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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7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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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ㄱㅅㄷ / 2편 / 3편 / 4편 / 5편 / 6편 / 7편    



아몬 코타로가 수인 학대조직에 이를 갈고 있다는 말이 정말인지 츠지무라를 통해서 연락을 하자마자 바로 케이가 말한 사고를 조사했다고 했다. 케이가 탈출했던 날 있었던 교통사고를 알아보니 그날 그 차에 탑승하고 있던 둘은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그 차는 몇 년 전 도난당한 차량에 새로 도색을 하고 가짜번호판을 단 차량이었으며,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둘 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전과도 없는지 지문으로 확인되는 신원도 없었고 가지고 있는 운전면허증은 타인의 것이었다고. 둘 다 사고에 대해 문의하거나 사망자들에 대해 문의한 이들이 없어서 무연고자로 처리됐다는 거 보면 조직에서도 굳이 이들을 찾으려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놈들이 편하게 죽어 버린 것은 열받았지만. 놈들의 목숨줄이 끊어져서 이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된 건 다행이었다. 

"놈들은 조직이 드러날까 봐 아예 사고에 대해서 아무런 문의도 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케이."

노부의 품에 안겨서 시원한 물을 마시며 쉬고 있던 아기여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다. 케이는 요즘 아침에 노부를 깨워줄 때만 여우의 모습으로 있었는데 지금은 오랜만에 아기여우로 돌아와서 노부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츠지무라는 아몬이 이 조직을 궤멸시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케이에게 수인 등록을 권했다. 그 조직은 불법조직이기 때문에 케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지만 혹시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미리 노부를 보호자로 해서 칩을 넣어두는 게 좋을 거라고. 일단 명목상은 노부가 '보호자'로 등록되는 거라고 해도 사실상 소유주로 여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케이가 여기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이야기를 들은 케이는 흔쾌히 응했다. 

"노부가 보호자가 되면 이제 노부랑 계속 같이 사는 거예요?"
"네. 계속 같이."

그러자 케이는 신나서 등록을 하겠다고 했다. 케이는 산책 가자는 노부의 말에 겁먹고 체한 적도 있었을 정도로 외출을 두려워했는데 칩을 삽입하려면 병원에 반드시 가야 해서 외출을 해야 하는데도 기꺼이 하겠다고 할 정도로 수인 등록을 반겼다. 다행히 츠지무라의 병원이 수인 등록을 할 수 있는 병원이지만 법률적으로 내장칩 삽입은 반드시 병원에서 하게 돼 있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츠지무라가 노부와 케이의 집을 방문해서 칩을 넣어줄 수는 없다고 해서 노부는 지금 케이의 외출복을 함께 고르는 중이었다. 츠지무라의 병원에 방문할 때 혹시 케이를 알아볼 누가 있을지도 몰라서 아기여우 케이에게 예쁜 옷을 입혀서 가려고 노부와 케이가 머리를 맞대고 인터넷에서 반려동물용 옷을 여러 벌 샀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기여우의 패션쇼 시간이었다. 

문제는 츠지무라의 병원에 갈 때 입을 옷은 한 벌 뿐인데 뭘 입혀도 너무 귀엽고 예뻐서 고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옷을 바꿔 입을 때마다 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어서 비교해 봐도 하나같이 다 예뻤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패션쇼를 하자 노부는 피곤하지 않지만 계속 옷을 갈아입고 포즈도 취해야 했던 케이는 피곤할 것 같아서 잠깐 쉬고 있었다. 물도 마시고 쉬면서 미니 패션쇼 때 찍은 영상과 사진들을 다시 보고 있을 때 아몬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때 교통사고로 둘 다 즉사했고, 사고 관련해서 문의나 그런 게 전혀 없어서 무연고로 처리됐다고. 

"놈들은 조직이 드러날까 봐 아예 사고에 대해서 아무런 문의도 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케이."

아직 마지막으로 입어봤던 검은색 정장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던 케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무슨 말인지 알아채고 노부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아직 그놈들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나보다. 노부는 작은 아기여우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그때 차 사고 났을 때 둘 다 죽었는데, 조직에서 사고에 대해 문의하거나 시신을 인도받겠다고 한 사람들이 없대요. 아마 자기들이 걸릴까 봐 사고 자체애 대해서 물어보지도 않았나 봐요."
"... 네."
"그러니까 케이가 없어진 것도 모르겠죠?"

