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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0 20:35
ㅅㅈㅈㅇ

BGSD

1: “이게 사람 같습니까? 영화도 안 봐요?”
---
4: “얘들아, 절대로 등은 보이면 안 된다.”

좀비짤 ㅈㅇ 중간에 사운드(효과음) 있는데 역시 안 들어도 무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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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총성쯤 견디는 것뿐이라면 일도 아니었을 텐데. 바로 귀 옆에서 들리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정말 간지럽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제 품 안에서 움찔거리는 작은 몸은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아서.

주먹을 꽉 쥔 채 굳은 손을 펴줄 생각은 당연히 못 했고, 큰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귀를 제 손으로 덮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시선을 잠깐 떼는 것도 걱정스러울 정도였으니 땅을 기는 게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또 다른 괴물을 확인한 건 정말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만큼 매서워진 조엘의 눈이 노랗게 빛났다. 저건...


귓전을 때리는 소음을 뚫기 위해 조엘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아마 이 학교에 발령 난 이후 냈던 목소리 중 가장 큰 목소리였으리라.



“잭! 애들 데리고 저기 아래로 가요!”

“네?”

“거긴 위험합니다! 일단 문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요!”



잭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저게 대체 뭔데요? 진짜 군인이에요? 이게 무슨 상황인데요? 저거 진짜 총이죠? 그런데 왜 숨어요? 그러다 헬기가 우리를 놓치고 가 버리기라도 하면요?

지금은 좀비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 갈기고 있다지만, SOS 신호로 ‘아직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조엘의 얼굴은 단호했다. 아까 허니와의 대화를 -아마도- 본의 아니게 엿들은 잭은 일단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체육 선생의 말을 듣기로 결정했다. 잭이 아이들에게 몸을 가릴만한 판자를 쥐여 주자마자 계단실을 향해 등을 떠밀었다.

“먼저 들어가 있어. 어디 가지 말고 가만히 있고. 뭐라도 덤비면 배트로 계단에서 밀어버려. 할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인 학생들은 한술 더 떠 쇠 파이프 몇 개를 주워 들고 철문을 향해 달렸다.

해리를 마지막으로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잭이 곧바로 몸을 낮춰 조엘과 허니에게 다가갔다. 잭은 다 큰 청소년은 어른을 간절하게 필요로 하진 않는다는 걸 알았다. 허니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지만.







#40 .

허니, 허니쌤. 괜찮아요? 혹시 맞았어요?

익숙한 음성 덕분인지, 허니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돌아왔다.



“이게, 무슨...”

“일단 안으로 피합시다. 잭, 그쪽 좀 부축해줘요.”

“네. 허니, 나 잡아요.”

“잠시만, 잠깐만요.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죠. 지금 운동장만 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이 틈에 SOS라도 완성해야죠. 헬기 저거 사라지면 또 언제 올 줄 알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허니가 약하게 저항했지만, 두 덩치는 선뜻 물러나 주질 않았다. 오히려 조엘은 고집스럽게 입매를 굳히곤 허니를 반쯤 억지로 들어 올리려는 듯 팔에 힘을 줬다. 이번엔 아까보다 강한 힘이 조엘을 밀쳤다.

체육쌤!

드물게 약간의 분노를 띤 허니의 목소리가 여전히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조엘에게 날아왔다. 그러나 조엘이 그 정도로 타격을 입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반동에 의해 조금 비틀거린 허니를 잭이 다시 붙들었다.


졸지에 두 남자 사이에 갇힌 꼴이 된 허니가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안 들어 죽겠다는 뜻을 담아 인상을 와락 구겼다. 안절부절못하는 잭과 여전히 설명이 없는 조엘. 그리고 빌어먹을 괴성들. 허니가 기어이 주먹이라도 내지르려던 순간, 조엘이 철문보다도 무거운 입을 열었다.



“저거 구조헬기 아닙니다. 사이즈는 좀 크지만, 무인 군용드론이에요. 사람 탈 자리도 없고 아마 열 감지 센서로 작동될 겁니다.”

“...네?”



