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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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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악당은 악당다워야 한다. 잔혹하고, 냉정하며, 사람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파고들 줄 알아야 한다. 악당은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악당이라 이름 댈 자격이 없는 셈이니, 목을 베어 거리의 등불에 걸어두리라.
"안 그런가? 파트너."
해리 오스본. 그린 고블린은 장황하게 떠벌린 벌처의 연설에 싸늘한 시선만 던지고서, 보고 있던 화면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그에 김이 샌 벌처가 해리의 옆으로 붙어서 중얼거렸다.
"보름이나 지난 것치곤 수치가 별로 안 올랐군. 열심히 부채질했다 생각했는데, 모자랐나?"
엄지로 턱을 한번 훑은 그가 새빨간 안광을 흘렸다. 고글로 한 꺼풀 가려진 눈길조차 역겨운 탓에 해리는 상반신을 옆으로 물려 남자와의 거리를 벌렸다.
"아니, 딱 좋아. 너무 이상해도 의심을 사거든."
"음, 상관없는 것 아닌가? 어차피 그 칩은 매개체에 불과해, 시스템에 침투하고 나면 알아서 떨어지잖나. 눈으로 확인되는 것도 없는데 보조기구에 문제가 생겼단 사실을 알아챌까?"
"이봐, 벌처. 이번 타깃은 보통 놈들하곤 달라. 일찍 알아챘으면 역으로 이쪽을 무력화시켰겠지. 정신이 오염되기를 기다리는 게 좋아. 천천히, 알아차린다 해도 돌이킬 수 없도록. 어차피, 이런 건 사소한 계기 하나로 폭발하기 마련이니까. 조만간 한계점을 넘어서 폭발하고 말 테지."
"오~, 해리. 공을 많이 들이는군. 박사를 찾아간 첫날부터 두 달간 꾸준히 용병을 보낸 것도 그렇고, 가상의 세력까지 만들어 이쪽으로 꾀어내려는 것도 그렇고."
"젠틀맨의 말을 잊었나? 이 칩은 완벽하지 않아. 세뇌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그 내용을 믿게 할 만한 의혹이 충분해야 해. 불안을 조성하고, 상대의 정신을 미혹할 필요가 있지."
"으음! 그런 건 알고 있네. 내 말은 그거야. 왜 이렇게까지 귀찮은 방법을 쓰냐는 거지. 그냥 그자를 겁박해서 닥터 옥타비우스의 기계 팔을 완성하고 죽여버려도 되잖나. 스파이더맨에겐 고통을 주고, 우리 목적도 달성하는 일석이조 아닌가?"
그 말에, 해리 오스본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벌처를 무던히 올려다봤다.
"...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이, 걔를 아프게 하긴 했지. 하지만 멈추게 하진 못했어. 소중한 사람을 죽이는 건 겨우 그 정도란 거야. 그렇다면, 그 소중한 존재가 자신을 배신하면 어떨까? 완전한 절망과 좌절. 그래. 난 피터 파커가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를,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죽어버리길 바라. 그가 파멸했으면 좋겠어. 처절하게..."
'나처럼.'
그린 고블린과 벌처가 앉은 어두운 공간에 싸늘한 적막이 찾아왔다. 맞닿아 이어진 두 빌런의 시선은 해리가 고개를 돌리면서 어긋났다.
"역시, 넌 내가 선택한 '진짜' 빌런이야. 가장 나약한 부분을 파고들 줄 알지."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한가?"
"충분하고말고. 파트너."
머리 위에서 벌처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해 저문 창밖으로는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벌처의 웃음에 맞장구쳤다. 타닥타닥. 해리를 중심으로 온 사방에 폭죽이 터졌다.
.
항구 도시는 전날 내내 퍼부었던 폭우로 새벽부터 안개가 잔뜩 꼈다.
태양의 위치를 가늠하긴커녕 코앞 분간도 어려운 마당이지만, 러시아워를 맞은 도로는 차량의 안개등과 비상등으로 줄줄이 깜빡였다. 그 행렬 — 맨해튼으로 들어오는 도로 — 에 스티븐의 차가 끼어있었다.
