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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8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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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가 입술을 축였다. 이건 루스터가 키스하기 전 나오는 습관이자 행맨도 잘 아는 버릇이었다. 곧 까끌거리는 촉감과 함께 말캉한 입술이 닿았다. 누군가의 느린 한숨이 터져나왔다. 루스터가 행맨의 뺨을 부드럽게 받쳤다. 루스터는 숙달된 가이드였다. 스킨쉽과 가이딩을 구별할 줄 알았다. 루스터는 개인 감정이 섞이지 않게 최대한 억제하며 가이딩 파장을 흘러보냈다. 입을 맞출수록 행맨의 파장이 더욱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게 꼭 루스터 제 자신을 밀어내는 신호 같았다. 루스터가 느리게 입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오른손에 닿은 뺨에서부터 파장이 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반대로 자신이 멀어지는 것에 불만을 가지는 것 같았다. 파장에서 느껴지는 상반된 감정에 루스터는 행맨 속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왼손에 찬 스마트 워치를 보자 아직 할당량이 채워지지 않았다. 행맨 반응이 어떻든 가이딩은 해야 했다. 루스터가 입을 맞췄다. 이번엔 뺨에. 조금 간질거리는 가이딩에 파장이 약간 누그러들었다. 그대로 살짝 각도를 틀어 다시 입술을 포갰다.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리는 파장이었지만 조금 전보단 나은 속도로 가이딩이 진행되고 있었다. 곧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얽혔다. 루스터가 낮게 신음하고 싶은 걸 힘겹게 막았다. 동시에 이게 행맨과 나누는 첫키스라는 사실을 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행맨의 능력 부작용으로 루스터가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 후 행맨 파장은 눈에 띄게 널뛰었다. 어떨 때는 공기 중에 느껴지는 파장이 여러갈래로 퍼져 자잘한 지뢰가 터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행맨은 지금까지 해온 가이딩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행맨은 높은 등급의 센티넬이었다. 등급이 높을수록 수위 높은 가이딩은 불필요했다. 루스터 같은 가이드가 가이딩 해준다면 더더욱이. 더군다나 작전은 아직 초반 단계에 지나지 않았고 훈련 아니고서 행맨이 능력 쓰는 일은 드물었다. 기본으로 진행되는 훈련은 행맨에게 어린애 장난 같았으니 지금까지 방사 가이딩이나 접촉 가이딩으로 충분했다. 그래. 충분했었다. 센티넬은 능력을 씀으로써 가이딩 수치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정신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 훈련 강도는 변함 없었다. 행맨 파장만이 온전치 못치 못했다. 그건 가이드로써도 짝사랑하는 사람으로써도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결국 얼마 안 있어 가이딩 단계가 주의까지 내려갔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센터에서 처음으로 점막 가이딩을 지시했다.

질척이는 소리 뒤로 두 개의 스마트 워치에서 동시에 알림음이 울렸다. 안전 단계까지 도달했다는 걸 의미했다. 루스터가 몸을 떨어뜨렸다. 행맨은 별다른 제스처 없이 평소와 같이 가이딩실을 빠져나갔다. 

이젠 문제 없나? 상관의 말에 행맨이 문제 없습니다, sir. 이라고 간결히 말했다. "다행이군. 이번 작전에서 자네가 갖는 위치를 잊지 말게나." 뼈있는 말이었다. 뒤이어 작전 브리핑이 시작됐다. 육탄전보단 정보 싸움에 무게를 둔 이번 작전은 호흡이 길었다. 작전 실행일은 고작 하루였지만 목표물이 있는 작전지를 찾아내고 그걸 누설되지 않게 비밀리에 움직여야 했기에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한마디로 무엇하나 수 틀리면 모든 게 어그러질 수도 있는 작전이란 뜻이었다. 때문에 열명도 안되는 극소수 인원으로 차출 됐고 몇 안되는 정신계인 행맨이 센티넬 중 유일하게 발탁된 것이다.

브리핑 후 훈련까지 마치자 가이딩 수치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오전에 점막 가이딩을 한 덕인지 평소와 같이 간단한 방사 가이딩으로 채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십분이 채 걸리지 않는 방사, 접촉 가이딩은 굳이 가이딩실까지 가지 않아도 됐다. 루스터는 사정 거리 안에 앉아 있는 행맨에게 파장을 흘렸다. 불안정한 파장과 다르게 행맨은 겉으로 보기엔 다른 때와 다름 없었다. 루스터에게 보이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건조한 센티넬과 가이드. 동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자신을 피하거나 거리를 둘 거라 루스터의 예상과 다르게 말이다. 루스터가 느끼는 이러한 행맨 태도는 뭐랄까, 과하게 조심스러워 보였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사람처럼 작은 움직임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드는 걸까. 루스터는 알고 싶었다. 띠링. 오전과 다른,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따로 설정한 기준치에 도달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행맨은 "수고했다."는 관습적인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얼마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말에 찾아간 센터에선 아무런 단서를 얻지 못했다. 그때와 같이 잠자리 안경을 낀 센터 직원이 경과를 지켜보자는 말을 되풀이했다.