당신의, 우리의 희망에 사형 선고를 내린 조엘의 입에는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한눈에 봐도 구조 헬기는 아니었는데. 좀 자세히 볼걸. 특수 작전 수행 때 직접 본 적도 있는 신식 무기였다. 전역한 지 얼마나 됐다고 빠져가지고. 나라도 정신 차려야 할 상황에 넋이 나가서는.


조엘이 끝도 없는 자책에 빠지는 동안 집 나간 허니의 이성은 오히려 착실하게 돌아오고 있었다. 무인, 군용, 드론? 단어 하나하나가 머릿속을 느리게 훑고 지나갔다.

무려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조엘의 말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허니가 아까까지 자신을 붙들고 있던 남자들의 팔뚝을 반대로 강하게 붙잡았다. 잠깐 저기서 얘기 좀 해요. 보건쌤도.







#41 .

우선 학생도, 총알도 없는 계단실 뒤에 몸을 숨긴 채 옹기종기 모인 세 선생님이 머리를 맞댔다.

희망이 부서져 아직 넋이 나간 민간인 한 명, 자책에 빠진 전직 군인 한 명, 그리고 남이 정신을 놓자 다시 정신을 차린 허니쌤이 한 명.

먼저 입을 연 건 허니였다.



“이 외딴 마을에 군용 드론을 보냈다는 건...”

“...마을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수도 봉쇄한 게 고작 오늘 새벽이잖아요. 벌써 마을 단위로 포기를 해요? 멀쩡한 사람들은요?”



잭의 말에 허니도 처음부터 이해가 가지 않던 부분들을 짚고 넘어갈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럴만한 시간도 없었고. 우선 그 정도는 대충 뭉개 이해하고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예측하는 게 먼저였다.



“수도 봉쇄와 동시에 계엄령 선포됐으니까요.”

“그래도 벌써 저 정도로 막 나갈 줄은...”

“일단 옥상에 머무르는 건 위험해요. 교실로 돌아갑시다.”

“하...”

“예.”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잭은 여전히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조엘은 다행히 허니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개까지 끄덕이며 상황을 마무리하는 데 동조해줬다. 그리고 크리스틴도 제법 진지한 얼굴로 허니를 지지해줬-



응?



“...”

“...”

“...크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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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로 안 가요?”







#42 .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한 곳을 향했다. 쟤는 분명히, 허니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애들한테 관심 없는 선생 중 학생 이름은 제일 잘 외우는 허니쌤은 졸업을 앞두고 있는 크리스틴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수업을 하도 안 나와서. 근데 쟤가 지금 왜 여기서 나와?



어제 오후쯤,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다는 핑계로 또 땡땡이를 친 크리스틴이 향한 곳은 학교 옥상이었다. 이 거지 같은 촌구석 학교는 늘 공사를 하다 말다 난리법석이라 공사 자재가 옥상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평소처럼 계단실 옆쪽 명당에 매트리스 하나를 깔고 누운 크리스틴은, 날씨가 정말 좋긴 했는지 그만 깜빡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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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단잠을 잔 크리스틴이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새카만 밤하늘이었다. 아 씨발, 졸라 오래 잤네. 지금 이게 몇 시야? 몸을 벌떡 일으켜 두리번거리며 휴대폰부터 찾는데 귀에 거슬리는 작은 소음이 콕 날아와 박혔다. 이게 뭔 소리야. 크리스틴은 어둠에 금방 적응한 건강한 눈을 번뜩이며 소음의 진원지로 향했다. 나 말고 어떤 앙큼한 새끼가 이 시간에 학교에 기어 들어와 있어?



...앙큼한 새끼, 들인가? 저게 뭐야.

밤, 그리고 학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무리가 교문에 늘어서 있었다. 설마 이 계절에 담력 훈련하러 오는 애새끼들도 아닐 거고. 척 봐도 수상해 보이는 모습에 크리스틴은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찾았다. 경찰, 경찰 부르자. 근데 왜 저 낮은 담을 넘지도 않고 돌아다니기만 하지? ...더 이상해. 소름 돋아 씨발...



