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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0 00:39
간호
대기, 대기, 그리고 대기. 이제는 듣기만 해도 알러지 반응이 올라올 것만 같은 명령에 혈기 넘치는 군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진저리를 쳤다. 프루티 루디를 중심으로 2호차 주변에 동그랗게 둘러앉은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교양있는 빡빡이들의 다과회였으나 한 발짝만 다가서면 온갖 욕설과 상스러운 대화의 향연이었다. 뭐, 애초에 일반적인 다과회라고 썩 교양이 넘치는 건 아니지만.
- 팹, 나 이거 좀 꼬매줘. 여기 터졌어.
- 루드, 실 있어?
허니비는 옆구리가 대차게 터진 전투복 상의를 들고 파피에게 갔다. 그 모습을 보던 브라보 귀부인들은 꿀벌가 부인께서 많이 피곤하신가, 왜 루디가 아니라 파피에게 부탁을 하실까 하는 얼굴이었으나, 파피는 익숙하게 바늘귀에다 실을 꿰더니 당최 바늘이 보이기는 할까 싶은 손으로 터진 부분을 심지어 참 예쁘게도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그런 파피의 등짝을 등받이삼아 털퍽 주저앉은 허니비는 프루티한 바리스타의 권유도 마다하고 어느새 팔자 좋게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 홀리 쒯!! 이게 뭐람. 난 루디만 게이인줄 알았더니 진짜 게이가 여기 있었잖아!! 샤핀 넌 알고 있었어?
- 진짜 게이들은 텍사스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로데오 경기를 하지. 자기들의 여성성을 숨기려고 오히려 더 마초처럼 구는거 아니겠어?
나는 텍산이 아니고 노스 캐롤라이나 출신인디... 그러나 남부 마초 파피는 속으로만 태클을 걸 뿐 구구절절 해명하지 않았다.
- 다들 여기 있었네. 한동안 더 대기하라는 명령 떨어졌다. 잠 못 잔 사람은 눈 좀 붙이고 나머지는 개인정비 하도록 해.
- 중위님도 잠깐 쉬시다 가세요.
- 엘티도 보셔야 돼요!! 우리 인간사냥꾼 파피가 세탁소 안주인마냥 조신하게 앉아 바느질을 하는 광경을!! 사실 저 둘은 게이부부가 아니라 레즈비언 부부였다고요!!!
- 잠깐 앉았다 가시죠. 저도 오랜만에 루디의 커피맛 좀 보고싶네요.
눈치 빠른 거니가 얼른 너스레를 떠는 덕에 네이트는 못이기는 척 레이의 옆에 앉았다. 아닌 척 내내 파피의 등 뒤를 힐끗대는 시선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이제는 아예 드러눕다시피 기대서 소대장이 온 줄도 모를 정도로 쌔근쌔근 잠든 허니비에 파피는 등딱지 뺏긴 거북이마냥 구부정하게 앉아 앞니로 실을 끊었다.
- 다 됐다. 허니비, 일어나. 잘 거면 니네 차에서 자라.
- 허니가 많이 피곤했나 보네.
루디가 허니비의 어깨를 살살 흔들었다. 허니비가 부스스 일어나자 그제서야 허리를 펼 수 있었던 파피가 전투복 상의를 졸음 가득한 머리 위로 툭 던졌다.
- 야야야 허니비, 씨발 3시방향 캡틴 아메리카 접근중.
- 아잇, 씨발!
- 야, 쟤 숨겨! 파피!
파피는 익숙하게 전투복으로 포장된 머리통을 제 옆구리에 끼웠다. 허니비도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나는 가방이다... 나는 짐짝이다... 그냥 가라 이 개새끼야......
- 제군들, 미안하지만 비 못봤나?
- 못봤습니다?
- 이런... 어디갔지. 혹시 비를 보면 내가 찾는다고 좀 말 해주겠나?
