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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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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짜고짜 때리지 말고. 누누히 말하지만 차라리 브랫이나 토니처럼 말로 패.

- Yes, sir.

- 나도 너한테 싫은 소리 하기 싫어. 그러니까 화가 나더라도 네 남편 좀 먼저 생각해줘. 알았지? 약속하는 거야.

- 네이트.

- 응.

- 저 약간 짜증날 거 같은데요.

- 미안.



허니비의 복장을 점검해주며 네이트는 조곤조곤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마지막으로 부니햇까지 깔끔하게 씌워주고 난 뒤 어깨를 토닥이면서도 "얌전히 지내고, 이따 보자." 끝까지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아마 네이트가 허니비에게 이전처럼 화를 내는 일이 또 생긴다면 전보다도 훨씬 더 마음이 쓰일 걸 알기에 미리 주의를 준 것이겠지만, 그 속을 알 리 없는 허니비는 "내가 애도 아니고... 선생님이야, 뭐야." 철없이 툴툴대며 캠프로 향할 뿐이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 집에서부터 마치 세뇌라도 시키듯 허니비가 보일 때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던 네이트는 나중에 가선 진심으로 짜증이 난 허니비에게 기어이 한소리를 듣고 말았다.



<모래폭풍 속에서 피어난 사랑 ~아라비안 나이트~>의 후속작을 위해서...... 는 아니고, 평범하게 이라크로 파병을 온 허니비와 네이트는 각각 장교와 사병의 자리로 돌아갔다. 네이트의 앵무새전법이 통했는지는 몰라도 허니비는 예전만큼 걸려오는 시비에 과격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곱상하게 생겨서 𖧷험한 말𖧷을 자주 하는 어떤 잔소리꾼 욕쟁이에게 옮은 건지, 언젠가부터 심사가 뒤틀릴 때면 누구처럼 나지막히 욕을 뱉곤 했다.



- 거니, 오일 있어요? 있으면 좀 줘 봐요.

- 아이구, 사모님께서 필요하시다면 드려야죠.

- 𖧷Fuck𖧷 적당히 하시죠, 중사님.



최근 마이크 윈 중사의 소소한 즐거움을 하나 꼽자면, 바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비밀스럽게 장교와 결혼하게 된 허니비를 놀리는 것이다. 네이트와 마찬가지로 마이크를 의지하고 가깝게 생각하던 허니비는 필요할 때마다 습관처럼 그에게 갔다가, 놀림을 받고 질색하는 얼굴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비와 픽이 비-픽 부부가 된 사실을 마이크가 알게 된 건 파병 며칠 전 어느 가전제품 매장에서였다.



사실 이 둘은 시시콜콜한 가전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는데, 곧 파병을 나갈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고, 남들 입장에서야 숨막히는 정적이지만 둘의 입장에서 이러한 적막은 이미 익숙했기 때문이다. 쉬는 날이면 네이트는 주로 독서를 하거나 취미삼아 공부(!)를 했고, 허니비는 본가에서 가져온 만화책이나 네이트가 추천해준 책을 읽었다. 간혹 하늘이 맑은 날에는 둘이 같이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당연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고, 햇볕을 쬐며 걷는게 주된 목적이었지만. 그러나 네이트의 어머니가 집에 놀러왔던 날 허전하기 짝이 없는 집안 풍경을 보고 깜짝 놀라는 바람에 나들이 삼아 전자제품 쇼핑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마주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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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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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허니비와 네이트는 사려던 티비도 못 사고 마이크에게 거한 저녁 식사까지 대접하며 입막음을 해야 했다. 구구절절 이 요상한 결혼 스토리를 풀며 중간중간 의심의 눈빛을 받을 때마다 결백한 애정관계를 필사적으로 해명하면서. 그럼에도 헤어지기 직전 그는 태어날 아이의 대부는 자기로 해달라는 알쏭달쏭한 농담으로 순진한 가짜 부부의 눈을 질끈 감게 만들었다. 물론 농담은 농담일 뿐, 믿음직한 중사는 누구에게도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았다. 대신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깨작깨작 장난을 칠 뿐.