재킷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휴대폰을 찾기 위해 크리스틴은 매트리스까지 한 번 뒤엎어야 했다. 다행히 휴대폰은 매트리스 바로 옆에서 찾을 수 있었지만, 자는 동안 노래를 틀어둔 탓에 이미 방전된 지 오래인 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 젠장. 어쩌지. 지금 몰래 뒤로 빠져나갈까? 전원 버튼을 꾹 눌러 켜자마자 다시 꺼지는 화면을 보다 주머니에 휴대폰을 쑤셔 넣을 때였다.



“이보세요, 누구십니까? 이 시간에 학교 오시면 안 돼요!”





“키야아악!”





크리스틴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긴 채 밖을 살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손전등 불빛이 어지럽게 굴러다니며 괴상한 인간들을 마구잡이로 비췄다. 맨정신의 인간은 낼 일이 없는 톤의 비명이 고요한 학교를 떠들썩하게 채웠다.

크리스틴은 제 숨소리도 끼어들 틈이 없을 것만 같은 분위기에 입을 합 다물었다. 그 와중에도 아래의 상황을 눈에 똑똑히 담는 것은 잊지 않았다.


손전등 불빛은 학교를 몇 바퀴 돌다 강당으로 곧장 향했다. 미친 인간들이 그것을 쫓아 강당으로 들어갔다. 기적처럼 문이 닫히고, 그 안에서 괴성이 몇 차례 흘러나오고.

정적.



학교는 다시 익숙한 적막을 찾았지만, 이전의 고요한 분위기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으리라. 크리스틴은 한참을 굳어 있다 얌전히 매트리스로 돌아가 몸을 웅크렸다. 상황을 모르는데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휴대폰 배터리는 다 됐고, 라디오 비슷한 걸 들을 수도 없고,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쓸데없이 넓기만 한 학교에 혼자 남겨진 크리스틴이 할 수 있는 건, 부디 이 모든 일이 꿈이길 바라며 다시 눈을 감는 것뿐이었다.





와... 여기 진짜 명당이네. 이 상황에 잠이 오네.

크리스틴이 다시 눈을 뜬 건 종소리와 함께 강당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미친 마약중독자 무리의 비명 덕분이었다. 꿈은 아니겠네. 오히려 한 번 받아들이니 마음은 편해진 게 다행이었다. 좆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근데 종이 울렸는데 학생들이 등교를 안 하고 말이야. 경찰은 언제 오는 거야? 피까지 질질 흘리며 돌아다니는 인간들을 가만히 둘 리는 없으니, 크리스틴은 우선 가장 안전한 장소일 옥상에서 적당히 뭉개고 있다 경찰이 오면 소리라도 질러서 구조를 요청할 생각이었다.

날이 밝아져 시야가 트였다고 어제 집어먹은 겁을 도로 뱉어낸 크리스틴이 계단실 외벽에 달린 사다리를 타고 위로 훌쩍 올라갔다. 광합성이나 하자. 경찰 금방 오겠지. 태평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에 크리스틴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그건 신원이 불분명한 저 미친 마약중독자 새끼들이 쳐들어왔을까 봐 놀라서 그런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유 때문, 은 아니었다. 그냥 따뜻한 햇볕에 졸다가 평소 습관이 튀어나온 거지. 매일 하는 일이 옥상에서 몰래 수업 빼먹고 담배 피우다 선생들을 피해 숨는 것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행히 옥상 문을 열고 온 자들은 평범하게 대화하고 행동했다. 뒤늦게 그들이 수상한 자들이면 어쩌나 걱정할 틈도 없을 정도로. 물론 야구 배트를 든 채로 정체불명의 책이나 테이프를 온몸에 칭칭 감고 있긴 했지만.

동태를 살피느라 계단실 위쪽에 여전히 몸을 숨긴 상태였던 크리스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남자가 보건실에 앉아 있던 선생이라는 걸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아니 근데 경찰을 안 부르고 왜 저 꼬락서니로 옥상을 왔어? 불길한 예감에 귀를 쫑긋 세워봐도 그들은 군대니, 뭐니 쓰잘데기 없는 잡담이나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틴은 곧 쓰잘데기 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본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 왜 아직 숨어 있지. 지금 나가기 되게 뻘쭘한 상황 같은데.


