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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5 02:39
실수
- 야, 중위님 징계받는다며.
- 본부 애들 일 때문, 맞지?
- 시발 때린건 딴 놈인데 왜 중위님이 징계를 받냐.
- 야.
- 씨발 그런거 아니니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 입 싸물어라, 개새끼들아. 그리고 안 때렸어, 씨발. 케이시 케이섬 그 씨발새끼가 혼자 처 지랄하는거지.
사건이 벌어진 후, 그리에고 중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팔팔 뛰며 일을 더 키우지 못해 안달난 사람마냥 난리를 떨었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픽 중위를 물어뜯는건 기본이고, 급기야 면전에서도 비아냥대기를 멈추지 않는 바람에 "그" 슈워체가 제지할 정도였다. 말 같지도 않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허니비를 변호하는 건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동료들이었다. 특히나 허구한 날 허니비와 치고박던 샤핀과 매니멀이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다 같이 벌인 일에 혼자서만 불려가 자신들 몫까지 벌을 받아야 했던 친구를 향한 그들 나름의 사과였다.
- 엘티... 그거 허니비 잘못 아니에요... 그 새끼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구요.
- 레이, 그쪽에서 먼저 싸움을 걸었다고 한들 그게 이번 일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는 않아. 이럴 시간에 가서 눈이라도 좀 붙이지 그래.
마찬가지로 그곳에 있었던 레이는, 밤중에 험비 조수석에 앉아 있는 네이트를 찾아와 어떻게든 해명을 하려 했으나 단칼에 막혀버렸다. 그럼에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입술을 삐죽거리다 결국 거니에게 한소리를 듣고 나서야 시무룩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 폭행으로 징계를 받는다는 건 케이시 케이섬의 바람에 그쳤지만 지휘관으로서 어느정도 책임은 져야 했던 네이트는 그에 대한 경위서를 쓰게 되었다. 영 채워지지 않는 종이쪼가리만 괜히 뒤적거리는 모양새를 보던 거니가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 중위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저 같아도 그런 상황에선 참기 어려웠을 겁니다.
- 그래서. 허니비가 잘했다는 건가?
- 그건 아니지만,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 ...... 있잖아, 마이크. 나는 허니가 차라리 자기 일로 그런 거라면 이렇게 화가 나진 않았을 거야. 그런데 생각해 봐. 중대장이란 사람은 내가 해야 할 말을 했다는 이유로 날 고깝게 여기고, 그 부사관은 아예 발벗고 나서서 날 엿먹이려 드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걔가 주먹질을 하고 처벌을 받는 걸 옆에서 보고만 있으라고? 그건 아니잖아. 나 때문에 그 애가 힘들어질 바에야 차라리 내가 미움 받는게 나아.
- 네잇. 허니도 매번 그러진 않을 겁니다.
- 아니, 그럴 거야. 허니비는 그런 애니까. 말을 해야할 땐 말을 해야 하고, 화를 내야 될 때에는 화를 내야 하는, 그런 사람이니까.
- ...... 후회 안 하실 자신 있습니까? 그 녀석 중위님한테 혼나고 아주 눈물콧물 다 쏟으며 우는 바람에 로벨이 겨우 달랬다던데요.
- 거짓말 하지 마. 걔가 왜 울어.
- 몇 달 같이 살았다고 이런 거짓말엔 속지도 않으시네. 근데 스티븐이 위로해준 건 사실입니다. 그뿐입니까. 닥도, 스타이니도, 셰이디도, 홀시도 다들 허니랑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는 걸요.
-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 누구처럼 변호사한테서 온 종이쪼가리를 받고 뒤늦게 후회하고 싶은게 아니라면, 중위님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그런... 뭐, 주제넘은 조언입니다.
거니는 예의 그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더 능글맞은 말투로 농담 섞인 조언을 건넸다. 평소 같았으면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새초롬하게 대꾸했을 그의 상관은 그저 아무 말도 없는 채로, 애매한 낯을 미처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거니의 말이 생각보다 더 깊숙이 꽂혀들어간 듯 보였다.
