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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20:28
 

공포 ㅈㅇ

스압 ㅈㅇ

 


키사라기 역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존재하지 않는 역에서의 행동 안내
분실하신 눈알 2개를 무료로 돌려드립니다.
외부에서 찾아오신 방문객을 위한 지침서
해피 테마파크에 오신 것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해피 테마파크에서의 하루를 보낸 후, 아다치는 쿠로사와의 상처 처치에 지극정성이었다.

다행히 폐점 시간 이후에 바로 병원으로 방문할 수 있는 여유가 남아 필요한 조치는 받을 수 있었기에 2차 감염 등의 문제에서는 한층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자신의 구조를 위해 진심으로 목숨을 걸었던 쿠로사와. 그런 그가 사실은 오래도록 짝사랑 중이었던 사실을 고백했다.

아다치는 갑작스레 밀려든 충격적인 사실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 최고 인기남인 쿠로사와였으니까. 자신과는 성별 외의 공통점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더욱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다치와 쿠로사와의 사이가 당장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의지할 상대는 오직 서로뿐이었으니까.

아다치 또한 갑작스러운 고백을 들었다고 해서 그에게 거부감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30년간 모태솔로로 살던 자신을 좋아했다는 것에 놀랐던 게 전부였다. 고백받은 것 또한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기에 쭈뼛대는 것이 당연했다.

쿠로사와의 태도 역시 바뀐 건 없었다. 그는 여전히 다정했고, 자신의 마음을 이유로 아다치를 부담스럽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와 같은 거리에서 평범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다치는 그날 이후로 확실히 쿠로사와를 의식하고 있었다.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기도 했고. 예를 들면 좋아하는 만화, 맥주의 종류라거나 하는 공통점을 찾았을 땐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 외에도 스스로의 심정이 점점 변화하는 것도 깨달았다. 어쩌다 손톱이 뽑힌 부위를 아파하기라도 하면 마치 미어캣처럼 화들짝 놀라 쿠로사와를 걱정하기도 했고, 여전히 잠은 함께 자면서도 곤히 잠든 쿠로사와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이전과는 다른 어수선한 기분을 느꼈으니.

 

 

쿠로사와가 이곳에 온 지 약 두어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손톱이 뽑힌 탓에 무리해서 힘을 쓸 수 없는 그를 배려하여 아다치는 웬만하면 호텔 내부에 있는 것을 권장했지만 쿠로사와는 이 정도로 아다치에게 보호만 받으면서 지내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놀이공원의 살벌한 난이도를 체험해 봤던 만큼 아다치를 기다리는 동안 혹시나 그가 어딜 다치진 않을까, 끔찍스러운 일에 휘말리진 않았을까, 혹은…. 

막연하게 불안에 떨며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지옥 같은 순간으로 다가왔으니까.

 

그렇게 아다치와 쿠로사와는 관리소장에게 상담을 받아 보기로 했다. 그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외모지만 의외로 꽤나 감성적인 면모가 있었다.

아다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쿠로사와의 눈물겨운 사투를 경청하더니 정말로 눈물을 또르륵 흘렸던 것이다!

이에 당황한 쿠로사와는 허둥지둥 그를 달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야만 했다.

 

 

“너무나… 감동적이에요. 동료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위험에 맞서 희생하다니.”

 

“위험… 위험하긴 했지만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었어요. 보세요, 고작 손톱 정도를 잃은 게 전부인 걸요.”

 

“손톱 정도라니…. 그것도 엄청 아팠을 거잖아? 두 번 다신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아 줘. 정말 놀랐으니까.”

 

“알겠어, 아다치. 제대로 반성하고 있어. 하지만 아다치도 조심해야만 해.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자신을 향해 잔소리를 해 오는 아다치에게 도리어 눈빛 공격을 시도하는 쿠로사와, 그에 주춤하는 아다치. 두 사람이 풍기는 애틋한 분위기에 관리소장은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뽑힌 손톱의 재생을 기다려야 하긴 하나, 호텔에만 콕 박혀 있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지는 않다. 아다치에 대한 걱정도 그렇지만 가끔씩 관리소장인 척 쿠로사와를 불러내려는 의문의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 

아다치가 절대 반응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에 필사적으로 없는 척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존나 무서웠다.