- 제 소대원에게 볼 일이 있으십니까? 전달할 사항이 있다면 저에게 하시면 됩니다.
- 어어... 네잇, 자네도 여기 있었군. 아니 별 건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일이니 신경쓰지 말게.
- ............
- 그럼... 나는 가보겠네...!
맥그로우는 거짓말이라도 들킨 것처럼 뚝딱거리며 꽁지 빠지게 도망을 갔다. 저 멀리서 울 것 같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한 병장의 낯빛이 조금만 덜 불쌍했어도 곧장 맥그로우를 따라가 그를 붙잡고 따질 것 같은 사람처럼 대위의 뒷모습을 주삿바늘 같은 눈으로 쏘아보는 네이트에 브라보 2의 다른 대원들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맥그로우를 향해 중지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파피는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튀겨지는 허니비에 덩달아 놀랐지만 단순히 아직 그가 어려운 탓이려니 생각했다.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는 네이트의 눈빛에 '저러니 애가 이렇게 겁을 먹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투박한 손길로 허니비의 옆구리나 두드려주었다.
- 맥그로우가 왜 허니를 찾는 거지?
거니가 네이트를 대신해 물었다. 허니비는 머리에 덮힌 전투복 상의를 끌어내리다 무언가 머리카락에 걸렸는지 외마디 신음을 뱉었지만, 레이의 침 튀기는 소리에 묻힌 가운데 유일하게 그 소리를 들은 파피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 캡틴 아메리카가 허니비한테 존나게 구애중이다 이 말이죠! 씨발 그걸 허니비랑 막역한 사이인 저희들이 존나게 막아주는 거고. 허니비 저 새끼가 정상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캡틴 아메리카는 너무하잖아요!! 브랫은 그 소식을 듣고 거의 울 뻔했다니까요?!
- 왜, 전에 맥그로우가 포로를 칼로 찌르려던 걸 허니비가 막아준 적이 있잖습니까? 제 딴에는 허니비가 저를 구해줬다 생각했는지 그때부터 허니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닙니다.
- 허니, 그게 사실이야?
네이트의 물음에 우드랜드 포장지에 싸인 머리에서 조그맣게 "네에에..."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누가 들어도 아, 나는 좆됐다 라는 목소리여서 레이가 급하게 허니비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 엘티, 이건 진짜 허니비 잘못 아니에요. 아니 씨발 애초에 그건 전쟁범죄라구요!
- 나도 알아, 레이. 허니, 나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
퍽이나 얘기하기가 쉽겠네요, 중위님... 레이를 표함한 몇몇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보다못한 루디가 나서서 엉킨 부분을 풀어내자 마침내 숨어있던 머리가 개봉되었다. 파피는 "그냥 잘라버리면 안되나?" 하고 점잖게 물었다가 곧바로 루디에게 반려당했다.
- 안 그래도 바쁘신데 유치원생도 아니고 시시콜콜 이런 것까지 말씀드립니까? 그리고 맥그로우와 결혼하느니 차라리 그자식 대가리에 총 쏘고 영창 갈랍니다.
- 그 전에 나한테 먼저 말해줘. 내가 막을 수 있는 선에서 도와줄테니까.
- 알겠습니다, 엘티.
순순한 대답과는 달리 허니비의 표정은 조금만 삐끗하면 앞서 말한 계획을 충실히 실행하고, 면회 온 네이트에게 사식이라도 신청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평소엔 끈기라고는 요만큼도 보이지 않던 캡틴 아메리카는 희한한 데서 집요함을 보이며 끈질기게 허니비를 찾아다녀서, 진짜 네이트에게 부탁이라도 해야 하나 평소같으면 고민조차 하지 않을 생각마저 하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어디서 먹이를 물었는지 케이시 케이섬이 지나가며 넌지시 비아냥대는 소리까지 들은 터라 더 이상 피하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라 여겨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허니비는 하고 싶은 말을 부드럽게 돌려말하는 재주따위는 남들보다도 없는 인물이었고, 그렇다고 튀어나오는 그대로 지껄이자니 상대가 무려 대위라는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 비! 여기 있었구나. 내가 찾는다고 일러뒀는데, 혹시 못 들은 건가?