윈 중사가 참호로 간 뒤에도 경위서를 붙들고 있던 네이트는 줄곧 펜만 헛되이 놀리다 결국 험비에서 내렸다. 신명나게 합주 중인 드르렁 연주단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발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5호차로 향했다. 길쭉길쭉한 인영들 사이를 지나 상대적으로 아담한 구덩이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달빛이 고르게 내려앉은 얼굴을 말없이 훔쳐보다, 고이 접힌 눈 위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걷어주었다.
- 중위님...? 여기서 뭐하세요?
- 로벨. 수고했어.
- 네. 근데 여긴... 아, 허니 보러 오신 거예요?
- 응. 울었다길래...
- 울지는 않았어요. 좀 힘이 빠지긴 했지만, 금방 털고 일어날 겁니다. 제가 좀 더 신경쓸테니 너무 염려 마세요.
- 아니야. 내가 남편으로서 너무 심했지. 너도 그렇고, 괜히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군.
- .................. 예?!
로벨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되물었다가 한 발짝 늦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모두들 피곤했던 탓인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고, 허니비도 잠시 뒤척이는가 싶더니 다시 곤하게 잠들었다. 고르게 들려오는 숨소리에 그제서야 다리를 펴고 일어난 네이트는 그때까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과 허니비를 번갈아보고 있는 로벨을 향해 씩 웃어보였다.
- 비밀이야.
허니비에게 다정한 상사인 만큼 픽 중위에게도 믿음직한 부하인 로벨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로벨을 뒤로 하고서 짐짓 태평하게 본부차량으로 돌아왔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잘생긴 얼굴을 구기며 바닥으로 고개를 떨궜다. 나다니엘 픽, 정말 찌질하다.......
타국의 어느 두 부부 사이가 복잡하게 꼬이든 말든 전쟁의 신들은 자신의 호전성을 가감없이 뽐냈고, 마찬가지로 아랫사람들의 사정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는 윗사람들의 헛스윙도 나날이 풍미를 더해가고 있었다. 네이트는 평소와 다름없이 회의를 소집하거나 제 부하들을 살피러 5호차에 간간히 들릴 때마다 허니비와도 태연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간단한 한마디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지만, 가벼운 미소조차도 비치지 않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 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졸지에 그 가운데에 끼게 된 로벨은 둘을 싸고도는 불편한 공기가 고도의 연막인지 아니면 정말로 제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정이 있는 건지, 어디다 물어보지도 못하고 불쌍하게 혼자서만 끙끙 앓아야 했다. 그리고 허니비는 언제부터인가 묘하게 자신을 어려워하는 듯한 그의 태도가 조금씩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에릭 코커 병장과 그 동료들이 이라크 남성을 포로로 잡았을 때, 맥그로우 대위는 자신이 갖고 있던 군용 칼을 뽑아들고는 비무장 상태인 포로에게 돌격하려 했다. 그런 캡틴 아메리카를 막아세운 건, 이번에는 허니비였다.
- 대위님. 안됩니다. 이건, 이건...
이건 전쟁범죄다 이 멘헤라 장교새끼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초인적인 힘으로 삼켜낸 허니비는 유아들을 달래는 유치원 선생님마냥 제가 낼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목소리로 그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 칼 손잡이가 짧아서 대위님도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포로는 부하들에게 맡기고 닥에게 가 보는게 어떨까요?
별안간 뜬금없이 캡틴 아메리카를 맞닥뜨린 닥은 대체 이게 뭐냐는 얼굴이었지만, 곧 허니비의 필사적인 바디랭귀지를 보고 대충 살펴보는 시늉이나 하다 두 사람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허니비는 다음날 꿍쳐놨던 스키틀즈 한 봉지를 닥에게 자진상납했다. 소동이 마무리되고 난 뒤 조금 늦게 그 사정을 알게 된 네이트는 대위를 따라 막사에서 나오는 허니비를 조용히 불러세웠다.
- 괜찮아? 다치진 않았고?
- 아, 네. 아무도 다치진 않았습니다.
- 너도 괜찮은 거지?
- 예.
- 그래. 잘했어, 허니.
네이트는 담백한 말을 건네고선 허니비의 어깨를 한번 토닥여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부하로서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걱정이었고, 상관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칭찬이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어색한 건 왜인지.
- 내가 말 한마디에 기분이 오르내리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 웅?
