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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4 15:04

ㅅㅈㅈㅇ


BGSD

1: “이게 사람 같습니까? 영화도 안 봐요?”
---
5: “이 외딴 마을에 군용 드론을 보냈다는 건...”

좀비짤 ㅈㅇ 중간에 사운드(효과음) 있는데 역시 안 들어도 무관!







#47 .

종소리에 맞춰 강당으로 가는 브릿지를 건너자마자 일행은 반쯤 패닉에 빠졌다. 복도에 있던 좀비 세 마리만 유인할 예정이었던 종소리가 생각보다 힘을 더 써준 탓이었다.

아까 전부터 운동장에 도달하지 못하고 어슬렁거리던 강당 근처의 좀비들이 잔뜩 흥분한 채 먹잇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것도 강당 1층 바닥에서, 계단을 올라오려고 저들끼리 팔다리가 뒤엉킨 상태로.


득달같이 달려가 강당 문을 열려던 허니는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발 늦게 달려와 허니를 도우려던 칼럼도 마찬가지였다. 쌤... 옆에서 들리는 절박한 외침에 허니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숨이 가빠졌다. 이 숨이 자신의 숨인지 곁에 있는 다른 사람의 숨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색색거리는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침착해, 침착하고, 강당도 막혔고, 그럼 차라리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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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과 잭이 필사적으로 뒷문을 막고 있었다. 유리문 너머에서 좀비 한 마리가 아가리를 쩍쩍 벌려댔다. 아냐, 안 돼. 그럼, 앞도 뒤도 아니면, 그러면...



“매점으로 내려가!”



허니는 제가 매점 문을 미처 잠그지 못했던 걸 기적적으로 떠올려냈다. 충동적으로 선택한 것 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목적지였다. 좆만 한 매점 가건물 근처에는 당연히 스피커도 없었다. 브릿지에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야외계단도 있었다. 루트는 확보됐다.

허니가 칼럼을 선두로 아이들을 내려보냈다. 얼른, 빨리, 매점으로. 비슷한 단어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아이들이 여러 번 뒤돌아보는 게 느껴졌지만, 허니는 애써 아래쪽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체인을 대신하고 있는 조엘의 옷은 마찰력이 부족한 재질인 건지 어설픈 매듭조차 만들어지지 않고 있었다. 나머지 좀비들이 유리문을 향해 비척비척 다가왔다. 한 마리는 둘이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지 몰라도 세 마리는 위험했다.

특히나 저런, 체육 선생들이나 입을법한 나일론 재질 바람막이로는 절대로.

허니가 아직 입고 있던 칼럼의 체육복을 벗으며 달려갔다. 나와요! 이쪽으로 다가오는 허니를 확인하자마자 얼굴이 파랗게 질린 잭은 어깨로 대충 밀쳐두고 두꺼운 체육복을 문손잡이에 둘둘 감았다. 조엘이 힘을 보탰다. 그럴듯한 매듭을 완성하자마자 세 사람이 동시에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나 초점을 잃은 세 쌍의 동공과 대치했다.

허니가 침을 꿀꺽 삼켰다. 가까이에서 마주 보니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저것들은 절대, 절대로 사람이 아니라고.



“선생님! 빨리요!! 지금 오고 있어요!”



유리문을 밀어대는 좀비들에게 혼이라도 뺏긴 건지 셋은 리지의 비명이 들리기 전까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리지의 부름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잭이었다. 잭이 나머지 두 사람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운동장에서 학교로 들어가지 못한 좀비들이, 여전히 제 동료들의 괴성을 따라 몰려들고 있었다.







#48 .

아직 두근거리는 심장과 밭은 숨은 달리기가 아닌 긴장감으로 인한 것들이라, 공기 중의 색색거리는 소리는 잦아들지언정 사라지진 않았다. 세 선생님이 구르듯 매점으로 들어오자마자 셔터를 닫아버린 해리를 제외하곤 모두가 땀범벅이었다. 리지와 톰이 창문을 막기 위해 매대를 옮기자 비어버린 공간에 모두가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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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쪽으로 몰리긴 했는데 아직 근처에 몇 마리 있기는 있어요. 여기 소리는 못 듣는 것 같지만...”