험비 아래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에 역시나 닥이 가장 먼저 벌떡 일어나 욕을 장전했다. 허니비는 그런 닥을 도로 앉히고서 비장하게 험비 아래로 내려갔다. 그래, 오늘 내가 너를 잡든 네가 나를 잡든 둘 중에 하나는 끝을 보자. 물론 나는 여기서 뒤지기엔 아까울 게 많은 사람이라, 모가지가 부러지는 건 너겠지만.
- 아뇨, 들었습니다. 마침 그쪽으로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허니비는 맥그로우를 데리고 최대한 멀리, 아주 멀리 걸어갔다. 이 꼬라지를 보이면 파병 세 번 치의 놀림감이다 생각하며. 맥그로우는 제 발 닿은 곳이 망나니의 칼 끝인 줄은 아는지 모르는지 볼을 우물거리며 귓가가 빨개진 채 얌전히 따라왔다. 그의 모자란 머릿속에서는 이미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는 중이리라.
- 대위님, 저한테 하달할 명령이나 공적인 용무가 있으신 게 아니라면, 이렇게 절 찾아다니는 건 그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어, 어어? 왜...? 내가 뭐 잘못했어?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대위님이 이러시는거 불편합니다. 그뿐입니까. 이제는 부대 내에서 저에 대한 질 나쁜 소문까지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잘 했다, 허니비. 욕도 안 하고, 소리도 안 지르고 똑똑하게 잘 말했다. 비록 소문에 대한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긴 했지만. 이라크 땅바닥 위에선, 적어도 제2중대만큼은 모두들 같은 마음으로 캡틴 아메리카와 엮여버린 허니비를 안쓰러워했다. 기껏 계급장 지켜줬더니 애 인생을 조지려 든다면서. 그래도 이만하면 대위도 알아들었을 테니, 큰 소란 없이 이 불쾌감만 남은 애정공세를 끝낼 수 있을 거라 허니비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위의 말은 정말 오랜만에 주먹을 쥐게 했다.
- 하지만, 비 너는 날 구해줬잖아... 지난 번, 그 밤에 말이야. 너도 나에게 마음이 있어서 날 도와준 거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했어. 다른 애들은 날 그렇게 대하지 않아. 비, 너가 유일했어. 유일하게 날...
- 저 이미 결혼했습니다아아악!!!!!!!!!!!!
- ......어? 어, 어, 언제...
- 지난 파병 끝나고요.
- 난 못 들었는데?
- 말 안했으니까요. 그쪽도 군인이라.
허니비의 폭탄발언에 맥그로우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가 싶더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똑 떨어질 듯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아련하게 허니비를 바라봤다.
- 비... 아니, 허니... 그 사람... 사랑해...?
- 사랑하니까 결혼까지 했겠죠?
허니비는 인생 최대치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비록 뒷짐 진 손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얘졌다 하더라도 그걸 여지껏 휘두르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초인적인 인내력인가. 그 와중에 맥그로우는 여전히 혼자 눈물의 이별쑈를 진행중이었고, 그가 눈물나는 사고 회로를 거쳐 다시한 번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 제 아내에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습니까? ...... 맥그로우, 대위?
갑자기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허니비도, 맥그로우 대위도 엔시노맨 같은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곳엔
생전 처음 보는 문짝 하나가 다가와 있었고, 그 문짝 뒤에는
"진짜" 남편이 존나게 빡친 얼굴로 서 있었다.