덕분에 쿠로사와는 아다치가 귀가하는 순간 주인을 기다리던 강아지마냥 매번 격하게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다치는 관리소장에게 쿠로사와가 할 만한 일거리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그에게 놀이공원은 너무나도 빡셌다.

당장 고인물 레벨의 아다치조차 종종 사고에 휘말리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하물며 쿠로사와는 어떻겠는가. 지난 경우에는 조이가 배부른 상태로 그를 쫓아왔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산 채로 온몸을 씹어먹혔을 것이다.

 

관리소장은 이들의 사연에 적지 않게 감동했는지 웬일로 열의에 불타는 태도를 보이며 일거리를 찾아 주겠다며 나섰다.

이에 둘은 다소 멋쩍은 미소와 함께 그를 따랐고, 쿠로사와는 못내 아쉬움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이곳에서도 아다치와 함께 일하고 싶었는데…. 그러나 인정해야만 했다. 쿠로사와가 못 봤을뿐, 위험 요소는 마스코트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쿠로사와의 운이 언제까지 따라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둘이 같이 있으면 아다치는 두 배로 신경을 써야만 한다. 쿠로사와를 챙기느라 본인의 위험을 감지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집중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저 각자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자리에서 서로의 기지를 믿고 견디는 것이 옳은 방향일지도 몰랐다.

 




 




Germany's Most Beautiful Libraries.jpeg
 

관리소장이 가장 먼저 보여 준 곳은 도서관이었다.

갖가지 장르의 수많은 도서들이 즐비한 이곳은 5층 높이의 대도서관이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도서를 대여하거나 독서를 하는 등 여가 시간을 즐긴다고.

그러나 쿠로사와에게 적절한 난이도는 아니었다. 놀이공원보다 조금 더 간단해 보이긴 했으나, 관장의 소개를 들어 보니 영 아니올시다. 쿠로사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보이긴 하지만 아다치는 아니었다.

 

 

“이 도서관에서 외지인이 크게 주의해야 할 건 없을 겁니다. 사서가 하는 업무는 대개 한정되어 있죠. 주민들의 도서 대여와 반납을 처리하는 것, 정숙 유지, 주민이 아닌 외부인의 출입 제한, 도서 관리 정도가 다예요.“

 

”… 혹시 좀 특이한 분이 계신가요?“

 

”글쎄요…. 아, 매일 찾아오시는 노신사가 한 분 계십니다. 굉장히 박학다식하산데, 사서들에게 퀴즈를 던지는 걸 좋아하시죠.“

 

”예를 들면요? 정답을 맞히면 어떻게 되나요?“

 

”근무 기록에 의하면, 정답을 맞혔을 경우에는 하루 동안 곁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더군요.“

 

”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시설의 관리자들은 인간들에게 친절한 편이긴 해도 상식의 기준이 달랐다. 문제 발생 시,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고가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까지는 전혀 모르며 그것을 알 생각조차 없다. 놀이공원에 이직했을 때 크게 엿을 먹었던 아다치의 입장에선 의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장에게 근무 기록을 받아든 아다치는 실제로 노신사가 제시한 퀴즈까지 함께 적혀 있는 것을 확인히고, 그 내용을 찬찬히 살피고는 쿠로사와에게 물었다.

 

 

“쿠로사와,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어?”

 

“응? 아, 그러니까…. 일단은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에 대한 법칙이지. 여기서는 이러한 물리량을 엔트로피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고. 특정한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엔트로피는 증가할뿐, 절대 감소하지 않는 비가역적 과정을 가지고 있어. 청소를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더러워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 통과.”

 

 

뼛속까지 문과인 아다치는 쿠로사와가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배웠다 하더라도 최소 10년 전이니까! 근무 기록 내의 사서는 해당 문제를 맞히고 나서 하루 동안 노신사에게 보호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에 노신사에게 또 질문을 받은 이후로는 기록된 바가 없다. 아무 내용도.

그렇다는 건, 정답을 맞히지 못했을 때 노신사는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어떤 액션을 취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다치는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기묘한 수효’를 나타내며,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 사이의 정보 전달 과정을 설명한대. 이 심리적 개념은?“

 

“작업 기억?”

 

“… 개인이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른 역할을 채우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조절한다고 주장하는 이론. 제시한 사회학자도 함깨 대답해야 해.“ 

 

”아이덴티티 발전 이론이네. 에릭 버크손이 제시했지.“

 

 

대체 어떻게 아는 건데…. 

