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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7 09:00

읽어줘서고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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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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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의원님"

보좌관을 포함한 십수명의 사람들이 병실 밖 복도에 줄지어 서있었어. 우리의 의원님은 주치의를 만나고 온 참이었겠지. 물린곳은 발목. 초기에 끈으로 잘 묶었다며,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투약하고 있다고 했을거야.

도대체 우리 집 어디에 독사가 있을 곳이 있나 고심하길 잠시, 의원님 손에 이색 저색 무지개색으로 물감칠이 된 긴 천쪼가리가 쥐어졌어. 의사는 허니가 이걸로 묶었다고 말했어. 이건, 의원님이 어렸을 때 의원님의 할머니와 함께 만든 띠였어. 그 당시 집에서 키우던 양들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었던 리본이었지. 이게 왜 허니한테..


생각하던 의원님은 인사를 받으며 병실 문을 열었어. 언제 오셨는지 허니의 곁엔 장모님이 앉아계셨을거야.

"오셨어요..?"

말이 장모님이지, 결혼식때 한 번, 지금 한 번. 총 두번 본 사위가 편할리가 있나. 얼굴을 가리며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셨어. 허니는 바로 엄마의 손을 잡았지. 어차피 의원님은 금방 가실꺼니까 더 있어도 된다고 말하고싶었을거야.

"더 있다 가셔도 됩니다."
"딸을 팔아버린 엄마가 무슨 낯이 있어서 더 있겠어요.."



자세히 보니 눈물도 고여 있는 것 같았어. 의원님은 이 공간이 많이 불편했겠지. 이유가 어찌됐든 결혼한 아내 곁에 있어주지 못 했으니까 의원님은 장모 앞에서 할 말이 없었음.

원망조차 할 수 없는 장모된 처지가 비참한건지 뭔지 이유는 몰랐지만 장모님은 허니를 한번 안아주고 사위에게 격식있는 인사를 하고선 병실을 나가버렸을거야.


역시 적막함이 싫었던 허니는 눈을 구르더니 입을 열었어.



"의원님이 안 오실거라 생각해서.. 엄마를 불렀어요."
"괜찮습니까?"
"네?"
"많이 놀랐겠네요."
"아. 괜찮아요."
"어디서 물렸습니까"

허니는 말을 해도 될까 머리를 굴렸어. 의원님의 허락 없이 의원님의 공간에 들어갔고 거기다 뒤적거리는 행동을 했으니까.. 그래도 저렇게 대놓고 물어보시는데...언제까지 말을 안 할 수는 없었겠지.

"텃밭 옆에 지하 창고에서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지. 의원님의 미간에 주름이 졌어. 허니는 고개를 숙인 상태로 눈만 떴지. 그때 의원님 흰 셔츠 깃에 붉은 립스틱자국이 눈에 들어왔을거야. 분명 밤새 같이 있던 앤의 흔적이겠지. 허니는 알 수 없는 비참함에 두 눈을 꼭 감았어. 립스틱 자국을 애써 잊으려 다시 말을 이어 나갔어.

"그,근데 진짜 깊게 안 물렸어요! 항생제 다 맞으면 집에 가도 된다고 하셨거든요. "
"거기 열쇠는"

그때 병실문이 열렸어.

"제가 여사님께 드렸습니다. 의원님"
"아주머니"

중년의 사용인이 들어왔지. 허니는 제편이 생긴것같은 든든함에 죽어가던 얼굴이 활짝 펴졌을거야. 의원님은 두사람이 언제 이리 친해진건가 어안이 벙벙했음.


"나랏일이 뭐가 그리 바쁘신지, 얼굴도 안비치는 서방님만 기다리고 계신 모습이 참 딱해보여서 제가 드렸는데, 잘못했나요?"

제 부모보다 더 오랜시간 함께해 온 사용인의 말에 의원님은 더이상 할 말이 없었을거야. 그녀는 처음부터 이 결혼을 반대했으니까.

"저 좀 잠시만 보세요."