- 허니비 요새 조용하다? 뭐 잘못 먹었냐?

- 개과천선했다.

- 우리 몰래 엘티한테 크게 털린거 아냐?

- 엉, 아주 탈탈 털리고 자숙하는 중이니까 건들지 마라.

- 내가 뭘 해?



요즘들어 픽 중위가 사병들이 모여있는 곳에 출몰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누군가는 중위님께서 친구가 필요하신 걸까 기특한 걱정을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우리를 감시하는 게 아닐까 쓸 데 없이 긴장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별 생각 없이 유능하고 다정한 상사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그 가운데 "사모님"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한 사람만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 늘 끼어있는 누군가를 알아채고 말 없이 입꼬리를 늘렸다. 참 귀여운 커플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하며.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멍청하게 인사나 주고받고 있었지만.



출전을 앞두고 이번에도 슈워체 대위는 단 하나의 발전도 없이 팔자 좋게 피자나 권했고, 네이트는 불길한 데자뷰에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지나가다 그걸 본 허니비는 불현듯 떠오른 스테이크의 기억에 뜬금없이 웃음이 터져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최대한 마찰을 줄이고자 했던 네이트의 기나긴 고뇌 끝에 허니비는 교양인들의 집합체, 5호차에 오르게 되었다. 레이에 트럼블리에 브랫까지 혼돈 그 자체인 1호차는 진작에 배제되었고, 2호차도 부분대장 에스페라의 강력한 존재감으로 인해 탈락했다. 샤핀과 매니멀 또한 틈만 나면 허니비랑 멱살을 잡는 애틋한 사이라 탈락.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계약이 들통날 혹시 모를 요소들을 원천차단하기 위해 본부차량 대신 5호 험비가 당첨된 것이다. 거니가 허니비와 비슷하게 끓는점이 낮은 어떤 해군을 걱정하긴 했지만 둘 다 이유 없이 먼저 달려들지는 않으니 괜찮을거라 다독였다.



- 거 봐. 허니도 닥도 알고 보면 꽤 차분한 성격이야.

- 예에...



오손도손 머리를 맞대고 함께 반창고를 자르는 모습을 보며 네이트가 말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런 두 사람이 순수히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 건 똑똑한 그의 머리로도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당연하게도. 그건 머리가 아닌 가슴에 숨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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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너무 크다고 몇 번을 말하냐. 가위질 하나 제대로 못해? 넌 시발 도대체가 할 줄 아는게 뭐야?

- 주먹으로 이빨깨기요. 왜 도와드려도 지랄이십니까. 그놈의 인성은 대체 어디서부터 글러먹은 거예요?



그가 두 사람의 대화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다면, 그런 고민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을 테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가 경계해야 할 곳은 따로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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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 다 싸우지 마. 허니, 내가 할테니까 가서 좀 쉬어. 어제 제대로 못잤잖아.

- 로벨도 어제 못 주무셨잖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 그럼 얼른 하고 같이 가자.

- 염병 떨지 말고 둘 다 꺼져, 씨발.

- 하여튼 앙탈은...



끝까지 닥을 닥닥 긁으며 로벨과 마주보고 베시시 웃는 얼굴도 너무나 초면인데, 심지어 로벨은 허니비의 등을 토닥여주며 고개 숙여 다정하게 말을 걸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험비 뒷칸에 오르다 갑자기 로벨이 다시 내려오더니, 어디선가 담요 뭉치를 한아름 안고 와 허니비 밑에 모조리 깔아주고는 자기는 딱딱한 맨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나란히 누운 채 까무룩 잠든 모습이 누군가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알콩달콩해 보여서, 그 누군가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굳히고 성큼성큼 그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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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 닥이 보내서 왔습니다. 아프거나 상태 안 좋은 사람 있습니까?

- 상태 안좋은 사람? 하나 있지, 응...

- 아앗... 그 분은 저희쪽에서 어떻게 할 수가...

- 제발... 살려줘............

- 힘내십쇼.