마지막까지 바깥을 확인한 톰은 어쩐지 지쳐 보이는 생명 선생님에게 다가가 상황 보고인지 위로인지 모를 것을 어설프게 건넸다. 혼자 앉지도 못하고 벽에 기대 서서 숨을 고르는 선생님이 무척, 위태로워 보여서.



그리고 톰을 흘긋 올려다본 허니는 대충 머리통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직장과 함께 얻은 허리 디스크는 종종 사람을 앉지도 못하게 괴롭혔기 때문에 알짱거리는 제자에게 신경 써줄 여유가 없는 탓이었다. 허리는 아프지, 안 그래도 없는 체력은 바닥났지, 뜀박질 때문에 폐까지 따끔거리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이나 두드리는 것뿐인 현대인에게 너무 가혹한 하루였다.

그나저나... 매점이라니.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도 아닌 공간에 들어와 드디어 총알, 좀비 무리와 분리된 사람들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


...불편한 고요함.

그 고요는 영문도 모르고 일단 선생님 말씀 잘 들은 우리 학생들이 공포와 당황에 숨겨뒀던 혼란과 질문을 하나둘 끄집어내기 충분할 만큼 나풀거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어디 다친 사람은 없지? 다들 물 좀 마셔.”



같은 간단한 두 문장으로 그 흥분을 잠재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저희 왜 내려왔어요? 헬기는요? 밖에 무슨 일 있는 거죠.

웅웅웅-

지금 알려주세요. 누나 밖에 무슨 일인데? 누나가 학교에는 왜 있고? ...넌 몰라도 돼, 인마. 아, 왜!


웅웅웅-


아까 그건 왜 갑자기 총을 쏜 거예요? 우리 구하러 온 거 아니에요? 헬기 그냥 보내기로 한 거예요?



웅웅웅-





선생님!!





"""응?"""



세 “선생님”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허니 뿐만 아니라 다른 두 선생도 소음에 오래 노출된 탓에 귀가 웅웅 울려대는 건 마찬가지라, 아이들의 속삭임을 전부 걸러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지럽게 얽힌 외침 중 단 한 단어가 부산스러운 공기를 가르고 날아오기 전까지는. 선생님! 하고.

유난히 튄 목소리의 주인공은 리지였다. 세 쌍의 시선이 동시에 자신에게 꽂히자 당황했는지 자신의 입을 조금 벌린 채로 굳은 채였다. 속삭임들이 멎었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조엘이 어서 말하라는 듯 턱 끝을 까딱거렸다.

중압감에 꽉 눌렸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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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생명... 허니 선생님이요.”

“...그냥 허니쌤이라고 불러.”



다른 호칭은 영 낯간지러웠다. 허니는 와중에 호칭 따위에 신경 쓸 정신이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고작 저 한마디에 정신없이 소용돌이치던 매점 공기가 고요하게 가라앉은 것도.







#49 .

“아, 네. 그럼, 저기, 허니... 쌤.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모범생은 맞지만 선생님들께 그리 격 없을 정도로 살갑게 군 기억은 없는 리지가 어색함에 코를 찡긋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평소에 안면 있는 보건 선생님이나 무뚝뚝해도 수업은 편하게 진행하는 체육 선생님 대신 허니... 쌤을 부른 이유는 분명했다. 리지에게 그는 믿는 구석이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그러니까 아까 옥상에서 본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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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허니. 다, 말하려고... 요?”

“그럼 이 상황에 숨겨요? 그래봤자 득 될 것도 없어요.”



것 봐. 보건 선생님이 다급하게 허니쌤의 어깨를 잡아채고 소곤거렸다. 이 좁아터진 공간에서 딱히 효과 있는 짓은 아니었다만.