결국 그렇게 나갈 타이밍만 한참을 재던 크리스틴이 마주한 건 다정한 인사가 아닌 비명과 총소리였다. 크리스틴은 우선 귀를 막고 매트리스 아래 겨우 몸을 숨겨 총소리가 멎기를 기다렸다. 아니 그런데 그 한시 바쁜 타이밍에 저 아래서 안으로 들어가네 마네 하고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빼꼼 들고 확인해보니 보건 선생으로 보이는 남자와 동료 선생들로 보이는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계단실 뒤편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좋아, 지금이다.

드디어 쓸모 있는 이야기를 엿들으며, 크리스틴이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로 합류했다. 음음, 저건 군용 드론이고. 그래요. 교실로 돌아가는 게 좋겠네. 제법 진지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 쌍의 시선이 동시에 날아들 것을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다. 근데 여기서 하하 안녕하세요? 하고 등장하는 것도 웃기잖아.

나도 선생-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당신-들이 초면이니까 이 사람들도 날 모르려나? 자기소개부터 할까? 침묵 틈에서 태평한 고민을 하고 있는 크리스틴의 생각이라도 읽은 건지, 얼빠진 목소리 하나가 작게 흘러나왔다.



“...크리스틴?”



오, 내 이름을 아네. 그런데 누구더라.







#43 .

“우리 학교 학생입니까?”

“네. 졸업반 크리스틴이에요. 너 대체 어쩌다가...”

“그게...”



두두두-



네 사람이 동시에 귀를 틀어막았다. 크리스틴이 나타난 건 나타난 거고, 좀비와 총알은 아직도 지척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드론의 총구가 언제 자신들을 향해 돌아설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유롭게 통성명할 시간 따위는 없다고 경고라도 하듯이.

조엘은 일단 허니가 아는 학생이라고 했으니 데리고 다닐 일행이 한 명 더 늘었다고만 생각하기로 했다. 행색이 좀 불량하긴 했지만 자세한 사정은 총알 밭이 아니라 아늑한 교실로 돌아간 후에 들어도 늦지 않을 테니까.

마침 학생도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으려는 건지, 혹은 그럴듯한 거짓말을 지어내는 건지 잠깐 입을 다물어주고 있는 참이었다. 조엘이 드물게 대화의 맥을 끊고 나섰다.



“사정은 나중에 듣도록 하고, 우선은 교실로 돌아가죠. 여기는 위험합니다.”

“아, 그래요. 크리스틴 넌 내 뒤로 붙어.”

“넵.”



말을 잘 듣는 불량아인가. 조엘의 우려와는 다르게 크리스틴은 얌전히 허니 뒤에 제 몸을 바짝 붙였다. 아니면 허니 선생님이 사실은 수업할 때 조금 무서운 이미지였나. 이상하게 아이들이 허니를 잘 따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따지고 들 정도로 중요한 궁금증은 아니었지만. 조엘이 근처에서 제 몸을 가릴만한 널빤지를 주워들었다.



“제 뒤에 붙어서 일렬로 가는 겁니다. 신호하면 곧바로 계단실로 진입할 거고. 보건 선생님이 문 열고 대형 유지하면서 들어갈게요.”

“그냥 지금 들어가죠? 총소리도 작아졌는데.”

“총소리가 잦아들면 비행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타깃을 찾는 중일 확률이 높지. 차라리 운동장 쪽을 향하고 있을 때 움직이는 게 낫습니다.”

“네? 아, 네. 그럼 조금만 기다립시다.”



질문을 던진 건 크리스틴이었는데 어째 마지막 대답은 허니의 몫으로 넘어가 있었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만 있던 허니는 조엘의 눈길을 받고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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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이 사람한테 보고 비슷한 걸 하고 있지?

그제야 제가 허니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조엘이 얼른 시선을 피했다.


총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부대에 있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확실하게 허니를 인식하고 있었다. 조엘은 아까부터 묘하게 허니의 지시나 허락 비슷한 게 떨어져야 전체 상황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사람이 우리의 팀 리더인가?

애들이 왜 말을 듣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군대에 몸담으며 타고나길 리더로 태어난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지만 이렇게 묘하게 침착하고 핀트 나간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뭐, 그게 나쁘다기보다는...

