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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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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신은 그의 ‘전리품’을 은으로 된 사슬에 끼워서 소매 속에 간직했다.
가끔씩 그것을 꺼내어 우는 듯이 흩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아등바등 덤벼들던 강징의 생기발랄한 모습이 떠오르며 기분이 좋았다.
강종주는 역시 시무룩하게 풀이 죽어 있는 것보다 팔팔하게 성을 내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남희신은 은령을 잘 감추고 다녔지만 얼마 안 가 위무선에게 들키고 말았다.
작지만 독특한 소리를 들은 위무선이 우뚝 멈추어 서서 줄기차게 바라보았기 때문에.
“택무군, 그 방울 소리...”
남희신은 의혹 가득한 얼굴을 보고 쉽게 넘어갈 수 없음을 깨닫고 소매를 걷어 보여주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작은 방울을 들여다 본 위무선이 곧장 놀라워했다.
“이건... 강징의 은령이 아닌가요?!”
“강종주의? ...확실합니까? 일전의 신무산 사냥터에서 주운 것입니다만.”
남희신이 소매를 툭툭 털어내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확실하다마다요. 대대로 운몽 강씨의 후계자에게 물려지는 보령인걸요.”
그것은 남희신에게도 뜻밖의 얘기였다. 늘상 삼독의 검자루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긴 했지만, 조그만 방울 하나가 그토록 귀한 물건일 줄이야.
“알겠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돌려드리도록 하지요.”
그가 순순히 대답했지만 위무선은 영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지우지 못했다.
강징이 저 방울을 잃어버려...? 이제 와서 그따위 경솔한 실수를 할 수가 있다고??
그리고 남희신은 말과 다르게 방울을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반대로, 이것이 그리도 중요한 물건이라면 그 쪽에서 받으러 오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날이 더웠기에 이어지는 몇 번의 연회나 야렵회는 대부분 밤중에 열렸다.
남희신도 강징도 그런 자리에는 빠짐없이 참석을 했다.
남희신은 강징이 올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지만, 강징은 오히려 남희신이 있는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는 일이 없었다.
이제는 스쳐지나갈 때도 싹둑 무시하는 것이 남이 봐도 무례하다 싶을 정도였다. 남희신은 강징의 딱딱한 표정 이면에 어떤 속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날, 운심부지처에서, 다른 지역에 비하면 일찌기 선선한 바람이 감돌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에.
드디어 강징이 다가왔다.
남희신은 한가로운 듯이 서서 맞이했으나 두 눈은 호기심을 숨기지 못했다.
또한 강징도 그답게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는 허술한 얼굴로, 인사치레도 생략하고 다짜고짜 덤비듯이 물었다.
“은령을 가지고 계십니까?”
마침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남희신은 살짝 비웃음을 내비치며 날카로운 말투로 응수했다.
“팔아버리기라도 했을까봐서요?”
“......”
“잘 가지고 있습니다.”
“......”
“...그래서요?”
강징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입을 꾹 닫은 채 눈을 피했다. 그러더니 뜻밖에 돌아서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뒤통수에 대고 남희신이 물었다.
“돌려달라고 하지 않으십니까?”
그래도 답이 없이 걸음만 빨라지자, 남희신은 한술 더 뜨면서 외쳤다.
“그럼 저에게 주신 겁니다?”
강징은 더더욱 발이 빨라지며, 숫제 부리나케 달려갔다. 마침 모퉁이에서 걸어나오던 남망기가 움찔 멈춰서며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치는 그에게 길을 내주었다.
남망기는 홍당무처럼 빨개져서 사라져버리는 삼독성수와, 분명 그가 떠나온 방향에 서 있는 남희신을 보고 대체 형장이 어떻게 강종주를 화나게 한 것인지 의아했다.
남희신은 강징을 스쳐 걸어오는 남망기를 보고도 말없이 침묵에 잠긴 채 말을 걸지 않았다.
남망기는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차분하게 서서 기다렸다.
한참 후 남희신이 눈도 돌리지 않고 불렀다.
“망기.”
“예, 형장.”
“누군가가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인 것은 어떻게 아느냐?”
남망기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고요하게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어버리는 품이 매우 여상하여 마치 남희신이 한 말을 듣지 못한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가 대답했다.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면 됩니다.”
“그 사람이 없는 세상...?”
“그가 없으면, 세상도 없습니다.”
말수 적은 동생은 언제나 한마디 한마디가 서릿발같이 단호했다.
남망기는 대답을 하면서도 이미 마음이 저 멀리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다른 곳은 언제라도 닿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남희신은 소매 속으로 손을 넣어 팔짱을 끼고는 무더위로 짓무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삼독성수가 없는 세상이라.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 강징이 가장 위태로워 보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의 그는 너무도 굳세어 거의 신들린 것처럼 표독한 모습이었지만, 그만큼 처절하게 외로웠다는 반증이었다는 걸 남희신은 수십년이 지나고 난 지금에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상상해 보았다.
만약 그 때 그의 존재가, 그렇게 위태로웠던 느낌 그대로 사그라들어버리고 말았더라면.
남희신은 그 후의 그 없는 세월을 가늠해 보는 것만 해도 가슴이 시큰하게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를 의식한지 채 일년도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과거가 사라지는 상상마저도 참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만음.”
무서운 상상으로 가슴이 답답해진 남희신이 손가락에 닿는 은령을 굴리며 나직하게 불렀다.
남희신이 한결같이 온건한 태도였던 것은,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꾸짖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벗도 거의 없었다.
거침없는 섭명결이나, 끈덕진 금광요처럼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아니면 사귀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난생 처음으로 제 쪽에서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답답하기도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마음이 급해지기도 하고, 심지어 분통이 터지는 기분까지 다채롭게 맛보았다.
가끔씩 남희신은 감정이 치밀어 주체할 수 없어지는 스스로를 깨닫고 놀라곤 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나, 세간에서 칭송받는 택무군과는 다른 자신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한다 말했다.
그 사람은 이러한 자신의 진면목을 알고도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도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
마음 속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원을 떠올렸을 때, 남희신은 독이라도 먹은 듯 어지러운 기분이었다.
정말로 보고 싶었다.
꼭 보아야 했다.
그래야 내가 당신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처럼,
당신 역시도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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