첫 만남에 다짜고짜 차분한 얼굴로 좀비의 특성에 관해 설명해준 선생님이 이제 와서 뭘 숨기고 자시고 하진 않을 것이라는 리지의 추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학생들을 보호하긴 하는데... 아무튼 재밌는 선생님이야.



여태 허니가 학생을 과보호하는 줄 알았던 다른 선생님들은 얼빵한 표정으로 허니를 쳐다봐야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나? 당연히 그럴듯한 거짓말에 맞장구 정도만 쳐주면 될 줄 알았더니.

생각해보면 두 사람 중 누구도 허니와 학생이 어울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잭과 조엘의 시야가 잠깐 얽혔다 떨어졌다. 상대의 눈에서 체념과 납득 같은 걸 읽어내는 덴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필요도 없던 두 사람의 동의를 얻어낸 허니는 그동안 더플백에서 물병을 꺼내 목까지 축여둔 상태였다. 이번 얘기는 아무리 허니라도 ‘좀비 영화 본 적 있냐’ 정도로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을 테니까.


자신만 바라보는 눈동자가 다섯 쌍, 잔뜩 지친 눈동자가 두 쌍, 그리고 아까부터 거슬리는 치기 어린 젊은 눈동자가 딱 한 쌍.

허니는 눈썹을 까딱 끌어올려 제 눈동자를 보였다. 언젠가부터 감정 숨기는 덴 탁월했던 눈이 이번에도 가진 동요와 불안을 잘 숨겨뒀길 바라면서, 허니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 마을은 버려진 것 같아.”



...조금 파격적으로.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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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아까 그 애매하고 묘하고 낯간지러운 분위기가 낫겠네. 허니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직후 크리스틴의 감상이었다.

크리스틴을 배려한 건지 새벽에 있던 약쟁이- 그러니까 좀비 어쩌고저쩌고의 등장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빠르게 요약한 걸 듣고 있으려니 머리가 다 아팠다. 이거 뭐야? 수업 같아. 저러다 시험에 나온다고 할 것 같다고.


그나마 뒤 내용은 옥상에서 훔쳐 들었던 덕에 간신히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었는데, 듣다 보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옆자리에 있던 빌의 덩치가 점점 더 작게 구겨지면서 오히려 공간을 더 잡아먹고 있는 게 문제였다. “벽 뚫리겠다, 새끼야.” 라고 면박을 주기엔 사실 주변에 있는 대부분 사람이 그랬다. 공포가 공기를 좀먹고 있었다.


물론 두 번째 듣고 있는 크리스틴이라고 충격이 덜한 건 아니었다. 그도 이제 어젯밤부터 있던 일련의 개판이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겪고 있는 일이라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혼란스러웠지만, 저렇게 얼빠진 상태로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옆에 앉아 있는 빌은 지난 3년간 본 빌의 모습 중에서 단언컨대 가장 얼간이 같았다. 내가 저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지.



제 안면 근육을 억지로 갈무리하는 데 성공한 크리스틴은 그제야 주변을 좀 살필 수 있었다. 빌과 아까 옥상에서 본 선생 셋을 제외하면 용감한 여자애랑 똘똘해 보이는 남자애가 하나. 그리고 뭐가 됐든 정상은 아닌 것 같은 놈이 하나 더에 축구 경기할 때마다 뛰어다니던 놈까지, 하나같이 비슷한 표정들이었다.

...분위기 좆됐네. 하하호호 웃을 것도 아니긴 한데 이건 너무 목덜미가 근지럽잖아.


크리스틴이 딱히 침묵을 못 견디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는 지금 분위기 환기를 위해 자신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어떠한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냥, 선생들은 그런 거에 신경 쓸 인간들이 아닌 것 같고, 애새끼들은 아직 저를 좀... 낯설어하고 있었으니까. 여기서도 나는 이방인이다 이거지.

