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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9 16:20

 

읽어줘서 고마오. 댓글도 너무 고맙.
생각해보면 앤도 참 불쌍한...웅앵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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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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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허니는 손을 뻗어 협탁 서랍을 열어 잘 개어진 손수건을 꺼내 보좌관님께 건넸어. 

 

"여러모로 감사드려요."

".......아닙니다. 여사님"

"의원님이 오늘 왜 그러셨는지 보좌관님은 아시죠..?"

허니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보좌관님은 고개를 끄덕였어. 여사님께서 물어보시면답을 해 드려야 하는데 뭐라고 해 드려야 할지 고민을 했겠지. 하지만 허니는 묻지 않았어. 보좌관님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치료를 받으셔야 하고 뭐 그런 문제인지만 알려주시면 되는데.."

"의원님께서 병원 방문을 원치 않으셔서 지금껏 그냥.."

"방치 했던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고집불통 상관을 만나셔서 고생이 많으세요. 나중에 기회되면 제가 한번 여쭤볼게요."


 

보좌관은 의원님의 문제가 앤과 관련 되어있음을 당연히 알았지만 더이상 말을 해 줄 수 있는것들이 없었겠지. 그리고 의원님이 그걸 있는 그대로 여사님께 말씀 하실까 의구심도 들었을 거야. 시퍼렇게 물들어 있는 허니의 발목을 응시하던 보좌관은 한숨을 짧게 쉬었겠지.

 

 

"제가 어떻게든 거기까지 갔어야 했는데 너무 죄송합니다."

"의원님이나 보좌관님이나 두분 다 왜 자꾸 미안하다고만 하세요. 괜찮아요."

".........."

"식사는 하셨어요?"

"네?"

"저 많이 배고픈데, 다같이 저녁이나 먹어요!"

 

 

죄스러운 마음에 허기짐을 느끼지 못 했던 보좌관은 허니의 엉뚱한 말에 저녁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다는걸 깨달았겠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을 하는 여사님께 차마 따로 먹겠다는 소리는 하지 못 했을거야.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니를 부축하다 '아차' 싶었겠지. 자연스레 허니를 부축하고 안아올리고.. 생각보다 익숙해진 자신의 모습에 당황했음. 거기다 지금은 밖에 허니의 남편인 의원님이 계시는데.. 보좌관은 잠시만 기다리시라는 말 한마디를 남겨놓고 방을 빠져 나왔어.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의원님은 누가봐도 초조해 보였어. 보좌관은 의원님 곁에 섰지. 

 

 

"여사님께서 허기지시다고 저녁을 드시고싶어하십니다"

"어..어 그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제가 1층으로 내려가서 식사 준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원님은 여사님을.."

"알겠어."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지.

 

"가렛."

뒤에서 저를 부르는 의원님의 소리에 다시 뒤를 돌았겠지. 답지 않게 눈동자가 떨리시는 의원님은 누가 보더라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으셨어. 

 

 

"네 말씀하십시오."

"저녁먹고... 술 한잔 할래?"

보좌관은 잠시 생각했어. 요 근래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으셨는데.. 그래도 편하게 술을 마실 상대가 의원님에겐 자기자신뿐이라는걸 알았기에 잠시 숨을 고르고는 고개를 끄덕였지. 

 

"네, 알겠습니다"

 

 

 

 

 

 

 

 

 

 

 

 

의원님은 한사코 거절하는 자신의 아내를 무시하고 안아 올렸어. 다리가 불편해 바르작 거릴 수도 없는 허니는 민망한 얼굴을 하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려댔겠지. 1층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어. 배가 많이 고팠는지 허니의 뱃속에선 음식을 내놓으라며 아우성을 쳐댔어. 꼬르륵 소리에 민망해진 허니는 괜히 위원님의 두껍고 매끄러운 목을 힘줘 쥐었어.

 

"숨 막힙니다"

"아 죄송해요."

 

거 참, 뭐 그리 세게 당겼다고.. 허니는 괜히 입맛만 다셨을거야. 보좌관님이 먼저 앉아 계셨어. 의원님은 편하게 앉아있는 보좌관을 한번 쓱 쳐다보시고는 허니를 내려놓고 앉혔겠지. 그리고 자신도 제 자리에 앉아 정갈하게 담겨 있는 음식을 눈에 담았어.