- 아무것도 아닙니다. 셰이디, 나도 추우니까 거기 끼워줘요.
- 웅! 커몬, 허니!
옹기종기 누워있는 똥강아지 넷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닥은, 허니비와 밥티스타의 성화로 덩달아 똥개들 사이에 끼게 되는 바람에 짜증이 올라오려 했으나 얼마 안 가 도롱도롱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잠들고 난 뒤에도 허니비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양쪽에서 때려박는 드르렁 소리 때문은 아니고, 나비가 돌아다니는 것마냥 까끌거리는 뱃속이 영 불편해서. 가만히 누운 채로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던 와중 머리맡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연히 경계근무를 마친 로벨이라 생각해서 고개를 들었는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한 치의 예상조차 못한 사람이어서.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뭐라 말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 네잇...?
- 아... 미안, 허니. 더 자도 돼.
- 안 자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 어, 아니, 그냥, 괜찮은가 확인하러 온 거야.
스스로 생각해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변명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말 잘하던 네이트 픽은 어디 숨었나. 답지 않게 말을 더듬더니 혼자서 바람빠지듯 웃기까지 하는 모습에 허니비는 "...괜찮으세요?" 라며 기특하게도 그의 상태를 먼저 살펴주었다.
- ... 졸려?
- 아뇨...
- 그럼 잠깐 걸을래?
포탄 소리가 다소 가까이 들리는 외곽을 따라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걸었다. 여전히 말이 없는 채로, 여전히 어색한 채로. 네이트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말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너에게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할까. 마음 같아선 다 내팽겨치고 머릿속을 전부 까뒤집어 보여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허니비 앞에선 꼴사나운 모습은 죽어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겠지만.
- ...... 허니, 미안해. 그날... 내가 감정이 앞서서 말이 헛나갔어.
- 어... 아닙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 아니야. 네가 잘못한 일도 아니고, 너를 탓할 일도 아니었는데... 내 상황 때문에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어.
- 괜찮습니다. 뭐... 틀린 말도 아니잖습니까. 여긴 군대고 전쟁터인데, 제가 너무 긴장을 풀고 있던 거죠.
- 그런... 아니야, 허니. 넌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나겠지. 상관이니 뭐니, 폼만 잔뜩 잡고서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잖아. 너한테도... 아마 응석을 부리던 건 나였던 거 같아.
생각보다 더 솔직하게 튀어나온 반성에 네이트는 조금 놀랐다. 그리고 그건 허니비도 마찬가지였다. 정신 차리라느니, 각자의 일만 신경쓰자느니 아플만큼 매정한 말로 벽을 세울 때는 언제고 지금은 또 그런 말로 상처를 준게 마음 아파 못 견디겠다는 듯, 이런 늦은 시간에 저를 찾아와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매번 그 템포에 맞추려 드느라 숨이 차오르는 건 저뿐인 것 같아서, 허니비는 왈칵 억울함이 올라오려다가도...
온 얼굴을 미안함으로 물들인 채 저만 바라보는 저 낯을 마주보다 보면, 어느새 그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올라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심지어 저를 낳아준 부모에게도 순순히 굽혀들어간 적이 없던 허니비는 이런 제 행동이 마치 알 수 없는 최면에 걸린 개새끼 같다고 잠시 생각했다. 혹은 죽을 때가 다 되었거나. 후자의 경우가 좀 더 가능성 있는 것 같긴 하다.
- 중위님은 참... 사람을 피곤하게 하시네요.
고작 이런 한마디에 철렁 내려앉는 표정은 왜 숨길 생각을 않는지.
- 모질게 굴거면 그렇게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지나 말던지요. 저는 중위님이 밀어내면 기어 풀린 자동차마냥 밀려나야 하고, 또 중위님이 마음 바뀌어서 사과하면 바보 천치같이 화난 것도 다 풀어야 합니까? 제가 뭐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는 개새낍니까?
- 허니. 그런 거 아니야. 내가...
- 사랑놀음 같은거 하지 말자 해놓고, 혼자서 남편이니 뭐니 소꿉장난 하듯이 굴더니 언제는 또 상관 이상으로 대하지 말라 하고. 저는 중위님이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중위님이 절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더 쉬웠던 것 같아요. 중위님, 네잇. 저는 당신에게 대체 뭐가 돼야 해요? 우린 대체 뭡니까?