씁쓸한 목구멍을 씻어내기 위해, 그리고 겸사겸사 주의도 끌 겸 크리스틴이 헛기침을 했다. 아, 나도 이런 거 진짜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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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그니까... 저기, 허니? 쌤?”

“너 나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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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네.”

“나는 허니 비, 생명 담당. 어차피 학교 나가기 전까지 같이 다닐 텐데 자기소개나 합시다. 이 선생님들은... 알아?”

“...아니요?”

“보건쌤부터 해요.”

“어, 나는 잭 로우든이고-”



뭐야, 토크쇼야? 물 흐르듯 진행되는 자기소개에 크리스틴은 잠깐 넋을 놓을 뻔했다. 난 그냥 대충 껴서 앞으로 어떻게 할 지나 물어보려고 한 건데...

제 의도대로 흘러간 건 하나도 없었지만 어쨌든 저기서 허리를 부여잡고 서 있는 선생 덕에 분위기는 조금 풀어지고 있었다. 허니 비? 생명 담당이라고?


‘너 나 모르잖아.’ 하고 단칼에 제 말을 끊어버리길래 사실 꼰대 비슷한 선생한테 잘못 걸린 줄 알았다. 수업을 한 번도 안 들었으니 당연히 초면이긴 했어도... 누가 그걸 그런 식으로 말하냐고.

하도 학생들을 싸고 돌길래 마음 여린 평범한 선생인 줄 알았더니 말투는 영 그게 아니고.

근데 또 와중에 지금은 학생들한테만 물병을 꺼내다 주고 있고. 그러고 보니 저 쌤은 내 이름이랑 얼굴도 다 알고 있었지.


남들이 자기소개를 하든 말든, 좀 특이한 선생에게 온 관심이 쏠려 있던 크리스틴을 깨운 건 옆자리에 있던 빌이었다.



“누나도 소개해.”

“나? 아... 크리스틴 스튜어트예요. 졸업반이고... 네. 그렇게 됐네요.”

“빌이랑 아는 사이야?”

“얘요? 그냥 동네에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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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는 누나 형들이랑 친해서요! 그래서 몇 번 봤어요.”



그냥 아는 누나, 형들 행동거지가 불량하다 못해 난잡하다는 건 절대 알리기 싫은가 보네. 크리스틴이 입술을 비죽거리자 빌이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그를 노려봤다.

어차피 도련님은 진짜 ‘난잡’한 파티에는 낀 적도 없으면서. 어쭙잖은 반항아 흉내 낼 때 알아봤지.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동생 놀려먹는 데에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건 크리스틴도 마찬가지라, 그냥 가볍게 어깨만 으쓱여주고 말았다.



“맞아요. 이제 자기소개는 끝?”

“아니. 이 시간에 왜 학교 옥상에 있었는지 얘기 안 했잖아. 옥상에서 따로 본 건 없고?”



음... 좀 쪽팔린데.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부분을 잭이 콕 집어 말하자 크리스틴이 눈을 한번 내리깔았다. 곤란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숨길 내용도 아니라. 크리스틴이 어제 있던 일을 짧게 요약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업 째고 (이 대목에서 눈치를 한번 보긴 했다) 옥상에서 잤다. 그런데 일어나보니 약쟁이들이 요란이길래 휴대폰도 꺼진 김에 더 잤다. 일어났더니 전쟁터더라, 하고.


그러다 다시 시선을 치켜올렸을 땐 유심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허니와 마주쳐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당시에는 좀 무서워했었다는 것 빼고는 전부 솔직하게 불었는데 저 눈빛 뭐야, 날 못 믿나?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었더니 그런 생각까지 꿰뚫기라도 한 듯 금방 무심한 눈으로 돌아와 고개를 끄덕이길래.

크리스틴은 속을 알 수 없는 선생을 경계하는 대신 짧은 이름이나 확실히 되뇌었다. 허니 비 선생님, 생명 담당, 허니쌤.







#51 .