의원님은 사용인을 데리고 병실을 나갔어. 허니는 방금 전 아주머니가 한 말을 곱씹었겠지. 얼굴도 안 비치는 서방님. 따지고보면 비참한 생활이긴 했어. 좋게 좋게 긍정적으로 포장하려해도 지금 의원님은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내다 밖에 깔린 기자들때문에 억지로 와본게 분명하니까. 이 날 허니는 처음으로 이 결혼을 후회했을거야.







"새 셔츠를 드릴테니 갈아 입으세요."

호기롭게 사용인을 데리고 나온 의원님은 곧 자기 옷에 적나라하게 묻은 입술 자국을 보며 당황했어. 의원님은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던 허니의 모습이 떠올랐지. 허니도 봤을까. 불륜을 저지르고 들켰을까 조바심 내는 사람이 된 것같은 기분이 들었음. 의원님은 허니에 관련된 말 한마디 못 하고 사용인이 가지고 온 새 셔츠를 멍청하게 받았겠지.


"부모복 남편복은 없지만 인복은 있는 분이세요. 저부터 이미 모두가 여사님편이거든요."













그날저녁 허니는 퇴원을 결정했어. 독성이 약한 뱀이었기에 다행이었음. 생각보다 걷는데도 괜찮았거든.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발엔 깁스까지 한 채 어영부영 끌려나오다시피 한 허니는 병원 정문에 가득 차 있는 기자들때문에 죽을맛이었겠지. 항생제를 다 맞고, 왕진으로 치료받겠다고 한 후 늦은밤 퇴원 하는건데도 사람들은 많았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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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는 제 앞에 서서 인파를 가로질러 가는 의원님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불편한 다리를 끌고 걸었어.
주변에 경호원들이 지키고 서있었지만 불편함은 나아지지않았어. 보좌관은 어디갔지.. 허니는 의원님보다 조금 더 편한 보좌관을 찾다가 결국 넘어졌어. 젠장. 플래시가 터지고 눈을 뜨지 못 했어. 허니는 이 치욕스러움에 눈물까지 날뻔했음. 그때, 누군가 허니를 안아 올렸어. 눈을 감고 있어도 반짝거리는 카메라 조명탓에 눈 뜰 엄두를 못 내었지만 귓가에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그 누군가가 '의원님' 이라는걸 알았을거야.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허니는 차에 태워지는 순간까지 정신이 빠져있었겠지. 두 볼을 빨갛게 물들인채 말이야. 의원님의 향기가 참 좋다는 생각까지 했을거야. 향수를 뭐 쓰실까. 나란히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않았어. 그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냥 한 소리인건 알고 있는데 괜히 두근거렸지.
허니는 고개는 그대로 숙인채 힐끔거렸어. 피곤하신지 눈을 감고 계셨지. 허니는 아까부터 차 내를 울리는 진동소리에 눈치를 보았어. 분명히 전화가 오는걸 알고 계실텐데..

"의원님, 전화 왔습니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보좌관님이 말을 붙혔어. 의원님은 알고있다는 듯 긴 손을 들어 보이셨어. 허니는 자꾸만 두근거리는 몹쓸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힘들었어. 좋아하면 안되는데, 자꾸만 시선이 가는데 어쩔거야.

전화는 끊임없이 울려댔지.
의원님은 짧은 숨을 내쉬시더니 호주머니에 있던 폰을 들었어. 최대한 통화음을 낮추시려는지 휴대폰 측면의 버튼을 내리 누르셨지. 그 모습도 참 멋있게 보이는 허니였음.


-찰리 허냄!

의원님의 바램대로는 안됐겠지. 보좌관도 허니도 전부 다 찢어지는 목소리를 들었을테니까. 보좌관은 헛기침을 하고 허니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어.

-너 지금 뭐한거야..??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있는데 지금.. 그 여자애를 안고 뭐?? 너 당장 와..!
"나 지금 못 가"
-찰리,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앤"

의원님의 입에서 그 아가씨의 이름이 나왔어. 허니는 자신이 죄를 지은듯 몸을 움츠렸지. 그런 허니의 모습을 거울로 안쓰럽게 쳐다보는 보좌관님이었어.

-내가 누구때문에 고아가 됐는데 네가 나한테 이러면..난 살아갈 의미가 없어..


흠칫. 내가 뭘 들었지...? 허니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원님을 쳐다보았어. 의원님은 깊게 한숨을 쉬시더니 보좌관에게 말을 하셨지.