날카로운 말보다 금이 간 마음이 먼저였는데, 말을 하고 보니 그 말이 되려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서, 이제 도리어 울고 싶어진 건 허니비였다. 그랬단 말이야.
그런데 왜 당신이 울 것 같은 얼굴인데.
- 허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는... 나는, 네가 나 때문에 부당한 일을 겪는게 싫었을 뿐인데 멍청하게 할 줄 아는 거라곤 화내고 윽박지르는 것밖에 없어서...... 내가 여기서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었던 건 너인데 그런 너한테 자꾸 상처를 주는 내가 또 싫어서져......
화낼 때는 베일 만큼 칼같던 사람이 정작 똑똑히 해야 될 말은 제대로 맺지도 못하고.
- 지금도... 난 너한테 어리광만 부리고 있네...
이렇게 멋없고 찌질하게 사람 마음을 녹이는 것도 재주구나 싶었다.
- 장교들 어리광 부리는 거 뭐 하루이틀입니까.
- 응...?
- 그거 아세요, 중위님 알고보면 엔시노맨보다 더 찌질해요.
- 그 정도야...?
- 엔시노맨도 지가 좋아하는 사람한텐 안 그럴 겁니다.
- 엔... 어?
- 방금 그거 고백 아니었습니까? 아님 말... 뭐야, 그 얼굴은. 설마 몰랐던 건 아니죠?
- 몰... 아니, 방금 안 것 같아.
- 와, 네잇, 당신... 진짜...... 덜떨어져......
그렇게 말하며 저를 바라보는 허니비의 표정이 경악에 차다 못해 애석함까지 엿보였지만, 네이트 픽은 제 발달 수준에 대한 해명은 고사하고 정말 덜떨어진 얼간이라도 되어 버린 건지, 그간 자신의 언행과 속내를 돌이켜 보느라 뇌와 심장 사이를 오가기도 바빴다.
-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뭐, 의도한 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요즘 중위님도 그렇고 스티븐도 그렇고 여러모로 땅굴 파고 있던 건 사실이거든요.
- 스티븐... 로벨?
- 예. 로벨도 요즘 어색하게 굴길래, 제가 또 뭐 잘못했나 싶었거든요.
- 어... 그게...... 말이지......
그 예쁜 눈알을 온 방향으로 굴려대며 말꼬리를 잡아 늘리는 모양새를 보자니 아, 뭘 또 저지른 건 제가 아니라 이 멀대같은 모지리였구나, 라는 걸 직감한 허니비가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쳐다보자, 네이트는 온 두뇌를 풀로 회전시키며 과연 사실대로 말을 하는 게 옳을지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그래도 솔직한 사람이고, 솔직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
- 내가... 로벨한테 말했어. 우리...... 결혼... 한 거.
와르륵 구겨지는 얼굴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솔직한 게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 로벨이랑 너무 가까워 보이는 게 질투나서...... 나도 모르게......
- 어쩐지... 갑자기 나를 무슨 사성장군 대하듯 하더라니...!
- 미안. 이것도 내가...
- 정말 잘 하셨습니다.
- 잘못... 응?
- 아주 자아알 하셨네요. 아예 온 부대에 청첩장이라도 돌리지 그러세요? 아니, 사람이 온갖 똑똑하고 현명한 척은 다 하더니만 생각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소문 나면 군 생활 조지는게 네잇 하나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 허니...
- 따라오지 마요! 한마디라도 더 하면 저 하극상으로 옷 벗을 것 같으니까.
허니비의 저 말이 홧김에 그냥 내지른 소리가 아님을 알기에 멀어지는 뒷모습만 무력하게 바라봐야 했던 네이트는 아무데나 머리를 꿍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그리고 저 살벌한 경고에도 왜인지 자꾸 웃음이 실실 나와서 정말 어디 한 군데가 이상해진 건 아닐까 싶었다. 다행히 머리는 아닌 것 같고, 그보다 조금 아래 어딘가가.
젠킬 스탘 중위님너붕붕 네잇너붕붕 약로벨너붕붕 간호
- 야, 중위님 징계받는다며.
