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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9 17:23
혼쭐












- 중위님 댁은 처음 가 보네요.

- 떨려?

- 긴장돼요.

- 걱정 마. 아마 나보다 더 반가워하실 걸. 누구 덕분에 사업 규모가 배로 뛰었잖아.



아버지가 금고를 바꾸셨다더라. 대형 사이즈로. 네이트는 지겹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군인이 부부가 된 지 한 달, 이제서야 시간을 낼 수 있게 된 네이트 덕분에 조금은 늦게 양가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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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결혼은 대충 <모래폭풍 속에서 피어난 사랑 ~아라비안 나이트~> 정도의 제목을 붙여 파병지에서 눈이 맞은 걸로 입을 맞추었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몸이니 가뜩이나 불경기에 쓸 데 없는 허례허식은 생략하고 싶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붙였다. 그래서인지 바깥 사회에선 "검소하고 겸손한 군인 부부" 라며 입을 모아 칭찬하는 바람에, 부모님들은 한동안 어깨가 내려올 줄 몰랐다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네이트와 허니비는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룸메이트 정도의 사이로 발전하긴 했다. 썩 가깝지는 않지만 식사다운 식사를 하고, 약간은 길어진 대화를 나누며 간단한 일정을 공유하는. 그러다 아주 가끔씩은 저녁을 먹다 하루의 일을 털어놓기도 하는 그런. 정신 없이 헐레벌떡 시작된 결혼생활은 아주 꼭 맞지는 않지만 얼레벌레 삐걱대며 돌아가긴 했다.



- 허니, 일어나. 도착했어.



그러니까, 어느새 잠이 든 허니비의 머리통이 허공으로 풀썩 떨어지면 목 아프지 말라고 반대쪽으로 밀어주는 것 정도는 가능한 사이가 되었다.



예상대로 그의 부모님은 오랜만에 보는 아들보다 허니비를 더 반겨줬다. 허니비의 손을 잡고, 볼을 쓰다듬고, 끝날 줄 모르는 안부를 묻느라 양 손에 짐을 가득 들고 쓸쓸히 뒤따라오는 아들까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지, 그 아들은 눈 앞에서 닫히는 문을 어깨로 밀고 들어가며 약간의 서운함이 들랑 말랑 했다.



- 와, 책 진짜 많다.



마치 처음으로 친구 집에 놀러간 아이처럼 감탄하는 허니비를 보며 네이트는 멋쩍게 웃었다. 나무로 된 바닥은 표면이 약간 닳아 반질반질했고, 다소 커다란 침대는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바람 빠진 축구공, 끝이 해진 문학책, 겹겹히 놓인 상장과 상패들이 꼭 그와 닮아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꼬맹이 네이트 픽이 과자를 먹으며 책을 읽는 모습은 아마 상상하는 것보다 더 귀여울 테지.



- 중위님도 어릴땐 벽에다 낙서를 하셨군요.



교묘히 숨겨놓은 삐뚤빼뚤한 로보트 그림을 발견했을 때엔 네이트도 허니비도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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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게스트룸으로 밀려난 네이트 대신 그의 침대에 누운 허니비는 왠지 모르게 잠이 오지 않았다. 색바랜 벽지엔 그의 손때가 묻어 있는 것 같고, 푹신한 이불엔 그의 냄새가 베어 있는 것 같아, 어딘가 낯설고 이상한 느낌이 옷깃을 스쳐가는 듯 했다. 괜히 움직이기도 조심스러운 마음에 뻣뻣하게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발가락만 꼼지락댔다. 또 다른 방에서 마찬가지로 뒤척이던 네이트도 어쩐지 자꾸만 제 침대에 누운 허니비를 떠올리게 되어서,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끼면서도 눈을 감으면 까만 바탕에 알록달록한 무늬들이 자꾸만 그림을 그리려 들었다. 그렇게 달이 새초롬하게 비추는 밤, 아직 데면데면한 두 부부는 나란히 잠을 설쳐야 했다. 먼 휘파람처럼 손끝을 간지럽히는 야릇한 불편함이 아릿한 불쾌감을 일으켰다.












- 저 아이가... 자네를 막 괴롭히지는 않는가...?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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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집도 마찬가지로 딸자식보다는 남의집 아들을 더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마부터 턱 끝까지 허니비와 똑 닮은 장모님을 보고 매번 놀라는 것도 잠시, 부드럽게 손을 잡아오며 진심으로 걱정되는 듯 물어보는 장인어른과 그런 아버지를 보며 눈을 질끈 감은 허니비에 네이트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아야 했다.