"가렛. 나 여기서 좀 내려줘"
"의원님, 그럼 여사님은-"
"네가 잘 데려다 줘."

보좌관은 차를 갓길에 대었어. 비상깜빡이를 켜고선 차에서 내리는 의원님을 바라보았지. 허니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어.

"죄송해요 의원님, 괜히 저 때문에..."

의원님은 입술을 달싹 거리시다 문을닫으셨겠지.











사실 허니는 억울했어. 슬프기도 했을거야. 서러움이 물밀듯 밀려왔지. 내가 뭘 잘못했지... 잠깐 향을 맡았던거..? 동경하는 마음을 들켜버린거..? 아님, 의원님과 결혼을 한거? 허니는 창밖의 풍경들이 점점 흐려지는 걸 느꼈겠지. 결국 눈물이 터졌어.

그때 앞자리에서 손수건이 쑥. 하고 뒤로 건네졌으면 좋겠다. 보좌관님이 한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을 뒤로 제쳐 자신의 손수건을 줬겠지.

"고맙습니다..보좌관님"

허니는 그렇게 집 도착할때까지 한참을 울었을거야.
















찰리는 옷깃을 여미며 고급 플랫으로 걸음을 옮겼어. 인상은 굳어있었지. 앤의 무기는 이거였으니까. 찰리가 꼼짝 못 하게 만드는.. 허니가 들었겠지.. 찰리는 다시 턱에 힘을 줬어.

그 일때문에 앤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 책임감으로 앤을 사랑한건 절대 아니었어. 찰리는 그 전부터 앤을 좋아했었으니까.




찰리가 열일곱, 앤이 열아홉이 되는 해 였어. 앤은 이미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능으로 미술학도가 되었겠지. 미술엔 영 재능이 없던 찰리였지만 앤을 어릴적부터 많이 좋아했기에 부모님의 반대에도 굳이 학업시간을 줄여가며 미술학원에 출석도장을 찍었겠지.. 비가 자주 오는 나라였지만, 그땐 좀 이상했어. 이주일 넘게 비가 오지 않았거든. 화창하고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자 사람들은 너무 좋아했어. 그날도 여전히 쨍쨍한 햇빛에 상쾌한 하루였겠지. 찰리는 어김없이 수업을 마치고 미술학원으로 갔어.

그날따라 교실엔 아무도 없었을거야. 찰리는 이젤 앞에 앉았어. 곧 수업이 시작되는데 아무도 안 왔겠지. 휴대폰을 열어 할일없이 게임을 하고 있던 찰리는 교실 제일 끝, 문이 있는 쪽 구석에서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타 들어가는걸 보았겠지. 불꽃은 전기선을 타고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 달렸어. 안타깝게도 교실 안의 가구들 이젤 종이 전부 불이 좋아하는 것이었겠지. 찰리는 눈 깜짝할 사이 교실의 전부를 삼켜 버린 화마를 바라보았어. 정신없이 창문을 열고, 게임을 껐지. 그리고 신고를 했을거야.

숨이 막혀왔어. 찰리는 교복 자켓을 벗어 입을 가리고 몸을 웅크렸지. 그때 뜨겁게 달아오른 이젤 조각에 눈옆을 찍혔어. 피가 나는지 눈이 제대로 뜨이지도 않았겠지. 건물 밖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어. 뛰어내려야하나. 여긴 10층인데.. 찰리는 두려웠어. 그때 저 멀리서 찰리를 부르는 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겠지. 그 이후로는 찰리도 기억이 없었어. 그냥 눈을 떳을때 병원에 있었으니까. 그 건물의 화재로 희생자는 셋. 그 중 하나는 원장선생님이셨던 앤의 아버지였지.


생각만 해도 홧홧한 그때 다친 눈 옆 상흔을 만지작 거렸어. 한숨을 쉬고 제일 윗층으로 바로 올라가는 승강기 앞에 섰어. 비밀번호를 누르고 승강기에 탔겠지.



문을열자 눈물바람의 앤이 찰리에게 안겨왔어. 어정쩡한 자세로 앤을 마주 안았을거야.