아니면 보통 이 정돈 다들 알고 사는 건가? 좀 질린다는 듯이 쿠로사와를 바라본 아다치는 조금 더 복잡한 문제를 찾기 위해 기록을 꼼꼼히 뒤졌다.

난이도의 한계를 알 수 있다면 어쩌면 쿠로사와에게 있어서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르니까.

 

 

“아! 이건 어떨까. ‘정원에서 의뢰’는 어떤 이탈리아 화가의 작품으로, 어떤 주제와 어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가!“

 

”음…. 이건 잘 모르겠네.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아.“

 

 

이것으로 알았다. 쿠로사와는 미술 관련에는 취약하다. 

아무래도 정답을 맞혔을 때의 장점이 큰 대신 틀리면 즉사로 이어지는 듯하다. 리스크가 너무 컸다.

노신사가 정확히 어떤 패턴을 보이는지는 모르겠으나 실험을 해 보기에는 쿠로사와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이었다. 가뜩이나 인터넷도 못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공부를 시작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러나 다행히도 대답할 자신이 없다면 정중하게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하는 방법도 있다고는 하니 그나마 낫다. 무조건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건 아니란 거니까.

이외에도 전임 사서들이 작성한 근무 기록에는 노신사 말고도 다른 존재들이 더 있었다. 더불어, 도서관의 책을 종종 읽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서의 기록은 점점 문체가 조잡해진다. 마치 조현병이 찾아온 듯한 느낌.

 

 

“관장님, 사서는 자주 교체되는 편인가요?”

 

“그런 편입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신다면 나쁜 선택은 아닐 텐데요.”

 

 

보류. 아다치는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쿠로사와에게 고개를 저었다. 구체적인 난이도는 경험해 봐야 알겠지만 극단적인 변수가 있기에 쉽지 않다.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라 일자리를 구할 때 퇴사 회전율이 빨라 직원을 자주 구하는 회사는 주의하는 것이 기본.

정작 아다치는 이걸 안 물어본 탓에 퇴사율이 치솟다 못해 처음 보는 직원이 다음 날부터 안 보이는 등의 일이 흔한 놀이공원에 배치되는 대참사를 겪었다. 그러나 쿠로사와는 고려할 부분은 최대한 고려해서 도와줄 생각이었다.

이 근무 기록을 토대로 주의할 만한 기본적인 수칙을 정리해서 참고할 순 있겠지만 확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이것 또한 피로 쓰여진 데이터인 셈이다.

 

 







Pasadena Texas old Capitan movie theater PC107109.jpeg
 

도서관에 이어 다음 장소는 극장이다.

쿠로사와가 여기서 활동하게 된다면 담당 업무는 다음과 같았다. 티켓 발권, 상영관으로의 안내, 매체 송출 등이 있지만 이질적인 업무도 당연히 있다.

고객 중 일부가 본인이 발급받은 티켓과 다른 상영관으로 이동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에 고객마다의 행선을 집중해서 관리해야 하고, 날마다 한 칸의 상영관은 무조건 비워 두어야 한다. 

단, 비워야 하는 금지 상영관은 자신이 직접 찾아야 한다. 엉뚱한 상영관을 제한 구역으로 지정했다가 진짜 금지 상영관에 고객이 입장할 경우, 100% 사고가 벌어져 화가 난 고객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이 컴플레인이란, 문의가 아니라 물리를 의미했다.

 

즉, 몇 가지의 징후를 통해 확률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이 있으나 결국은 직접 몸으로 겪어 봐야 한다는 소리.

이외에도 주의를 요하는 특정 고객, 종종 무전에서 잘못된 정보가 들려오는 일, 상영 시간표에 없는 영화가 틀어지는 등 수상쩍은 사항들이 존재했다.

 

 

“음, 쿠로사와는 어떤 것 같아? 나는 좀 고민되네. 이 물리적 컴플레인이라는 거 말야….“

 

”… 그거, 팔이나 다리 정도를 잃는다는 얘기일까? 어느 정도의 물리일지 감이 오질 않아서.”