그때까지 눈을 깜박거리며 갸웃갸웃하던 케이의 눈이 금세 커졌다. 

"진짜요?"
"네. 차량도 등록되지 않은 불법차량이었고, 두 사람 신원도 전혀 나오지 않았는데 사고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대요. 그러니 케이가 사라진 것도 모르겠죠. 사고 당시에 같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안 찾을지도 몰라요."

어차피 아몬이 곧 없애버릴 조직이라고 해도 누군가 뒤를 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당연히 마음이 위축되게 만들었을 텐데, 케이가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아예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니 마음이 좀 가벼워진 모양이었다. 아몬이 그 조직을 치러 가기 전에 케이와 노부가 츠지무라의 병원에 가서 등록을 해놓기로 했기 때문에 외출도 해야 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을 텐데. 케이는 조금은 마음 놓고 외출을 해도 된다니 안심이 되는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무심코 한숨을 내쉴 정도로 긴장했다니 짠한데 작은 아기여우가 폭 한숨을 내쉬는 건 귀여워서 뾰족 나온 입에 입을 맞춰주자, 괜히 귀를 만지작거리던 아기여우 케이가 고개를 반짝 들었다. 

"내 옷 고르기 힘드니까, 노부 옷이랑 맞추면 안 돼요?"
"나랑 케이랑요?"
"노부도 내가 지금 입은 거랑 비슷한 정장 있잖아요. 노부 아침에 회사 갈 때 입는 거."
"네, 있죠."
"그리고 이거랑... 이거... 이것도 비슷한 거 본 거 같은데? 비슷한 거 입으면 안 돼요?"

아기여우 케이가 쭈뼛거리면서 찍은 건 남색 스트라이프 셔츠형태의 옷과 갈색 외투형태의 옷 그리고 빨간색 스웨터 형태의 옷이었다. 노부를 바라보는 커다란 눈 안에 기대와 설렘과 불안과 체념이 섞여 있었다. 노부와 같은 옷을 맞춰입고 싶은 마음과 어차피 안 해 줄 거라는 체념과 이런 걸 바라는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까지 전부. 노부가 매일 사랑해 주고 있어도 너무 오래 학대받고 살아서. 노부는 마음에 상처가 많은 아기여우를 안고 옷장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럼 이제 내가 옷 입어볼 차례네요."

노부가 웃자 케이가 작은 머리를 꾸닥이면서 눈을 접어 웃었다. 그렇게 2차 패션쇼가 시작됐다. 노부가 정장을 입고 나오면 아기여우 케이도 정장을 입고 옆에 나란히 섰고, 노부가 갈색 외투를 걸친 걸 본 케이가 갈색 외투형 옷을 물고 오길래 얼른 아기여우 케이의 옷을 브라운 계열 외투형으로 갈아입여주고 품에 안아든 채 거울 앞에도 섰다. 빨간색 스웨터를 나란히 입고 거울 앞에 서자 화사하고 예쁘긴 했지만 한겨울에 아기여우를 만난 후 이제 몇 달이나 지나서 여름이 가까워지는 계절이었다. 지나치게 크리스마스 느낌이라 패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케이에게 남색 스트라이프 셔츠형태의 옷을 입혀주고 노부도 남색 줄무늬가 있는 셔츠를 입은 채 거울 앞에서 다리를 굽혀 앉자, 아기여우 케이가 노부의 품으로 뛰어들어왔다. 수인형일 때는 자라지 않아서 여전히 작고 가벼운, 그래서 서글프지만 그래도 건강하다니 다행인 아기여우 케이를 안고 거울 앞에 서자, 작은 아기여우 케이의 심장이 콩콩콩 세차게 뛰는 게 가슴으로 선명하게 전해졌다.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요, 케이?"

케이는 눈이 동그래진 채 노부를 올려다봤다. 

"어떻게 알았어요?"

케이 심장이 콩콩콩 뛰면서 '이게 제일 좋아'라고 말해서.

그렇게 말하려던 노부는 갑자기 장난기가 들어서 과장된 자세로 엄숙하게 아기여우 케이의 뺨에 손가락을 올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난 케이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어요. 케이에 대해선 뭐든지 다 알아요."