자기소개 후 매점의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나니 시간은 벌써 저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밖은 여전히 시간 맞춰 지랄맞게 울려대는 종소리와 그때마다 발작을 하는 좀비들의 괴성으로 엿 같은 합주를 해대고 있는데도. 야속하게 짧아진 해는 얄짤없이 뉘엿뉘엿 기우는 중이었다.


매점 내부보다 좀비가 몰려 있는 야외가 더 소란스러워 다행히 그것들의 표적이 되는 일은 없었으나 가벽을 파고드는 가을 밤바람은 차가웠다. 식량은 충분했지만 창문을 가려버린 탓에 밖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 추위와 불안감은 잭이 전기난로를 찾아내고 번갈아 가며 매대 사이 틈으로 바깥을 살펴본다고 해서 해소되는 건 절대 아니었기에.



난로와 가까운 자리를 남들에게 양보한 허니는 그래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애써보고 있었다. 가령 보초를 자처한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비록 야외를 관찰할 수 있는 틈이 하필 웃풍이 가장 심하게 새는 곳이라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허니는 온몸을 감싸고 지나가는 한기에 몸을 살짝 떨다가- 뻣뻣하게 굳었다. 아 맞다. 아... 씨발......


허니가 터덜거리며 난로 곁으로 돌아왔다. 죄책감에 최대한 몸을 옹송그리고 있어 안 그래도 크지 않은 체구가 더 작아 보였다. 잭이 허니를 위해 엉덩이를 움직여 곁을 내주었지만, 허니는 그 자리에 멀뚱히 서서 입을 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덤덤한 목소리 끝이 어쩐지 조금 갈라지는 것 같았다. 소곤거리며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허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칼럼, 내가 네 체육복을 저기 묶어버렸다.”

“네? 아, 그거요? 괜찮아요. 쌤 근데 안 추우세요?”

“내가 문제가 아니야. 거기 주머니에, 경비실에서 가져온 열쇠 꾸러미가 있는 게 문제지.”

“...열쇠?”

“...미안.”


“...”


“아닙니다. 그땐 정말 급했으니까...”

“그래요. 그, 지금 열쇠 있다고 뭐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허니의 더플백에서 담요를 찾던 조엘이 퍼뜩 머리를 쳐들었다. 고작 담요 문제가 아니었구나. 묘하게 쳐져 있던 허니의 어깨를 신경 쓴 건 조엘뿐만이 아닌 듯, 조엘과 잭이 나란히 허니 대신 당시 상황을 변호하고 나섰다.

사실 잠깐만 생각해보면 있는 줄도 몰랐던 열쇠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덩치 큰 두 남자가 허둥거리자 오히려 심각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만히 사태를 관망하던 해리가 결국 나서서 맥을 끊어버릴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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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매점 열쇠라도 있었어요?”

“응.”

“...어차피 밖에서 잠그지도 못해요. 잠가봤자 창문 깨고 들어오면 끝이고.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됐어요. 그리고 솔직히, 다들 여기 천년만년 있을 것도 아니잖아요.”



겨우 찾은 보금자리다운 보금자리에 다들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해리의 말이 맞았다. 아까 찾아온 불친절한 아군이 운동장의 좀비를 처리해주긴 했어도 학교는 여전히 위험했다.

그마저도 중간에 총알이 떨어졌는지 후퇴하는 바람에 학교 내부에 있던 좀비들은 손도 못 댔고. 설상가상으로 소란 때문에 동네에 있던 동족들이 더 몰려오는 것 같았다. 게다가-



Rrrrrr-

“캬아악!”



지치지도 않는 건지, 종소리를 배경 삼은 합창은 아직 주변을 맴돌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고.







#52 .

그러니 고작 과자랑 음료수에 목숨 걸자고 학교에 머무르는 건 미친 짓이라는 소리다. 피로와 고단함을 구실로 모르는 척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꿈에서 깰 시간이었다. 아늑한 매점을 버릴만한 명분이 누구의 입에서든 튀어나와야 했다.