 

"아 배가 너무 고팠는데, 아주머니 죄송해요. 미리 말씀을 못 드렸네요."

"아닙니다. 여사님 깨시면 분명 배고프다고 하실 것같아서 미리 만들어 뒀어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사라로 인해 조금 더 민망해진 허니는 양 볼을 붉게 물들이고는 스프부터 떠 먹었겠지.

 

"제가 좀 많이 먹죠.."

"많이 먹어야 빨리 낫지..","많이 드셔야겠습니다."

응...? 허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원님과 보좌관님이 동시에 허니를 보며 말을 해왔어. 이 무슨.. 의원님과 보좌관님 두 분도 당황한듯 헛기침을 해대셨지. 허니는 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 꼭 두명의 오빠들이 생긴것같았으니까. 

 

 

"두 분 정말 닮았어요. 언제부터 알고 지낸 사이세요..?"

 

 

허니는 지금 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생각했지만 그 두 사람은 아니었어.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눈치 없는 허니는 답을 기다리는 듯 반짝거리는 눈빛을 하고는 번갈아 쳐다 보았지.

 

 

정치행정학을 전공한 의원님과 보좌관님은 같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열리는 지역 내 청년 정치 토론회에서 만났을거야. 물론 같은 정치성향은 아니었지만 둘 다 중도에 가까웠기 때문에 비교적 잘 맞았겠지. 상대진영에서 열띤 토론을 하고 내려오면 또 얼제 서로 으르렁 댔냐는듯 친하게 지냈어. 정치를 좋아했지만 나서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보좌관은 졸업 후 노동당 쪽의 보좌관으로 경력을 쌓아오다 국회에 진출하기를 희망했던 찰리의 권유에 그의 밑으로 들어갔겠지. 보수당 소속에다가 부잣집 도련님이긴 했으나 누구보다 국민들을 아끼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당 내에서 고군분투하는 찰리를 보좌관은 진심으로 아끼고 존경했을거야. 함께 해 온 시간이 길었던 만큼, 오랜시간에 걸친 찰리와 앤의 관계 변화도 보좌관은 다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더더욱 이 결혼을 반대했는지도 몰라. 

 

 

허니만 유쾌하고 즐거웠던 저녁식사시간이 끝나고, 그릇을 정리하던 허니는 두 남자에 의해서 저지되었어. 그리고는 남편인 의원님께 또 안긴 상태로 2층으로 올라갔겠지. 보좌관은 아까 의원님과 함께 했던 약속을 기억했어. 익숙한듯 창고로 가 와인을 한병 꺼내고 잔 두개와 냉장고에서 치즈따위의 주전부리들을 챙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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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괜찮은데... 내려 주시면 안될까요."


 

의원님은 멋쩍게 미소를 지으며 허니를 내려놓았어. 허니는 의원님이 저를 안아 올려 이동을 시켜주는 지금 이 상태가 사실 나쁘지 않았어. 오히려 너무 황홀했지. 하지만 점점 의원님의 향기가 익숙해지니까 상대적으로 '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한가득 들었을거야. 어찌됐는 허니는 의원님과 '앤'과의 관계를 수긍하고 이 결혼을 받아들이게 된거고, 혼후계약서에 보더라도 절대 찰리의 사생활에는 관심을 둬서는 안되었기에 마음이 불편했겠지. 인간이란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생길 수록 그 상대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지는게 당연한 이치니까. 허니는 최대한 의원님과의 신체적 접촉이라도 피하고 싶었을거야. 

거기다가 지금 의원님의 바지 호주머니안에서 미친듯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더더욱 견고한 성을 쌓게 만들었어. 

 

"의원님, 전화 받으셔야 될 것 같은데요."

허니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의원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하고 절뚝거리며 방으로 들어왔겠지. 그리고 문가에 서서 본의아니게 의원님의 옷깃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거야.