다임 계급은 아무튼 캡아보다는 높은 걸로,,
젠킬 스탘 중위님너붕붕 네잇너붕붕 약가렛너붕붕 약다임너붕붕
대기, 대기, 그리고 대기. 이제는 듣기만 해도 알러지 반응이 올라올 것만 같은 명령에 혈기 넘치는 군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진저리를 쳤다. 프루티 루디를 중심으로 2호차 주변에 동그랗게 둘러앉은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교양있는 빡빡이들의 다과회였으나 한 발짝만 다가서면 온갖 욕설과 상스러운 대화의 향연이었다. 뭐, 애초에 일반적인 다과회라고 썩 교양이 넘치는 건 아니지만.
- 팹, 나 이거 좀 꼬매줘. 여기 터졌어.
- 루드, 실 있어?
허니비는 옆구리가 대차게 터진 전투복 상의를 들고 파피에게 갔다. 그 모습을 보던 브라보 귀부인들은 꿀벌가 부인께서 많이 피곤하신가, 왜 루디가 아니라 파피에게 부탁을 하실까 하는 얼굴이었으나, 파피는 익숙하게 바늘귀에다 실을 꿰더니 당최 바늘이 보이기는 할까 싶은 손으로 터진 부분을 심지어 참 예쁘게도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그런 파피의 등짝을 등받이삼아 털퍽 주저앉은 허니비는 프루티한 바리스타의 권유도 마다하고 어느새 팔자 좋게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 홀리 쒯!! 이게 뭐람. 난 루디만 게이인줄 알았더니 진짜 게이가 여기 있었잖아!! 샤핀 넌 알고 있었어?
- 진짜 게이들은 텍사스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로데오 경기를 하지. 자기들의 여성성을 숨기려고 오히려 더 마초처럼 구는거 아니겠어?
나는 텍산이 아니고 노스 캐롤라이나 출신인디... 그러나 남부 마초 파피는 속으로만 태클을 걸 뿐 구구절절 해명하지 않았다.
- 다들 여기 있었네. 한동안 더 대기하라는 명령 떨어졌다. 잠 못 잔 사람은 눈 좀 붙이고 나머지는 개인정비 하도록 해.
- 중위님도 잠깐 쉬시다 가세요.
- 엘티도 보셔야 돼요!! 우리 인간사냥꾼 파피가 세탁소 안주인마냥 조신하게 앉아 바느질을 하는 광경을!! 사실 저 둘은 게이부부가 아니라 레즈비언 부부였다고요!!!
- 잠깐 앉았다 가시죠. 저도 오랜만에 루디의 커피맛 좀 보고싶네요.
눈치 빠른 거니가 얼른 너스레를 떠는 덕에 네이트는 못이기는 척 레이의 옆에 앉았다. 아닌 척 내내 파피의 등 뒤를 힐끗대는 시선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이제는 아예 드러눕다시피 기대서 소대장이 온 줄도 모를 정도로 쌔근쌔근 잠든 허니비에 파피는 등딱지 뺏긴 거북이마냥 구부정하게 앉아 앞니로 실을 끊었다.
- 다 됐다. 허니비, 일어나. 잘 거면 니네 차에서 자라.
- 허니가 많이 피곤했나 보네.
루디가 허니비의 어깨를 살살 흔들었다. 허니비가 부스스 일어나자 그제서야 허리를 펼 수 있었던 파피가 전투복 상의를 졸음 가득한 머리 위로 툭 던졌다.
- 야야야 허니비, 씨발 3시방향 캡틴 아메리카 접근중.
- 아잇, 씨발!
- 야, 쟤 숨겨! 파피!
파피는 익숙하게 전투복으로 포장된 머리통을 제 옆구리에 끼웠다. 허니비도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나는 가방이다... 나는 짐짝이다... 그냥 가라 이 개새끼야......
- 제군들, 미안하지만 비 못봤나?
- 못봤습니다?
- 이런... 어디갔지. 혹시 비를 보면 내가 찾는다고 좀 말 해주겠나?