 

”벌써부터 다칠 생각을 하는 거야? 좀 슬퍼지려고 하네….“

 

”아니야, 아다치! 절대 그렇지 않아! 미안해, 괜한 소리를 했구나.“

 

 

이 대화를 구경하던 관리소장과 극장의 주인은 같은 생각을 했다. 가지가지들 한다고…. 사이가 좋은 건 잘 알겠지만.

 

극장은 후보로 남겨 두기로 했다.

극장은 도서관이나 놀이공원처럼 즉사의 위험이 훨씬 적은 대신 그만큼 보수도 낮았다. 그러나 급여의 수준을 따지다가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기에 이런 걸 걱정하는 것은 사치였다. 일단 살고 봐야지.

쿠로사와는 자신을 위해 근무 환경과 난이도를 면밀하게 계산 중인 아다치가 퍽 멋있게 느껴졌다. 아다치는 쿠로사와가 놀이공원에서 다쳤던 그날부터 어쩌다 상처 부위를 보게 될 때마다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쿠로사와 또한 그 사실을 몰랐던 게 아니었으니, 고백에 대한 답은 아직 없을지언정 그에게서 느껴지는 애정에 그저 감사하고 미안했다.

 









The Dubai Mall.jpeg

 

극장 다음으로는 아쿠아리움.

놀이공원 다음으로 거대한 시설이다. 다양한 해양생물을 취급하는 만큼 장소도 넓고,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다.

이곳에서는 실제로 근무 중인 외지인이 동행하여 시설을 둘러보기로 했으나, 인간이라는 것에 동질감을 느꼈던 쿠로사와는 그의 싸가지 없는 성격을 보고 이내 관심을 끄기로 했다. 함께 있던 아다치도 좋은 인상을 받진 못한 모양.

 

겉보기엔 평화로운 듯하니 영락없는 평범한 아쿠아리움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고기들도 이상한 느낌은 없었고.

그러나 관리소장과 함께 구경을 온 두 사람은 거대한 수조 속에서 먹이를 기다리던 문어가 주섬주섬 사료를 준비하던 직원을 납치해 종이마냥 접어 버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아다치와 쿠로사와가 경악한 얼굴로 굳어 버리자 동행 중이던 아쿠아리움의 직원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궁시렁대기 시작했고, 살짝 짜증이 치민 아다치와 쿠로사와는 그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목숨 걸고 일하는 놈들이 한둘인가, 뒈져도 지 탓이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반응이죠.“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니가 사람 새끼냐?”라고 가차없이 비꼬아 버리는 쿠로사와에 직원의 표정이 썩는 것을 본 아다치가 슬쩍 손을 잡아왔고, 조금 놀란 듯한 쿠로사와가 돌아보자 아다치는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꼬옥 맞잡은 두 사람의 손, 별다른 말이 없어도 불쾌한 기분이 순식간에 풀리는 최고의 진정제였다.

뭐, 극한의 환경에서 버티다 보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엇나갈 수도 있겠지. 하루하루가 고된 나날의 연속이라면 기분이 좋을 때가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이 목숨을 건 도박일 터다. 오늘도 무사히 넘어가길, 오늘도 살아남길 바라지만 간절히 바랐던 것이 우습게도 이 세계는 수시로 절벽을 향해 떠밀어댄다.
그런데도 같은 처지에 놓인 주제에 떨어진 이에게 부주의를 운운할 수 있다니. 
아직까지 인성이 파탄나지 않은 아다치의 경우가 대단한 걸까, 쿠로사와의 기분이 씁쓸해졌다.

 

아쿠아리움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할 일은 다음과 같았다.

해양생물들에게 먹이에 진정제를 섞어서 공급하는 것, 종종 수조를 탈출하는 생물을 찾아 생포, 이용객 사이에 섞인 외지인을 발견하면 추방하는 것이었다.

수조의 환경 관리는 인어들의 도움을 받고 있으므로 어렵지는 않으나, 물고기들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은 듯했다. 

이쯤 되면 아다치와 쿠로사와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을 많이 보다 보니 그저 ‘인면어가 있구나….’, ‘인어가 있구나….’, ‘물고기가 식인도 할 수 있지….’ 정도로 빠르게 납득하고 넘겼을뿐.

 

여태까지 둘러본 장소 중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할 만한 곳은 없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있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지만 어찌 됐든 단단히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어느 장소나 다 똑같았다.