그래도 제법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엘이 마음속에서 허니에 대한 제 생각을 고쳐먹는 동안 옥상에 울려 퍼지는 총성이 그 데시벨을 점점 키워갔다. 날카로운 괴성은 덤이었다. 널빤지를 쥔 조엘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셋 셀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허니를 곁눈질로 확인했다. 하나, 둘, 셋.







#44 .

네 사람은 무사히 계단실로 진입할 수 있었다. 다행히 드론의 총구는 운동장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좀비들에게 내내 고정된 채였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조엘이 문을 닫기가 무섭게 계단실은 잔뜩 흥분한 속삭임으로 웅웅 울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총은 뭐예요?”

“헬기 아니었어요? 우리 못 봤대요? 왜 총을 쏴요?”

“크리스틴? 누나가 왜 여기 있어?”

“뭐야, 그러는 빌 너는 왜 있냐?”




아...

정신없다.



허니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총성에 피로를 호소하는 귀를 부여잡자 잭이 얼른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얘들아, 일단 내려가자. 가서 다 설명해줄게. 심상치 않은 세 선생님-그리고 단연코 가장 엉망인 얼굴을 한 낯선 학생-의 분위기 덕분에 예정되어 있던 소란은 조금 뒤로 미뤄질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들려오는 총성도 제 몫을 해냈겠지만.

그리 고요하지만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조엘이었다. 계단참에 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일행들을 향해 검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쉿.

큰 소리 없이 이목을 끌어온 그가 천천히 앞장서서 계단을 한 칸 내려갔다. 따라오라는 무언의 고갯짓에 아이들은 설명을 요구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아내고 숨을 죽였다.

계단실 내부를 떠돌던 흥분이 차츰 가라앉았다. 총소리와 비명이 요란했다.







#45 .

계단을 내려가는 건 희망의 원동력이 필요할 만큼 힘든 일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각자 마음속에 묻고 싶은 것, 토해내고 싶은 것들을 꾹 눌러 담은 발걸음들은 소리 없이 무거웠다.

바깥의 총격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럴수록 계단 한 칸, 한 칸이 신중해져야 했다. 허니가 소리를 줄이기 위해 신발을 벗어야 할지 조엘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조엘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한때 무뎌졌으나 점차 예전의 날카로움을 찾아가는 군인의 감이 조엘의 모가지를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고.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라고-



“ㅆ, 돌아요. 돌아.”



군인의 감이 아직 조엘을 배신하진 않은 듯, 조금 앞서 나가던 허니가 교실이 있는 2층 복도를 살피더니 얼굴이 희게 질려 속닥거렸다.

허니의 공포는 다른 사람의 것보다 빠르게 사람을 몰아가는 능력이 있었다. 뭐가 있구나, 모두가 동시에 같은 추측을 했다.

총 여덟 쌍의 신발이 일제히 계단 위에서 바짝 굳어 배회했다. 한 쌍의 신발은 여전히 2층 바닥에서 코너 너머를 흘끔거렸다. 허니가 복도를 한번, 건너편의 브릿지를 한번, 계단에 동동 떠 있는 사람들을 한 번씩 확인했다. 소리 없이 들썩이는 어깨가 한숨을 대신했다.



‘셋.’

‘셋?’

‘교실 앞.’

‘상태는?’

‘건강.’



‘건강’을 설명하며 보디빌더 흉내를 낸 허니를 향해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셋이라니. 아까 잭과 조엘을 뒤쫓아 2층까지 올라왔던 놈들이 분명했다. 올라갈 땐 잘만 숨어 있더니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총소리가 잦아든 지금 교실 앞에 있는 좀비를, 그것도 세 마리나 아무 소란 없이 제압하기는 불가능했다.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는 건 정말 힘 빠지는 일이라. 조엘과 손짓, 발짓, 입 모양으로 대화하면서도 축 처지는 어깨들을 놓치지 않은 허니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일단, 올라가자.’ 새로운 목적지를 의논하려면 다 같이 대화가 될만한 곳을 찾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었다.



‘안 됩니다.’