예를 들면, 해리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잘못 하나 한 김에 악역도 자처하기로 한 허니 같은 사람의 입에서.



“해리 말이 맞아. 매점에서 아무리 오래 버텨봤자 지금처럼 바깥도 제대로 못 보면 아무 소용 없을 거예요. 구조 신호도 못 보낼 거고.”

“...”

“그렇다고 여기 얌전히 웅크리고 있다가는... 새벽에 계엄령 떨어졌으니 학교에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

“좀비가 너무 많아서 애초에 구조를 포기했을 수도 있죠.”

“...”



작은 호응조차 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말이었다. 물론 허니도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고, 일종의 통보였다. 앞으로 할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밑밥들. 잔뜩 지친 사람들이 곧 닥칠 시련에 대비하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허니가 그 모습을 가만히 담다가, 원래 하려던 말을 거두고 천천히 말을 골랐다. 다 아는 잔인한 사실을 굳이 짚어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쌤들 차 가져왔죠? 어딨어요?”



예견된 지옥행보다는 조금이라도 희망찬 미래가 나았다. 집으로 가자. 허니는 오늘 지겹게 했던 약속을 지켜야 했다.







#53 .

잭과 조엘의 차는 강당 뒤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었다. 다행히 누구누구처럼 경차를 모는 사람도 없었다. 일반 승용차가 팔다리 길쭉한 장정들 네댓 명쯤 견디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하, 죽으라는 법은 없다니까. 허니가 쓸모없어진 제 차 키를 더플백에 던져 넣었다.


탈출 계획을 짜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다. 매점에는 종이도 펜도 차고 넘쳤고,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머릿속에는 이미 지도가 훤했다. 대충 큰길과 건물 몇 개만 표시한 허접한 지도 위에서 허니가 펜을 고쳐 잡았다.



“이제 각자 집 주소 불러.”



허니를 포함한 선생들은 모두 집이 다른 마을에 있으니 나중으로 미뤄두고, 간단한 호구조사가 시작됐다. 아이들은 별 망설임 없이 제집의 위치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집에 다른 사람이나 무기, 버틸만한 식량이나 재난을 대비한 용품이 적절하게 갖춰져 있느냐는 허니와 조엘의 질문에 얌전히 대답도 했다.

한 사람 빼고.



집 주소를 묻기도 전에 크리스틴은 허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대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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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요.”



라고만 말했다. 그리곤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애꿎은 지도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허니가 눈을 깜빡였다.

분명히 닿았었는데. 눈꺼풀 뒤로 자취를 감춘 감정이 있었는데.

이상한 느낌에 허니가 크리스틴을 가만히 쳐다보는 동안 조엘은 펜을 돌리다 무심하게 한마디 했다. 부모님은?



“부-”

“그래서 주소는? 안 가봐도 돼?”



...하려고 했다. 허니가 재빨리 조엘의 말을 가로채기 전에는. 크리스틴의 턱이 살짝 들렸다가, 다시 푹 수그러들었다.

집에 별 건 없는데... 먹을 것도 없고요. 근처에 마트는 하나 있을걸요? 지금은 안 열었겠지만...

되는대로 주워섬기는 말끝이 티 나게 흔들렸다. 꽉 쥔 주먹 아래의 손톱자국이 더 깊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럼 나랑 가자. 우리 집으로. 됐지?”

“네?”

“싫으면 말고. 출발하기 전까지는 대답해라.”

“어... 네.”



얼떨떨한 얼굴을 한 크리스틴의 손을 살짝 쥐어 펴주고, 허니는 밖을 감시하던 잭을 불러 이동 동선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제 옆태를 눈빛으로 뚫고 있는 크리스틴을 애써 무시한 채로.


어린애가 계속 어른처럼 굴면서 날이 서 있길래 신경이 쓰였는데, 고작 눈 한번 내리깔았다고 또 그 나이대 애들처럼 보여서. 제 일탈을 고백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쳐진 속눈썹에 허니의 입이 멋대로 움직이고 말았다.