로벨과 그의 분대원들은 시간이 날 때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닥을 대신해 타 소대를 돌며 심부름을 했다. 치료나 약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5호차로 데려다 주는 것까지가 닥이 내린 지령이었다. 유독 슬픈 눈을 한 어느 가여운 병장에게 간간히 위로를 건네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제법 참는 데에도 도가 튼 허니비는 어지간한 헛소리엔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프로–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참는 것뿐이지, 진짜로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로지 혼자서만 삭이던 이전과는 달리 제 표정을 살피며 다정한 걱정을 건네는 이들과,



- 헤이, 푸씨. 저 여기가 너무 아픈데 주사좀 놔줄래요?

- 오오냐, 그렇게 아픈데 주사로 되겠어? 앗싸리 잘라버리는 게 낫지 않겠냐? 어차피 쓸 데도 없는 거.



저보다 더한 성질머리로 나서서 줘패는 프로– 의료인이 있기에 허니비는 네이트와의 약속을 잘 지켜가고 있었다.



그래, 지금까지는.












처음엔 넘어가지 않았다. 의도가 분명한 발걸음을 마주했을 때에도, 구역질 나는 저 면상들이 누구의 지시로 이따위 짓을 하는건지 알아차렸을 때에도, 같이 있던 이들이 화를 참지 못하고 거친 언사를 주고받으며 아슬아슬한 상태에 다다랐을 때에도. 허니비는 비겁하리만큼 그들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약속했으니까.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에.



그러나 더러운 입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이름을 듣자, 결국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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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전처럼 일이 크게 번지는 걸 막은 것은, 허니비의 분노가 피를 맺기 전 그 팔을 잡아 내린 누군가의 억센 손이었다. 돌아본 얼굴은 이성을 잃고 일그러진 채로, 서로 다른 이유로 인한 분노가 고여든 시선은 공중에서 한참을 부딪히다, 악물린 잇새로 나온 목소리에 처참하게 비틀어졌다.



- ...... 따라와.



거니에게 수습을 맡기고, 급하게 두 사람을 뒤따라오며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는 다른 부하들마저도 뿌리치면서, 네이트는 허니비의 팔목을 잡은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질질 끌려가다시피 하면서도 아프다 소리 한 번 나올 줄 모르고, 빈말로라도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그 고집스러움에 더욱 화가 났다.



- 내가, 몇 번이고, 너한테, 부탁하지 않았었나?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도 못하고, 뚝뚝 끊어지기까지 하는 단어들이 그날만큼, 아니, 그날보다 더 억눌러 참고 있음을 허니비도 모르지 않았다. 네이트는 가슴을 크게 들썩이며 한참이나 감정을 삭였다. 이윽고 마주한 눈은 밀려드는 실망과 원망을 애써 막으려는 듯 붉게 젖어들었다.



- 이유가 뭐야.

- ... 없습니다.

- 허니, 이유를 알려줘. 이번엔 들을 테니까. 말해.

-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그놈들이 중위님을 건드려서, 그래서...

- 네가 왜.

- ...... 예?

- 그놈들이 날 가지고 뭐라 하는데 왜 네가 달려드냐고. 나와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 중위님이 그러시지 않았어요? 남편 먼저 좀 생각하라면서요. 그래서 화가 났고, 화를 냈어요.



네이트는 복잡한 얼굴로 시선을 떨구고 눈을 깜빡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이가 똑같은 일을 저지르게끔 만든 이유가 바로 저라는 게, 제 위치가, 제 상황이, 너무도 싫었다. 그 누가 어떤 말을 지껄여도, 뒤에서 어떤 험담을 맞아도 꺾이지 않았던 프라이드가 처음으로 발 아래에 흩어졌다. 그래서일까, 너에게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 허니비, 정신 차려. 나는 네 진짜 남편이 아니야. 나는 네 상관이고, 너는 내 부하고. 우린...... 그냥 각자의 일이나 신경쓰면 되는 거야.












- .................. Yes, sir.












아씨 중위님 약간 하남자 만든거 같아서 죄송스럽네... 젠킬 스탘 중위님너붕붕 네잇너붕붕 약로벨너붕붕 닥......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