행맨은 여전히 불안정한 파장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루스터가 최대한 안전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조절하고 있었으나 조금만 삐끗해도 바로 노란불이 뜨는 주의 단계였다. 이렇다보니 효과가 미미한 방사 가이딩을 건너 뛰고 바로 접촉 가이딩을 시작했다. 연속으로 접촉 가이딩하는 건 처음이라 이러다 다시 점막 가이딩까지 가게 될까 우려됐다. 루스터는 가이딩을 핑계로 사심을 채우는 미숙한 가이드가 아니었다. 또한 행맨에게 하는 가이딩 수위가 높아질 수록 매초 신경을 곤두세워 경계선을 그어야했다. 그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센티넬 상태는 가이드에게 전염된다. 최근 행맨은 겉으로 티는 안 내도 예민한 상태였음으로 루스터도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이대론 안됐다. 루스터는 행맨을 따로 불러냈다.

"너 요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내가 알아서 할게."
"그게 가이드에게 얼마나 허무맬랑한 소리인지 너도 알 거야." 
"⋯"
"그때 이후로 계속 이 모양이잖아."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하자고."
"그게 정말 니가 원하는 거야? 가이딩 할 때 보면 꼭⋯."

루스터가 뒷말을 삼켰다.

"아무튼 난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해. 아니면 니 말대로 해줄 수 없어." 
"난 충분히 설명했어."
"허황된 감정이라고."
"그래. 지금 너까지 그런 감정 가질 필요 없어."
"말이 안 통하네."

루스터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말이 안 통하는 건 너야. 내 입장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어? 끝난 인연이 이기적으로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거."

행맨이 강하게 나왔다. 루스터는 차마 행맨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한동안 누구도 함부로 입 열지 못했다.

"⋯뭐가 됐든 우선은 파장 좀 안정시키자. 벌써부터 주의 뜨는 거 별로 안 좋아."

루스터가 행맨을 달랬다.

"내가 감정을 버리고 깔끔한 동료 관계 되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
"없어. 아마도."
"아마도?"
"⋯나도 몰라."

행맨이 답지 않게 우는 소릴 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듯 날카롭게 날뛰는 파장이 따끔거렸다.

"나도 모르겠어."

복도로 드리운 해가 구름에 가려졌다. 두 사람에게 어두운 그늘이 졌다.

루스터는 단언코 행맨을 괴롭히기 위해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행맨 말처럼 자신이 이기적으로 그를 몰아붙이는 걸까? 행맨의 파장이 불안정해진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가이드인 자신 때문이었다. 센티넬 수명을 갉아먹는 가이드라니. 세상에 존재해선 안됐다. 가이드는 센티넬의 안정, 즉 생존을 위해 존재했다. 흔히들 가이드는 센티넬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센티넬과 가이드는 공존하는 관계다. 센티넬의 능력만큼 가이딩도 한 종류의 능력이고 한 평생 지닌 사명감이다. 가이드를 잃은 센티넬의 육체처럼 센티넬을 잃은 가이드도 정신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좀처럼 행맨 말을 따를 수 없어서 루스터 자신은 가이드로써 자격 박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책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행맨이었다. 늦은 밤이었다. 이 시간에 행맨에게서, 아니. 어느 때든 행맨이 개인적으로 전화한 건 처음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설렘인지 불안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여보세요. 루스터 손에 땀이 배어나왔다. 

"나 좀 데리러 와."

꼬인 혀와 단어 사이로 느껴지는 숨에서 알콜이 느껴졌다. 어디냐고 묻기도 전에 전화가 뚝 끊겼다. 루스터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은 하나였다.

루스터 예상대로 행맨은 전에 같이 왔던 술집에 있었다. 그 때 그 자리에서 테이블에 이마를 박은 채로. 평소 동료들과 술집에 가도 적당히 마신 후 의리없다는 야유에도 먼저 자리를 뜨던 행맨이었다. 술기운이 오른다는 지난 번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최근 행맨과 관련해 새롭고 처음인 일이 많았지만, 이런 모습은 정말이지 낯설었다. 루스터가 쓰러져 있는 행맨 어깨를 흔들었다.

"행맨, 나 왔어."

고개를 처박고 있던 행맨이 슬쩍 고개를 틀었다. 풀린 눈이 루스터를 응시했다.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루스터는 긴장했다. 자고로 취객은 어떤 짓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법이다. 행맨이 손을 휘적였다. 술기운에 붉게 올라온 입술에서 나온 말은 간결했다. 

"등."
"등?"
"등 대라고."