 

 








Soaking in the Materiality of the Vatican.jpeg
 

마지막으로는 미술관이 있었다. 

미술관에서는 갤러리스트가 필요했다. 갤러리스트의 경우는 기존 쿠로사와의 직업인 영업사원 경력이 이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에 어쩌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도 좋을 부분이었다.

허나… 갤러리스트는 여태까지 검토했던 것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직업이었다. 모 아니면 도, 업무 중 경계할 만한 요소는 노력에 따라 제로까지 만들 수도 있으며 승리 시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

그러나 경쟁에서 패배하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적어도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선 정해진 룰 아래에서 다른 갤러리스트와 경쟁하여 상위 매출에 도달해야 한다.

 

갤러리스트의 역할은 다음과 같았다. 

미술관에는 갤러리스트마다 개인 갤러리가 주어진다. 작가를 발굴해서 작품 구매, 전시를 통한 홍보, 이를 통해 작가의 명성을 높이며 육성해낸다. 그러는 도중에 작품을 비싸게 팔아 수익성이 높은 갤러리를 운영하면 된다.

복잡한 만큼 운용 가능한 조수를 고용할 수 있고, 그들을 굴려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경영의 일환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보다도 리턴과 리스크의 차이가 극단적이었다.

 

 

“… 쿠로사와, 이건 아무래도….“

 

”……“

 

 

놀이공원을 포함한 다른 곳의 업무와는 본질이 다르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노동, 목숨을 건 만큼의 보상, 수행 난이도에 따라 무사하기만 하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미술관은 난이도를 부여하기에는 개인차가 심하다. 체력과 감각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다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매출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다.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아다치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지만 쿠로사와는 어쩐지 좀 더 진지하게 고려 중인 모양이었다. 일반적으로라면 차라리 다른 세 곳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상대적으로 나을 수도 있다.

주의해야 하는 상황이 어느 정도 고정적이고,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아다치처럼 파훼법을 연구해서 스스로를 지키는 데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수 하나하나가 변칙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바로 결과로 이어진다면 메뉴얼이라는 게 사실상 크게 의미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쿠로사와가 신경 쓰는 부분은 이것이었다.

 

 

“승리 시에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여쭙고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매출액에 비례합니다. 벌어들인 매출액에 걸맞는다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지요.“

 

”무엇이든지요? 꼭 재물이 아니어도 된다는 이야기로 들려서요.“

 

”예. 원하는 것을 요구하시면 됩니다. 매출액에 따른 만큼이지만요.”

 

 

관장의 대답을 들은 쿠로사와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다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쿠로사와의 반응을 기다렸다. 설마 미술관을 마음에 들어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함께.

그러나 긍정적인 예감은 틀려도 부정적인 예감은 들어맞는다고 했던가, 쿠로사와는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짐짓 고심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것을 본 아다치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이 이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그의 소매를 부여잡았다.

 

 

“쿠로사와… 혹시 여기가 마음에 든다거나, 그런 거야?“

 

 

아다치의 물음에 쿠로사와는 조용히 그의 시선을 마주칠뿐, 잠시 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떨려오는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음에도 평소와 다르게 동요가 없는 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고집스러운 면모가 엿보이고 있었기에 못내 걱정스러웠던 아다치가 제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쿠로사와의 안위를 걱정하고, 또는 불안해하는 아다치의 마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곳을 선택하더라도 이 심정이 해결될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처참한 꼴로 전락할 것이고, 혹은 정체 모를 불안정에 사로잡혀 자아를 유지하기 힘들어지는 때도 올 것임이 분명하다.

피할 수 없다면 마주해야 한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은 될 수 없다.

 

쿠로사와는 자신을 만류하는 듯한 아다치의 양 어깨를 살포시 감싸쥐며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다치, 내가 여기에 오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쿠로사와, 무슨 소리를….“

 

”널 데려가기 위해서야. 함께 돌아가기 위한 방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쿠로사와는 어쩌면 피비린내가 진동할 수도 있는 혈투에 기꺼이 뛰어들겠다는 소리였다.

보상에 정해진 제한이 없다면 그것이 재물이 아니라고 해도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는 의미. 쿠로사와는 지금 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정보임을 파악했다.