학회가 열린 필라델피아에서 아침 일찍 돌아오는 길이던 스티븐은 괜히 타지에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짙은 안개 탓에 허드슨강 너머에선 맨해튼도 한 뭉텅이 고래 등으로 부옇게 검어졌다. '그냥 어제 출발할 것을.' 스티븐은 운전대 위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안개로 붕 뜬 도심 상층부를 노려봤다. 희끄무레한 스카이라인이 어딘가 불길했다. 그는 결심하듯 입술을 꽉 깨물고, 옆좌석에 둔 상의 안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번호를 찾는 손이 트라우마로 벌벌 떨려왔다. 몇 번이고 헛손질을 거듭한 스티븐이 기어코 제 형의 이름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기나긴 연결음 끝에도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음성이 흘러나올 때쯤, 뒤에서 빵빵거리는 경적이 울려 스티븐을 재촉했다. 어느새 앞차는 하이웨이의 가로등 네 개 간격 만큼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링컨 터널을 통해 맨해튼으로 넘어온 스티븐은 터널을 빠져나와 암스테르담 애비뉴를 죽 달려 올라갔다. 그는 제한 속도를 1에서 2 정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선에서 달렸다. 멀리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마치 그를 체포하러 오는 것 같았다.
스티븐은 웨스트 86번가에 다다르자 좌로 핸들을 꺾어, 돌진하듯 아파트 주차장 입구로 들어갔다. 아무렇게나 세워둔 차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영원처럼 아득했다. 띵-, 귀 따가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빠르게 층수 버튼을 누른 스티븐은 곧바로 닫힘 버튼을 연달아 두드렸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후엔 열림 버튼을 연달아 눌렀고, 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복도를 뛰었다. 제집 앞에 도달해선 황급한 손길로 손가락을 잠금장치에 갖다 대었다. 지문을 인식한 장치가 삐릭 소리를 내며 문을 열자, 역시나 다급하게 중문을 열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거의 본능에 가까운 사고로, 침실 대신 서재 문고리를 돌렸다.
안에는 그의 형 제프리가 노트북 책상 앞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의자는 바닥에 나동그라져서, 고개를 푹 숙인 제프리와 무척이나 닮아 보였다.
스티븐이 숨을 허덕이며 물었다. "... 피터는?" 제가 집을 비웠으니, 분명 피터가 와 있으리란 생각의 발로였다.
제프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며 답했다.
"새벽에, 패트롤을... 안개가.. 너무 껴서... 사고가 났어. 그래서...."
그 잠깐을 못 참았어.......
눈물로 흐려진 뒷말이 제프리의 주변에서 맴돌았다.
"여태까지 잘 참았는데.. 그런 말은 헛소리라고, 며칠째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않냐면서, 애써 무시해왔는데. 그런데, 갑자기 나를 제어할 수가 없었어. 생각이 자꾸만 뻗어나가서, 너무 불안해서, 혹시, 혹시 사고 난 사람이 너는 아닐까? 안개를 틈타 너를 노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쉴 새 없이 울려대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제프리의 두서없는 말에, 스티븐은 침착을 가장하며 다가갔다.
"무슨 짓을 한 거야, 형...."
"... 제안, 그 자들의 제안을 받아 들."
"무슨 짓을 했냐고-!!"
"...... 피.. 터의 정체를, 언론에 흘렸어. 증거 사진과 함께."
제프리의 얼굴이 천천히 들렸다.
"내 손으로, 직접. 넘겨 버렸어.... 내가, 피터의 일상을 망쳐버렸어."
그 순간, 스티븐의 귀에는 제프리의 내면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
.
.
5중 추돌 사고가 일어난 현장. 경찰보다 일찍 도착한 피터는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던 중, 빌딩 전광판에 뜬 긴급 속보를 보고 몸을 굳혔다.
'스파이더맨의 이름은 피터 파커, 퀸스 출신의...'
자막과 함께 자신의 얼굴과 이름, 다친 몸으로 마스크를 벗는 장면들이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우며 흘러갔다. 그리고,
'제프리 스트레인지.'
정보 제공자의 이름이 화면 맨 아래, 오른쪽 귀퉁이에 선명하니 박혀있었다.
"거짓말이지...?"
글쎄. 그건 모를 일이지.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존재거든.
난 경고했어.
피터의 머리에, 스티븐이 했던 말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다.
.
.
.
스티븐이 '제프리의 내면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라 착각했던 굉음은 벌처와 그린 고블린이 거실 창문을 깨며 낸 소리였다.
"잭팟." 반쯤 이끼로 뒤덮인 듯한 사내가 서늘한 목소리로 읊조리고, 그 옆의 날개 달린 이가 제프리를 낚아챘다. 제프리는 갑작스레 등장한 이들에게 어깨를 잡히면서도 부릅뜬 눈으로 요구했다.
