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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3 01:18
전편: 태웅명헌 우성명헌 오늘밤은 천둥이 무서워용




 *
 서태웅은 규칙적인 사람이다.

 태웅은 밤 열시에 자서 아침 여덟시에 일어난다. 주 6회는 곧바로 클럽하우스로 향한다. 정확히는 운전기사가 눈을 반쯤 뜬 태웅을 싣고 클럽하우스에 내려놓는다. 클럽하우스에서는 트레이너가 계획한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웨이트. 유산소. 재활. 드리블. 슛. 팀플레이. 몸 상태에 맞춰 추가 운동을 하고 짜여진 식단을 한다. 남은 시간에는 낮잠을 잔다. 오전 운동 후 두 시간의 낮잠 장소 물색은 태웅의 몇 안되는 오랜 취미이다.

 주 1회는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잠을 더 자거나 못 본 경기를 본다. 시간이 맞으면 중계도 본다. 운동이 하고싶으면 가볍게 러닝을 하거나 짧게 농구를 한다. 동네 농구장까지 가는 길에 고양이를 만나면 수그리고 앉아 눈을 마주친다. 그렇게 도착한 동네 농구장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과 짧은 원온원을 한다. 주 6일동안 농구공을 잡았는데 나머지 하루도 생각이 난다. 열댓살 그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태웅의 일과는 언제 어디서든 다르지 않았다. 튼튼하고 무던한 몸으로 태웅은 세계 어디서든 문제없이 자고, 군말없이 먹고, 훈련을 수행하고 - 즐겁게 농구했다.

 혹자는 묻는다. 그렇게 매일 똑같이 살면 재미없지 않으세요? 태웅은 눈을 한 번 껌뻑이고 대답한다. 재미있어요. 태웅은 루틴으로 채운 삶이 좋았다. 태웅은 자신의 삶을 이루는 루틴이 마음에 들었다. 

 태웅의 거의 모든 루틴은 농구를 위한 일이었다. 태웅은 농구만으로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집을 샀을때만해도 태웅은 명헌이, 농구 팀플레이 루틴의 일부일줄만 알았던 명헌이, 그의 삶에 불규칙하게 튀어들어올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용.

 명헌은 휴일에 꽤 자주 태웅의 문을 두드렸다. 저번 겨울에는 요 앞에서 샀다며 하루는 호두과자를 하루는 계란빵을 건넸다. 하루는 붕어빵을 사 와서 입가에 대길래 물어 받았다. 고양이 같네용. 훌쩍 손을 들어 머리칼을 쓰다듬고는 몸을 돌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눈이 온 날이었다. 

 봄에는 대뜸 눈을마주치고는 뛰어내리러 가용, 이랬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가자고. 그렇게 부스스한 머리로 기차를 탔다. 둘 다 기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간발의 차로 조금 일찍 일어난 태웅은 그 때 처음으로 명헌의 자는 모습을 보았다. 봄볕이 따끈히 내리앉은 눈두덩이와 짧은 속눈썹을 보았다. 가끔 클럽의 운전기사를 기다리러 일찍 나오면 볼 수 있는 동네의 우두머리 고양이가 생각났다. 요새 볕을 받으러 자주 나오던데.
 
 태웅은 명헌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따뜻했다. 조용했다. 눈을 다시 감았다. 

그리고 얼마 전 여름의 초입에 명헌은 천도복숭아를 들고 문을 두드렸다. 복숭아 일찍 나왔어용 맛있어용. 


 집을 샀을때만해도 태웅은 명헌을, 농구 팀플레이 루틴의 일부일줄만 알았던 명헌을, 그의 휴식 루틴에 끼워넣고 싶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느즈막히 일어나 간단히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면 집안에 정적이 흘렀다. 여기서.

 Case 1. 일대일 농구가 생각나면 태웅은 똑똑, 명헌의 집 문을 두드렸다. 어제도 본 팀원이 어제도 본 농구공을 들고와도 명헌은 당황하지 않았다. 익숙해보이기까지 했다. 과연 에이스에용. 잠시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명헌이 농구화를 갖춰 신고 나왔다.
 
 Case 2. 러닝이 생각나면 태웅은 똑똑, 명헌의 집 문을 두드렸다. 이 경우 명헌은 조금 당황했다. 주말에도..뛴다고용? 정말 에이스에용. 그래도 잠시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명헌이 러닝화를 갖춰 신고 나왔다.  

 Case 3. 낮잠이 자고 싶으면 ...

 그 날은 살짝 비가 온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식탁에서 까무룩 잠든 날이었다. 눈을 뜨니 날은 제법 어두웠고 열린 창문사이로 차고 축축한 공기가 들어왔다. 

 태웅은 따뜻한 곳에서 자고 싶었다. 

 봄볕이 따끈히 내리앉은 명헌이 떠올랐다. 태웅은 명헌을 비오는 날 루틴에 들여놓고 싶었다.



 *
 "태웅"
 "네"
 "오늘밤은 천둥이 무서워용"
 "..."
 "...우리집에 올래용?"


 벨소리를 크게 설정해놓아 다행이다. 태웅은 감았던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은 어두웠고 닫힌 창문 너머에는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몰아치고있었다. 

 태웅은 명헌이 따뜻하게 잤으면 했다.

 태웅은 침대에서 나와 눌린 뒷머리를 정리했다. 태웅은 명헌의 비오는 날 루틴에 들어가고 싶었다.

 네 갈게요. 






+ 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