 

"어...앤"



 

우리 의원님, 전화는 좀 다른곳 가서 받으시거나, 받으시더라도 이름은 말씀하지 마시지... 허니는 씁쓸하게 다시 절뚝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고 방 안에 있는 욕실로 향했겠지. 나름 이유 없는 분노의 양치질을 하고선 침대 위로 몸을 뉘였을거야. 짜증이 나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 아무것도 아닌데 왜 화가 나는지. 허니는 시원한 맥주 한모금이 너무 고팠지만 빌어먹을 다리 때문에 당분간은 참아야 했어. 다리 다 나으면 친구들을 불러 한판 거하게 마실 게획을 세우며 씁쓸한 마음을 달랬지.

 

 

 

 

 

 

 

 

 

 



 

 

-내가 어디까지 참고 견뎌야해?

"....."

-기사는 둘째치고 전화도 한 통 없는데

"미안해 경황이 없었어"

-경황이 없으면서 잘난 아내분과는... 하... 너 결혼한지 이제 한달이야. 벌써 이렇게 하면 안되지

"시간이 지나면 되는거고?"

-뭐?

"앤, 오늘 내가 무슨일을 겪었는지 알아?"

-읊어줘?

"앤."

-허니 비 허냄과 스톤헨지 가셨잖아. 신혼을 즐기셨겠지.

"앤."

-불난곳에 가서 시찰 다니시고, 타이밍 맞게 또 여사님이 쓰러지시고...? 걔는 왜 쓰러졌어? 그것도 쇼 한거야?

"말 조심해"

-내가 지금 왜 눈치보면서 너한테 전화를 걸고 너랑 만나야 하는건데. 난 이해가 안가

"네가 원한거잖아"

-뭐?

"내 결혼."

-그래서 지금 이게 옳다는거야?

"아니. 아내는 방에 있는데, 숨겨진 애인이랑 통화를 하고 있는 내가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않은거지"

-찰리, 네가 나한테..어떻게..

"또 그소리 하려고? 앤, 나 진짜 오늘 너무 피곤하거든.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찰리...!

"끊어."

 

 

 

 

 

 

 

 

 

 

 

 

 

2층 허니의 방이 보이는 정원 한 켠에 위치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보좌관은 의원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어. 생각보다 늦어지시네. 풀 내음 섞인 선선한 바람이 보좌관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을거야. 여사님처럼.. 보좌관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여사님의 싱그러운 웃음 소리에 당황했겠지. 사실 보좌관이 처음 봤던 여사님의 모습은 결혼식장에서의 굳어있는 새신부가 아니라 친구들과 브런치를 즐기시던 모습이었어. '앤'이 가지고 온 프로필을 손에 들고 먼저 시찰을 나온 보좌관은  오전 11시쯤 크지 않은 건물에서 사원증을 맨 체 빠른 걸음으로 나오는 허니의 모습을 기억해. 회사 앞 누구나 다 알법한 카페로 들어가 샌드위치를 한손으로 잡고 우걱우걱 먹으며 미리 기다리고 있던 친구 둘과 시끌벅적 이야기를 하며 짧은 시간이지만 즐겁게 보내던 그 모습이 참 밝아 보였어. 화려하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하나로 질끈 묶은 포니테일도, 멋없는 뺑뺑이 안경도 꾸밈없는 모습이 생각보다 이뻐보였지. 그때 그런 모습을 기억하던 보좌관은 결혼식장에서 상기된 상태로 부케를 들고 뻣뻣하게 서 있던 허니가 낯설었을거야. 화려한 메이크업을 하고 희고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은 허니의 모습보단 무채색의 슬랙스와 낮은 단화를 신고 흰 셔츠위에 사원증을 매고 있던 그 모습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겠지...

 

 

"뭐해"

"아, 아닙니다."

"아무도 없잖아. 그만 말 놔 답답하다.."

 

의원님은 '사라가..' 하고 말씀하시며 음식이 놓은 그릇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을거야. 조금 상기된 얼굴의 의원님이었지만 보좌관은 이미 허니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다보니 그런것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둘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서로 달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 없었을거야. 정원 중간에 위치한 크지 않은 규모의 수영장에 바람에 날린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그 순간, 정적을 깨버린건 의원님이었어.

 

 

"네가 봐도 내가 참 바보같지.?"