- 제 소대원에게 볼 일이 있으십니까? 전달할 사항이 있다면 저에게 하시면 됩니다.
- 어어... 네잇, 자네도 여기 있었군. 아니 별 건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일이니 신경쓰지 말게.
- ............
- 그럼... 나는 가보겠네...!
맥그로우는 거짓말이라도 들킨 것처럼 뚝딱거리며 꽁지 빠지게 도망을 갔다. 저 멀리서 울 것 같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한 병장의 낯빛이 조금만 덜 불쌍했어도 곧장 맥그로우를 따라가 그를 붙잡고 따질 것 같은 사람처럼 대위의 뒷모습을 주삿바늘 같은 눈으로 쏘아보는 네이트에 브라보 2의 다른 대원들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맥그로우를 향해 중지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파피는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튀겨지는 허니비에 덩달아 놀랐지만 단순히 아직 그가 어려운 탓이려니 생각했다.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는 네이트의 눈빛에 '저러니 애가 이렇게 겁을 먹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투박한 손길로 허니비의 옆구리나 두드려주었다.
- 맥그로우가 왜 허니를 찾는 거지?
거니가 네이트를 대신해 물었다. 허니비는 머리에 덮힌 전투복 상의를 끌어내리다 무언가 머리카락에 걸렸는지 외마디 신음을 뱉었지만, 레이의 침 튀기는 소리에 묻힌 가운데 유일하게 그 소리를 들은 파피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 캡틴 아메리카가 허니비한테 존나게 구애중이다 이 말이죠! 씨발 그걸 허니비랑 막역한 사이인 저희들이 존나게 막아주는 거고. 허니비 저 새끼가 정상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캡틴 아메리카는 너무하잖아요!! 브랫은 그 소식을 듣고 거의 울 뻔했다니까요?!
- 왜, 전에 맥그로우가 포로를 칼로 찌르려던 걸 허니비가 막아준 적이 있잖습니까? 제 딴에는 허니비가 저를 구해줬다 생각했는지 그때부터 허니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닙니다.
- 허니, 그게 사실이야?
네이트의 물음에 우드랜드 포장지에 싸인 머리에서 조그맣게 "네에에..."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누가 들어도 아, 나는 좆됐다 라는 목소리여서 레이가 급하게 허니비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 엘티, 이건 진짜 허니비 잘못 아니에요. 아니 씨발 애초에 그건 전쟁범죄라구요!
- 나도 알아, 레이. 허니, 나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
퍽이나 얘기하기가 쉽겠네요, 중위님... 레이를 표함한 몇몇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보다못한 루디가 나서서 엉킨 부분을 풀어내자 마침내 숨어있던 머리가 개봉되었다. 파피는 "그냥 잘라버리면 안되나?" 하고 점잖게 물었다가 곧바로 루디에게 반려당했다.
- 안 그래도 바쁘신데 유치원생도 아니고 시시콜콜 이런 것까지 말씀드립니까? 그리고 맥그로우와 결혼하느니 차라리 그자식 대가리에 총 쏘고 영창 갈랍니다.
- 그 전에 나한테 먼저 말해줘. 내가 막을 수 있는 선에서 도와줄테니까.
- 알겠습니다, 엘티.
순순한 대답과는 달리 허니비의 표정은 조금만 삐끗하면 앞서 말한 계획을 충실히 실행하고, 면회 온 네이트에게 사식이라도 신청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평소엔 끈기라고는 요만큼도 보이지 않던 캡틴 아메리카는 희한한 데서 집요함을 보이며 끈질기게 허니비를 찾아다녀서, 진짜 네이트에게 부탁이라도 해야 하나 평소같으면 고민조차 하지 않을 생각마저 하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어디서 먹이를 물었는지 케이시 케이섬이 지나가며 넌지시 비아냥대는 소리까지 들은 터라 더 이상 피하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라 여겨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허니비는 하고 싶은 말을 부드럽게 돌려말하는 재주따위는 남들보다도 없는 인물이었고, 그렇다고 튀어나오는 그대로 지껄이자니 상대가 무려 대위라는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 비! 여기 있었구나. 내가 찾는다고 일러뒀는데, 혹시 못 들은 건가?