자신을 보전하기 위한 방법은 아다치가 수도 없이 망가진 끝에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그게 이곳에서의 탈출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답을 찾아야 했다. 이곳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곳의 구성원들은 어떤 존재인가, 두 사람과 구성원들의 본질적인 차이점이 무엇인가 등등 핵심을 알아내서 막연한 미스터리를 깨부숴야 한다.

 

여느 때와 달리 새카맣게 가라앉은 쿠로사와의 눈빛에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목표에 대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아다치는 그것을 알아보았다. 그렇기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우물쭈물하는 것뿐, 자칫 무리수가 될 수 있을 이 결정을 지지해 주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영 혼란스러운지 좀처럼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있었다.

쿠로사와는 조금씩 떨리는 그의 양손을 부드럽게 감싸쥐고는 보다 부드러움을 담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다치, 날 믿어 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아다치에게 의지하기만 했으니까 미덥지 못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다치가 날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주는 만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

 

”쿠로사와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야. 날 구하기 위해 많은 걸 감수했고, 나도 쿠로사와에게 의지하고 있으니까. 단지… 나는 정말 겁쟁이라서, 그래서 자꾸만 두려워져.“

 

”… 아다치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야. 수없이 많은 극한의 시간을 견디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

 

”그리고… 이미 알고 있잖아? 여기에 온 순간부터 각오해야 한다는 걸. 필연적으로 닥쳐올 문제들이니까.”

 

 

망가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어째서 이런 잔혹한 현실이 필연일 수밖에 없는 걸까.

아다치는 차마 쿠로사와를 더 이상 만류할 수가 없었다. 그를 보호하려는 것과 별개로 이곳에서 며칠, 아니 몇 년이나 더 살아가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 쿠로사와의 말마따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끝없이 순환될 뿐이다.

다치고, 슬퍼하고, 의지하고, 또 다치고. 이런 도돌이표 속에서 두 사람이 지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필사적으로 노력해 온 것이 무색하게 한순간에 모든 걸 포기하고 놓아 버릴 수도 있겠지.

 

이전이나 지금이나, 쿠로사와는 정말 멋진 남자였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만큼.

 

 

 

 

 

 

 

 

그날 밤, 함께 누워 잠들 준비를 할 때까지 둘 사이에서의 대화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 떠들썩한 이슈가 있었다고 한다면 신입 캐스트의 교육이 정말 힘들었다는 아다치의 다사다난한 썰이라고 할까.

별다른 건 아니지만 아무리 주의점이나 대응법을 가르쳐 줘도 머리와 마음은 따로 노는 법이니 당황해서 화를 자초해 난처한 상황을 만드는 일들이 다분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혼자 내버려두면 큰일날 게 뻔하니 마냥 떼어놓을 수도 없고, 교육이 끝나고 나서 개인 활동을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감추는 일들이 일상이라거나.

쿠로사와는 아다치가 종종 먼저 화제를 꺼내 쫑알쫑알 떠드는 모습을 볼 때면 늘 기쁜 마음으로 경청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썩 유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상적인 대화는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에 지나치게 충분했다. 

아다치는 그냥 뭐라도 말이라도 걸어 보고 싶은 마음에 냅다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쿠로사와는 생각 이상으로 다정하게 반응해 주었으니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아다치는 꽤 속시원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 나도 견뎠는데 쿠로사와라고 못할 거 있나.’

 

여태까지는 늘 아다치와 함께 다녔으니 혼자 돌아다닐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전에 아다치를 구했던 것처엄 그의 무모한 용기가 오히려 좋은 무기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마스코트를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아다치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그래서일까, 연애를 해 본 경험은 없지만 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얼떨떨했지만 그의 진심과 제대로 마주하니 깨닫게 됐기도 했고. 그동안의 헌신이 얼마나 깊은 애정에서 기반한 것이었는지 말이다.

자신이 사라졌을 때의 족적을 끝까지 믿어 주고 기억해 주었다. 그리고 기어코 다시 연이 닿았다. 그가 와 줌으로써.

 

아다치는 꽤 오랜만에 먼저 쿠로사와를 껴안았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였지만 불안에서 뻗어나간 애절한 마음을 전하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답지 않은 어리광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사라지면 안 돼, 무사히 있어 줘. 행여나 놓으면 사라질까 붙들어오는 몸짓이 쿠로사와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줄도 모르고.