"아닙니다"

"가렛"

"그래, 멍청하고 바보같고 미련해보인다.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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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가렛의 말에 의원님인 찰리는 푸스스 웃었어. 찰랑거리는 붉은빛 와인을 입에 머금고는 한숨을 푹 쉬었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되는 일들 뿐인데, 이성적인 가렛의 눈엔 어떻게 보일까 부끄러웠어. 자신의 모든것을 알고 있는 가렛을 보기 민망했겠지. 그럼에도 가렛은 찰리가 제일 믿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다시 둘은 아무말이 없었어. 풀벌레의 소리와 술을 따르는 소리만 정원을 가득 채웠을거야. 찰리는 크게 한 숨을 쉬었어. 그리고는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지.

 

 

"없어진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됐나봐"

"지금은 좀 괜찮아?"

"아니, 지금도 두근거려"

"앤이 또 쓸모없는 소릴 했겠지...."

 

부정적인 어투로 내뱉는 가렛을 보며 미소를 지었어. 그래. 가렛이 말한대로, 앤의 그 실언 이후로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둔 그 날의 기억들이 자꾸만 헤집었거든. 가슴이 답답하고 그 날, 그 때처럼 숨이 차 올랐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더 앤을 보기가 꺼려졌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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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할때도 됐지, 찰리."

"응..?"

"네 잘못이 아니야"

"알아"

"사고 이후로 지금까지 앤을 후원하고 있는건 너희 부모님이고, 결혼을 거부한건 앤이잖아."

"싫겠지. 답답한 생활이"

"허니 비는 이 생활이 좋아서 너랑 결혼했을까..?"

"회사를 살리려고..? 부모님이 원하셨으니까...?"

"앤은 그정도가 안되는거야. 너의 대한 마음이."

"가렛"

"너도 알잖아. 앤은 널 사랑하는게 아니라 그냥 널 갖고 싶어 한다는거."

 

 

찰리는 두 눈을 찡긋 했어. 가렛의 말이 맞았거든. 어릴때부터 졸졸 따라다닌 찰리를 앤은 항상 귀찮아하고 거부했지. 찰리가 주던 선물들을 주변 친구들한테 나누어 줄 정도로 앤은 찰리를 그저 귀찮은 동생으로만 생각했었으니까. 그날 그 일이 있은 이후에도 아버지를 잃은 충격에 찰리를 나무라고 원망만 하던 앤은 어느 순간부터 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거야. 그때가 아마 찰리가 학부를 졸업하는 그 어디쯤 이었겠지. 

 

"결정은 네가 하는게 맞는데, 난 허니 비가 참 아깝다. 지금 너한테.."

 

가렛은 입꼬리를 올렸어. 그리고 채워진 와인잔을 입에 털어 넣었지.

 

 

"너 지금 그말 위험한거 알지?"

 

 

짐짓 으름장을 놓는 찰리의 낮은 목소리에도 가렛은 동하지 않았어. 그저 웃기만 했지. 술에 취해서 일까. 아님 밤공기에 취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제 막 꺼져버린 허니의 방 조명때문일까. 그 말을 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가렛은 그저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어. 시시각각 변하는 찰리의 얼굴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이야.

 

 

 

 

 

 

 

 

 

 

 

 

 

 

 

 

저명한 언론사 뿐만 아니라 가십지까지 허니의 서민적인 모습에 긍정적인 표현을 아끼지 않았어. 그와 더불어 찰리 허냄과 보수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었지. 역시 찰리가 예상한대로 허니는 자신의 정치인생에 분명 도움이 되는 존재였어. 비교적 평범한 출신도 그렇고, 소박한 옷차림부터 털털한 성격까지 찰리의 까칠함을 덮고도 남을만큼 허니 비 허냄의 호감도가 날로갈수록 올라가고 있었겠지. 이번 찰리가 출마할 지역구는 상대적으로 일반 시민들이 밀집해있는 곳이고, 전통적으로 보수당이 한번도 이긴 적 없는 지역이었기에 지금 허니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했어. 거기다가 연애 결혼이 아님에도 생각보다 러블리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왔기 때문에 이번 일은 결혼도 '정치쇼'라던 상대 당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의 흠집내기는 멈췄겠지. 찰리는 이른 아침 출근길부터 당 내의 연로한 정치인들에게 아내를 잘 얻었다는 속이 뻔한 칭찬들을 들었을거야.