루스터가 아, 으응. 하고 어리둥절한 상태로 행맨 말에 따라 등을 돌렸다. 뭐하는 거지? 행맨이 루스터 둥근 어깨를 짚었다. 그리곤 아래로 힘주어 내렸다. 어어? 루스터가 순순히 자세를 낮췄다. "잘 잡아." 이번에도 뭘? 이라고 묻는 루스터보다 행동하는 행맨이 더 빨랐다. 울렁이는 술냄새와 묵직한 무게감이 루스터 뒤를 덮쳤다. 자신도 모르는 새 행맨을 업은 모양새가 된 루스터 몸이 앞으로 쏠렸다. 루스터가 재빨리 바닥을 짚었다. 다른 한 손은 자신에게 기댄 행맨을 붙잡았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귓가 근처에서 가자고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루스터는 순순히 말을 들었다. 양 손을 행맨 무릎 안에 넣고 몸을 일으켰다. 

언젠가 자신도 이랬을까. 루스터는 생각했다. 그 땐 취한 행맨을 데리러 가는 게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자신은 행맨에게 어떻게 했을까. 왜 이렇게 많이 마셨냐며 구박을 했을지, 그래도 자신을 불러 다행이라며 잘 구슬렸을지. 아니지. 애초에 같이 마셨을 수도 있다. 그리고 둘 다 얼큰히 취해선 지금처럼 행맨을 업고 취한 다리로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걸었을지도. 행맨을 업고 관사로 향하는 루스터는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뭐가 됐든 지금의 루스터는 말 없이 행맨을 몇 번이고 고쳐 업었다. 밤 바람에 실려 오는 행맨의 향이 코 끝을 간지럽혔다. 

"루스터."

가만히 있길래 자는 줄 알았던 행맨이 갑작스럽게 루스터를 불렀다. 루스터가 행맨을 고쳐 업었다. 

"응."
"넌 후회 안해?"
"어떤 걸?"
"이 작전 들어 온 거."
"별로."
"왜?"
"아직 얼마 안됐잖아. 판단하기 이르기도 하고."
"⋯"
"그리고 나는 내 선택에 후회한 적 없어."

행맨이 작게 웃었다. 

"그럼 나 만난 건?"

루스터는 이 질문이 다른 시간대에 닿아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루스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후회 안 해."
"⋯"
"지난 나도 그랬을 거야. 널 만난 거, 니 가이드가 된 거 모두."
"⋯"
"니가 내 센티넬이라는 거에 감사했을 거고 내가 니 가이드라는 거에 안도했겠지."
"⋯그래?"
"그래."
"⋯그거 다행이네."

등을 타고 느껴지는 온기와 규칙적인 숨소리처럼 평온한 파장이 루스터를 휘감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루스터행맨
2023.08.18 22:32
ㅇㅇ
행맨을 괴롭히기 위해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말 괜스레 슬프다ㅠㅠㅠㅠ게다가 행맨을 만난 거 가이드가 된 것 모두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하는데...행맨의 그거 다행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네ㅠㅠㅠㅠㅠㅠ
[Code: e661]
2023.08.18 22:34
ㅇㅇ
모바일
처음 둘이 사귀었던 시간대는 어땠을까 이젠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시간대인데 오직 행맨만 그걸 기억하고 다시는 둘 사이에 그런 일이 없게 루스터를 밀어내는거 안타깝고 애달프고...ㅠㅠㅠㅠ
[Code: 67f0]
2023.08.18 22:37
ㅇㅇ
모바일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ㅠㅠ 혼자 알고 감당하고 있는 행맨도 불쌍하고, 어떻게 전개될지도 모를 미래(이자 과거) 때문에 시작부터 부정당하는 루스터도 ㅠㅠ
[Code: 17fe]
2023.08.18 22:52
ㅇㅇ
모바일
후회 안 한다는 루스터 대답 듣고 행맨 파장이 편안해졌다는 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어땠든 행맨 역시 루스터 만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뜻 같아서ㅠㅠ 가슴이 뭉클하다ㅠㅠ
[Code: 00b5]
2023.08.18 23: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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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다.. 센세 사랑해
[Code: 14d7]
2023.08.18 23:50
ㅇㅇ
모바일
후회 안 한대ㅠ 둘이 뭔 과거가 있었던거야.. 행맨 파장 불안하다가 비로소 안정되는데 카타르시스가..! 크으으 엄지척 최고최고
[Code: 14d7]
2023.08.19 01: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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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는 단언코 행맨을 괴롭히기 위해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이거 너무 마음이 아파ㅠㅠ 루스터는 이전 시간대를 기억 못하니까 그저 감정을 가진것 뿐인데 그게 행맨의 파장을 불안정하게 하고..행맨을 사랑하는 루스터로도 센티넬을 사랑하는 가이드로도 힘든 마음일텐데ㅠㅠㅠ 언젠가 자신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마저 너무 슬퍼ㅠㅠ
이미 두사람의 관계가 실패한걸 알고있는 행맨 마음도 생각할수록 슬프고ㅠㅠ 그래도 만난거 후회 안한다는 루스터의 말이 조금 위안이 되었을까 지금이 이미 경험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 현실 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둘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너무 궁금하고 현재의 둘이 각자 지닌 무게가 너무 안타까워요ㅠㅠㅠㅠ
[Code: 2e6e]
2024.04.24 19: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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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감성 수인 내 센세ㅠㅠ
[Code: 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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