그러자 케이는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발톱으로 노부의 셔츠를 긁지 않도록 발가락을 감춘 채 앞발로 노부의 가슴을 꾹 누르고 노부를 바라봤다. 

"어... 어떻게? 어떻게 알아요?"
"그야..."

장난이 이렇게 잘 먹힐 줄은 몰랐지만 놀란 케이가 귀여웠기 때문에 여전히 짐짓 심각한 얼굴로 케이의 눈을 바라보며 씩 웃자, 케이가 노부의 가슴을 꾹 누르고 있던 앞발로 제 눈을 가려버리고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눈 보면 보여요?"
"눈?"
"눈을 보면 다 알 수 있다고 어제..."

뭔가 했더니 어제 같이 봤던 영화에서 주인공이 한 말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나는 당신의 눈을 보면 다 알 수 있어요라고 했던가 뭐라던가. 케이는 이제 글자도 거의 다 익혀서 노부가 출근하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고, 노부가 퇴근하면 같이 영화를 보거나 했다. 어제 로맨스판타지 영화를 봤는데 대사를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 그게 귀여워서 눈을 가리고 있는 아기여우 케이의 앞발 위로 촉촉 입을 맞추자, 케이가 우물쭈물 묻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내가... 내가 너무 많이 노부 좋아하는 것도 다 알고 있었어요? 언제부터?"

아기여우 케이는 여전히 눈을 가린 채로 고개를 푹 숙여 아예 노부의 가슴 속에 작은 머리를 푹 파묻었다.

날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그런 '좋아하다'는 거지...? 노부가 케이의 유일한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아기여우 케이가 작은 머리를 대고 있는 노부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껏 우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해서 미안해요."
"케이?"
"진짜 진짜로, 좋아하면 안 되는 거 알아서, 안 좋아하려고 진짜 노력했는데..."

노부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아기여우 케이가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가린 손도 치운 채 노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진짜예요. 내 눈 보면 다 안다고 했죠? 진짜 안 좋아하려고 노력했어요. 좋아하면 안 되는 거 알아서. 그래서..."

물론 눈을 보면 다 알 수 있다는 말은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눈만 보고 모든 걸 알 수 있을 리가. 그런데 간절하게 올려다보는 까맣고 커다란 아기여우 케이의 눈을 보고 있자 정말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여우가 노부를 정말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도, 자기 말대로 노부를 좋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노부를 좋아하지 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는 것도. 그래서 얼마나 슬프고 힘들고 괴로운지도.

"그런 노력을 왜 해요?"
"...?"
"날 슬프게 만들려고?"
"노부가 왜요?"
"케이가 날 좋아해 주지 않으면 내가 슬퍼질 테니까요."
"... 왜... 왜요?"
"케이도 내 눈을 똑바로 봐 봐요."

절박하게 반짝이며 노부의 눈을 바라보는 까많고 동그란 눈을 마주보며 노부는 작게 속삭였다. 

"그러면 보일 거예요. 내가 얼마나 케이를 좋아하는지, 케이가 날 좋아한다고 해서 얼마나 기쁜지, 케이가 날 안 좋아하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해서 얼마나 슬픈지, 전부 다."

노부의 가슴을 앞발로 꾹 누른 채 정말로 절박하게 노부의 눈을 바라보고 있던 아기여우 케이는 곧 짧은 앞다리로 노부를 꼭 끌어안았다. 노부는 아까처럼 콩콩콩콩 아주 빠르게 뛰는 심장을 노부의 심장에 대고 꼭 끌어안고 있는 아기여우를 토닥이며 솜털이 보송보송한 예쁜 귀에 대고 물었다. 

"보였어요? 내가 얼마나 케이를 좋아하는지?"

아기여우 케이의 작은 머리가 끄덕끄덕 열심히 움직이더니 고개를 들고 대답없이 노부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자기가 노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노부도 직접 눈을 통해 보라는 것처럼. 

그리고 정말로 절실하고 간절하게 반짝거리고 있는 그 까만 눈을 보고 있자 어느 날 폭설과 함께 노부의 인생에 찾아온 이 아기여우가 노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슴 아플 정도로 잘 보였다.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