- 본부 애들 일 때문, 맞지?
- 시발 때린건 딴 놈인데 왜 중위님이 징계를 받냐.
- 야.
- 씨발 그런거 아니니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 입 싸물어라, 개새끼들아. 그리고 안 때렸어, 씨발. 케이시 케이섬 그 씨발새끼가 혼자 처 지랄하는거지.
사건이 벌어진 후, 그리에고 중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팔팔 뛰며 일을 더 키우지 못해 안달난 사람마냥 난리를 떨었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픽 중위를 물어뜯는건 기본이고, 급기야 면전에서도 비아냥대기를 멈추지 않는 바람에 "그" 슈워체가 제지할 정도였다. 말 같지도 않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허니비를 변호하는 건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동료들이었다. 특히나 허구한 날 허니비와 치고박던 샤핀과 매니멀이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다 같이 벌인 일에 혼자서만 불려가 자신들 몫까지 벌을 받아야 했던 친구를 향한 그들 나름의 사과였다.
- 엘티... 그거 허니비 잘못 아니에요... 그 새끼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구요.
- 레이, 그쪽에서 먼저 싸움을 걸었다고 한들 그게 이번 일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는 않아. 이럴 시간에 가서 눈이라도 좀 붙이지 그래.
마찬가지로 그곳에 있었던 레이는, 밤중에 험비 조수석에 앉아 있는 네이트를 찾아와 어떻게든 해명을 하려 했으나 단칼에 막혀버렸다. 그럼에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입술을 삐죽거리다 결국 거니에게 한소리를 듣고 나서야 시무룩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 폭행으로 징계를 받는다는 건 케이시 케이섬의 바람에 그쳤지만 지휘관으로서 어느정도 책임은 져야 했던 네이트는 그에 대한 경위서를 쓰게 되었다. 영 채워지지 않는 종이쪼가리만 괜히 뒤적거리는 모양새를 보던 거니가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 중위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저 같아도 그런 상황에선 참기 어려웠을 겁니다.
- 그래서. 허니비가 잘했다는 건가?
- 그건 아니지만,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 ...... 있잖아, 마이크. 나는 허니가 차라리 자기 일로 그런 거라면 이렇게 화가 나진 않았을 거야. 그런데 생각해 봐. 중대장이란 사람은 내가 해야 할 말을 했다는 이유로 날 고깝게 여기고, 그 부사관은 아예 발벗고 나서서 날 엿먹이려 드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걔가 주먹질을 하고 처벌을 받는 걸 옆에서 보고만 있으라고? 그건 아니잖아. 나 때문에 그 애가 힘들어질 바에야 차라리 내가 미움 받는게 나아.
- 네잇. 허니도 매번 그러진 않을 겁니다.
- 아니, 그럴 거야. 허니비는 그런 애니까. 말을 해야할 땐 말을 해야 하고, 화를 내야 될 때에는 화를 내야 하는, 그런 사람이니까.
- ...... 후회 안 하실 자신 있습니까? 그 녀석 중위님한테 혼나고 아주 눈물콧물 다 쏟으며 우는 바람에 로벨이 겨우 달랬다던데요.
- 거짓말 하지 마. 걔가 왜 울어.
- 몇 달 같이 살았다고 이런 거짓말엔 속지도 않으시네. 근데 스티븐이 위로해준 건 사실입니다. 그뿐입니까. 닥도, 스타이니도, 셰이디도, 홀시도 다들 허니랑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는 걸요.
-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 누구처럼 변호사한테서 온 종이쪼가리를 받고 뒤늦게 후회하고 싶은게 아니라면, 중위님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그런... 뭐, 주제넘은 조언입니다.
거니는 예의 그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더 능글맞은 말투로 농담 섞인 조언을 건넸다. 평소 같았으면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새초롬하게 대꾸했을 그의 상관은 그저 아무 말도 없는 채로, 애매한 낯을 미처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거니의 말이 생각보다 더 깊숙이 꽂혀들어간 듯 보였다.
