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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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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님. 식사 준비 했습니다."

쭈뼛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중년의 여성을 보며 허니는 미소를 지어보였어. 분명 그들에게는 결혼 첫날에 새신랑에게 대차게 까여버린 불쌍한 신부로 보였겠지만 허니는 정말 괜찮았거든.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친정 회사의 주가를 확인하고선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기는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어. 이 한몸 희생해서 망해가는 회사 하나 살릴 수 있다면 뭐 충분하지..? 거기다가 대외적으로는 그의 아내가 되는거니까. 나쁘지않다는 생각을 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프를 한 숟갈 떠 먹었어.


"정말 맛있네요. 잘 먹겠습니다."


사용인들은 이 저택의 주인이자 새신랑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눈치였어. 뭐 이 집에도 들락날락 해 대었다고 했으니 모르는게 이상하지. 허니는 개의치않았어. 아니 사실 결혼식 당일부터 설마 라는 생각을 하지않은건 아니야. 그래도 전적으로 모든걸 다 알고 결혼한거니까 할 말은 없지.


허니의 법적인 남편은 오랫동안 사랑한 여자가 있다고했어.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운 그 여자는 정치인의 아내로 틀에박힌 답답한 삶을 살고싶지 않았나봐. 젊은 정치인이 결혼을 하지않고 사는 건 여러가십에 휩쓸리기에 쉬운 여지를 주는거라며 결국 그의 사생활과, 그의 여자까지 존중하고, 훗날 그의 여자에게서 태어나는 남편의 아이를 제 아이인냥 충실히 키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겠지.. 그때 얻어걸린게 허니 비 였으면.

허니 비는 어느정도 인지도있는 중견기업 오너의 외동딸임. 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간지 반년만에 회사는 세계적인 경기불황에 직격탄을 맞았어. 중동 지역에 전쟁이 터지는바람에 어음으로 사놓았던 자재들이 전부 묶여버렸거든. 터무니없는 일에 존폐위기까지 갈때즈음 은밀하게 제의가 들어왔겠지. 회사를 살리는 데 필요한 모든것들을 지원하겠다며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이라 구슬리겠지. 일생을 바쳐 키운 회사가 딸의 행복한 결혼생활보다 중요했던 심약한 사장님께서는 곧 이름만 사위가 될 젊은 의원님의 보좌관과, 그 의원님의 배경인 이름만 들어도 다 알만한 기업에서 나온 비서실장 이렇게 셋이 사이좋게 둘러앉아 까만 글자가 적힌 흰 종이 두세장씩 나눠가지며 도장까지 찍었단말이지..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해놓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가장 때문에 집안은 뒤집어졌지만 별 수 없었지. 허니는 암암리 대외비 절대 알려져서는 안될 계약서를 보고 손을 떨며 분노했지만 짧은 시간동안이었을거야. 이미 어릴적부터 포기하는건 빨랐으니까. 그렇다고 자낮에 멍청이는 아니었음. 포기는 빠르되 소소한 행복을 찾는것도 잘 했거든.


맛있는 음식에 행복을 찾는 지금 처럼 말이야.


사용인들은 첫날밤부터 버림받은 비운의 여주인공과는 다른 여사님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어. 분명 의원님은 바쁜일정을핑계삼아 오랫동안 순정바쳐 사랑하는 '앤'님께 가 계실게뻔했거든. 언제 들어오실지도 모르는데 태평하게 배를 채우고 계시다니..

"식사들 하셨어요?"
"ㄴ..네..? 저..저흰 여사님 드시고 나서.."
"에이, 뭣하러 수고롭게.. 의원님 집에 안계실 때 이젠 같이 드세요. 저도 혼자 밥먹는게 영..쑥쑥하고 그러네요~"



사용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하나 둘 자리에 앉았어. 먼저 자리를 찾아 앉는 어린 사용인들에게 눈치를 줘봤지만 허사였지. 저를 보고 빙긋 웃으며 바로 옆 비어있는 의자 위를 툭툭 치는 여사님과 눈을 마주쳤어. 결국 의원님의 어린시절부터 집안을 돌보던 중년의 사용인까지 착석했지. 그렇게 의원님의 아내 허니 비 허냄은 첫날부터 사람들을 제 옆자리에 두기 시작했어.