쿠로사와는 그저 묵묵히 마주 안으며 다가올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슴 깊숙하게 묻어 두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흔적을 감추고자 했다.

 

 

“… 아다치, 혹시 내가 고백했던 것 때문에 신경 쓰는 거라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어?”

 

“아무래도 남자끼리인데다가… 보통은 싫은 게 당연하고, 마음을 전한 것도 오로지 내 욕심이었으니까.“

 

 

아다치가 조금이나마 마음을 가볍게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명확하게 거절의 대답을 했던 건 아니지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니까.

고백을 받아 주지 않은 게 미안해서, 그로 인해 더욱 걱정하게 되는 거라면 사양이었다. 그런 식으로 짐이 되는 것은 반갑지 않은 일이다.

아다치는 쿠로사와의 말에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는 듯도 했지만 제 품에 얼굴을 묻은 채 껴안고 있는 것은 그대로. 밀어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쿠로사와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침묵이 길지는 않았다. 예상한 대답과 전혀 다른 내용이 돌아왔고, 그때부터 서로의 온기가 퍽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 싫지 않았어.”

 

“응?”

 

“실은 나, 고백을 받아 본 건 처음이라서. 인기도 없고, 아무하고도 사귄 적 없다고 할까. 그래서 엄청 긴장돼서… 겁먹은 것뿐이야.“

 

 

쿠로사와는 대답도 잊은 채 멍하니 아다치가 웅얼거리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무어라 반응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말았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아다치는 꿋꿋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니까… 싫지 않았어. 너에게 고백받은 거.”

 

 

아다치는 인정해야 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생기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쿠로사와를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면 모를까.

쿠로사와에게서는 한동안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말주변이 없는 탓에 실수라도 해 버렸으면 어떡하지, 지레 겁먹은 탓에 쿠로사와를 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간다. 

 

 

“… 아다치, 지금 그 말….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

 

 

나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다치가 고개를 들어 쿠로사와의 시선을 마주했다. 어둡게 내려앉은 눈빛은 잔잔한 밤바다와 같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유지해 왔던 거리감이 무색해질 만큼 두 사람의 사이가 좁혀지기 시작한다. 그 속도는 느긋하지만 너무나도 생생해서, 이보다 더 가까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서로의 숨결을 느꼈다.

 

첫 키스라는 게 이렇게나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나. 입술이 막 포개어졌을 즈음에도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이 두둥실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조금은 떨릴지언정 밀어내지는 못했다. 아니, 밀어내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일 뿐, 쿠로사와가 한층 단단하게 자신을 품에 가둔 채 더욱 깊은 입맞춤으로 나아가는 동안에도 아다치는 그를 끌어안은 팔을 무르지 않았다. 그와의 키스도 싫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정확히는,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맞닿은 가슴에서 울리는 심장 고동과 함께 점점 깊어지는 밤,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열기에 서서히 취해갔다.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살아 있음을 체감했다.

 

 

 

 

 

 

 

 

***

 

 

 

 

 

 

 

7년, 그리고 5년.

쿠로사와는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닿게 된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가까워지는 것만으로도 욕심이라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황홀했던 지난 밤, 점점 조급하게 굴기 시작하는 스스로를 느끼면서도 멈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홧홧해진 열기가 채 식지도 않았던 분위기, 아다치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이 시선조차 마주치기 힘들어했었다. 키스마저 처음이었다며 수줍게 털어놓던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모든 것이 첫 경험일 아다치에게 무리해서 밀어붙이고 싶지는 않았다. 좀 더 느긋하게, 천천히. 그가 더욱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게 되도록 하루하루 소중하게 아껴 줄 셈이었다.

 

쿠로사와에게는 전날 밤의 일들이 마치 꿈 같으면서도 새로운 동기 부여가 되어 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이겨내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말겠다는 아주 강력한 의지. 같이 하고 싶은 것도, 상상으로만 그쳤던 로망도 너무나도 흘러넘친다.

물론,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아다치만이라도 무조건 돌려 보낼 생각이지만 어디까지나 마지막 선택이다. 아다치와 이어질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생긴 이상, 간단하게 목숨을 저버릴 순 없다.

확실한 목표가 정해진 지금, 그는 무슨 짓이라도 벌일 준비가 되었다.

 

 

지정된 시간에 미술관으로 향한 쿠로사와는 본격적인 갤러리스트로서의 활동 규칙을 안내받았다. 