이 상황에 그 좆만 한 집에 누굴 들여. 허니의 이성이 잠깐 그를 막아섰지만, 저 어린애는 좋은 집이 아니라 갈 곳이 필요한 거였으니까. 허니가 그걸 모르는 척하면 안 되는 거니까.







#54 .

동선 회의는 의외로 금방 끝났다. 최종 탈출 계획도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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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점에서 되도록 많은 짐을 챙긴다.
2. 주차장에 간다. 짐은 우선 들고 탄다. 나중에 트렁크에 넣든 말든.
3. 차를 타고 학교를 빠져나가 가장 가까운 빌의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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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만, 간단했다.



단순 무식한 계획이 낳은 단 하나의 오점은 당연히 2단계의 ‘주차장에 간다.’ 부분이었다. 톰은 생각했다. 그러니까 주차장까지 어떻게 갈 건데? 좀비한테 팔다리 하나씩은 상납하고 그냥 가는 거야?

사실 이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다. 그들이 매점에 갇힌 이유, 아침부터 종일 개고생한 이유. 학교를 장악한 좀비들을 뚫고 돌아다닐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

물론 딱 주차장까지만 뛰어갈 거라면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할 수는 있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종이 울리길 기다리며 여기서 하루 노숙을 하거나, 어두운 달빛에 도박을 걸고 살금살금 빠져나가거나.

하지만 둘 다 무사히 나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활보였다.

좀비들 특성을 이용하면 그것들을 유인할 방법이 분명히 있을 텐데. 아까 허니쌤 말처럼 방송실에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긴 해. 거기까지 가는 길도 막힌 게 문제지만... 톰의 머릿속에서 여러 방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라, 계획은 잠정적으로 보류됐다. 오늘은 많이 지치기도 했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체력부터 보충해두는 게 좋겠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계속해서 바깥의 동향을 살피던 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매점의 중앙으로 얌전히 돌아왔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고. 칼럼이 박스를 펼쳐 그럴듯한 잠자리를 만드는 걸 보고 톰은 허니 선생님의 더플백에 있던 담요를 떠올렸다. 그리고 근근이 팔뚝을 쓸어내리며 몸을 부르르 떨던 선생님도 같이.

톰은 선생님들에게, 일행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얌전히 도움받는 학생 캐릭터로 남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무심코 더플백에 손을 넣어 휘젓다가 잘그락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했을 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분이 빠르게 들떴다. 어디는 둥글고 어디는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쇠의 촉감. 톰이 빠르게 허니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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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쌤!”

“응?”

“이거, 이거 열쇠 아니에요?”

“열쇠? 아... 이거 그냥 내 개인 열쇠들이야. 이건 집이랑 교무실 책상 열쇠, 그건 차 키.”

“아하...”

“...찾아줘서 고맙다. 아까 그것 때문이면 너까지 신경 안 써도 돼.”



반짝 뜨인 톰의 눈이 티 나게 쳐졌다. 어린 마음을 눈치챈 듯 허니가 어깨를 툭툭 쳐줘도 그대로였다. 그대로, 시선을 축 늘어뜨린 채.

난감한 얼굴의 선생님이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괜히 매대에 있던 과자를 열 맞춰 정리할 때까지 톰은 가만히 열쇠뭉치만 쳐다보고 있었다.



유인, 소리, 열쇠, 자동차, 좀비... 톰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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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쌤, 이거 선생님 차 키라고 하셨죠.”

“응, 근데 내 차 안 탈 거야. 그냥 대충 어디 넣어둬.”

“아뇨, 그게 아니라... 이거, 원격으로 문 열리는 거죠?”

“그렇지?”

“문 열릴 때, 소리도 나고요?”

“...그렇, 지.”



세상에, 이 똘똘아.

허니가 입을 떡 벌렸다. 톰이 환하게 웃었다. 우리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55 .