하지만 의외의 인물이 허니를 가로막았다. 허니의 손가락을 살짝 잡아 내리려, 다가,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제 손바닥을 펴서 가린 조엘이 단호하게 속삭였다. 명확한 거절에 허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동그랗게 뜬 눈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조엘이 입을 몇 번 벙긋거리다 도로 다물었다.


조엘은... 리더의 재목이 아니었다. 그래서 군대도 제대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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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팀원들에게 겁을 줄지언정 이끌지는 못했었다. 상황 브리핑 이후 새로운 작전을 전달하고 지시하는 일이 어느 순간 버거워진 탓이었다. 상부에서는 그의 판단 능력이나 전략 기획력을 높이 샀지만, 조엘 스스로가 거기에 한계를 느껴 제대한 케이스였다.

그런데 지금 당장 팀원도 아닌 학생 몇 명이랑 동료 교사들을, 하물며 설득까지 해야 한다니. 벌써부터 눈앞이 깜깜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탈출도 불가능한 2층 이상의 층에 머물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나... 마을이 버려졌을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는 더. 게다가 그것들이 아직은 창문 밖의 총성에 정신을 빼앗긴 채라고 해도 언제 학교로 관심을 돌릴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러이러한 장황한 사정을 허니처럼 간결하게 설명할 능력도, 다 좆까고 일행들에게 무작정 머물라고 할만한 무대뽀 성정도 없던 조엘 킨나만은 차라리 혼자 뛰어가서 좀비와 맞다이라도 뜨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니가 제 가슴팍을 살짝 밀어내기 전까지는.



조엘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갑갑해 보이는 조엘의 표정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여태 벽과 조엘 사이에 갇힌 듯 서 있어야 했던 허니 뿐이었다. 이 양반은 뭐가 또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올라가는 게 안 된다는 건가? 자세한 사정 같은 건 몰라도 눈치는 있었다. 뭔가 설명하기에는 좀 난감한 게 있나 보네.

군인이 그렇다고 하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허니가 조엘을 살짝 밀치고 나선 건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였다. 저렇게 인상 무서운 양반들 중에 유독 학생들을 어려워하는 선생들이 있으니까. 조엘도 그냥 그런 사람 중 하나겠거니- 하고.

조엘의 뒤에서 눈알만 바쁘게 굴리고 있던 일행들에게 ‘가만히’ 라는 뜻의 사인을 보낸 허니는, 정말 딱 그만큼의 노력을 했을 뿐이었다. 조엘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지라도.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조엘의 눈이 마치... 낯 간지러운 표현이지만, 인생의 지도자 같은 걸 찾은 사람의 것과 비슷해 허니의 미간이 못나게 일그러졌다. 그래도 같이 근무한 게 3년인데 아직도 속을 모르겠어 저 사람은.

물론 그런 태평한 감상을 떠올리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급박해 금방 그만두긴 했다. 교실은 당연히 안 되고, 3층도 안 된다고 하면 어디로 가야 하지?

허니가 답을 구하듯 조엘을 바라봤지만, 그도 마땅히 명확한 해결책이 있던 건 아닌 듯 인상을 구기고 학교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허니도 자연히 그를 따라 주변을 살폈다.

아래도 안 되고, 위층도 안 된다고 하고, 그럼 2층에서 좀비랑 짝짜꿍... 2층? 허니의 얼굴이 팟, 하고 소리 없이 들렸다.



‘강당?’



허니의 손끝이 브릿지를 가리켰다. 당연히 의견을 묻는 말이었는데, 모두가 홀린 듯 고개만 끄덕거렸다. 아니 괜찮겠냐고. 왜 이렇게 줏대가 없어 사람들이.



조엘의 생각과는 다르게 허니는 리더 같은 자리에 전혀 뜻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 조엘을 빤히 쳐다보기로 했다. 아무리 봐도 저 사람이 이 무리의 대장이었으니까. 원래 이런 때는 대장만 오케이하면 나머지 놈들도 알아서 줄줄이 소시지로 따라오는 거다.