윈 중사가 참호로 간 뒤에도 경위서를 붙들고 있던 네이트는 줄곧 펜만 헛되이 놀리다 결국 험비에서 내렸다. 신명나게 합주 중인 드르렁 연주단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발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5호차로 향했다. 길쭉길쭉한 인영들 사이를 지나 상대적으로 아담한 구덩이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달빛이 고르게 내려앉은 얼굴을 말없이 훔쳐보다, 고이 접힌 눈 위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걷어주었다.
- 중위님...? 여기서 뭐하세요?
- 로벨. 수고했어.
- 네. 근데 여긴... 아, 허니 보러 오신 거예요?
- 응. 울었다길래...
- 울지는 않았어요. 좀 힘이 빠지긴 했지만, 금방 털고 일어날 겁니다. 제가 좀 더 신경쓸테니 너무 염려 마세요.
- 아니야. 내가 남편으로서 너무 심했지. 너도 그렇고, 괜히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군.
- .................. 예?!
로벨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되물었다가 한 발짝 늦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모두들 피곤했던 탓인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고, 허니비도 잠시 뒤척이는가 싶더니 다시 곤하게 잠들었다. 고르게 들려오는 숨소리에 그제서야 다리를 펴고 일어난 네이트는 그때까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과 허니비를 번갈아보고 있는 로벨을 향해 씩 웃어보였다.
- 비밀이야.
허니비에게 다정한 상사인 만큼 픽 중위에게도 믿음직한 부하인 로벨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로벨을 뒤로 하고서 짐짓 태평하게 본부차량으로 돌아왔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잘생긴 얼굴을 구기며 바닥으로 고개를 떨궜다. 나다니엘 픽, 정말 찌질하다.......
타국의 어느 두 부부 사이가 복잡하게 꼬이든 말든 전쟁의 신들은 자신의 호전성을 가감없이 뽐냈고, 마찬가지로 아랫사람들의 사정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는 윗사람들의 헛스윙도 나날이 풍미를 더해가고 있었다. 네이트는 평소와 다름없이 회의를 소집하거나 제 부하들을 살피러 5호차에 간간히 들릴 때마다 허니비와도 태연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간단한 한마디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지만, 가벼운 미소조차도 비치지 않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 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졸지에 그 가운데에 끼게 된 로벨은 둘을 싸고도는 불편한 공기가 고도의 연막인지 아니면 정말로 제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정이 있는 건지, 어디다 물어보지도 못하고 불쌍하게 혼자서만 끙끙 앓아야 했다. 그리고 허니비는 언제부터인가 묘하게 자신을 어려워하는 듯한 그의 태도가 조금씩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에릭 코커 병장과 그 동료들이 이라크 남성을 포로로 잡았을 때, 맥그로우 대위는 자신이 갖고 있던 군용 칼을 뽑아들고는 비무장 상태인 포로에게 돌격하려 했다. 그런 캡틴 아메리카를 막아세운 건, 이번에는 허니비였다.
- 대위님. 안됩니다. 이건, 이건...
이건 전쟁범죄다 이 멘헤라 장교새끼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초인적인 힘으로 삼켜낸 허니비는 유아들을 달래는 유치원 선생님마냥 제가 낼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목소리로 그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 칼 손잡이가 짧아서 대위님도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포로는 부하들에게 맡기고 닥에게 가 보는게 어떨까요?
별안간 뜬금없이 캡틴 아메리카를 맞닥뜨린 닥은 대체 이게 뭐냐는 얼굴이었지만, 곧 허니비의 필사적인 바디랭귀지를 보고 대충 살펴보는 시늉이나 하다 두 사람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허니비는 다음날 꿍쳐놨던 스키틀즈 한 봉지를 닥에게 자진상납했다. 소동이 마무리되고 난 뒤 조금 늦게 그 사정을 알게 된 네이트는 대위를 따라 막사에서 나오는 허니비를 조용히 불러세웠다.
- 괜찮아? 다치진 않았고?
- 아, 네. 아무도 다치진 않았습니다.
- 너도 괜찮은 거지?
- 예.
- 그래. 잘했어, 허니.
네이트는 담백한 말을 건네고선 허니비의 어깨를 한번 토닥여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부하로서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걱정이었고, 상관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칭찬이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어색한 건 왜인지.
- 내가 말 한마디에 기분이 오르내리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 웅?