"원하는 대로 했어. 이제, 우릴 노리는 놈들이 누군지 말해."
제안을 건넨 이에게 제안을 수락한 이가 청하는 정당한 요구. 상대는 아직 이행하지 않은 게 있지 않냐는 말로 그 청을 물렸다.
"조건은 두 가지였지. 첫 번째,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밝히고. 두 번째, 우리와 함께 하는 것. 닥터 옥타비우스가 실패했던 연구를 완성시켜. 오스코프에서 그 자의 조수로서 도왔던, 자네의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그 기술의 근본이 되는 연구.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복수하는 거지. 그들이 노리는 것으로 그들을 멸망시키는 거야. 상상해 보게. 짜릿하지 않나?"
벌처는 한 팔로 제프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
"난 알고 있다네. 자네의 심장에 꿈틀거리는 그 사나운 복수심ㅇ."
"지금 저딴 말을 믿는 건 아니지?"
스티븐이 남자의 헛소리에 제동을 걸었다.
"딱 봐도 거짓말이잖아. 형, 제프리. 행동 원리는 배워서 남 줬어? 장난해?"
"스티븐. 다 널 지키기 위해서야. 가만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 날 지켜? 알아서 해? 하-! 내 한 몸 정도는 내가 지킬 수 있어. 저딴 애새끼들 말에 휘둘리는 형이나 조심하라고!"
"아, 방해가 되는데." "건들지 마-!!!" 남자의 혼잣말에 제프리가 다급히 외쳤다. 파르라한 눈동자에 미세한 살기가 감돌았다.
"스티븐, 내가 해야 해. 넌 여기 있어. 만약, 피터가 오면 말해줘. 내가 이기적인 거라고, 너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그러니 나를 용서하지 말라고...."
갈게. 그 말을 끝으로, 제프리는 떠났다. 조금 옅어진 안개가 그들이 날아간 하늘을 꼼꼼히 가렸다.
.
티비에서 어스파 해줘서 진짜 좋다.ㅠㅠㅠ 3편 보고 싶음.ㅋㅋ
글이 좀 늘어지나 싶기도 한데, 계속 봐주고 댓글도 달아주고 추천 눌러줘서 감사함. 진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말로 표현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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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은 악당다워야 한다. 잔혹하고, 냉정하며, 사람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파고들 줄 알아야 한다. 악당은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악당이라 이름 댈 자격이 없는 셈이니, 목을 베어 거리의 등불에 걸어두리라.
"안 그런가? 파트너."
해리 오스본. 그린 고블린은 장황하게 떠벌린 벌처의 연설에 싸늘한 시선만 던지고서, 보고 있던 화면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그에 김이 샌 벌처가 해리의 옆으로 붙어서 중얼거렸다.
"보름이나 지난 것치곤 수치가 별로 안 올랐군. 열심히 부채질했다 생각했는데, 모자랐나?"
엄지로 턱을 한번 훑은 그가 새빨간 안광을 흘렸다. 고글로 한 꺼풀 가려진 눈길조차 역겨운 탓에 해리는 상반신을 옆으로 물려 남자와의 거리를 벌렸다.
"아니, 딱 좋아. 너무 이상해도 의심을 사거든."
"음, 상관없는 것 아닌가? 어차피 그 칩은 매개체에 불과해, 시스템에 침투하고 나면 알아서 떨어지잖나. 눈으로 확인되는 것도 없는데 보조기구에 문제가 생겼단 사실을 알아챌까?"
"이봐, 벌처. 이번 타깃은 보통 놈들하곤 달라. 일찍 알아챘으면 역으로 이쪽을 무력화시켰겠지. 정신이 오염되기를 기다리는 게 좋아. 천천히, 알아차린다 해도 돌이킬 수 없도록. 어차피, 이런 건 사소한 계기 하나로 폭발하기 마련이니까. 조만간 한계점을 넘어서 폭발하고 말 테지."
"오~, 해리. 공을 많이 들이는군. 박사를 찾아간 첫날부터 두 달간 꾸준히 용병을 보낸 것도 그렇고, 가상의 세력까지 만들어 이쪽으로 꾀어내려는 것도 그렇고."
"젠틀맨의 말을 잊었나? 이 칩은 완벽하지 않아. 세뇌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그 내용을 믿게 할 만한 의혹이 충분해야 해. 불안을 조성하고, 상대의 정신을 미혹할 필요가 있지."