지난 3년을 합친 것보다 오늘 하루 동안 허니와 눈을 더 자주 마주친 조엘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어젯밤에 강당에서 그 고생을 했으니 돌아가기 싫을 수도 있겠지. 근데 지금은 다른 뾰족한 수도 없잖아요. 계단에서 텐트 치고 살 것도 아니고. 그쵸?
허니의 눈이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다시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자꾸 가까워질 것 같은 좀비들이 허니의 등 뒤를 압박했다. 허니가 다시 손짓했다.

강당?



...예.

한참 만에 조엘의 허락이 떨어졌다. 나머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대열을 정비했다. 거 봐, 대장 맞다니까. 허니가 조금 가벼워진 것만 같은 압박감에 다시 뒤를 확인했다. 좀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46 .

문을 열면 어쨌든 소리는 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건 뭐? 스피드!



브릿지로 향하는 유리문은 다행히 예전부터 잠금장치가 고장 나 있기로 유명했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체인이 없으면 열려 있다는 뜻이니 어쨌든 지금으로선 다행이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허니와 칼럼이 문을 열고 뛰어나가는 동안 뒤에서 조엘과 잭이 달려올 좀비들을 밀어내고 엄호하기로 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자세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고, 조엘이 알아서 뒤로 빠지길래 허니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제발 전부 들어와서 문이라도 닫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유리문 너머 브릿지는 좀비는커녕 시체 하나 없이 깨끗했다. 부디 강당도 저만큼만 조용해주길, 적어도 몸을 숨길 다른 공간이라도 있어 준다면...


본인이 제안한 일이었지만 그래서 더 불안했다. 허니가 스패너를 꽉 쥐자 낯설고 큰 손이 그 위를 살짝 덮어왔다. 칼럼이었다. 허니가 할 말이라도 있냐는 듯 눈썹을 치켜뜨자 특유의 실없는 미소를 들이대며 제 손바닥을 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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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주세요.’

‘안 돼.’

‘무서운데.’

‘...조심해서 써.’



속닥거리지도 않고 입 모양만으로 이뤄지는 대화를 알아들은 사람은 없었다. 있었으면 그게 무서운 표정이냐고 누구든 칼럼 머리통을 후렸을 테니 확실했다.



칼럼이 은근슬쩍 저를 뒤로 보내는 것도 눈치 못 챌 만큼, 허니는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얼마 전에 약을 갈아준 시계가 힘차게 초침을 돌리는 중이었다. 타이밍만 잘 맞추면... 무사히 좀비를 피해 강당으로 향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튀어 나가기까지 앞으로 1분-







30초





10초




5



3... 2, 1


















Rrrr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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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운동장의 스피커는 아까의 총에 맞아 전부 먹통이었다. 수십 쌍의 텅 빈 시선이 종이 울려대는 학교 건물을 향했다.



“지금이야!”



조엘이 외쳤다. 아홉, 아니, 수십 쌍의 다리가 재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교주너붕붕으로 좀아포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허니쌤



옥상양아치클리셰와 함께 크리스틴 등장!

Q. 근데 여기 대체 무슨 학교인가요
A. 무순적허용이모두들어간펄+쪽+쌀+기타 하이스쿨입니다... 미안합니다... 귀여운 좀비를 봐서라도 용서해달라 학교 고증은 중요하지 않다(아마도)

https://hygall.com/526062462

약 빌슼너붕붕 칼럼너붕붕 해숙너붕붕 토모너붕붕 리지너붕붕 리지올슨너붕붕 로우든너붕붕 조엘너붕붕 클틴너붕붕 + ???너붕붕 X 3
2023.02.11 00: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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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헉내센세입갤
[Code: ec67]
2023.02.11 00: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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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센세 왔다!!! 역시 존잼
[Code: f99e]
2023.02.11 01: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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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틴 너무 잘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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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1 02: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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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아악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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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2 03: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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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미쳤다 너무 재밌어 진심..
앞으로 누구 나올지도 너무 궁금하고 센세 필력이 국수 먹는거처럼 후르륵 읽혀 나 진짜 아포칼립스물 좋아하는데 센세가 써줘서 더 행복해 ㅠㅠㅠ 사랑해 센세
[Code: 7d3e]
2023.02.12 21: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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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개존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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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4 04: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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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어디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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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1 03: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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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간이 쫄깃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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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1 03: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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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은 설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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