쿠로사와가 경쟁하게 될 갤러리스트는 3명, 최대 4명의 경쟁 시스템을 다 채운 셈이다. 이제 이들은 미술관의 공용 장소를 제외한 개인 갤러리를 하나씩 부여받아 이곳에서 작품과 티켓 관리를 해야 한다.

자신의 개인 갤러리에는 아직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조수도 고용하고, 작품도 보관해가면서 점점 채워지기 시작하겠지. 그렇게 불꽃 튀기는 경쟁을 벌이다가 경쟁 종료 후 갤러리가 휴관에 들어가면 각 분야별 판정을 거쳐 최종 승리자가 결정될 것이다.

 

심호흡 한 번, 긴장을 가라앉힌 쿠로사와는 관장에게 전달받은 갤러리 메뉴얼을 천천히 읽으며 첫 번째 갤러리 운영 방향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나름의 전략 계산에 돌입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해 주겠다는 다짐과 함께.

 

 

 

 

[The Gallerist]

 

반갑습니다.

아름다운 명화, 조각상, 건축물 등의 모든 예술 작품들이 우리 Purgatorium 미술관을 빛나게 합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수준 높은 아티스트를 찾아내고,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거래하며 미술관의 명성을 드높이는 갤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예술적 감각과 훌륭한 경영 능력을 믿고 있으며, 최고의 갤러리스트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본 문서를 참고하시어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갤러리 운영 시 원칙 >

 

  • 갤러리의 운영은 최소 1인 이상, 전원 동의하에 결정
  • 2개월 기준, 1회 이상 갤러리 운영 필수
    기준 미충족 시, 갤러리 폐쇄 및 해고 통보
  • 갤러리 운영 기간의 종료 기준
    1. 매표소의 티켓 매진
    2. 2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거장으로 승급
    3. 관람객의 방문 수가 0에 도달
    4. 1개월 초과 시 강제 종료
    위의 항목 중 하나라도 만족 시 자동 종료
  • 갤러리 운영 기간 중, 고의로 다른 갤러리스트를 살해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행위, 기타 영업 방해 등의 부정행위를 엄격 처벌함
    매출액 몰수, 담보의 강제 처분, 손해배상청구 등과 같은 강경 대응 조치 시행

 

 

< 자원의 개념 >

 

토큰

본 미술관에서는 직접적인 금전의 거래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모든 통화는 미술관에서 발행하는 토큰으로 환전하여 사용 중이므로, 다른 화폐를 통한 거래는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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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미술관에 방문하는 고객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가 나뉘어집니다. 명찰을 확인하여 각 특성애 해당하는 고객을 잘 관리한다면 갤러리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VIP: 갤러리 방문 시, 영향력을 크게 올려 주시는 분들입니다. 명찰의 색깔은 빨간색입니다.

 

투자자: 갤러리 방문 시, 토큰 사용에 가장 적극적이신 분들입니다. 명찰의 색깔은 파란색입니다.

 

수집가: 고객 중 가장 낮은 비율을 차지하시는 분들입니다. 갤러리 방문 확률이 작품 판매량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토큰 사용, 갤러리의 영향력, 작가의 명성 등 다양한 방면으로 긍정적인 도움을 주십니다. 명찰의 색깔은 금색입니다.

 

 

조수

갤러리의 운영을 돕는 어시스트를 수행합니다. 이들에게 경영, 홍보, 경매 등의 다양한 보조 업무를 맡기면 수월한 갤러리 운영이 가능합니다.

 

 

< 미술관의 시설 안내 >

 

중앙 광장 : 관람객들이 미술관의 로비를 지나 가장 먼저 도달하는 장소입니다. 

 

예술가의 회랑 : 유망한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작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작품 거래소 : 작품의 계약을 체결하거나 판매할 수 있습니다. 

 

광고 대행사 : 작가를 홍보하거나 구인을 통해 조수를 모집하여 고용할 수 있습니다.

 

외부 전시회 : 조수를 보내 외부 시장의 예술가들에게 홍보하여 갤러리의 평판을 높이세요. 경매도 가능합니다.

 

** 각 장소에는 전시용 조각상이 있습니다. 이 조각상들은 단순한 대리석 작품이 아니므로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치아카 쿠로아다 동정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