"으음! 그런 건 알고 있네. 내 말은 그거야. 왜 이렇게까지 귀찮은 방법을 쓰냐는 거지. 그냥 그자를 겁박해서 닥터 옥타비우스의 기계 팔을 완성하고 죽여버려도 되잖나. 스파이더맨에겐 고통을 주고, 우리 목적도 달성하는 일석이조 아닌가?"
그 말에, 해리 오스본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벌처를 무던히 올려다봤다.
"...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이, 걔를 아프게 하긴 했지. 하지만 멈추게 하진 못했어. 소중한 사람을 죽이는 건 겨우 그 정도란 거야. 그렇다면, 그 소중한 존재가 자신을 배신하면 어떨까? 완전한 절망과 좌절. 그래. 난 피터 파커가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를,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죽어버리길 바라. 그가 파멸했으면 좋겠어. 처절하게..."
'나처럼.'
그린 고블린과 벌처가 앉은 어두운 공간에 싸늘한 적막이 찾아왔다. 맞닿아 이어진 두 빌런의 시선은 해리가 고개를 돌리면서 어긋났다.
"역시, 넌 내가 선택한 '진짜' 빌런이야. 가장 나약한 부분을 파고들 줄 알지."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한가?"
"충분하고말고. 파트너."
머리 위에서 벌처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해 저문 창밖으로는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벌처의 웃음에 맞장구쳤다. 타닥타닥. 해리를 중심으로 온 사방에 폭죽이 터졌다.
.
항구 도시는 전날 내내 퍼부었던 폭우로 새벽부터 안개가 잔뜩 꼈다.
태양의 위치를 가늠하긴커녕 코앞 분간도 어려운 마당이지만, 러시아워를 맞은 도로는 차량의 안개등과 비상등으로 줄줄이 깜빡였다. 그 행렬 — 맨해튼으로 들어오는 도로 — 에 스티븐의 차가 끼어있었다.
학회가 열린 필라델피아에서 아침 일찍 돌아오는 길이던 스티븐은 괜히 타지에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짙은 안개 탓에 허드슨강 너머에선 맨해튼도 한 뭉텅이 고래 등으로 부옇게 검어졌다. '그냥 어제 출발할 것을.' 스티븐은 운전대 위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안개로 붕 뜬 도심 상층부를 노려봤다. 희끄무레한 스카이라인이 어딘가 불길했다. 그는 결심하듯 입술을 꽉 깨물고, 옆좌석에 둔 상의 안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번호를 찾는 손이 트라우마로 벌벌 떨려왔다. 몇 번이고 헛손질을 거듭한 스티븐이 기어코 제 형의 이름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기나긴 연결음 끝에도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음성이 흘러나올 때쯤, 뒤에서 빵빵거리는 경적이 울려 스티븐을 재촉했다. 어느새 앞차는 하이웨이의 가로등 네 개 간격 만큼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링컨 터널을 통해 맨해튼으로 넘어온 스티븐은 터널을 빠져나와 암스테르담 애비뉴를 죽 달려 올라갔다. 그는 제한 속도를 1에서 2 정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선에서 달렸다. 멀리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마치 그를 체포하러 오는 것 같았다.
스티븐은 웨스트 86번가에 다다르자 좌로 핸들을 꺾어, 돌진하듯 아파트 주차장 입구로 들어갔다. 아무렇게나 세워둔 차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영원처럼 아득했다. 띵-, 귀 따가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빠르게 층수 버튼을 누른 스티븐은 곧바로 닫힘 버튼을 연달아 두드렸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후엔 열림 버튼을 연달아 눌렀고, 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복도를 뛰었다. 제집 앞에 도달해선 황급한 손길로 손가락을 잠금장치에 갖다 대었다. 지문을 인식한 장치가 삐릭 소리를 내며 문을 열자, 역시나 다급하게 중문을 열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거의 본능에 가까운 사고로, 침실 대신 서재 문고리를 돌렸다.
안에는 그의 형 제프리가 노트북 책상 앞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의자는 바닥에 나동그라져서, 고개를 푹 숙인 제프리와 무척이나 닮아 보였다.
스티븐이 숨을 허덕이며 물었다. "... 피터는?" 제가 집을 비웠으니, 분명 피터가 와 있으리란 생각의 발로였다.
제프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며 답했다.
"새벽에, 패트롤을... 안개가.. 너무 껴서... 사고가 났어. 그래서...."
그 잠깐을 못 참았어.......