"제가 여기서 꼭 조심해야하거나 알아야 할 것들이 있으면 말 해 주세요. 사실 오늘 결혼식에서 의원님을 처음 뵙는바람에..."


안그래도 불쌍한데 더더욱 안타깝게만 보였어. 중년의 사용인은 본인이 키우다시피 한 의원님을 원망까지 할 정도였으니까말이야.

"다들 그런 눈으로 보실 필요 없어요~~ 저도 당연히 동의한 결혼이라. 혹시 의원님 성향이나 습관 뭐 이런거 좀 알 수 있을까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게요."
"오. 감사해요."


배가 고팠는지 허니는 사용인들이 보든 말든 허겁지겁 코박고 음식을 먹었어. 얼굴도 못 본 남편과의 결혼식이라고는 해도 배경이 빵빵한 젊고 유능한 정치인과 듣도보도못한 조그만 회사 사장의 외동딸의 결혼식은 언론과 여론의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했거든. 팔자에도 없는 플래시 세례에 정신을 잃을뻔할정도로 복잡한 결혼식이었어. 딸이 팔려가는데도 혼주석에 앉아 회사를 살렸다는 안도감에 활짝 웃고 있던 아버지가 떠올라서 숟가락을 멈칫 했지만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과 향긋한 토마토 냄새에 다시 부지런히 떠 먹었지.

"잘 먹었습니다. 천천히 드세요. 같이 치울게요!"


허니는 결국 주방에서 쫒겨났어. 소매를 걷어 올리는 허니를 보며 기함을 한 사용인들 중 한명이 밀어버렸거든. 하루종일 힘들었는데 가서 좀 쉬어래... 허니는 진짜 쉬고싶지않았어. 어디에서 쉬어야할지 아니 욕실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몰랐었으니까. 내 집이라는데 절대 내 집일 수 없는 이 으리으리한 집에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지. 짐도 뭐 가져온 것도 없어.



​답지않게 시무룩해져서는 2층으로 올라왔어. 문이 여러개가 있고.. 아까 썼던 욕실이 저기.. 여긴 침실.
침실을 내가 써도 되나.. 어디까지 허용이 되는거지. 허니는 답답했지. 에이 뭐 될대로 되라지. 슬리퍼를 질질 끌며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어. 의원님의 서재야. 허니는 괜스레 긴장되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들어갔지. 먼지한톨 없는 책상 위를 손으로 쓸어도 보고, 책장에 꽂혀있는 정치학 행정학부터 고대문학까지 제목들을 읊어도봤어. 그리고 책상 위에 소중히 놓인 액자 속 사진도 봤지. 제 남편이자 의원님과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앤'아가씨..? 언제찍은걸까. 금발의 의원님과 붉은빛이도는 브루넷의 앤아가씨는 정말 잘 어울렸어. 젠장. 너무 이쁘네 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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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는 턱시도를 입고 제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의원님을 떠올렸어. TV 뉴스나 인터넷 기사로만 보던 그를 실제로 처음 봤지. 정치인이 아니라 배우해도 되겠다며 의원님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타이틀들이 이해가 갔어. 키도 크고 몸도 다부지고 얼굴도 작고 눈코입 턱 근육이나 세상에 정말 잘생겼거든. 잠시지만 이 사람 옆에 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할만큼 압도적인 외모였지. 근데 그때 저를 위로 올려다보는 시선이 불편했는지 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의원님은 허니만 들리게끔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 쳐다보지마라고. 허니는 그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 몸을 살짝 떨었어. 그래 잘생기면 뭐해. 성격도 이상한것같고.. 어차피 난 그 사람 진짜 아내도 아닌데.