"안오는 줄 알았어. 찰리"

입술을 맞춰오는 앤을 거부할 수 없었겠지. 열렬히 받아주진 못 했지만, 입술을 열어줬을거야. 찰리는 생각보다 가벼운 허니가 떠올랐어.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두 볼을 빨갛게 물들이고 눈알만 좌우로 굴리던 허니, 차에서 내릴때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하던 모습까지말이야.

"내가 실언해서 미안해. 그런 소리 싫어하는거 아는데.."

찰리는 한번도 들은 적 없던 앤의 사과에 의아했을듯. 앤은 지금까지 찰리에게 크고 작은 실수를 했을때도 단 한번도 미안하다 소리를 한 적이 없었거든.

"어..근데, 셔츠 갈아입었네...?"
"어떻게 알았어?"
"입술자국. 일부러 남겼거든"

야살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앤이 예뻐보이지 않았어. 그러고보니 보좌관의 전화를 받고 나가기 전 앤이 껴안았던 것 같았어. 처음이아니라 마지막에 묻혔던거구나. 일부러.


"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찰리는 한숨지으며 이마를 만지작거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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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야?"
"네가 원하는게 뭔데"
"너"
"뭐?"
"지금보다 더 높은곳에 있을 너 말이야."
"그래. 그러면 허니 비 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튀어?"
"더 높은곳으로 갈테니까 앤, 이제 이런일로 나 부르지 마"


앤은 제 대답에 스스로 걸려 넘어졌다는 걸 알아차렸음.

"그래도..나랑 여행 가기로 한 날에 그 여자 껴안고 그러는건"
​"앞으로 더 많을거야"
"찰리 허냄!"
"이 정도도 못 견뎌하면서 왜 나한테 결혼하라고 한거야"
"그,그건"
"네 말이 맞아. 난 아마 죽을때까지 그 날 거기에 내가 있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거란 생각을 하면서 살겠지.. 하지만 난 그 일 때문에 너랑 만나온게 아니야."
"알아. 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네가 그 말 할때마다 난 무너져"
"알아"
"알면서도 잊을만 하면 꺼내지. 앞으로도 분명 그럴꺼고"
"아냐..!"
"너한텐 그 일이 무기가 될 수 있겠지만 난.."



찰리는 숨을 몰아 쉬었어. 그 날 이후로 화마에 불길만 봐도 숨이 잘 쉬어지지않았거든. 온 몸이 옥죄인듯한 익숙한 느낌에 땀이 비오듯 쏟아졌었지. 찰리에겐 지독한 상처고 트라우마로 남겨진 사건이었을거야. 물론 아버지를 잃은 앤의 고통에 비할 수 없겠지만, 무언가 요구할때마다 그 일을 꺼내며 찰리의 고통과 죄책감을 이용하는 앤을 이해할 수 없었음.
​황망한 표정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찰리의 모습에 앤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걸 깨달았을거야. 그 여자아이와는 별개로말이야. 앤은 찰리의 양복 자켓을 벗겼지. 넥타이까지 풀었어


"여행은 못 가더라도. 자고 갈 순 있잖아 찰리."

찰리는 짧게 숨을 쉬었어.















"내일 오전에 박사님이 오실겁니다."

허니는 보좌관에게 안겨 침대위로 뉘어졌어. 폭신한 침구가 등에 닿자 긴장이 풀리는 듯 했지.
사용인들은 분주히 음식을 했어. 맛있는 냄새가 2층까지 가득 채웠으니까. 허니는 저녁을 걸렀다는걸 깨달았어. 물론 보좌관님도.

"식사 하셨어요?"
"아직입니다."
"그럼 저녁 들고 가세요."
"전 따로 먹겠습니다."
"혼자 먹으면 더 쓸쓸할 것 같아요. 같이 먹어요 보좌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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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은 잠시 생각했어. 어찌됐든 의원님의 아내와 단 둘이 겸상하는건 이상한 일이었지. 앤과도 이런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눈물로 눈가가 짓물러서 아직 훌쩍거리고 있는 여사님이 너무 슬퍼보였어. 자신까지 거절한다면 아마 더 힘들것같았지. 앤에게 달려간 의원님이 원망스러웠어. 보좌관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어.



"알겠습니다."
























훈남너붕붕 가렛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