 

앤이 터키에서 전시회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 찰리는 본의아니게 착실한 남편의 모습을 허니에게 보였어. 허니는 그게 전부 다 앤이 부재이기 때문에 있는 일임을 알고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은 감추기가 힘들었지. 물론 스킨십이 늘어나거나 같은 방에서 자는 그런 일들은 절대 없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것 자체가 허니에겐 충분한 기쁨이었어. 매일 밤 퇴근하는 찰리의 겉옷과 타이를 받아 드레스룸에 걸어 두는것도, 서재에 밀크티와 간단한 다과를 챙겨가는 것도 허니의 하나의 일상이 되어갔어. 그리고, 이제 의원님이 아닌 찰리로 그를 부르는게 익숙했어..

 

 

 

 

 

 

발목도 다 나았고, 날씨도 좋고, 찰리가 사온 씨앗들이 싹을 틔운 그날. 허니는 가렛이 보았던 그 친구 둘을 소집했지.
오늘이다. 알콜을 섭취해야 할 때가 된거야!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텃밭에 물을 주던 허니의 모습을 사라는 나름 흐뭇하게 지켜보았어.

 

"허니 좋은일 있으신가봐요"

"네! 오늘 친구들을 보러 가기로 했거든요."

"좋겠네요."

"아 근데 사라는 언제 고향에 가세요..?"

 

허니는 결혼 후 지금까지 절대 집을 비우지 않았던 사라가 마음에 걸렸을거야. 분명 사라도 허니처럼 나가고 싶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 그래서 허니는 제 옆에 앉아서 앙증맞게 피어오른 싹들을 구경하던 사라에게 물었겠지.

 

"원래 일년에 세번 분기별마다 이주일간 휴가를 주세요. "

"근데요..?"

"이번 분기는 의원님이 바쁘셨는지 잊어버리신것 같더라구요"

"어머. 제가 다 죄송하네요. 짧게라도 고향에 다녀오시는건 어떠세요?"

"안그래도 고향에 계시는 이모님이 많이 편찮으시다고 하셔서 조만간 가봐야겠단 생각은 했어요"

"아 빨리 가보셔야겠네요. 사실 음식은 저도 대충 뭐 만들어 먹기도 하고, 요즘은 의원님도 집에 신경을 많이 써주시니까 짧게라도 다녀오세요. 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허니는 입술까지 오므리며 사라에게 말했어. 거의 부탁 수준으로 애원했음. 저 때문에 답답한 집에 계속 있는건가 싶어 너무 많이 미안했던 차에 이모님이 편찮으시다니... 마음이 더 안좋아졌을거야. 사라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겠지. 허니는 당장이라도 가시는게 좋겠다며 흙이 묻은 손을 털고 사라의 손을 잡아 이끌었어. 짐을 싸는걸 돕겠다며 한사코 따라오는 허니를 거절하기도 뭣 했을거야. 왜냐면 진짜 고향을 가봐야 했거든. 사라가 아니더라도 집 안에 젊은 사용인들은 출퇴근을 했고, 요즘들어 집에 곧 잘 들어오시는 의원님이시니 이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도 했겠지. 짐이라고 해봤자 옷 몇가지가 끝인 사라는 갑작스럽게 결정된 휴가에도 준비를 끝낼 수 있었어. 

 

이제 찰리한테 먼저 연락을 해도 되는 것 같다고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조금씩 변해가는 의원님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쨌는지 의원님께 허락을 받았다며 당당하게 사라에게 휴가를 쓰라 큰소리로 외치는 안주인인 여사님이 귀여워 보이기도 했지. 이제 다리도 다 나았으니 괜찮겠지. 사라는 답지 않게 급한 휴가를 쓰고 집을 나섰어.

 

 

 

 

 

 

 

 

 

 

 

 

 

 

 

"그래서 오늘도 혼자 집에 있는다고?"

"아냐. 이제 의원님 집에 자주 들어오신다고"

"그나저나 너 진짜 유명인사 됐는데 이렇게 맥주를 고래처럼 퍼 마셔도 괜찮?"