허니는 입술을 조금 깨물고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재를 빠져나와 침실로 들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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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하루종일 투덜거리다가 잠들어버린 앤을 토닥이고있었어. 분명 앤이 원하는대로 다 해줬는데 뭐가 문제인건지 지난주부터 계속 짜증만내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 결혼상대도 앤이 골랐으니까 찰리는 골머리가 아팠어.

앤은 결혼하자고 절절하게 매달리는 찰리에게 절대 정치인의 아내로 세상이 cctv인 것 같은 그런 끔찍한 생활은 하고싶지않다 수년간 수십번을 거부해왔어. 찰리 또한 앤이 아니면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으니 그냥 혼자인것도 나쁘지않다 느꼈지. 근데 정치인생을 의원으로 마감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런 찰리의 큰 야망에 독신은 걸림돌이었을거야. 요즘들어 고민이 깊어지는 찰리에게 정략적인 결혼을 제시한건 앤이었지. 앤은 찰리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 사랑은 절대 변치않을거라 믿었으니까 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어.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미끼가 충분해야하는 여자. 앤의 시야에 들어온게 그때 무너져가는 회사 오너의 외동딸인 허니였지.


"오늘 안갈꺼지..?"

찰리는 갈 생각도 없었어. 괜히 그렇게 물어보는 앤을 되려 이상하게 쳐다볼만큼 찰리의 머릿속엔 결혼과 아내. 하는 단어는 아예 없었지. 매일매일 눈코뜰새없는 바쁜 일정 속에 신혼이라는 어마어마한 핑계를 만들어 어떻게 얻은 3일간의 휴무인데. 당연히 앤과 함께 하려 했음.

"뭐가 문제야 앤"

찰리는 답지않게 자꾸만 떠보는 앤의 태도가 불편했음. 그래서 결국 되물었어.

"뭐가?"
"의식하고있잖아. 내 결혼."
"아니?"

여상하게 되받아쳤지만 떨리는 앤의 눈이 찰리가 틀린말을 한게 아니라는걸 여실히 드러내주고있었음좋겠다.

"난 언제나 네거야 앤. 네가 결혼하지마라고했으면 안했을거야."
"알아"
"근데 왜 그렇게 불안해 해"
"안아줘 빨리"

칭얼거리며 안겨오는 앤의 보드라운 여체의 감촉에 찰리는 하체가 동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부드럽게 웃으며 도통한 앤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지. 반짝반짝한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던 그 눈빛은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야. 찰리는 미쳐빼지못한 결혼반지를 낀 채 앤의 볼을 어루만지며 그녀의 몸 위로 자세를 잡았어.

"사랑해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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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는 사용인이 몇가지 적어준 중요한 것들을 읽고 또 읽었어. 말을 많이 하는 걸 싫어하고, 지저분한걸 싫어하고, 게으른걸 싫어하고, 목소리 큰것도 싫어하고, 과식을 싫어하고.. 무슨 죄다 싫어하는 것 투성이야. 거기다 모두가 다 허니를 겨냥한것마냥 허니의 특성이었지. 허니는 이불을 걷어찼어. 진짜 산송장처럼 살아야하네. 생각보다 잃은것들이 많다는걸 깨달았지. 그때 허니의 휴대폰 알람들이 울렸어. 신경질적으로 폰을 연 허니는 결혼식에 와 준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들이 메세지로 와 있는걸 확인했어.

"생각보다 나도 이뻤네."

​모든게 다 준비되어있는 결혼식이었지만 나름 잘 어울리는 웨딩드레스에 머리장식. 그리고 소소하지만 아름다웠던 부케꽃까지 괜찮았어. 의원님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도 나름 볼만했지.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말고 연애라도 주구장창 할껄. 몇없는 연애경험이 아쉬웠어. 앞으로 죽을때까지 독수공방할지도 모르는 음울한 미래가 피부로 와닿았지. 허니는 결혼을 통보받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울지 않았던게 무색할만큼 저도 모르게 배게에 얼굴을 묻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어. 그렇게 의원님과 결혼식을 올린 허니의 첫날밤은 지나갔어.







훈남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