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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4 02:07
ㅂㄱㅅㄷ / 2편 / 3편 / 4편 / 5편 / 6편
케이는 여전히 집 밖에 나가는 걸 두려워했다. 산책가자는 이야기는 한 번 꺼냈다가 케이크를 행복하게 먹고 있던 케이가 체해 버린 일도 있어서 다시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고, 옷 같은 걸 사러 가고 싶어도 필요한 게 없다며 머리를 붕붕 저었다. 그러던 케이가 과거에 대해서 스스로 입을 연 건 어느 날 츠지무라가 파트너를 데리고 노부의 집에 저녁 식사를 하러 왔던 날이었다. 츠지무라에게 여러 모로 도움을 받았는데 대접을 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노부가 식사를 대접하고자 불렀다. 츠지무라의 파트너는 여우는 아니지만 수인이긴 해서 케이에게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케이는 조심스럽게 무슨 동물이냐고 물어왔다.
"고양이예요. 치즈태비라는데, 난 수인형을 보지는 못했고. 치즈태비라고 듣기만 했어요."
"치즈태비?"
"네, 이런 고양이예요."
노부가 휴대폰을 검색해서 노란 줄무늬 고양이를 보여주자 케이는 아~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조심조심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치즈... 수인은 제가 이런 거... 이런 수인인 거 알아요?"
이런 거가 뭘까. 성장 억제 주사를 맞아서 수인형이 어린 모습인 걸 뜻하는 걸까. 인간형일 때 갖은 성적 학대를 당한 걸 말하는 걸까. 아니면 학대받던 신세였단 걸 말하는 걸까.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케이가 자기의 과거 때문에 남들 앞에 서는 걸 껄끄러워한다는 건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노부는 케이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츠지무라의 파트너는 수인 학대 조직이 적발되면서 구출된 수인이에요. 그 조직이 어떤 수인을 납치했는데 그 수인의 가족이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찾아다녀서 조직이 적발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같은 조직에 있다가 구출된 거예요."
"... 수인이 납치되면 찾아주는 사람도 있구나..."
케이는 아무도 구하러 와 주지 않는 신세였었는지 씁쓸하게 말했지만 곧 배시시 웃었다.
"손님맞이 준비하는 거 나도 같이 할게요."
케이에겐 아무래도 백방으로 케이를 찾아줄 사람이 없었던 것 같지만, 이젠 노부가 있으니까 괜찮다는 것처럼 노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배시시 웃어서 노부도 케이의 등을 토닥이며 예쁜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춰줬다.
"고마워요."
그날 케이는 정말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스테이크와 랍스터, 파스타, 샐러드를 준비했는데 이제는 노부를 도와서 요리 준비도 착착 하게 된 터라 요리는 순조로웠고 요리가 완성된 뒤 요즘 폰으로 사진 찍는 취미가 생긴 케이가 요리 사진도 찍고 케이의 사진과 노부의 사진도 마구 찍고 있을 때 츠지무라와 파트너가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오래 전 노부를 본체만체하던 츠지무라의 파트너는 이제 사교성도 좀 생겼기 때문에 노부에게도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케이에게 다가와서 케이를 꼭 안았다.
"이제 다 괜찮을 거예요. 정말로. 진짜예요."
츠지무라의 파트너는 가루베 다이키치란 이름이었다. 케이보다 몇 년 더 일찍 구출된 가루베의 삶이 조직에 감금돼 있을 때보다 훨씬 나아진 것은 당연히 사실일 것이다. 어디에 있든 그런 조직에 있는 것보다 당연히 더 좋을 테고 츠지무라는 친구라서가 아니라 정말 좋은 사람이니까. 다행히 케이에게도 지금이 행복한지 케이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가루베는 케이와 소곤소곤 둘이 대화도 많았다. 듣고 싶었지만 몰래 듣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저 케이에게 음식을 챙겨주는 것에만 집중하고 저녁식사를 마쳤을 때였다. 츠지무라와 가루베가 식사 고마웠다고 다음엔 두 사람이 대접하겠다고 하고 돌아가고 난 뒤, 케이는 노부가 따끈하게 우려 준 찻잔을 쥐고 있다가 속삭였다.
"아까 가루베한테 들었는데 그 납치됐다가 가족이 찾으려 했던 수인... 사막여우 수인이라고요."
"네, 나도 그렇게 들었어요."