- 복싱을... 했구나.

- 네. 근데 아빠가 맨날 걱정된다고 우셔서 그만뒀어요.



어쩐지 주먹이 예사롭지가 않더라. 벽 한쪽에 걸린 글러브를 만지작거리며 던지는 농담에 허니비는 그저 키들키들 웃었다. 드레스를 입은 인형과 그 옆에 놓인 야구공, 너덜너덜한 코믹북에 비해 깨끗한 소설책. 허니비의 방은 그 주인만큼이나 다채롭고 종잡을 수 없다고 네이트는 생각했다.



- 이건 뭐야? 열어봐도 돼?



때가 탄 종이상자 안엔 허니비가 주고받은 편지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어릴 적 친구랑 싸우고 받은 화해의 쪽지와 부모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생일 축하 편지, 수업 시간에 몰래 던지고 놀았던 연습장 한 페이지...



- 내가 준 것도 있네.

- 그때 엄청 감동받았지 말입니다. 소위님한테 이런 거 받을 줄 몰랐거든요.



첫 파병을 마치고 네이트가 마이맨들에게 적어준 고마움의 말까지. 짧은 쪽지에 적힌 다정함이 너무나 현실성이 없어서 집에 와서도 몇 번이나 꺼내본 건 허니비만의 비밀이었다.



- 오빠를 처음 봤을 때 제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 으아아악 읽지 마세요!!!



미처 전달하지 못한 고백의 편지를 찾아냈을 땐 비명과 함께 허우적대는 손을 이리저리 피해 일부러 소리내어 읽으며 답지 않게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 머리 위로 높게 들어올린 편지를 뺏지도 못하고, 퍽이나 수치스러웠는지 보기 드물게 얼굴까지 빨개져서 부들부들거리기만 하는 귀한 모습은 덤으로.



- 네잇, 술 한 잔 하겠나?



거한 식사를 마침 후, 위스키 병을 꺼내며 묻는 질문 아닌 질문에 순순히 그러겠다 대답한 네이트는 허니비의 어머니와 단 둘이 식탁에 마주앉았다. 내일 운전할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잔을 거절하고 방으로 홀랑 들어가버리는 허니비를 미처 잡지도 못하고서. 가득 차 있던 병이 조금씩 비워지는 동안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장모님과 달리, 언제부턴가 홍조가 발갛게 올라와서는 의지를 거슬러 자꾸만 흐트러지는 자세를 고쳐앉아야 했다.



- 쉽지 않지? 쟤.

- 아님니다...

- 나 닮아서 성질도 불같고, 애교도 없고.



허니비처럼 새까만 눈으로 마냥 농담같지만은 않은 소리를 툭 던지는 장모님을 보며, 이게 대화를 빙자한 고도의 테스트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풀린 눈으로 '허니비랑 진짜 똑같이 생겼다... 허니비가 나이들면 저렇게 될까...' 따위의 생각이나 하다가... 번뜩 정신을 차렸는지, 미간에 주름까지 잡으며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다 나지막하게 말을 꺼내는 네이트였다.



- 아님니다... 허니는... 생각보다... 차분하고... 또... 인내심도 강함니다... 저도 예저네는 몰란는데... 그래서 혼도 내고 그랜는데... 가치 사라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어쩔 때는... 저보다도 더 어른스러워서...



그 사실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후회스럽다고, 그 아이를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은게, 그 아이의 이야기를 좀 더 성의껏 들어보려 하지 않은게. 그래서 그때 그렇게 아픈 말로 쏘아붙인 게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고. 취기 때문인지 비겁한 망설임인지, 입술 사이에 걸려 혀끝에만 맴도는 미안함을 미처 다 고하지 못한 채 기억의 반절은 술잔과 같이 떨궈두고서 네이트는 허니비의 침대에 엎어져 다음날 점심때까지 눈을 뜨지 못했다. 적당한 때가 되면 재워야겠다 생각하며 제 방에서 만화책이나 넘기던 허니비는 뜬금없는 방문에 당황스러웠지만, 폴폴 풍겨오는 술냄새에 인상을 쓰면서도 제법 커다란 몸뚱이 위로 곱게 이불이나 덮어주고 나왔다.












젠킬 스탘 중위님너붕붕 네잇너붕붕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