- 아무것도 아닙니다. 셰이디, 나도 추우니까 거기 끼워줘요.
- 웅! 커몬, 허니!
옹기종기 누워있는 똥강아지 넷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닥은, 허니비와 밥티스타의 성화로 덩달아 똥개들 사이에 끼게 되는 바람에 짜증이 올라오려 했으나 얼마 안 가 도롱도롱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잠들고 난 뒤에도 허니비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양쪽에서 때려박는 드르렁 소리 때문은 아니고, 나비가 돌아다니는 것마냥 까끌거리는 뱃속이 영 불편해서. 가만히 누운 채로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던 와중 머리맡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연히 경계근무를 마친 로벨이라 생각해서 고개를 들었는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한 치의 예상조차 못한 사람이어서.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뭐라 말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 네잇...?
- 아... 미안, 허니. 더 자도 돼.
- 안 자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 어, 아니, 그냥, 괜찮은가 확인하러 온 거야.
스스로 생각해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변명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말 잘하던 네이트 픽은 어디 숨었나. 답지 않게 말을 더듬더니 혼자서 바람빠지듯 웃기까지 하는 모습에 허니비는 "...괜찮으세요?" 라며 기특하게도 그의 상태를 먼저 살펴주었다.
- ... 졸려?
- 아뇨...
- 그럼 잠깐 걸을래?
포탄 소리가 다소 가까이 들리는 외곽을 따라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걸었다. 여전히 말이 없는 채로, 여전히 어색한 채로. 네이트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말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너에게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할까. 마음 같아선 다 내팽겨치고 머릿속을 전부 까뒤집어 보여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허니비 앞에선 꼴사나운 모습은 죽어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겠지만.
- ...... 허니, 미안해. 그날... 내가 감정이 앞서서 말이 헛나갔어.
- 어... 아닙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 아니야. 네가 잘못한 일도 아니고, 너를 탓할 일도 아니었는데... 내 상황 때문에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어.
- 괜찮습니다. 뭐... 틀린 말도 아니잖습니까. 여긴 군대고 전쟁터인데, 제가 너무 긴장을 풀고 있던 거죠.
- 그런... 아니야, 허니. 넌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나겠지. 상관이니 뭐니, 폼만 잔뜩 잡고서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잖아. 너한테도... 아마 응석을 부리던 건 나였던 거 같아.
생각보다 더 솔직하게 튀어나온 반성에 네이트는 조금 놀랐다. 그리고 그건 허니비도 마찬가지였다. 정신 차리라느니, 각자의 일만 신경쓰자느니 아플만큼 매정한 말로 벽을 세울 때는 언제고 지금은 또 그런 말로 상처를 준게 마음 아파 못 견디겠다는 듯, 이런 늦은 시간에 저를 찾아와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매번 그 템포에 맞추려 드느라 숨이 차오르는 건 저뿐인 것 같아서, 허니비는 왈칵 억울함이 올라오려다가도...
온 얼굴을 미안함으로 물들인 채 저만 바라보는 저 낯을 마주보다 보면, 어느새 그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올라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심지어 저를 낳아준 부모에게도 순순히 굽혀들어간 적이 없던 허니비는 이런 제 행동이 마치 알 수 없는 최면에 걸린 개새끼 같다고 잠시 생각했다. 혹은 죽을 때가 다 되었거나. 후자의 경우가 좀 더 가능성 있는 것 같긴 하다.
- 중위님은 참... 사람을 피곤하게 하시네요.
고작 이런 한마디에 철렁 내려앉는 표정은 왜 숨길 생각을 않는지.
- 모질게 굴거면 그렇게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지나 말던지요. 저는 중위님이 밀어내면 기어 풀린 자동차마냥 밀려나야 하고, 또 중위님이 마음 바뀌어서 사과하면 바보 천치같이 화난 것도 다 풀어야 합니까? 제가 뭐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는 개새낍니까?
- 허니. 그런 거 아니야. 내가...
- 사랑놀음 같은거 하지 말자 해놓고, 혼자서 남편이니 뭐니 소꿉장난 하듯이 굴더니 언제는 또 상관 이상으로 대하지 말라 하고. 저는 중위님이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중위님이 절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더 쉬웠던 것 같아요. 중위님, 네잇. 저는 당신에게 대체 뭐가 돼야 해요? 우린 대체 뭡니까?