 

낄낄거리며 말을 하는 호넷에게 허니는 조용히 귓가에 대고 욕을 해주었어. 물론 걱정이 되긴 했지만 찰리의 허락을 받기도 했고, 화장 하나 안 한 맨 얼굴에 뺑뺑이 안경까지 쓰고 있는데 누가 알아볼까 싶었겠지. 거기다가 여긴 의원님의 지역구도 아니었고. 결혼 후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시간을 보냈기에 마음이 평소보다 들떴을거야. 물론 친구들에게는 의원님과의 결혼이 모든게 계약에 의한 것이었고, 의원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가 다 아는 그 서양화가 '앤' 이라는걸 절대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말이야.

 

그때 호넷이 알딸딸하게 취해서 텐션이 올라가 있는 허니에게 지나가는 말로 친구 남편이 보고싶다고 했겠지. 

 

"야, 얘 남편님이 우리처럼 한가한 줄 알아???"

 

범블이 호넷을 나무랐어. 허니도 당연히 알았지. 의원님은 항상 바쁘시다는걸. 그래도 한번쯤은 친구들에게 소개 해 줘도 되지 않을까. 거기다 요즘엔 집에 곧 잘 들어오시니까 지금쯤 퇴근 하시지 않으셨을까.... 술에 취해서인지 뭔지 허니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겠지.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의원님께 문자를 보냈어.

 

'찰리, 혹시 퇴근 했어요?'

 

호넷과 범블은 결혼식때 보고 너무 잘생겨서 죽을뻔 했느니, 그 옆에 키 큰 사람은 또 누구냐며 잘생긴 애 옆에 잘생긴 애. 온갖 호들갑을 떨어대며 허니를 부추겼을거야. 허니는 괜스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휴대폰 액정만 응시했어. 왠일인지 의원님의 답이 없었음. 요즘은 그대로 빨리 답을 해 주셨는데...

 

"왜, 안오신대?"

"아니.. 답이 없네. 많이 바쁘신가봐."

 

허니는 애먼 술잔만 들이켰겠지. 

 

"야 얘 얼굴 썩어간다. 맥주나 더 갖고오렴 호넷~"

 

친구들의 농담에도 허니는 쉽게 웃질 못 했어. 맥주로 가득 채워진 잔을 물끄러미 보던 허니는 무슨 결심을 한건지 찰리에게 전화를 걸었어. 결혼하고 처음으로 전화를 건 자신의 모습에 많이 놀랐지만 이건 전적으로 전부 알콜의 탓이니까 넘어가주지 않을까 나름 기대도 했겠지, 시끌벅적한 펍이 일순간 고요해지면서 생전 처음 듣는 의원님의 신호음만이 허니를 가득 채웠어. 어느정도 흘렀을까. 바쁘신가보다 생각할때즈음 전화를 받았어.

 

 

"찰리. 바쁜데 연락해서 너무 미안해요. 여기 A 지역에 있는 H 펍인데 친구들이랑 같이 있거든요. 혹시 데리러 와줄 수 있을"

-철이 없는거야 눈치가 없는거야

 

생경한 여성의 낯선 목소리에 허니는 술이 깰만큼 정신이 확 들었어. 휴대폰을 다시 확인했지. 분명 의원님의 번호가 맞는데....

 

"여보세요..?"

 

허니는 시끄러운 펍을 뒤로 하고 구석진 곳으로 황급히 걸음을 옮겼어. 그리고 다시 전화기에 대고 말을 했지.

 

"혹시 찰리 허냄 의원님 휴대폰 아닌가요"

​-맞는데요.

"그..그럼."

-지금 샤워하러 들어갔는데... 나올때까지 나랑 통화할래요? 허니?

"혹시.."

- 앤 너 지금 뭐해.