노부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 줘도 케이는 아직도 자기가 키가 커진 게 컴플렉스인지 마음이 힘들고 불안해서 노부에게 안기고 싶을 때는 북극여우로 돌아가서 노부의 품으로 들어왔다. 인간형으로 있을 땐 노부가 안아주기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 그래서 오늘도 북극여우로 변하지 않을까 했는데 케이는 찻잔을 쓰다듬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사막여우 수인... 미야무라라는 사람, 찾으려 한 가족이 경찰이라면서요."
"네, 아몬 코타로 상이라고 경찰에 있다더군요."
"그 사람, 그 분이 미야무라 상은 찾았지만 미야무라 상이 그때 많이 힘들어했었어서 아몬이라는 사람이 그런 조직 다 없애려고 하고 있다고 했어요."
"네..."
"... 사실..."
뜨거운 찻잔을 들고 있는 케이의 손이 덜덜 떨려서 노부는 급히 찻잔을 내려놓고 케이를 품에 안았다. 아기여우를 안을 때처럼 품에 꼭 끌어안고 등과 머리를 쓸어주자 케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난 이제 나이도 서른이라서... 나이 너무 많고... 너무 커져서 ...는 맛이 없다면서... 수인... 출산공장...에 팔아버린다고 해서..."
눈앞어 하얘지고 머리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미친놈들이 진짜. 어디까지 쓰레기였던 거지. 케이의 숨이 가빠지고 말도 못할 정도로 덜덜 떨고 있어서 노부는 케이를 꼭 끌어안고 침실로 들어갔다. 같이 침대에 누워서 꽉 끌어안은 채로 이불까지 폭 덮어쓰고 있자 품 안에 있는 케이의 체온만 느껴지고 모든 감각이 다 차단돼서 안전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의 소음과 빛과 어둠과 모든 것은 이불 밖에 있고, 이불 안에는 케이와 노부밖에 없었다. 케이도 이 안전한 기분을 느끼고 있길 바라면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이불을 덮어쓴 채로 케이를 꼭 끌어안고 있자 케이도 노부의 체온만 느껴지고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되자 조금 두려움이 가셨는지 여전히 덜덜 떨면서도 다시 말을 이었다.
"... 출산공장에 팔아버릴 거라고 억지로 차에 태웠는데 날 태우고 가던 차가 사고가 났어요..."
"교통사고요?"
"네.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들리고 차가 심하게 흔들렸어요. 그리고 차가 어디에 부딪치면서 멈췄는데 보니까 운전하던 사람이랑 앞자리에 탄 다른 사람이 차 앞에 머리를 박고 피 흘리면서 쓰러져 있었어서 ... 정신차리기 전에 도망가야겠다고... 그래야 출산공장에 안 끌려갈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서..."
"잘했어요. 잘했어. 그딴 놈들은 죽어도 천벌받은 것뿐이에요. 그때 그 자리에 그렇게 죽었으면 편하게 가서 오히려 아쉬운 거지. 잘 도망쳤어요. 도망친 건 진짜 잘했어요."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도망쳤다고 비난할까 봐 걱정하기라도 했는지 잠시 낯이 흐릿해졌던 케이는 노부를 꼭 끌어안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러나 노부는 진심이었다.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잘 죽었다 잘 버려두고 갔다고 할 말은 아니지만 그딴 놈이라면 사정이 달랐다. 정말로 그때 그 사고로 죽었으면 너무 편하게 간 거지. 오래오래 지상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고생을 다하다가 고통스럽게 죽어야 했는데. 핵폐기물같은 놈들. 재활용도 안 될 쓰레기들.
"첨에 어떻게 할까 하다가 여우로 변하니까 손이랑 발에 찬 수갑이랑 목줄이 벗겨져서 여우로 변한 다음에 도망쳤어요."
"잘했어요."
노부는 겁먹어서 그런지 긴장해서 그런지 차갑게 식은 듯한 케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마와 코, 뺨에 입을 맞췄다.
"차에서 도망쳐서 여기까지 오는 데 많이 힘들지 않았어요?"
케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도로 근처에 있으면 또 잡힐까 봐 산으로 도망쳐서 산을 넘어왔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추운 건 괜찮은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앞이 잘 안 보여서 여기 집 앞에서 쉬고 있었어요."
"다행이다. 우리집 앞에서 쉬어서."
케이는 농담이라 생각했는지 웃었지만 노부는 진심이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수인 출산공장 같은 데로 끌려가서 죽을 때까지 애를 낳다가 갈까 봐, 그것도 힘들게 낳은 아이를 키우지도 못하고 아이가 지옥으로 끌려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할까 봐 끔찍하게 두려워했을 텐데. 교통사고에 휘말려 죽을 뻔했다가 겨우 탈출했는데 또 겨울 산까지 넘어야 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행히 북극여우는 추위에 아주 강하다니 많이 떨지 않았을 거란 것만이 위안이었을 뿐, 얼마나 피곤하고 배고프고 힘들었겠는가. 다시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얼마나 컸을 것이며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겪어야 하는 절망과 슬픔과 괴로움은 얼마나 컸겠는가.