눈물로 흐려진 뒷말이 제프리의 주변에서 맴돌았다.
"여태까지 잘 참았는데.. 그런 말은 헛소리라고, 며칠째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않냐면서, 애써 무시해왔는데. 그런데, 갑자기 나를 제어할 수가 없었어. 생각이 자꾸만 뻗어나가서, 너무 불안해서, 혹시, 혹시 사고 난 사람이 너는 아닐까? 안개를 틈타 너를 노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쉴 새 없이 울려대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제프리의 두서없는 말에, 스티븐은 침착을 가장하며 다가갔다.
"무슨 짓을 한 거야, 형...."
"... 제안, 그 자들의 제안을 받아 들."
"무슨 짓을 했냐고-!!"
"...... 피.. 터의 정체를, 언론에 흘렸어. 증거 사진과 함께."
제프리의 얼굴이 천천히 들렸다.
"내 손으로, 직접. 넘겨 버렸어.... 내가, 피터의 일상을 망쳐버렸어."
그 순간, 스티븐의 귀에는 제프리의 내면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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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중 추돌 사고가 일어난 현장. 경찰보다 일찍 도착한 피터는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던 중, 빌딩 전광판에 뜬 긴급 속보를 보고 몸을 굳혔다.
'스파이더맨의 이름은 피터 파커, 퀸스 출신의...'
자막과 함께 자신의 얼굴과 이름, 다친 몸으로 마스크를 벗는 장면들이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우며 흘러갔다. 그리고,
'제프리 스트레인지.'
정보 제공자의 이름이 화면 맨 아래, 오른쪽 귀퉁이에 선명하니 박혀있었다.
"거짓말이지...?"
글쎄. 그건 모를 일이지.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존재거든.
난 경고했어.
피터의 머리에, 스티븐이 했던 말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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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이 '제프리의 내면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라 착각했던 굉음은 벌처와 그린 고블린이 거실 창문을 깨며 낸 소리였다.
"잭팟." 반쯤 이끼로 뒤덮인 듯한 사내가 서늘한 목소리로 읊조리고, 그 옆의 날개 달린 이가 제프리를 낚아챘다. 제프리는 갑작스레 등장한 이들에게 어깨를 잡히면서도 부릅뜬 눈으로 요구했다.
"원하는 대로 했어. 이제, 우릴 노리는 놈들이 누군지 말해."
제안을 건넨 이에게 제안을 수락한 이가 청하는 정당한 요구. 상대는 아직 이행하지 않은 게 있지 않냐는 말로 그 청을 물렸다.
"조건은 두 가지였지. 첫 번째,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밝히고. 두 번째, 우리와 함께 하는 것. 닥터 옥타비우스가 실패했던 연구를 완성시켜. 오스코프에서 그 자의 조수로서 도왔던, 자네의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그 기술의 근본이 되는 연구.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복수하는 거지. 그들이 노리는 것으로 그들을 멸망시키는 거야. 상상해 보게. 짜릿하지 않나?"
벌처는 한 팔로 제프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
"난 알고 있다네. 자네의 심장에 꿈틀거리는 그 사나운 복수심ㅇ."
"지금 저딴 말을 믿는 건 아니지?"
스티븐이 남자의 헛소리에 제동을 걸었다.
"딱 봐도 거짓말이잖아. 형, 제프리. 행동 원리는 배워서 남 줬어? 장난해?"
"스티븐. 다 널 지키기 위해서야. 가만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 날 지켜? 알아서 해? 하-! 내 한 몸 정도는 내가 지킬 수 있어. 저딴 애새끼들 말에 휘둘리는 형이나 조심하라고!"
"아, 방해가 되는데." "건들지 마-!!!" 남자의 혼잣말에 제프리가 다급히 외쳤다. 파르라한 눈동자에 미세한 살기가 감돌았다.
"스티븐, 내가 해야 해. 넌 여기 있어. 만약, 피터가 오면 말해줘. 내가 이기적인 거라고, 너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그러니 나를 용서하지 말라고...."
갈게. 그 말을 끝으로, 제프리는 떠났다. 조금 옅어진 안개가 그들이 날아간 하늘을 꼼꼼히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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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에서 어스파 해줘서 진짜 좋다.ㅠㅠㅠ 3편 보고 싶음.ㅋㅋ
글이 좀 늘어지나 싶기도 한데, 계속 봐주고 댓글도 달아주고 추천 눌러줘서 감사함. 진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말로 표현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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