 

 

 

허니는 통화를 종료했어. 그리고 폰을 꺼버렸겠지. 주변이 고요했어. 허니의 귓가에는 찰리의 목소리만 맴돌았으니까 시끄러운 펍 안의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어. 오늘이... 앤이 귀국하는 날이었나. 역시 그랬어. 앤의 부재일 경우에만 찰리는 착실한 남편의 역할을 해왔던게 맞아. 허니는 괜히 밀려오는 서러움에 코끝이 찡해졌어. 멍청한 허니 비. 혼자 부부놀이에 심취했구나. 허니는 답지 않게 비릿하게 웃음을 지었어. 항상 싱그럽게 웃으며 스스로를 비관하지 않았던 허니였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겠지. 상처가 생각보다 너무 컸으니까. 하지만 친구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어. 허니는 다리로 쾅쾅 바닥을 다차면서 정신을 차렸어.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지. 

 

 

 

 

 

"의원님이 너무 바쁘시대. 오늘은 우리 끼리만 마시자."

 

 

 

여상하게 말을 해오는 허니를 보면서 친구들은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을거야. 찰리가 또 언제 의원님이 됐냐며 낄낄거리면서 녹록하지 않은 회사생활을 이야기 했겠지. 허니는 쓰려오는 마음을 차가운 맥주로 달래야 했어. 그때 마침 세계적인 화가 '앤'이 터키에서의 성공적인 전시회를 마치고 오늘 오전 이른 출국을 했다는 뉴스가 구석에 위치한 tv에 나왔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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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뭐하냐고"

 

앤의 말과는 다르게 찰리는 샤워를 하고 있지 않았어. 갑작스러운 앤의 방문에 놀랐지만 우선 앤을 앉혀놓고 급한 전자우편을 보내야 할 일이 생겨 보좌관들과 이야기를 한 후 집무실로 들어오는 참이었지. 앤은 어깨를 으쓱 하며 휴대폰을 내밀었어.

 

"성미가 급하신 아가씬가봐 끊어버리셨네.."

 

찰리는 뭐라 반박을 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녹음 되어 있을 파일을 바로 들어보았어. 그리고는 낮게 욕짓거리를 내뱉고는 바로 겉옷을 챙겼지.

 

"어디가"

"...."

"찰리. 어디가냐고"

 

찰리는 아무말 없이 그저 낮게 앤을 쏘아보고는 그대로 집무실을 나섰어. 문을 닫는 순간,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들을 만큼 큰 비명소리가 집무실 안에 들렸지. 찰리는 다시 뛰어 들어갔어. 가렛도 찰리를 따라 들어왔지. 다른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 하게 단도리를 하고 말이야. 가렛은 집무실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어. 어디서 났는지 오리엔탈 문양이 그려진 날카로운 단도를 제 손목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앤과 그런 앤에게 급히 다가가는 찰리의 모습이 보였지. 

 

"의원님도 다치시면 안됩니다."

 

가렛은 큰 보폭으로 걸어가 앤의 단도를 빼앗았어. 이미 앤의 가녀린 손목에는 깊은 상처가 났고, 피가 집무실 바닥을 흥건히 젖게 할 정도로 흘렀겠지. 

 

"찰리 너 가면 나 진짜 죽을지도 몰라"

 

부들거리며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서 있는 앤이 보였어. 물론 상처를 받았겠지. 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런 방법은 옳지 못한 방법이야. 알고 있지만 앤은 지금 더이상의 길이 없다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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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렛은 제 와이셔츠 소매를 찢어 앤의 상처를 감싸고 있는 찰리를 응시했어. 가렛이 봐 온 둘 사이의 관계는 항상 이랬어. 오늘도 어김없이 찰리는 앤에게 이길 수 없겠지. 가렛은 쥐고 있던 단도를 책상위에 올려놓았어.

 

"가렛.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넌 지금 바로 A지역으로 가. H펍에 허니가 있어. 술에 취한것같은데 사고 안나게 집까지 잘 데려다 줘"

"의원님"

"가. 빨리"

 

 

 

가렛은 문을 열고 집무실을 나왔지.

 

 

"다들 퇴근하세요"

 

 

웅성거리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선 차 키를 들고 건물을 빠져 나왔을거야. 무표정의 가렛은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지. 지금 가렛은 자해를 한 앤도, 그런 앤에게 또 끌려만가는 찰리도 없었어. 그저 남편에게 처음으로 전화한 허니가 받았을 상처만이 가득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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