정말 이 집 앞에서 쉬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발견해서 다행이야.
"혹시 인간형으로 있으면 날 잡으러 온 사람들 눈에 띌까 봐... 옷도 없고 그래서..."
"네."
"그래서 털도 흰색이니까 눈속에 숨어 있었는데..."
"네."
"노부가 날 구해줬어요."
노부는 케이를 꽉 끌어안은 채로 식은땀이 배어나오는 케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날 눈이 많이 와서 다행이에요... 길이 많이 막혀서 다행이야... 내가 차를 회사에 두고 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
"평소에는 차 타고 바로 지하주차장으로 가니까 집 앞에 케이가 예쁘게 앉아 있는 걸 못 봤을 텐데. 그날 회사에 차 두고 지하철 타고 와서 정말 다행이네요."
"아..."
"잘했다, 나. 차 놔 두고 와서."
케이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창백한 얼굴로도 조금 웃었다. 노부는 그 하얀 얼굴에 입을 맘추며 속삭였다.
"케이도 잘했어요. 다른 데 안 가고 내 집 앞에 앉아 있어줘서, 내 눈에 띄어줘서."
"..."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 내 눈에 들어와줘서 고마워요."
"..."
"내가 케이를 만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마워요..."
케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웃으면서 속삭였다. 그렇게 노부의 품에서 잠시 색색거리고 있던 케이는 다시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아몬이라는 사람이 계속 그런 거... 그 조직 같은 거 찾고 있으면... 내가 있던 데 위치를 대충은 알려줄 수 있어요. 아직 거기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나요?"
"내가 계속 있던 건물 창문에 창살이 있었는데 거기서 보면 옆건물이 보였어요. 거기에 이런..."
케이는 노부의 손바닥을 펴서 ㅇㅇㅅㅁㅅ처럼 보이는 기호를 그렸다.
"이런 그림... 같은 게 건물 꼭대기 간판 같은 데 있었어요."
뭔지 알 것 같았다. 이 회사는 대기업으로 브랜드의 초성만 따서 브랜드 로고를 만들었는데 제법 큰 브랜드고 지사도 많은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것만으론 단서가 안 되겠지만 이 도시에서 산 너머에 있는 마을이 그리 크지도 않은데 그곳에 지사가 여러 개일 리가 없었다. 그 쓰레기들이 있는 곳을 알 수 있다...
노부는 케이를 토닥거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일단 위치를 안다는 것과 간략한 정보를 아몬 코타로 쪽에 전달할게요. 그쪽에서 필요하면 다시 연락오겠죠."
"네."
"오늘 용기내서 이야기 많이 하느라 힘들었죠? 기운 빠졌을 테니까 맛있는 거 먹어야겠다."
"맛있는 거 안 먹어도 되는데."
케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뺨이 발그레해지기 시작했다. 노부는 따끈해지는 뺨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티라미수 주문해 놨는데, 먹을래요?"
노부는 정말로 케이에게 많은 케이크를 먹여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는데, 케이는 케이크를 먹을 때마다 좋아했다. 노부도 케이크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걸 처음 알고 조금 놀라고 있는 중이긴 한데 케이는 더 많이 놀라고 있어서. 케이가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도 놀라지 않을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만, 기대하고 설레하는 케이는 항상 예뻤다. 오늘도 신나서 얼굴이 활짝 핀 케이를 데리고 침대에서 빠져나온 노부는 케이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향했다. 티라미수에 커피가 들어갔으니 커피랑 먹는 건 좀 아닌가. 그럼 밀크티랑 같이 먹을까, 우유랑 같이 먹을까... 고민하며 걷던 노부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케이를 돌아봤다.
새 케이크를 맛볼 생각에 들떠 있던 케이도 놀라서 움찔하며 멈춰서길래 노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었다
"밀크티가 좋아요, 우유가 좋아요? 쥬스도 있긴 한데."
그러나 진지하게 음료를 고민하는 케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노부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한창이었다.
아까 케이가 이야기하다가 스쳐가면서 그러지 않았나...
이제 나이도 서른이라서...???????
난 28살인데...?
케이, 진짜 나보다 나이가 많.... 아요?
주말에 못 옴
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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