 덜었다. 계란 흰자는 노부가 먹기로 하고 노른자는 으깨서 강아지 밥그릇에 담았다. 작게 뜯어낸 삶은 브로콜리도 몇 개 강아지 밥그릇에, 삶은 고구마도 작게 잘라서 강아지 밥그릇에 같이. 물그릇의 물도 쏟아내고 그릇을 씻은 다음 깨끗한 물을 담아놓고 강아지 방석 앞에 밥그릇을 놨다. 

"아가, 아침 먹자."

강아지는 일어나서 킁킁 냄새를 맡아보다가 노부가 고구마 한 조각을 쏙 집어서 먹자, 다시 안심하고 다가와서 밥그릇에 고개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여전히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노부를 경계하길래 노부는 거실 테이블에 제 그릇을 놓고 앉았다. 강아지에게 나눠주고 남은 고구마와 브로콜리, 강아지에게 노른자를 덜어줘서 흰자밖에 없는 계란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시자 강아지는 그새 밥그릇을 비우고 물그릇으로 다가가서 찹찹 물을 마시고 있었다. 

엉덩이도 너무 귀엽네. 

커피를 마시며 조막만한 강아지가 돌아다니는 걸 보던 노부는 강아지가 물을 마셔서 줄어든 물그릇에 다시 물을 가득 담아주고 강아지에게 다가갔다. 

"나 회사 갔다 올게. 최대한 일찍 오겠지만 저녁에야 올 거야. 혼자 있을 수 있겠어?"

강아지는 당연히 못 알아듣겠지만 그래도 노부를 빤히 바라보고 있기는 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귀여워서 노부는 강아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직 이 강아지를 노부가 계속 길러도 될지 좋은 사람을 찾아서 보내줘야 할지 결정은 못했지만 어쨌든 며칠은 봐 줘야 할 테니 점심을 건너뛰고 점심시간에 팻스토어에 가서 자동급식기와 급수기를 사고, 물어뜯고 놀 수 있는 인형도 두 개 샀다. 어느 쪽이 취향일지 몰라서 스타일이 서로 다른 인형으로 두 종류. 점심을 못 챙겨주니까 급식기에 넣을 사료도 사고, 강아지들한테 인기가 많다는 간식도 샀다. 

강아지는 이후에도 한참이나 노부를 경계했다. 그래도 걱정했던 사고는 없었다. 성격이 얌전한지 난장판을 예상하고 퇴근했을 때 집 안은 깨끗했고 강아지는 방석 위에서 자고 있었다. 물그릇도 비어 있었고. 첫날 퇴근하자마자 급식기와 급수대를 설치해 줬더니 강아지는 급수대 주위에서 경계하듯 돌아다니다가 물을 마셔보더니 마음이 놓였는지 물도 찹찹 잘 마셨다. 노부는 어차피 혼자 밥을 해 먹는 데다 몸 관리 때문에 단백질과 샐러드 위주로 간단히 먹는지라 노부가 먹는 닭가슴살이나 연어, 소고기, 계란을 같이 삶아서 나눠주고 채소도 같이 익혀서 조금씩 덜어먹였다. 첫날은 연어를 사 와서 작게 잘라서 구워줬더니 찹찹 잘 먹더라. 점심은 어린 강아지용 사료를 자동급식기에서 나오게 해 놨는데 퇴근해서 와 보면 비어 있는 게 잘 먹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돌봤을 때였다. 강아지는 그동안 노부에 대한 경계심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었지만 먼저 다가오진 않았는데 강아지를 데려오고 한 달이 된 날에 퇴근을 하고 돌아오자, 강아지가 노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미리 나와 있었는지 노부가 현관으로 들어가자 주춤주춤 다가와서 노부의 다리에 조심스럽게 얼굴을 부볐다. 

... 하루 종일 혼자 있는 게 불쌍해서 좋은 사람 찾아서 보내려고 했는데. 

노부가 그대로 앉아서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강아지는 노부와 눈을 맞추며 빨갛고 조그만 혀를 내밀어서 노부의 손을 핥았다. 

... 못 보내. 이제 못 보내, 이렇게 예쁜 걸 어떻게 보내. 

그때, 강아지의 사진을 보내면서 견종이 뭐냐고 물어봤던 수의사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많이 아픈 환견이 있어서 돌봐 주느라고 요즘 통 정신이 없다며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하고 연락이 없던 친구였는데.

[바보냐? 여우잖아. 멍청아.]

어...?

"아가야... 너 여우야?"






저 여우는 부케비들이 예상할 바로 그 여우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