험비 아래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에 역시나 닥이 가장 먼저 벌떡 일어나 욕을 장전했다. 허니비는 그런 닥을 도로 앉히고서 비장하게 험비 아래로 내려갔다. 그래, 오늘 내가 너를 잡든 네가 나를 잡든 둘 중에 하나는 끝을 보자. 물론 나는 여기서 뒤지기엔 아까울 게 많은 사람이라, 모가지가 부러지는 건 너겠지만.
- 아뇨, 들었습니다. 마침 그쪽으로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허니비는 맥그로우를 데리고 최대한 멀리, 아주 멀리 걸어갔다. 이 꼬라지를 보이면 파병 세 번 치의 놀림감이다 생각하며. 맥그로우는 제 발 닿은 곳이 망나니의 칼 끝인 줄은 아는지 모르는지 볼을 우물거리며 귓가가 빨개진 채 얌전히 따라왔다. 그의 모자란 머릿속에서는 이미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는 중이리라.
- 대위님, 저한테 하달할 명령이나 공적인 용무가 있으신 게 아니라면, 이렇게 절 찾아다니는 건 그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어, 어어? 왜...? 내가 뭐 잘못했어?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대위님이 이러시는거 불편합니다. 그뿐입니까. 이제는 부대 내에서 저에 대한 질 나쁜 소문까지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잘 했다, 허니비. 욕도 안 하고, 소리도 안 지르고 똑똑하게 잘 말했다. 비록 소문에 대한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긴 했지만. 이라크 땅바닥 위에선, 적어도 제2중대만큼은 모두들 같은 마음으로 캡틴 아메리카와 엮여버린 허니비를 안쓰러워했다. 기껏 계급장 지켜줬더니 애 인생을 조지려 든다면서. 그래도 이만하면 대위도 알아들었을 테니, 큰 소란 없이 이 불쾌감만 남은 애정공세를 끝낼 수 있을 거라 허니비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위의 말은 정말 오랜만에 주먹을 쥐게 했다.
- 하지만, 비 너는 날 구해줬잖아... 지난 번, 그 밤에 말이야. 너도 나에게 마음이 있어서 날 도와준 거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했어. 다른 애들은 날 그렇게 대하지 않아. 비, 너가 유일했어. 유일하게 날...
- 저 이미 결혼했습니다아아악!!!!!!!!!!!!
- ......어? 어, 어, 언제...
- 지난 파병 끝나고요.
- 난 못 들었는데?
- 말 안했으니까요. 그쪽도 군인이라.
허니비의 폭탄발언에 맥그로우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가 싶더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똑 떨어질 듯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아련하게 허니비를 바라봤다.
- 비... 아니, 허니... 그 사람... 사랑해...?
- 사랑하니까 결혼까지 했겠죠?
허니비는 인생 최대치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비록 뒷짐 진 손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얘졌다 하더라도 그걸 여지껏 휘두르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초인적인 인내력인가. 그 와중에 맥그로우는 여전히 혼자 눈물의 이별쑈를 진행중이었고, 그가 눈물나는 사고 회로를 거쳐 다시한 번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 제 아내에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습니까? ...... 맥그로우, 대위?
갑자기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허니비도, 맥그로우 대위도 엔시노맨 같은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곳엔
생전 처음 보는 문짝 하나가 다가와 있었고, 그 문짝 뒤에는
"진짜" 남편이 존나게 빡친 얼굴로 서 있었다.
다임 계급은 아무튼 캡아보다는 높은 걸로,,
젠킬 스탘 중위님너붕붕 네잇너붕붕 약가렛너붕붕 약다임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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