허니가 안 그래도 폐차할 예정이었지만, 정말로 좀비 소굴에 홀로 남아 개박살이 날 예정인 자신의 차를 잠깐 애틋하게 바라봤다. 그래도 처음으로 산 차였는데... 저거 끌고 다니고 수리한다고...

돈을 더 썼지......

갑자기 열 받네. 잘 있어라 똥차야. 허니는 지체하지 않고 차 키의 버튼을 눌렀다.



삑삑


허니의 애마가 애타게 울었다.

엄마, 이렇게 절 버리고 가시나요.



삑삑


응.

허니가 다시 버튼을 눌러 화답했다. 좀비들이 열렸다 닫혔다 반복하며 열심히 삑삑거리는 차를 서서히 에워싸기 시작했다.



삑삑
살려주세요!


자동차의 비명 같은 게 사람인 허니 귀에 닿을 리가 없었다. 삑삑- 멀리 있던 좀비들이 서서히 달려오고 있었다. 삑삑- 이제 형태만 얼추 보이는 자동차가 양옆으로 들썩거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삐이익- 삐이익-



센서를 얻어맞은 자동차의 단말마는 제법 괜찮은 미끼가 되어 주었다. 다급한 발소리와 차 문이 여닫히는 소리, 그리고 바퀴가 미끄러지듯 굴러가는 소리 따위가 잔뜩 흥분한 포식자들을 자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직 교문을 비추는 CCTV 화면에서 승용차 2대가 나란히 스쳐 갔다.



어두컴컴한 밤이 내린 학교는 10분 동안 비명을 질러댄 후에야 전날 밤의 고요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교주너붕붕으로 좀아포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허니쌤





학교 탈출! 재업도 끝!!

집에 가자!!!

https://hygall.com/528127179

약 빌슼너붕붕 칼럼너붕붕 해숙너붕붕 토모너붕붕 리지너붕붕 리지올슨너붕붕 로우든너붕붕 조엘너붕붕 클틴너붕붕 + ???너붕붕 X 3
2023.02.14 16: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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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돌아와 줬구나!!!!!억나더..!!!!!!!!!!!!!!!!!!!
[Code: bcbb]
2023.02.14 16: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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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아아아아악!!!!!! 센세!!!!!!! 허니쌤!!!!!!! 돌아왔구나!!!!!!!
[Code: 0b7a]
2023.02.14 16: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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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허니네 자동차 개웃곀ㅋㅋㅋ
[Code: 0b7a]
2023.02.14 17:1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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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어 톰 똑똑해
허니비와 모두 무사히 나가서 다행이야
[Code: 9097]
2023.02.14 22: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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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드디어 학교 탈출
[Code: c0eb]
2023.02.14 23: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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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한명한명 최고다... 센세 천재만재야ㅠㅠㅠ 억나더ㅠㅠ
[Code: c50a]
2023.02.15 00: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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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최고 오래보자 센세
[Code: d85c]
2023.02.16 13: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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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왔구나 사랑해 나 진짜 저번화에서 어케 될지 너무너무 궁금햇는데 결국 매점 가는구나 그리고 허니 붕붕이가 말하니까 너무 불쌍해짐 ㅜㅜㅜㅜ 좀비 사태 끝나고 다시만나자 크리스탈이랑 허니 뭔가 안맞는데 맞는것도 너무 좋아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좋다는걸 자세하게 못 말하겠는데 센세 글이 너무너무 좋아서 다섯번 정독했어 사랑해 센세
[Code: f632]
2023.02.18 03: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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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또 정주행하고 왓어 센세 현생일 내가 다 하고 센세는 글만 쓰게하고 싶다 진심으로 ㅠㅜ 매일 센세를 기다려 난..
[Code: 402f]
2023.02.20 01: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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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최고!
[Code: 1fbe]
2023.02.21 01: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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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보고싶다
[Code: 14bb]
2023.02.22 08: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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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어디야.. 나 기다리고 잇어
[Code: 3aef]
2023.02.23 02: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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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오늘도 기다린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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