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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1 00:09
"태웅"
"네"
"오늘밤은 천둥이 무서워용"
"..."
"...우리집에 올래용?"
"네 갈게요"

네 갈게요, 망설임 없이 네 음절로 끝난 전화에 명헌은 되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겠다고? 이딴 전화를 받고? 명헌은 명쾌히 끊어진 핸드폰을 끄고 천둥번개가 치는 창밖을 보던 눈을 돌려 거실을 둘러보았다. 명헌은 대충 던져둔 아우터를 들어 옷걸이에 걸었다. 집 상태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오겠다고. 태웅이. 토요일 밤 11시 36분에. 다 큰 성인남성의 천둥이 무섭다는 개소리를 듣고. 아무리 태웅과 명헌이 같은 팀이라지만. 명헌이 태웅의 주장이라지만. 그리고 태웅이 명헌의 앞집에 산다지만. 요새 휴일에 일대일 농구도 같이 하고 놀러도 다니고 조금 가까워졌다지만.

나.. 위계에 의한 갑질을 하고 있는거 아닐까용. 
명헌은 태웅이 자기를 어려워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팀의 주장이고 태웅은 팀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까라면 까는 운동선수의 마음으로 오는게 아닌지. 이 시간이면 태웅은 막 잠에 들려는 참이었을거다. 아니면 이미 침대에 누운 채였을지도. 어쩌면 잠을 깨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혀엉.."
"안돼 뿅" 
"오늘 형 방에 가서 자면 안돼요오?"
"저리가 뿅"
"하지만 오늘밤은 천둥이 무섭단말이에요!"
"개소리 뿅"
"에이 명헌이혀엉~ 형의 에이스가 밤이 무서워 잘 수 없다는데! 남자친구가 돼서 말도 안들어주고!"


오늘같이 번개와 천둥이 치는 날엔 그 때 생각이 났다. 도대체. 막 열여덟살이 된 어린 에이스는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저런 말을 했다. 누가 들을지도 모르는 체육관 로비에서 온 세상에 천둥마냥 울리게. 커다란 목소리로 남자친구 어쩌구 왁왁대는 우성의 입을 막기 위해 명헌은 늘 소리죽여 속삭였다. 사감쌤 순찰 끝나면 와라 뿅. 

그리고 감시할 사감선생님도 몰래 들을 동급생도 없어진 어느 겨울날, 명헌과 우성은 서로에게 이별을 고했다. 둘만 남겨진 전화선을 통해. 번개마냥 조용히. 


...청승맞긴, 10년은 된 이야기다. 10년이 지나도 천둥은 친다는게 문제지만. 천둥이 치면 저때 생각이 난다는게 문제지만. 천둥이 친다고 에이스가 보고싶은 내가 문제지만.

"똑똑"

그리고 천둥이 친다고 와주는 에이스가 있다는게 문제지만.

명헌은 문을 열었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눌린 머리를 급하게 정리하고 온 듯한 태웅이 서 있었다. 





이건 약전편: 태웅명헌 비오는날 방안에 늘어져있는거 보고싶다
태웅명헌 우성명헌

+ 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