날카로운 말보다 금이 간 마음이 먼저였는데, 말을 하고 보니 그 말이 되려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서, 이제 도리어 울고 싶어진 건 허니비였다. 그랬단 말이야.
그런데 왜 당신이 울 것 같은 얼굴인데.
- 허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는... 나는, 네가 나 때문에 부당한 일을 겪는게 싫었을 뿐인데 멍청하게 할 줄 아는 거라곤 화내고 윽박지르는 것밖에 없어서...... 내가 여기서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었던 건 너인데 그런 너한테 자꾸 상처를 주는 내가 또 싫어서져......
화낼 때는 베일 만큼 칼같던 사람이 정작 똑똑히 해야 될 말은 제대로 맺지도 못하고.
- 지금도... 난 너한테 어리광만 부리고 있네...
이렇게 멋없고 찌질하게 사람 마음을 녹이는 것도 재주구나 싶었다.
- 장교들 어리광 부리는 거 뭐 하루이틀입니까.
- 응...?
- 그거 아세요, 중위님 알고보면 엔시노맨보다 더 찌질해요.
- 그 정도야...?
- 엔시노맨도 지가 좋아하는 사람한텐 안 그럴 겁니다.
- 엔... 어?
- 방금 그거 고백 아니었습니까? 아님 말... 뭐야, 그 얼굴은. 설마 몰랐던 건 아니죠?
- 몰... 아니, 방금 안 것 같아.
- 와, 네잇, 당신... 진짜...... 덜떨어져......
그렇게 말하며 저를 바라보는 허니비의 표정이 경악에 차다 못해 애석함까지 엿보였지만, 네이트 픽은 제 발달 수준에 대한 해명은 고사하고 정말 덜떨어진 얼간이라도 되어 버린 건지, 그간 자신의 언행과 속내를 돌이켜 보느라 뇌와 심장 사이를 오가기도 바빴다.
-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뭐, 의도한 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요즘 중위님도 그렇고 스티븐도 그렇고 여러모로 땅굴 파고 있던 건 사실이거든요.
- 스티븐... 로벨?
- 예. 로벨도 요즘 어색하게 굴길래, 제가 또 뭐 잘못했나 싶었거든요.
- 어... 그게...... 말이지......
그 예쁜 눈알을 온 방향으로 굴려대며 말꼬리를 잡아 늘리는 모양새를 보자니 아, 뭘 또 저지른 건 제가 아니라 이 멀대같은 모지리였구나, 라는 걸 직감한 허니비가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쳐다보자, 네이트는 온 두뇌를 풀로 회전시키며 과연 사실대로 말을 하는 게 옳을지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그래도 솔직한 사람이고, 솔직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
- 내가... 로벨한테 말했어. 우리...... 결혼... 한 거.
와르륵 구겨지는 얼굴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솔직한 게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 로벨이랑 너무 가까워 보이는 게 질투나서...... 나도 모르게......
- 어쩐지... 갑자기 나를 무슨 사성장군 대하듯 하더라니...!
- 미안. 이것도 내가...
- 정말 잘 하셨습니다.
- 잘못... 응?
- 아주 자아알 하셨네요. 아예 온 부대에 청첩장이라도 돌리지 그러세요? 아니, 사람이 온갖 똑똑하고 현명한 척은 다 하더니만 생각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소문 나면 군 생활 조지는게 네잇 하나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 허니...
- 따라오지 마요! 한마디라도 더 하면 저 하극상으로 옷 벗을 것 같으니까.
허니비의 저 말이 홧김에 그냥 내지른 소리가 아님을 알기에 멀어지는 뒷모습만 무력하게 바라봐야 했던 네이트는 아무데나 머리를 꿍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그리고 저 살벌한 경고에도 왜인지 자꾸 웃음이 실실 나와서 정말 어디 한 군데가 이상해진 건 아닐까 싶었다. 다행히 머리는 아닌 것 같고, 그보다 조금 아래 어딘가가.
젠킬 스탘 중위님너붕붕 네잇너붕붕 약로벨너붕붕 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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